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흥암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년) 국사 혜철(惠徹)가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임난으로 사찰이 전부 전소되었으나, 조선 명종1년 (1546년)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다. 효종2년(1651년)과 숙종3년(1677년)에 중수하였다. 영조6년(1730년)에는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고, 철종 9년(1858년)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락전*
보물 제790호로 지정된 극락전 주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546년 절을 중창할 때의 것이다. 비구니스님 수행도량인 백흥암은 수행의 역사보다도 불교미술로서 그 진가를 나타내는 도량이다. 조선 인조 때 건립된 극락전 안 수미단이 바로 그것이다.
극락전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
수미단(보물 제486호)
은해사 백흥암의 극락전에는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삼존상을 받치고 있는 불단은 나무로 된 것이지만 뛰어난 각법(刻法)과 특이한 구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전면이 5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도 5등분 되어 있다. 제일 상단은 튀어나오도록 하였는데 각 구획 안에는 안상을 부각하였고, 제2단은 봉황, 공작, 학, 꿩 등이, 제3단은 용, 동자, 물고기, 개구리 등이, 제4단은 코끼리, 사자, 사슴 등이 조각되어 있다. 수미단은 각종 동물들을 특징있게 투각하여 조선시대 목조각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극락전 불화
은해사백흥암감로왕도(銀海寺百興庵甘露王圖) (시도유형문화재 제319호 (영천시)) 은해사 백흥암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불경 중 하나인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가로 218.5㎝, 세로 225㎝의 크기이다. 즉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등 6여래와 지장보살이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온 모습과 이들을 정토로 인도하는 인도왕보살 및 수레를 그려 놓았다. 이들 주위로는 오색 구름이 둘러싸여 천상세계와 지옥세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주위에는 지옥의 고통스러운 장면과 현세의 여러 상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각 장면의 사이에는 구름과 바위산을 그려 경계를 짓고 장면마다 붉은 종이에 묵서로 설명을 달아 놓았다. 화면 아래 나무 밑에는 호랑이 한마리를 그려 놓았는데, 화풍이 조선 후기 민화에 흔히 등장하는 모습이어서 흥미를 끈다. 중앙의 아귀를 강조한 특이한 화면 구성과 탁한 색채와 일률적인 필선 등은 당시 불화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화에 풍속화적인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회화사에서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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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각의 추사의 글씨*
십홀방장(十笏方丈) 편액과 6개의 주련은 추사의 글씨
백흥암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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