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양정(俛仰亭: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송순이 건립한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신(侍臣)이었던 송순(宋純)이 만년에
벼슬을 떠나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가롭게 여생을 지냈던 곳이다.
송순은 41세가 되던 1533년(중종 28)에 잠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짓고,
「면앙정삼언가(俛仰亭三言歌)」를 지어 정자이름과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한다.
그러나 그 정자는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1654년(효종 5)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동남향하고 있으며,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방이 꾸며져 있다.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하였으며
주두(柱頭)조차 생략되고, 처마도 부연(浮椽: 처마 끝에 덧 얹어진 짤막한 서까래)이 없는 간소한 건물이다.
주위에는 상수리나무·굴참나무·밤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아름드리 나무도 간간이 서 있다.
주된 전망은 후면에 해당하는 서북쪽으로 평야 너머로 연산(連山)이 보이고 서남쪽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다.
면앙정의 풍류운치는 당대에 명사들에게 흠모되었는데, 송순이 지은 잡가(雜歌) 2편에서 그 풍취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 글은 또한 『청구영언』 등 가집(歌集)에 무명작으로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십년을 경영해야 초당삼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대 업스니 돌려두고 보리라.”
이 노래는 만년에 이 정자를 두고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건물은 간소한 양식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중수 때에 원형이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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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인간의 끝없는 변화를 살피고 그 흐름을 읽어 내려는 호남 유림의 철학적 사유가 건축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호남의 정자고, 호남 가사문학의 요체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면앙정은 송순(1493∼1583)이 1533년에 지은 정자다.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보면 ‘우러러(仰)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숙여서(俯)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송순은 이 두 문장의 첫 글자를 따오면서 부(俯)자를 같은 ‘숙이다’는 의미인 면(면)자로 바꾸어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고 보니 맹자의 원래 의도인 자기성찰의 의미보다는 좀 더 호방하고 유쾌한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호남의 유림들은 철학자보다 문학가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면앙정은 정말 호쾌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면앙정에 오르면(호남의 정자는 대부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 영산강과 만나러 가는 오례천이 동서로 흐르고,
그 너머로 곡정들판이 눈이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먼저 면앙정 현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당대의 명필 성수침의 글씨고, 그 왼편 마루에 붙은 편액에 있는
‘면앙정 삼언가’는 송순이 지은 것이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그 가운데 정자를 짓고 흥취가 호연하다./
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산천을 끌어 들여/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년을 보내네.”
그리고 이 시가 그대로, 이후 호남 정자의 설계도가 되었다.
주변의 풍경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하고, 천지간에 내가 있듯이 좌우의 마루에 방이 있는 정자.
이 설계도는 그대로 임억령의 소쇄원 광풍각에서, 김윤제의 환벽당에서, 오희도의 명옥헌에서 각각의 땅의 논리에 맞춰 변주되었다.
집 바깥의 자연을 경영하는 수법들은 모두 다르지만, 집 자체에서 정면 세 칸에 가운데 한 칸을 방으로 꾸미는 것은 똑같다.
정자의 설계도뿐만이 아니라 송순의 ‘면앙정가’는 이후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집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면앙정은 오례천을 따라가다 제월산의 끝이 곡정들과 만나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꼭대기로 오르는 길을 충분히 음미해야 한다.
송순이 이 땅을 살 때, 땅 주인은 이곳에서 옥대를 두른 학사들이 노니는 꿈을 꾸고
아들들을 교육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인은 따로 있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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