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3년 1월 6일
☞산행날씨: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9,3km / 4시간40분 소요
☞참석인원: 좋은사람들 산악회와 함께
☞산행코스: 양구터널-작은 되레지고개-545봉-되레지 고개-607.5봉-670봉
송전탑-652봉-봉화산-870봉-764봉-임도삼거리-공리고개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남면,양구읍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양구터널(09:50)
소양(도솔)지맥가는 버스는 오늘은 45명 정원이 만차인 모양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양재역, 복정역을 거쳐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지난주에 전국적으로 엄청난 한파를 몰고온 동장군은 조금 물러난 듯 싶다.
가평 휴게소에 내려서 아침으로 뜨끈한 유부우동을 그릇먹고 아메리카노 커피한잔을 마신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것만 같이 눈발이 날리고, 강원도 지역 접경이라
그런지 이곳의 날씨는 매섭기만 하여 얼른 차에 오른다.
옆좌석에 탑승한 동료산꾼 수락문수암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버스는
한달전에 내려온 46번 국도가 지나가는 양구터널 입구에 도착하여 장비점검을 마치고
곧바로 터널옆 절개지로 치고 올라서 마루금인 작은 되레지 고개에 도착한다.
작은 되레지고개(10:00)
작은 되레지 고개에는 온 천지가 은빛세상이다.
내린 눈이 계속 쌓였는지 무릎까지 찰 정도이고 주위는 적막강산이다.
봉화산 생태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등로로 올라서면 산행을 시작한다.
작은 되레지 고개에 설치되어 있는 봉화산 생태 안내판
이곳은 양구군에서 이정표를 참 잘해놔서 알바할 걱정은 없어 보인다.
양지바른 능선을 치고 오른다. 10분간의 급경사를 치고 오르는데 초반에
몸이 예열이 되기 전이라 그런지 상당히 힘이든다. 군부대 시설들이 많이 보이고...
군부대 시설위로 올라서니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있다.
545봉 능선 안부(10:10)
능선 안부를 치고 오르니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뚜꺼운 고어텍스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고 좌측 능선길로 접어든다.
이곳부터는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무명봉을 한차례 치고 오른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되레지고개가 나온다.
되레지 고개(桃村峴:10:30)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桃村里)에 있는 고개로 되레지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신경쓰지 않으면
고개인지도 모르고 갈 정도이다. 이 고개 아래에 있는 도촌리는
옛날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지도상에는 대부분 도리지고개, 작은 도리지 고개로 표기가 돼있다.
양구군 홈페이지에는 되레지 고개로 표기가 되어있다.
이 고개 아래에는 도촌리(桃村里) 마을이 있는데 桃村里의 옛지명이
되레지 또는 도리곶(桃里串)이라 불렀는데 복숭아가 많이 나와서 붙은 지명이란다
도촌리는 대한민국 정중앙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중앙 -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섬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동서남북 4극점을 잡아
이 4극점을 기준으로 중앙 경선과 중앙 위선의 교차점이
우리 국토의 정중점인데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 봉화산 일대인
동경 125’ 02’ 02’ 5’ 북위 38’ 02’ 37’ 5’라고 한다
그래서 봉화산 아래 도촌리에 국토정중앙 천문대를 세웠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옴파로스(Omphalos) - 도촌리 정중앙 천문대의 모습
옴파로스는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정중앙 즉, 국토의 배꼽에 해당하는
국토 정중앙 천문대가 눈속에 파묻힌 채로 시야에 들어온다.등로에서 바라본 양구의 모습은 한마디로
온통 눈속에 파묻힌 느낌이다.
대지의 배꼽 OMPHALOS는 기원전 3~4세기에 그리스의 델포이시에 세워진 아폴로 신전 지하에
아폴로신에 의해 만들어져 보관되어 왔는데 현재는 델포이市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델포이시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70km 정도떨어진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곳으로 역사적
유물인 옴파로스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옴파로스인 이곳 양구군 봉화산 아래 도촌리에는 國土正中央天文臺가 세워져 있다.
세계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Omphalos)와 3명의 무희가 조각되어 있는 원기둥
옴파로스(Omphalos)는 그리스어로 배꼽’의 뜻으로. 그리스 인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즉
배꼽이라 생각하였는데, 아폴로 신전 내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긴 아디톤(adyton[그])에
놓여 있었다고 생각하는 반구형의 돌을 말한다. 지금 델포이 미술관 등에 남아 있는
옴파로스의 대부분은 종형(鐘型)의 돌에 그물모양의 성의를 입힌 형태로 새겨져 있다.
이 위에 아폴로가 앉아 있는 그림이 그리스 도기화와 조옥(彫玉, 젬)에 보인다.
관준용의 넓은 컵 피아레의 중앙 돌기도 옴파로스라 한다.
아마도 군부대에서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길같은 방화선같은 길을 걷는다.
국토정중앙 삼거리(10:40)
가야할 능선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무릎까지 차오르는
능선을 치고 오르니 데크목 전망대가 나타난다.
607.5봉(10:44)
607.5봉 삼각점
봉화산 가는 이정표 방향으로 지맥길은 이어지고...
NO 57송전탑(11:50)
송전탑에서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다시 호젓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날씨는 많이 풀려서 그다지 춥지는 않다.
다시 무명봉에 올라섰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안부능선을 계속 걸어간다.
이정표봉(11:50)
눈쌓인 652봉을 패스하고 산 허리치고 돌아 다시 봉우리를 치고 오르니
산 정상에는 이정표와 함께 나무로 만든 호젓한 의자 2개가 있다.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호남정맥을 같이한 낡은모자님과 한울타리. 수객님과
함께 능선 안부의 양지바른 곳에 눈을 치우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사이에
동료 산꾼들은 밥도 안먹고 가는지 모두들 그냥 도망(?)을 간다.
여유로운 점심식사(11:55~12:35)
낡은 모자님이 가져운 사골국에다가 만두국을 끓여서 수객 아우님이
가져온 담근술에다가 4홉들이 이스리 한병을 넷이서 간단하게 비운다.
오늘 범여는 입만 가지고 빈대로 일관한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ㅋㅋㅋ
40여분간의 느긋한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니 동료 산꾼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가야할 봉화산의 모습
식사를 마치고 다시 무명 능선에 올라서는데 가야할 봉화산이
보이는데 마치 눈솟에 휩싸인 봉화산은 마치 수미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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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 남면
1895년(고종32년)에 2개면(하남면, 하동면)이었으나, 1914년 3월 지방행정구역의 대폭 개편으로 하남면과 하동면이 병합되어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공산치하에 강점되었다가 1950년 6월 25일 남침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격전지가 되었다. 1954 년 4월 1일 수복주민이 정착하게 되면서 군정을 실시하여 오다가 같은해 11월 17일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으로 민정을 실시하면서 16개리를 관할하였으나, 1971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대통령령 제6425)으로 상, 하수내리가 인제군으로 편입되고 인제군 두무리가 남면으로 편입되면서 16개리가 21개리로 개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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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九岩里) 갈림길(12:40)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거북바우가 있으므로 거북바우 또는 구암(龜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밧막골을 병합하여 구암리(九岩里)라 하였다.
구암리에서 봉화산 오름길은 상당히 급경사에다 구암리 갈림길에서
660m의 거리를 고도 250을 높이니 상당히 힘이든다... 식사를 한 후라 그런지
등로 곳곳에는 군부대의 경고 표지판이 자주 만나곤 한다.
봉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군부대에서 벌목을 한 탓인지 민둥산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위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나 짙은 박무로 아쉽기만 하다.
정상 저 너머로는 남북이 대치하고있는 DMZ 지역도 아련히 보이기도 한다.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양구읍의 모습
양구읍(楊口邑)
본래 양구현(楊口縣)의 소재지이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다가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양구현이 군으로 됨에 따라, 군내면(郡內面)이 되어 상리(上里), 중리(中里), 하리(下里), 함춘(含春), 동수(東水),
고대(高垈), 대동(大同), 한전(閑田), 죽곡(竹谷), 송청(松淸), 정림(井林)의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안대(安垈), 이동(泥洞), 학조(鶴鳥), 공동(恭洞), 석현(石峴), 웅진(雄津), 용호(龍湖),
수인(水仁)의 8개 리를 병합하여 다시 군내면이라 하여 19개 리로 개편하고, 1917년 군의 이름을 따서 양구면으로 고침.
1945년 38도선이 생김에 따라, 공산치하에 들어갔다가, 1950년에 수복되고,
1962년 11월 21일에 북면(北面)의 공수(公須), 도사(都沙), 군량(軍糧), 월명(月明),
상무룡(上舞龍)의 5개 리를 편입하여 현재 중리, 상리, 송청, 수인, 웅진, 석현, 학조, 안대,
한전, 공리, 이리, 정림, 죽곡, 하리, 고대, 동수, 월명, 도사, 공수, 군량, 상무룡의 21개 리를 관할함.
동쪽은 동면과 남면, 남쪽은 춘천시 북산면, 서쪽은 화천군 간동면, 북쪽은 방산면에 닿아있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38도 07분,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도 12분에 자리잡고 있다
양구군[楊口郡] 관광지도 |
봉화산에서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은 뒤돌아 본다.
산의 능선에 올라서 항시 내가 뒤돌아 온 길을 볼때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우리나라에는 봉화산이 참으로 많다. 여기서 가까운 춘천지역에만 봉화산이
3개나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이 버린 김해의 봉하마을의 뒷산도 봉화산이다.
이곳 양구 봉화산 정상도 여느 봉화산 못지않게 멋진 산이다.
봉화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멋진 노송 한그루가 서있고...
박무속에 가려진 대암산과 도솔산도 아련히 보이고...
눈을 좌측으로 돌리니 다음구간에 가야할 사명산도 보이고...
봉화산 정상에 오르니 멋진 암릉이 산꾼 범여를 반기고...
봉화산 정상에 있는 안내판
양구 비행장 활주로도 눈속에 휩싸여 흔적을 찾기가 힘이든다.
봉화산 삼각점(△인제 25 1986 재설)
봉화산(烽火山:875m:13:05)
봉화산은 양구 도심 정남향에 위치해 있으며, 정상에 올라서니 양구읍내가
한 눈에 보이고 사명산과 대암산, 도솔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화산이란 이름은 조선 선조 37년(1604년)에 정상에서 봉화대가 설치된데서 유래되었다.
지금의 양구팔경(楊口八景)은 환경의 변천으로 두타연(제1경), 펀치볼(제2경), 사명산(제3경)
광치계곡(제4경), 파서탕(제5경), 피로호(제6경), 후곡약수(제7경), 생태식물원(제8경)으로
정해져 있지만, 6..25 전쟁전에 양구를 대표하는 풍광으로 양남팔경(楊南八景)중 하나가
봉화낙월(烽火洛月)이었다. 양구읍내에서 볼 때 일몰풍경(日沒風景)과 함께 양구 남쪽으로
보이는 봉화산으로 뜨고 지는 달 풍경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는 풍경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약 500m, 북쪽으로 약 200m 구간에는 제주도 한라산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시원한 초원이 펼쳐지며 가을 억새 산행으로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산 아래는 광할한 소양호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6.25 전쟁이후 이곳은 군부대 사격장으로 사용되어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았던 봉화산은
2002년 이후 양구군이 설정한 우리나라 국토 정중앙 지점이 생기면서 부분적으로 등산로가 생겼다.
최근에는 춘천 소양댐 선착장에서 공기부양선을 타고 양구 선착장에서 하선하여 곧 바로 시작되는
등산로가 개설되었다고 한다.
봉화산 봉수대
봉화산 정상 옛 봉화터에는 조잡하기 그지없는 모조 봉수대가 지리를 잡고있고
봉수대 내부에는 지각없는 이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현재까지 이곳 봉화산 봉수대의 구조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조선 세종29년의 기록에 의거해 10척 이내의 크기로 아랫쪽은 넓고 윗쪽은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는 것과, 성종 6년에 연기가 잘 올라갈 수 있도록 전국의 모든 봉수에 굴뚝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호남정맥을 같이한 멋쟁이 낡은모자님이 같이 동행했다.
가야할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양구읍과 그너머 박무속에 가려진 DMZ 지역의 모습
동료산꾼 수헌아우님과 한울타리님이 뭐가 저리도 아쉬운지 대암산을 응시하고 있다.
이곳 능선에는 눈이 무릎까지 차올라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어느 누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헬기장(13:10)
헬기장을 지나니 눈이 더 많이 쌓여있다. 안부 능선을 걷다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와 다시 안부 능선을 걷는다.
심포리 갈림길(13:20)
삼거리(13:30)
심포리 갈림길에서 석현리 선착장으로 300여m를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얼마나 경사가 급한지 아이젠은 무용지물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그야말로 미끄럼틀이다.
아예 스틱을 접고 엉덩이를 땅바닥에 대고 300m 이상을 미끄러져
내려오니 시간 단축을 많이 줄였으나 바지 뒷주머니에 산행시간을
기록하는 수첩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아쉽기만 하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와 평지길을 걷는다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이 무성한 길을 걷는데
바로 앞에는 다음구간에 가야할 사명산이 반긴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넓은 임도인지 군사도로인지 넓은도로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임도(14:05)
이곳에서 다시 조그만 능선으로 접어든다.
오늘 처음으로 등로에서 草溪鄭公의 묘지를 만난다.
공리고개 가는 길은 자그만한 능선을 꽤나 걸어야만 했다.
이곳에서 반가운 준.희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멋진 암릉위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암릉 아래로 내려오니 다시 임도를 만나고 이윽고 또다시 마지막 능선으로 오른다.
지나온 봉화산을 바라보면서 조그만 능선을 지나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이윽고 눈쌓이 항일의병 전적비가 나오면서 공리고개가 보인다.
양구 항일의병 전적비항일의병전적비(抗日義兵戰跡碑)
양구읍 공리와 석현리 경계지점의 실학고개 정상에 있는 항일의병 전적비는 팔도창의대장
유인석을 비롯하여 이강년, 최도환 등의 의병장들이 이곳 군민과 더불어 침략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무연 강원도지사가 1978년 11월에 건립한 것이다.
유인석(柳麟錫)·이강년·최도환(崔道煥)등의 의병들이 일본군과 격전하였던 장소를 나타내는 전적비이다.
유인석은 1841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884년 제천으로 이거한 유가의 명문으로 1895년 국모시해의
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일군을 토벌하다가 의병해산의 칙명을 거역할수 없어
1897년 만주로 망명하여 재기를 꾀하였다.
이곳은 의암이 망명 도중 적이 앞을 가로막자 죽기로 맹세하고 이를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던 전승지이다.
이강년은 1858년 경북 문경 출신이다.1869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암과 함께 적을 토벌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07년 광무황제가 강제로 양위를 당하자 국내에 돌아와 다시 대대적인 의병을
일으켜 민긍호와 함께 강원.충청 지방에서 일병을 토벌하였으며, 13도 의병연합부대의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선임되어 서울진공을 꾀하기도 하였다.
서울 공략이 실패한 후 단양,가평 등지에서 계속 적과 교전하다가 1908년 7월
사막치(寺幕峙) 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체포되어 1908년 9월 19일 사형순국하였다.
최도환은 강원 양구 출신이다.1906년 거의하여 강원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일군을 무찔렀다.
한때는 민긍호(閔肯鎬)의진의 부장(副將)으로 활약하였으며 대세가 기울어지자 간도로 망명하여
의병을 규합하던 중 신병을 얻어 고향에 은신하여 치료하다가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었으며,
1911년 춘천감옥에서 옥사하였다.
항일의병 전적비 아래에는 먼저온 동료산꾼과 우리를 태우고 온 愛馬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스틱을 접고 아이젠과 스패치를 정리한 다음
버스에 올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춘천시 신북면으로 향한다.
공리(恭里)고개(14:40)
강원도 양구읍 공리와 석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거렛말, 구렁말, 돌방울을 병합하여 공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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