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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옛집

[함성호의 옛집 읽기]<31>정여창 고택

by 범여(梵如) 2012. 3. 25.

정여창 고택

정부의 공식 지정 명칭은 문화재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인 '함양 정병옥 가옥'이지만 하동 정씨 대종가,

정여창 고택, 일두고택, 정병옥 가옥 모두 같은 곳이다. 함양은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이 일두 정여창이다. 조선조 5현이자 동국 18현으로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

9개의 서원에서 모시는 성리학의 대가다.

고택은 1570년 정여창 생가 자리에 지어진 이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번 중건되었다.

풍수에서는 대문을 기의 출입구로 여겼으므로 건물에서 대문의 방위가 어디에 있는가를 대단히 중요시했다.

솟을대문 주위의 담장은 대문과 함께 사신사 역할을 한다. 이처럼 살림집을 풍수로 풀 때 집의 주된 건물은

혈, 마당은 명당이 된다.

 

솟을대문 앞에는 하마비 가 자리해 주인의 명망을 알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솟을대문에는 벽사의 의미가 있는 호랑이 뼈나 가시가 많은 오가피나무 등이 걸려 있는데,

이곳에는 나라에서 내린 정려 패인 효자문 문패가 다섯 개 걸려 있다.

 

정려문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안채로 가는 일각문이, 오른편으로 넓은 사랑 마당에

잘 다듬은 디딤돌과 소맷돌을 갖춘 사랑이 보인다.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는 사랑채가 있고 안사랑채로

이어지는 쪽담 아래에는 두 그루의 구불거리는 노송이 사랑채 누마루에 기대 있다.

 

사랑채 방문 위에 천장까지 닿도록, 소위 대문짝만 하게 써놓은 '충효절의(忠孝節義)',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씨가 집안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충효절의'는 흥선대원군이 썼고 '백세청풍'은 김정희의 글씨라고 하나

고증은 안 된 상태다. 대문채는 쪽마루를 두어 좌우 두 칸씩 네 칸의 방을 꾸미고 왼쪽 끝에 사랑 측간을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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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함양읍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낮은 산과 넓은 들로 둘러싸인 편안한 마을이 나온다.

200년 이상 된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이다. 여기에 스승인 김종직과 함께 조선 오현(五賢)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일두 정여창(一두 鄭汝昌·1450∼1504)의 고택이 있다.

이 마을에는 일두 고택 외에도 풍천 노씨 대종가와 오담 고택, 하동 정씨 고가와 노 참판댁 고가 등이

흙담과 흙담 사이의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높은 솟을대문이 나타나는 곳에

이르면 정려패(旌閭牌·효자와 충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는 집이 나온다.

이 집이 정여창의 고택이다.

지어진 당시의 원형을 추정하기 매우 어렵지만 사랑채 앞의 석가산(石假山) 조형은 어느 정도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가 지어진 100년 후에 지어진 것이다. 이 집은 경남의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경남 지방의 사대부 집은 경북 지방의 같이채 배치와 달리 따로채 배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역시 사랑채, 안채, 안사랑채, 별당 등이 따로채를 이루며 담과 마당으로 나뉘고 결합돼 있다.

(그러나 이런 지역적 특징은 건축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후와 지리, 인문적

조건에 따라 그런 배치가 나왔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건축에서도 학제 간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랑채 앞에 만든 석가산이다. 석가산은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풍수적인 비보(裨補)로 쌓는 조산(造山)과 다른 점은 규모가 훨씬 작고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작은 규모지만 산과 바위, 물과 나무가 모두 들어 있다. 한마디로 동양 전통의 신선사상을 조형물로 나타낸 것이다.

‘축경(縮景)’이라고도 하는데 산수를 줄여서 즐긴다는 뜻으로 석가산과 분재, 수석 등을 포함한다.


이 석가산을 즐기는 장소가 바로 사랑채의 누마루다.

마치 석가산과 조응하듯이 활달한 처마를 펼치고 있는 이 누마루는 정여창 고택의 백미다.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남서향과 동남향으로 방향을 달리하는 것도 다른 안대(案對)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의 풍경을 빌리고, 또 줄여서 마당에 들여 놓은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