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과연 무엇일까?
대운하 정부?
녹색성장 정부?
네오콘 정부?
흥미로운 것은 김영삼 이후 노무현까지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등 정권의 철학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는데 유독 이명박 정부에게는 이러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본래 프로 정치라는 게 지도자가 명확한 철학과 비젼을 제시하고 그 철학과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
모여서 정책을 만들고 집권을 준비하는 것인데 MB 집권세력에게는 그와같은 절차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유우익이나 정종환 같은 사람은 대운하 하려고 정권에 참가했고,
이동복이나 김두우 같은 사람은 조중동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들어갔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기득권을 등에업어 한자리 차지하려고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이들 중 누구도 이명박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고 가고자
하는지 도통 관심이 없었다.
조중동도 정권 빼앗아오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다보니 MB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 없이 사실상
여론조작 수순을 밟으며 정권탈환에 올인했다. 그 결과 MB 정부가 탄생했다.
그런데 요즘들어 MB정부 출범에 기여한 세력들이 일제히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명박과 안상수가 보수세력의 치부와 아킬레스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보여주면서
사실상 보수세력 완전 몰락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명박과 안상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대 안 갔다 온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어디 그들 뿐이었나?
김대중도 안 갔다 왔고 김영삼도 안 갔다 왔다. 김대중 때 대표였던 한화갑도 안 갔다 왔고
노무현 때 대표였던 김근태도 안 갔다 왔잖아. 근데 왜들 나만 같고 그래... 이럴 법도 하다.
그렇지만 그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개혁과 복지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데 일시적으로 안보가
불안하면 국민들이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런데 안보와 경제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데 안보도 불안하고 경제도 나쁘면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혹시 잊었냐? 고건-박근혜-이명박이 20% 전후에서 지지율 왔다갔다 할 때에 갑자기 갭럽 여론조사에서 MB 지지율이 32% 나왔는데 그게 북한 핵실험 직후였지? 안보가 불안해지니까 MB 리더십이 부각되었다면서... 장사꾼들이 팔아먹을 때 마음과 팔고 난 이후에 마음이 다르면 안 되잖아...
본래 보수가 표방하는 이미지는 "능력 있고 안정감 있다" 바로 요거다.
이명박이 BBK와 도곡동 땅 문제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애시당초 국민들이 보수세력에게 도덕성과 개혁성을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더라도 국민들 안심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요런 마음으로 찍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천안함은 침몰하고, 연평도에는 대포 날라오고,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급속히 늘어나고, 한미 FTA 지지부진으로 수출에도 먹구름이 끼어들고, 2년전 겪었던 미국소 촛불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4대강 주먹구구 개발로 총체적 경제위기가 올 것 같고... 이러니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이 결코 도덕적이지 않고 개혁적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일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 상황에서는 '북풍'이 이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그 믿음이 깨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북풍'이 그들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현재 상황이다.
이명박과 안상수에게 분노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저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경박하고 줏대없는 대표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정말 그 비법을 묻고 싶다. 이들만큼 확실한 반면교사도 없다. 과거에는 아무리 허접한 여당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중량감있는 인물들을 내세웠다. 정동영이 탄핵정국을 틈타 당의장에 되었지만 노인폄하 발언으로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처럼 권력과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이 왜 그랬겠냐? 물러나지 않고는 정권 이너서클 내부의 반발과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상수는 그보다 몇배 더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본인 스스로 물러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에게 물러나라고 압력을 넣는 사람들도 없다. 왜냐고? 모두들 이명박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정당이라면 절대로 안상수와 홍준표 같은 사람이 당권을 놓고 다툴 수 없다. 정당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고 수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과거에 '저격수'를 하며 품위없는 발언의 초절정을 보여줬던 사람을 지도부에 앉히며, 어떻게 징집을 피하기 위해 도망다니며 군대를 면제받은 사람을 당대표로 선출할 수 있냐? 본래 전세계적으로 보수주의가 내세우는 것은 바로 'Noblesse Oblige'다. 이것의 핵심은 내부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스스로가 먼저 변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주의 정권이야말로 앞서 말한 정권 이너서클의 견제와 자정 작용이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작동되지 않으니 허접한 해프닝과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심이 지금처럼 계속나빠지면 '박근혜 대세론'도 설 자리를 잃는다. 왜냐하면 박근혜야말로 '원조 보수'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 명박의 잘못으로 보수가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요즘 조중동 사설 보면 MB와 그 측근들에게 거의 저주를 퍼붓다시피 하고 있다. 종편허가가 사실상 누더기가 되어 방송으로 재미 보기도 글렀고, MB가 정권 잡으면 한겨레-경향-오마이-서프 다 문닫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힘을 얻고있고, KBS-MBC-YTN을 장악했다고 만세삼창 했는데 이들도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고... 류근일 말대로 정말 도끼로 손을 찍고 싶은 심정일게 분명하다. 아마도 보수 지식인들 술자리에서 이런 말이 단골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혹시 이명박과 안상수는 보수세력으로 위장한 X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