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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차 북진(終)

제11구간 - 백암봉에서 빼재까지

by 범여(梵如) 2021. 11. 15.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북덕유 대간길을 걷다

 

☞ 산행일시: 2021년 11월 14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0.7km + 들머리 2.7km / 7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멤버들과 함께

☞ 산행코스: 무주 리조트-설천봉-향적봉-향적봉 대피소-중봉-안부-백암봉-1,425.5m봉-귀봉

                 횡경재-1,230m봉-싸리덤재-헬기장-지(못)봉-달음재-대봉-안부-암봉-갈미봉

                 쉼터-안부-폐헬기장-빼봉-951m봉-빼재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북상면, 고제면 / 전북 무주군 설천면, 안성면

 

어제(14일) 혼자서 대전과 세종시에 걸쳐있는 관암(용수)지맥을 하나를 마무리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이른 아침에 백두대간 북덕유 구간을 가는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무주리조트 설천하우스(09:50)

서서히 코로나라는 역병에서 벗어나는건지 산악회에도 산행에 참석하는 산꾼이 많아진다.

이번에는 30명이 훨씬 넘는 산꾼들이 버스에 탑승한 탓인지 아침부터 왁자지껄하다.

내가 이 산악회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은 탓인지 꽤나 안면이 있는 산꾼들도 있지만

최근에 가입한 산꾼들이 많은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06시 50분에 양재동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만에 무주리조트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한다

무주리조트 케이블카 승강장의 모습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산악회 집행부에서 표를 예매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20분이 넘게 기다린 끝에 설천봉에 오르는 케이블카에 탑승한다

설천봉(雪川峰:1,525m:10:30)

저 아래에 있는 무주리조트와는 전혀 별천지이다.

저 아래는 늦가을 날씨인데 이곳은 꽤나 많은 눈이 쌓여있고 칼바람이 불어오는데 난감하다.

어제 관암(용수)지맥 마지막 구간 17.2km를 걷는데 봄날씨를 방불케 할 정도로 더워서

11월초부터 베낭에 넣고 다녔던 스패치와 아이젠을 베낭 무게를 줄이려고 아침에 베낭에서

빼버렸는데 이렇게 눈이 많이 온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산행을 시작하다(10:40)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초반부터 정체이다.

서서히 길을 걷는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의 나무는 눈에 파묻혀 버렸다...올해 처음으로 제대로된 눈을 구경한다.

몇년만에 보는 눈이던가?...사실 독립군인 범여는 겨울에 深雪 산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혼자 산행을 하는터라 여름에는 강원도나 경북 북부지역의 맥길을 걷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다니기 때문에 이런 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향적봉((香積峰:1,614.2m:10:55)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에 올라서니 칼바람이 불고 날씨는 심술궂은 시어머니상을 하고 있다.

날씨도 생각보다 춥고 모든게 악조건이다...더군더나 아이젠조차 없으니 고민이 많다.

동료 산꾼인 마칼대장이 아이젠 한쪽을 빌려준다...아쉬운대로 임시방편은 될 듯 싶다

마칼대장과 함께 향적봉 정상에서 인증샷

향적봉 정상 1등 삼각점(△무주11 / 1988재설)

마칼 대장한테서 아이젠 한짝을 얻어신고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서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맥길에 미치다보니 심설산행을 해 본지도 오래이고, 무심코 오면서 동료 산꾼들에게 민폐를

안 끼치려고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이젠과 스패치를 빼놓고 온 내가 뭔 지랄인지...

1년에 70여번의 맥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대단한 산꾼이라 자부를 했는데 초보중에 왕초보의

짓거리를 했으니...

향적봉 대피소(11:05)

눈속에 파묻힌 미끄러운 돌계단을 따라 향적봉에서 내려오니 백련사 갈림길인 향적봉

대피소가 나오고 이곳에는 향적봉의 눈산행을 즐기려고 온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라면을 끓이는지 구수한 라면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는데

아침을 먹지않고 온 탓인지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오늘의 대간 들머리인 백암봉으로 향한다

雪害木 (설해목)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 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따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말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 법정 스님 -

늘 듬직한 후배산꾼

선두그룹들은 보이지도 않고 후미에서 호젓하게 걸으며 백암봉으로 향한다

주위가 너무 흐려서 주변의 멋진 설경은 언감생심이다

중봉(中峰:1,593.7m:11:23)

중봉에서 내려서니 칼바람이 불어 대지만 그나마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아쉬운대로 걸을만하다

날씨만 쾌청하면 정말 멋진 그림 하나를 건질수 있어련만...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백암봉 가는 길

안부(11:35)

능선 우측으로는 중봉과 백암봉 사이에서 안성계곡으로 가지를 치고있는 가새봉(1,396m)이 보인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 백암봉으로 향한다

백암봉에 도착하니 약간의 바람이 불고 정상에는 비닐을 쳐놓고 점심만찬을 벌이는 산꾼들이 보인다

나도 예전에는 저런 짓거리를 많이 했제

백암봉(白巖峰:1,503m:11:47)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산꾼들 사이에는

송계사 삼거리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안성 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성 방면으로 피라밋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가새봉이 그 아래 망봉까지 지능선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향적봉과 중봉, 덕유평전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덕유산의 한 가운데이다

백두대간은 이쪽에서 동쪽으로 꺽어졌다가 북향하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으로 뻗어 내린다

구천동으로 내려가려면 중봉 못미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오수자골을 경유한다

흰바위봉이란 뜻인데 바위의 색이 엄격하게는 회색에 가깝다고 한다 

설천봉에서 이곳까지 2.7km를 걸어서 대간의 접속구간에 도착한다.

이곳부터 오늘의 본격적인 대간길에 나선다

선두로 갔던 동료산꾼들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고 후배 산꾼이 건네준 비스켓과

사과 말랭이로 입가심을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백암봉에서 남덕유산쪽을 바라본다

본격적인 대간길을 나선다

능선으로 올라선다...바람으로 인해 능선에 눈은 많지만 산꾼들이 많이 다녔는지 걷는데 큰 불편은 없다

가야할 능선들이 보이고...

잠시후에 가야할 귀봉~지봉(못봉)~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수자굴로 이어지는 이 능선은 핸드폰 전파가 잘 안잡히는 구간인 모양이다

윗쪽의 암봉을 바라보면서...

사면길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우리나라의 큰산에는 어김없이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서...

약간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1,424.5m봉(12:24)

칼날 능선의 정상에는 구조 이정목(덕유 04-11, ←횡경재 1.7km, 백암봉1.5km→)이 있다

1,425.5m봉에서 아침에 지나온 향적봉을 바라본다...이곳부터는 내가 맨 꼴찌이다

동행(同行) / 백천 김 판 출

 

비록 혼자서 걷는

쓸쓸한 인생길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랑으로

동행하는 이가 있다면

 

참으로 살맛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겠지요

 

삐걱거리는 바람에

쓸려버린 그 빈자리에

 

미소가 노을처럼 번지는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순간순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귀봉(1,370m:12:48)

경남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와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귀봉 또는 거봉(居峰)으로도 불리는데 눈이 많이 쌓인 탓인지 별 특징이 없어서그냥

지나치기 좋은 곳으로 구천동계곡 끝에 있어 계곡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곳 이정표는 '남덕유분소(송계사) 4.2Km / 송계삼거리 2.3Km / 향적봉(대피소) 4.3Km‘라 적혀있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눈 덮인 암릉이 있는 철쭉 군락지로 내려간다

횡경재(橫徑峙:1,350m:13.08)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에서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덕유산 안내도와

구조 이정목, 송계사와 그 이외 이정목이 서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횡경재의 뜻은 '가로질러 넘어가는 고개'란 뜻으로 송계사에서 오르는 길과 백련사에서

오르는 길이 만나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덕유산 국립공원 안내도가 서있고 우측 아래로 송계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2008년 추석 다음날 竹馬故友 청안과 함께 무주구천동 펜션에서 1박을 하고, 향적봉~

중봉~백암봉을 거쳐서 이곳으로 내려가 송계사를 참배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지나 버렸구나... 아!...세월의 무상함이여

북덕유산 골짜기를 따라가는 송계사 계곡은 청정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송계사 대웅전...2008년 9월 15일 사진

거창군 북상면 남쪽 덕유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만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로서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대사가 652년(진덕여왕 6년) 영취사(靈鷲寺)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지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이곳에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소실된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때에

진명(眞溟)스님께서 송계암만 중건을 하였는데, 6.25 전쟁때에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에 중창하였다

1995년 원정(圓靜)스님이 1969년 중창때에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門閣)이라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 문각, 요사채가 있다.

 

유물로는 아미타여래좌상과 소종(小鐘) 탱화 3점등이 있고 전통사찰 제57호로 등록되어 있다.

송계사(松溪寺) 전경산의 정기가 강할수록 많은 사찰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덕유산이 그러하다.

덕유산의 강강한 기세를 받아 옛날 무주구천동에 일곱 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북상면 일대에도

일곱 개의 사찰이 있었지만 지금은 송계사만이 고찰로 남아 있다.

송계사 가는 길

횡경재 이정표

1,230m봉(13:16)

이곳부터는 눈이 온 이후로 대간꾼들이 별로 안 다녔는지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변형된 등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싸리덤재(1,300m:13:55)

거창군 북상면 송계사와 무주군 설천면 오수자골을 지나서 백련사로 이어지는고개로

싸리덤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덤'은 경상도 방언으로 바위나 벼랑을 뜻하는데

'싸리덤재'에는 바위가 없고 송계사에서 오르다보면 '수리덤'이라는 바위지대를 만난다.

 

여기서 우측은 횡경재, 좌측은 지봉(못봉)안부로 올라서는 길이다. 따라서 지봉안부로 올라서는 길을

'수리덤에서 넘어가는 길'이라 하여 수리덤재라 하던 것을 잘못 발음해서 '싸리덤재'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먼저 도착한 동료 산꾼들이 늦은 시간에 점심밥상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나 역시 이곳에서 동료산꾼들에게 꼽사리 끼여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14:08)

지봉(못봉)으로 오르는 길

향적봉에서 이곳까지는 그런대로 어영부영 동료 산꾼들을 따라서 왔는데 이곳부터는 

어제 17.2km의 지맥길을 걸었던 여독 때문인지 오르막길에서 급격하게 산행 속도가 떨어진다

어제의 컨디션이 좋아서 대간길을 나섰다마는 몸이 마음만큼을 따라주지 않는구나.

아침부터 걸었던 향적봉에서 중봉~백암봉~귀봉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환상적이다.

싸리덤재에서 송계사로 탈출한 일부 산꾼들을 뻬고는 내가 꼴찌이다.

 

향적봉(香積峰:1,610.6m)은 전북 무주군 설천면과 안성면의 경계에 있는 덕유산의

주봉으로 향기가 쌓여 있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곳의 적상산

'향로봉'에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면 그 향기가 이곳에 와서 쌓이고, 그 향기를

찾아 온 산신들이 기도를 들어줬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높으며 옛적에 광려산(匡慮山) 또는 여산(廬山)으로 불렸다.

이 후 이성계가 고려 명장시절 이 산에서 수도 전념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굴 거렸으나

덕유산의 최정상인 향적봉(香積峰)은 향나무가 많았다한다.

헬기장(14:18)

헬기장에서 남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대간길을 이어간다

헬기장에서 내려오는데 눈길이 생각보다 미끄럽다.

조심해서 안부로 내려왔다가 또 한번을 치고 올라서니...

 정상석이 있는 지봉에 도착한다

지봉(池峰:1304.7m:13:20)

무주군 설천면과 거창군 북상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에 이정표와 정상석, 삼각점이 있다

못봉이라고도 부르는 지봉(池峰)은 연못 ‘池’를 따서 우리말로 못봉이라 부른다

옛날에 이 근처에 큰 연못이 있었다는 유래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이정표에는 송계삼거리 4,9km

신풍령 6,1km가 가리키듯 어느 쪽을 보아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덕유산에는 지봉이 두 곳이나 있어 서로 혼돈하기 쉽다.

 

예전에는 지금에 있는 지봉과 거창군에서 설치한 못봉이라는 정상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창군에서 설치했던 정상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2016년 7월 31일...백두대간 3차 때 나홀로 걸었을 때의 지봉 모습

지봉을 내려서니 가야할 대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인다

바람의 영향 탓인지 능선에는 눈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고

동료산꾼들과의 산행 거리도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이라 민폐를 끼칠것 같아 불안하다.

조금전에 송계사로 탈출한 금물 회장님을 따라갈 것 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이곳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거리다...탈출을 하나 빼재로 곧바로 가나 차이가 없기에 부지런히 걷는다마는

생각과는 달리 몸뚱아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다

싸리덤재에서 올라온 만큼 지봉에서 달음재로 한없이 내려간다

이곳 근처에 있는 삼각점봉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포기를 한다

달음재/월음령(月陰嶺:1,079m:15:00)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주 구천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월(月)을

'달'로 바꿔 표기해서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개’라는 뜻이다.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려면 북서쪽의 백련사에서나 가능한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백련사의 스님이 지어 붙인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월음령의 순우리말이 달음재다.

 

무주 방면인 북쪽의 월음계곡으로 내려서면 만나는 곳이 구천동 구월담(九月潭)이다.
월음(달음)은 '달 그림자'를 뜻하는 데, 구천동 33경 중 하나인 구월담에 달밤이면 이 능선

그림자가 비쳐진다는 것인데 이정표(←신풍령4.7km, →횡경재삼거리 3.1km, 송계삼거리 6.3km)가 있다

이곳으로 좌측으로 내려가면 무주구천동 송어 양식장이 있는 덕유산 휴게소가

나오는 등로가 지도상에는 있으나 국공파들이 출입금지 목책을 쳐놨고 등로도 보이지 않는다

달음재에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야할 대봉이 보이건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오르막길은 가도가도 끝이없고 체력은 소진되고 달음재에서 대봉으로 오르는 길에

선 채로 대여섯번의 휴식을 취한 후에 대봉에 도착한다

대봉(大峰:1263.2m:15:55)

억새밭 등로를 헤치고 올라서니 이정표(←신풍령3.6km, 횡경재 4.2km ,송계삼거리 7.4km→)가 

대봉 정상에 도착한다...대간의 지도와 트랭글 앱에서는 대봉이란 지명이 나오나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명없이 그냥 1263.2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다 

대봉에서 좌측의 북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투구봉(1247.7m)으로 이어지고, 이곳의 

북쪽에도 지나온 투구봉이라 부르는 지봉과 같은 지명이 있어 헷갈리는 곳이다

그래서 흔히 대봉을 '지봉(투구봉) 삼거리’라 부르기도 하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예전엔 대봉이란 조그만 정상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구나.

조금전에 지나온 지봉을 뒤돌아 본다

대봉 동남쪽으로 펼쳐지는 거창군 북상면과 고제면은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잠시후에 가야할 갈미봉의 모습

대봉에서 내려와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그만 무명봉을 통과한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인데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6:08)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건설부 표식 말뚝이 있는 암봉에 도착한다

암봉(16:25)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갈미봉으로 향한다

갈미봉(葛嵋峰:1,210.5m:16:29)

거창군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이정표가 보이는데 아마 이곳 우측 능선아래에 있는

거창군 고제면 칡목마을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봉우리의 형상이 갈모(雨帽:비에 젖지 않기 위해 갓 위에 덮어쓰는

작은 우산 모양의 비 가리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갈미봉을 지나면서 대간길은 북동쪽으로 꺽어져서 빼재로 향한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쉼터(16:45)

한없이 내려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너무 미끄러워 내리막길인데도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동료산꾼들에게 오늘도 밉상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더 힘이 드는 느낌이다

안부(16:57)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폐헬기장(17:05)

예전의 폐헬기장이었던 곳에 데크목 쉼터와 구급약품 보관함이 있는데

이용하는 산꾼이 없는지 낙엽만 자욱하다...국공파들의 전시행정이란걸까? 

쉼터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코 앞에 바짝 선 빼봉이 보이니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안부를 지나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안되겠다 싶어 베낭을 내려놓고 총대장을 맡고있는 후배 산꾼에게 전화를 하여

나 때문에 너무 기다리는 것아서 미안하니 내가 택시를 호출하여 식당으로 갈테니

먼저 식당으로 가라고 하니 ... 기다릴테니 조심해서 내려 오라고 한다

빼봉(1,039.9m:17:25)

지도상에는 1,039.9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지금은 빼봉으로 부르고 있다.

아마 빼재에서 따온듯한 명칭 같아보이며 정상에는 이정목(←빼재 1.0km, →횡경재삼거리6.8km,

송계삼거리 10.0km)과 정상 바로옆에 삼각점 안내판(△무풍 438)과 삼각점이 있으나

실제 삼각점이 너무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나 안내판으로 확인을 한다

빼봉 정상의 이정표

빼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는 무조건 달리다시피 한다

951m봉(17:35)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마음이 급하여 렌턴도 켜지않고 그냥 내달린다

이정표에는 빼재까지 200m라고 써 있건만 왜 그리도 먼지?

간벌지멱을 지나고 빼재 터널이 지나가는 능선을 내려서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나를 기다리는 버스의 불빛이 보인다...행여 내가 어떻게 될까봐 후배가 마중을 나왔다

빼재(920m:17:55)

전북 무주군 설천면과 경남 거창군 고제면을 있는 37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이름이 셋이나 된다.

 

빼재(수령 또는 신풍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 적힌 빼재의 유래를 보면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라고 불렀으며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휴게소는 페업 상태고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고 앞으로 이곳을

관통한 터널 이름 또한 ‘빼재 터널’이다

 

덕유산권의 마지막 고갯길이자 덕유산국립공원의 경계를 이루는 빼재이다.

빼째 이후부터는 국립공원 밖으로 벗어나며 빼재는 수령 또는 신풍령이라고도 한다.

빼재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에 적힌 내용이 빼재의 유래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빼째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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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착하자마자 버스는 식당으로 향하고 나 때문에 무작정 기다려 준 동료산꾼들에게

한없이 미안하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식당에 도착하여 오리 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서울로 향하는데 동료 산꾼들에게 미안하여 얼굴을 못들겠다.

오늘 대간길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