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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한남정맥 (終)

한남정맥 제8구간 - 징맹이고개에서 대곶 사거리까지

by 범여(梵如) 2012. 6. 25.

산행일자 : 2012. 6, 24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짙은 박무, 엄청나게 더움

☞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9.3km / G.P.S 32.8km / 12시간 소요
산행코스: 징맹이고개-헬기장-계양산-작은 장리고개-203봉-207봉-133봉-꽃메산 -인천공항고속도로-굴포천-둑실마을

                 군부대 정문-백석고개- 전라도 백반정식-골막산-백석스포렉스-82봉-할메산-롯데마트-천주교공원묘지-헬기장

                 마전중학교-문고개-검단사회복지회지회관-능내초교-검단고-방아재고개-인라인스케이트장-궁도장(현무정)-74봉

                서낭당고개-170봉(세자봉)-묘각사 갈림길-134봉-가현산-가현정-삼형제바위-1사랑의 쉼터-146봉-산불감시초소

               스무네미고개-스무네미고개(구도로)-109봉-헬기장-군부대 정문-5번군도-NO47번 송전탑-페차장

               오성화학(7번군도)-125봉-국궁장-수안산-쉼터-대곶신사거리-대곶사거리

☞소 재 지:   인천시 계양구, 서구 / 김포시 양촌면, 대곶면

 

요즘은 소득도 없는 일에 바쁘기만 하다.

금요일에 부산에서 있는 2박 3일간의 행사에 눈도장만 찍고 토요일 오후에

몰래(?) 도망을 와서 이른 아침에 한남정맥 8구간의 대장정에 나선다.

오늘이 단오이다. 옛부터 월과 일이 겹치는 날은 양기(陽氣)가 가득찬 길일(吉日)로

쳐왔는데, 그 가운데 5월 5일을 가장 양기가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 명절로 지내왔다

 

그 단오날에 30km가 넘는 산행을 준비하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이른 새벽부터 날씨가 푹푹찐다. 그렇다고 누가 대신하지 못할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부산에서 불교지도자 연수교육차 부산 영도 함지박 청소년 수련원에서

제95차 세계 라이온스 대회에 참석하다(부산 해운대. 수영만)

일정이 같은 날 똑같이 잡히는 바람에 하루는 학교 수련회 하루는 라이온스 대회에

참석하고 지난주에도 산에 가지못한 탓에 도저히 더 못 견딜것 같은 산에 대한

중독땜에 남머지 일정을 단축하고 혼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탄다.

부산의 2군데  행사에서 중간에 올라오는 바람에 잠을 못잔 탓인지 상당히 피곤하다.

하루쯤 쉬고싶은 생각이지만 이제 2번만 하면 1대간 9정맥을 끝날수 있다.

정맥을 끝내고는 목적산행을 그만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 싶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베낭을 챙겨서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부평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시청앞을 가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신호등마다 다 걸리는다. 인천행 전철의 첫차가 시청앞에서 05시 26분이다.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서소문에서 내려 지하철로 달린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

계단을 내려 내달려 플렛폼으로 들어서는데 열차 문이 닫힌다.

간발의 차이로 열차를 놓쳐 버리고 22분을 시청역에서 시간을 허비한

다음에 05시 48분에 2번째 열차를 타고 약 50분정도 걸려서 부평역에 도착한다.

부평역(06:37)

부평역에 내려서 아침식사를 하고 차를 타려고 했는데 역전주위에

문을 연 식당이 없어서 다시 인천 지하철을 타고 계산역에 내려서

나오니 새로생긴 김밥집이 하나 보인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시스템이 잘 안돌아가는 느낌이다. 등산객이 너댓명이 있는데 정신을 못차린다.

하는 수 없이 식사를 포기하고 김밥 2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버스를 타고

징맹이고개로 향한다. 10여분만에 징맹이 고개에 도착한다

징맹이고개(07:30)

징맹이 고개에 도착하여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준비한다.

흐릿한 날씨에 오늘의 더위도 만만찮을 느낌이다. 버스에 내린

곳에서는 올라가는 길이 없어서 절개지를 타고올라 등로로 접어든다.

징맹이고개의 동물이동통로에 올라서니 이런 시설물이 나온다.

등로로 올라서서 조금을 지나니 우측으로 계양산 오름길이 나온다.

좌측은 계양산 허리를 도는 둘레길로 작은 장리고개로 연결되는 길이다.

계양산 정상 군부대 철탑뒤로 구름속에 햇빛이 보인다.

계양산 헬기장(07:50)

징맹이고개에서 20분을 걸어서 계양산 헬기장에 도착한다.

104년만의 가뭄이이라는 재해를 만난 탓인지 등로에 흙먼지로 인해 초반부터

목이 아프고 더운 날씨에 벌써 옷이젖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 300여m 정도 떨어진 계양산으로 향한다.

계양산은 이른 아침인데도 인천의 진산답게  등산객들이 많다.

계양산 헬기장에 있는 1등 삼각점(△ 김포 11 1999 재설)

계양산(桂陽山:394m:07:55)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산으로 동국여지승람은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 했다.

계양산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라 한다.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불렀는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산 이름의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이 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內托式)으로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

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대부분 훼손된 상태이다.

 

집수정 바닥에서 논어, 공야장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목간이 출토되었는데  5각형의 각 면에

논어의 구절이 먹으로 쓰여져 있어 한성백제시기의 유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간으로

추정된다.

 

계양산은 기서지방의 주산으로 문학산, 청량산과 더불어 인천의 삼대 명산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임꺽정이 계양산 기슭과 인근의 장명이 고개를 소굴로 삼았다고 하는 설화도 전해지는 곳,

계양산성은 주봉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를 에워싸는 형상으로 축조되어있다. 이곳은 한강의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으로 삼국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끊임없이 벌여졌던 곳이다.

 

계양산성은 이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이후에 완전히 폐성으로 남았으며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계양산성 안에 공동묘지를 조성했는데 현재도 산성 안의 완만한 구릉지는 대부분의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둘레 약1,180m의 성벽은 현재 대부분 허물어져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간은 거의 없을 정도며, 정자가 세워져 있는 아래 부분 등 일부구간에서만 옛 성터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계양산에서 다시 헬기장으로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좌측으로 보이는 인천시내는 안개가 끼여 보이질 않는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인지 배가 고파온다. 조금 내려가다가 숲으로 들어서서

아침에 산 깁밥과 냉커피, 후식으로 방울 토마토로 아침식사를 마친다.

20분간 휴식을 겸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안개낀 인천시내의 모습

작은 장리고개(08:35)

아침을 먹고 5분 정도를 내려오니 아침에 징맹이고개에서 헤어진 임도와

만나는 작은 장리고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이어간다.

조금 올라가니 34번 송전탑을 지나고  203봉이 나타난다.

203봉(08:40)

이곳에는 50대 중반의 부부들이 아침만찬을 즐기고 있다

203봉은 아무런 표식도 그저 밋밋하다. 이곳에서 90도로 좌측으로

꺽어져 등로를 이어간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니 좌측에 철조망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간만큼 올라가는 길이 나타난다. 산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맥길 등로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지만 실제론 볼게없다.

이곳에서 편안한 우회길이 있다. 이곳을 가도 또다시 만난다.

계단을 따라 힘들데 올라왔지만 산정상 봉우리는 철조망 안에 갇혀버려

괜스레 올라 왔다는 후회만 든다. 그렇다고 원칙을 버릴수는 없잖은가?

조금전 나무계단에서 헤어진 우회등로를 다시 만나고...

 207봉(피고개산:08:50)

넓은 헬기장이 있는 207봉이 피고개산이라고 부르는데 연유를 모르겠다.

199봉(08:55)

헬기장에서 5분정도를 가니 봉우리 밑에는 벙커가 있고 위에는

환기구와 사격시 빨간 깃발을 올리는 국기봉이 있다.

이곳은 무심코 편한길을 직진해 가면 깔끔하게 알바를 하니(독도에 주의요함)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이름모를 야생화와 송전탑이나온다

참으로 다복하게 생긴 갈참나무도 보이고...

조금가니 소나무숲이 나오고 부대장의 경고문이 나오지만

경고문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직진을 한다. 전시가 아니니 봐주겠지.

소나무숲을 2분정도 올라서니 컨테이너와 사격통제소가 나온다.

이곳은 아마도 중화기 사격 훈련장인듯 하다. 건너편 산에 표지판이 있다.

통제소에서 바라본 사격목표물 표지판

 통제대(집결행동표지판)를 지나 계단내리막을 내려가니 철책과 "분소대전투사격장"표석이 있는 

부대후문에 도착하고...

안부 철책 좌측에 부대 후문이 있고 후문을 가로질러 철책따라 오르고...

좌측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있다.

철책선을 조금 따라가다가  철조망이 꺽어지는 부분에서 산으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반가운 시그널을 만나고...봄,여름,가을 겨울 산악회

133봉(09:25)

철조망과 헤어져 편안한 산길을 오르내리다가 133봉  오르는 길은 힘이 부친다.

약간 너덜같은 곳도 있고 가뭄탓에 먼지가 많아서 힘이든다.

그런데다가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오늘따라 피로가 오는듯하다... 이제 시작인데

군사용(?) 삼각점도 보이고...

꽃메산(95m:09:35)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군부대 경고판이 있다.

경고판을 지나니...

갑자기 차량소리가 시끄럽다. 그러면서 절개지가 나타난다.

절개지 아래에는 인천공항을 잇는 공항철도와 인천공항고속도로

그리고 엄청난 돈이 투입되고도 아무런 소득도 없는 굴포천이 나타난다. 

인천공항을 잇는 공항철도와 고속도로 굴포천의 모습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절개지에서 내려오면 공항철도 옆의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속내려간다. 조금 지나면 지하차도가 나오고...

목상동 토속마을 음식점 간판(09:50)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목상동(인천 계양구 소재)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토속마을 음식점 간판이 즐비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지하차도로 들어간다.

목상가 지하차도

이 위로는 공항철도와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지하차도를 벗어나니 또다른 도로가 나온다.

이곳은 승용차 전용도로이란다.

그래서 화물차와 이륜차는 동행불가라고 한다.

정맥의 허리를 끊어버린 굴포천(09:55)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에 한남정맥의 맥은 굴포천에 잠기고 만다.

 

백두대간이건 정맥 종주이건 우리 땅의 등줄기를 밟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면 당연히 능선의

마루금을 놓치지 않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에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지만 경인

운하를 앞에 두고 서있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는 허탈함만이 밀려온다.

 

2년전 낙남정맥 구간인 진주 진양호를 만들면서 낙남정맥의 허리를 끊어버린

진주 가화천의 유수교에서와의 똑같은 허탈감을 느낀다. 자연의 섭리도 모르고

무조건 개발논리로만 밀어 붙이는 토목업자(?)들의 머리에 뭐가 들었을까?

참으로 한심스럽고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 굴포천은 계양구 산곡동에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 9.3km에 달한다.

 이 하천이 굴포천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김포굴포(金浦掘浦)가 시도되었기 때문인데,

김포굴포란 인천쪽 서해안과 김포쪽 한강을 연결하려던 운하계획을 말한다.

이 계획은 고려의 최우(崔瑀) 때부터 시도되던 것으로 조선 중종조에 이르러 김안로에

의해 착공되었다가 원통이 고개에 막혀서 중단된 것이다. 원통이 고개 굴착에 실패한 것이

당시의 기술부족 때문인지 풍수지리 사상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래 김포굴포에 집착하게 된 것은 삼남지방에서 해로로 운송되던 세곡선들이

 강화의 손돌목(孫乭項)에서 자주 전복되었기 때문이다.

 

굴포천은 흙을 파낸 개울이란 뜻으로 대교천 하류 김포군 지역(벌말에서 한강까지)으로

지반이 높아 한강까지 통수가 잘 되도록 인력을 동원하여 깊이 뚫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벌말에서 목수통까지 꾸불꾸불한 하천을 일직선으로 곧게 뚫어서 이를 직포(直浦)

또는 직천(直川)이라 했던  것인데 뚫기는 모두 일반이라 이 하천 전체를 굴포천이라 부르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1988년 다시 시작한 경인운하사업으로 서울 행주대교와 상습 홍수피해구역인

인천 시천동까지 18km를 폭 100m 수로로 연결하기 위한 치수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경제성

논란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부침을 거듭하다 MB정권 들어 재착공하여 '경인 아라뱃길'이란

이름으로 2011년말 완공된다고 한다. 마치 대역사라도 이루는양 이 땅의 脈을 잘라내고 없던

물길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 없는 허탈감과 분노가 치민다. 경인운하인지 아라뱃길

인지 배를 타고 정맥을 건너야 하나? 한남정맥을 여기서 끊어야 하나?

 

다리밑으로는 싸이클족들만 신이난 모습이다. 엄청나게 많은 싸이클족들이 달린다.

맥을 끊어놓은 이 길을 걷는 산꾼들이 분노하는 줄도 모르고... 하긴 각자 생각이 다르니.

경인운하(아라뱃길)

고려 고종 때의 조운(漕運)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 염하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은 뱃길이 매우 험해서

안정적인 조운항로 개척이 필요하여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굴포 운하를 시도했으나 원통현 400m 구간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지난 1966년 서울 영등포구 가양동에서 인천 서구 원창동 율도까지 총연장 21km,

수심 4m, 하폭 90m의 운하 건설이 추진됐으나 경인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와 지역개발로

중단되었다.

지금 공사 중인 운하는 인천 서구 오류동(서해) ~ 서울 강서구 개화동(한강)까지 주운수로 18km(폭80m, 수심6.3m)와

인천․김포터미널, RS(River/ Sea)선박(250TEU)등의 시설을 2조2,458억원을 투입 2009.3월에 시작하여 2011.12월 준공 하였다.

 

엄청난 돈을 처발라 놓은 홍보관은 사람들도 없고 먼지만 자욱한 채

일요일인 오늘도 셧터가 닫혀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 호주머니

쌈짓돈 꺼내서 지 맘대로 써니... 요즘 민초들이 얼마나 힘드는 줄 알기나 하나.

목상교라... 두번 다시 오고 싶지않은 다리이고 두번다시 올 일도 없는 길이다.

 

우리나라야 5년 단임제라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인류 역사상 토목공사를 많이한 정권은 대부분 단명을 하였다고 한다.

정권을 잡고서 토목공사를 가장 많이한 이는 중국의 진시왕이었다고 한다.

인공위성에서 지구상에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 만리장성을 쌓아 적군의

침입을 막고 정권을 유지시키려 했고 화려한 아방궁을 짓고 불로초를

먹으며 영원불멸토록 잘먹고 잘살고자 했던 진시왕의 진나라도 허무하게도

단명한 국가가 되었다. 엄청난 토목공사인 만리장성이 권력을 지켜주지

못하고 민초들의 원성이 되었으니  적군에겐 위협이 되었을지 모르나

백성들의 저항과 불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홍어와 무인도님의 블로그 인용)

허탈한 마음으로 길을 건너니 좌측으로 내려서는 계단을 내려온다.

참으로 상술이 희한하네... 플랑카드를 꺼꾸로 달았다. 역발상인가?

계단을 내려와 허탈한 마음을 감출길 없어 허무하게 길을 걷는다.

무더운 날씨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상상이상이다.

지나온 목상교의 모습

유람선을 띄워서 중국의 관광객을 한강까지 실어나르겠다는

발상 그 자체가 우습다. 엄청난 돈을 투입한 아라뱃길인지

뭔~지 하는데는 유람선은 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고

경찰 순시선만 제트 스키 타듯이 신나게 달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아라뱃길인지 묻고싶다. MB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4대강 사업도 걱정스럽다. 부디 성공하길 기원(?)한다.

맥없이 끊어진 마루금을 잇기 위해 도로를 따라 한참을 돌아간다.

경인운하를 건너고 둑실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데 참으로 힘이 든다. 

아라뱃길 쉼터

도로를 따라 올라오니 이제 초반인데 피로가 몰려오고 새벽 3시에

일어난 탓인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멋진 쉼터가 나온다.

거기다가 이곳은 그늘막도 있고 사람도 다니지 않고 바람까지

불어주니 휴식을 취하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10분만 눈을 붙어야지하고 베낭을 베개삼아 잠을 청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일어나 시계를 보니 11시 35분이다.

 

자그마치 1시간 30분간을 누워잔 것이다. 덕분에 몸은 좀 개운하다

다시 베낭을 추스려서 쉼터를 계속 걸어간다. 조금가니 음료수 장수가 나온다.

이곳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하나 마시고 다시 정맥길을 재촉한다.

둑실마을(11:45)

이 마을은 조선 선조 때 부평도호부사 심신겸이 퇴임 후 이곳 황무지에 낙향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개간을 하는데, 의로서 협동 단결하자는 깃발을 만들어 꽂고 농경에

힘써 마을 이름도 그 뜻을 담아 '둑실'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심부사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봉우리가 다섯 개인

오봉산 물줄기는 마을 앞뜰 바래벌을 이룬단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아라뱃길 전망대를 만들었건만  관광객은

그리만치 않고  솜사탕, 음료수 장사 등 노점상만 즐비하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가 이동통신사 중계탑

가기전에  우측 바리게이트 넘어서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가 연결되었다면 5분정도에 올 거리를 30분 이상을 둘러온다

등로에 접어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게 홀로가는 산꾼을 반긴다.

이곳의 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바람한 점 없는 날씨에 얼굴이 익는 느낌이다.

편안한 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NO24 송전탑을 지나니 또다시 커다란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이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한 동안을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한참을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가니 좌측에는 묘지가 나오고 인천 검암지구와 인천에서

김포를 연결하는 굴포천을 지나는 시천교가 아련히 보인다.

철조망을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군부대 정문이 나온다.

군부대 정문(12:15)

군부대 정문 도로를 지나서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등로를 접어드니 다시 길은 좋아진다.  마치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지만

오늘은 영 컨디션이 엉망이다. 편안 길임에도 자꾸만 발길은  무거워진다.

조금을 올라기니 군부대 훈련용으로 쓰이는듯한 ‘집결지’란 코팅지가 붙혀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편안한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가니 도로가 나타난다... 날머리에 있는 밤꽃향기가 짙게 코를 자극한다.

백석고개(12:30)

인천 광역시 서구 검암동과 시천동을 연결하는 9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우측에는 이마트가 보이고 도로를 내려서서 좌측으로 가서 신호등을 건너서

전라도 백반정식 집으로 간다.

 

예전부터 백석동을 한둘이라 하는데 코끼리 모양을 한 마을 뒷산인 상산이 흰돌이 많아 생긴 이름으로

흰돌이 변해 한둘이라 불렀으며 또한 큰 들을 뜻한다는 한들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한둘 동쪽 산밑을 둥근 달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고 해서 큰 달을 뜻하는 거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도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니 버스 정류소가 나오고 전라도 백반정식집과 S-Oil 정류소를

끼고 골목으로 접어든다. 포장도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미칠것만 같다.

도로 건너 우측에는 이마트가 보이고...

일양ST와 강나루 숯불장어집을 끼고 계속해서 직진을 한다.

100여m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에 유성가설산업 쪽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조금을 더가니 L.P.G 충전소인 검단종합 에너지가 나타나고...

전봇대에는 한남정맥 이정표가 보인다.

점점 망가져가는 한남정맥길을 걸으면서 점차 회의를 느껴진다.

조금을 더 가니 좌측 등로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조금을 더 올라가니 NO19  송전탑이 나오고 지금은 뭔 공사가 한참이다.

우측 건물이 천사 요양원이란다. 이곳에 평상이 있는데  아마 요양원 직원인 모양이다.

나보고 길도 없는데 이런 곳을 다니냐면서 이해를 못하는 눈치이다.

천사요양원의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골막산(73.6m)

천사요양원에서 조금 올라오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지도상 골막산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는데 이 산의 연유를 알 길이 없다.

천사요양원에서 조금을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니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가 나타나고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下心하라는 뜻인 모양이다. 참으로 자연은 인간에게 위대한 스승이다. 

골막산에서 2분정도를 가니까. 군부대의 폐초소가 나타나고 그 아래 도로가 보인다.

길이 없는 급경사로 내려서니 4차선의 도로가 나온다.

우측은 백석스포렉스가 보이고 그 너머 아파트 단지가 당하지구이다.

길 건너에는 백석스포렉스가 보인다.

종알고개(13:00)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서 당하지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를 넘을때 종알종알 거리면서 넘었다고 해서 종알고개란다.

도로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가니까. 인천중장비학원이 나오고

이곳에서 도로를 건너 백석스포렉스로 올라간다.

길을 건너서 한남정맥 이정표를 타고 올라가는데 자꾸만 피로가 몰려온다.

백석스포렉스 올라가는 길에서 옷을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2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오늘은 점심을 싸오지 않아 먹을 것이라곤 과일과 스포츠 음료와 캔맥주다.

너무 피곤하니 입맛이 전혀없다... 자꾸만 피로가 오고 발걸음이 무거워지면 속도가 늦어진다.

백석스포렉스 옆에 나무 쌓아둔 곳으로 올라가는데 이 스포츠 센터에서 펜스로

막아 놓아서 올라가기가  정말로 힘이든다. 정맥길을 막아놓고 영업을 하다니...

펜스옆 포장옆 황토길을 따라 어렵게 등로로 올라간다.

등로로 어렵게 올라서니 길은 엄청나게 좋다. 다시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오고...

관리가 잘 된 등로는 계속되고... 

잠자리 한마리가 힘든 산꾼을 위로한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군 벙커가 나온다.

군 벙커와 함께 쇠로만든 종이 걸려있다. 지나가는 기념으로 종을 친다.

조금후에 할메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군 벙커와  감시초소가 있다.

할메산(105m:13:40)

할메산에서 우측으로 계속 내려간다.

잘 관리된 여러기의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를 지나서 가뭄에 바짝마른 황토밭을 지나니 왕길동과 원당을

연결하는 도로가 나타나고 좌측에는  가구전시장과 커다란 롯데마트가 보인다.

롯데마트(13:55)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서 롯데마트를 돌아서 우측 검품장으로 향한다.

롯데마트 검품장에서 맞은편 대주 피오래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좌측의 천주교 공원묘지 안으로 연결된 정맥길을 이어간다.

천주교 공원묘지(14:00)

공원묘지로 들어서서 다시 우측 공동묘지로 올라선다.

공원묘지 사잇길로 계속 올라가니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나타난다.

천주교 공원묘지를 따라서 정상까지를 올라간다.

정상에 올라서니 넓은 공터에 삼각점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니 임도가 연결되고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이곳 정상 끝에는 누군가가 고구마를 심어놨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산딸기도 다 말라 버렸다.

넓은 공터에서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이곳에서 완정초교 담장을 끼고 내려간다.

완정초교 담장을 끼고 내려오니 우측에 마전중학교가 나타난다.

드넓은 서해안 갯벌의 흙이 검고 석양에 붉게 노을이 지면 갯벌이 홍학의 날개와 같이 붉게 물든

하여 검단(黔丹)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이곳 검단동은 무분별한 신도시 개발로

방아재개까지 마루금의 원형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힘들고 어렵게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흔적도 없는 마루금일지언정 아무데로 가지않고 예전의 맥을 찾아 어렵게 찾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완정초교와 마전중학교 정문

문고개(14:25)

이 고개는 임진왜란 성문 노릇을 했다고 하여 문고개(門峴)라고 부른다.

마전중학교를 빠져 나오니 4차선의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문고개란다.

직진을 하여 아이파크 아파트 201동을 지나간다.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를 지나서 검단복지회관 표지판이 나온다.

간판 앞 GS25시 편의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 편의점에서 오렌지 쥬스 하나와 스포츠 음료를 하나사서 베낭에 넣는다.

검단사회복지회관(14:30)

검단동(黔丹洞)은 인천에서 가장 넓은 동으로 남구, 연수구, 부평구보다도 넓은 42.14km이다.

‘黔자는 검다는 뜻이며 ‘丹’자는 붉다는 뜻이다. 서해안 일대가 넓은 개뻘로 되어 있어 ‘개흙이 검다’는

의미와 서해안 개뻘이 석양에 붉게 노을이 지면  홍학의 날개와 같다’ 하여 ‘丹’ 자를 써서 검단(黔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은  신성하고 으뜸이다’ 라는 뜻과 제단을 의미하는 을 합하여  ‘검단’이라고도

햇는데  ‘ 왕이 하늘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제단’이라 이곳에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이는 백제의 도읍지라고 추측되는 하남시의 위례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검단이라는 땅이름이 있다고 하여

나온 이야기다.   검단은 백제때에 양주, 고구려때에 포현, 신라때에는 김포였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검단지구를 검단면, 노장면, 마산면 등 3개면으로 구분하였다가 1914년에 검단면으로 합해지고

검단면 금곡리, 당하리 일부가 양촌면과 계양면 일부에 편입된다. 1995년 인천시에서 편입되었다.

검단2차 아이파크 아파트 정문을 지나고...능내인조축구장을 지나간다.

능내초등학교와 검단고등학교를 지나간다.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아파트 단지와 같이 정맥길을 같이하고...

방아재 고개(14:50)

이곳의 좌측은 정맥길의 흔적조차 없애 버리며 개발논리로 밀어 붙이는

검단 1지구이고, 우측은 마전지구라고 한다. 보이는거라곤 아파트뿐이다.

방아재 고개를 직진하여 좌측에 영진 아파트 101동을 지나니 영진 아파트 정문이 나오고.

포장도로로 올라서니...

인라인 스케이트장 들어가는 계단으로 올라선다.

검단배수지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들어서서  쌍둥이 정자를 끼고 빠져 나간다.

인라인 스케이트장 정자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가니 동남아파트 101동 뒷길이 나온다.

아파트 뒷길을 벗어나니 조그만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대형트럭들이 주차가 되어있다.

이곳에서 국궁장인 현무정(峴武亭)이 나타난다. 원 정맥길은 현무정을 통과해야 한다.

인천시에서 설치한 한남정맥 이정표에도 현무정을 통과하겠끔 이정표를 세워놨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도 보이는 포장도로를 지나갔다고 기록이 되어 있지만 요즘은

통과를 할 수 없게끔 한다. 그리고 인천시에서 최근에 만든듯한 우회도로를 깔끔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20m 정도 우측으로 새로 만든길을 향한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접어드니 인천 서구청에서 만든 가현산 이정표와 계단을 설치했다.

마음은 원 정맥길을 타고 싶지만 지금은 활을 쏘고 있어 부득히 우회를 한다.

고추밭과 콩을 심어둔 밭사이를 지나니...

국궁장 과녁이 보이며 빨간 깃발을 사람이 ‘명중이요’하고 외친다. 

원 정맥길은 저기 보이는 오솔길이다.

밭을 2분정도 지나니 다시 정맥길로 접어들고 이 지역 사람들을 산에서 만난다.

또다시 육군 7325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끼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금곡초등학교 갈림길을 만나면서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이런곳에서 속보로 걸어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다리가 무겁다.

지난 한 주를 빼먹은 것이 이렇게 힘이들 줄은 정말 몰랐다. 참으로 힘이 든다.

가야할 세자봉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고...

좌측은 서해바다가 아련히 보이건만 박무로 인해 뚜렸하지는 않다.

등로는 C자 형태로 굽어서 걸어가지만 가뭄탓에 먼지가 상당히 심하다.

좌측에는 개인묘지들이 여러기 보이고 우측에는 감나무 농원이 있다.

조금을 더가니 조그만한 공동묘지가 있고 좌측은 꽤나 큰 공장이 보이고

조그만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서낭당고개(15:20)

인천시 서구 금곡동 큰쇠골 마을에서 새로 개발중인 마전지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서낭당 고개를 지나서 직진하여 올라가는 작은 가현산이라 부르는 세자봉(170봉)은 꽤나 가파르다.

더운 날씨에 식수 3L와 스포츠 음료 2개, 냉커피,  오렌지 쥬스, 캔맥주 2개 등 오늘은 물만 먹는데도

오줌 한번 안 나올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는 느낌이다. 자꾸만 힘이들어 중간에서 한번을 쉰다.

물에다가 알약 형태의 소금을 타서 염분을 보충한다. 이젠 식수를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둘레길을 버리고 직진을 하여 올라가니 데크목으로 설치한 계단이 나오고...

세자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

힘들게 세자봉 정상에 오르니 인천시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이 있고 솟대들을 많이 설치해놨다.

세자봉(170m:15:40)

지도상에는 170봉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이 지역 사람들은 작은 가현산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는 팔각정과 솟대들이 있고 삼각점도 보인다.

이곳에는 서너명의 등산객이 있는데 커다란 베낭을 메고 힘들게 보이는 나에게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게 싫어서 서둘러 내려간다.

170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커다란 임도를 만난다.

이곳은 꽤나 큰 규모의 노점상이 있고 계속해서 우측으로 걸어간다.

팔자좋은 여자(?)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개 한마리는 안고 한마리는 끌고 여유로운 산보를 한다.

자꾸만 가족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회이다. 사람보다 개를 더 가족처럼 생각하는...

묘각사 입구(15:37)

묘각사 입구가 나온다. 묘각사 정문 가운데는 포대화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현산 정상으로는 등로를 통제하고 있고 묘각사로 우회를 유도한다

원 정맥길은 등산로 폐쇄라는 팻말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정맥꾼은 그런말을 잘 듣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쓰고 꿋꿋히 올라간다.

군부대에서 설치한 타이어 계단을 계속 올라가니...

가현산 정상에는 해병대 군부대가 완벽하게 점령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철조망을 끼고 우회를 한다.

원형 철조망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우측으로 접어드는데 혹시나 뱀이 있을까

스틱으로 풀섶을 헤치면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경험상 군부대 주위는 뱀이 많기에...

칡넝쿨과 잡풀로 인하여 걷기는 심히 불편하다. 군부대에서 짖어대는 군견이 산꾼을 잡아 먹을듯이

짖어댄다. 조금 후 초병이 ‘선생님 이곳을 오시면 안됩니다라고 말을 한다. 알았다고 하면서

철조망을 우회하여 내려오니 다시 원형 철조망이 나타나고 겨우 빠져 나오니 군부대 정문이 나온다.

해병대 정문 앞에서 바라본 김포의 모습

해병대 군부대 정문(16:00)

군부대 정문을 내려오니 묘각사 방향의 가현산 우회도로가 나오고 이곳도 어김없이

노점상이 상주를 한다. 막걸리 한사발이 생각나지만 갈길이 멀어 서둘러 걷는다.

"송림원"비석이 있는 사거리안부에 도착하고...

나무 계단을 따라 직진하여 정맥길을 이어간다.

 "사람의 발길이 하나도 안 간곳은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고

사람의 손길이 잘 간곳은 자연이 더욱 잘 보존된 곳이다"...

 송림원 비석뒤에 이렇게 써 있다.

지나온 가현산의 모습

진짜 가현산은 군부대에게 완벽하게 점령을 당했다.

가현산(歌絃山:215m:16:05)

인천시 서구 검단동과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구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서쪽바다의 저녁노을에 비켜보이는 고기잡이 배의 돛대가 한폭의

그림처럼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그 경치속에서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에

가현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산 정상에 올라서면 임진강 하류에 위치한

북한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고 고려시대부터 산의 형세가 코끼리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고 불려오다가 그 이후 칡이 번성하여

갈현산(葛峴山)이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다가 이 산에서 서쪽바다의 석양낙조와 황포돛대가 어울리는 경관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가현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 이 산 서쪽 해안일대에 많이나는 약쑥을 중국과 물물교환하는 무역이

활발하게 되자 이 산밑에 주막집이 번창하게 되어 가무를 즐기게 된 것이 산의

명칭이 변하게 된 사유라고도 전해 오기도 한다

진짜 가현산은 해병대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있어 이 지역 사람들이 이곳에

가현산 정상석과 수애단을 만들어 놨다.

이 산 정상에서는 김포평야의 젖줄인 한강의 대부분과 임진강 하류와 그 너머

개성 송악산과 인천공항을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가현산 표시석 정상 주변은 위장막으로 쌓인 군 시설물과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이 진달래군락지여서 매년 진달래 축제가 여리는 곳이라고도 한다.

 

지석묘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의 하나로 가현산에서  동서방향으로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학계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가현산에서 바라본 한강하구

이제 점점 한남정맥의 종착지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가현산 수애단

가현산 헬기장

조금전에 지나온 세자봉에 이어서 이곳에도 솟대들이 많이 보인다.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입구에 주로 세운다고 한다.

홀로 세워지는게 대부분이지만 장승, 선돌, 탑, 신목등과 함께 세우기도 한다.

솟대위의 새는 대부분 오리라고 한다.

가현산에서 능선길을 지나니 아기자기 소나무들이 이쁘게 보이고 쉼터가 나타난다.

가현정

(歌絃亭:215m:16:10)

가현정을 내려오니 삼형제 바위가 있고 정맥길은 이곳에서

사랑의 쉼터 방향으로 직진한다

사랑의 쉼터(16:27)

가현정에서 7분정도를 편안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니 벤치들이 많이 있고

이곳을 사랑의 쉼터라는 팻말이 있다. 이곳에서 밤나무골 방향으로 간다.

늦은 시간임에도 산책객들이 간간히 눈에 띤다.

하트 모양의 이쁘게 생긴 소나무도 보이고...

조금을 올라가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희미한 등로인 우측으로 꺽어진다.

상주산(16:35)

지도상에는 140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에 박 건석님이 상주산으로 표기해놨다.

이곳에서 다시 편안한 걸음으로 내려간다.

이곳은 심한 가뭄탓인지 둥굴레, 산딸기 등 식물들이 타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잎이 커다란 떡갈나무는 하얀 백화현상이 나타나면서 말라죽는 모습이 안타깝다.

조금을 지나니 140봉 아래서 헤어진 길림길이 다시 만난다.

이곳 좌측 아래는 해병대 2사단 사령부가 있어서 그런지 경고문구가 많다.

다시 묘지를 우측에 끼고 올라가니 꽤나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조금 가다가 소나무숲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급경사로 내려선다.

군부대 벙커가 나타나며 우거진 잡목을 헤치면 내려서니 도로가 나온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전봇대에는 한남정맥 스티커가 보인다.

해병대 2사령부 표지판이 보이고...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다가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재빨리 무단횡단을 하여 도로를 건넌다.

스무네미 고개(17:00)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대포리와 유현리를 잇는 355번 4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서울의 위성도시라 그런지 교통량이 상당히 많아서 무단횡단하기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곳이다. 이제 이곳부터 인천을 완전히 벗어나 김포로 접어든다.

도로를 건너서 밤농장 팻말을 따라 좌측으로 꺽어져 舊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우측 야산에는 밤나무가 가득하고 그 아래는 밤농장의 건물들이 보인다.

舊 스무네미 고개(17:05)

이 고개를 넘으려면 스므번은 쉬어야 한다고 하여 스무네미 고개라고 불렀다는데

평범한 고개에 불과한데 조금은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이곳이 주 도로였는데 지금은 바로 아래에 생긴 4차선 도로에 모든영화를

내주고 이제는 잊혀져가는 고개가 되버린 느낌이다.

온통 쓰레기 투성이다.이곳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가파른 등로로 올라선다.

 

등로에 올라서니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이곳은 산불이 난 모양인지

불에 탄 나무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다.

잡목을 헤치고 나오니 다시 편안한 길이 나타난다.

우측에 밤나무 농장을 끼고 밤나무 사이로 길을 걷는다.

이곳은 산나리 군락지인듯 이쁘게 핀 산나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산딸기가 빨갛다 못해 새카맣다. 배고픈 차에 한참을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다. 

이곳 김포평야 지대도 자꾸만 도시화로 인하여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고 있다.

아쉬움만 자꾸 남아가고 범여가 걷고있는 이 길도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어떻게 묘사될까?

지나온 인천 검단지구의 모습... 조그만 다리가 오늘 참 많이도 걸어왔다.

평택 임씨 묘지를 지나니 곧바로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좌측의 산으로 접어든다.

숲에는 거의 길이 보이질 않아 약간은 아리까리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이 길은 기맥길에 비하면 양반이다.

헬기장(17:35)

헬기장을 지나니 편안한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끝나는 지점에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부대는 폐쇄된 모양이다.

어지럽게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 뒹굴고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군부대 철조망 아래에는 폐타이어로 진지를 구축해놨고...

군부대 아래 산능선을 내려오니...

다시 갈림길인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직진을 한다.

이곳 좌우에는 묘목 농장들이 많이 보이고 황톳길이라 흙먼지가 자욱하다.

임도를 따라 15분정도를 내려오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5번 군도(17:55)

대포리에서 양촌면소재지 넘어가는 군도에는 교통량이 거의없고

양쪽으로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김포 신도시의 모습.

등로 우측에서 공장부지를 조성하다가만 곳이 보이고 엄청난 절개지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에서 2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식수는 동이나고...

절개지 위에 처져있는 함석뒤로 돌아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조금 내려가다가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접어들어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다.

101봉(18:07)

함석 담장을 조금지나니 벙커로 무장된 101봉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급경사로 내려선다. 

101봉 삼각점

47번 송접탑을 지나 내려오니 밭이 보이고 도로가 나타난다.

늦은 시간에 농부의 밭갈이가 한창이다. 요즘 가뭄에 農心이 타들어가는 같아 안타깝다.

밭을 지나니 콘크리트포장도로 삼거리가 나오고...

 

건물쪽 방향으로 좌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꺽어지자 하자마자 비닐하우스 좌측으로 우측에 있는 공동묘지로 올라선다.

이 공동묘지는 황해도 예성군 출신들의 공동묘지이다...

실향의 아픔을 딛고 사후에도같이 모여있는 곳인가보다...

내일이 6.25인데 이 분들의 고향은 언제쯤 회복될 것인가.

요즘에는 6.25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6.25 전쟁을 북침이라는 사람들이 잊질않나.

모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이 나라 국회의원인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표인지 헷갈린다.

우리 부모님들이 흘린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공동묘지를 지나니 다시 넓은 공터에는 묘지와 잡풀로 인하여 길이없다. 

겨우 길을 찾아서 농로로 내려서 우측으로 간다. 좌측에는 포도밭도 보이고...

포도밭을 지나서 공장이 나오면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아름다운 집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집 정문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면서 묘지를 향해 올라간다.

화려한 묘지는 우리 종씨(慶州金氏)의 묘지다.

묘지를 지나니 정맥길은 끊어지고 고구마를 심은 밭이 나온다.

이 황톳길의 밭을 가로질러 내려오니 새로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신설도로 공사중인 곳을 내려오니 좌측에 오성화학이 보이고...

7번 군도(18:25)

신설도로 공사장을 지나니 김포시 양촌면 유현리와 대룡리를 잇는

왕복 2차선 7번 군도가 지나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산꾼들의 산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학당수퍼는 폐업을 하였는지 없어져 버렸다.

좌측 고개에는 GS 주유소가 보이고 우측에는 SK 주유소가 있다.

성진테크 골목으로 올라가니 2층 양옥집이 보인다.

2층 양옥집 대문앞까지 가면 좌.우에 포도밭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포도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90도로 꺽어진다.

포도밭이 끝나고 다시 산으로 접어드니 나무 계단을 만들어놨다.

이곳에서 조금 올라가니 갑자기 웅~하는 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다. 자세히 보니 이 높은 곳은 지하수 관정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구~~~ 놀랬네... 전주이씨 묘지를 지나니 125봉이 나오고

다시 편안한 내림길을 향해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난다. 우리 종씨 묘지다.

慶州金氏 ‘鎬’ 돌림자인데 내 손자항렬이다.

묘지를 내려가니 수안농장 국궁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서 수안산을 향한다.

수안농장 국궁장의 과녁

국궁장을 지나니 납골묘지들이 나오고 다시 오늘의 마지막 산인

수안산 오름길이 나타난다. 점점 다리는 무거워진다.

힘들게 올라서니 수안산 헬기장이 나타난다.

수안산에 올라서니 서해로 서서히 일몰이 시작된다.

수안산(守安山:146.8m:19:00)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에 있는 산으로서 수안산에 있는 수안산성은 1996년 경기도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의 성터로 현재에 산꼭대기에 돌아가면 돌로 쌓인 성벽이

약 685m정도가 남아있다.  성 안의 남쪽바다를 향한 평평한 터에 많은 기와조각이 널려있어

여기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서쪽에서 성문터가 발견되었고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방벽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성 안 곳곳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토기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성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은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김포시 안의 5개의 봉수대중 하나였던 수안산 봉수터가 있다.

 

수안산 봉수는 남쪽으로는 김포시 백석산 봉수에 응하고 서남쪽으로는 바다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에 응하였다는 옛 기록이 있다.

 

이처럼 봉수대로서의 기능을 함께 가진 수안산성은 성 바로 아래에 강화도와 배로 왕복할 수 있는

포구가 있는 등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시켜 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이용되었다. 또한 산성 안에는 도마(陶馬)뫼라고 불리는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는 옛날 도장군이 타고 다니던 애마가 묻혀 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수안산에서 마지막 베낭을 비운다. 정말 힘든 산행이었다.

지금까지 온게 1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거기다가 꿀맛같은 단잠을

1시간 반이나 즐겼고, 휴식시간을 충분히 가졌는데도 힘이든 산행이다.

아~ 이 할배도 이젠 서서히 체력이 부치는가보다.

하긴 세월앞에 장사가 있을 수가 있겠나. 이젠 1구간 마치면 편하게 살아야지.

 

베낭에서 마지막으로 아껴둔 쥬스 반병과, 방울토마토, 캔맥주 하나를

이곳 수안산 정상에서 비운다.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걱정을 안해도...

시원한 맥주 한캔을 마시고나니 정말 살것만 같다.

수안산 신령지단(守安山神靈之壇)

이곳 김포지역의 산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관계로

산 정상에는 기우제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많이 보인다.

요즘처럼 극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함 지내보는것도 어떨런지...

제단을 지나면서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길은 좋다.

내리막을 내려서니 운동시설물이 나오고 조금 더 내리막을 내려와

NO15송전탑을 지나 체육시설과 쉼터가 나오면서 김포시 대곶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는 서해바다에 입수하기 직전이다. 우측에 잘 관리된 묘지를 지난다.

묘지를 지나니 좌측에 민가가 나타나면서 포장도로가 나오고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이곳에서 비닐하우스를  끼고 직진한다.

밭 가운데를 지나가니  커다란 공터가 나타난다.

밭을 지나니 엄청나게 크게 형성된 아울렛 단지가 나오고

이곳은 입주업체가 몇곳 안되서 그런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아울렛 마당을 지나니 신대곶 사거리가 나온다.

대곶 신사거리(19:25)

이곳은 대곶면을 지나 강화 초지대교를 가는 82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건널목을 건너서 직진을 한다. 

건널목을 건너니  대곶성당이 보이고 우측에는 대곶중학교와

좌측에 대곶면사무소와 우체국이 나온다. 계속 직진한다

대곶사거리(19:30)

오늘 산행 날머리인 대곶 사거리에 도착한다. 12시간의 긴 여정을 마친다.

더운 날씨에 엄청나게 힘든 산행이었다. 이젠 1구간만 남았다.

가까운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몸을 닦으니 땀냄새가 없어지는 느낌...

속옷을 비롯해 옷을 갈아입고 우유와 빵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나니

영등포 가는 버스가 오길래 버스에 올라 잠을 청하는데 잠은 오질 않는다.

아~ 근데 이 버스는 김포 아파트 단지란 단지를 다 거친 다음에 김포를 빠져 나온다.

김포를 빠져 나오는데 자그마치 1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는 수 없이 송정역에 내린다.

송정역에서 내려 다시 김포공항역으로 가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