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19구간 - 화령재 - 봉황산 - 비재 - 갈령

by 범여(梵如) 2010. 3. 16.

산행일시: 2009년 4월 12일

산행코스: 화령재 - 봉황산 - 비재 - 못재 - 갈령삼거리 - 갈령 - 상오마을 

거리/시간: 15km/약 7시간소요

 

1주일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더웠다

날씨가 더우면 체력이 2배로 요구가 되고 식수를 4L이상이

소요가 되다보니 베낭무게가 만만찮았다. 거기다가 베낭 무게에

오른쪽 아픈 팔을 짓눌러오고 오늘 코스는 속리산 초입에 들어 가는

코스로 오르락 내리락이 엄청 많은 코스이다 보니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다

 

거기다가 산불통제 지역이 걸려서 약 7km 가까이 알바를 하다보니 너무

힘이 들었다.(공무원 나리에게 하고픈 말: 등산로 입구에서 입산통제를 해야지 

들어갈땐 그냥 두고 나오는 산꾼 단속을 하며 산꾼은 산에서 나오지 말란 얘긴가요)

화령재 - 봉황산 - 비재 - 갈령 코스인데 화령재에선 입산을 허용해 놓고선 갈령에

내려오는데 단속하는 바람에 쫒겨서 형제봉으로 해서 피앗재골로 내려오는 바람에

22km를 약 7시간에 걸려 하산했다. 그래도 하산길에 다리밑에서 홀라당 벗고 알탕한후에

속옷 갈아 입고 山友들과 이슬이 한잔 기울이며 즐기는 이 맛 알랑가 모르겠네

 

화령재에서 400m 지난 지방도 외딴집을 산행을 시작한다. 주위의 보리밭이 싱그럽기만 하다

화령(化寧)의 이름처럼 평온한 이 고갯길에서 이제 우리는 속세를 떠나 속리산으로 향해 갈 것이다.

비록 영원한 떠남은 아닐지라도 대간의 발걸음을 옮기는 날 만큼은 속세의 진토들을 털어버리고 싶은 것일게다.

지난 추풍령 이후의 착한 영혼들 곁을 떠나 이젠 봉황산을 시작으로 큰 오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시작부터 건조한 날씨 바람 한점없이 .... 

화령재에서 봉황산 오르는 길.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아 크게 힘든 코스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이 그러하듯 마루금상의 숲 들은 살아있는 기(生氣)와 뜨거운 濕氣를 머금고 있다.

花無十日紅이라 지난주까지 울님(?)처럼 곱디 고운 진달래는 벌써 지고

돌보는이 없이 사그라지는 대간길 어느 할머니의 무덤에서 겨우 힘겹게 고개 내민 할미꽃 한그루

가 봄볕이 너무 강해서인지..지나다니는 대간 할범들에게 부끄러운듯이 고갤 숙이고 피어있다.

같은 용혈(龍穴) 지맥에 영혼을 묻고나서도 후손들의 보살핌을 받을 복은 없었던 모양이다.

 

겨우내 바랜 빛의 나목(裸木)으로 우릴 맞아주던 참나무 가지 끝에서 새로운 싻을 움트이는 활기

를 느끼며 수북히 쌓인 솔잎을 밟으며 어린 시절 시골마을의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솔향내 연기를

맡아본다. 그 낙엽 아래서 파랗게 솟아오르는 봄을 느낀다. 생강나무 노란 꽃잎들도 제일 먼저 잘

생긴 산꾼들을 유혹하려 든다. 봄은 멀리 산너머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밟고 걸어온

언땅에서 그렇게 뚫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간능선 산불 감시초소 아래에서 바라본 경북 상주시 화서면소재지

한시간여의 부드러운 오름끝에 10분정도의 된 오름을 맛보고 안부에 올라서니 지키는 이

없는 산불감시초소가(580m) 덩그라니 홀로 서 있다.예전에는 외로운 아저씨 한 분이 있어 가끔

만나는 대간꾼들과 인사도 나누고 적은 먹거리로 정을 나누곤 했다는 선답자의 설명이다.아마도

속리산 입구 사대천왕 처럼 살아 있는 지킴이로 입산하는 중생들의 안녕을 빌어 주셨으리라...

암능길에 초반부터 체력은 소진되고

봉황산 정상(해발740.8m, 경북 상주 화서면 소재)

감시초소 옆을 지나 잠시 편한 8부능선을 거치고 나니 봉황산 머리가 보이는

지점에서 부터 꽤 된오름의 지그재그 능선길이 나타난다.

키작은 소나무와 관목들 사이로 다음주면 꽃피울 진달래  꽃망울들이 가늘은 가지

끝에서 지나쳐 가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어데선가 휭하니 두견새 날개짓으로 지난 겨울

먼저 떠난 진달래 친구가 노랠 부른다...

응어리진 가슴들도..작은 꿈들도...숱한 욕망들도..

그렇게 어느날 다 사라지면 진달래 꽃으로 태어나련만...

 

간만에 숨이 찰 정도의 빡샌 된오름을 30여분 짧게 맛본 후 올라선 봉황산 정상은

그 이름 만큼 화려하지도 넓지도 않아 일행들의 휴식을 만족하게 제공하진 못한다.

 

봉황상 정상은 길쭉한 공터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 표지석엔 '白頭大幹 鳳凰山 740.8m'라 적혀 있다.

 그리고 삼각점(관기? 303, 1980 재설)이 있으나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글자가 희미하여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영주 부석사 뒷산인 봉황산(819.9m)이 하도 유명하여 이곳의 봉황산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현지에서는 꽤 알려진 산이다.

 1300여 년 전 이 산에 봉황새가 찾아들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봉황산이 됐다고 하는데, 산의 생김새가 정상을 봉황새의

 머리라 하고, 양쪽으로 뻗은 봉우리들을 날개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그런 대로 봉황 같다고 할 수 있어서 그런 전설이

 배태된 것이라고 본다.  


  정상은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여 사방으로 시원하게 전망이 열려 있어서 북쪽으로 멀리 형제봉과 속리산 천황봉을 비롯한

 암릉들이 눈에 들어오고, 대궐터산의 암봉과 그 아래 극락정사가 가까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구병산(876.5m)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화서면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건너에 속리산 구간이 보이기 시작하고

비록 희미한 안개가 가려져 좋은 사진을 남기지는 못하나, 사방으로 트인 시야가 지나온

상주땅과 나아갈 속리산 남쪽 자락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으로 대궐터산이 제일 먼저 자릴잡고, 서쪽에는 구병산이 호위하듯 반겨준다.

가히 속리산 입구를 장식하는 첫 용오름으로서 손색이 없다.

 

북으로 곧은 내리막에서 제법 거친 기암릉 지대를 만나 조심스런 내림을 맛본다.

이제 육산의 부드러움에서 벗어나 점점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용혈의 단단함을 전해주는 듯하다.

대간 산행을 위해서가 아니면 일부러 오르는

명산도 아닌 곳에서 역진행의 산꾼을 두세명 만나니 참 반갑다.

두세번의 급한 내림길을 밟아 내린 후에야 459.9봉 안부에 다다른다

비재(320m)에서 - 이 고개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해서 飛鳥재라 했으나 최근에 와선 비재라 한다고 한다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에서 장자동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상의 고갯마루이다

이젠 봄이란 계절이 없어지려나 보나 벌써 초여름 날씨이니 말이다

510봉 급경사 된비알을 힘겹게 올라서니 구병산 아래로 펼쳐지는

비재 고갯길이 낭떠러지 같은 내림길 아래 한 줄을 긋고 있다.  

옆으로 번갈아 서며 게걸음을 걸어 급경사 내림길을 걸어 내려

철계단을 딛고 지난 구간에서 오른 기억이 아련하다 

"친구여, 가슴을 펴라, 하늘은 저기에 퍼렇게 있질 않은가.."  (신동엽)

속리산 자락 구병산을 배경으로

봉황산에서 비재로 내려선 다음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런 오름길은 갈령 삼거리까지 지속된다.

오늘처럼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은 山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眺望들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산을 신격인 堂山으로 삼아 제사를 올렸다는 이야기나 동네마다 산신당을 두고

산신을 섬겼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산은 우리 가슴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산은 세상살이를 배울 수 있다’는 교육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다.

산 넘어 산이다/산전수전 다 겪었다/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산보다 골이 더 크다/ 산에 가야 범을 잡지/

산은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 갈수록 태산이다/ 티끌모아 태산 …………등등

이런 말들은 수백 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민중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진리들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지혜들 가운데 상당수가 산을 통해서 투영된다는 의미이다.

산은 신성한 것인 동시에 우리의 스승인 셈이다.

 1주일 사이에 산엔 벌써 녹음이 우거지고

갈령 삼거리 약 1.7km 못 미쳐 특별한 곳을 만난다. 못재이다.

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유일한 고원 습지이다.

 

이 습지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못재의 맞은편에 솟은 대궐 터산에 성을 쌓은 견훤이 이곳 못재에서 목욕을 하여

힘을 얻어 세력을 넓혀 가자, 이를 알게 된 신라 장군 황충이 못에 소금 수백포를

풀어 견훤의 힘을 꺽었다는 것이다. 지렁이는 소금을 매우 싫어한다는 데 착안하여,

「삼국유사」에 “견훤은 지렁이의 자식”이라는 데에서 유래된 듯한 전설이다.

 

전설에서 눈에띄는 것은 ‘지렁이’ 와 ‘소금 뿌리기’ 이다.

지렁이 이야기는 왠지 혐오감은 주고 있으며, 연못(습지)에 소금을 뿌렸다는

이야기는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불유쾌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올까?

어쩌면 자연보호 혹은 생태계 보호를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마루금 상의 습지라면 각종 곤충의 집과 알,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 들이 서식할 것이다.

 

습지가 잘 보전되면 이들의 활동이 왕성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 인간과 공생할 수

있는 보다 나은 터전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가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아끼고 잘 보전하자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나온 속담들일게다.

특히 ‘썩은 나무를 땔감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속담은 다른 생물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썩은 나무는 다른 생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못재와 관련하여 혐오감을 주는 전설이 전해져 온 것은 인간들의 접근을 막아

이웃 생태계를 배려하기 위함이고 이는 나아가 우리 인간에게도 유익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다면 못재는 아주 소중하게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대간꾼들은 관심을 가지고 발걸음 하나 하나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할 장소다.

갈령가는 삼거리에서

낙랑장송은 누굴 기다리시나

산불 감시요원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고

갈령 삼거리에서 산불감시요원이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내려가지 못하고 숨어있다

이분들이 언제쯤 퇴근하려나 하고....

우열곡절 끝에 갈령을 찍고 오늘 마루금을 마무리하고

도로 옆에 있는 꽃이 너무 이쁘서리...

시골에 계시는 울 행님도 농사 준비로 바쁘시겠짓지 - 시골에 전화라도 함 해야겠네

너무나 정겨운 집이라 한컷 찰깍하고

한가하기만 한 시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