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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十勝地

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마을 이야기

by 범여(梵如) 2015. 11. 6.

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마을

십승지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정감록>은 절대적인 경전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찾아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헤매었듯이 십승지를 찾아 헤매는 민초들의 발길도 수백년을 두고 끊이지를 않았다.

정감록은 민초들의 한 경전이고 십승지는 약속의 땅이며 정도령은 우리 민족의 구세주이자 메시아였다.


무능한 왕과 썩은 사대부, 지방 수령들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면서 죽지 못해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민중들한테,

타락한 세상이 끝나고 새롭고 위대한 지도자인 정도령이 나타나서 백성이 주인이 되는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한다는

정감록의 예언은 암흑 속에 비치는 한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정감록>은 풍수도참사상을 근거로 한 예언서다. 하늘의 별과 달, 산천의 기운을

살펴보면 하늘의 뜻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풍수도참사상이다.

인간의 길흉화복과 만물의 생장사멸이 산천의 기운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풍수도참사상의 기본 골격은 이렇다. 온 땅의 중심은 곤륜산인데 이곳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곳은 갖가지 기화이초로 뒤덮여 있으며

바위와 돌은 모두 옥이며 보석이다. 이곳에는 서왕모가 선녀들을 거느리고 사는 곳으로 지상에 있는 선경이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산은 곤륜산에서부터 뻗어 나간 것이다.

곤륜산맥의 한 맥이 서쪽으로 뻗은 것은 중동과 유럽쪽으로 갔고, 남쪽으로 뻗은 것은

중국으로 갔으며 동쪽으로 뻗은 것은 백두산에 와서 그 기운을 집결시켰다.
백두산은 곤륜산의 기운이 가장 크게 뭉쳐 있는 곳으로 우리 나라의 모든 산천의 아버지다.

백두산 꼭대기에는 천지가 있는데 이 연못 밑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으므로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 수승화강의 원리에 꼭 맞는, 만물이 서로 화합하고 생동하는 이상적인 삶의 터전이다.

백두산에서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 금강산을 솟구쳐 올리고 다시 남하하여 태백산에서

멈추었다가 서쪽으로 구부러져 속리산을 이루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지리산에서 멈추었다가

이렇게  이어진 멧줄기를 백두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백대간이 사방으로 크고 작은 가지를 뻗어 내려

온갖 산과 물을 만들어 내었으니 이가 곧 금수강산이다.
풍수도참사상에서는 땅의 기운은 하늘에서 받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람은 땅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본다.

하늘의 기운이 산을 뭉치고 흩어지게 하고 강물을 흐르게 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모든 만물을 생장하고 소멸케 하는 것이다.

 

<정감록>은 말한다. 하늘의 뜻과 산천 기운의 힘으로 무능하고 악한 세상은 망해서 없어지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 세계가 열린다. 이는 지금까지 없었던 위대한 혁명이고

이 혁명을 주도하는 이가 정도령이다.
말세에 세상은 더욱 혼탁해지고 정부는 썩을 대로 썩으며 관리들은 토색질만을 일삼게 된다.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계속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세상은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여기에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 같은 천재지변이 겹치고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세상이 멸망한다.

이 때에 깨어 있는 사람은 십승지를 들어가야 한다.

 

십승지는 전쟁과 기근, 천재지변으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한 때에 남해에서 한 진인이 출현하니 이가 곧 정도령이다. 정도령은 세상의 의인들을 모아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한다.

그 곳은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존귀하게 대접받는 세상,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불구자도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세계 곧 지상에 있는 천국이다. 이 천국과 같은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후천개벽이라고 한다.
십승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혼탁한 세상에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들어간 것만은 아니다.

정도령이 출현할 때 이들은 앞다투어 나와서 새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선다. 십승지지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숨어서 세상을 개혁할 힘을 기르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정감록 감결에서 십승지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곳은 소백산 두물 사이에 있는 풍기 수리바위(車岩)밑 금계마을(金鷄村)이다.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菴山水十勝保吉之地)>에는 많은 산 가운데 소백산이 으뜸이고 지리산이

그 다음이라고 하였다.

또 태백산과 소백산 남쪽에 있는 풍기와 영주는 산수의 기운이 잘 어울려 사람이 살기에 매우 좋은 곳이라고 적혔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옛날 술사 남사고(南師古)가 말을 타고 가다가 소백산을 보고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산을 향해

절을 하고는 ‘이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감탄하였다.’고 적혔으며, 아울러 비기(정감록)에 풍기에

 이 나라에서 첫째가는 피난처가 있다고 하였다.
풍기 금계마을은 십승지중에서도 최고의 복지다.

옛 술사나 선지자들은 이곳이 전쟁, 천재지변이 피해갈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꼽았다.

대혼란기에 목숨을 부지하고 세상을 개혁할 인재를 기르는데 가장 좋은 곳으로 점찍은 것이다.

 

금계촌은 지금의 영풍군 풍기읍 삼가리와 금계리, 욱금리 일대이다.

이곳은 소백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과 죽령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치는 곳으로 흙빛은

맑고 깨끗하며, 소백산과 소백산에서 뻗어 내린 얕으막한 산들이 사방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서쪽과 북쪽은 도솔봉에서 국망봉에 이르는 소백산 줄기가 병풍처럼 솟아 있고, 동쪽과 남쪽은

낮은 산줄기들이 겹겹으로 펼쳐져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혔으되 동쪽과 남쪽은 별로 높지 않은

구릉이어서 시야가 훤하게 트인 작은 분지다. 대개 이런 곳을 풍수 지리학에서는 살기가 가장

좋은 곳으로 꼽고 있는데 실제로 어떤 사람이든지 이곳에 오면 평온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금계촌 일대는 정감록을 믿고 십승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인 적이 없던 곳이다.

일제시대 말기인 1930년대에는 평안도 영변 덕천 등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떼를 지어 살았고,

그 뒤로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남쪽으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봇짐을 싸

들고 와서 골짜기마다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풍기 지방으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 평안도와 황해도 사람이 특히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정감록 비결 중에

 ‘황해도와 평안도는 다시 오랑캐 땅이 되어 사람의 그림자도 없어질 것’ 이라는 예언이 있기 때문인데

그 지역이 북한 땅인 것을 보면 그 예언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계 마을의 상징은 금계바위(金鷄岩)다.
금계바위는 풍기에서 삼가동(三街洞)을 거쳐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을 오르는

길목 오른쪽 산꼭대기에 있다. 두 개로 이루어진 큰 바위로 생김새가 수탉의 벼슬을 닮았다.
금계바위는 십승지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금계촌에서도 능히 1만 여명이 피난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성지로 숭배하는 곳이다.

금계바위 주변에 실제로 금이 많이 묻혀 있고, 금계 바위 자체에도 금이 많이 들어 있으며,

 또 닭의 눈알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영롱한 보석이 두 개 박혀 있었는데 어느 욕심 많은 사람이

그 보석을 뽑으려고 정과 망치를 들고 올라갔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금과 보석을 캐내려고 금계 바위 주변을 마구 파헤치고 바위를

깨부수어 원래의 모양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산에 나무가 많지 않아 장마철에

산사태가 여러 번 나서 산 모양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금계 바위는 정감록 감결에서 풍기 차암(車岩)이라고 기록된 바위다.

본디 수리 바위였던 것이 한자음으로 바꾸면서 차암이 됐다.

‘수리’는 옛날 경북 봉화 지방에 존재했다는 소라국과 같은 말이며 

솟대란 뜻이 되는데 솟대는 신이 깃든 바위(神岩)을 말한다.

여러 비결서에는 이 금계바위 주변이 능히 1만평 명이 피할 수 있는 성지로 기록되어 있다.

풍기에는 정감록 비결을 믿는 사람이 많이 이사와서 살던 곳이다.

일제 말기에는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말세가 문턱에 다가왔다고 믿었다.

그들은 정감록 비결에 적힌 ‘말세에 재앙을 피하여 십승지로 들어가라’고

한 대로 십승지의 으뜸인 풍기땅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풍기에 정착한 비결파들은 풍기읍에 직물 공장을 세워 크게 번성했다.

일제 말기 중앙성 철도가 뚫리면서 직조 산업은 크게 번성하여 한때는 풍기 읍내에

직물 공장이 80여군 데에 이르고 이 공장들에서 일하는 직공들이 2천명을 넘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 농촌이 피폐해지면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비결파의 자손들도 선조들이 애써 찾은 복지를 버리고 대부분 도시로 떠났다.

정감록 감결에는 이런 예언이 있다.

 ‘십승지에 먼저 들어간 이들은 모두 되돌아 나올 것이며, 중간에 들어간 사람은

거기서 번성할 것이고, 마지막에는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기에 십승지로 찾아 들어간 사람은 먼저 들어갔다가 나오는 경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풍기 금계 마을도 십승지로 완벽한 곳은 아니다.

 

감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왕의 수레가 풍기 남쪽으로 가면 약간 화가 미칠 것이다

’ 왕의 수레는 임금의 행차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쪽으로 피난한 일이 두 번 있다. 고려 때 홍건적이 침입하여 공민왕이

대구로 피난한 적이 있고 6.26전쟁때 수도를 부산으로 옮겼다.

풍기 지방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6.25때에는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소백산에서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으나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계마을 일대에는 지금도 비결파 노인이 여러 사람 살고 있다. 대개 그들은 자신이 정감록 비결을 믿고 들어왔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하며 정감록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도 꺼린다. 대개 비결파 사람들은 정감록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정감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정감록이란 책을 본적도 없다고 잡아뗀다.

 

금계마을에는 일제 말기에 정감록 비결파들이 40여호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죽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리고 2~3명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세상의 환난으로부터 목숨을 보존하고 정도령이 이끄는

새로운 세상의 일꾼이 되기를 꿈꾸었던 이상향의 땅에서 그들은 왜 그렇게 허무하게 살다 죽고 또 떠났을까.

감결에는 ‘후세에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자손을 깊이 감추어 둘 것이니라’고 적혔다.

또 ‘사람의 씨는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서 구하고 곡식의 씨는 삼풍(三豊)에서 구하라는 기록도 있다.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과 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에는 ‘경(經:감결을 뜻함)에 9년 흉년

끝에 곡식의 씨앗은 삼풍에서 구하고, 12년병란 끝에 사람의 씨앗(인재)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서 구

하라 이들이 바로 정도령의 백성들이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정감록 비결을 요약하면 장차 일어날 난리를 피해 들어가서 목숨을 부지하고 힘을 길러서

용감히 뛰쳐나와 후천개벽시대에 역성혁명에 참가하여 새로운 왕국 건설을 이룩할 일꾼을 양성하게

될 땅이 바로 풍기 금계촌이라는 뜻이다.
과연 금계촌은 최고의 복지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비결파들이 지금은 다죽고 떠났는가.

어떤 이들은 금계촌 안에서도 아직 정확하게 마을이며 집이 들어설 자리를 찾지 못하여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지금까지 십승지에 들어갈 시기가 이르지 않았고 앞으로 2~3년이 십승지로 피신해야 할

위험한 시기라고 한다.

 

풍기 금계촌 일대에는 무언가 평화롭고 아늑한 기운이 흐른다.

흙빛깔은 맑고 깨끗하여 생기가 넘치며 주변을 둘러싼 산들이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워 사람을 위압하거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결에서 두물 사이로

표현한 개울물이 이곳에서 만나 제법 넓은 들을 풍요롭게 적셔 준다.

풍기에서 인삼을 제일 먼저 재배한 곳이 금계마을 주변이다.

풍기 인삼은 금산인삼 못지 않게 약효가 빼어나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몸집이 굵고

색깔이 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풍기에 처음 인삼 재배를 권장한 사람은 조선 중종 때에 이곳에서 군수를 지냈던 신재 주세붕이었다.

소백산은 나라 안에서 산삼이 제일 많이 나는 곳 중의 하나로도 알려져 있는데 산삼이 수백포기 밭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이 소백산에서 수십년 동안 약초를 캐며 살아온 노인의 말이다.

 

풍수지리학에서는 도솔봉과 연화봉 사이의 죽령이 움푹 패여서 매서운 서북풍을 완전히 막아 주지

못하는 것이 십승지로는 흠이라고 한다. 풍수학에서는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가 움푹 들어간 것을

요풍(凹風)이라고 하여 흉하게 여긴다. 풍기에서 제일 좋은 복지라는 금계마을에서는 음푹패인 죽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정감록에서 십승지로 꼽는 곳은 대개가 교통이 불편한 오지이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오늘날로 치면 자연 환경이 파괴되거나 오염되지 않고 잘 보존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메시아 정도령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십승지는 텅텅 비어 있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소백산 남쪽의 조그만 마을인 금계마을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미래의 인재들의 곳간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