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천년을 기다려도 좋습니다 / 김현태
by 범여(梵如)
2012. 7. 19.
천년을 기다려도 좋습니다 / 김현태
부디
내가 죽어 누울 자리가
몸뒤척일 틈조차 없는
그런,
옹색한 무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대에게
편지를 쓰다가
내 벅찬 그리움,
연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가끔은 밤하늘 보며
그대 이름 부를 수 있게
그러다가도
여전히...
내 그리움 식지 않을 때
이리저리...
몸뒤척일 수 있도록
내 몸 크기 만한 공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내 살점이 점점 수축하고
내 뼈들이...
점점 퇴색할지라도
아침에는 이불을 개고
낮에는 양치질하고
저녁에는 기도를 하며
내가 죽었다라는
사실조차 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때때로...
햇님과 개미와 지렁이와
그리고...
아카시아 넝쿨과
별님에게도
이참에 맘껏
귀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다가오면
그대 이름 은근슬쩍
그들에게...
자랑했으면 더욱 좋겠다.
언젠가...
그대도 나와 같이
이 늑늑한
지하의 주인이 될 때
여태...
부치지 못한 편지로
그대 베개를 만들고
뜨거운 가슴으로
불 밝히고
아직도...
부끄러운 이 마음으로
그대 이불을...
촘촘히 짜겠다.
그리하여...
그대와 함께
하지 못했던 순간보다
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내 옆 빈자리에
그대와 나란히
누울 수만 있다면
백 년을
아니,
천 년을
기다려도...
한없이 한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