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북세력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원수로 삼는가
오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또 종북좌파 세력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일삼고 있다.
왜 그럴까? 1979년, 이미 33년 전에 서거한 박 대통령을.
첫 번째 이유는 박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현재로서는 대선 유력 주자 가운데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것이니, 틈만 나면 박 대통령을 공격해 박근혜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전술이다.
아버지를 끌어들여 딸을 공격하는 것, 정치를 떠나 그야말로 잔인한 패륜!
친척이나 인척의 잘못 때문에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했던 연좌제(緣坐制)를 인권탄압이니 유린이니 하며
그토록 비난했던 그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박근혜를 표적으로 삼는 연좌제를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이 앞뒤 안 맞는 그들의 표리(表裏)! 비열한 인권유린! 지난번 4·11 총선 때도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은 박 대통령을 끌어들여 박근혜를 비난했다.
민주당의 문재인은 느닷없이 박근혜를 향해 “유신체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도대체 딸이 아버지가 한 정치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할 이유가 뭔가! 박근혜가 유신체제를 출범시키는데
개입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만약 박근혜가 유신체제 출범에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고 있다면 세월이 지났어도 뒤늦게나마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증거는 30~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건 순전히 억지이니까!
머리카락 꼭꼭 숨겨 놓듯이 감춰질 수 있겠는가! 박근혜가 유신체제가 출범한 1972년은 꼭 20살-대학 2학년 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박근혜는 박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한 것밖에 없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다 없다.
정수장학회가 ‘장물’이라는 문재인의 주장, 과연 그 출처가 어디인가 추적해봤더니 놀랍게도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시절 했던 말들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다 그렇고 그런 세력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는 광화문 현판까지 박 대통령 휘호라해서 떼 내려 했다. 보수우파 세력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이명박 정권에서 결국 새 현판으로 바뀌는 기 막히는 일이 벌어졌지만.
박근혜가 정치권에 들어간 지 15~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박근혜는 두 번의 총선을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했다.
그 때마다 ‘반(反)박정희 세력’은 박 대통령을 공격해 박근혜를 추락시키려했다.
선거 때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환생(幻生)’해 공격의 대상에 올려졌다.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그러나 정말 희한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필연이라고나 할까 박근혜는 그가 치른 두 번의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모두 구했다.
이건 박근혜 개인의 놀라운 저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 평가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 숱한 모함과 폄훼, 그리고 잔악한 인격살인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산업화의 아버지!
그러나 종북세력을 포함해 반 박정희 세력이 끈질기게 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배경을 이렇게 단순히 볼 일도 아니다.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역사·정치·심리학적 기원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히 선거용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종북세력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종북세력의 역사적 기원(起源), 그 뿌리를 추적해봐야만 대한민국에서 종북세력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를 ‘평생 원수’로 삼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나온다.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지금 창궐하고 있는 종북세력의 뿌리를 고구마 줄기 뽑아가듯 따라가면,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역사책에서 걸어 나온다.
말하자면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에서부터 뿌리가 내려있다. 대
한민국 종북세력과 북한 정권은 95년, 근 100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 공산혁명! 그건 국권(國權)을 일제에 빼앗긴 조선인(朝鮮人)들에게 엄청난 정치적·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조선반도에서 지하공산조직이 생겨난 것은 물론, 조국을 떠나 러시아와 중국 대륙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공산당을 창당하고 지하세력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조선인 공산주의 세력을 포함해 러시아를 종주국으로 삼고 있는 ‘대륙세력’이 우후죽순처럼 탄생하는 시기!
이같은 대륙세력의 탄생은 그 후 한반도 역사로 하여금 엄청난 시련과 굴곡, 대결과 반목을 겪게 해주는
근원적 불행의 씨앗이 되고 뿌리가 되고야 만다. 조선반도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자!
그러나 저 태평양 건너 미국 대륙에서 이승만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건국의 이념으로
삼아 대한민국을 건국하려는 세력이 화산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그게 바로 ‘해양세력’!
만약 해양세력의 탄생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해방된 조선에서는 하루아침에 아무런 저항 없이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숨 막히는 순간과 마주쳐야 했었다.
해방이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긴 3년 간 극심한 좌우 격돌의 광풍!
그러나 역사의 신(神)은 대한민국에 축복을 내려주셨다.
이승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국가 이념의 기치로 내걸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
거꾸로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이루려했던 공산세력의 좌절을 의미하는 것!
좌파세력이 이승만을 철천지원수로 삼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기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의 야망이 꺾였으니.
이들이 지금까지도 이승만 대통령의 1948년 정읍 발언을 문제 삼아 이승만 대통령이 단독정부를 김일성보다
먼저 세움으로써 한반도 분단을 가져왔다고 생트집을 잡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연유가 존재하고 있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해금된 러시아의 비밀문서에는 스탈린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보다 훨씬 이전에
한반도 분단 결정을 내리고 김일성에게 북한 정권 수립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수도 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종북세력은 이같은 엄연한 역사적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이 분단의
원흉이라는 조작된 논리를 신앙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왜?
‘공산주의 한반도’가 그들의 야심이었기 때문에, 이를 무너뜨린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이 원수일 수밖에! 증오의 뿌리일수밖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원로 전문가인 미 펜실베니아 대학 이정식 명예교수는 러시아 문서는 물론 영국 문서까지
찾아내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미국이 아닌 소련의 스탈린에 있고, 김일성이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북한 정권을
세웠다는 건 명백한 역사적 ‘기초사실’이라고 지난해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교수는 세계적 석학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1973년 저 유명한 ‘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 공저로 펴냈다.
이 교수는 한반도 분단과 김일성의 단독정부 수립은 스탈린에 의해 이미 기정사실화됐다는 것.
그 출발이 해방 후 한 달이 못돼 1945년 9월12일에 열린 런던 외무장관회담.
스탈린은 8일 후인 45년 9월20일 북한에 비밀지령을 내려 ‘북한에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라’고 명령했고
, 1945년 10월 소련군정과 미군정 사이에 소련 측 연락장교단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한반도 분단은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이 교수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내려진 (한반도) 신탁통치안에 대해 우리 민족이
찬탁과 반탁으로 갈려 대립한 것과 무관하게 이미 그 전에 소련의 한반도 분단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산물이 ‘조선민주우의인민공화국’의 창설!
또한 이 교수는 북한은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45년 10월 이후 중국 공산화의 후방기지로 편입됐다고 분석하며
“한국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신앙’이 한국에는 팽배해있다”고 통탄했다.
이는 소련은 물론 중국이 나중에 김일성의 6·25 남침의 배후세력 역할로 이어졌다는 명백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만? 그는 이같은 대륙 공산세력의 팽창주의와 당시 국민의 절대 빈곤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다.
이 어찌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헌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김일성의 6·25 남침! ‘전쟁은 난폭한 교사(The war is a violent teacher)’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unintended consequence)’가 대한민국 안에서 전개되는 것!
그게 뭐냐 하면 대한민국 안에서 김일성 정권에 의한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희구했던 공산주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섬멸할 수 있는 기회를 이승만 대통령의 손안에 ‘선물’하게 된 것! 이 어찌 전쟁이라는 난폭한
교사가 대한민국에 던져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바닥 빨갱이’를 비롯해 대한민국 내 공산주의 세력, 그리고 친북·종북세력은 철퇴를 맞게 되고,
신생 대한민국은 국가다운 면모와 체제-국가성(國歌性)을 굳히게 된다.
그러나 친북·종북세력은 그 후 이승만 정권에서도 수많은 공산당 조직 결성을 통해 끈질긴 재기를
시도하다가 4·19 학생혁명에 의한 장면 정권의 혼란을 틈타 민주화 세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
전복을 위해 암약하다가 또 한번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존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게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격 등장인 5·16!
박 대통령의 등장은 국내에서 잔존해왔던 종북·공산주의 세력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들의 발판을 근본적으로 와해시켰다.
첫째, 민주화의 탈을 쓴 국내 종북·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철저한 색출과 처벌. 둘째, 공산주의 세력이 먹혀들 수
없도록 한 경제성장! 박 대통령이 1961년 집권할 당시 1인당 국민총생산이 몇 달러였는지 기억하는가?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저서에 따르면 고작 89달러!-당시 유엔이 국가로 인정한 125개국 중 101번째로
세계 최빈국그룹에 속했던 대한민국. 북한은 전쟁을 치르고도 49번째 중간국가.
이런 남북 격차가 대한민국 우위로 역전된 게 1974년-남북 간 체제 경쟁의 종말을 불러온 역사적 사변!
종북세력이 왜 박 대통령을 ‘평생 원수’로 삼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절로 굴러 나온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근본적으로 막은 ‘원수’이니까!
박 대통령이 공산세력의 침략과 절대 빈곤에 맞서 이룩한 산업화 기반은 결국 1987년 민주화 체제의 맹아(萌芽)가 됐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향유하고 있는 번영과 풍요의 ‘기원’은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숙연해 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굳게 믿으며 대한민국의 오늘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국민이라면.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짧은 기간에 건국→산업화→민주화 모두를 이룩한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에 대해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정치·역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오직 대한민국 안에서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일삼고 있다.
필자는 지난 31년 동안 정치부 기자, 정치담당 논설위원, 논설실장을 지낸 뒤 현재 정치평론가의 길을 걸으며
내린 결론이자 확신 하나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지도력과 가장 유사한 세계적 지도자를 찾아보자면 미국에서 최대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흠모 받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이다. 왜 박 대통령과 레이건은 같은가?
박 대통령과 레이건의 정치역정은 국가적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이를 화려하고도 거대한 기회로 만들어
자신들의 조국의 역사에 차곡차곡 기록해 놓았다.
난국이 해일처럼 밀어닥쳐 올 때, 박 대통령과 레이건은 피하지 않고 거친 파도에 맞서며 몸을 던졌다.
나와 국가에 기회가 왔다!
만약 4·19 이후 유약한 정치 지도력이 계속됐다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를 피하기 어려웠다는 역사적 가정을 감히 해본다.
구체적으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은 왜 레이건이 미국의 운명을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한 역사적 대통령인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바 있다.
첫째, 그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원칙(timeless principle)이다.
박정희와 레이건은 집권 내내 어떤 경우든, 어떤 상황에서든 말과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위대한 정치지도자, 성공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시류가 바뀐다고 해서 편승해선 안된다.
그래야 국민은 혼란을 겪지 않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다.
레이건은 구 소련 해체와 부강한 미국 건설 목표를 제시하고 한번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산주의와 대결해 나라를 지키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는
단 한번도 후퇴하거나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둘째, 두려움 없는 지도력(fearless leadership)이다.
레이건은 임기 8년 동안 구 소련 지도자들과 전혀 만나지도 않고 압박 정책을 지속하다가 개혁개방을 내세운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서야 정상회담을 통해 구 소련 해체를 실현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일성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 만행으로 주한 미군장교 2명을 무참히 살해하자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일갈! 미군 대신 한국군이 직접 미루나무 제거 작업을 벌이도록 하도록 하고,
자신은 청와대 집무실에 군화와 철모를 갖다놓고 북한군의 대응을 지켜봤다.
주한 미군사령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안보에 솔선수범하는 자세에 혀를 내둘렀다.
얼마 전 작고하신 박승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생전 증언이다.
셋째, 비전을 담은 해결책(visionary solution)이다.
국가 지도자는 위기가 닥쳐올 때 해결책 제시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을 내놓아야 한다.
레이건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하는 참변을 당하자 용수철처럼 뛰쳐나가 TV연설을 했다.
미국이 좌절하고 있었다. “미래는 겁쟁이들의 몫이 아니다. 챌린저호 승무원들은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고 있고,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들의 뒤를 따라 갈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난이 일어날 때마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단결을 이끌어내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종북의 난(亂)’이다. 종북세력이 총궐기해 국회 장악을 시도하다가 저 난리를 치르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 ‘종북 대통령’까지 세우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2013년 체제’를 세우겠다는 것!-내년에 종북세력이 꿈꿔왔던 세상을 기필코 세우겠다는 것!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까지 박 대통령을 독재자 운운하며 깎아내리고 있다. 그럴 것 같으면 왜 새누리당에
앉아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정신세계요, 정체성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 위대한 손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 응징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리워진다.
영웅은 사라져야 더 빛이 난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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