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9년 6월 17일
산행구간: 죽령-1286봉-삼형제봉-안부-도솔봉-묘적봉-묘적령-사동리
거리/시간: 마루금 8km와 날머리 8km 16km / 5시간
화려한 소백산 구간에 비해 죽령에서 저수령에 이르는 구간은 제대로 알려진 바 없다시피 한 외진 곳이다.
대간 능선의 왼편은 경북 영주시에서 예천군으로 이어지는 지역이고, 능선 오른편은 충북 단양 땅이다.
그런데 대간 자락은 대개 그 지역에서 가장 오지 중의 오지에 해당하는데다가 이곳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설고 색다른 곳이라서 호기심을 자극하여 오히려 산행의 흥미를 북돋우어 주기도 한다.
시간만 있어면 죽령주막에서 주모하고 막걸리 한사발 했어면 좋으련만
버스에서죽령 옛길에 내려서니 주막이 반겨주고 힘든 발걸음을 달래 줄 동동주를 한 잔 마실 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냥 오랫동안 죽치고 앉고 싶기도하다. 그러나 이제 산행시작이라 아쉽기만 하다
죽령(竹嶺:696m)
산행이 시작되는 죽령은 일명 ‘대재’라고도 하며,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국도 5호선이 지나는 해발 696m의 고갯마루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때 술종(述宗) 공이 삭주(지금의 춘천) 도독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한 스님이 고갯길을 닦고 있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술종 공의 꿈에 그 스님이 나타나고, 그 부인의 꿈에도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이에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더니 바로 그날 그 스님이 입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어서 부인에게 태기가 있어서 훗날 아들이 태어나니, 그 아이 이름을 죽지(竹旨)라
지었고, 그 아이가 그 스님의 환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 이름을 따라 그 고개를 죽지령이라
했던 것이 죽령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158년)에
죽죽(竹竹)이란 사람에 의해 고갯길이 열렸다고 하여 죽령이라 하게 됐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또 한 설은, ‘큰 고개’란 뜻의 ‘대(大)재’라 했던 것이 차음을 해서 대재(竹嶺)라 하던
것이 죽령이 됐다고도 한다. 어느 설이 옳은지 지금에 와서는 알 길이 없으나 이런 역사적
사실 이외에 동해안의 죽변과 더불어 죽령은 대나무 성장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이래저래 대나무과
관련이 깊은 모양이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에 죽령이 고구려와 신라의 중요한 국경 요충지여서 서로 차지하려고 충돌이
잦았으며,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가 먼저 차지했으나 진흥왕 때는 신라가 차지했다.
이에 유명한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을 회복하기 위해 출정하여 쌓았다는 온달산성
(사적 제264호)과 적성산성(사적 제266호) 등의 성터가 단양 지방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추풍령, 문경 새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관문이어서 고갯마루엔 객점과 마방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다. 이후에도 국도 5호선이 개설되어 교통량이 많았으나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이 뜸해졌다.
이곳은 국립공원이라 산꾼들이 많네- 부산 대구 의정부 우리까지 대간팀이 4팀이나 오늘 좀 산이
시끄럽겠구나 경상도 산꾼들은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시작부터 깔딱고개 맥이 빠지기 시작
산행 들머리는 죽령 정상에서 풍기 쪽의 오른편에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이다. 거기
이정표에 ‘도솔봉 6km, 사동 12.3km, 주정골 2km’라 적혀 있다.
산행을 시작하여 5분 정도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가면 첫 번째 119표지목
(소북 11-18)이 서 있다.
(오름길 샘터 옆 추모표지석)
맑은 샘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10년 젊음을 마시고 곁에 마련된 어느 산꾼의 영혼을
추모하는 벗들의 글귀를 읽어 본다..산을 좋아하다 백두대간의 품으로 돌아간 친구에게
편히 쉬라고...참 행복한 영혼으로 잠들겠구나...
죽령에서 오름길 된비알 산죽길에 마지막 봉우리는 군부대가 위치하여
왼쪽 사면으로 좌회하여 8부능선으로 이어진다..
쉼터에서 다시 10여분 올라가면 시멘트포장이 된 폐 헬기장이 있는 곳에 이른다.
이렇듯 이 일대에는 군사용인 듯한 헬기장이 계속 나타나며, 이 코스에는 꽤 많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 일대에 헬기장이 이처럼 많았던 걸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죽령은
군사전략상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인 것 같다.
이 푸르름에 찌든 도시의 고달픔을 다 잊어 버리고
산죽군락지대를 지나고1130 안부를 지날 무렵 꽤 큰 묘터를 지나며 그런대로 잘 보살펴진 느낌
이다. 지난 주 방문한 고향 선친의 묘소에서 잔디가 소담스레 펼쳐지고 주변 방문객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다는 형님 내외의 애쓴 보람에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다. 무덤이란 그 곳에 누워
있는 저승의 영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승에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질긴 인연을 맺어주는 좋
은 교훈이 될 수 있으리라...
흰봉산 삼거리에서 - 죽령에서 이곳까지해발 696m에서 해발 1230m까지 3.3km를 급경사로 치고
올라오는 코스이다보니 더운 날씨에 동료 산꾼들이 여기서 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헬기장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가면 잠깐 가풀막이 이어지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죽령에서 1시간 30분 정도 올라간 지점에 연달아 두 개의 119표지목을 지난다.
그리고 가파르게 조릿대 지역의 오르막을 올라가면 다시 119표지목(소북 11-12;과거 이 표지목에
해발 1,220m라 적혀 있었다)이 있고, 거기서 7~8분 올라간 지점의 이정표에 ‘죽령탐방지원센터
3.4km, 도솔봉 2.7km’라 적혀 있다.
삼형제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흰봉산(해발 1240m) -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삼형제봉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가야할 도솔봉의 뛰어난 자태가 눈앞에 있다.
압도적일 만큼 웅장하다. 그렇다고 해서 보는 이의 기를 꺽는 그런 기세는 아니다.
선답자들 대부분의 산행기에서 도솔봉의 위용을 찬양하고 있었는데 분명 거짓은 아닌 듯하다.
걸음을 재촉하여 도솔봉에 올라선다. 도솔봉에서 볼 수 있는 조망 또한 대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광경이다. 과연 부처가 되기 전 잠시 머무를 만한 곳이다.
멀리 운무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소백산 천문대
이어지는 풍광들로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꽤 멀어져 조용한 홀로 산행을 맛보며 가파른 삼형제봉
을 오르기 시작한다. 더욱 푸르고 짙어지는 이 풍요로움을 모든 이 땅의 영혼들이 한껏 누리며
고산 준령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니, 무릇 善이란 내 하나의 이로움
보다는 주변 모두의 共同善으로 태어날 때 그 본질을 아름답다고 하겠지...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을 오른쪽으로 하염없이 걸어 오르니 삼형제는 간 곳이 없고 멀리 죽령고
개 넘어 소백산 연화봉에 자릴 잡은 천문대가 구름을 벗은 채 마주보며 오라 손짓한다.
그래 다음주에 찾으리다.
좁은 고스락에 삼형제를 기념할 표지석을 세울 자리도 없을만 하여 소나무에 예
쁘게 매달아 놓은 명찰로 대신한다. 다시금 윗쪽으로 올라서서 1286봉으로 향하는 안부
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즐긴다
도솔봉 정상(해발 1314.2m)에서- (注:도솔이란 하늘의 內院으로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주석하고 계시는 곳으로 5억6천 7백만년 후에 인간사에 올 미륵부처가 설법하고 계시는 곳)
형제봉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가야할 도솔봉의 뛰어난 자태가 눈앞에 있다.
압도적일 만큼 웅장하다. 그렇다고 해서 보는 이의 기를 꺽는 그런 기세는 아니다.
선답자들 대부분의 산행기에서 도솔봉의 위용을 찬양하고 있었는데 분명 거짓은 아닌 듯하다.
걸음을 재촉하여 도솔봉에 올라선다. 도솔봉에서 볼 수 있는 조망 또한
대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광경이다. 과연 부처가 되기 전 잠시 머무를 만한 곳이다.
도솔봉 정상 기원탑 앞에서 선 범여 나를 아는 모든 인연이 있는 분들에게 우짜든지 존일만 있기를...
도솔봉으로 으로 향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짙은 안개가 산 전체를 뒤덮는다.
진행하다가 자주 멈추어선다.
혹시나 하늘이 다시 열려 도솔봉을 한번 더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도솔봉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면 속인들의 눈에 도솔천은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솔봉은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따로 떼 내어 독립된 산으로 해도 국내 명산 대열에 끼일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암릉과 조망이 국내 어느 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지고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산이다.
그래서 도솔천과 같다고 하여 도솔봉이란 멋진 이름이 붙여진 것이리다.
도솔천(兜率天)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불국토의 세계를 의미한다. 마치 기독교에서 천당이나 천국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도솔천은 부처가 되기 전의 보살들이 사는 곳이어서 석가모니도 보살일 당시
도솔천에 머물렀고, 도솔천에서 수행을 하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면서 지상에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산행 시작 2시간 이 높은 산에 바람한점 없이 습도가 높아 벌써부터 체력저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물에 소금을 조금씩 타서 먹기 시작하고...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기는 이르다. 이럴 때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도솔봉을 묘사한 선답자의 산행기이다.
그것도 대간을 시작한 후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해질 무렵의 도솔봉 모습이다.
“도솔봉에 저녁 노을이 걸린다. 놓기도 전에 먼저 빼앗긴 나의 넋
이미 내 것이 아닌 나의 넋 또한 저 노을 한 귀퉁이에서 수줍게 물든다.
어린 왕자의 나라였다면 자리만 조금씩 옮겨도
오래도록 노을을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시간은 오차가 없고 인간의 보폭은 턱없이 짧다”
선답자 윤제학의 표현이다. 기존 선답자들의 산행기 가운데 최고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산이 만들어 가는 풍광에 취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답자가 만든 산행기에 취한다고도 하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가 보다.
바로 대리 체험의 희열이다.
傲慢(오만)을 무릎 쓰고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사물은 알고 대할 때 더욱 애정이 간다‘는 것을.
대간은 이렇듯 하루도 쉬어가지 않고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도솔봉 하산길에서 바라본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모습
묘적봉(妙積峰:1148m)정상에서
도솔봉에서 묘적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바위 길로 시작이 되고, 이어서 급한 나무계단 길로 내려간다.
그리하여 30여분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20여분 올라가면 묘적봉(1,148m)에 닿는다.
도솔봉에서 50여분 걸린다.
묘적봉은 바위가 몇 개 있는 옹색한 봉우리이고, 작은 바위엔 정상을 표시하는 동판이 붙어 있다.
과거 묘적봉은 시야가 열려 있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수목이 자라서 겨우 나뭇가지 사이로 주변이 보일
정도며, 바로 아래 전망대에 서면 풍기 시가지와 중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한자로 ‘妙積峰’이라고 쓰고 있지만 이 건 잘못된 것 같다. 묘적봉이 바로 아래 사동리와 연관이
있고, 사동리는 원래 묘적사(妙寂寺)란 절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아득한
자취 묘하게도 고요하니(佛杳跡妙寂)’라고 하듯이 묘적(妙寂)이라 하여 고요 적(寂)자를 쓰고
있으므로 이래저래 ‘妙寂峰’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 ‘妙積峰’이라 잘못 쓰고 있는 것 같다.
산을 걸으면서 앞만보고 가지말고 가끔 뒤를 돌아다보라 왜냐고요 꼭 우리가 사는 인생사와 같기에...
조금전 내가 지나온 도솔봉 정상에서 바라본 삼형제봉(해발 1261m)
묘적령(妙積嶺:해발 1015m)에서
묘적봉을 출발하면 완만한 내리막이 10여분간 이어지고, 이후 15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 묘적령에
이르고, 산행기점인 죽령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묘적령 이정표엔 ‘저수령 10.7km, 죽령탐방지원센터 8.8km, 도솔봉 2.6km, 사동리(절골) 3.7km’라
적혀 있어서 죽령에서 저수령까지 19.5km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남행일 경우에는 삼형제봉과
도솔봉을 올라가는 오르막이 심해서 묘적령이 산행시간 상으로는 죽령과 저수령의 중간지점 정도가 된다.
묘적령까지가 소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되며, 묘적령엔 이 구간의 마지막 119표지목(소북 11-01)이
서 있고, 묘적령에서 북쪽으로 사동리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며, 묘적령은 옛날엔 죽령과 더불어
경상도 풍기와 충청도 단양을 이어주던 주요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하산길에 계곡에서 션한물로 알탕을 하니 그래도 좀 낫다. 힘들어도 이 맛에 산을 타는거 아닌감
묘적봉에서절골내려가는 길은 엄청난 경사도에 미끄럽기 그지없다. 단양군에서 로프를 설치해놓긴
했지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될정도이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이젠 너덜길이지만 관리는
참으로 잘되어 있는 편이다
오늘은 너무도 지친다. 팬티까지 땀으로 범벅되어 걸어가기가 넘 힘들다. 바람 한점 없는 산. 거기다가 주민들이
마을 앞길을 통제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날머리 구간이 4km나 더 늘어나 산꾼들을 힘들게하고....
곱게핀 산나리도 보이기 시작하고
하산지점에 한우도 대간 산꾼들을 격려하고
사동리를 외호하는 성황당
하산지점인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에서
사동리는 옛날에 묘적사(妙寂寺)란 큰 절이 있었던 곳이어서 사동리(寺洞里)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동리는 으슥한 곳이어서 구한말 일제 침략에 맞서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던 곳이기도 했다.
작년 12월부터 매주 백두대간을 타기 시작한 지 어언 7개월 처음엔 멋도 모르고 탓고
두번짼 산이 좋아 탓고 세번짼 산에 미쳐서 산을 탓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백두대간에 미쳐서
산행을 한지가 벌써 총47코스중 24번째다. 행사땜에 3번 빠진건 내년에 숙제 하기로하고
가정을 버리고 부처를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왜 힘든 산에 이렇게 미치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느 산이든 힘이들지 않은 산이 있겠냐마는 오늘은 너무 힘이든다
이 높은 산에 바람한 점 없는게 이해가 안된다
죽령에서 흰둥산 삼거리까지 고도 600에서 1250까지의 급경사 3.3km를 1시간30분에
치고 올라와보니 거기서 완전히 맛이가 버리고 죄없는 물만 벌컥벌컥...
죽령-1286봉-삼형제봉-안부-도솔봉-묘적봉-묘적령-사동리 코스로 경북 영주에서 시작하여
충북 단양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마루금 8km와 날머리 8km 16km를 5시간에 완주
코스는 육산에다 암릉이 있긴하지만 대간꾼들에겐 좀 쉬운 산으로 여겨지고
원래 날머리는 4km였는데 사동리 주민들이 대형차량을 통제하는 바람에
퇴악볓에 4km를 더 걸어야 하는 고역을 치렀다.
그래도 해뇃다는 자부심 하나로 산하고 연애한다
산하고 연애하는 이 기분. 산만큼 고분고분한 애인은 없는카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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