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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불교 공부

기도수행

by 범여(梵如) 2013. 11. 28.

기도수행

 1.기도의 의미와 기능

 

1) 기도의 의미
기도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보통,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위대한 힘에 의지하여 이루고자 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원행위는 원시종교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즉, 자연의 막강한 위력 앞에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인간으로써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다양한 원시종교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가장 원초적인 신앙형태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차츰 인류의 문명이 진화하면서 종교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대상에 대해 보다 합리적이고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동양의 몇몇 종교는 이러한 원시신앙에서 출발한

신 중심의 종교관에서 벗어나 인류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이상실현을 목표로 한다.

불교, 유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서구 종교인들은 불교나 유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구분지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다.

왜냐하면 불교는 중생구제를 위한 구체적인 삶의 철학이고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면이 가장 살아있는 현장이 기도이다.

기도는 한계상황에 닥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인 까닭에 불교의 자비 구세 정신은 이러한

인간들의 기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바람을 들어 줄 많은 불보살님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서원하기를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에서 사람들을 건져낼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세계를 완성하겠다 했고, 그 서원을 이루었다. 이렇게 성취되고 갖추어진 우리의

희망은 불보살님의 본원력이라는 이름으로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이루어졌고 갖추어졌다.


그러나 어디에 갖추어져 있는가.

앞에서 염불을 설명하면서 누차 강조했듯이 그것은 외부에 고정된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 생명의 바탕이자 우주의 근원인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숨쉬고

물 마시듯이 이미 그 해택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파도라면 그것은 바다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면 ‘나’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겠는가.

단지 지구라는 커다란 공같은 것 속에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을......

 

이와 같이 우리는 각기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이니 파도가 바다를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은 근원과 둘이 아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은 나와 둘이 아니니, 단지 그것을 자각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어리석고 의심이 많은 중생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고 고통 속에 해메이니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모든 수행법들은 궁극적으로 나의 본질과 우주의 원리를 깨닫고 잘못된 모든 속박과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은 무수한 겁 동안에 쌓여진 업장으로 굳게 뭉쳐있어

좀처럼 벗기가 어렵다. 더욱이 깨달음이란 ‘언제까지하면 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에 수행의 길은 더욱

힘겹게 여겨진다. 어떤 사람은 경전의 사구게 한마디를 듣고 깨닫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생을 해도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언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럴 때 먼저 깨달음을 얻으시고 중생구제를 위해 애쓰시는 많은 불보살님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무수한 세월동안 보살행을 닦은 연후에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내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만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니 그분들을 생각하며 나도 또한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궁극적으로 성불의 바탕이 되므로 수행법이다.

기도가 수행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의미에서 나는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수행법이라 강조한다.

따라서 수행으로서 기도란 외부의 대상에게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엇을 이루겠다는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해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자기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의미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원칙만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기도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힘으로 그 길을 떠날 힘도 여유도 없다.

그들을 위해 기도라고 하는 방편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불자라면 경전은 진실된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 경전에 불보살님들의 서원이 나와있고 또 성취되었으며 그 공덕으로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어찌 이 말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간절한 염원과 불보살님의 위신력에 대한 믿음이 고통으로부터

벗아날 수 있다는 희망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강력한 믿음과 희망의 힘에 의해 실제로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먼저, 믿는 동시에 안심을 찾게 되고, 희망을 갖는 동시에 삶은 이미 이전과 달라진다.

 

기도에 열중하다보면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산만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을 찾게 된다.

이렇게 기도를 해나가다 보면 정신이 맑고 고요해지면서 시간과 공간도 사라지고 나 조차도 없어져

버리는 삼매체험을 하게 된다. 이 때 대개 불보살님이 나타나시어 이마를 만져주시거나 미소짓는 모습을 보이신다.

또는 꿈에 현몽하시는 등의 징표가 있게 되는데 이로써 기도는 성취된다.

 

2) 기도의 기능
기도의 기능은 근심·걱정 등 번뇌를 제거하고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하며, 두려움 없이 장애를

극복케하고,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살아가게 한다. 기도의 공덕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겠지만

크게 세가지로 이야기 하면, 첫 번째는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것이 기도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다.

두 번째는 업장소멸이다. 세 번째는 자기 다짐을 강화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다.

 

① 소원성취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극한 상황과 맞닥드릴 수 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소망들이 있다.

이것들을 이루고자 기원하는 것이 기도이고 또한 기도를 통해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원래 누구나 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기도를 하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

그 원리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② 업장소멸
기도가 성취되는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나를 잊고 오로지 기도하는 행위에 전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묵은 때가 씻겨 나가 신심이 청정해진다. 이것이 바로 업장소멸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무수한 과거로부터 찰라전의 순간까지 쌓여온 온갖 묵은 때가 잠깐동안의

삼매 속에서 한꺼번에 녹아지는 것이다. 어떻게 산더미처럼 쌓인 죄가 한꺼번에 녹아 없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진실한 참회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천수경에서는 “백겁동안 쌓은 죄가 한생각에 문득 사라지는 것이 마른풀이 한꺼번에 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문득 그 동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상처받은 마음, 원한 뱆힌 마음들이

눈 녹듯이 녹아진다. 그러면서 저절로 참회가 되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솟아오르며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 업장이 사라진다.

또는 직접 이런 현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도뿐만아니라 모든 삼매가 갖고 있는 기능인데, 삼매는 번뇌업장을 녹이고 지혜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③ 자기점검
기도는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자가 일상적으로 자기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거듭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사찰에서 실시하는 조석예불이다.

기도가 수행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업장소멸과 자기정화라는 측면에서 수행이며,

또한 기도를 통해 자기를 점검하게 되므로 수행법이다.

 

매일의 기도는 자신을 점검하고 의지를 강화하여 하면된다는 신념과 용기를 준다.

수행에 있어 점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귿이 강조하지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자기점검으로써의 기도를 일상화하여 매일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다.

아침에는 하루 생활할 원칙을 발원하고 밤에는 그것을 잘 지켰는지 반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도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점점 몸과 마음이 맑고

밝아지며 이러한 맑고 밝음이 곧 깨달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2. 기도의 원리

 

1)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니다
모든 불보살님들은 본원과 별원에 의해 수행하여 그것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확신하는 수행이 기도이므로 불보살과 감응하여 가피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타력신앙의 관점은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 자력수행이다 보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타력이란 자력과 상관없는 별개의 타력이 아닌

자력이면서 타력이고 타력이면서 자력이다. 왜냐하면 불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응하여 가피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자가 일심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일심 속에서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명심한다면 기도수행을 하는데 맹신이라는 장애와 의심이라고 하는 장애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연화대를 관조하였으면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어째 그런가하면 모든 부처님은 바로 온 세계인 법계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32상과 80隨形好인 것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골똘히 하여 저 아미타불과 그 지혜 공덕인 여래, 응공, 정변지를

깊이 관조해야 하느니라.” <관무량수경>

 

불보살의 위신력이 분명히 있어 기도 중에 가피를 받게 되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 속에 계시며 그 마음으로 부처를 이룸을 명심해야 마구니에게 홀리지 않고 부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앞의 염불수행에서 유심정토와 타방정토가 둘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 것이다.

 

2) 기도성취의 원리
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지, 기도성취의 원리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도의 첫 번째 기능은 소원성취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대상은 관세음보살일 수도 있고,

지장보살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고, 바위일 수도 있다. 또 같은 대상을 두고 기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어떤 원리가 있길래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가.


불교에서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하며 무속에서는

무당의 힘 또는 그 무당이 받드는 신의 힘 또는 바위가 신령해서 라고 한다.

과연 그런 힘이 거기에 있다면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갖지 않는가.

믿음이 부족해서,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왜 믿음이라든가 정성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아무리 타력이라고 해도 실은 자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속에서 일부 신통력이나 어떤 부분적인 능력에 의해 외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지만 기도라고 할 때는 기원하는 주체가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했느냐하는 것이 관건이지

기도의 대상은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방편이라고 하지 않고 외부의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맹신이고 이것을 조장하는 것이 사이비이다.

만일 외부에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그리하여 그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면 왜 사랑의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믿는 자만,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자비의 화신인데 왜 먼저 와서 구해주지 않고

중생이 그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한 모습이

아니고 상인으로도 승려로도 여자로도 남자로도 아이로도 노인으로도 나타난다 했는데 그럼

이때 도움을 준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인가 지장보살인가.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한치의 의심이나 간격도 없이 온전히 부처를 이루고 관세음보살을 이룰 때 기도도 성취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네 이름을 부르면 곧 삼재팔란을 면할 것이다. 이 모두가 “네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마음에 의지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해오던 분별하고 의심하던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본심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이 때 올바른 방편이 필요한 것이다. 중생심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쉽게 근본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사의한 공덕을 갖춘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진언을 염송하는 것이다.

이때 바른 방편은 본심을 여의지 않으므로 바른 길로 인도한다.

본심을 한마음이라고도 하고 자성이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한다.

마음이라고는 하나 나와 너, 안과 밖이 없는 거기에 의지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원리이다.

 

3. 기도의 대상
모든 불보살님이 본원과 별원에 의해 수행을 하고 위신력을 얻었으므로 이분들의 위신력에 의지하는 기도가 가능하다. 경전에 나오는 불보살님 명호만도 무수한 수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 가장 대중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므로

먼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왜냐하면 기도를 할 때에는 먼저 기도의

대상을 정하고 대상이 되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안 뒤에 거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 관세음보살

 

①관세음보살의 위신력
그 때 무진의(無盡意)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만일 한량 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그는 혹시 큰 불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관세음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며, 혹은 큰 물에 떠내려 가게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며, 혹은 백천만억 중생이 금 · 은 · 유리 · 자거 · 마노 · 산호 · 호박 · 진주 같은 보배를 구하려고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일어 그들의 배가 나찰귀들의 나라에 포착되었을지라도 그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여러 사람들이 다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니,

이러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만일 해를 당하게 되었을지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이나

막대기가 곧 조각조각 부러져 능히 벗어날 수 있으며, 혹은 삼천대천 국토에 가득한 야차 · 나찰들이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더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여러 아귀가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어찌 해칠 수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고랑이 손발에 채워지고 몸이

묶였을지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이것들이 다 끊어지고 풀어져 곧 벗어나리라.

 

만일 또 삼천대천 국토에 원적(怨賊)이 가득찬 곳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원적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하고,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 관세음 보살 ’하면 곧 그 난을 벗어나리라.


무진의야, 관세음 보살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니라.

또 만일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항상 행각하고 공경하면 곧 음욕을 여의게 되며,

혹은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마음을 여일 수 있으며,

혹은 어리석음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어리석음을 여일 것이니라.
무진의야, 관세음 보살이 이런 위신력으로 이롭게 함이 많으니 중생은 마땅히 마음으로 항상 생각할 것이니라.

 

또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 만일 딸 낳기를 원한다면 곧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딸을 낳게 되리니,

덕의 근본을 잘 심었으므로 여러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리라. 만일 또 중생이 관세음 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리니, 그러므로 중생이 모두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② 관음신앙
관세음보살의 위와 같은 광대한 위신력에 의지한 것이 관음신앙이다.

어원은 Avalokitesvara로 ‘세간을 관하여 보는 신’ 또는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자’의 뜻으로

관세음, 관자재, 광세음, 관세음자재, 광세음대세지대사, 관음대사 등으로 불린다.

즉, 세상의 고통받는 중생들의 소리를 관한고 여기에 응답하는 구제자를 말한다.

특히 관세음보살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천수천안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얼굴로 중생의 고통을 보고 즉시 구원한다는 구제자의 면모를 잘 나타낸다.


관음신앙의 기원은 서력기원 전의 일로 추정되며 1세기경에 성립된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53선지식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능엄경> 등에서

관음신앙의 초기형태를 알 수 있고, 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관음보살상이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이들 경전이 번역되면서 관음신앙이 민간에 전래되었고,

천태교학의 전개와 더불어 더욱 확산되었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관음신앙이 유포되었다.

 

특히 강원도 낙산사를 비롯하여 전국 도처에 이름난 관음기도도량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고 있는 천수경이 바로 관음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미루어 보아

일반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분이 아니까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 기도의 대상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분이 바로 관세음 보살이다.

 

2) 지장보살

 

①지장보살의 위신력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혹 여러 유정들이 가지가지 욕구와 근심과 고통이 절박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귀의하고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법다이 구하는 바 모든 것을 얻어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굶주림이 핍박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일체에 법다이

구하는 바 음식이 충족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함을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가지가지 의복과 보배장식과 의약과 침상과

방석과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자구가 모자라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법다이 구하는 바 의복 · 보배장식 · 의약 · 침상 · 방석과 그밖에

온갖 생활 도구를 다 갖추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미워하는 이와 만나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이와 만나게 되고 미워하는 이와 헤어지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몸과 마음에 근심과 고통이 있고 또한 온갖

병고에 시달릴 때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가 신심이 안락하고 온갖 병이 없어지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느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뜻이 서로 맞지 않아 여러가지로 다투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 해독심을 버리고 서로 화목하여 기쁜 마음으로 참아 견디며, 날이 갈수록 부끄러워하고 뉘우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향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에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감옥에 갇혀 있게 되고 칼을 쓰고 사슬에 묶이어

온갖 고통을 받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 감옥에서 칼을 쓰고 쇠사슬의 묶임에서 해탈하여 자재하고

환희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감옥에 갇히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마침내 해침을

당하게 되었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든 감옥과 고문과 해침을 당하는 것을 면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심신이 피로하고 기력이 쇠약하여졌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다 심신이 유쾌하고 기력이 강성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육근이 갖추어지지 않고 혹은 손상을 입었을 때,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모두 육근이 완전해져 손상됨이 없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어떤 유정들이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귀신에 집혔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저들은 모두 마음에 미치거나 어지러움이 없고 온갖 괴로움을 여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에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분한 마음과 원한과

간탐과 질투와 교만과 나쁜 소견과 수면과 방일과 의심 등이 치성하여, 그의 심신이 어지럽고 괴로워

항상 안락하지 않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들 모두가 탐욕 등 여러가지 나쁜 것들을 모두 여의어 심신이 안락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불에 타게 되거나 물에 빠지게 되거나 바람에 불리고

혹은 산이나 바위나 벼랑이나 언덕이나 나무나 집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 차릴 수 없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들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여의게 되고 안온하여 손해를 입지 않으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들이 여러 독사나 독충에게 물리고 혹은 가지가지

독약에 중독되었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며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이들 모든 괴로움과 해로움을 여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산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악한 귀신에 집혀 학질을 앓되, 혹은 날마다

앓고 혹은 하루 걸러 앓으며 혹은 3, 4일에 한 번 앓고 혹은 미치광이가 되어 심신이 떨며 정신을 잃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게 되었더라도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 모든 병에서 벗어나 두려움이 없고 심신이 편안해지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일 어떤 유정이 저 여러 야차 · 나찰 · 아귀 · 필사차귀 · 포달나귀 ·

구반다귀 · 갈타달포나귀 · 흡정기귀와 호랑이 · 늑대 · 사자 등 사나운 짐승과 버러지의 독과 해치고자

하는 기도와 온갖 나쁜 주술과 원수와 전쟁과 그 밖의 온갖 두려운 일에 둘러싸여 그 마음이 당황하고

목숨을 잃을까 겁에 질리며,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살기를 탐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줄거움을 구할 때,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며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이들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어 목숨을 보존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서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혹은 총명하게 되고자 하고, 혹은 깨끗한

계율을 갖고자 하고, 혹은 선정을 이루고자 하고, 혹은 신통을 얻고자 하고, 혹은 반야 · 혹은 해탈 ·

혹은 묘한 형상 · 혹은 묘한 소리 · 혹은 묘한 향 · 혹은 묘한 맛 · 혹은 묘한 촉감을 위하고, 혹은

이익 · 혹은 명예 · 혹은 공덕 · 혹은 기술을 위하고, 혹은 꽃과 과일 · 혹은 나무와 숲 · 혹은 평상 ·

혹은 방석 등을 위하고, 혹은 도로 · 혹은 재물과 곡식 · 혹은 의약 · 혹은 집 · 혹은 하인 · 혹은 채색 ·

혹은 단비 · 혹은 물 · 혹은 농사를 위하고, 혹은 부채 · 혹은 시원한 바람을 위하고, 혹은 불 · 혹은 수레 ·

혹은 아들 · 딸을 구하고, 혹은 방편을 구하고, 혹은 복을 닦기를 구하며, 혹은 따뜻함 · 혹은 시원함 ·

혹은 기억 · 혹은 가지가지 세간이나 출세간의 온갖 이롭고 즐거운 일들을 위하여 이들을 쫓고 구할 때

생겨지는 여러가지 근심과 고통이 절박하더라도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 선남자의 공덕과 묘한 定의 위신력 때문에

모든 근심과 고통을 여의고 소원을 만족하게 이루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저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대승대집지장십륜경 서품>

 

② 지장신앙
이렇듯 지장보살의 위신력이 크므로 거기에 의지하는 지장신앙 또한 매우 널리 퍼져 있다.

지장경을 보면 지장보살은 광목여인 때에 지옥고를 당하는 어며니를 위해 서원을 세우기를

“모든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여 지옥·아귀·축생 등을

악취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고 이런 우리들을 모두 다 성불케 한 후에야 제가 정각을 이루겠나이다.” 하였다.

지옥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에 따라 지장보살은 망자를 위한 구제자로 널리 신앙되고 있다.

따라서 49제 등 망자를 위한 재공양 때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이 기능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지장보살

신앙에 의해 예수제나 우란분절과 같은 신앙형태도 등장했다. 지장은 산스끄리트어로 Ksiti-garbha이다.

이 말은 대지의 모태라는 뜻이다. 즉 지장은 인간의 활동 공간인 대지의 온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지장사상은 <대방광십륜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본원경> 등에서 나타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하신 뒤에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의 부처님이 안계신 시대의 오탁악세에서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하여 해탈케하는 일을 부촉받은 보살이다.

그래서 육도윤회하는 중생, 특히 가장 혹심한 고통을 받는 지옥중생까지도 남김없이 모두 제도하려는

원력을 언제나 어디서나 행하고 계신다.


지장신앙은 중국에서 도교와 융합하여 명부시왕신앙과 습합한 형태로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사찰 안에서는 말한 나위도 없고 때로는 사찰을 떠나 독자적인 신앙형태를 띠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라 김교각스님은 중국에서 등신불이 되어 살아있는 지장보살로 신앙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주존으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특히 다른 보살들은 다음 생에 성불을 하는 일생보처에 계신 분들이지만 지장보살만은 유독 모든 중생이

다 해탈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 대원(大願)보살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보살들은

보배영락을 드리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지장보살만은 삭발한 수행자의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분에 대한 가슴 저린 신심이 우러나오는 것일까.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서는 말세에 부처님 안계시는 동안 중생구제를 맡으신 지장보살을 더욱 찾게되는 것일까.

근래들어 지장신앙이 다시금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3) 기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다음으로 많이 기도의 대상이 되는 분이 약사여래이다.

약사여래는 인간의 병고를 치유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에 있다.

이 경은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의 칠불 중 일곱 번쩨인 약사유리광여래에 관한 경이다.

이 경에서 보면 약사여래는 중생구제를 위한 12가지 큰 서원을 발하고 성취하였다.

 

1. 내가 내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나의 광명이 치연하여 무량하고 무수하고

   무변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고 32대장부의 상과 80수호로서 그 몸을 장엄하며, 일체 유정이

   나와 다름이 없도록 할 것을 원한다.
2.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몸은 유리와 같아 안팎이 명철하고 깨끗하여 하자와 티끌이 없고

   높아 몸이 안주하고 염망으로 장엄하기가 해와 달을 능가하여 유명의 중생은 모두 이 빛을 받아

   뜻하는 바를 따라 모든 사업을 성취할 것을 원한다.
3.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무량하고 무변한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모두가

   다함없는 수용할 물건을 얻게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소유가 빈약하지 않도록 할 것을 원한다.
4.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사뙨 길을 행하면 그 모두를 보리의 길에 안주하게

   할 것이며, 만악 성문과 독각승을 행하는 이가 있으면 그 모두를 대승에 안주하도록 할 것을 원한다.
5.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무량하고 무변한 유정이 나의 법 안에서 범행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 모두에게 불결계를 얻게 하고 삼취계를 갖출 수 있게 할 것이며, 설사 깨뜨리고 범하는 일이 있어도

   나의 이름을 들으면 도리어 청정함을 얻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원한다.
6.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의 몸이 하열하여 온갖 기관이 불구이거나 추악하고 천하며

   완고하고 어리석거나 앉은뱅이이고 꼽추이거나, 온 몸이 곪고 미치광이이거나 하는 온갖 병고가 없을 것을 원한다
7.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온갖 병으로 절박하여 구할 길이 없고, 의사가 없고,

   약이 없고, 어버이가 없고, 집이 없고, 빈궁하고 괴로룸이 많으나 나의 명호를 한 번만이라도 귀로 들으면

   그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집과 권속과 재물이 모두 충족하고 나아가서는 무상의 보리를

   증득할 것을 원한다.
8.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인이 있어 여자의 온갖 나쁜 것 때문에 쫒기고 괴로워하여 극히

    싫어하는 마음이 나서 여자의 몸을 버리고자 원하면 나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일체의 여자를 변하여

    남자가 되게 하고 장부의 상을 갖출 수 있고 나아가서는 무상의 보리를 증득할 것을 원한다.
9.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여러 유정으로 하여금 마의 견방을 벗어나 모든 외도의 결박을 해탈시키고,

   만약 온갖 악견의 수풀에 떨어지면 그 모두를 이끌어 거두어서 정견에 있게 하고 얼마동안 여러 보살행을

   닦게하여 빨리 무상의 정등보리를 증득하게 할 것을 원한다.
10.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왕의 법을 어겨 묶이고 매를 맞고 옥에 갇치고, 혹은

   사형을 당하게 되고, 기타 무량한 재난으로 능욕을 받아 슬픔과 근심으로 애타게하여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받음에, 만약 나의 이름을 들으면 나의 복덕과 위신력으로 그 모든 근심과 괴로움을 벗어나게 할 것을 원한다.
11.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롭힘을 받아 밥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악업을 짓는다해도 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어 오롯한 마음으로 수지하면, 나는 마땅히 먼저

   상묘한 음식으로 그 몸을 배부르게 하고 뒤에 법의 맛으로 필경에는 안락하게 하기를 원한다.
12.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가난하여 옷이 없고 파리와 모기에게 물리고, 추위와

    더위로 밤낮 괴로움을 당함에 만약 나의 이름을 듣고 오롯한 마음으로 수지하며 그 바라는 것, 즉 훌륭한

    옷을 얻을 수 있고, 또 모든 보배로 장엄한 화만(華鬘)과 도향(塗香)과 고악(鼓樂)과 온갖 노리개를 얻을

    수 있고 마음의 뜻하는 바를 따라 모두가 만족하기를 바란다.

 

12원 중에서 6,7번째 원에 따라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약사여래를 찾게 되었다.

약사여래 외에도 법신 보신 화신의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위시하여 대지혜의 문수보살,

행이 큰 보현보살, 미래의 구원불 미륵존불 등 기도의 대상이 되는 불보살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보현보살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 광대한 보살행의 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보현보살은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불자의 귀의차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이렇게 많은 불보살님이 계신 것인가.

그리고 각 불보살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불보살님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고 중생의 원이 다양하고 고통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구제하는 방편도 다양한 것이며 주된 방편을 따라 불보살님도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즉, 이 모든 불보살님은 각기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본성에서 구제의 특성에 따라 각기 나툰 모습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수행으로써 기도를 할 때에는 어느 분이든 한분을 꾸준히 찾으면 될 것이요, 특별한 상황에서는

거기에 맞게 기도의 대상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4.기도의 갈래와 방법

 

1) 일반적인 기도의 순서와 방법
아래의 과정은 수행의 예비과정으로 일상적으로 행해야할 공양과 예경, 참회, 발원 등이 함께 있다.

앞에서 다룬 내용들이므로 간략히 하겠다.

 

① 준비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기도의 기간을 먼저 정하여 그 기간동안에는 8재계를 지키고 보리심을 발하며, 목욕을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한 번 기간을 정했으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가능한그 기간을

채우는 것이 기도 성취에 큰 힘이 된다.

기도에 앞서 도량을 청소하고 결계라 하여 물을 뿌리거나 금을 긋는 등 도량의 한계를 정하고

청정히 하는데 이를 대신해서 사방찬과 도량찬의 게송을 외우고 정구업진언이나 정삼업진언을 외운다.

천수경의 경우에는 경 안에 이미 기도의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천수경 독송만으로 기도를 끝마칠 수 있다.

 

② 공양
기도를 시작할 때 먼저 향과 초, 차(茶) 또는 청수로 공양한다.

그 의미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향을 올리고 오분향례를 올리면 된다.

특히 몸이 아픈 사람은 청수를 올리고 기도를 마친 후 그 물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도의 경우에도 청수를 함께 나누어 마시면 맑은 기운이 몸에 퍼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가족에 대한 축원을 한 경우 청수를 마시면 소원성취에 대한 감응도 빠르게 나타난다.

 

③ 예경
먼저 불보살님의 자비가 이미 이 우주에 가득차 있으며 이 몸에 내재되어 있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오만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에 대해 참회하고 나의 본성이 불보살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와 남의 분별이 없이 모두 하나인 그 자리에 예경하는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예불문에 따라 예불을 드리고 안되면 삼배를 정성스럽게 드린다.

예경은 예배와 찬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법회 때 삼귀의를 하고 찬불가를 부르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예배는 지극한 마음과 정성어린 동작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불교의 예배법은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오체투지로써 근본 정신은 자기를 낮추고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다.

오체투지란 몸의 다섯 곳을 바닥에 닿게 하는 것으로 양팔꿈치와 양무릎 그리고 이마를 땅에 대는 것이다.

손은 합장하고 가슴에 모아 반듯이 선 자세에서 허리를 똑바로 한 채 무릎을 굽혀 앉은 뒤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대고, 오른손을 먼저 바닥에 내리고 왼손을 내려 바닥에 닿게 하면서 고개와 허리를

자연스럽게 굽혀 이마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인다.

 

이때 손바닥을 뒤집어 귀 높이로 올려 부처님을 떠받드는 모양을 한다.

다시 합장하고 천천히 일어선다. 이때 마음을 모아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아무렇게나 하지 않도록 한다. 보통은 삼배를 하는데 108배, 1080배, 3천배 등 여러번

거듭하는 경우에도 빨리 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엎드린 상태에서 합장하고 이마에 대고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을 표한다.


예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법이 되므로 절수행은 재가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수행법이다.

예배의 의미는 앞의 총설편에서 말한 바와 같다. 몸을 굽혀 가장 낮은 자세를 갖추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찬탄함으로써 예배는 몸과 마음과 뜻을 맑히는 기능을 하며, 특히 아만이 높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 또한 몸과 마음이 태만해지고 감각적 욕망이 치성해질 때 절수행은 큰 도움이 된다.

 

108배, 1080배. 3천배 등 많은 절을 할 때, 힘들고, 그만두고 슆은 고비가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욕망을 조복받는 큰 힘이 있다. 그리고 절을 할 때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나중에는 절이 저절로 되는데 이때 무념무상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 때가 절수행의 결정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이렇게 절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절을 한다면

더욱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영명연수선사는 예배의 공덕과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현관경>에는 이르기를 “만일 어떤 이가 있어 주야로 언제나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의 경전을 읽으며 또한 第一義의 매우 깊은 空法을 한 순간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실로 헤아릴 수

없는 겁의 생사죄를 멸제할 것이다. 이와 같이 법답게 수행하는 이는 참으로 불자며 諸佛로 좇아

난지라 시방의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그의 화상이 되므로 이를 이름하여 ‘보살계를 구족한 자’라 하리니,

구태여 갈마를 애써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성취해서 마땅히 일체 인천의 공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업보차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 전에 한 번 만이라도 예배하면 대번에 그 무릎 아래로부터 金剛際에

이르기까지 한 티끌마다 한 전륜왕위가 되어서 열 가지의 뛰어난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그 열 가지의 공덕이란 이른바 妙色身을 얻는 것, 말을 냄에 사람들이 다 믿는 것, 무리에 처하여 두렵지 않는 것,

온갖 사람들이 다 가까이 따르는 것, 하늘들이 우러러 공경하는 것, 큰 福報를 갖추는 것, 命을 마친 뒤엔

왕생하는 것, 그리고 속히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또 문수보살은 이르기를 “마음이 생멸하지 않으므로 공경히 예배함에도 觀할 바가 없나니,

오직 안으로는 평등을 행하고 밖으로 공경함을 닦아서 안과 밖이 함께 冥合하는 것이 곧 평등례인 것이다” 하였다.

<만선동귀집 제2장>

 

④ 발원
기도를 시작할 때 이미 내가 왜 기도를 하는 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사실은 별도의 발원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도가 의지를 강화하고 어떤 원을 성취해가는 힘을 기르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발원은 매우 중요하다. 발원은 기원과 다르다. 기원은 바라는 것에 그치지만 발원은 그것을 이루겠다는

주체적인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즉, 발원은 내가 무엇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 뜻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문장화하여 매일 반복적으로 소리내어 발원하는 것이 좋다.

 

⑤ 염송
염불과 염송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염불, 독경, 사경, 진언 등을 모두 포함한 말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즉, 기도는 염불, 간경, 진언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과 구분하지 않고 그

안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구체적인 바람을 가지고 행할 때 기도라고 구분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염송은 기도의 핵심부분으로 각 수행법에서 언급했듯이 일념이 되는 것이 관건이다.

 

⑥ 회향
기도에서 회향이 중요한 것은 지금하는 기도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이 기도공덕으로

일체중생이 함께 해탈하기를 발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발원을 회향의 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는 사홍서원으로 대신한다. 구체적인 회향의 한 형태로 축원이 있다. 축원은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불법의 이치를 깨닫기를 바라며 부처님께 기원하는 것이다. 기도를 끝마치기 전에 특정인에 대한

축복에서 출발하여 차츰 범위를 넓혀 우주 만물 모두에게 축원한다. 이것은 불교의 전통 관법 중의 자비관과 흡사하다.

 

축원을 할 때에는 본심에서 우러나는 지극한 사랑의 힘을 가지고 상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하면 좋다.

그리고 그가 이미 축복을 받아 행복해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모든 기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마치고 나서는 기도가 성취되었음을 확신하는 관을 한다.

 

2) 참회기도
참회란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먼저 안으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워 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았을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은 일반적인 후회나 반성과 다르다.

후회는 잘못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 주로 과거에 묶여서 오히려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하지 못하였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때는 대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쳤을까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후회하는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자 하는 마음과 같다.

이에 반해 반성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그러나 아직 문제의 원인 규명까지는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또는 부처님 앞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잘못의 원인을 확실히 규명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따라서 참회에는 이참과 사참이 있다. 이참은 이치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면 그 근원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사참은 타인에게 사죄하거나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실제적인 참회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만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되고 진정한 참회를 했다고 한다.


참회하는 방법에는 事懺과 理懺이 있다.

사참은 불보살께 자신의 잘못을 몸과 말과 뜻으로 드러내서 참회하는 방법(隨事分別懺悔 : 잘못한 일을

따라 반성해가는 참회법)이며 이참은 본래 일어난 바가 없는 죄의 참 모습을 관찰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참회법(觀察實相懺悔 : 법계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없애는 참회법)이다.


다시 참회법은 作法참회 · 取相참회 · 無生참회의 세가지 참회로 분류되니

(금광명경문구기 권3) 작법참회, 취상참회는 사참이고 무생참회는 이참이다.

작법참회는 참회의 의례를 통해서 죄를 없애는 법이며, 취상참회는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죄업을 소멸시키는 법이며, 무생참회는 죄가 본래 일어난 바가 없음을 바로 살펴서 죄를 없애는 법이다.
참회의 의례는 여러 경전에서 제시되었고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방법이 만들어져 전해 오고 있지만 여기서는 <점찰선악업보경>한글대장경(구판) 77권 P.P 495~496
의 예를 인용해 보겠다. 순서는 일반적인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① 준비
참회의 법을 닦고자 하는 이는 고요한 곳에 머물러 힘의 능하는 바를 따라 하방을 장엄하여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두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어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두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며 향과 꽃을 구하여 모아서 공양을 닦는다. 그리고 몸을 씻고 의복을

빨아 입어 악취와 더러움이 없게 한다.

 

② 예경
낮에는 세 때 명호를 부르되 한 마음으로 과거의 칠불과 53불을 공경하여 예배하며, 다음은 시방의

방위를 따라서 낱낱이 모두 귀의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두루 일체의 부처님 일에 예배하는 것이요,

다음은 또 시방 삼세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모두 예배드리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일체

법의 갈무리에 두루 예배하며 다음에는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일체 성현을 두루 예배할 것입니다.

 

③ 참회
그렇게 한 뒤에 따로 명호를 부르면서 지장보살마하살에게 예배할 것이며 이렇게 예배를 바치고

지었던 바의 죄를 설명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아뢸 것이다.
“원하옵노니 시방의 모든 크게 인자하고 높으신 이시여, 증명하여 아시어 보호하고 염려하옵소서.

저는 지금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나이다. 원하옵건대 저와 일체 중생은 빨리 한량없는

겁 이래로 십악 사중 오역의 뒤바뀜과 삼보를 헐뜯었던 일천제의 죄를 없어지게 하옵소서”라고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죄의 성품은 다만 허망하고 뒤바뀐 마음에서 일어났으므로 결정되었거나

진실되어 얻은 것이 없고 본래가 공하여 고요할 뿐이다. 나와 일체의 중생은 빨리 마음의 근본을

통달하여 영원히 죄의 뿌리를 없애기를 원하리라’고 한다.

 

④ 회향의 원
다음에 다시 청하면서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한 시방의 일체 보살로

하여금 빨리 정각을 이루게 하옵시며, 만일 이미 정각을 이룬 이면 세상에 항상 머물러 계시면서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시며 열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고 다음에 다시 따라 기뻐하는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나와 일체 중생은 필경까지 길이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고 삼세 동안에

일체의 세계 국토에서 모든 배움을 닦은 온갖 공덕을 성취한 이에게 죄다 따라 기뻐할 것이옵니다.’라고 하며,

다음에 다시 회향의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제가 닦은 바의 공덕은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돕고

이롭게하며, 함께 부처님의 지혜에 나아가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옵소서.’라고 한다.

 

⑤ 염송
다시 고요한 방에 나가서 단정히 앉아 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외우거나 묵묵히 생각하여

수면을 줄여 없앨 것이며 만일 혼침이 많은 이면 도량의 방안을 돌면서 외우거나 생각한다.
밤이 와서 만일 등촉을 밝힐 일이 있으면 또한 삼시로 공경하고 공양하며 허물을 뉘우치며 발원한다.

고요한 방 안에 있으면서 한 마음으로 외우거나 생각한다.

 

⑥청정함을 얻음

날마다 이렇게 참회의 법을 행하면서 게으르거나 폐지하지 말 것이니 만일 그 사람이 지난 세상에

오랫동안 선한 뿌리가 있었으면 잠깐 나쁜 인연을 만나 악한 법을 지었더라도 경미할 것이요,

그 마음이 용맹하고 날카롭고 지력이 강한 이는 칠일을 지난 뒤에는 곧 청정함을 얻어 모든 장애가 없어진다.

혹은 이칠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고, 혹은 삼칠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며,

만일 과거 현재에 모두 왕성하고 가지가지의 중한 죄가 있는 이면 혹은 백일을 지나서 청정을 얻고 혹은

이백일 내지 혹은 천일을 지나고서야 청정함을 얻기도 한다. 만일 근기가 극히 둔하고 죄상이 매우

중한 이면 다만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몸과 목숨을 돌보거나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부지런히 부르고 생각하면서 밤낮으로 돌며, 수면을 줄이고 예배하며 참회하고 발원할 것이요,

공양을 즐거이 닦아 게으르지 않고 폐지하지 않으며, 내지 목숨을 잃을지언정 반드시 쉬지 않아야 하리니,

천일 동안 이와같이 진정으로 하면 반드시 청정함을 얻게 될 것이다.


한밤중에 다시 광명이 그 방에 두루 차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유다른 좋은 향기를 맡아 몸과 뜻이

쾌연해지기도 하고, 혹은 좋은 꿈을 꾸기도 하며 꿈 속에 부처님의 색신이 오셔서 그를 위해 증명을

지으시며, 손으로 그 머리를 만지면서 칭찬하며 말씀하시기를 ‘착하도다. 너는 이제야 청정하여졌으므로

내가 와서 너를 증명하노라’하기도 하며, 혹은 꿈에 보살이 몸소 와서 그를 위해 증명하기도 하며, 혹은

꿈에 부처님 형상에서 광명을 놓으면서 그를 위해 증명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 경에서는 지장보살 염불이 들어 있지만 다른 염불이나 독경 또는 진언도 무방하다.

또 현재 많이 행해지고 있는 방법으로는 절을 하면서 하는 참회법이 있는데 108배, 1080배, 3천배,

1만배 등이 있고 예불 대참회문(108참회문)을 외우면서 절을 하는 경우도 있고 염불하면서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같은 방법은 대중이 함께 법회나 기도할 때 또는 혼자서 할 때 역시 마음 속으로 참회하는 경우이고,

공동체 내에서 열린 참회법으로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참회하는 법과,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해 주면 따라서 참회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이 포살과 자자이다.

 

3) 예불
예불도 기도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도량찬(도량석과 사물) 공양(다게·오분향례) 예경(예불문)

발원(발원문) 회향(반야심경) 등 기도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조석예불은 수행자가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원을 성취할 수 있는 정진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침예불은 오늘 하루도 원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하는 다짐의 시간이고,

저녁예불은 아침에 발원한 것처럼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조석예불은 수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여서 사찰에서는 전 대중이 반드시 예불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 불단을 모시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웃나라들은 가정에 불단을 모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앞에서 수행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인 요건이라 했다. 다행이 집 가까이 절이 있어서 조석예불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으니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가정에서 예불을 모셔야 할 것이다.

꼭 불상을 모시지 않더라도 경전이나 촛대, 향로, 염주, 불자(佛字) 등으로 간단하게 장엄하여도 좋다.

모든 불자들이 가정에 수행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온 가족이 그곳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고 원력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격식을 갖춘 예불이 어렵다하더라도 자기다짐과 서원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점검법으로 아침 저녁으로

삼보를 생각하고 불법승 삼보를 생각하고 예배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도록 하자.

 

이 때는 절을 하던 염불을 하던 잠시 입정을 하던 자기가 정해서 단 5분, 10분이라도 시간을 낸다.

중요한건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매일 자기 점검을 생활화 해야 한다.

만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도 힘들다면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좋다. 특히 밤에 잠자기 전에 하는

기도는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5. 주의사항
기도는 간절하게 하면 반드시 성취된다. 다시말해 영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에 어떤 힘의 실체가 있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미신이다.

앞에서 누차 말했거니와 나의 본래면목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 우주의 참모습은 원래 모든 공덕이

다 갖추어져 있으며 지금 있는 그대로가 다 부처님의 모습이다. 단지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삿된 견해를 세워 나다 너다 구분하고 분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도를 간절히 하여 절을 하던 염불을 하던 그것을 일심으로 하다보면 순간이나마

그런 분별을 놓게되고 본래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되므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성취 후에는 모든 존재 그 자체에 감사할 뿐, 다른 어떤 특정한 것에 공을 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무슨 힘든 일이 있을 때만 ‘부처님’하고 매달리고 그것이 해결되고 나면 한참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다가 또 힘들어지면 그제야 ‘아이고 부처님 살려주십시오’하지 말아야 한다. 좋고 나쁜 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저항하려하지 말고 모두 내가 지은 것이니 내가 다 감당해야겠다는 마음을 갖아야 할 것이다.

역경계는 그대로 공부의 재료가 되는 것이고 순경계에는 더욱 경계하여 나태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니

다만 기도를 통해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한다면 다른 수행과 마찬가지로 성불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훌륭한 나룻배가 될 것이다.

 

6. 기도의 공덕
앞에서 기도의 기능이 소원성취, 업장소멸, 자기점검이라고 했다.

이것들이 바로 기도의 공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는 수행자의 자세를 가다듬어주고,

이 힘으로 선업을 쌓고 악업을 멀리 여의게 하므로 계·율수행이 저절로 된다.

또 기도를 하다보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나로부터 일어난 것이었음을 알게되고

저절로 참회하고 용서하며 자비스런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업장이 소멸되며

얽히었던 인연을 녹여 순조롭게 풀어나간다. 이렇게 하는 중에 삼매가 깊어지고 삼매를 통해 지혜가

밝아지며 탐진치 삼독을 멀리 여의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맺음말
수행은 어렵지 않다. 또한 쉽지 않다. 오직 삶의 전부를 걸때에만 궁극의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삶을 건다는 것은 일상생활 24시간 전부가 수행의 시간이고 공간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떠난 수행은 없다. 수행을 어떤 특별한 장소와 시간 동안에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일부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일상생활이 수행이라고 하여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부처님도 한거정처하라 하였다. 틈나는 대로 수행처를 찾아

수행법을 익힐 것이며, 일상생활에서도 수행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일상생활과 단절된 깨달음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니 수행과 생활의 조화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거듭 당부하지만 어느 하나만을 높다하여 다른 것을 그르다 하지 말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시비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 제시된 수행법 외에도 더 많은 수행법들이 있으나 우선 이 글을 참고하면서 자기가 힘 닿는데로 힘써

실천하기 바란다. 여기에 대한 영명연수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대성께서는 대자대비하시어 마침내 호광(虛誑)히 베풀지 아니하시므로 팔만의 법문이 모두가 해탈법

아님이 없고, 일념의 미미한 선행이라 할지라도 낱낱히 진여로 나아가는 것이나, 다만 중생의 근기가

초심도 후심도 있어서 인(隨順忍)이나 법인(無生法忍)을 낼 따름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높은 것만을

집착하여 낮은 것을 배척하지 말 것이며 낮음으로서 높음을 시기하지 말고 모름지기 때를 알아서

스스로 근력을 헤아릴지니, 남의 좋고 나쁨을 평하여 억지로 시비를 세워서는 안되리라.

 

왜냐하면 말이란 재앙의 시초라 스스로 업장만 부르기 때문이다. 또 무생인을 얻은 보살로서 비록

아법(我法)의 이공(二空)을 증득하였으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간탐의 더러움을 파하고 오히려

소비(燒臂)하고 분신(焚身)도 하셨으니, 곧 약왕보살이나 승애와 같은 유(類)라. 그러나 만일 인을

갖추지 못한 이라면 비록 지혜의 불길로서 번뇌의 섶을 태우며, 이공(二空)을 요달하여 신견(身見)을

내지 않을 줄 안다 하더라도 혹 현행의 업장이 무거우면 상응함을 얻기 어려울 것이니, 부디 용맹심을

일으켜 진실행을 운용하며 부처님께 공양하여 은혜를 갗고 또한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여 자비를 행할 것이다.


조도의 문을 이루고자 한다면 희구(希求)의 생각을 일으키지 말지니, 다만 서로 속이지만 않는다면

일마다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려니와, 그렇지 않고 혹 지안이 밝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아집을 내거나

인과만을 구하거나 뜻이 귿세지 못해서 선배들의 자취를 본받기에도 의심을 내는 이들은 실로 날이

갈수록 도업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어지고 말 것이다. 대개 중생은 근기가 같지 않고 그해서 숭상하는

바도 각각이므로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만일 중생이 허망된 마음으로도 해탕을 얻을 수 있다

한다면 나도 또한 거짓말하는 사람이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므로 알라. 사(事)는 비록 천갈래로 벌어지나 이(理)는 마침내 한 근원으로 돌아가는지라 모두가

대자비의 선권방편이시니, 혹은 신명을 버림으로 해서 단박에 법인에 들며, 혹은 일심으로 선정을

수습해 밝게 무생을 깨닫기도 하며, 혹은 근본이 청정함을 요달하여 실상문을 증득키도 하며, 혹은

부정관을 지어 원리도(遠離道)에 오르기도 하며, 또 혹은 칠보방사에 앉은 채 성과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총간수하(塚間樹下)에 처한 채 열반에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만선동귀집> 제2장) 

 

기도(祈禱)  

'기도(祺禱)'란 다겁생에 지은 죄업과 현생에 길들여진 잘못된 가치관과 습관을 부수어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祈禱)란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원(願)을 세우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는 힘과 믿음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기도란 올바르게 살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신념과 불보살님의 가피력을입으려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의 방법은 스스로 원(願)을 세우고,

절, 염불, 독경, 간경, 사경, 주력, 정근 등을 하며, 일심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1) 염불(念佛): 부처님(또는 보살님)을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하는 수행법. 불보살님의 위덕을 생각하며

불보살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 예로부터 대표적인 것이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아미타불' 염불이 대표적이다.

이에, '석가모니불' 염물은 기본이고, '관세음보살' 염불, '지장보살' 염불, '약사여래불' 염불, '화엄신중' 염불도

열심히 한다.

 

* 염불의 종류ㄱ. 법신염불: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생각하는 염불
ㄴ. 관념염불: 부처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는 염불
ㄷ. 칭명염불: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염불 --> 흔히 쓰이는 염불. 

 

* 정근(精勤)

시시각각으로 흩어져 산만하고 안정되지 못한 마음을 한 생각으로 집중시켜 정성껏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을 생각하고 찬탄하는 '정근'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몸과

마음이 함께 가벼워지며, 무한히 맑고 밝아져 확고부동한 마음자리를 찾아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

정근(精勤)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쓴다는 뜻인데 보통 우리가 기도할 때에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명호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① 석가모니불 정근
나무 영산 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천상천하 무여불 시방세계 역무비
세간 소유 아진견 일체무유 여불자 (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아미타불 정근
나무 서방정토 극락 극락세계 무량수 여래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본심미묘 진언 (다냐타 옴 아리다리 사바하) 세번
계수서방 안락찰
접인중생 대도사
아금발원 원앙생
유원자비 애섭수 고아 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③ 관세음보살 정근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옴 아로륵계 사바하) 세 번
구족신통력 광수시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④ 지장보살 정근
나무 남방 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옴 바라마리다니사바하) 세 번
지장대성 위신력 항하사겁 설란진
견문첨례 일념간 이익인천 무량사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⑤ 화엄성중 정근
나무 금강 회상 화엄성중…
화엄성중 혜감명 사주인사 일념처
애민중생 여적자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⑥ 칠원성군 정근
나무 북두대성 칠원성군…
영통광대 혜감명 주재 공중 영무방
나열벽천 임찰토
주천인세 수산장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⑦ 산왕대신 정근
나무만덕고승 성개한적 산왕대신…
영산석일여래촉 위진강산도중생
만일백운청장리
운거학가 임한정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⑧ 나반존자 정근
나무천태산상 독수선정 나반존자…
나반신통세소희 행장현화임시위
송암은적 경천겁
생계잠형입사유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⑨ 조왕대신 정근
나무팔만사천 조왕대신…
향적주중상출납 호지불법역최마
인간유원 내성축
제병소재 강복다 고아일심 귀명정례(반배) <참회게>
원멸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죄업장 아금참회 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회향게>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2) 독경(讀經): 일심으로 소리내어 경을 외거나 읽는 것. 전경(轉經: 경을굴린다)이라고도 함.

(3) 간경(看經): 경전을 보고 마음속으로 읽는 수행법

(4) 사경(寫經): 경전을 서사(書寫), 즉 보고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일자일배(一字一拜)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반야심경, 금강경 등을 옮겨 적음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이 사경기도(寫經祈禱)이다. 

 

* 사경의 종류

- 시간에 따라:

1. 돈사경(頓寫經) - 경전을 하루에 다 쓰는 것.

2. 점사경(漸寫經) - 경전을 여러 날에 걸쳐 쓰는 것.

3. 일필경(一筆經) - 한 사람이 큰 경전을 다 쓴 것.

 

- 재료에 따라:

1. 묵서경(墨書經) - 먹으로 쓴 경전
2. 금자경(金字經) - 금가루로 쓴 경전, 금니사경이라고도 함.
3. 은자경(銀字經) - 은가루로 쓴 경전, 은니사경이라고도 함.
4. 수예경(手藝經) - 바늘로 수를 놓아 쓴 경전

5. 혈사경(血寫經) - 피로 쓴 것.

- 제본에 따라: 1. 권자본(卷子本) - 두루마리 형태
2. 절첩본(折帖本) - 병풍 형태
3. 선장본(線裝本) - 족보책 형태

 

(5) 주력(呪力): 불, 보살님의 명호나 진언(眞言)을 일념으로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1. 진언(眞言): 짧은 주문 = 만트라
2. 다라니(陀羅尼): 긴 주문= * 진언(다라니)에는 모든 공덕을 지니다는 '총지(總持)', 모든 잘못을 막는다

   '능차(能遮)'의 뜻을 가지고 있다.* 주력기도 진언으로 천수경의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과 신묘장구대다리니, 광명진언, 능엄신주 등이 이용된다.
 (6) 정근(精勤):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을 부지런히 염송(念誦)하며, 서원을 세우고 이루고자 하는

     의식으로 염불수행법 중의 하나로서 선법(善法)을 자라게 하고 마음의 악을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는 것.

 

6. 참회(懺悔)

‘참(懺)’은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앞으로 다가올 잘못을 미리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참회(懺悔)'란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과 교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아주 끊어,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의 표시이다. 이러한 참회를 통해 숙세의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란 안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오욕심(五欲心)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올바른 삶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변화에서 비롯된다. 가치관의 전환이나, 생활의 변화가 없는 참회는

허상에 불과하다. 참회에는 사참회(事懺悔)와 이참회(理懺悔)가 있다. 사참회는 매일 짓는 죄를 모두

참회하는 것이요, 이참회란 죄의 본성(本性)이 본래 공(空)하여 죄가 붙을 자리가 없음을 확실하게 깨닫는 것으로,

이것이 진정한 참회라 할 수 있다.사참(事懺)은 부처님께 절을 하거나 독경을 하거나 참회의 진언을 외우는 등

행위와 동작으로  참회하는 것이며, 이참(理懺)은 지은 죄의 실상을 깨달아 다시는 재범하지 않는 참회를 말한다.

 

* 포살(布薩)과 자자(自恣)  

- 참회는 일정시간에 관계없이 개인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면, 포살과 자자는 정기적이고

집단적으로 실시했으며, 이는 부처님 당사부터 행해졌던 참회의식이다.

 

1) 포살(布薩): 부처님 당시 보름과 그믐에 대중들이 한곳에 모여 계본(戒本)을 낭송하고 각자

                  반성과 참회를 하는 의식. 공동체 생활속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지

                  못했을 때에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대중앞에 드러내고 고백하는 발로참회(發露懺悔)를 말한다. 

 

2) 자자(自恣) : 스님들이 안거(安居)의 마지막 포살일에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대중생활 가운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범한 죄와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스스로 자진해서 동료들에게 청하고

                   지적받는 참회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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