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성지순례 3일째
이른 아침에 일어나 호텔 근처의 가정집에 들렸다가 부탄의 장례식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 공양을 한 다음에 3일째의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나선다
부탄에서 첫날밤을 보낸 ARIYA호텔
인원이 맞질 않아서 싱글 차지를 물지 않고서 호텔방을 홀로쓰는 특혜(?)를 누리는데
여행사쪽에서 보면 손해지만 사용하는 나로선 너무나 편하다
창캉카라캉사원 가는길에 구걸을 하는 걸인이 보이기에 1달러를 줬더니만 너무 고마워 한다
젊은 부부가 공양물을 들고 창캉카라캉 사원으로 간다
3일째 되는날 아침 창캉카라캉 사원에서 바라본 부탄의 수도 팀푸시내 롱따의 모습
부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으로 북쪽의 높은 히말라야산맥과 중앙의 고원과 계곡지역, 그리고
남쪽의 기슭과 평원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탄의 생태계는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현재 국가명인 부탄은 그 유래가 불분명하나,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 ‘고지대’라는 의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부탄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를 ‘드룩 율(용의 나라)’이라고 부른다.
부탄은 지금도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들의 풍속이 오염될 것을 염려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여행객 수를 1년에 8만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1인당 하루에
200~280달러를 지불해야 입국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배정된 지정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만 하며 그리고 왕을 비롯한 남자들은
‘고’를, 여자들은 ‘키라’라는전통의상을 똑같이 입는다.
옷차림만으로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창캉카라캉 사원에서 바라본 팀푸
부탄의 수도 팀푸는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로 알려져 있다. 해발 2300m에 위치해 있으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인구는 12만명 정도이며 13세기부터 건립된 수많은 사원이
위치하고 있어 볼거리도 많으며, 도심에는 메모리렁 쵸르텐이라는 전통 티베트 양식의 불탑이
있는데, 탑에는 수많은 탱화와 탄트릭 신장(神將), 작은 사원도 위치해 있어 눈길을 끄는데,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은 창캉카 라캉. 12세기 건립된 사찰로 800년이상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11면 관음상과 방대한 불교경전은 신심을 불러 일으킨다.
부탄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부탄은 국민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정책목표로 삼는다.
국민총행복지수는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부탄의 국정 운영철학이다.
부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700달러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에 매진할 때 히말라야 산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조용히 지켜나간다.
그것도 동아시아 강국인 중국과 인도로 둘러싸여 한반도의 1/5정도의 크기이면서도 당당하다
팀푸 최초의 사원인 창캉카라캉 사원은 팀푸의 수호신을 모시는 곳이다
창강카 라캉(Changangkha Lhakhang)사원
창강카 라캉(Changangkha Lhakhang)사원
12세기 티베트에서 온 파죠 드럭곰 싱포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원으로 부탄 불교의 중심이자
뇌룡파 불교를 가르치는 불교대학이라하며 심토카 종과 마찬가지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건축된 지 오래된 흔적이 베어 나오고 있는데 이곳 역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기록이 안된다
법당내부에는 십일면 관음상인듯 한 불화가 보인다
데청퐁드랑 승가학교
현재 200여명의 스님들이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부탄에서 출가의 공덕은
3대를 간다는 믿음이 있고, 집안에서 한명쯤은 출가하여 승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부탄은 어느 사원을 막론하고 마니차는 필수적이다
부탄인들의 공양물은 참으로 다양하다...우유도 보이고 빵도 보인다
데청퐁드랑 승가학교 스님들 상당히 무표정하다
장례식 후에 모셔논 차차(돌멩이처럼 생긴 것)... 위패라고 해야 할까
악마를 잡아 가두고 그 위에 세웠다는 탑
부탄에는 사원마다 악마를 잡아 가두었다는 탑이 있다
탑돌이를 하는 부탄인
부탄사람들은 죽은 뒤 화장을 하고 49재를 지내고 난 뒤는 전생과의 인연이 끝난다
물론 제사도 지내질 않고, 법당이나 산 아래 바위밑에 차차를 갖다놓아 조상에 대한 예를 표한다
데청퐁드랑 승가학교
뒤돌아 본 창강카 라캉 사원
뒤돌아 본 창강카 라캉 사원에서 바라본 팀푸시내
이곳에서도 우리나라로 치면 위패 역할을 하는 차차가 많이 보인다
젊은 부부
부탄에서는 얘기를 낳으면 절에가서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오늘은 스님에게 얘기 이름을 지으러 가는 날이란다
창강카 라캉 사원을 간단하게 둘러보고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부탄의 생활사 박물관으로 향한다
부탄 생활사 박물관
남수연 기자의 설명을 듣는 순례단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부탄 사람들은 전통 예술 계승을 위해서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국립공예기술학교는 전통 예술을 계승해 나갈 장인의 산실이다. 외관은 평범하다.
얼핏 보아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조각과 탱화 등
부탄의 13가지 전통공예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은 약 300여명으로 4~6년 과정을 마치고 나면 자격증이 주어진다.
부탄 국민들의 전통 생활 방식과 일상을 살펴볼 수 있지만 박물관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민속촌과 비슷한 형태다
부탄이 히말라야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온통 히말라야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나라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부탄의 남쪽은 해발 200m를 오가는 평지의 아열대기후에 속하는데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가 부탄의 북쪽 국경 지역에는 해발 7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이
줄지어서 있는데, 이처럼 부탄은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지역에 따라 풍습과 문화, 복식 등에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외국인들의 방문이 잦은 까닭인지 교실을 둘러보는 외부사람들을 신경 쓰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생활사박물관과 국립공예기술학교의 모습
생활사박물관과 공예학교를 둘러보고 푸나카 가는길에 있는 심도카종 사원으로 향한다
팀푸시내를 벗어나 도출라패스로 가는 길을 따라서 가다가 우측의 좁은 고개로 올라서니 심토카종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올라서니 가장 먼저 순례객을 맞이하는 것이 대형 마니차이다
도로에서 바라본 심토카종의 모습
심토카종(Simtokha Dzong)
부탄 역사상 최초의 요새로 만들어진 심토카종의 정식 명칭은 상각 자브돈 포드랑
(Sangak Zabdhon Phodrang)으로 ‘탄트리즘의 깊은 의미를 가진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성은 1629년 부탄의 영웅 샤브드롱에 의해 건설됐다.
샤브드롱은 부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지도자이자 수행자로 특히, ‘(종Dzong)’ 이라는
독특한 건축의 개념이 그로부터 시작됐고, 부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상당수의 종과 사원들이
그에 의해 창건되었거나 적어도 어떤 형태로던 인연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샤브드롱의 본명은 나왕남걀(Ngawang Namgyal)로 까규파의 지파인 드룩빠까규파의 총본산인
티베트 랄룽(Lhalung)사원으로부터 1616년에 부탄으로 들어왔는데, 당시 티베트에서는 각 종파간의
권력다툼이 치열했는데, 드룩빠까규파 역시 겔룩(Geluk)파와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나왕 남걀은 23세에 꿈속에서 마하깔라(Maha Kala)라는 토착 수호신으로부터
‘부탄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가 이 꿈 때문에 자발적으로 부탄으로 향한 것인지, 아니면
날로 치열해지는 권력 다툼을 피해 부탄으로 온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혹은 드룩까구파가 종파의 명맥을 보존하기 위해 그를 비교적 안전한 파견한 것일수도 있다
어찌되었던 부탄에 도착한 나왕 남걀은 지방 토호들의 세력이 비교적 약했던 서부 부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설법을 통해 존경받는 린포체의 위상을 다져나가게 된다
샤브드롱이라는 별칭도 이때부터 사용하게 되는데 ‘만인의 경배받는 고귀한 보석’이란 의미라고 한다
서부 부탄에서 입지를 굳힌 샤브드롱이 팀푸 남쪽에 자신의 거처로 만든 것이 바로 심토카종이다
사원이자 행정기관을 기능을 갖춘 동시에 방어를 위한 요새로 만들어진 심토카종은 당시로서는 매우 새롭고,
회기기적인 건축 형태로서 종이 등장한 것이다
심토카종은 여러 종 건축의 모델이 되기도 했는데 요새로서 기능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샤브드롱이 서부 부탄의 실권자로 명성을 높이자 동부 부탄을 중심으로 한 토호세력들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연합군을 형성, 1629년에 심토카종을 공격하였는데 하지만 연합군의 첫번째 공격은 가볍게 샤브드롱의 승리로 끝난다
패배한연합군은 티베트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재차 심토카종을 공격하지만 또다시 실패를 한다
그래도 연합군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라다크 왕국에 지원군을 요청해 또 다시 대규모 공세를 펼쳤지만
철옹성같은 심토카종은 함락되지 않았고, 결국 10년간의 전쟁은 1639년 샤브드롱의 승리로 끝난다
티베트는 샤브드롱을 부탄의 최고 통치자로 인정하는 동시에 부탄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게 된다
단순한 종전의 의미를 넘어 부탄이 티베트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게된다
샤브드롱에 대한 부탄 국민들의 존경과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원에는 붓다나 파드삼바바 옆엔 나란히 샤브드롱상이나 그림이 봉안되어 있다.
심토카종도 불상 좌우에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가 있고, 그 앞에 샤브드롱상이 있다.
사원의 기둥에는 총과 칼 드이 빼꼭히 묶여 있는데 티베트와 전쟁에서 빼앗은 무기들로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샤브드롱은 전쟁중에 적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여러가지 주술적인 의식을 행했다는데 이 역시 그런 의미가 아닐런지...
법당에서 순례객들과 함께 예불을 올리고 법당 내부를 두루 돌아 보지만
부탄의 사찰내부는 어디나 엄격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성지순례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라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샤브드롱이세운 심토카종은 종종 역사상 최초의 종이라고 소개되지만 최초의 종은 아니라고 한다
그 이전에도 종은 있었지만 다만 사원인 동시에 방어 기능을 갖고있는 요새와 같은 성은 심토카종이 최초다
심토카종은 17세기에 건축된 이후 몇 차례의 화재를 겪었지만 전소되거나 붕괴된 적은 없다
특히 계속된 티베트와의 전쟁은 물론 어떠한 침략에도 무너진 적이 없는 진정한 철옹성이다
입구는 남쪽에 단 하나, 중앙에 우체라 불리는 삼층의 중심 건물이 있는데 네 면에 각각 작은 법당을
설치해 불상과 지역 토착신을 봉안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당시 부탄 불교의 모습과 종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그 안에 나란히 모셔져 있는 샤브드롱 상은 그가 여전히 부탄
최고의 영웅임을 말해준다.
악마를 잡아 가뒀다는 뒷산
심토카의 뜻은 ‘악마의 바위’라고 하는데, 샤브드롱은 오랜 명상끝에 형태를 구상한 이후
이 지역의 모든 악마들을 잡아 심토카종 뒷산의 바위아래에 가둬버리고 종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남수연 기자와 함께
샤브드롱의 등장으로 부탄은 히말라야의 강대국으로 그부상하며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몽골군이 가세한 티베트의 침략으로 또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이 전쟁은 무려 11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샤브드롱은 산맥과 계고의 지형에 약한 몽골군의 약점을 이용, 매복과 급습으로 몽골과 티베트 연합군을
공격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는데 이때 빼앗은 무기들은 지금도 심토카종과 푸나카종에 전시되어 있다.
이후에도 3번이나 티베트와 전쟁을 치렀지만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의 와중에도 승리를 기념하며
종을 새로 건설하는 등, 내치(內治)에도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며 절대 지도자의 위상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모든 전쟁이 끝난 후 부탄은 완전한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되는데, 영토는 티베트 남서부와
라다크 지역까지 확대되었으며, 부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시기였다.
당시 영토는 현재의 8배에 달했으며 명실상부한 히말라야의 최강자였는데, 티베트와의 전쟁은 부탄이
외세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높인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부탄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티베트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탄은 민족적으로 티베트에 원류를 두고 있지만 오늘날 티베트와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갖고있다.
샤브드롱이 티베트로부터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위해 차별성을 강조한 결과이다
‘고(:부탄의 남성 정통복장)’와 ‘키라:(부탄 여성의 정통복장)’라는 독특한 부탄식 복장을 했고,
머리 모양 역시 장발이었던 티베트와는 달리 단발로 바꾸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다른점은 정치제도로 티베트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1640년 샤브드롱은 초에시(Choesi)
제도를 만드는데 이것은 일종의 정교분리로 종교에 관한한 제켐포라는 승단의 최고 지도자가 관장하고
정치 등 세속에 관한 부분은 데시(Desi)라고 불리는 행정관 담당하는 이원통치제이다
초대 제켐포는 샤브드롱 자신이 맡았고 데시는 선출직으로명망있는 스님들 가운데서 선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샤브드롱에 집중돼 있었는데 초대 데시 또한 샤브드롱이 직접 임명했기 때문이다
초에시 제도가 처음 시작된 곳이 심토카종으로이었다, 하지만 샤브드롱에 의한 초에시 제도는
그의 입적 후 뜻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았는데, 선출되는 데시마다 샤브드롱의 화신임을 주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토카종 이곳 저곳을 둘러본 다음에 푸나카종을 가기위해 토촐라 패스 고개길로 향한다
도촐라 패스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붓다 도르덴마상의 모습
심토카종을 배경으로 인증샷
도출라 고개(3,116m)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3,116m의 도출라 고개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
‘라’는 부탄어로 고개라는 뜻으로 말이 고개이지 도출라의 고도는 백두산(2,744m)로 훨씬 높다
하지만 3,000m 가 넘는 고개가 즐비한 부탄에서는 도출라는 그리 험난한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도출라가 유명한 이유는 히말라야 조망대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은 부탄의
최고봉인 강카푼숨(7,564m)을 비롯해 히말라야 설산의 장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미세한 안개에다가 가랑비까지 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도출라 정상의 모습
도출라 정상의 식당에서 점심이 예약되어 있어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백두산보다도 훨씬 높은 곳이다보니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다
북쪽은 아직도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드룩왕걀초르덴
도출라 정상에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108개의 초르덴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다
드룩왕걀초르덴으로 불리는 초르덴은 108개의 탑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부탄 남부에서 벌어졌던 반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전사한 이들을
애도하는 추모탑으로 2005년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인도의 아샘지역에 포함되는 부탄 남부에서는 종종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무력충돌이
발생하곤 하는데 4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싱게 왕축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이 기념탑은 승리를 기념하고왕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당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아군뿐만 아니라 비록 적군이더라도소중한 목숨을 잃은
모두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발원한다는 남 기자의 설명에 부탄인들의 생명존중 사상을 느낄 만하다
드룩왕걀 쵸르텐(108스투파)을 만들고 그 스투파 맞은 편에 드룩 왕걀(Druk Wangyal),
라캉(사원)이 2008년에 완성되었으며 드룩왕걀사원 내부에는 세 개의 큰 상이 모셔져
있는데 다른 여타의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왼쪽부터 파드마삼바바, 부처,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룽 나와 남걀 상이 있고 주변 벽화는 불교와 관련된 벽화들이고 2층의 벽화는
제 4대 국왕인 지그메 싱예 왕추크(Jigme Singye Wangchuck)와 현재의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도 반군과 벌어졌던 전쟁에서의 승리를 묘사한 벽화도 눈길을 끈다.
왕과 관련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화려한 황금색들을 많이 사용하였고 보안도 철저해서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한다
도촐라 고개 정상에 있는 레스토랑
108스투파의 모습
도촐라 고개 (Dochu-la pass)정상에서
스님들도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다
드룩왕걀초르덴의 모습
다시 안개가 밀려오고 버스에 올라타 푸나까로 향하여 내려가 길은 멀기만 하다
도로 우측에는 내일 방문할 사원인 치마라캉 사원이 보인다
한참을 내려오니 귀가 멍멍한게 멈춰지면서 두 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멋진 사원이 나오는데 푸나카종이다
푸나카종(Punakha Dzong)
푸나카종은 1955년 팀부가 수도가 되기까지 약300년 동안 부탄의 겨울 수도로 초대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고, 국회도 최초로 이곳에서 개최되었던 곳이다.
푸나카종은 1328년 작은 요새로 처음 지어졌으며, 정식명칭은 풍탕 디첸 포드랑종
(Pungthang Dechen Phodrang Dzong)으로 불리는데,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꼽히는
푸나카 종 사원은 작은 요새에서 샵드룽에 의해 1637년에 세워졌다.
샤브드롱이 꿈에서 코끼리 형상의 땅을 보고 현재 사진에 보는 흰계단이 있는 건물을
머리에 두고 전체를 지어나간 것이라고 한다.
1300m의 위치에 있는 푸나카는 겨울에도 따뜻한 기후로 현재는 약450명 정도의 라마승이 기거하고 있다.
푸나카 종 사원 내부에는 많은 불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 4마리 동물의 이야기가 코끼리와 원숭이는
우정과 행운을 상징하고 토끼와 공작새는 우정과 협동을 상징하는 불교동화 이야기가 담긴 벽화도 있다.
푸나카종은 심토카종에 이어 부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종으로, 심토카종과 마찬가지로
최초로 부탄 통일을 완성한 샤브드롱 나왕 남걀에 의해 1637년 축성되었는데, 푸나카는 1955년
수도를 팀푸로 이전하기 전까지 약 300여 년간 부탄의 중심지였으며,사실상 푸나카종이 세워지면서
부탄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나카종을 배경으로 인증샷
전설에 따르며 구루린포체로 불린 파드마삼바바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남걀이라는 사람이 코끼리처럼
보이는 언덕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후 샤브드롱 나왕 남걀이 이곳에 와 언덕 꼭대기가 잠자는
코끼리의 형상임을 발견하고 예언에 따라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푸나카종 건축을 명한 샤브드롱이 건축가에게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도록 지시했다.
그날 밤 건축가는 꿈속에서 구루린포체를 만나 그가 사는 궁전을 보고 그 모습대로 푸나카종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푸나카종은 천상의 궁전인 동시에 위대한 행복의 궁전이라 여겨지는데 푸나카종의 정식 명칭은
‘풍탕 데첸 포드랑’으로 ‘위대한 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부탄 국왕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린 이유도 왕과 왕비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는 뜻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가이드와 부탄인들
한결같이 부탄의 전통예복인 ‘고’를 입고 있다
푸나카종 주차장의 모습
푸나카종으로 건너가는 목조다리
푸나카종은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모츄강을 가로지르는 목조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다리 앞에는 <2011년 10월 국왕의 결혼식에 바쳐진 모츄 공원>이라는 빨간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 현 5대 국왕이 이 성에서 세기의 주목을 받으며 평민과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지정한 모양이다.
히말라야의 산간지방에서 난 우람한 나무로 만든 목조다리는 높고 견고했다.
우리는 마치 무지개다리를 건너듯 강위의 목조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며 감상하는 푸나카종의 외관은 그야말로 천상의 궁전인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푸나카종은 가로 180m, 세로 72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자 요새이고 사원이다.
외벽의 아래층엔 창문이나 출입구가 없이 흰벽으로만 이어지지만 윗부분은 아름답게 장식된
창문 사이사이를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칠해진 화려한 그림과 문양들이 띠를 이루고 있다.
때마침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 가득 보라색 꽃이 피어 푸나카종의 새하얀 외벽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눈이 녹아서 내려오는 물이란다
푸나카종 앞으로 흐르는 모츄강의 모습
멀리서 바라보면 푸나카 성 앞쪽과 뒤쪽에 있는 산은 마치 커다란 코끼리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걸출한 인물 샤브드롱이 이곳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드죵축'이라는 작은 성이 있었고, 그 성안에
한 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했다
샤브드롱은 당대의 건축가 '조 팔렙'을 불러 그에게 불상 앞에서 잠을 자라고 했다.
그가 잠을 자는 동안 샤브드롱은 그의 영혼을 연화생 보살이 살고 있는 천상계 즉 '장토펠리(Zangto Peli')로
데리고 갔는데, 천상의 세계를 보고 잠에서 깨어난 조 팔렙은 샤브드롱의 명에 따라 꿈에서 본 천상계의
모습대로 성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샤브드롱의 의지대로 천상의 세계를 옮겨다 놓은 구조로 성을 건축했다.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곳에 '행복이 가득한 성'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 후 이성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신기원을 이루며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300년간 부탄의 겨울수도로 영광을 누렸던 푸나카 종은 샤브드롱이 왕위에서 물러나 은거를 하며
일생을 마친 성이기도 한다...샤브드롱 당대에 이 성은 부탄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최고 행정관과
대수도원장이 머물렀던 곳이며, 부탄 초대 국왕 우겐 왕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름모를 꽃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치 요새처럼 생긴 푸나카종 안으로 들어선다
푸나카종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남수연 기자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초르덴이 서 있는 장방형의 넒은 광장이 시야를 압도한다.
이 광장에서 일 년에 한번 3, 4월경에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건물들은
모두 아름답게 장식된 나무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2층엔 조각과 그림으로 빈틈없이 장식된 테라스를 갖고 있다.
푸나카종 역시 행정기관의 역할과 사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데 입구의 건물에는 행정기관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 광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스님들이
생활하는 사원이다...이곳 사원 공간의 오른쪽 건물에는 부탄 최고의 보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티베트 고승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이 사리는 샤브드롱이 티베트에서 이곳으로 이운해 왔는데 제켄포로 불리는 티베트불교의 수장 외에는
중요한 행사 때에만 친견이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만나는게 마니차이다
푸나카종의 벽화
종교적인 사원영역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중앙의 법당은 앞서 보았던 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이곳이 바로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인데, 당시 결혼식 장면이 몇몇 외신들을 통해
전해졌는데 우리나라의 괘불과 비슷한 커다란 탕카가 걸린 광장에서 열린 결혼식은
장엄하면서도 간소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좌우에 샤브드롱상과 파드마삼바바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그 크기와 법당 내부의 화려한 장엄에 뒤로 젖혀진 고개가 뻣뻣해질 정도다
푸나카종과 같이 규모가 큰 사원은 모두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며, 사원의 유지와 보수에 필요한
모든 예산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으며, 이곳 사원에는 약 450명의 스님들이 생활 하는데 스님들의 생활과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경비도 정부가 부담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도들의 보시가 적은 것은 아니다.
사원으로 들어오는 보시는 모두 오지에 있는 작은 사찰이나 수행처 등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푸나카 드종에는 사브드롱 남걀이 티벳트에서 가져온 관음보살상이 소중하게 모셔져 있다
성스러운 유물로 알려진 관음보살상을 뺏으려고 티벳트군이 침공해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푸나카종 중앙광장에 있는 초르덴
육중한 대문을 통과하니 하얀 초르텐이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우뚝 서 있고,
깨달음의 나무인 거대한 보리수나무 한그루가 넓은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첫 번째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행정을 관장하는 건물로 가로 180m, 세로 72m에 달하는
푸나카 종은 3개의 광장이 있다.
초르덴과 보리수 나무
푸나카종은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곳, 우리말로 하면 두물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모추로 불리는 어머니강과 포추로 불리는 아버지강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푸나카종은 강을 따라 줄지어서있는 나무와 기도깃발 룽다의 펄럭임에
둘러싸여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지금의 모습은 1986년 수해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인데 놀랍게도 복원 비용 전부를 일본이 지원했다고 한다.
보리수나무에 합장을 하고 다시 좁은 통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데,이곳은 종교적인 영역으로 주로 스님이 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황금지붕으로 된 6층 전각에는 '링중 카르사파니Rangjung kharsapani'라 불리는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보물은 샤브드룽이 티베트로부터 가져온 첸라식 관음보살상으로 드룩파와 카규파의
시조와 관계되는 성스러운 유물로서 부탄 사람은 물론 티베트 전체에서 중요한 유물로 알려져 있으며,
17세기에는 이 관음보살상을 빼앗아가기 위해 티베트군이 침공을 해와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푸나카종 광장에서
푸나카 종은 1637-1638년 부탄의 민족적 샤브드룽에 의해 세워졌으며 부탄 전체의 종들 중
두번째로 오래된 곳으로 본래 이름은 풍탕 데첸 포드랑으로 '행복이 가득한 성'이라는 뜻으로
목재 건축물인 까닭에 처음 지어진 이후로 여러차례의 화재와 지진, 눈사태 등으로 복구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푸나카 종도 다른 종들처럼 행정을 관장하는 영역과 종교를 관장하는 영역이 공존하며 불교관련
보물들과 국보급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아름다움에서 뿐 아니라 역사적, 종교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종이다.
300년간 부탄의 겨울수도로 영광을 누렸던 푸나카 종은 샤브드롱이 왕위에서 물러나
은거를 하며 일생을 마친 성이기도 한 곳으로, 샤브드롱 당대에 이 성은 부탄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최고 행정관과 대수도원장이 머물렀던 곳이며, 부탄 초대 국왕 우겐 왕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국왕과 평민이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던 곳
푸나카의 중앙법당은 2011년 10월 13일 현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과 10세 연하의
평민 제선 페마와 아시아판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으로 케사르 왕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필립스
아카데미, 위톤 대학 등에서 유학하였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지성인이다.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 결혼식은 당초 예상을 깨고 매우 검소하게 치러졌다.
왕의 결혼식에는 외국 국빈이나 왕실 사람들은 물론 장관들의 부인조차 초대하지 않았다.
왕은 넉넉하지 않는 나라 살림을 고려하여 부탄 불교예법에 따라 1시간 동안 간소하게 결혼식이 치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푸나카 성에서 올린 동화 같은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국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70만 국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국민들은 국왕의
포스터를 만들고 국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시나 글을 문집으로 만드는 학교도 있었으며,
결혼식이 치러지는 3일 내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축제가 열렸다.
▲ 5대국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중앙 법당(사진AFP)
부탄에서는 국민의 90퍼센트가 결혼 피로연을 따로 열지 않는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피로연처럼 사회적으로 어떤 사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의식에 대한 풍습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같이 살면 결혼을 한 것으로 인정한다.
법률적으로는 관공서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종교적인 의식 대신 친척이나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부탄에서는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없다.
어머니의 강과 아버지의 강이 만나는 이 동화 같은 푸나카 성에서 치러진
국왕의 간소한 결혼식도 화려한 피로연이 없는 검소한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전통혼례에 따라 치러진 국왕의 결혼식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며 화제에 올랐다
벽화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는 푸나카종 스님
푸나카종의 벽화
종교적인 영역에는 연화생 보살인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보물 '페마 링파의 테르톤'과
이 성을 만든 샤브드롱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마치 라캉Machey Lhkang'이라고 부르는
이 사원은 '성스러운 등신불 사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는 이곳을 지키는 두 스님과 대수도원장 제켐포,
그리고 왕만이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침 광장에는 순례객들에게 푸나카종 스님께서 축원을 하면서 실로만든 손목걸이 하나씩을 주신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푸나카종은 그 규모와 역사성, 예술성 등 모든 측면에서 단연 부탄 최고의 종으로 손꼽힌다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고 있는 푸나카종의 모습
푸나카종 난간에서
초르덴과 보리수나무
뒤돌아 본 푸나카종의 모습
노랗게 핀 꽃...열대지방 꽃들은 이름을 모르겠다
남기자와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도 꽃이름을 모른단다
落花
푸나카종을 나오면서 목조다리에서 본 모츄강의 모습
푸나카종 순례를 마치고 호텔로 향하는 길
이튿날에 잘 Zhingk ham Resort
리조트 숙소의 모습
리조트는 소박하지만 참으로 깨끗하고 음식도 참으로 깔끔하다
리조트에서 바라본 푸나카종의 모습
호텔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강이라 불리는 포추강의 모습
注: 추는 강이라는 뜻이다
안개가 자욱한 모추강(어머니의 강)
희말라야 능선에서 밀려오는 구름
산을 좋아하는 범여로서는 히말라야 능선만 쳐다봐도 가슴이 설렌다
히말라야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팔자좋은 넘
리조트에서 바라본 푸나카(Punakha)
푸나카는 1955년 수도가 팀푸로 옮겨가기 전까지 약 300여년 동안 부탄의 수도였다
해발 1,200m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포근하며 포츄(Phochhu)강과 모츄(Mochhu)강이
만나는 이 계곡은 부탄에서도 손꼽히는 비옥한 땅으로, 강을 끼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 주로 쌀농사를 짓는데 1년에 2모작이 가능하고 오렌지와 바나나도 재배된다고 한다
푸나카의 행정 중심지는 두물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푸나카종으로 부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종으로 손꼽히는데, 팀푸에서 동북쪽으로 약 72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는
약 3시간정도 소요된다.
푸나카종에서 1907년 부탄 초대 국왕의 대관식이 치러졌고, 1952년에 부탄 최초의 국회도
푸나카종에서 열렸으며 2008년에는 현재 국왕의 아버지인 4대 국왕으로부터 왕관을 물려받기 전에
거쳐야 할 비공식 양위의식이 열리기도 했다.
푸나카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심지는 1999년 조성된 쿠르탕(Khuruthang)이며 푸나카종 남쪽으로
4km가량 떨어진 모츄강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텔, 상점,식당, 학교 등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리조트에서 도착하여 체크인 하고 식사를 끝내고 룸으로 도착하니 히말라야에 밀려오는
먹구름과 함께 굵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이내 곧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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