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상(淨土思想)
1)정토교의 성립
중국 정토교(淨土敎)는 교리적으로 볼 때 다소의 차이점이 있는 세 유파가 있으나 그다지 명확한 구별을 하지 않고
모두 혜원(慧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토교를 명실공히 집대성한 사람은 선도(善導)이다.
담란(曇鸞, 476~542)은 보리유지(菩提流支) 삼장으로부터 『관무량수경』의 가르침을 받고 오로지 염불에 입각하여
정토교의 기초를 다졌으며 『왕생론주(往生論註)』를 남겼다.
도작(道綽, 562~645)은 현중사(玄中寺)에서 담란의 비명(碑銘)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정토교에 귀의한 사람이다.
그는 『관무량수경』을 강의하는 한편, 하룻동안 콩을 헤아리는 소두염불(小豆念佛)을 7만번씩 하였다고 한다.
그 의 저서로 『안락집(安樂集)』이 남아 있다.
선도(善導, 613~681)는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로 알려져 있다.
선도는 극락의 즐거움과 지옥의 고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정토변상도(淨土變相圖)를 그려 민중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오늘날의 시청각 교육과도 같은 방법으로 교화하였다.
일화에 따르면 그가 권한 칭명염불(稱名念佛)의 가르침에 따라 장안(長安)의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저술로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가 현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정토교가 하나의 종파로 형성되면서 민중 속에 뿌리를 내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띌 만 큼 종파로서의 형성은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경흥(憬興)과 의적(義寂) 등의 이름이 보이고 있으나,
정토신앙 보급 과 관련해서 꼭 언급해야 할 원효에 대해서만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모든 불교 교학에 능했던 원효는 『화엄경』에 주석을 달다가 크게 깨친 바가 있어
스스로 파계를 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 세속의 복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아무 걸림이 없는 박’이라는 뜻의
무애포(無碍匏)를 매고 같은 뜻의 노래인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무애춤을 추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때 원효가 민중들에게 가르쳤던 불교는 아미타신앙이었다. 원효가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니,
산골에 사는 백성들까지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울 줄 알게 되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2) 정토삼부경의 세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관무량수경 범본과 티베트본은 산실되어 버리고, 오직 5세기 경에 강량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한 한
역본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그 성립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정토삼부경’ 중에서 가장 발전된 사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성립시기를 4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명(經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경전은 극락정토의 장엄함과 그 곳에 주재하시는 무량수불(無量壽佛)과
좌우에서 보좌하는 관음(觀音)ㆍ세지(勢至)보살을 생각하는[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경전의 내용을 보면 이 러한 사상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에 깔고 있는데 바로 ‘왕사성의 비극’이라고 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 의도하는 바는 왕사성의 비극을 주제로 하여 위제희 왕비가 고뇌를 떨치고 서방정토로 구제되어 가는 순서를
관불(觀佛), 관상(觀想)의 설법으로 명백히 밝혀, 타력구제의 진실성을 범부중생들에게 알려주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전에서는 범부 왕생의 십육관법(十六觀法)을 통해서 설사 악인이라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에게도 불성은 있고 또한 그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구제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미타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무량수경』
극락세계는 불자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바로 그 극락세계를 건설하게 된 원인과 그곳에 가는 방법을 설한 경전이 바로 『무량수경』이다.
『무량수경』은 『아미타경』과 범본의 경명(經名)이 똑같기 때문에 『아미타경』을 ‘소경(小經)’이라 부르고
『무량수경』을 ‘대경(大經)’이라고 하며, 때로는 『대무량수경』 혹은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쌍권경(雙卷經)』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무량수경』은 여러 종류의 범본과 티베트 번역본 및 5종류나 되는 한역본이 현존하고 있다.
특히 범본은 19세기에 들어와서 네팔 주재의 영국 공사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서 14, 5세기 무렵의 필사본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티베트 번역본은 이보다 훨씬 앞선 8세기 경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5종류의 한역본 중에서는 강승개(康僧鎧)가
번역한 『무량수경』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런데 『무량수경』의 내용은 누구든지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만 부르면 곧바로 정토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선인과 악인, 현명한 이와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오직 일심(一心)으로 염불만 하면 임종때에
아미타불이 내영(來迎)하여 정토로 인도해 간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무량수경』은 아미타불이 과거세에 법장 비구로
있었을 때 세운 48대원, 현세에 있어서의 정토사상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 있는 경전이다.
『아미타경』
아미타경은 아미타불과 그 분이 계시는 정토의 장엄한 세계를 설하고, 그러한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관무량수경』과 『무량수경』의 내용을 요약한 경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미타경』의 범본(梵本)은 네팔과 일본 등지에서 여러 가지 사본(寫本)이 전해지고 있고, 8세기 무렵에 번역된 티베트본도 현존하고 있다.
한역본은 모두 세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주로 독송하는 경전은 간결하고 수려한 문체로 유명한 구마라집이 402년에 역출한 번역본이다.
그뿐 아니라, 이 경전은 영역(英譯)으로도 나와 있고 주석서와 연 구서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한 『아미타경』은 일명 『사지경(四紙經)』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비록 그 분량이 적지만, 그러면서도 아주 쉽게
정토사상을 설명해 놓고 있다.
먼저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장로 사리불을 위시한 여러 제자들과 문수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설법하시는 법회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이어서 극락세계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모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정도로 실감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그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1일 또는 7일동안
일심(一心)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3) 정토교학의 중심 사상
부처님이 일생 동안 설한 교설은 한마디로 ‘진실한 자신에게 눈뜨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정토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를 이 세 상(사바세계)이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한 세계를 정토(淨土), 즉 극락세계라 한다. 이 진실한 세계를 찾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먼 길을 가는데 혼자 힘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어렵게 찾아가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같은
목적지를 자동차를 타고 쉽게 가듯이 남의 힘을 빌려서 찾아가는 것이다.
정토사상이란 후자(後者)와 같이 아미타불의 힘에 의지해서 진실한 정토를 쉽고도 빨리 찾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교에서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이 강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염불은 타력이라 하고, 참선은
자기 힘에 의지하는 '자력(自力)'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자ㆍ타력을 나누어서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력과 타력,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이라는 대립적 개념으로
불교를 해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일심으로 염불하는 수행 그 자체가 이미 자력적인 것이고, 참선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그 믿음 속에 타력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극락이란, 말 그대로 즐거움이 극에 달해 있는 세계를 말하는데 불교에서 말할 때 우리들이 사는 이 사바세계는
예 토(穢土), 즉 더럽고 고통스러운 땅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수많은 정토, 즉 깨끗한 세계이면서 즐거움만이 있는 불국토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토에는 극락정토 이외에도 미륵정토ㆍ약사정토ㆍ화엄정토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 로 극락정토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토삼부경’에서는 특히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정토만을 주제로 설명 하고 있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어떻게 보느냐, 또 정토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소위 불신관(佛身觀)과 정토관 (淨土觀)이
정토사상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 한편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교리가 발달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많은 불보살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불보살들은 각기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바로 ‘본원(本願)’이나 ‘서원(誓願)’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다.
이때 불보살님 한분 한분이 가지는 원을 ‘본원(本願)’ 또는 ‘별원(別願)’이라고 하며, 모든 불보살님이 다같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원을 ‘총원(總願)’이라 하는데, 예를 들면 사홍서원(四弘誓願)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본원의 대표적인 경전이 위에서 살펴본 ‘정토삼부경’인 것이다.
특히 법장비구의 48원 가운데 제18원, 즉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원’이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데, 원효는 십념에
현료(顯了)와 은밀(隱密)의 두 뜻이 있다고 하였다. 즉 현료는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소리내어 외우는 것이고, 은밀은 초지(初地)인 환희지 (歡喜地) 이상의 보살이 아니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회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살에서 범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타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대에 이 정토신앙은 더욱 극단화되어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이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소리내어 외우면 곧바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와 숫자개념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으로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정토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유심정토(唯心淨土)’설도 나오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극락이기 때문이다.
‘번뇌(煩惱) 가 바로 보리(菩提)’라는 주장을 하는 대승불교다운 해석이다.
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
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