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날? 동짓날!
우선 많은 분들이 헛갈려하는
맞춤법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동지+날’인데
‘동지날’인지 ‘동짓날’인지 잘 모르시겠죠?
정답은 바로 ‘동짓날’입니다.
사전 상에는 ‘동짓-날’로 나와있으며,
발음은 ‘동진날’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틀리지 말고 ‘동짓날’ 꼭 기억하세요~
애동지? 노동지?
동지의 종류
동지에도 종류가 있는데요..
애동지, 늦동지를 들어보셨나요?
전라남도에서는 아그동지, 소동지라고도 부르고..
경상북도와 강원도에서는 애기동지라고도 부른다고 해요.
노동지도 어른동지, 늦동지, 구동지, 노인동지, 종동지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양해요.
그렇다면, 왜 동지는 나누어 애동지, 노동지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동지가 애동지이면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이면 노인에게 좋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요?
애동지와 노동지의 이름의 유래는?
동지는 작은설이라 하여 동지에 한 살씩 먹게 되는데,
어린 애들은 빨리 나이를 먹는 것을 좋아하고,
노인들은 늦게 나이를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애동지, 노동지와 같은 풍습이 생겼다고 해요.
동지를 동지팥죽 먹는날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동짓날의 뜻은"겨울에 이르렀다”입니다.
원래 동지의 의미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것은
"음"이 극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동짓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양"의 기운이 싹트기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의 새해를 의미하는 날이 바로 동지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옛 사람들은 동지를 경사스러운 날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의 유래도
바로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기 때문이었네요.
재미있는 말로는,
동지가 날씨가 춥고 밤이 긴 날이기 때문에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해서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동지에는 그 동안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의미가 있었네요!
동지팥죽의 유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冬至)의
세시 풍속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동짓날을 아세(亞歲 작은설)라고 한다.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을 빚은 모퉁이 속에 꿀을 타서 이것을
시절음식으로 하여 젯상에도 오른다.또 팥죽을 문짝에 뿌려서 액운을 제거한다
형초세시기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국 진나라에 공공씨(共工氏)가 재주가 없는 아들을 한 명 두었다.
한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역질이란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
그 당시에는 역질이 마을에 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꼼짝없이 앓다가
죽어 버리니 공공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해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 아들은 생전에 팥을 몹시 두려워 했다. "공공"은 생전에 아들이 팥을
무서워 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쑤어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습니다. 그 날 이후로 역질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역질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물리친 것이라고 하였다.
유자휘(劉子翬)란
송나라 사람의 지일시(至日詩)에
두미엽승련(豆糜厭勝憐)이라고 했다.
두미(豆糜)는 콩죽 혹은 팥죽을 이르며..
승련(勝憐)은 역질 귀신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모두 중국의 형(荊ㆍ楚)지방의
풍속이 지금 우리의 풍속과 같은 것이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올린다.
이른바 황색으로 장식한 황장력(黃粧曆)과
백색으로 장식한 백장력(白粧曆)을
모든 관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또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옥쇄를 찍는다.
각 관청도 한몫 나누어 받게 된다. 각 관청의 아전까지도
친한 사람에게 두루 문안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조선의 아전들은 자신이 도맡아
직첩(職牒) 혹은 고신(告身)을 세 주어
벼슬한 관리로부터 그 벼슬에 취임하면
당참전(堂參錢)을 받는다.
이 때에 아전은 당참전을 받은 관원들에게는
청장력(靑粧曆) 한 권을 보내 준다.
까닭에 서울의 옛 풍속은
단오날의 부채를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 주고,
또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올린다.
이 풍속을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한다.
이렇게 받은 관원은 그 달력을 자신의 고향의
친지와 묘지기, 농로, 관리인 등에 나누어 준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관계(官桂), 후추, 설탕, 꿀 등을 쇠가죽에 섞고
이것을 기름에 얽히도록 만든다.
이 약을 전약(煎藥)이라 하여 진상을 하고
또 이것을 관청에서도 만들어 가진다.
우리나라에서 온 유래도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이야기 입니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하였습니다.
어느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여 쉬어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기 앞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종종 찾아와 내년에 벼를 심으라 하면
벼가 풍년이 들고,고추를 심으라 하여 고추를 심으면 고추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 년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에 닭이 울면
사라졌 습니다.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 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께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그 과객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비는 과객에게 물으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결국 선비는 자기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구석에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동안 친절했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선비는 건강이 다시 좋아졌지만 해마다 동짓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 젊은 선비는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색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 을 집에 뿌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끓이는 유래라고 하기도 합니다.
동지 팥죽의 유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벽사(辟邪)를 위하여 행하면서도
불교는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하여
붉은 팥죽을 쑤웠습니다.
이는 타종교에서 행했던 양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바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짓날이 되면 각 사찰에서는
팥죽을 끓여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합니다.
옛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받아들여 한 해를 잘 보내는 것에 대한
감사와 새해를 맞이하는 한 해의 소원을 기원하는 의미가 클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미 깊은 날은 부처님 전에 나아가 감사의기도를
올릴 수도 있고 소원을 빌 수도 있습니다.
동지는 예로부터 작은설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깊습니다.
그런 만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부처님전을 찾아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전통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지법회는 오랜 전통이 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동지법회를 열면서 옛 전통도 이으면서 불교의 자비정신을
실천하는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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