♥ 아름다운 동행 ♥ 횡단보도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행 신호가 켜지자 사람들은 종종 걸음을 한다. 8차로 인데도 우리 병원 앞 신호등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신호가 바뀐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다리가 불편해 걸음이 느리다. 모두 다 건널 즈음인데도 이 아이는 아직 중앙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때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뒤늦게 횡단 보도를 건너려고 뛰어든다. 물론 그 아이들의 걸음으로는 무사히 건너기에 문제가 없다. 한데 뒤처져 건너는 여자 아이를 발견하곤 아이들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무슨 약속이나 한 듯 한 걸음쯤 뒤쳐져 여자 아이를 따라간다. 그가 눈치 못채게 하려는게 분명해 보인다. 자칫 자존심이 상할수도 있다. 혹은 자신들의 배려에 행여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세심한 배려가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신호는 꺼졌고 다리는 불편하고. 슬슬 차가 움직이는데 얼마나 불안 할까? 인간은 이런순간 깊은 소외감. 고독감에 빠지게 된다. 이럴때 함께 걷는다는 건 그 아이의 불편을. 아픔을 함께 나눠 갖겠다는 것이다. 중앙선을 겨우 넘자 신호가 벌써 바뀌었다. 아이들은 손을 들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 시킨다. 여자 아이도 안간 힘을 쓰는게 뒤에서 봐도 역력하다. 그 아이는 부축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저 느릴 뿐이었다. 거기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까지 흔들 거리니 더 힘들어 보였다. 가방을 들어주랴. 남자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여자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몇걸음 옮기더니 가방을 벗어 준다. 남자 아이가 쑥스럽게 받아든다. 여자아이도 지금쯤 이 남자아이들이 왜 뜀박질을 멈추고 자기 옆을 "호위"하고 있는지를 알아 차렸겠지. 이젠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 따뜻한 배려가 고맙다. 가방을 들어 주겠다는 호의도 고맙다. 그렇다고 채면 없이 벗어주기엔 미안하고... 하지만, 행여 남자아이가 무안해 하지나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바쁘게 오갔겟지, 내게 이 장면은 너무나 아름 다웠다. 믿음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순간이다. 아스팔트 정글, 붉은 신호를 건너고 있는 긴장의 순간, 성급한 운전자들이 차마 출발은 못하고 으렁대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 아이들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의 나눔은 한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거기엔 따뜻한 인정의 가교가 놓여있다. 이 아이들이 다 건너기 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운전자들도 고마웠다.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기다릴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들도 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지켜 보면서 마음 속으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겠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경적을 울리며 출발하는 한국인의 운전 습관으로선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수 없다. 무사히 건너온 사내 아이들이 가방을 내민다. 여자아이가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받는다.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간다. 저만치 가던 사내아이들이 뒤돌아본다. 붐비는 차 사이로 잘 보이진 않지만 ' 잘가 "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릴듯 하다. 저 아이들이 각박한 도심의 살풍경을 장미꽃 화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회색빛 거리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 졌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달려가 덥석 안아주고 싶다. 택시가 내 앞에 멈춰 기다리고 있는것도 아랑곳 하지않고 난 그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질때 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일까? 아! 요즈음 세상에도 아이를 저렇게 가르키는 부모가 있구나. 어떤 사람일까? 그 아이들의 가정 분위기까지 궁금 해진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듯 황홀 했다. 난 그날 오후 내내 이 생각으로 흐뭇하고 즐거 웠다. 요즈음 아이들! 말만 들어도 우린 혀를 차고 고개를 내 젓는다. 하지만 주위엔 아름다운 아이들도 많다. 그게 보인다면 " 요즈음 어른들" 모습은 어떤지 우리 자신을 되 돌아 봐야 한다.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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