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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옛집

[함성호의 옛집 읽기]<33>‘풍경에 뛰어든 정자’ 거연정

by 범여(梵如) 2012. 3. 25.
거연정(居然亭: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33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조선중기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건립한 누정. 정자로

고려 말의 충신이며 정선전씨(旌善全氏)의 파시조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인조 18)경 서산서원을 짓고 현 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으로 지었으나,

1853년(철종 4) 화재로 서산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고종 5)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 자체가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 전재학(全在學)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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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의 화림동 계곡은 함양과 장수의 경계가 되는 육십령 고개로부터 시작해 안의까지 이어지는 긴 계곡이다.

유난히 환한 화강암 반석들이 계곡 곳곳에 널려 있어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면 녹색과 흰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 계곡에는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는 예로부터의 명소가 있었다. 여덟 개의 못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정자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 동호정 세 곳만 남아 있다.

거연정은 이 중에서도 가장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1640년경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서산서원을 짓고 지금의 자리에 억새를 이어 정자를 만든 것이 처음이다.

‘거연’이란 이름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중 “그렇게 나와 샘과 돌이 같이 사네(居然我泉石)”에서 따온 것이다.

주자가 살았던 무이구곡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화림재의 거연정은 그래서 계곡의 천변에 있는 게 아니라 아예 계곡의

섬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 주자의 시 구절 그대로 물과 바위와 정자가 한 몸이 되어 흐르고 있다. 영남의 정자들이

풍경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이렇게 풍경 속으로 뛰어든 적극적인 예는 아마 거연정이 유일할 것이다.

억새를 이어 지붕을 올린 이 정자는 전시서 이후 돌보는 이가 별로 없어서였는지 퇴락했음이 틀림없다.

1853년 서산서원에 화재가 나고 그 이듬해 다시 복구했지만 1868년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자 서산서원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선조의 유적이 사라져버리자 그를 추모할 길이 없어진 후손들은 1872년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철폐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재건한다.

 

처음보다 규모도 좀 늘렸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현재는 정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의 중층 누각 건물이다.

가운데 칸의 계곡 상류쪽 한 칸을 방으로 만들어 판벽을 둘렀는데 삼면은 트인 대로 머름만 두어 마루와 구별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라 누 아래의 기둥을 받치는 주초는 없는 것도 있고 있는 것도 있으며,

기둥은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어, 마치 외계 탐사로봇의 발 같은 인상을 준다.

누 상부는 기둥에 비해 대들보와 도리의 부재치수가 커 서원의 부재들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타고 넘어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자연이 된, 그래서 바깥에서 정자를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정자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