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淨土)와 예토(穢土)]
정토 세계는 중생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가?
정토란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는 세계란 뜻으로 불국토 또는 보살국토라고 한다.
그리고 예토, 즉 사바세계는 감인세계(堪忍世界),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 인계(忍界)라고
한역되어지고 있는데, 이는 탐욕 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에 의해서 이루어진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 약사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 아촉불의 동방묘희세계 등이
불국정토로 알려져 있고, 미륵보살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 등은 보살정토로 불려지고 있다.
이러한 불국정토는 이들 제불(諸佛)이 보살이었을 때 세운 원을 완성한 결과로 만들어진 국토인데,
사람들은 이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고 있 다. 이와 같은 불국토에 대하여 현실의 인간이 살고있는
세계나 번뇌를 맑은 눈으로 보았을 경우에 그대로 정토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이 있다.
이를 사바즉적광토(裟婆卽寂光土)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석가모 니불의 영산정토(靈山淨土)나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등이다. 이처럼 같은 정토라는 말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정토가 포함되어 있지만,
정토교가 성행한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정토의 세계는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를 나타내고 있다.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고 하면서, “깨달음을 성취하면 사바세계가
그대로 정토가 된다”고 설하고 있다.
[십육관법(十六觀法)]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수행법은 무엇인가?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십육관법은 부처님께서 친히 위제희 부인 앞에 나투시어 고통받은
위제희 부인을 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바른 수행법을 설하신 것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서방극락 세계를 관하는 방법으로 13가지의 관법을 설하시고 다시 3관을 설하셨다.
① 일상관(日想觀) :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정토의 존재와 아름다움, 자기 죄업을 관함.
② 수상관(水想觀) : 맑은 물을 보고 물을 변화시켜 유리와 같은 정토의 대지를 관함.
③ 보지관(寶地觀) : 유리와 대지 위에 있는 황금의 길, 누각 등을 관함.
④ 보수관(寶樹觀) : 정토에 있는 칠보의 나무와 그 나무로부터 나오는 광명을 관함.
⑤ 보지관(寶池觀) : 여덟 가지 공덕수가 충만한 칠보의 연못을 관하고, 그 물이 흘러 개울이 되고,
연화의 꽃이 피고, 흐르는 물소리는 무상 무아의 법을 설하고 있음을 관함.
⑥ 보루관(寶樓觀) : 정토의 칠보 누각에서 천인이 연주하는 음악이 모두 삼보를 염하도록 설하고 있음을 관함.
⑦ 화좌관(華座觀) : 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좌가 찬란하게 정토를 비추고 있음을 관함.
⑧ 상상관(像想觀) : 하나의 큰 연화 위에 빛이 찬란한 아미타불의 앉아 계신 모습을 관함.
⑨ 진신관(眞身觀) : 아미타불의 상호에서 광명이 비춰 중생을 섭수하고 계심을 관함.
⑩ 관음관(觀音觀) : 관세음보살의 몸이 광명으로 빛나는 영락을 두루고 있음을 관함.
⑪ 세지관(勢至觀) : 아미타불, 관음, 세지의 3존이 정토에 모여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며
고통받는 중생을 인도하시는 것을 관함.
⑫ 보관(普觀) : 불보살이 허공에 가득한 정토에 왕생한 것을 관함.
⑬ 잡상관(雜想觀) : 잡다한 불신을 관하는 것으로 정토의 보배 연못에 있는 불상이 시방세계에
몸을 변현시켜 여러 가지 몸으로 일체를 교화함을 관하는 것이고, 나머지
3관은 상품, 중품, 하품의 세 가지이 다. 이와 같은 13관에 의해 무량겁 동안
더럽혀진 생사의 죄를 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법장비구 48원]
염불로 극락정토에 왕생은 가능한가?
법장(法藏)이란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 보살 때의 이름을 말한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 은 본래 국왕으로서 발심 출가하여 호를 법장이라고 하였는데,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에게 큰 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그 결과 아미타불이 되어 지금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며, 항상 법을 설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법장보살이 수행할 때 발원한 서원을 특히 본원(本願)이라 하는데, ‘48원’으로 유명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섭법신원(攝法身願) : 모든 부처님이 보살 때 세운 본원 중에 불(佛) 스스로의 법신(法身)을
성취하기를 원함 48원 중 제12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 제13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
제17 제불칭양원(諸佛稱揚願)이 여기에 속한다.
② 섭정토원(攝淨土願) : 보살이 성불할 때에, ‘그 정토의 장엄은 이렇게 하고 싶다.’고 원함 48원 중
제 31 국토청정원(國土淸淨願), 제32 국토엄식원(國土嚴飾願)이 여기에 속한다.
③ 섭중생원(攝衆生願) : 모든 부처님이 보살 때 세운 본원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고 구제하려는 원
- 나머지 43원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48원을 세운 것은 널리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자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48원 중 18원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 : 아마타불의 제도를 믿고, 염불하는 중생은 반드시
서방극락 정토에 왕생케 하겠다는 서원)은 왕본원(王本願)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정토 신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세존이여, 제가 만일 깨달음을 얻은 후에 다른 온갖 세계에 태어난 이들이 이 최상의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저의 이름을 듣고, 지극한 신심으로서 저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이
임종의 시기가 닥칠 때 그 마음을 산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행하는 승려들이 저의 주변에 모여서 존 경하는 일이 없게 되고 제 앞에 서는 일이 없게 된다면, 그
동안에는 저는 이 최상의 바른 깨달음에 바로 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뒤의 구절은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그들이 깨달 음을 얻을 때까지 자신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며, 앞의 구절은 아미타불 자신을 믿는 사 람을 극락세계로 이끌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
자력과 타력은 별개의 수행인가?
난행도는 자력에 의하여 수행의 공을 쌓아서 이 세계에서 깨달음에 드는 길을 말하고,
이행도란 깨닫는 경계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 말은 “불법에는 무량한 문이 있고, 세간의 도리에는 어 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다.
보살의 도도 역시 같다. 혹은 근행정진(勤行精進)의 것이 있고, 혹은 신 방편(信方便)의 쉬운 행으로서
빨리 불퇴위(不退位)에 이르는 것도 있다”라고 말한 용수의 「이행품(易行品)」에서 기인한다.
중국의 담란(曇鸞)은 「왕생론주」에서 자력.타력이라는 말로 난행도와 이행도를 설명하고, 도작(道綽)의
「안락집」에서는 성도문과 정토문으로 나누었는데, 일본 정토종의 시조인 원공(源空)은 「선택집」에서
정토문을 타력이행도라 하고, 성도문을 자력난행도라고 하였다.
후에 이행도는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다고 하는 쉬운 일로써 불퇴위에 이르러 성불한다는 것에
쓰였는데, 특히 신(信) 뿐만 아니고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왕생성불(往生成佛)하는 것도
또 이행이라 하였다. 오늘날에는 정토교에서 아미타불의 타력본원(他力本願)에 의지하는 것을 이행도라 한다.
이와 같은 불교의 두 가지 실천 수행의 입장은 대립된 것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믿음이 결여된 학문 불교, 사변철학의 범주에 빠지게 되거나, 기복적
신앙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만 구제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대상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삼처전심(三處傳心)]
선법의 최초 전래 모습은 무엇인가?
선종상감(禪宗象鑑)에서는 ‘세존의 삼처전심은 선지(禪旨)가 되고, 일대소설(一代所說)은 교문(敎門)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삼처전심이란 선종에서 말하는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가섭에게 법을 전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첫째,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微笑)란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아무런 말도 없이
있을 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가섭만 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둘째,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란 부처 님께서 일찍이 가섭을 알아보고 다자탑 앞에서
자리의 반을 내주어 나누어 앉음을 말한다. 셋째, 곽시쌍부(槨示雙趺)란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가섭이 나중에 오니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밀어 마음을 전한 것 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볼 때, 문자나 언설을 내세우지 않는 선가에서는 가섭을 부처님의 법을
전수한 제1조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가섭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확 하는 제1결집을 주도하였다.
[일행삼매(一行三昧)]
일체 생활 가운데서 항상 직심(直心)을 행하라.
마음을 정(定)하고 하나의 행(行)에 전념하여 닦는 삼매로 천태가(天台家)에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의
4종삼매 중 행주와(行住臥)의 셋을 멎게 하고, 상좌(常坐)의 일행만으로 다른 것을 겸하지 않고 좌선입정하여
법계 평등의 이치를 관하는 것으로 상좌삼매라고도 한다.
일행삼매의 실천수행법은 특히 중국 선종의 제4조인 도신에 의해 중시되었는데,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신도의 보시만으로는 교단을 유지할 수 없어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작과 잡역에 종사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얻으려 하였고, 거기서 선을 체험적, 정신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입장은 마침내 선을 출가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개방하여 일상 생활에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선원 생활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형성하려는
기운이 나타나게 되었다.
『문수 설반야경』에 설하기를 ‘법계는 하나의 모양인데(法界一相), 법계에 계합함(繫緣法界)’이 일행삼매라고 하였다.
훗날 혜능은 ‘일체 생활 가운데서 항상 직심(直心)을 행하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정의 하였다.
[삼보(三寶)]
불교 신앙의 대상은 무엇인가?
삼보란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 불보, 법보, 승보를 말하는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위덕(威德)이 있는 최상의 것이며, 변하지 않음이 세간의 보배와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는 불교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 요소이기도 하다.
불보(佛寶)는 천상천하에 으뜸가는 참스승으 로서 깨달음을 성취한 모든 부처님, 즉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비롯하여 과거, 현재의 부처님뿐 아니라 앞으로 깨달음을 얻을 미래의 모든 부처님까지도 포함한다.
모든 법을 통달하여 세상을 비추어 보는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모든 법이 본래 평등하여 하나의
본바탕을 지니고 있음을 통찰하는 지혜인 평등성지(平等性智), 모든 중생의 업(業)과 근성(根性)을
빠짐없이 살펴보는 지혜인 묘관찰지(妙觀察智),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자유 자재한 방편의 지혜인
성소작지(成所作智) 등을 고루 갖추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救濟)해 주는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복덕이 원만하며, 모든 중생의 복밭이다. 법보(法寶)는 부처님 의 설법을 담아 놓은 경(經), 율(律),
논(論) 3장(藏)을 가리킨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탐욕과 집 착,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위없는 즐거움과 밝은 지혜를
얻게하며,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길잡이가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법보에 속한다.
승보(僧寶)는 부처님을 따르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서원한 제자의 집단을 말하는데, 승(僧)이란 승가(僧伽)를
줄인 말이다. 본래 산스크리트 어인 ‘상가’의 음역어인 승가는 ‘화합대중(和合大衆)’을 뜻한다.
승가는 4중(衆) 또는 7중 으로 분류된다. 4중이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을 말하며,
7중은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오와 우바이, 사미와 사미니, 식차마나 등을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비구와 비구니는 남녀 스님을 각각 말하며, 우바새, 우바이는 각각 남녀 재가(在家) 신자를 뜻한다.
7중 중에서 우바새와 우바이를 제외한 5 중은 모두 출가 수행자이다.
이와 같은 삼보는 불법승 삼보가 각각 독립적인 존재라고 보는 별상삼보(別相三寶), 의미상으로는
불법승이 각각 다르나 그 본질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동체삼보(同體三寶), 불상과 경전과 출가
비구로서 후세에 까지 불교를 계속해서 지키고 전승하게 한다는 주지삼보(住持三寶)의 해설법 등이 있다.
[삼신설(三身說)]
부처님이 나투신 여러 형상은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삼신설은 대승경론 상의 대표적인 불신관(佛身觀)으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을 말한다.
이 삼신설은 석존을 항시 대할 수 있었던 석존 재세 시의 제자들이나 그의 교법만을 따르던 불멸
직후의 제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깊은 사상으로 그들의 생각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어
부처님의 진면목을 찾고 부처님 교법의 원천을 찾으려 노력한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근본 당체 (當體)와 그 모습과 작용인 체ㆍ상ㆍ용(體 相 用)의 삼면으로 파악된 원융한 불신관이다.
법신(法身)이란 불타의 자성(自性)인 진여(眞如) 당체(當體)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우주 만유의 근본이 되며 질서와 조화를 이룩하는 말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生)도 떠나고
멸(滅)도 떠난, 그러나 생생히 약동하는 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를 여래의 몸으로 삼는 까닭은 진리는 만법의 실성(實性)이기 때문이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흔히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遮那佛)이라고 한다.
보신(報身)이란 위의 보이지 않는 진여 당체인 법신이 형태를 취하여 나타난 몸을 말한 것으로 곧
법신을 원 인으로 삼아 그 과보로 나타난 몸이기에 보신이라고 한다.
즉 과거 무량한 시간에 걸쳐 온갖 수행을 한 결과 모든 것이 진리와 하나가 된 채 만덕(萬德)이
원만하여 얻어진 몸으로서 진여 당체의 모든 참되고 아름답고 깨끗한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 몸을 말한다.
48원(願)을 성취하여 극락세계를 이룩한 아미타불 과도 같은 몸이며 또한 지상의 보살(초지 이상의 보살)에게
법락(法樂)을 수용시키는 부처님의 몸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통상 원만 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고 한다.
응신(應身)이란 자비와 지혜의 화용(化用)인 현실 세계에 나타난 석가모니불을 말하는 것으로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이를 제도하기 위해 갖가지 근기에 맞추어 갖가지 방편으로 나타난 역사적인
부처님 의 몸을 말한다. 즉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고 중생과 더불어
생존하시는 면에 서의 부처님의 몸으로 이를 보통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라고
하며, 과거칠불, 석가모니불, 미래의 미륵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칠불(過去七佛)]
과거칠불의 칠불통게(七佛通偈)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우주의 시간을 3대겁(三大劫)으로 나누어 과거의 대겁을 장엄겁(莊嚴劫),
현재의 대겁을 현겁(賢劫), 미래의 대겁을 성숙겁(星宿劫)이라 한다.
또 각 대겁은 20겁 동안씩 성립되고[成], 머물고 [住], 무너지고[壞], 비어 있는[空] 네 과정을 거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 기간 동안 1천명의 부 처가 탄생한다고 한다.
과거의 부처 시대로 갈수록 인간의 수명도 길어 첫 번째 부처인 비바시불이 출현 하였을 때의 인간수명은
8만 4천세이다. 불교에서 겁을 말할 때 인수(人壽) 8만 4천을 기준으로 삼는 연유이다.
과거칠불은 장엄겁에 나타난 비바시불(毘婆尸佛)ㆍ시기불(尸棄佛)ㆍ비사부불(毘舍浮佛)의 3 불과,
현재 현겁에 나타난 구류손불(拘留孫佛)ㆍ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ㆍ가섭불(迦葉佛)ㆍ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등의 네 분의 부처님을 합하여 일컫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불타는 석가모니 부처님 혼 자이지만, 불교 교리로는 진리를 깨달은 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현시대뿐만 아니라 과거는 물론 미래에 부처님이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칠불과 함께 현재불ㆍ
미래불의 사상이 더욱 비약적으로 발 전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은 본생담(本生譚)의 구도자 상과 어울려
보살 등 대승불교의 사상적 연원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 ‘비바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부처님은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똑같은 말을 하는데 이를 칠불통게(七佛通偈)라고 한다.
이 칠불통게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게송이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義)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부처님이 지닌 덕성은 무엇인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은 십팔불공불법(十八不共佛法)이라고도 하는데, 범부는 물론 아라한이나
벽지불 또는 보살과도 구별되는 부처님 독자의 법이라는 뜻으로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삼념주(三念住), 대비(大悲)의 열여덟 가지를 말한다.
여기서 십력이란 부처님은 일체를 깨달아 아는 열 가지 지혜 의 힘을 갖추어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며, 사무소외란 부처님이 설법함을 당하여 사자후를 토하되 네 가지 확신을 얻어,
어떤 이가 비난할지라도 일체 두려운 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삼념주란 부처님 께서는 항상
바른 마음에 머물러 중생들의 어떤 태도에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동요치 않음을 셋으로 나눈 것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의 일대 교화란 오로지 대비심(大悲心)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비가 부처님 특유의 덕이라 한 것이다.
경론상에는 위의 십력이나 사무소외 등을 구족한 여래는 사자후(獅子吼)로써 범륜(梵輪 : 法輪의 다른 이름)을
굴린다고 되어 있다. 이외에도 대승에서 말하는 십팔불공법은 다음과 같다.
① 제불신무실(諸佛身無失) : 부처님께선 무량한 아승지겁(阿僧祗劫) 이래로 지계(持戒)가 청정하여
몸에 아무런 오실(誤失)이 없다.
② 구무실(口無失) : 부처님께서는 무량한 아승지겁 이래로 지계가 청정하여 일체의 미묘한 지혜를 얻고
번뇌를 다 끊었기 때문에 고성(高聲) 대승(大乘) 등의 온갖 말씀에 있어서 조금도
오실(誤失)이 없이 중 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③ 념무실(念無失) : 부처님께서는 사념처(四念處) 등의 깊은 선정을 닦아 마음이 산란치 않으며 법에
집착하는 바 없이 항상 편안하다.
④ 무이상(無異想) : 부처님께서는 항상 일체중생을 분별치 않아 중생을 보되 자기 몸과 같이 하여
대비(大悲)로써 제도하되 멀고 가깝고 친하고 등의 차별이 조금도 없다.
⑤ 무불정심(無佛定心) : 부처님께서는 항상 선정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일상의 어떤 동작이건 간에 하나도
선정을 여읜 것이 없다.
⑥ 무불지이사(無佛知已捨) :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아는 바를 버리고 일체에 집착치
않아 적정(寂靜), 평등(平等)에 임한다.
⑦ 욕무감(欲無減) :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공덕을 구족하였으면서도 제법(諸法)에 있어서의 지욕(志欲)이
항상 쉼이 없다. 또는 부처님이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려는 뜻과 욕망에 조금도 덜함이 없다.
⑧ 정진무감(精進無減) : 부처님께서는 지욕(志欲)이 중장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편을 행하나 항상 쉼이 없다.
⑨ 념무감(念無減) :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지혜를 구족하고 중생을 제도하되 마음에 하나도 넉넉한 생각 이 없다.
⑩ 혜무감(慧無減) :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지혜를 얻고 또 삼세의 지혜가 하나도 장애가 없기 때문에
지혜에 있어서 아무런 잃음이나 덜함이 없다.
⑪ 해탈무감(解脫無減) :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에서 해탈함을 얻어 일체의 번뇌를 끊었으므로 아무런 잃음이나
덜함이 없다.
⑫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感) :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자신이 일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의
모습을 지견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다.
⑬ 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 :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하여 신업(身業)을 조작(造作)하되
먼저 득실(得失)을 관찰한 연후에 지혜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과실이 없다.
⑭ 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 : 구업을 조작함에도 먼저 득실을 관찰한 연후에 지혜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과실이 없다.
⑮ 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 : 의업을 조작함에도 먼저 득실을 관찰한 연후에 지혜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과실이 없다.
- 지혜지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過去世無碍無障) :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써 과거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다.
- 지혜지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未來世無碍無障) :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써 미래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다.
- 지혜지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現在世無碍無障) :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써 현재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다.
이는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가 부처님의 육신 상에 구족한 위덕(威德)이라 한다면,
십 팔불공법(十八不共法)은 정신상에 구족한 위덕(威德)이라 할 수 있다.
[여래십호(如來十號)]
부처님은 누구인가?
부처님께서 지닌 위덕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것에는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여래십호(如來十號),
육신상의 특징인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부처님만이 지니고 있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이 있다. 여래십호란 그 덕의 내용에 따라서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
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방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 佛世尊)을 말한다.
① 여래(如來) : 진리 그대로를 여(如)라 하고, 그것을 바로 깨친 이를 래(來)라 한다.
즉 여래란 진리에 도달한 사람[如去], 진리로부터 온 자[如來]란 뜻이다.
② 응공(應供) : 부처님이 행을 원만하게 이루고 복과 지혜가 구족해서 천상이나 인간세에서
존경을 받으며 능히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③ 정변지(正遍知) : 정변각(正遍覺), 정등각(正等覺), 정진도(正眞道)라고도 하는데,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알되 그대로의 그 모습대로 알며 일체의 법을 모두 다 알아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④ 명행족(明行足) : 천안(天眼), 과거세를 아는 숙명명(宿命明), 불교의 진리를 알아서 번뇌를 끊어없애
버릴 수 있는 누진명(漏盡明)의 삼명(三明)과 신구의(身口意)의 행업(行業)이 구족하여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계ㆍ정ㆍ혜(戒 定 慧)의 삼학(三學)에 의하여 무상정변지(無上正遍知)를 얻었 음을 의미한다.
⑤ 선서(善逝) : 어두운 세계를 초월해서 또다시 어리석은 세계에 돌아오지 않고 묘하게 간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삼매(三昧)와 무량한 지혜에 들어감을 말하는데, 즉 여실(如實)히 저 언덕에 가서 다시
생사고 해(生死苦海)에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한다.
⑥ 세간해(世間解) : 세간이나 출세간의 인과법에 의해 온갖 일을 다 아신다는 뜻이다.
⑦ 무상사(無上士) :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독존(獨尊)이라는 뜻이며 번뇌가 다 끊어지고 다시
끊을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열반법을 스스로 알고 남에게서 듣는 것이 아니므로
열반이 모 든 법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것처럼 부처님도 모든 이 가운데 위없이 가장 높은 이라는 뜻이다.
⑧ 조어장부(調御丈夫) : 여러 가지 법을 해설하여 일체중생을 조복(調伏)하고 제어해서 열반을 얻게하는
위대한 분을 말하는 것이다.
⑨ 천인사(天人師) : 천인사(天人師)는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천인교사(天人敎師)라고도 하며,
마땅히 할 것과 안 할 것, 선한 것과 선하지 않는 것을 보이고 이끌며 교(敎)에 따라 행하여 도법(道法)을
버리지 않고 해탈의 과(果)를 얻게 하는 천(天)과 인(人)의 스승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⑩ 불세존佛 世尊) : 불은 부처님, 또는 깨달은 사람이며, 불타(佛陀)의 준말로 각자(覺者)라고 번역한다.
스스로 깨달아서 다른 이를 깨닫게 하여 각행(覺行)이 원만하여 삼세일체제법(三世一切諸法)을 모두
아는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존(世尊)은 부처님께서는 온갖 공덕을 갖추어 세간을 이익케 하 며 세간에서 존중을
받기 때문에 세존이라고 하며 또 세간에서 가장 높다는 뜻에서 세존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불과 세존을 나누고 ⑦과 ⑧을 하나로 헤아리거나, 세존을 제외하고 여래십호라 하기도 하며,
여래를 총체적인 이름으로 하고 불과 세존을 구분하여 여래십호라 하기도 한다.
[삼계(三界)]
불교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삼계란 불교에서 유형.무형의 전체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삼유(三有)라고도 하는데, 욕계(欲界).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이다.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식욕, 음욕, 수면욕 등의 5욕이 강한 세계인데,
천상계와 천하계로 나눈다.
천상계는 육도 중의 천도(天道 : 6욕천-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천하계는
인도(人道), 수라, 축생, 아귀, 지옥 등을 말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욕계와 같은 탐욕은 벗어났으나
청정 미묘한 형체가 있는 세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초선천, 이선 천, 삼선천, 사선천의 사천이 있어 색계 사천이라 하며, 이를 세분하여 색계 18천이라
하기도 한다. 무색계는 색계와 같은 청정 미묘 한 형체는 없지만, 다만 정신적인 세계, 즉 수 상 행 식의
4온(四蘊)이 존재 하는 세계로서 아직 존재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
여기에는 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 처천, 비상비비상처천의 4천이 있다.
이러한 삼계는 세간(世間)이라고도 하는, 중생이 육도(六道)에 생사 유전하는 범부계(凡夫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출세간(出世間)은 생사윤회를 초월한 성자의 무루계 (無漏界)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삼계와 출세간이 구별되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무루계도 삼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한다.
[삼장(三藏)]
불교의 경전인 삼장이란 무엇인가?
삼장이란 불교 성전의 총칭으로 그 형식이나 내용에 따라 경장, 율장, 논장으로 분류된다.
경장(經藏)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것을 기록한 것으로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과 같이
‘경’자가 붙 은 것은 모두 이에 해당한다.
율장(律藏)은 교단의 관리 운영 등에 관한 규칙 집으로 부처님께서 제자들 이 수행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라는 법을 설하신 일종의 계율로 5계, 10중금계, 48경계, 250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논장(論藏)은 후대에 부처님의 설법이나 교리의 요점 등을 각 부파들이 해석한다든지 부연해서 기술한 것으로
「구사론」, 「대지도론」,「대승기신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삼장 중 경장, 율장은 부처님의 교설을 직접적으로 기술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저술의 체제성과 전통적 신념관에 의한 것일 뿐, 현존하는 경전과 율전 치고 부처님의
교설을 그대로 기술한 것 은 하나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부처님의 교설을 근본으로 하여 후세에 개인 또는 단체가 계획적이 거나 비계획적으로
부처님의 교설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편집한문서가 다름 아닌 경장이요 율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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