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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불교 공부

불교 계율(戒律) ...(2)

by 범여(梵如) 2016. 4. 29.

나. 대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보살이 수행하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의 하나가 되어 보다 적극적인 수행덕목으로 발전되었으며,

일체의 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로 구분하였다.

 

* 삼취정계(三聚淨戒) 

㈎ 섭율의계(攝律義戒) … 계율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곧, 5계·10계·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義) 등을 통한 윤리기준이다.

㈏ 섭선법계(攝善法戒) … 금계(禁戒)로써 만족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이타(利他)적인 선행을 닦아 가는 것이다.

   곧, 선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총섭(總攝)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원칙이다.

㈐ 섭중생계(攝衆生戒) … 궁극적으로 중생을 보살로, 그리고 부처로 성취시켜 불국토를 실현하는 것이다.

   곧,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원칙에 따르는 윤리기준이다.

 

 ※ 이것에 대하여 원효대사는,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면 오로지 自利行만 있는 것이 되어

    이승(二乘)에 머물 뿐이며, 섭중생계만 있다면 이타행(利他行)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 보리(菩提)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 없다. 삼취정계를 다 갖추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서,

    이 삼취정계야말로 불사약인 감로(甘露)이다. 따라서 섭율의계는 단(斷)의 덕목이고, 섭선법계는 지(智)의 덕목이며,

    섭중생계는 은(恩)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三德)의 과(果)를 얻으면 그것이 바로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다." 라고 하였다.

 

보살사섭법(菩薩四攝法)

  '보리살타'라는 용어를 각유정(覺有情)·개사(開士)·대사(大士)·고사(高士)·대심중생(大心衆生)·시사(始士) 등으로 번역하는데

   일반적으로 줄여서 '보살'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보리[菩提: Bodhi]'는 깨달음을 뜻하고 '살타[薩陀: Sattva]'는 중생[有情]을

   뜻하므로, 곧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또는 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보살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아라한이 열반을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간[有爲法]과 열반[無爲法]을 분별하여

 이 중에서 열반을 구하는 것이 아라한의 수행이므로 그것은 자연히 출세간적인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살은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나[我]와 남[他] 등의 모든 분별을 떠나 평등한 수행을 할 뿐 아니라

 궁극적인 경계를 얻는 일도없다. 따라서 보살의 수행은 아라한과는 달리 중생계에 회향(廻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보살이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커다란 서원을 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중생이 깨끗하다.

마치 화가가 하얀 바탕 위에 여러 가지 채색으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마음도 오온(五蘊)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생사에 묶이고 오온에 대한 여실지(如實知)로 해탈을 얻는다."라고 설하셨듯이, 분별망집(分別妄執)을 못버려

소승을 행하는가 하면 분별망집을 떠나 대승을 행하고, 깨달음을 못 열어 어두운 중생인가 하면 깨달음을 열어 위대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화엄경』에서는 "중생과 마음과 부처의 셋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설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성불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어서 이것을 불성(佛性)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불성은 지옥에서 천상에 이르는 중생에게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一切衆生悉有佛性)"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성이 있다고 해서 깨달음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생의 죄장(罪障)도 또한 무한히 두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생은 중생으로서 남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심한 경우에는 불성을 갖고 있다는 말조차 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므로 부처께서 먼저 중생의 마음을 정화하는 삼승(三乘)을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물론이고 성문도 연각도 모두 보살의 길 속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즉, 누구라도 삼보에 귀의하고 염불이라도 한 번 하는 순간 모두 이미 보살의 길 속에 들어서 있는 것이어서,

심지어는 『법화경(妙法蓮華經)』에서는 "장난으로 불탑이나 불화를 그리거나, 산란한 마음으로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하고서도 모두가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고 설하고 있다.

 

사섭법(四攝法)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네 가지 기본행위를 말하며, 이것을 '사섭사(四攝事)'·'사섭(四攝)'이라고도 한다.

㈎ 보시섭(布施攝) … 중생이 재물을 구하거나 진리를 구할 때 힘 닿는대로 베풀어주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친애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중생을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 애어섭(愛語攝) … 중생을 불교의 진리 속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친애하는 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보살은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중생을 대한다.

㈐ 이행섭(利行攝) … 몸과 말과 생각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 되고 보람된 선행을 베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道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 동사섭(同事攝) … 보살이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하고 화복(禍福)을 같이 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실천행(實踐行)을 말한다. 이 '동사섭'은 보살의 동체배비심(同體大悲心)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을 자연스럽게 교화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섭법 가운데 가장 지고(至高)한 행(行)이다.

   왜냐하면 보시·애어·이행 등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사섭'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⑸ 여러가지 계명(戒名)

비구·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구족계(具足戒)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바라이[波羅夷: P r jik ] … 계율 가운데 가장 엄하게 제지한 것을 말하는데, 이는 형법(刑法)에서의 사형(死刑)과

   같은 것으로 이 계를 범하면 바라이죄[波羅夷罪] 비구·비구니의 자격을 상실하고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비구(比丘)에는 다음 항에서 나오는 네 가지가 있어서 '4바라이'라고 하고, 비구니에게는 여기에 '마촉(摩觸)'

 ·'팔사성중(八事成重)'·'복장타중죄(覆障他重罪)'·'수순피거비구(隨順被擧比丘)' 등의 네 가지를 더하여 '8바라이'가 된다.

 

② 승잔[僧殘: Sa gh va e a / 僧伽婆尸沙] … 바라이 다음가는 중죄로, 승려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러 스님들에게 참회하여 허락을 받으면 구함을 받을 수 있다.  

  비구에게는 13승잔이 비구니에게는 17승잔이 있다.

 

③ 부정[不定: Aniyata] … 이것은 비구에게만 있는 항목으로, 참으로 죄를 범하였는지     

   범하지 않았는지 또 설사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무슨 계를 범하였는지 확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병처부정계(屛處不定戒) ― 어두운 곳이나, 으슥한 곳이나, 다른 이가 보고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계를 범하지 않는 것.

노처부정계(露處不定戒) ― 어두운 곳이나 으슥한 곳이 아니면서도 남이 보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계를 범하지 않는 것.

 

④ 사타[捨墮: Nai sargikap yattika / 尼薩耆波逸提] … 여기에 포함되는 30가지는 비구·비구니가 모두 같으며,

   이는 모두 옷이나 발우(鉢盂) 등의 재물로 말미암아 범계(犯戒)의 동기가 된다. 승단(僧團)의 대중 앞에 나가

  참회하여야 되며 만일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삼악취, 三惡趣]에 떨어진다고 한다.

 

⑤ 단타[單墮: P yattika / 波逸提] … 물질과는 관계가 없는 언어·행동·마음가짐 등의 생활규범을 토대로 한 것으로

   곧, 집착심 및 번뇌에 대한 죄이다. 이 죄를 범한 자는 즉시 세 명의 스님께 참회하여야 하는데, 비구에게는 90(또는 92)

   가지가 있고 비구니에게는 178가지가 있다.

 

⑥ 회과[悔過: Pratidesaniya] … 이는 '타인에게 고백해야 할'이라는 의미로, 이 죄를 범하였을 때는 한 스님에게만

   참회하면 그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걸식에 관련된 것으로, 비구에게는 4가지가 있고 비구니에게는 8가지가 있다.

 

⑦ 중학[衆學: Sik a-kara  ] … 비구나 비구니에게 모두 75가지가 있는데, 이는 罪名 이라기 보다 식사의 방법, 설법의 방식,

   在家와 가까이 할 때의 주의 등 허다하게 배워야 할 위의작법(威儀作法)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에 게합(契合)되지않는

   행위를 하면 돌길라[突吉羅, Du k ta]죄가 되며, 이것을 고의로 범한 때에는 상좌(上座) 스님께 참회하여야 하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에 참회하면 된다.

 

⑧ 멸쟁[滅諍: Apt dhikara-Samath ] … 이는 죄명이라기 보다는 승단중에 일어나려고 하거나 이미 일어난

   분쟁(紛諍)을 없애는 일곱 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⑹ 사바라이와 그 작지계적(作持戒的) 해석

 

 '바라이[波羅夷, P r jik ]'란 계율 가운데 가장 엄하게 제지한 것을 말하는데, '사바라이(四波羅夷)'란 승려로서

  지켜야 하는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말한다. 이는 형법에서의 사형(死刑)과 같은 것으로 이 계를 범하면

  승려의 자격을 상실하고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계율이란 불교도들의 그릇된 생활을 예방하고 악한 마음을 방지하려는 뜻으로 원래 금지적인 '지지계(止持戒)[止諸惡門]'이지만,

 율서(律書)의 후반에 오면 권장하는 의미의 '작지계(作持戒)[作諸善門]'로 바뀌고 있다. 이것은 계율의 목적이 악의 생활에서

 벗어난 수도의 목적이 되는 해탈에 향한 것이기 때문이며, 표면적으로는 금지적 조항을 주로 하여 소극적 입장을 보이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수도의 착한 일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율에는 〈작지계〉·〈지지계〉의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 '사바라이'를 작지계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음계(大淫戒)[불사음(不邪淫)]…[범행(梵行)] 성욕(性慾)은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며 만물생성의 근원으로서 참기도

   개방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근기(根機)를 살피고 분수를 잃지 않도록 하며, '梵行'의 생활을 영위하여

   불법(佛法)의 고귀함이 더욱 고귀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② 대도계(大盜戒)[불투도(不偸盜)]…[보시(布施)]수행자들로 하여금 '지족심(知足心)'을 심어 주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구구한 형색으로 코밑에 숨 떨어지면 한 줌의 재가 될 이 몸을 위하여 남의 가슴을 조이고 애타게 하는 일없이,

   남을 위해 베풀어 줄 수 있는 '보시'의 생활로서 안온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③ 대살계(大殺戒)[불살생(不殺生)]…[방생(放生)] '억지제계(抑止制戒)'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탐자생(不貪慈生)'에

   그 본원(本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죽어도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니며 생(生)은 업(業)에 의해 받는 것이므로,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 라도 그 생명의 존귀함을 잘 알고 '죽이지 않는 것'에 앞서 '죽는 것을 살려주는' 마음인 '방생(放生)'의

  생활로서 자비심(慈悲心)이 충만한 사회를 이루자는 것이다.

 

④ 대망어계(大妄語戒)[불망어(不妄語)]…[성실어(誠實語)]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알고 보았다며 무지(無知)의

   중생들을 현혹하고 공포케 하지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성실어(誠實語)'로써 상대방을 대함으로서

   밝고 명랑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⑺ 계율과 관계된 여러 가지 의식

 

① 포살[布薩: Uposatha] … [정주(淨住)]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매달 1일과 15일의 이틀동안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불교도들이 한 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들을 함께 외우면서 그 하나 하나에 대해 범한 일이 없는가를

   각자 반성하는 모임을 말한다. 만약 그동안 한 가지라도 계율을 어긴 사실이 있다면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해야 하였다.

 

② 안거[安居, Var a] … 출가한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 남방불교에서는 여름 한차례만

    안거를 행하는데, 북방불교에서는 여름 3개월동안 행하는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16일∼7월15일]와 겨울 3개월 동안

    행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16일∼1월15일]가 있다. 'Var a'란 말은 원래 '우(雨)·우기(雨期)'라는 뜻으로,

    옛 인도의 바라문교에서 안거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불교에서는 육군비구(六群比丘)들이 여름에 행각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여 비난을 받았으므로 여름에 비가 올 때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수행을 하게 한 것이

   불교에 있어서 안거(安居)의 기원이다. 안거기간 동안은 한 곳에서만 수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몇 안거를 지냈느냐에

   따라 스님의 수행력이 되기도 한다. 안거는 각 본산(本山)의 사찰별 행하며, 안거를 실시하는 사찰은 안거자 명단을

   작성하고 안거중의 각 소임을 정한다. 안거 중에는 좌선(坐禪)·간경(看經) 등에 의하여 수행을 행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좌선 위주로 수행을 한다.

 

③ 자자[自恣] … 안거가 끝나는 맨 마지막 날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의 생활을 서로 지적하고 질의·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계율이란 종교인이 준수해야 할 행동규범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제시한

   금지조항으로 되어 있다. 불교의 계율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잘못일 리는 없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인 이해로써는

   불교가 제시한 계율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통상 계율이라고는 하지만, 불교에 있어서 계와 율은 그 성격이

   다른 것으로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불교란 그 성격상 자각의 종교이다. 그래서 수도자는 부처님이 깨달은 것과 같은 진실을 그 자신도 스스로 성취코자 노력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수도자가 진실을 자각하고, 그에 근거한 생활방식으로서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자각을 추구하면서 그에 걸맞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생활방식을 계(戒)라고 한다.

즉 계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을 지닌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고 수행자가 많아지게 되자 수행자 개개인의 자각만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출가한 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을 것이며, 그 중에는 전혀 자각이 없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수행자로서는 허용될 수 없는 행위가 등장하게 된 것도 교단의 증대에 따른 부득이한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유행생활로부터 승원에서의 공동생활로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자, 승원 내에는 공동체 전원이 지켜야 할 규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해서는 안 될 비행도 생겨났을 것이며, 승원 내의 물건을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 등의

여러 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해 승려들이 개인적으로나 또는 교단의 한 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행위규범으로 정한 것을 율(律)이라 한다. 계를 편의상 계율이라 칭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는 엄격히 말해서 타율적인 율과는

구별되는 계인 것이다. 즉 율은 타율적인 성격을 지니고, 따라서 계에 대해서는 위반시의 벌칙이 따로 정해지지 않지만 율의 조항을

위반할 시에는 벌칙이 가해지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원래 계라는 말은 실라(s la, 또는 la)라는 원어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습관성, 행위, 성격, 경향 등을 의미한다.

또 실라라는 말 자체는 명상, 봉사, 실천 등을 뜻하는 어원에서 파생하였다. 따라서 계라는 말은 이미 주체성이나

자율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율성 등이 선으로도 악으로도 표출될 수 있겠지만, 보통 계라고 할 때는 선한 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말은 폭넓게 윤리적 행위나 윤리도덕을 뜻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런 계의 대표적인 예가 오계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율이라는 말은 비나야(Vinaya)라는 원어를 번역한 것인데, 비나야라는 말은 제거, 훈련, 교도 등을 의미한다.

이 의미가 전화되어 규칙, 규율, 규범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말 자체가 타율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한역에서는 조복(調伏)이라고도 하고 율이라는 말의 원어인 발음을 그대로 옮겨 비나야(毘奈耶)라고도 쓴다.

율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는 보통 계율이라는 복합어로써 표현해 버리고, 실제에 있어서 율이나 비나야는

경, 율, 논의 삼장에서 율장을 총칭하는 말로서 쓰인다. 율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흔히 계율이라고 하는

 '계의 조목(예를 들어 250계, 350계 등)'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과 교단의 운영규정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다.

계와 율을 엄밀히 구별하여 말한다면, 5계나 10계 같은 일반적인 계율은 재가신도에게 적용될 때 위반시에 교단으로부터

타율적인 벌칙이 반드시 가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계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승려에게 적용되는 250계나 348계는 위반시에

벌칙이 뒤따르게 되므로 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이 실제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계율이란 자율성과 타율성을 함께 지닌다고 알면 될 것이다. 소승의 계율은 율의 취의에 입각한 타율성을 전제로 하는 반면,

승의 계율은 계의 취의에 따른 자율성을 중시한다. 대승불교가 계율에 대해 엄격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계율들은 부처님이 여러 가지 사항을 예견하고서 한꺼번에 제정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현재 율장에 담겨 있는 계율의 조목들은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제정된 것을 모은 것이다. 즉 교단 내에 승려들의

어떠한 비행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규제하는 금지조항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계율 제정을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잘

못이 있을 때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적당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계율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지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철저히 반대한다.

이런 의견의 차가 결국에는 교단의 분열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부처님 당시를 되돌아볼 때, 45년간의 교화 중에 부처님이 정한 행위규범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입멸할 무렵이 되어서는 승려의 수도 많이 늘어났을 것이므로 모두가 그 규범의 전부를 그대로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승려의 규범에도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추세나 자연환경에 따라서 개정해야 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아난다가 증언했듯이, 부처님 자신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수적인 율의 조항은 교

단에서 원할 경우 폐지해도 좋다고 말했을 것이다. 계율 제정의 정신으로 보아 아난다의 증언은 사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율이라는 것이 성격상 어떤 획일적인 내용으로 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의 권위를 중시하고 혼란을 염려하는 여론에 밀려, 제1결집에서 막상 계율을 다시 정리할 때는

 "부처님이 제정하지 않은 조항은 새로 제정하지 말고, 부처님이 제정한 조항은 버리지 말고 지키도록 한다."고 총괄해

버림으로써 당시의 계율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천할수록 계율의 문제는 커다란 과제로서 대두될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이러한 문제를 예외 규정으로써 해결했다.

이는 사실상 계율 적용의 융통성을 인정한 것이고, 아울러 수범수제의 정신을 응용한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계율은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운용을 위해 재해석되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


수계(受戒)

 

수계란 '계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계의 정신을 받드는 것이고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지키겠다는 맹세입니다.

계란 석가모니 부처님 께서 몸소 실천하신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계를 받아 지킨다는 것은 부처님 세계를 향한 최선의 사상이며 행동입니다.

스스로 지키며 스스로 실천하는 계행은 마음의 안정과 지혜를 증득하게하여 보다 높은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 주며 궁극적으로는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길입니다.

 

수계법회 식순
○. 타종 (5회)
一. 개회
二. 헌공
三. 반야심경 봉독
四. 찬불가
五. 삼보를 찬탄함
六. 삼보를 청함
七. 수계법사를 청함
八. 깨우쳐 인도함
九. 참회
十. 연비
十一. 삼귀의
十二. 수계약속
十三. 헌화
十四. 발원
十五. 법명 줌
十六. 축원
十七. 회향
十八. 영접
十九. 사홍서원
二十.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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