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3년 3월 1일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차가운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약3.2km+8.3km(어프로치) / 3시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백치고개-청평사 갈림봉-오봉산-진혼비-4봉(보현봉)-삼각점-3봉(문수봉)
구름다리-공터봉-2봉(관음봉)-배후령 갈림길-1봉(나한봉)-경운산 갈림길
배후령-46번 구 국도-강원도 농업 기술원-충주지씨 종중묘역
춘천공원묘지-천전리 삼거리-춘천역
☞소 재 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 춘천시 북산면, 신북읍
지난주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엄청난 양의 눈 때문에 지쳐서 마무리하지 못하여 한 코스를하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한 후에 점심을 먹고 조그만 베낭에 물 반통과 밀감 2개만 달랑 넣고 춘천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하여 상봉역으로 향한다.
상봉역에 도착하여 열차에 오르는데 열차에는 청평과 남이섬, 강촌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열차에 꽉 차있어 자리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애들은 경로사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탓에 아예 자리 양보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경로석에 앉아있던 내보다도 나이가 많아보이는 남자분이 내가 머리가 백발이라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던지 자리를 비켜 주면서 앉으라고 권한다.
두어번 사양을 하다가 하도 권하기에 모른척하고 경로석에 앉아서 1시간 20분간 거리인
춘천역까지 편하게 왔지만 마음은 영 그리 편치는 않았다... 미안하오요즘 젊은애들 보면
경로사상을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인것 같은데... 그것을 어찌하오다
우리 기성세대의 업보인걸. 오늘이 94주년 맞는 3.1절인데 요즘 애들 3.1절 모르는애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3월14일은 정확하게 안다고 하더군요.
3월 14일이 뭐냐구요? 발렌타인데이라더군요. 장사꾼들의 얄팍한 상술로 만든국적없는 날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젊은이... 선열들의 피흘리며 지킨 이 나라를맡기자니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1시간 20분만에 춘천역에 내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은데차는 오질 않는다.
2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옆사람에게 왜 버스가 안오냐고 물어보니오늘 이곳 춘천에 3.1절 기념 마라톤
때문에 교통을 통제해서 그렇다고 한다.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오늘 들머리인 백치고개로 향한다.
상봉역(13:10)
집에서 점심을 먹고 12시 20분에 춘천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상봉역에 도착하니 열차는
젊은이들로 초만원이다. 자리가 없어 왔다가다 하다가 경로석 앞에 서 있는데 경로석에
앉아있던 나보다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분이 나를 보고 자리에 일어나서 앉으라고 권한다.
두어번 사양하다가 모른척하고 자리에 앉는다... 애들을 보니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20대에 휴대용 전축들고 나팔바지 입고 경춘선 열차타고 대성리, 청평, 강촌으로 다니던 기억들...
근데 벌써 어언 60줄에 가까운 나이이니... 참으로 諸行無常이요 諸法無我 이다.
춘천역(14:34)
춘천역에서 내려 양구가는 버스를 타고 간척사거리에서 내려서 청평사가는
방향의 차를 히치하여 백치고개까지 갈 예정으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은데 버스는 20분 가량을 기다려도
오질 않아서 왜 버스가 안오느냐고 물으니 오늘 춘천 시내에서 3.1절
기념 마라톤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하는 수 없어 옆에 있는 택시와 흥정을 한다. 백치고개까지
얼마냐고 하니까. 이 택시기사 왈 백치고개가 어디냐고 반문을 한다
청평사 넘어가는 길이라고 하니 25,000원정도 나올거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백치고개에 도착을 하니 27,600원이 나온다
기사가 자기가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25,000원만 받는다.
춘천역 버스 정류장에서 양구가는 버스 시간표
백치고개(552m:15:15)
백치고개에서 내리자마자 스틱을 펴고 서둘러 산으로 오른다.
지난구간 부용산에서 너무 고생을 탓이라 바짝 긴장을 한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곳은 양지라 그런지 오름길에는 눈이 없다.
청평사 안내판이 있는 곳 뒤로 이동통신 중계탑 뒤로 올라서니
급경사가 시작되긴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눈이 그렇게 많질 않고
눈이 있는곳도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지 그렇게 불편하진 않다.
군부대 비트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아 있다.
양지쪽에는 이렇게 다 녹아서 불편함이 전혀없고...
능선 안부로 올라서니 눈의 양은 많아지기 시작한다.
민망스럽게 생긴 나무를 만나고... 챙피한 줄(?) 알아야제
능선에서 바라본 화천의 진산인 용화산의 모습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다
해서 용화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청평사가는 안부 갈림길(15:42)
백치고개에서 출발하여 30분이 안되어서 오봉산 바로 아래에 있는
청평사 갈림길 안부 능선에 다다르는데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세차게 부는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서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왔다.
청평사(淸平寺:명승 제70호)
973년(고려 광종 24)에 백암선원으로 창건되어 1,000년 이상을 이어 온 선원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 원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왕사 등이,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보우, 환적당, 환성당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
고려선원에 머문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은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였고,
뛰어난 문인들은 시문으로 이곳의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청평사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서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면서 청평사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은 자연과 인문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구송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과
서천계곡, 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의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삼층석탑, 이자현이 조성한 영지, 한국 서예사에 빛나는 문수원기비와
시장경지, 사찰 주변의 노란 매화 군락지, 조선시대 스님들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
비를 기원하던 기우단 터,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과 제석단 터,
공주설화 유래가 전해지는 회전문 등은 고려선원의 풍부한 인문자원이다.
회전문(보물 제164호)
청평사의 대문으로 1555년(명종10) 경에 보우대사가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운데 칸을 출입문으로 하고 양쪽 한 칸 씩은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회전문에는 공주에게 붙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회전문의 본래의 뜻은
불교의 경전을 두었던 윤장대를 돌린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사진 펌)
초등학교 동창들과 2011년 3월 24일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오봉산(五峰山:779m:15:45)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오봉산의 이름은 여러개다. 경운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경문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여암 신경준 선생의 山經表에는 청평산(淸平山)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봉우리가 5개라서 오봉산이라 부르며 산 아래는 유명한 청평사가 있고
소양댐을 끼고 있는 산이다.
제1봉이 나한봉이고 제2봉이 관음봉, 제3봉이 문수봉, 제4봉이 보현봉
제5봉을 비로봉이라고 부른다.
오봉산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오봉산 정상에는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주위의 仙景을 모두 감상할 수 있을 만큼
가시권도 좋고 지나온 사명산과 죽엽산,저 멀리 파라호 건너 일산도 보인다.
바로 앞에 있는 부용산과 건너편 용화산도 손에 잡힐듯 하다
정상은 세찬 바람으로 인해 추워서 오래 서 있을수가 없어서 4봉으로 향한다.
오봉산 개념도
오봉산에서 바라본 부용산의 모습
백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오봉산과 부용산 마주보고 있어 마치
새가 날개를 편듯한 형상을 보이고 있는 산으로 빼어난 산세와
소양호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게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부용산은 이웃 오봉산의 명성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는 산이나
그 산세나 규모로는 오봉산을 능가한다.
따라서 오밀조밀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오봉산은 女神에 비유하고
육중한 모습의 부용산은 男神에 비유해 陰陽의 관계가 있다고 전해진다.
오봉산 정상(5봉:비로봉:毘盧峰)을 내려오니 편안한 안부 능선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오봉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는 봉우리로 아마도 청평사 때문에 붙혀진
이름인듯 하다. 하기야 우리나라 명산의 명칭은 거의 불교용어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5봉(비로봉)이 보이고...
저 너머로 눈덮인 설산이 사명산이고 그 앞에 여인의 젖꼭지처럼
올라온 봉우리가 지난 일요일에 지나온 죽엽산이다
청평사는 바로 앞의 능선으로 인해서 전혀 보이질 않고
꿩대신 닭이라고 소양호가 외로운 산꾼을 반긴다.
우측 능선 아래에 있는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서울 지하철1호선은 박정희대통령의 3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본래 처음 도안은 동경대 출신으로 세계 유수의 댐을 건설해온 일본공영의
설계로 콘크리트중력식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비용을 3분의 1로 낮추면서도 훨씬 튼튼한
사력식 공법을 제안하여 일본으로부터 무식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공사비 절감, 전쟁위협 등을 염두에 둔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의 편을 들어줬다
북한강 유역의 유일한 다목적댐으로 1967년 4월 15일 착공되어 1973년 10월 15일 완공되었다.
흙과 돌로 만들어진 사력(砂礫) 댐으로 길이 530m, 높이 123m에 달한다.
저수량 29억톤의 인공호수인 소양호가 만들어 졌으며 댐 부근의 마을을
한바퀴 도는 배와 청평사로 가는 유람선이 있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너럭바위가 나타나는데 이곳부터는
암릉에 눈이 녹아서 얼음으로 변해있는 상태라서 상당히
미끄럽고 위험하여 아예 스틱을 접어서 베낭에 넣고 로프에
의지한 채 산행을 이어간다.
암릉에 뿌리를 박고사는 저 낙락장송은 나만큼이나 힘들게 세상을 사는구나.
로프에 이 몸뚱이를 의지한 채로 힘들게 산행을 이어간다.
파월장병의 애환이 서려있는 오음리와 간척리가 한 눈에 보인다.
4봉인 청송바위 가기 직전에 이곳에서 추락사한 신동섭씨를
기리는 진혼비(鎭魂碑)를 친구들이 제작해서 세워놨다
사랑하는 산을 통하여
극복의지를 키우다
여기 산화하니 진혼하노라 1989,9,3
또다른 진혼비는 청솔바위 맨꼭대기에다가 세워놓는
바람에 누군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3봉으로 진행을 한다.
오봉산 4봉(보현봉:普賢峰:16:00)
등산객들은 청솔바위로 알려져 있고 이곳을 등반하다가
사고를 났는지 진혼비가 2개나 설치가 되어있다.
보현봉을 나타내는 보현보살은
고려 불화-보현보살(普賢菩薩)
범어로는 사만타바드라. 흔히 보현(普賢)으로 의역된다.
부처님의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담당한다고 한다.
화엄경에 따르면 보현보살은 비로자나불 아래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의 대표였다는 것이다.
사실상의 화엄경 설법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현보살은 유명한 보현행원(普賢行願)
즉 보현십원(普賢十願)을 세워
보살의 이상상을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보현십원이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 광종때, 승려 균여(均如)는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보현십원을 주제로 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은
가장 널리 읽힌 경전중의 하나다.
보현은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위신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연명(延命)보살이라고도 불린다.
보현은 이가 6개인, 흰 코끼리
즉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재미있다.
두발이 아닌 4발 엉금엉금 기면서 빙판이 된 암릉을 로프에
매달린 채 오르내림을 계속하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치고 오르니
춘천시 우회 등산로를 만들어 놨다. 그렇다고 명색이 정통 산꾼이
잔머리나 굴리면서 편한 길을 걸으려면 진작에 이 짓을 그만했을 것이다.
편한길을 버리고 아무런 표식이 없는 곳을 오르니 삼각점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에 표시된 오봉산의 3봉인 문수봉(文殊峰)이다
오봉산 3봉인 문수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 내평404 2005복구)
오봉산 3봉(문수봉)의 모습(16:10)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智慧)를 인격화한 보살로서
산스크리트 Mañjuśrῑ를 음사한 문수사리(文殊師利)의 별칭이다.
Mañjuśrῑ라는 산스크리트는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번역되며 묘음보살(妙音菩薩)이라고도 한다.
또 바기슈바라(Vāgῑśvara:언어의 주인)라고도 한다.
문수보살이 나오는 경전은 250년 무렵부터 만들어졌지만
예술작품에는 400년 무렵부터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무명(無明)의 구름을 잘라버리는 지혜의 칼을 높이
치켜들고 왼손에는 패엽(貝葉)으로 된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을
들고서 왕자처럼 치장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중국에서는 8세기 무렵부터 문수보살 숭배가 널리 유행했으며,
산시 성[山西省]에 있는 우타이 산[五臺山]은 문수보살의 성지로서
그를 모신 사찰로 가득 차 있다. 천계에 있는 보살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도에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즉 꿈속에 나타나거나,
그가 사는 성스러운 산의 순례자, 코탄에 불교를 전한 승려 바이로차나,
티베트 불교를 개혁한 아티샤, 중국의 황제로도 화현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문수보살 신앙이 삼국시대부터 유행했는데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는 그 유포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오대산은 중국의 우타이 산과 마찬가지로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로서 중시되어 왔는데,
643년(선덕여왕 12)에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자장은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황룡사의 9층탑도 문수보살 신앙을 굳건히 하고자 한 자장의 노력에 의해 세워졌다.
그뒤 문수보살 신앙은 계속 유행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찰의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문수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봉인 문수봉을 내려오니 조그만 구름다리가 하나 나오고
이곳부터는 편안하게 안부 능선길로 계속 도솔지맥길을 이어간다
오봉산 정상에서 청평사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암릉 정상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모습
능선 정상에서 바라본 배후령으로 연결되는 옛날 46번 국도의 모습
이곳은 고개도 높고(600m) 추운 날씨에 눈으로 인해 빙판길이 되어
있어 춘천시에서 3월말까지 통행금지를 시켜놨고 저 도로 아래로
우리나라 터널중에 가장 긴 배후령(5,170m) 터널이 지나가는 바람에
이제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도로가 되어가고 있다.
구급 표지판도 2개나 만나고...
오봉산 2봉(관음봉:觀音峰:16:20)
관음보살[觀音菩薩]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한다는 보살로서
중생이 고난 중에 열심히 그 이름을 외면 곧 구제를 받는다고 한다.
오봉산 2봉을 지나면서 눈의 양이 많긴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렇게 힘들게 가지는 않고 그냥 편하게 걸어간다
능선 안부에는 돌무더기의 모습도 보이고...
안부능선 우측으론 눈이 꽤나 많다.
지나온 오봉산 정상의 모습과 그 뒤로 지난주에 엄청 괴롭힘을
당한 부용산이 조금 미안했던지 오봉산 뒤로 숨어 버린다.
쌓인 눈을 피해서 안부 사면으로 걷는다.
공터봉
또다른 구조 안내판을 만나고...
배후령 갈림길(16:28)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1봉을 거치지 않고 옆 사면으로
해서 배후령 내려가는 길인데 지맥꾼들은 경운산 방향으로 간다.
오봉산 1봉을 올라가는 길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
1봉 올라가기 직전에 청평사 안내 간판도 보이고...
오봉산1봉(나한봉:羅漢峰:715m:16:30)
나한(羅漢)이란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며 소승 불교에서, 불제자 중에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로서 소승 불교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 사과(聲聞四果) 중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도달한 성자(聖者)를 이른다
1봉에서 직진을 하면 경운산과 마적산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배후령가는 길이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서 좌측으로 바라보니 경운산과 마적산이 보인다.
마적산(馬跡山:784.7m)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과 북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또다른 이름으로 마작산으로 부르기도 하며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들의 겁탈에 저항하다 죽은 ‘무작개’라는 회동마을의
한 여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청나라 병사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이 여인을 죽이곤 시신에 참혹한
보복을 가한 후 고개에다 묻었다고 하는데 그후부터는 청나라 군사들이나
청국상인들이 이곳을 지나가기만 하면 고개가 들썩거려 모두 도망갔다고 한다.
그 고개가 마작산 줄기에 있는 뜨내리재(부심치)다.
무작개의 이름을 따 무작산이었는데 변음되어 마작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또다른 설은 산 기슭에 말의 발자국이 많아 마적산(馬跡山)이란 지명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로프가 매달려 있고 조금을 더 내려오니 배후령 옆길로
내려오는 그 길과 다시 합쳐지고 다시 좌측으로 경운산 이정표가 나온다.
경운산 갈림길
경운산(慶雲山:785m)은 조선 성종12년(1481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지금의 오봉산이 경운산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배후령에서 능선으로 올라 우측의 마적산 쪽으로 있는 산.
배후령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이어진 나한봉·관음봉·문수봉·보현봉·비로봉의 ‘5봉’이
있다하여 오봉산이라고 하나 원래는 이 전체가 경운산이다
수직 절벽 위 암릉길 곳곳에 어렵사리 버티고 서 있는 노송들은 마치 신선이
한 폭의 동양화 속을 노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은 제4봉인 보현봉에 오르면 사명산을 비롯해
가리산·병풍산·대룡산·금병산 등 주변 명산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군부대 교통호를 만나서 내려오니 배후령이 나온다.
배후령 내림길에 걸려있는 산악회 시그널들
철사위에 걸린 산악회의 시그널이 마치 희말라야 설산에라도 온 느낌이다.
티벳불교에서나 볼 수 있는 형상이고 굿청의 오방색의 모습같다.
배후령 내려오기 직전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이동통신 탑
그리고 돌무덤이 보이고 고개 전체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혀있다.
배후령(背後嶺:600m:16:40)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에서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넘어가는 고개로
춘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쪽 30분 거리에 있으면 이 지역 사람들은
오음리 고개 또는 등뒷고개라고 부른다. 배후령 아래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배후령 터널(5,173m)이 지나가고 있다.
오봉산과 용화산, 경운산인 오르는 길목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경우 춘천 직행버스 터미널에서 양구가는 버스를 타고
배후령에서 내리면 되고, 춘천 시내버스를 이용할 경우 18번 오항리행 버스를
타고 배후령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는데 이곳은 눈이 많아서 12월부터 3월말까지
교통을 통제하는 바람에 차량이 다니질 않는다.
흔히 고개를 나타내는 용어로 령(嶺), 재(치:峙), 현(峴)등이 있는데
령은 가로로 비스듬이 있는 높은 고개로 군인이 주둔하는 관방(關防)이 있고
고개 양편에는 마을이 있어 교통, 생산, 방어의 삼요소를 갖춘 고개를 말하며
‘재(치)’는 ‘현’보다 험한 고개를 말하고 ‘현’은 낮은 고개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배후령고개 화천군 방향의 모습
혹시 버스가 다니는가 싶어서 버스 표지판에 잇는 전화번호(033-254-6925)
로 전화를 하니까 길이 미끄럽고 눈이 많아서 3월말까지 통행금지란다.
배후령고개 춘천시 방향의 모습
그래도 양지쪽은 눈이 많이 녹아있다.
이 배후령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배후령 터널이 지나간다.
배후령 터널 개통과 배후령 이야기
배후령은 46번 국도에 있는 악명 높은 고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88명의 교통사고 사상자를 낸 마(魔)의 고개로 불렸다.
너무나 가파른 길, 높은 기울기의 고갯길이라 계속적인 브레이크 사용과 끊임없이
핸들조작을 하며 운전을 해야 하니 가끔은 계곡으로 추락하거나 브레이크 파열로 위험에
처한 차량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이 배후령이다.
배후령 터널 위치도 출처: 국토해양부
그리고 배후령은 애환(哀歡)의 고개이기도 하다.
배후령을 벗어나 첫 번째 만나는 곳이 화천군 간척면 오음리다.
오음리에는 파월훈련소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베트남이라 불리는 월남에 파병(派兵)된 거의 모든 용사들은 오음리
훈련소에서 한 달간 전장(戰場) 적응훈련을 받았다.
65년부터 73년까지 약 32만의 병사가 파월훈련소를 거쳐 갔다.
월남전 지원 혹은 차출된 병사들은 물론 군인정신과 조국에 대한 열정이
우선이었겠지만 대부분 돈 때문이었다. 월남참전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GNP는 북한보다 낮았었다.
그런 척박한 삶에서 벗어나 가족을 부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던
참전. 훈련소에 입소한 장병들에게 일 년치의 월급이 주어졌고, 그래서 가난한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그 여인들은 급히 합판으로 만들어진 「춘천옥」, 「부산옥」, 「화천옥」등의 200여개
이상의 술집에서 일을 했다. 조그만 산골에 전국에서 모여든 그들이 약 5백 명이나
되었다니 참전용사들만큼 그녀들의 애환도 깊었을 것이다.
배후령 터널 개요도 출처: 국토해양부
배후령 터널 내부 모습 출처: 국토해양부
배후령은 해발 600m,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서 시작해 화천군 간척면 오음리에서 끝난다.
이런 배후령의 터널 개통은 우선 춘천과 양구의 거리를 좁혔다.
배후령을 차량으로 통과하는 시간은 17분이지만, 배후령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은 9분이면 된다.
그래서 40분 이내에 춘천에서 양구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양강댐이 생기기 전에는 44번 국도보다는 46번 국도를 통해 속초를 가는 것이 빠른 길이었다.
국내 최장터널은 속초로 가는 길도 가깝게 해줄 수 있기도 하다.
이 배후령 터널의 개통으로 앞으로 양구는 군사도시에서 전원도시와 관광도시의 면모도 더해 갈 것이다.
동시에 국토종합계획에 입안되어 있는 서울~춘천~속초 간동서고속철도의
건설이 진행되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 예상된다 .(국토해양부 자료 인용)
여기서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무작정 춘천방향으로 빙판이 된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그래도 양지쪽은 길은 녹아있고 여기서
부터 춘천내려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 고도를 가기에 빨리갈 수 있다.
좌측 공터에는 아마 무속인이 한듯한 부처상과 산신상이 노상에 방치되어 있다.
배후령에서 내려오니 춘천 18km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한참을 내려오니 양지쪽에는 눈이 다 녹아 있지만 음지쪽은
완전 빙판이다. 양지쪽에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뛰어간다.
배후령 터널위
배후령 터널 1,230m 지점위에라는 표시인 모양이다.
배후령에서 이곳까지 약 4km정도 걸어온 셈이다.
계속해서 S자 형태로 길을 걸어오는데 운전을 할 경우에
브레이크를 많이 밟아야 하기에 사고가 구조적으로 많이나게
되어있는 도로로 보인다.
배후령 터널의 모습
우측 산 능선 아래에는 배후령 터널이 보인다.
배후령과 화천과 춘천을 잇는 I.C가 보이는데 화천쪽은 미개통구간이다.
서서히 일몰은 시작되고...
강원도 농업기술원
강원도 농업기술원
이곳부터 배후령으로 잇는 고개는 3월말까지 통제를 하는 곳이다
이곳 농업기술원에서 갤로퍼 자동차가 춘천쪽을 가는데 히치를
시도하니 매정하게 지나가버리고... 무심한 사람같으니...
저 멀리 북배산 너머로 해가 완전히 숨기 직전이다.
해가 저무니 맘이 급해지고 이곳부터 눈이 없기에
예전에 단축 마라톤 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베낭을
추수리고 신발끈을 다시 묶은 다음에 달리기 시작한다.
어둠속으로 저물어 가는 춘천시 신북읍(新北邑)의 모습
1914년 강원도령 면 폐합에 따라 신북면으로 개칭 되었으며, 신북은 새로 만든
북쪽의 면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995년 춘천시와 춘성군이 통합되면서
신북읍으로 승격되었으며 국군 2군단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다
배후령에서 이곳까지 약 7km 정도를 걷다가 뛰다가를 하면서 내려온다.
충주지씨 종중묘역과 춘천공원묘지를 지나니 차량들이 보인다.
천전리(泉田里) 삼거리(18:15)
이곳은 춘천시 신북읍으로 소양댐으로 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로
배후령에서 이곳까지 약 8.3km 거리를 걷다 뛰다를 하면서
1시간 30분만에 도착을 하여 물한모금 마시면 심호흡을 하는데
춘천역가는 150번 버스가 금방 도착을 하여 버스에 오른다.
천 전 리 (泉田里) 는 샘(泉)과 밭(田)이 많으므로 샘밭, 한자로 표기해서(泉田)이라 불렀으며,
1914년 상천리, 하천리, 하유로리 일부를 병합하여 천전리가 되었다(소양댐, 지석묘 등이 위치)
이곳은 예전에 5일장인 샘밭장(泉田場) 이 있었는데 샘밭장은 원래 원샘밭 있었으며,
지금의 율문리(아랫샘밭)로 옮겨 진 것은 130여년전이며 샘밭장이 크게 번창하여
양구, 인제, 화천, 홍천등지에서 까지 사람이 불려 춘천의 대표적인 장이 되었다 고 한다
춘천역 버스 정류장(18:45)
버스를 타고 30분만에 춘천역에 도착을 하여 배고 고파서
역 대합실에 있는 편의점에서 도넛 2개와 우유하나를 사서
베낭에 넣고 춘천역 3번 플렛홈에 대기하고 있는 18시59분발
상봉역 열차에 올라 도넛과 우유를 마신다.
춘천역 시내버스 노선 안내도
춘천역(18:50)
춘천역에서 18시59분 열차를 타고 1시간 20분만에 상봉역에 도착하여
7호선 지하철을 갈아타고 강남구청역에 도착하여 다시 도곡역가는 열차를
타고 집에오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맛있게 땜방구간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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