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3년 6월 16일
☞ 산행날씨: 이른 아침 짙은 안개, 맑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23.5km+ 어프로치9.8 km, 나물산행 3km = 36.3km / 14시간 40분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3명과 함께
☞ 산행코스: 운두령-산불감시초소-1,172봉-1,203봉-1,271.8봉-1,334.7봉-헬기장
1,247.9봉-1,261봉-보래령-보래봉-회령봉갈림길-회령봉-1,091.8봉
자운치-1076봉-1,089봉-1,204봉-흥정산 갈림길-1,122봉-불발현-1,021(H)봉
청량봉(춘천지맥 갈림길)-970봉-장곡현-1.089봉-1,098봉-1,181봉
1,190봉-전망암-1,106봉-1,142봉-헬기장-구목령-흥정리
☞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봉평면 / 홍천군 내면, 서석면 / 횡성군 청일면
지난주 설악산구간을 종주하면서 장염으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1주일내내
고생을 한 탓에 몸무게가 3kg나 줄었다. 그리고 제대로 먹지를 못한 탓에
기력이 회복되질 않아서 상당히 고생을 하였는데 이번주 한강기맥 2구간을
나서려고 베낭을 챙기니 아들이 난리다. 운동을 한 넘이라 생체적 리듬을 잘아는
탓인지 강경하게 이번주에는 산행을 하지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는데
동료 산꾼들과의 약속인지라 어쩔 수 없이 베낭을 메고 나선다.
아들도 아빠의 고집을 꺽지 못하겠는지 비타민을 비롯해 이것저것을 챙겨
주면서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아빠를 생각해주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아들아! 고맙다. 양재역에서 동료 산꾼의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평창휴게소에 들려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1시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봉평면소재지 외진곳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운두령으로 향한다.
오늘산행구간 개략적 지도
계방산(桂芳山) 자락에 있는 고개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의 경계에 위치한다.
해발 1,089m로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나드는 고개 중 함백산 만항재(해발 1,330m) 다음으로 높다.
항상 운무(雲霧 )가 넘나든다는 뜻에서 ‘운두령(雲頭嶺)’이란 지명이 유래하였다.
운두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강원도의 길답게 구비구비 돌아가는 구절양장이다.
힘들게 정상에 오르니 고개의 이름답게 짙은 안개가 끼여있고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음산한 날씨는 마치 납량특집 드라마에 나올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택시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한강기맥 제2구간을 시작한다.(택시비 35,000원)
계방산 생태관리센타 건물을 지나니...
입산통제 프랑카드가 붙어있고 좌측으로는 이통통신 중계탑에서 나오는 기계음이
시끄럽고 CCTV가 보이는데 산꾼들을 감시하는지 산불을 감시하는지 모르겠나
감시 당한다는 느낌 자체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 속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서...
며칠전 미국 정보기관인 CIA에서 근무하는 젊은 친구가 폭로한 내용도 있고 하여...
그러나 내가사는 강남에서도 하루에 300번이상 CCTV에 노출 된다고 그리 놀랄일도 아니다.
CCTV로 촬영한다는 내용을 지나 등로에 접어 드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10m 앞도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게 우회하여 등로에 접어드니 짙은 안개로 한치 앞을 내다 볼수가 없다.
그리고 이슬이 마치 비가 오듯이 흠뻑 내려 산행시간 5분도 되질않아 바지가 다 젖는다.
산불감시초소(03:30)
산행시간 10분만에 안개가 자욱한 곳에 산불감시초를 만나고 조금을 더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아서
5분정도 길을 찾는라고 애를 먹다가 겨우 우측으로 나있는 등로를 찾는다.
1,271.8봉 삼각점(△봉평417.2005재설: 04:10)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과 봉평면, 그리고 홍천군 내면의
꼭지점에 있는 삼면 경계봉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론 용평면과 이별하고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되는 봉평면에 접어들지만
우측으론 오대산에서 만난 홍천군 내면이 계속되는데 내면이 크긴 큰 모양이다.
범여의 키만큼 높이 자란 풀속에 뭍혀버린 삼각점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풀섶에서 보물이라도 찾은양 삼각점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우거진 숲과 한치 앞도 보이지 안개속에 4명의 산꾼이 아무런 말도없이 묵묵히 길을 걷는다.
마치 法을 구하러 떠나는 求道者처럼... 보이는 것이라곤 앞사람의 헤드렌턴 불빛이고
들리는 건 스틱에 스치는 풀섶의 소리뿐... 간간히 들리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다.
이른 새벽에 들리는 저 새소리는 짝을 찾는 소리인지, 외로움의 절규인지는 모르겠다.
외로움이라면 너무 서러 마시게, 외로움에 지쳐 주말마다 산을 헤매는 이 산꾼도 있으니...
크고 작은 능선을 오르내리지만 부드러운 육산길이라 참으로 편하기만 하다.
무심코 걷다보니 3등 삼각점(△봉평305/2005재설)이 있는 1,360봉을 지나쳐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기맥,지맥 산꾼들에갠 삼각점이 아주 중요한 곳이다.
길을 잃버리거나 독도를 할땐 길을 찾는 중요한 포인트이니까?
조금을 지나니 짙게 드리워진 숲속사이로 여명은 밝아오고 나무에 붙은
시그널은 기맥, 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산행고수들의 시그널이 달려있다.
헬기장(04:50)이제 주위의 사물이 보일정도로 날은 밝아졌고 처음으로 헬기장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동료 산꾼중에 유일하게 여성인 벙글이 아우님이 조그만
참외 하나씩을 주는걸 받아먹고 물한모금 마신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박새어린잎의 꽃대가 멋있게만 보인다
숲속 사이로 솓아오르는 아침 해(05:10)
등로 주위에는 해발 1,000고지에서만 난다는 곰취와 곤드래 나무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료산꾼들은 만사 제쳐두고 산행을 포기한 채 나물 산행에 여념이 없다.
곰취와 곤드래를 어느 정도 수확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부드러운 육산길에
키작은 山竹이 즐비하다. 일행과 떨어져 호젓한 길을 걸으면서 지난 장염 때문에
힘들게 보낸 한 주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내면서 思索을 만끽한다.
난 요즘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같이 만나는 불알친구들은 산에
미쳤다고 약간의 狂人 취급을 하고, 같이 골프를 즐겨던 친구들은 불러주는
골프모임에 자주 안 나온다고, 왕따를 시키고, 형제들은 으례 일요일은 없을거라고
전화조차 않하니...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법. 산을 걸으면서 만끽하는 이 自由.
‘니들이 게맛을 알어’ 어쩌면 이 세상 올때에도 혼자서 왔으며 갈때에도 혼자 갈것인데
뭣이 그리 걱정인가... 저승갈 때 친구하고 같이 가는자는 아무도 못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산새들이 많이 울어댄다. 흔히들 ‘홀딱벗고’ 새라는 검정등 뻐꾸기의 울음이 처량하다.
고비의 멋진 모습
등로를 내려오는데 이곳은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모양이다.
이곳에도 곰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곰취를 따려는데 참취들도 보이기 시작하지만
참취에겐 눈길도 주질 않는다. 또다시 등로를 이탈하여 나물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를 이탈하여 숲을 헤치면서 나물 사냥에 여념이 없는 동료산꾼들.
나물산행을 해보니 맥산행과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수가 있지만 짧은
곳을 정하여 집중적으로 움직이다보니 피로도는 훨씬 심하고 힘이든다.
다시 어느 정도를 수확한 다음에 보래령으로 내려간다.
이곳은 해발이 1,000m 이상 되다보니 아직도 나물들이 부드럽다.
보래령(寶來嶺:1,090m:05:00)
홍천군 내면 창내에서 평창군 봉평면 보래골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보래령이라 부른다.
지금 이 고개 아래로는 보래령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이젠 기맥꾼들만 다니는 한적한 고개가 되버렸다.
여기서 보래봉으로 가는길은 고도를 200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된비알이다.
운두령으로 차량이 이용되면서 이 고개에 터널이 뚫리면서 교통이 활발한 편이다.
이른 새벽에 우리 일행이 봉평에 차를 세워놓고 이 터널을 지나 운두령으로 간 곳이다
보래봉 남쪽에는 이 봉우리의 이름을 딴 보래골 또는 보래동이 있고 남쪽에는
덕거리 마을이 있는데 「조선지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예전엔 홍천군 내면에서 봉평장으로 가는 큰 고갯길이었으나 일제시대에
운두령이 차도로 바뀌면서 푸대접을 받던 고개이다.
지난번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봉평장의 명물 - 메밀 전병(사진 펌)
봉평장은 2일과 7일 열리는 5일장으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로 허생원이
들르곤했던 충주집터와 물레방앗간 그리고 그 늦여름의 메밀꽃이 지금도 소설의 분위기를
충분히 상상케 하고있는 곳으로 최근에는 메밀의 고장답게 기존의 메밀막국수, 메밀부침,
메밀전병, 메밀묵 등에서 메밀찐빵, 토종메밀순대, 메밀국수전골, 메밀나물비빔밥 등
다양한 메밀음식들이 개발되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잡고 있는데, 모두 토종의 메밀과
손맛을 자랑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식명칭은 봉평장으로 알려졌으나, 유래와 연대에 관한 기록은 찾기가 어렵다.
다만,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필무렵'의 배경이 봉평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참고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메밀꽃필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1907년 봉평면 남안리(현 창동4리) 출생이며, 이 작품의 배경은
이효석이 1914년 봉평에서 100리가 떨어진 군 소재지 평창공립보통학교(현 평창초교)에 입학을
하여 한달에 한두번 봉평 집에 다니면서 보고느낀 내용이 소설화 된 것으로
1914년 이전부터 장이 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줄거리
봉평장의 파장 무렵,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장사가 시원치 않아서 속이 상한다.
조 선달에 이끌려 충줏집을 찾는다. 거기서 나이가 어린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허 생원은 대낮부터 충줏집과 짓거리를 벌이는 '동이'가 몹시 밉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계집하고 농탕질이냐고 따귀를 올린다. '동이'는 별 반항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물러난다.
허 생원은 마음이 좀 개운치 않다.
조 선달과 술잔을 주고받고 하는데 '동이'가 황급히 달려온다. 나귀가 밧줄을 끊고 야단이라는 것이다.
허 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로 알았던 '동이'가 그런 기별까지 하자 여간 기특하지가 않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다음 장터로 떠나는데, 마침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메밀꽃의 정경에 감정이 동했음인지 허 생원은 조 선달에게 몇 번이나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한때 경기가 좋아 한밑천 두둑이 잡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노름판에서 다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평생 여자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메밀꽃이 핀 여름 밤, 그날 그는 토방이 무더워 목욕을 하러 개울가로 갔다.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났다.
성 서방네는 파산(破産)을 한 터여서 처녀는 신세 한탄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허 생원은 처녀와 관계를 맺었고, 그 다음 날 처녀는 빚쟁이를 피해서
줄행랑을 놓는 가족과 함께 떠나고 말았다.
그런 이야기 끝에 허 생원은 '동이'가 편모(偏母)만 모시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발을 빗디딘 허 생원은 나귀 등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고 그걸 '동이'가 부축해서 업어 준다.
허 생원은 마음에 짐작되는 데가 있어 '동이'에게 물어 보니 그 어머니의 고향 역시 봉평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눈여겨본다.
작품 감상
1920년대 강원도 일대에서 허 생원이라는 한 장돌뱅이의 삶을 통해 인간 본연의 애정과 운명의 양상을 탐구한 단편 소설이다
. 장돌뱅이 주인공이 젊은 시절 하룻밤에 맺은 인연을 잊지 못하고, 그 인연의 재생을 꿈꾸며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토속적인 어휘 구사와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묘사로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백미(白眉)로 평가되고 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의 산길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부자 상봉의 모티프를 한 폭의 수채화 속에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 구조는 허 생원과 동이 사이의 갈등과 해소에 있는데, 작가는 치밀하게 계산된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구조적으로 배치하고 적절한 공간적 배경과 향토적
어휘를 구사하면서 이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글. 사진 인용)
보래령에서 보래봉 오름길은 오늘 처음으로 고도를 200이상 끌어 올리는
된비알이지만, 지난주 설악산 구간을 종주하면서의 학습효과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부드럽게 치고 오르니 날로 먹는것 같은 기분이다.
능선으로 한번꺽어졌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는데 이곳은 철쭉 군락지인지
철쭉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기후탓인지 늦게핀 철쭉의 落花가 보인다.
위대한 탄생
죽은 노거수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와 다시 나무로 자라고 있다.
용수골 가는 길
보래령 터널위를 지나면 용수골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면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인데
이곳에 있는 봉산서재에는 율곡 선생과 華西 李桓老 선생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일찍이 율곡선생의 아버지인 李元秀공이 인천지방 수운판관으로 재직할 당시 산수가
아름다운 이 봉평땅에 4년간을 살았다고 한다.
인천에 살던 율곡선갱의 아버지가 여가를 틈타 본가를 오던중 평창군 대화면 반정(상안미)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쉬어 가려고 주막집에 여장을 풀었다가
이 율곡을 잉태했다고 한다.
무법자 멧돼지의 횡포
보래봉 올라가는 등로와 주위에는 멧돼지가 온 산을 파헤쳐놨다.
먹이사슬이 파괴된 탓 때문에 천적이 없는 멧돼지가 산에서 폭군 노릇을 하고 있다.
넘어진 나무도 멋진 작품이 되고...
보래봉(寶來峰:1324m:06:30)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연결되는 봉우리로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이 신라의 침입을 받아 태기산으로 보물을 가지고
이 봉우리를 넘었다하여 보래봉(寶來峰)을 불렀다고 한다.
정상에서 정상표지 구조물과 2등 삼각점이 있다.
보래봉 정상 2등 삼각점(△봉평22/1990재설)
보래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용수골이 나오는데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세계정교와 연지기마을로 가는 길이고 한강기맥길은 우측이다.
세계정교는 ‘세스팔다스신’(세상을 스스로 팔팔하게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사이비 종교 단체라는데 교주 하 모씨는 전직 세계무술연맹 한국총재를 지낸분이란다.
세계정교 게욤마루라는 희안한 이름의 종교단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세상엔 별별 종교도 다 있구나 싶다.
이 종교의 본부는 서울 종로 통인동에 있고, 전국에 7대 본산이 있다.
창교자는 총령본존(總領本尊)이라고 불리며, 1970년대 이후
신도 80만 명(자체 추정)으로 급속히 성장한 신종교이다.
창교자 하정효는 1939년 11월 16일경남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태어났다.
하정효는 모친상을 당하여 그 무덤 앞에서 이 땅을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으로 믿어
맨발순례를 선언했는데, 훗날 이것이 천자지손(天子地孫)사상으로 발전하여
이 종단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한민족의 정통성을 단군ㆍ화랑ㆍ세종ㆍ충무공 정신에 두고, 전국 각지에
‘세스팔다스계옴’의 신전을 짓고 주로 천제(天祭)를 지내는 종교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세스팔다스’는 '뜻의 님'과 '삶의 님'과 '짓의 님'의 세 신격을 받들어 그 힘으로 우리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또 ‘계옴’은 한울의 ‘온데 계시옵는 님’을 뜻한다.
특히 이 교단은 한글을 최고 최선의 언어로 여기는데, 교리체계를 순한글로 독특하게 표현하여
한국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점이 특징이다.
순수 한글로 된 『세스팔다스의 ○○』(1985)이 대표 경전이다.
보래봉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우산나물 자매
안부에서의 식사(06:55~07:15)
식사하기에 마땅한 장소가 나타나서 조금 이르긴 하여도 이곳에서
4명의 산꾼이 단촐하게 20분간 아침 만찬을 즐긴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잠깐 사이에 추위가 엄습해와서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숲사이로 태양이 내려
쬐는 빗내림이 시작되면서 참으로 신비스럽기만 한데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2분도 안되어 사라지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무 숲사이로 신비로운 빗내림
2분도 채 안되어 빗내림은 사라지고 안부 아래에서 밀려오는 안개도 신비롭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회령봉 갈림봉으로 올라서는 옆사면에 아무래도 곰취가
있을것 같아 기맥에서 이탈하여 우측 풀섶으로 들어서니 아직도 먹을만한
보들보들한 곰취들이 꽤나 보이고 곤드래 나물도 많이 보인다.
4명의 산꾼이 이리저리 다니면서 곰취를 채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1시간 이상을 산행하는걸 포기하고 나물을 채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옆사면을 계속 진행하는 바람에 회령봉 갈림길을 놓쳐 버린다.
곰취를 수확하고 즐거워하는 범여
다시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금슬이 좋은 나무도 만나고...
多福한 나무도 많나면서 숲을 치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1,091.8봉(08:40)
봉우리 정상에는 삼각점(△봉평411 2005재설)이 있고 우회길이 나있어
놓치기 쉬운 곳이다. 정상에는 삼각점 외는 아무것도 없고 주위에 잡목만 무성하다.
다시 호젓한 산죽길로 내려서니 자운치가 나온다
자운치(慈雲峙:08:50)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홍천군 자운리 도장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희미한 옛길이 약간 보인다.
지도상으로 봐도 도장골은 엄청나게 깊어 보인다.
홍천군은 우리나라 행정구역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면만 하더라도 오대산에서부터 이곳까지 연결되는 걸로봐서
시시한 군 전체 면적보다도 더 커보인다.
오지란 해안(海岸)이나 도시(都市)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大陸) 내부(內部)의
깊숙한 땅을 말하는데 이곳 홍천군 내면을 보면 오지중에 오지이다.
어디를 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자운치에서 고개에 오르자마자 우측 자운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고
기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선답지들의 시그널이
달려 있어서 알바할 위험을 없을듯 하다.
내가 열심히 수첩에 기록을 하고 있으니 동료산꾼인 붕어잡이님이 스틱으로 기맥길을
알려주는 형태를 하는 바람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 4명이서 여유로운 산행을
하면서 이곳에서 수박을 나눠먹고 시럽으로 된 포도당 한알을 먹은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이곳까지 오면서 하늘 한번 볼수가 없을정도 나무가 빽빽한
원시림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건너편에 있는 회령봉도 볼 수 없으니...
키작은 산죽길이 나타나면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꽤나 큰 봉우리를 연달아 치고 오르지만
이곳은 하늘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원시림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그 흔한 이정표하나 없다.
꽤나 더운 날씨이지만 시원한 그늘로 인해 덥다는 생각은 없고 조금만 서 있으면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산행하기는 최적의 날씨이다.
3명의 동료 산꾼은 다시 나물을 채취하는 모양이다. 난 혼자서 호젓한 길을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처음으로 회령봉이 빼꼼히 보인다.
회령봉(會嶺峰:1,309m)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 있는 산으로 봉평에 있는 모든 산의
근원지점이라하여 부쳐진 이름이라고 하며 산의 신령(神靈)들이 모여(會)들어
회령봉이라 했다고도 하고 회령장군이 기거한 곳이라 하여 회령봉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참나무,단풍나무가 울창한 천연람으로 각종
약초와 버섯,오미자 등이 많이 나오는 산으로 유명하다
1,076봉( 09:30)
동료산꾼과 떨어져 나홀로 호젓하게 걷고 있는데 잔나비걸상버섯이 하나 보인다.
얼른 채취하여 베낭에 집어 넣는다. 다시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새끼 멧돼지 2마리와 부딪힌다. 그 넘들도 나를 보고는 얼른 도망친다.
분명히 근처에 어미가 있을것이라 추정되어 바짝 긴장을 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데
다행히 어미와는 조우하지 않아 안심이다... 어미는 새끼와 있을때는 상당히 난폭해지기에...
아마 이넘들이 둥굴레 뿌리를 캐먹었는지 주위에 산을 다 파헤쳐놨다.
붙어있는 나무의 앞.뒤의 모습
1,072봉(10:00)
여기서부터 꽤나 높은 봉우리를 여러개를 오르내리며 땀을 흘려야먄 한다.
좌측의 회령봉은 나무사이로 보일락말락 산꾼 범여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다시 호젓한 등로를 걷다가 급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갑자기 후다닥 소리가 나서 그곳을 쳐다보니
겁쟁이 노루 녀석이 나를 보고는 정신없이 도망을 가고 다시 뱀 한마리가 숲속으로 도망을 친다.
다시 철쭉 터널을 지나니...
흥정산 갈림길로 가는 길은 완전히 밀림을 방불케 할만큼 숲이 우거져 걷기가 힘들어진다.
이리저리 잡목을 헤쳐가는데 베낭을 잡아 댕기고 얼굴을 할키고 이래저래 수난을 당한다.
1,204봉(10:40)
흥정산 갈림봉(1,215m:10:55)
원시림에 가까운 밀림을 헤치고 올라오니 흥정산 갈림봉의 이정표가 나온다.
흥정산은 여기에서 1.7km나 떨어져 있다고 하니 왕복 3.4km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하겠다.
아무래도 힘들것 같아서 흥정산행을 포기를 하고 이곳에서 동료산꾼과 함께 떡과 과일에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불발현으로 내려간다.
흥정산(興亭山:1,279m)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에서 가장 큰산이라혀 부쳐진 이름으로 이 산 사면에서 발원하는
흥정천에서 이름을 따온듯 하면 산 아래 행정구역도 흥정리이다.
흥정산 계곡엔 숲이 울창하여 시원한데다 맑고 차가운 물이 흘러 말로만 듣고 갔던 사람들도
그 시원함에 입이 벌어질 정도라고 한다. 입구에서 곧은 골까지 약 6km 정도 되는데,
무이교에서 시작하여 좁은 길로 들어서면 왼쪽 바위 협곡사이로 흐르는 흥정계곡은 주변의
갖가지 바위,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절경을 나타내며 처음엔 폭류로 시작하다가 차츰
깊은 흐름이 되고 급기야 깊은 소를 만들어 놓고 가쁜 숨을 탁 놓는 흥정천의 푸른 수면 위로
울창한 숲이 뒤덮인 산영이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흥정천 일대는 해발 높이가 거의 650m
정도 되는 고지대이며, 그러면서도 계류는 별로 급하게 흐르지 않지만, 물에 발을 담그고
2분을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차갑다고 한다.
흥정산 갈림봉 아래에 있는 아름드리 엄나무
흥정산 갈림봉에서 휴식을 취한후에 우측으로 내려서니 숲이 너무 우거져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을 내려오니 엄청나게 큰 엄나무 2그루가 쌍둥이처럼 서있고 옆에 또 한그루의 나무가 있다.
길은 잘 보이질 않고 미역줄기를 비롯한 잡풀들이 한강기맥길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박새 어린잎이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운 모습에 마치 천상의 화원에 온듯하다.
속새 군락지
운두령에서 흥정산 갈림봉까지는 키작은 山竹과 계속 동행을 해왔는데
이곳부터 불발현까지는 속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늦깍이 으아리도 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반기고...
등로가에 있는 속새
속새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산속 계곡의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습지에서 자란다.
줄기 속이 비고, 줄기에 마디와 홈이 있다. 높이 약 1m이며 줄기는 원통형이고 분지하지 않으며 진한 녹색이다.
포자낭 이삭이 줄기 끝에 달린다.
줄기에는 다량의 이산화규소가 함유되어 있어 단단하며 목재나 금속 연마에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약용되어 왔으며, 이뇨 작용이 현저하여 신장성 질환에 이용되고
장출혈·이질·탈항 등으로 출혈이 될 때에도 쓰인다.
눈에 백태가 끼는 것을 치료하기도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원예용으로 정원에 심는 경우도 많다.
불발현이 거의 다다른 모양이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불발현이란다.
불발현 (佛發峴:1,013m:11:35)
강원도 홍천군 내면 자운리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넓은 임도 삼거리가
있고 좌측 둔덕 위에는 최근에 설치한듯한
산림청에서 설치한 산악기상측정장비가 있고멋진 초가정자가 있으며 박정렬 여사의 살신모자 표지판이 있다.
불발현은 아름다운 숲길이라 하여 산악자전거,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걸어서 넘어야 했던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불발령의 지명 유래는 횃불(火)을 밝히(明)면서
넘었다고 해서 불바래기재, 불발령, 불발재, 불발현(火明峴/火明嶺) 등으로 부르던 지명이다.
불발령 중턱에 있는 마을 이름이 그래서 화명동(火明洞 : 불바래기)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인지 불당(佛堂)이 있어 지명이 유래했다고 '불발현(佛發峴)'으로 최근에 둔갑을 했다고 한다.
횃불을 밝히면서 넘어야 했던 불발령 고갯길에는 박정렬 여사 같은 일반 서민들의 한 맺힌 애환이 서려 있는 지명이다.
한편 한국전쟁 전초전이라 불리는 불발령 사건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전투하는 국군들의 식사를 전담해서
이 고갯마루까지 지고 왔다고 하고 동학농민 항쟁 때, 동학군들도 이 고개를 넘어 최후의 격전지인
자작고개로 갔다고 하는 유서깊은 고갯마루다.
불발현에는 고 박정렬여사의 위령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기 눈보라 치던 불발령 고갯길, 어린 딸을 살리고 숨져 간 거룩한 어머니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1978년 3월 12일 친정에 다니러 오던 박정렬 여사(당시 38세, 북제주군 좌동면)가 1미터쯤 쌓인
눈 속에 파묻혀 숨졌으나, 딸 인숙(仁淑:6세) 양은 어머니의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안간힘 속에 살아 있었다.
인숙 양은 어머니의 윗옷에 싸인 채 품속에 안겨 간신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출가 전 이곳 자운리에 살던 박 여사는 4년 전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이주 했다가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를
거쳐 혹심한 추위와 싸워 가면서 발길을 재촉하여 그리던 친정으로 오던 길이었다. 어머니라는 거룩한
이름 아래 최후의 순간까지 자식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불사른 박정렬 여사의 살신(殺身) 모정은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고 추모될 것이다. 숭고하고 애틋한 모정을 기리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정성을 모아 모든 여성의 귀감으로 삼고자 여기 이 돌을 세운다
(1978. 10. 1, 홍천군여성단체협의회)"
불발현에 있는 산림청 산악기상측정장비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시원한 산줄기를 바라보는 행운(?)을 누린다.
산림청과 홍천군에 설치한 초가정자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길을 떠난다.
불발현에서 바라본 홍천군 내면 자운리의 산그리메
산림청 홍천군 국유림사업소에서 불발현에 설치한 안내판
불발현에서 장곡현까지 이어지는 길은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철제로 만들어진 대문에 자연휴식년제,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곳을
지나서 임도를 따라서 3km를 걸어가는 방법이고 또 하는 정통 방식대로 마루금을
따라 FM대로 가는 방식인데 범여와 동료 산꾼은 정통방식을 따라 마루금으로 오른다.
청량봉가는 마루금에서 바라본 홍천군 내면쪽의 마루금
청량봉가는 마루금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길
마루금으로 올라서니 나무 그늘에 시원 바람이 불어줘서 산행하기 더없이 좋다.
그리고 평평한 육산에다가 이정표까지 아주 잘되어 있다. 잠시후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을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흥정산 갈림봉에서부터는 평창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아주 잘되어 있다.
폐헬기장(11:55)
헬기장에 온갖 잡풀이 무성하여 용도가 폐기된듯이 보인다.
헬기장에는 떡취를 비롯해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다시 산죽길을 지나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청량봉이 나타난다.
청량봉(淸凉峰:1,052m)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영춘지맥 지맥중에 춘천지맥의 갈림봉으로서 전에는 산이름을
갖지 못했는데 한강기맥에서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이 분기하는 이런
큰 의미를 가진 봉우리가 무명봉으로 남아 있는 것을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님이 생곡리를 지나 청량리라는 지명이 있음을 착안하여
청량(淸凉)이라는 신선한 이름을 지었고, 산객들 사이에서 구전되다가
홍천군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게시판이나 이정표 등에 그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지형도에는 명칭이 없으나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현재의
지점에 청량산(淸凉山)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오대산과 우측으로 계속같이 해온 홍천군 내면과 이별을 하고 서석면을 새로 맞이한다.
청량봉 정상 이정표
동료 여성산꾼 벙글이
4명의 산꾼중 홍일점인 벙글이님은 산을 잘 탈뿐 아니라 모든 자금을 맡아서
똑소리나게 잘하는 바람에 우리가 상당히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어 고맙기만 하다.
청량봉 정상 삼각점(△봉평302/2005재설)
청량봉 정상에서의 인증샷
이곳 청량봉은 영춘지맥중 춘천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한 중요한 봉우리다.
이곳에서부터 구목령을 거쳐 다음구간인 삼계봉까지 한강기맥과 영춘지맥이 겹쳐지는 지역이다.
내년 9월쯤이면 또 영춘지맥길을 헤매고 있겠지.
춘천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복산(1,103 m), 백암산(1,099m), 가마봉(1,192m),
소뿔산(1,118m), 가마봉(925m), 매봉(800m), 가리산(1,051), 대룡산(899m), 응봉(759m),
연엽산(850m), 꼬깔봉(421m), 봉화산(515m), 새덕봉(488m)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청량봉(1,052m)은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이 무명봉을 청량봉으로 명명했기에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청량봉 정상에서 벙글이 아우와 인증샷을 남기는 사이에 산과스키, 붕어잡이님은 벌써 장곡현으로 쏜살같이
가버리고 난 벙글이와 부지런히 쫒아가는데 이곳은 고도차는 그리없으나 산죽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곳의 갈참나무에는 한여름인데도 가끔씩 철없는 겨우사리들이 보인다.
산이란 그저 날로 먹는게 하나도 없는가보다. 좌측에는 뭘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간벌을 하여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놨고 그 능선을 두어번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불발현에서 이곳까지는 ⊂형태로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하는데 임도파들은 저 아래 임도를 걸어오면
한강기맥길에서 중요한 포인트 역할을 하는 청량봉을 놓치는 憂를 범할수 있으니, 마루금으로 이용하시기를...
급하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이정표가 있는 임도가 나오고 지나온 불발현과 흥정산 갈림봉이 보인다
지나온 흥정산 갈림봉
다시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2분만에 내려서니 장곡현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곡현(960m:12:40)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고개라기
보다는 트럭이 다닐만큼 넓은 도로 삼거리로 바리게이트가 쳐저있는 곳이다
장곡현의 모습
장곡현에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3분정도를 걸어가다가 좌측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가는데 이정표가 아주 잘되어 있다.
1,089봉(13:10)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개를 오르내리지만 지난주 설악산 구간의 학습효과인지 모르겠으나
힘들다는 느낌은 그리 크지 않으나 아쉽다면 우거진 숲으로 인해 전망은 전혀 조망되지 않고
오직 길밖에 보이질 않는다. 계속해서 ‘홀딱벗고’새(검정등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홀딱벗고 새의 원래 이름은 검은등 뻐꾸기로 희귀종 여름새이다.
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라고 한다.
원성스님은 홀딱벗고 새를 이렇게 글로 표현했다.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아득한 옛적부터 들려오는 소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않고 들려오는 소리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온종일 가슴 한켠 메아리치는 홀딱벗고새 소리
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생에는 반드시 해탈하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모든 상념을 홀딱 벗고...
1,181봉(13:28)
이정표(←구목령 4.67km, ↑ 곡죽동(생곡리)국유임도1.05km, →청량봉 3.51km, 불발현 4.67km)가
있는 봉우리에서 4명의 산꾼이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구목령으로 향한다.
호젓한 등로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간간히 보이고 등로 아래에 있는 곧은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꾼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준다. 이곳은 보이는 것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지중에 오지이다.
이곳까지 20km 정도 산행을 했지만 만난 사람이라곤 새벽에 택시기사밖에 없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노란색 띠지가 한강기맥길을 정확하게 표시하여 준다.
지난해 가을 금북기맥을 산행할 때 빨간 노끈의 도움을 받을때 처럼...
이런곳은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산꾼이외는 올 일이 없을듯 싶다.
능선이 보이나 그렇다고 멋진곳이 있나 오직 숲과 하늘 이외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에 가까울 정도이다.
얼마나 오지였으면 정도전의 정감록에 이곳을 戰時에 안전한 피난지라고 했을까
급하게 무명봉 하나를 치고 오른 다음에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다시 내리막으로 향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면서 산과스키님이 주신 계피향이 살짝나는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쥬스 하나를 마시고는 또다시 베낭을 메고 오솔길같은 숲길을 계속 걸어간다
구목령 3.16km라...산행시간 11시간이 지나는 싯점이라 그런지 자꾸만 발길이 무거워진다.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른 다음에 암릉으로 된 안부능선을 걷는데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청량음료를 마시는듯한 똑쏘는 느낌이 정말 상쾌하다
1,190봉(14:40)
산친구 산악회에서 코팅지로 붙혀둔 표지판 건설부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있다.
이곳은 지도와 평창군에서 설치한 이정목에는 1,190봉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1,190봉 삼각점(△301재설 777건설부)
1,192봉을 지나면서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길을 걷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산죽 군락지에서 이쁜 곰취를 만난다.
잠시후에 벙글이이가 더덕 2뿌리를 발견하여 수확을 한다.
이런곳은 자세히 주위를 살피면 절대로 빈베낭으로 집으로 가지는 않는다.
안부 능선을 걷다가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오늘 처음으로 시원한 능선이 조망된다.
전망암 바위(1,132m:14:50)
전망암에 올라서니 시원한 능선이 조망되고 저 멀리 태기산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태기산의 풍력발전기
가야할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처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홍천군 서석면 상비마을의 모습
전망암에서 로프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니...
구목령 정상 1.5km 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우거운 잡풀지대를 지나니 호젓한 산죽길이 나온다.
난 요즘 상당히 외로움을 타는거 같다... 그럴수록 산에 매달리는 느낌이다.
그게 어쩌면 집착이고 아집일지 몰라도 그래도 산이 좋다.
맑은 공기에 시원한 바람. 그리고 산새들의 지저귐...
외로움을 털어 버리긴 너무도 좋은 곳이다.
아! 이 맛에 산에 오질 않는가... 친구들이 나를 버리면 어쩌지
이젠 내 주장보다는 반대편 친구의 입장에서 이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친구야! 미안하다. 널 이해한다.
너가 산에 미친 나를 버리드라도 난 널 원망하지 않으마.
지난주 골프 라운딩 거절도 악의는 아니니...
나보고 변했다고 원망하는 친구를 난 이해를 한다... 왜냐고 예전에 그래지 않았으니.
그래 다음주에 장마가 온다고하니 너하고 자주가는 광장시장 박가네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녹두 빈대떡으로 화해주나 한 잔하자구나.
이곳의 날씨 탓인지 늦게핀 보라색 붓꽃이 이별을 준비한다
안부 능선을 걷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구목령 정상 0.97km라는 이정목이 나오고...
딱다구리가 파놓은 구멍에 개미가 잔치를 하고있다.
멋진 노거수가 도열해 산꾼을 반기고...
구목령을 가기 위해선 다시 한번 좌측으로 꺽어진다.
헬기장(15:30)
헬기장에 올라서니 태기산 풍력발전기는 더욱 더 가까워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구목령이 나타난다
구목령(九木嶺:943m:15:44)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평창군 봉평면, 횡성군 청일면을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오래된 고목이 아홉 그루가 있었다 해서 구목령이라 불린다.
오대산~양수리까지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르는 능선인 한강기맥 중에서도 외지로
손꼽히는 구목령에서 1190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산꿩의 다리, 큰연령초, 잎과 줄기의
냄새가 마치 오줌처럼 지린다는 노루오줌, 참나무 씨가 날아와 자생하는 참당귀등이
즐비한 천혜의 야생화 전시장이다.
또 1132봉의 전방바위에서는 태기산의 풍력발전기와 평창의 흥정산, 운두령으로 향하는
마루금과 구목령 능선을 시원하게 관망할 수 있어 강원도의 숨겨진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덕고산으로 내리는 길은 풀섶과 짙은 산길이어서 원시림과 같은 산음을 즐길 수 있다.
동료산꾼 붕어잡이님의 모습
4인방의 산림꾼 벙글이님의 모습
어젯밤부터 잠을 한숨도 못잔 탓인지 상당히 피곤하다.
구목령에 도착하니 발바닥에 불이 나는 느낌이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은 다음에 한참동안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봉평쪽 임도로 향한다.
이곳에서 탈출로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우측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이곳에서 생곡리 마을회관까지는 6.5km 를 걸어야 교통편이 가능하지만
서석면은 택시가 없는 곳이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동차를 세어둔 봉평까지 택시를 타려면 10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은 좌측 봉평쪽 임도로 내려가는데 바리게이트가 쳐저있는 임도까지 9.8km를
걸어야 하지만 계속해서 내리막길이고 봉평에만 도착하면 고속도로를 비롯한 접근성이
뛰어나다. 우리는 자동차를 봉평에 세워놨기에 거리가 먼 봉평으로 향한다.
구목령 정상 이정목
다음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약 10km라 앞이 캄캄하다.(15:55)
계속해서 임도로 걸어 내려가는데 산길과는 달리 엄청나게 지루하다.
계곡이 참으로 깊다. 주위 산에는 잘 생긴 금강송이 드문드문 보이고 야생화 천국이다.
등불 밝히고 누굴 기다리시나?
임도를 5km 가량을 걸은 다음에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임도옆 계곡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머리를 감고 무릎까지 물에 담권 다음에 도가니를 식힌다.
2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무릎을 물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한다.
발바닥 아래로 산천어들이 몰려들어 졸지에 닥터피쉬를 한다.
다시 장비를 꾸리고 임도를 걸어서 흥정리로 향한다.
함박꽃
평창 사방댐(16:55)
구목3교(17:25)
바리게이트 쳐진 임도가 다되어 가는 느낌이다
좌측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끝(17:50)
구목령에서 이곳까지 9.8km를 휴식시간을 빼고 1시간 35분만에 내려왔다.
이곳까지 택시가 올 수 있기에 옆 계곡으로 들어가 씻으려고 했으나 접근성이
불편하여 포기하고 새벽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니 20분정도 걸린단다.
택시가 오는사이에 도로옆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팔뚝에 진드기가 붙어서
살까지 파고들어 피를 빨아먹고 있다. 설마 살인 진드기야 아니겠지.
그래 먹어라. 얼마나 배고팠으면 이렇게 꼭 박혔냐.
잠시후에 택시가 도착하여 봉평면소재지까지 와서 우리가 타고온 자동차로 짐을 옮긴다(택시비 13,000원)
택시가사가 소개해준 메밀마당으로 와서 우선 시원한 맥주에다가 소주를 말아서 연거푸 2잔을 마신다.
지난주 장염 때문에 1주일동안 주(酒)님을 뵙지못해 정말 아쉬웠는데 정말 꿀맛이다.
거기다가 메밀부침개에다 편육으로 일단 주린배를 채우고 비빔막국수를 먹고나니 살것만 같다.
잠시후 쥔장이 메밀전병 한접시를 서비스로 주신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끝낸 다음에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이빨까지 닦은 다음에 자동차에서 1시간 가량
수면을 취한 다음에 서울로 향한다. 접근성이 힘든 구간을 어렵게 마치고 나니 시원하다.
같이 동행한 산과스키, 붕어잡이, 벙글님 고생했습니다.
특히 차량봉사를 해주신 산과스키님 복받을겨... 7월 첫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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