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서서 오줌 누고 싶다

by 범여(梵如) 2011. 4. 23.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이규리
    여섯 살 때 내 남자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셈여림이 있고 박자가 있고 늘임표까지 있던,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 냈지만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속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몸에 난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 해도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 스며있었을까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비는 오줌보다 따습지 않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비어있지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고 싶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롭다고 쉽게 아무에게나 기대지 마요  (0) 2011.09.21
*** 그대는 아는가... *** (이정하)  (0) 2011.05.21
막걸리 한사발에  (0) 2011.04.14
조선중기 여류시인 ( 옥봉)  (0) 2011.03.24
서리꽃 - 유안진   (0) 201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