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부처님
석굴암 석가여래좌상
석불사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흰 화강석에 조각한 것으로,
높이 약 3.4미터, 석굴 중앙의 연화좌(蓮花座) 위에 부좌(趺坐)하였고,
수법이 정교하며 장중웅려(莊重雄麗)한 기상이 넘치는 매우 보기 드문 걸작이다.
얼굴과 어깨를 드러낸 옷의 주름에 생동감이 있어 불상 전체에 생명감이 넘친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가늘게 뜬 눈과, 엷은 미소를 띤 붉은 입술,
풍만한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모양은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으로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어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
즉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성도상 이라고 한다.
전실에서 바라본 석굴암, <사진; 문화재청>
전실에 팔부신중, 금강역사상, 좁아진 문 양 옆에는 사천왕상,
그리고 석굴 중앙에 본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경주 석굴암 석굴 (慶州 石窟庵 石窟)』
<경북 경주시 토함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한국 대표 석굴사찰.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
종목; 국보 제 24호 |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 1기 |
지정일; 1962. 12. 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불국로 873-243, 석굴암 (진현동) |
시대; 통일신라 | 소유자/관리자; 석굴암 | 누리집; http://www.sukgulam.org/
문화재관람료/주차비; 4,000원/2,000원 |
자료출처: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jcjkks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이하 석굴암으로 표기)이었습니다.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 석굴사찰로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 기법들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 24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본존불 (本尊佛), <사진; 문화재청>
【본존불】높이 총 높이 326㎝, 대좌 높이 160㎝, 기단 상대석 폭 272㎝의
거대한 불상.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얼굴 상은 안정감이 있으며 종교적인 숭고함을 띄고 있다.
우리가 뚜렷한 명칭 없이 본존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존재를 둘러싸고 불교학계와 고고미술사학계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본존 부처님이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불교계의 주장은 전통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고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황수영 박사의 아미타 부처님설은
7~8세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추정해서 당시 세워진 본존 부처님 대부분이
아미타 부처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두 학설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1998년 퇴임)로 재직 중이던 신현숙씨의 경전적 해석,
특히 석굴암 만다라설은 본존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일 가능성에 대해 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렇듯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빼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게 하는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동해를 바라다 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형태의 위엄 만큼이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통일신라 불교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본존불의 옆면, 앞면 그리고 뒷면(왼쪽 사진부터), <사진; 문화재청>
본존불과 석굴암 천정, <사진; 문화재청>
석굴암 석굴도, 평면도와 종단면도
경주 석굴암 석굴 안내문
【경주 석굴암 석굴 (석굴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삼층석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한편, 현재 석굴암은 내부 전면 공개 관람 시 항온항습 등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석굴암 관람 안내
석굴암의 옛 사진, (시계방향으로)
① 석굴암 일주문에서 바라본 동해,
맑은 날에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선명히 보인다.
그런 날에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② 석굴암 전경, 목조 전실을 만들어 놓아 석굴암 보존에 더욱 많은 문제가 생겼다.
③ 1910년경의 석굴암, 덮개는 그대로 있으나 광창 등 일부가 파괴된 모습이다.
④ 1913년 석굴암 해체 모습, 일제에 의해 완전히 해체·보수될 때
잘못 복원됨으로써 석굴암의 구조를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고,
보존에도 문제가 생겼다.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초판 1994, 개정판 23쇄 2012, 돌베개>
석굴암 전경, (시계방향으로) 석굴암 전실과 수광전, 수광전,
뒤에서 본 석굴암, 석굴암 내부(신라역사과학관 모형), <사진; 두산백과>
문수보살과 제석천(文殊菩薩과 帝釋天), <사진; 문화재청>
주실인 원굴에 들어서면 좌우의 천부상 다음에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안치된 부처님은 제석이며 그 반대쪽은 범천이다.
이 천부상은 모두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다 세련되고 우아한 작풍을 보인다.
천부상 다음으로 좌우 벽에 새겨진 보살상은 왼쪽이 문수, 오른쪽이 보현보살상이다.
문수보살상은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몸을 굴 안으로 향하였다.
보현보살상은 왼손에 경권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져 있다.
천부상과 더불어 이들 보살상은 석굴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사진; http://www.sukgulam.org/>
십일면 관음보살상은 바로 본존 부처님의 뒷면 둥근 벽의 중앙을 차지하고 똑바로 서있다.
그 어느 조각보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석굴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존 부처님 바로 뒤에 배치된 이 조각의 양식적 특성은
무엇보다 머리위에 작은 아홉개의 얼굴이 있고
그 위에 다시 한 관음이 있어서
본체와 합하여 십일면이 있는 관음 보살님이란 점이다.
긴 몸에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와 온몸을 덮고 흐르는 영락(纓珞)은
정교한 귀걸이나 목걸이 등과 더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팔부신중(八部神衆), <사진; http://www.sukgulam.org/>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 등으로도 부르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들의 상으로,
전실의 좌우 벽에 각 각 4구씩 배치되어 있다.
전실 입구 오른쪽부터 가루다·마후라가·야차·데바·
왼쪽은 아수라·긴나라·건달바·나가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사천왕상(四天王像), <사진; http://www.sukgulam.org/>
전시로가 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의 좌우벽에 배치.수미산의 사방을 관장한다는
천왕으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으로 부른다.
전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앞에 남방 증장천왕, 뒤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앞에 북방 다문천왕과 뒤쪽에 동방 지국천왕이 배열되어 있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감실보살상(龕室菩薩像), <사진; http://www.sukgulam.org/>
석굴 주벽상의 위쪽에는 남북과 동으로 각각 5개의 반구형 감실이 배치돼 있다.
석굴과 잘 조화되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 이 감실은
동시에 공간의 확대효과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대부분 보살상인 이 감불좌상은 본존불의 바로 전방과
그 후방인 십일면관음상의 상면만을 피하고 그 나머지 벽면에 배치되어
하늘과 땅과의 중간에서 이 석굴의 영광과 장엄을 찬미하고 환희하는 것 같다.
조각 또한 주위의 벽에 있는 다른 여러 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이다.
<사진; http://www.sukgulam.org/>
금강역사(金剛力士), <사진; http://www.sukgulam.org/>
석굴암 입구에서 주실로 들어가는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금강역사의 역동적인 자태는 이름 그대로 힘이 넘쳐 흐른다.
옷 매무시나 문양에서 보여지는 정교함은 다른 석굴암 조각물과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점이 있다.
두드러지게 양각이 강조된 것은 전반적으로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상신과 하신의 구분된 의상은 근육을 더욱 강조하고 현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조각물의 기법은 제작자의 의도와 일치한다.
석굴암 제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작자의 예술적인 감각과 작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10대제자(十大弟子), <사진; http://www.sukgulam.org/>
석굴 후벽 중앙에 십일면관음상을 안치하고 그 좌우에 곧이어서
각각 5구씩 나한(羅漢) 입상을 배치하였는데, 그 중 왼쪽에 있는 십대제자상이다.
석가여래의 제자 중에서 이름이 높은 수제자 10인을 말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 나한상은 동양에서도
첫째로 꼽을 만큼 훌륭한 부조상을 하고 있다.
십대제자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 얼굴의 다양한 표현이다.
긴 얼굴에 각기 다른 골상을 보이는 서구적인 모습의 이들 제자상은
모두 머리를 깎았으며 큰 코에 야윈 얼굴을 하고 있다.
자세 또한 정면 또는 측면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의상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경권, 향로, 정병 등 각기 손에 들고 있는 것에도 차별이 있어 여러가지의 특색을 보인다.
<출처; http://www.sukgul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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