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행복지수 1위 부탄왕국
부탄은 히말라야 산중의 소국으로 1907년 우겐 왕추크가 즉위한 이래 세습군주제가 실시되었고
1910년 부탄 왕국은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다가 1949년 8월 8일 인도와 조약을 체결한후
인도에 외교권을 위임하고 독립하였다.
성문헌법은 없으며, 2008년 3월 총선을 통해 공화제를 채택하였고, 국왕이 국가를 대표하는
입헌군주국(왕정)으로서 2006년 12월 즉위한 지그메 카사르 남그옐 국왕 아래, 실권자 지그메 틴레이 총리가
2008년 4월에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71년 유엔에, 1973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인구는 약 80만 일부다처제로 수도는 팀부 이며 ‘은둔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국토의 70%는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물산이 부족하며, 국민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대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불교 국가인 부탄은 군인보다 승려가 더 많다고 하며 국민들은 ‘현재에 만족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른 ‘욕심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들이 행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부탄은 자연적으로 뚜렷한 3개의 지역, 즉 대(大)히말라야 산맥, 소(小)히말라야 산맥,
두아르스 평원지역으로 나누어지며, 부탄 북부지역은 대히말리야에 자리잡고 있으며 7,300m 이상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있으며 3,700∼5,500m에 이르는 높은 계곡들이 북부의 거대한 빙하지역에서 아래로 뻗어 있다.
기후는 건조하며 고산지의 목초지에서는 여름 동안 야크를 방목하며 대히말리야 산맥 북쪽에는 티베트
고원의 끝자락을 이루는 몇몇 산들이 있어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는 강들 사이의 주요분수령을 이룬다.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주민들의 생활방식이 1960년경까지 이어졌으며, 부탄의 상인들은 티베트로 통하는
고개들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옷감·곡물들을 가져가서 소금·양모·야크떼들과 바꾸어오는 등 전통적 방법으로 교역을 했다.
그러나 1950년대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되면서 중국 통치하의 티베트에서 온 많은 피난민들이 대히말라야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평화로운 고립은 깨어지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들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대히말라야 산맥 줄기는 남쪽으로 방사상으로 뻗어 소히말라야(또는 내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한다.
소히말라야의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맥들은 부탄의 주요강들 사이의 분수령을 이룬다.
산코시·마나스 강들은 블랙마운틴 산맥을 경계로 갈라져 흐른다.
부탄 역사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쪽으로 이주하던 티베트인들이 9세기초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17세기에 티베트에서 온 영향력있는 라마교 승려 솁톤 라 파가 부탄의 왕이 되었고 다르마 라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부탄은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실체를 이루게 된 듯하며 그후 라 파의 뒤를 이은 돕게인 솁톤이 펜로프(영주)·
중펜(성주)들을 임명하는 등 부탄의 행정 체계를 공고히 했다.
그 후계자는 정치와 종교 양 측면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돕게인 솁톤과는 달리 종교적 역할만을 담당하는 한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대리인을 세워 데브 라자의 칭호를 주고 그에게 모든 정치 실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와 같이 종교적 영역에서는 다르마 라자, 정치실무면에서는 데브 라자가 통치하는 2원(二元) 통치형태는 20세기초
마지막 다르마 라자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영적 지도자인 다르마 라자라는 직위는 죽은 다르마
라자의 윤회(輪廻)가 입증되었다고 여겨질 때 승계되었는데, 마지막 다르마 라자가 죽었을 때에는 이러한 영혼의
윤회를 찾아볼 수 없었고, 따라서 이 직위와 이에 대한 예배의식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국민은 주로 부티야(보테), 아삼인, 구룽족을 포함한 네팔인 등의 세 민족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로 정착한 민족일 것으로 여겨지는 아삼인은 근처 인도지역에서 온 인도몽골족으로, 부탄 동부에
정착하고 있으며 현재 부탄 인구의 1/8 이상을 차지한다.
불교를 믿지만 문화는 오히려 인도 북부와 미얀마에 사는 티베트 미얀마족과 더 가깝다.
인구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부티아인들은 티베트에서 남하한 민족으로 현재 부탄의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부탄 북부·중부·서부에 거주하며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다양한 티베트 방언을 쓰는데, 부탄의 공용어인 송카어가
그중 가장 널리 통용되며 가장 최근에 정착한 네팔인은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며 부탄 남서부에 살고 있다.
네팔어를 쓰고 힌두교를 믿으며 네팔인 인구가 늘어나자 부탄인들은 1959년 네팔인의 이주를 금지했으며,
부탄에서 그들의 이동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남부 국경지대에는 인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올해가 한국-부탄 수교 30주년이라 부탄정부에서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인에 한해 체류비 등을 경감해주는
프로모션을 국가적으로 시행한다고 해서 올초부터 부탄여행에 관한 붐 아닌 붐이 일고 있다
늘 가고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불교신문인 법보신문사에서 주관하고 불교유적 성지탐사 전문기자인
남수연 기자가 안내하는 부탄 성지순례에 나선다
인천공항의 모습
인천발 → 방콕행 비행기 티켓
인천공항에서 처음만난 일행들과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에 수화물을 부치고 방콕행 비행기에 오른다
방콕 스와나폼 공항
한국에서 부탄으로 향하는 직항로가 없어서 방콕으로 경유하여 부탄으로 가야한다
방콕 스와나폼 공항에서 부탄의 환승을 위해 기다린다
방콕발 → 부탄행 비행기표
방콕 스와나폼 공항에서 부탄의 국영항공사인 드룩에어를 타고 부탄 파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한국에서 부탄으로 직항로는 없고 방콕이나 인도쪽으로 가서 부탄항공으로 갈아 타야하는데 부탄에는
국영항공사인 드룩에어와 민간 항공사인 부탄항공이 있다고 한다
드룩에어항공은 부탄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영항공사로 카트만두, 델리, 방콕, 캘커타 등으로 국제노선을
운영중에 있고, 인터넷으로는 항공권을 구입할 수 없고 부탄정부에서 전화를 해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독점이기 때문에 항공권이 매우 비싼 편이지만 요즘은 부탄에어라인의 민간항공사가 생겨 경쟁중이다
부탄 국제파로공항
방콕에서 06시 30분에 비행기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중간기착지인 인도의 어느 도시인데
이곳에서 많은 인도인이 내리고 다시 이륙하여 부탄의 파로공항에 도착하니 방콕에서 파로까지 4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부탄은 개인 여행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란다... 관광자원 국가 주수입원인 부탄이 그러는 이유는
부탄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분별한 문화의 유입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하며 1명이 여행을 하더라도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드리이버를 대동하야만 하며 하루 체류비 250달러(숙박, 식사, 가이드, 드라이버 차량유지비)가 든다
공항에 내리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의 가족사진이다
부탄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은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는데 참으로 부러우면서도
우리나라 정치인을 생각하면 씁쓸음한 뒷맛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얼마전에 이곳을 왔다 갔다고 하는데
과연 뭣을 느꼈는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부탄은 원래 왕조국가였는데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 현재 국왕의 아버지인 4대국왕 지그메 싱게 왕추크이다
그는 부탄의 미래를 위해 민주정부가 필요하다며 2006년에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부탄의 마을을 돌아 다니며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민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현재 국왕이 된 그의 아들 지그메 케사르 왕자는 의회를 구성하고 총선을 치뤄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였다.
현재 부탄은 입헌구주제 아래 국왕직을 유지하고 있다.
4대국왕 지그메 싱게 왕추크만큼이나 대단하신 분은 선왕인 3대 국왕인 지그메 도르지이다
그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나라를 위해 문호를 전면 개방하여 국가 현대화에 힘쓰면서 당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도입했다
부탄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호하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해 노력했고 이때부터
‘국민 총 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 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곳곳에 뚫린 도로도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건설되었으며 아름다운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TV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급속도로 현대화, 세계화로 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탄 사람들은
본인들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국민들을 위하는 국왕과 국왕을 믿고 따르는
국민들의 신뢰 관계에서 나오는 게 아닌지... 참으로 부러울 뿐이다
부탄파로공항 청사
파로국제공항에서
감사합니다
부탄 현지가이드와의 미팅
공항앞에 있는 택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들
택시는 유난히 현대차들이 많이 보인다
부탄의 수도 팀부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파로공항
파로공항
말이 국제공항이지 우리나라 지방공항보다 적다
파로에서 팀부로 가는 고속도로
우리나라 대도시 뒷골목 도로보다 좁게 보이면 차량들의 평균 속도가 30km정도이다
고속도로 주변의 건물들
차량들은 별로 보이질 않고...
고속도로에는 소들이 여유롭게 다니고...
파로공항에서 수도인 팀푸(Thimphu)로 가는 길은 말이 고속도로이지 도로 사정은
우리나라 지방도보다도 못하다팀푸 시내를 관통하여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팀푸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붓다 도르덴마상이다
붓다 도르덴마상
영어로는 붓다포인트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큰 석가모니 좌상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의 잠정 목록에
등록되어 있으며팀푸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이 불상은 부탄의 제5대왕 둑겔포 직메
케사르 남겔 왕축(Druk Gyelpo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의 즉위를 기념하며 2008년에 세워졌다
현재도 공사가 진행중인 사원 안에는 25,000분의 청동불상, 10보살 입상, 16나한, 하상왕(King Hashang:
부탄에서는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타마타 호랑이와 협시존, 사천왕 등이 모셔져 있다.
붓다포인트(쾬셀포당)는 예전 팀푸왕국 시절의 13대왕인 데시세랍왕축의 왕궁터였다
현재 부탄 정부에서는 이 지역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높이가 51.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좌불(坐佛)로서 불상 안쪽이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아직도 공사중이다
싱가포르의 불자가 보시하여 조성되는 불상으로 팀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팀푸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부탄에는 모든 사찰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아직도 주변은 불사중이라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다
붓다 도르덴마상에서 바라본 팀푸계곡의 모습
붓다 도르덴마상 외벽에 있는 코끼리...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듯...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
붓다 도르덴마상에서 바라본 팀푸시내의 모습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데 도로 근처 산에는 번이 많이 보인다
댄싱 폴리스(Dancing Police)
붓다 도르덴마상에서 내려와 시내로 들어서는데 사거리에서 수신호를 보내는 경찰관이 보이는데
이름하야 댄싱 폴리스(춤추는 경찰관)라고 하는데 부탄에서 아주 인기있는 명물이라고 한다
부탄의 수도는 팀푸는 2016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12만명이고, 차량도 3만대가 넘어섰지만
신호등이 없다고 한다... 팀푸 아니 부탄국가 전체에 신호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팀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된 이유는 전 세계의 수도중에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신호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팀푸 시내에서 가장 번화했던 사거리인 이곳에 신호등이 설치
되었다고 한다...하지만 팀푸시민들은 “신호에 따라서 사람과 차가 오가는 것은 인간미가 없다” 는 시민들의
반대 여론에 밀려 설치한 지 며칠만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 수신호를 보내는 경찰부스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수신호로 유명한 댄싱 폴리스 중국에 갔을때 봤던 경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부탄의 가정집과 건물에는 남근상을 그려진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多産을 기원하고 악마를 막기 위해라고 한다
팀푸 중심지의 건물에는 남성성기를 그린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팀푸시내의 모습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메모리얼 초르텐으로 향한다
메모리얼 초르텐 입구의 모습
국립 메모리얼 초르텐(Memorial Chorten)
아름다운 황금첨탑인 메모리얼 초르텐 은 1974년 부탄의 3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도르제 왕축(Jigme Dorji
Wangchuck(1928~1972)를 기리며 그의 어머니 아쉬푼초 초덴왕축(Ashi Phutsho Choden Wangchuck)가
세운 불탑으로 ‘국립’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불교는 부탄의 국교이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병사(病死)한 아들을 기리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깊은 불심이 만들어낸 이 불탑은
여느 사원 못지 않은 성지로 여겨진다
탑에는 부처님이나 고승의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 메모리얼초르텐은 3대 국왕의 사진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록물로 장엄되어 있다.
국왕을 부처님과 같이 성자로 여기는 부탄 국민들은 이 탑 또한 여느 사원의 불탑과 똑같이 여긴다
‘옴마니반메홈’을 외우며 탑을 도는 사람도 있고, 탑 주변에 모여앉아 작은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삼매에
든 사람도 보이며, 쉼없이 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전생과 이생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다
국립 메모리얼 초르텐 앞에서 인증샷
메모리얼 초르텐 입구 중앙에는지혜의 싱징인 문수보살이 있고, 좌측에는 자비관음보살,
우측에는 대세지보살의 분노존인 금강수보살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이 부탄의 국경일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참고로 부탄의 국경일은 대다수가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고하니 불심이 대단한 국가이다
옴마니반메홈을 암송을 하면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부탄인들
탑돌이
공양물은 과일과 과자등이 많이 보인다
우리 가이드도 불탑을 향해서 예를 올린다
메모리얼 초르텐 불단의 모습
법문을 하시는 스님
남방불교에서 예불을 할 때 사용하는 악기인 모양이다
불탑 주위의 모습
불탑을 향해 고두삼배의 예를 올리는 노인
마니차를 돌리는 부탄의 불자들
가부좌를 한 채 마니차를 돌리는 노인
순례객들과 함께
메모리얼 초르텐의 대형 마니차
메모리얼 초르텐을 참배하고 다음 코스로 향한다
도로옆에는 군부대인듯한 건물이 보이는데 인도주둔기지란다.
부탄은 인도와 군사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인도 군사고문단이 부탄 주요 도시에 주재하고
있고, 인도에 부탄 장교를 파견하여 교육시키고 있는데 부탄의 국방 전략은 중국이나 미국등 강대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있으며 외교적으로는 독립체제를 두고 있으나 국방은 자체 육군이 하고 있고
공군은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팀푸시내에 있는 유일한 비구니 사찰 - 질루카 나나리 사원
비구니 사찰 질루카 나나리 사원의 모습
화려한 벽화와 거대한 불상이 있는데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가이드를 통해 현지 스님들과선 채로 잠시 환담을 나누고...
한국에서 가신 비구니 스님들이 부탄 스님에게 금일봉을 전달한다
마니차(摩尼車:티베트어: འཁོར་)티베트 불교에서 사용되는 불교 도구로 마니차는 원통형으로 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으며, 내부에는 롤로 경문이 새겨겨 있으며 크기는 다양하며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부터 큰 것은 몇 미터에 달하는 마니차가 사원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탄에도 티벳과 마찬가지로 사원마다 불교 경전에 해당하는 마니차가 있는데 부탄에서는
‘차’를 빼고 ‘마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니차의 구성은 108개의 마니로 사원을 두른다고 한다
부탄의 수도 팀푸(Thimphu)
부탄 중서부 히말라야 산맥의 왕추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1962년에 정부의 공식 수도로 지정되었고
(이전에는 어느 곳이든지 왕이 있는 곳이 수도였음), 인도의 도움으로 대규모 건설계획에 착수했다.
유서 깊은 요새 수도원인 타시초 요새를 개축·확장하여 정부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부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왕궁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계단식 농경지는 이 나라의 경제활동 중 농업의 중요도를 나타낸다.
농작물로는 벼·옥수수·밀이 재배되며, 제재업도 활발하여 시내에 제재소가 있다.
1966년부터 수력발전소에서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활주로가 있고, 인도-부탄 국립 고속도로(1968 개통)가
인도에서 부탄으로 들어가는 주요관문인 푼트숄링과 수도를 연결해준다
부탄의 20개 종카그 중 하나이며 현재 부탄의 수도로 해발 2320m에 자리잡고 있다
팀푸를 관통해서 흐르는 왕추(Wang Chhur)강가를 따라서 주요 행정기관과 건물이
밀집되어 있으며 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1952년에 등극한 3대국왕 지그메 도르제 왕축(Jigme Dorji Wangchuck(1928~1972)에 의해
수도로 정해졌지만 정식으로 공포되고 현대적인 수도의 외형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다
13세기에 건설된 오래된 사원들과 현재적 건물이 여전히 혼재되어 있으며 도심에는 정부중앙청사의
역할을 하는 타쉬초종(Trashi Chhoe Dzong)을 비롯해 관공서와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통 신호등이 없는 수도이지만 전력사정은 안정적이다
잠시후에 가야할 타쉬초종의 모습
정부종합청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타쉬초종의 모습
부탄으로 도로 곳곳에 개들이 엄청나게 많다... 낮에는 건들여도 꿈쩍도 안한다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인 타쉬초종에 도착한다
개방 시간에 맞춰 타쉬초종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차 안에서 커다란 흰색 스카프를 꺼내 든다.
부탄 남성의 전통의상인 ‘고’를 단정하게 갖춰 입고 있던 그 위에 스카프를 두른다.
‘카네’라 부르는 이 스카프는 일종의 의전용 정장과 같은 것으로 왼쪽 어께위에 걸쳐 대각선으로 몸에 두르는 것이
마치 스님들이 장삼 위에 가사와도 흡사해 보이는데, 부탄에서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전통의상을 입어야 하는 동시에
사원에 들어갈 때나 공식 행사에 참석할 경우 남자들은 카네를 둘러야만 한다.
카네는 일반적으로 흰색이며 국왕만이 노란색 카네를 두를 수 있다.
고 위에 카네를 두르고 나면 왼손으로 카네 자락을 잘 잡아서 끝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그
만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정각 오후 5시면 칼퇴근을 한다고 하는데 정부종합청사 역할을 하는 타쉬초종은
평일에는 공무원들이 퇴근후에라야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퇴근하는 여성공무원들이 입은 부탄의 복장인 키라라고 하는데 부탄 국민들은 대부분 정통 복장을 착용한다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할 경우 남자는 ‘고’ , 여자는 ‘키라’라고 불리는 전통복장을 입어야만 한다
공식적인 자리의 범주에는 학교와 관광서, 사원도 포함이 된다
타쉬초종(Trashi Chhoe Dzong)
종(Dzong)은 요새라는 뜻으로 부탄에만 있는 특이한 건물로 부탄의 20개 주마다 하나씩 있다
타쉬초종은 ‘영광스런 종교의 요새’라는 뜻으로 행정업무를 관할하는 구역과 종교를 관할하는 사원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행정업무를 보는 곳은 어디나 출입이 금지되고 사원 구역은 둘러볼 수 있다
팀푸 시내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2~3층, 아무리 높아도 6층을 넘지않는 팀푸에서 타쉬초종은 한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데, 왕궁을 상징하는 화려함과 불교의 위상을 대변하는 장엄함을
동시에 갖춘 부탄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이다
종(Dzong)은 부탄의 각 지역에서 행정과 사원을 겸비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의 명칭을 사용하지만 수도 팀푸에서만은 팀푸종이 아닌 타쉬초종으로
불리는데 ‘영광스런 종교의 요새’라는 타쉬초종은 원래의 팀푸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1216년 갈와 란아파(Gyalwa Lhanapa) 스님은 ‘푸른돌의 요새’라는 뜻을 지닌 도젠종(Dho Ngen Dzong)을
팀푸 외곽의 언덕 위(현재의 데첸포드랑:Dechen Phodrang)사원을 세웠다.
그러나 몇년 후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가운데 드룩빠까규(Drukpa Kagyu)파의 법통을 부탄에 전한
티베트의 스님 파조 드룩곰 싱포(Phajo Drukgom Shigpo)가 도젠종을 장악하면서 드룩빠까규파가
부탄 불교의 중심 종단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1641년에 최초로 부탄왕국을 통일한 영웅 샤브드롱 나왕 남걀(Shabdrung ngawang namgyal)은
종교기관에만 충실했던 종의 행정기관 역할을 함께 부여했는데 오늘날 종교와 행정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부탄만의 독특한 기능인 종이 탄생되었다.
타쉬초종의 행정동(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다)
그러나 도젠종은 사원과 행정기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
샤브드롱은 언덕위에 있던 도젠종을 대신해서 계곡 아래, 즉 주민들이 많이 모여사는 강변에
새로운 종을 건립하고 타쉬초종이라 불렀는데 이곳이 오늘날 부탄의 정부종합청사이자 부탄 불교의
중심부인 타쉬초종은 이렇게 탄생되었다고 한다
1744년에 대대적으로 확장되지만, 1771년, 그리고 1866년 발생한 두차례의 화재로 상당부분이
훼손이 되었고, 여기에1897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남아있던 전각마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1902년에 재건되고 팀푸가 부탄의 수도가 된 이후에 왕실에 의해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타쉬초종 재건축을 맡은 왕실 건축가는 중앙의 법당 등 불교사원구역은 전혀 훼손하지 않은채
행정기관 들어설 부분만 추가했고, 종 전체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도면도 없이
전통 건축 방식에 의해 확장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한 역사를 자랑하는 타쉬초종의 외관은 요새와 같아 보이는 높다란 흰 성벽위에 붉은색과 황금색
지붕을 이고 있다
사방이 모두 높은 건물로 둘러쌓여있는 장방형의 타쉬초종은 남북으로 두 개의 건물이 마주보고 있는 구조이다
내부 중앙에는 우체(Utse)라 불리는 중앙 건물이 서 있고 이 건물을 기준으로 북쪽의 사원 구역과 남쪽의
정부청사구역이 구분되는데, 자연석을 불규칙한 네모 모양으로 잘라 깔아 놓은 바닥에는 양쪽 구역을 구분하는
흰색 선도 그어져 있으며, 이 선을 넘어 남쪽의 정부청사구역으로 발을 들이면 경비병이 물러서라고 경고한다
정부종합청사의 가장 높은 층에는 부탄 국왕의 집무실이 있다
인증샷
지난 2008년에 부탄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Jigme Khesar Namgyal Wangchuck)이
절대 왕정을 스스로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정치형태를 바꾸었지만 여전히 국왕이 국가를 대표하는
왕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그메 케사르 국왕은 2011년 결혼한 이후에 타쉬초종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사원 구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그 앞에는 세 개의
왕좌가 마련되어 있는데 , 현 국왕,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 현 국왕의 아버지, 지그메 싱게 왕축
그리고 부탄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인 제켄포(Je Khenpo)이다
스님의 발걸음
타쉬초종 벽화에 관해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하는 법보신문 남수연 기자
육도윤회(六道輪廻)벽화
불교 교리 가운데 하나로 중생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서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것을
천명한 사상으로 선악의 응보로 육도의 고락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타쉬초종 내부의 모습
부탄의 사찰에서는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란다
순례단과 처음으로 단체사진
현재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의 모습
타쉬초종 순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팀푸계곡 너머로 무지개가 펼쳐진다
쌍무지개의 모습
부탄의 팀푸에서 첫날밥을 보낼 ARIYA호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서는데 조그만 호텔이 참으로 맘에 든다
그런데 창문 밖에는 밤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짐스소리 같기도 하고 사찰의 염불소리 같기도 하다
다음날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개들의 영역다툼을 하는 소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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