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7구간 - 중재에서 무룡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2. 3. 20.

春來不似春...갈 길을 잃어버린 봄

 

☞ 산행일시: 2022년 03월 20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멋진 상고대...바람한 점 없는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8.2km+들머리 0.4km+날머리0.6km / 4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중기마을-중재-안부-702.4m봉-안부-묘지-709m봉-안부-쉼터-760m봉

                중고개재-안부-873.8m봉-안부-조망바위-안부-암릉-묵계암 갈림길-백운산

                이정표-안부-무명봉-안부-암봉-조망처-안부-1,084m봉-1,086.6m봉 갈림길

                1,086.6m봉-1,085.3m봉-선바위 고개-영취산-무룡고개

 소 재 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장계면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서상면

 

요즘엔 모든게 비정상적인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계절마저 인간들을 닮아서 비정상적이니 삶에 대한 혼란의 연속이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雨水,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立春,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驚蟄이 지난지

오래전이고 이틀후면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다는 春分인데 갑자기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토요일(19일)에 전국적으로 낮은곳에는 비가 오지만, 높은 곳에는 눈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강원도 향로봉에는 70cm이상의 폭설이 내리고, 대관령과 태백같은 곳에서도 눈이 많이 온단다.

사실 이번주에는 몸상태가 좋질 않아서 산행을 쉴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이 보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산행을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하는 편이고 4년전 수술이후 몸뚱아리의 생체

리듬이 변하여 추위에 엄청 약한 체질이 되어버려 겨울에는 춥지않고, 눈이 오지않는

남쪽으로 다니다보니 눈 구경을 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눈구경이 하고픈데 강원도로는 갈 자신이 없어서 남쪽이면서 눈이

많을것 같은 생각이 되는 곳을 찾다가보니 백두대간 길에 백운산, 영취산 구간이

생각난다...이곳은 남쪽이면서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무진장(무주,진안,장수)과

덕유산과 가까운 곳이기에 눈이 있겠지 생각하고 무작정 베낭을 챙겨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함양행 버스표

집을 나와 선릉역에서 05시 44분 첫 차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05분.

계산 착오로 인하여 너무 일찍 도착했다...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터미널 밖을 나와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대합실로 들어와 한참을 멍때리기

한 다음에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34홈으로 향한다

함양과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시간표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

07시에 동서울을 출발하여 함양을 거쳐서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도 버스에 시동은 걸려있고 운전기사도 운전석에

앉아 있는데 승객이라곤 달랑 나 혼자뿐이다...혹시 버스를 잘못 탔나하고 기사분에게

이 버스 함양가는 것 맞아요 하니 맞다고 한다...그러면서 하는 말...

‘오늘은 손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하는게 아닌가...내가 기사분에게 괜스레 미안해 하니까

어차피 손님이 한명도 안 계시더라도 버스는 가야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함양버스 터미널(10:05)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자마자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서상I.C를 지난다...잠시후에 정신을 차린 다음에 함양터미널에 도착한다

함양터미널 버스 시간표

함양군 개인택시 연락처

터미널앞에서 택시를 타고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로 향한다.

이 기사분은 대간 산꾼들을 많이 태우고 다녔는지 산길에 대한 정보가 빠싹하다.

웬만하면 길이 좋은 중기마을에 내려줄텐데 중기마을에서 중치 아래에 있는

외딴집까지 길이 별로 좋지 않은데도 그곳까지 태워준다...사실상 나홀로 다니는

산꾼에겐 산행을 끝내고 귀경하는 교통편이 늘 걱정인데 0.6km의 거리를 줄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중기마을 외딴집(10:35)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 있는 중기마을은 운산리 맨 끄트머리 백운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중재(중기마을)에는 바람둥이 소금장수가 보따리 장사처럼 바람처럼 왔다

갔는데 어느 과부가 소금장수의 감언이설에 정을 주어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산달을 4개월 앞두고 소금장수가 다시 왔길래 과부가 임신 사실을 말하니

결혼할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주막에서 주모와 정쌓기를 하고 밤새 몰래 동네를 빠져나가다가

연못(沼)에 빠져 죽었는데 중기 마을에서는 이 소(沼)를 소금쟁이 소(沼)라고

부르며 과부도 해산하다가 아이와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10:45)

중재가는 임도 주위에는 고로쇠물을 받는 물통이 보인다

임도에서 바라본 월경산의 모습

월경산(月鏡山:980.4m)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약 300m정도 떨어져 있는 산으로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약 200년쯤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와 지지리 계곡에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 달빛이

밝아 밖을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유난히 보름달이 빛을 더해  고향생각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월경산이라 불렀고 살던 마을을 광대동(廣大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중재(中峙:650m:10:55)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백운산과 월경산 사이에 있으며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복성이재 12.1km 백운산 4.6km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있고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조금전에 지나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2016년 11월 27일 백두대간 3차 때 이 길을 지났으니 벌써 5년도 훨씬 넘어 버렸구나.

세월은 저만치 가버리는데 나만 아직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중재에서 대간길을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深雪산행이다.

올해들어 처음으로 눈길을 걷는데...이곳을 오길 정말 잘했다는 느낌이다

안부(11:00)

안부를 지나면서 산죽길이 시작된다

702.4m봉(11:03)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이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가버린다.

그러나 명색이 정통을 자처하는 범여가 이곳을 안 오를수가 없제...

정상에 들렸다가 등로가 보이지 않는 좌측의 등로로 내려간다.

안부(11:05)

안부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백운산의 모습

우측 아래로는 아침에 지나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가 보인다.

 

함양군(咸陽郡)은 경상남도 서부에 있는 군으로 남쪽으로 지리산 국립공원이 위치한다.

경상남도의 서쪽, 지리산 북쪽에 위치한 고을로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으로 된 이 지역의

고산 준령이 많고 덕유산·기백산·지리산 등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팔량치(520m)·육십치(640m)의 고개가 있어 전라도와 연결되며, 남강의 상류

위천·임천 등이 흐르며, 북부의 안의분지와 남부의 함양분지는 비교적 넓은 침식분지이다. 

 

신라 때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군(含郡)이라 하였으며,경덕왕때 천령군(天嶺郡)으로 고치고

운봉현과 이안현의 두 영현을 두었다...그 후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鍊使)를 두었다.

 

고려 현종3년(1012년)에 강등하여 함양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후에 함(含)을 함(咸)으로 고쳤다.

한때 현이 되었다가 1395년 조선 태조 4년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예로부터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선비와 충효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담양, 구례와 함께 정자문화로도 유명한 곳이다

 

함양 출신의 인물로는 조선시대 성종때 대학자인 정여창과 문장가인 유호인이

함양출신이고, 근세에는 소설가 이외수, 축구선수 하석주가 이곳 출신이다

이곳 출신은 아니지만 서상면 옆에있는 안의현감(安義縣監)으로 지낸 연암 박지원이 있다

묘지(11:06)

오늘 산행지를 택한것은 어쩌면 신의 한수이다.

이렇게 나홀로 대간길을 독점하여 걷는 이 기분...독립군의 여유가 아닌가...

생강꽃이 피다가 눈 폭탄을 맞았다.

春來不似春

709m봉(11:08)

無心으로 걷다보니 무명봉에 도착한다.

이름없는 이 봉우리도 대간길의 일원이리라...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지지리 계곡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눈 속의 생강꽃을 만난다.

행여 雪中 福壽草라도 만날까 싶어 이리저리 눈알을 돌려봤지만 

만날길이 없어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내 앞에 누군가가 한사람이 지나간 모양이다.

앞서간 대간꾼의 발자국이 반갑고 정겹기만 하다

갑자기 우측에 사람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머리가 쭈빗하게 선다.

나홀로 산행을 하는 산꾼들은 다들 똑같은 느낌이겠지만 산에서

사람을 만날때가 가장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자세히 보니 산주가

고로쇠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나무에다가 호스를 설치하는 중이다

안부(11:16)

눈 속에 파묻힌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쉼터(11:22)

중생이 살다보면 늘 쉼이란게 필요하지...

그런데도 대간꾼들이나 맥꾼들은 대부분이 산에만 들어서면 그걸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미친듯이 앞만보고 달리다가 산행이 끝나고 나면 앞사람의 등산화 뒷축만 본 기억밖에 없제.

그래서 쉼터라는게 필요한 것인데,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산꾼들이 많은 듯 하다.

중고개재 가는 길

다시 눈 속에 묻힌 완만한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산죽길을 지나서...

760m봉(11:32)

중고개재를 향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멋진 눈산행을 하지만 오늘은 바람도 불지않고 춥지 않아서 너무 좋다.

호젓하게 홀로 걷다보니 중고개재로 내려선다

중고개재(衆峙:755m:11:34)

동쪽은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에 이어지고, 서쪽은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에 이어지는

고개로 조금전에 지나온 중재와 이름이 비슷해서 산행하는 사람들이나 지방 주민들도 자주 혼돈하는 곳이다.

 

고개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시대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華果院)이 이곳에 있으며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를 절고개라 하였는데

이 절고개가 중(스님)들이 많이 넘나드는 고개라 하여 중(衆)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용성스님은  장수군 번암면 출신으로 3.1독립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 대표 33인중 한 분이다.

진종(震鐘) 백용성(白龍城) 대선사(1864~1940)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서 탄생하신  백용성 대선사는 16세 때 해인사로 출가하여 화월화상을

은사로 혜조율사를 계사로 수도 정진하였으며 한일합방 후 국권 침탈을 일본에 대항해서

불법(佛法)에 의해 민족을 구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선농불교의 대각사상을 바탕으로

독립계몽운동에 온 힘을 다 기울렸다.

 

1919년  독립선언 33인에 만해(卍海) 한용운 선사와 함께 불교대표로 서명하여 3.1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그로인해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혐의로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악명높은 서대문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출옥 후에는 불교종단 정화에 힘을 쏟았다.

 

1927년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 자락에 화과원(華果院)을 설립하고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을

통한 민족구제 및 사원경제 자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기지로 활용하면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운산리쪽에는 서낭당같은 흔적의 돌무더기와 노거수가 보인다.

지난해 발간된 용성평전(龍城評傳)

이곳에는 용성선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올해가 백용성 선사가 탄생하신지가 158주년이 되는 해이고

불가(佛家)에서는 용성선사에 대한 각종 행사들을 많이 준비중이다.

범여도 용성평전을 발간할 때 설판(說辦)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 한자루 주장자가

하늘에 있으면 법도가 되고,

땅에 있으면 형체가 되고

 

산에 있으면 맹호가 되고

물에 있으면 교룡이 되는데

산승의 손 안에 있으면

무슨 물건이 되는가?

 

용성선사의 어록중에서

중고개재를 지나서 백운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이 시작된다...아주 여유롭게...

사실 오늘 산행은 당일치기 대간꾼에는 가장 짧은 구간이다.

날머리인 무룡고개에 일찍 내려가면 서상으로 가서 15시 50분 서울가는 버스타면 되고,

늦으면 장계로 가서 16시 50분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면 되니까...서두를 이유가 없다. 

안부(11:48)

언제 지나간 지 모를 선답자의 발자국...여유롭게 나홀로 걷는 대간길...딱 내 스타일이다.

873.8m봉(12:02)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를 따라서 노랠 흥얼거리다 보니

지도상에 족보가 있는 873.8m봉이 나온다...대간길을 3번이나 했는데도

예전에 모르고 무심코 지나갔던 봉우리이다...지맥길 산행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족보있는 봉우리임을 알리는 봉따먹기 大家(?)들의 띠지 한장도 안 보인다.

대간길에 있다고 해서 역차별 받는 것은 아닌지?

봉우리 아래로 내려서니 백두대간만 20번 가까이 타신 전설적인 아름다운강산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안부(12:06)

백운산을 향하는 본격적인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재에서부터 이곳까지 보이던 앞서가던 발자국이 지지리쪽으로 내려가 버리고

백운산 오름길 쪽은 앞서간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지는 않아서 러셀에 대한 큰 고민은 하질 않는다. 

눈이 쌓인 양이 30cm정도는 되어 보인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밟으며 들 한 가운데로 걸어갈 땐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결코 어수선하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따라 오는 나중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의 詩

등로 가운데가 아닌 눈이 없는 옆쪽으로 올라간다.

조심스럽게 능선으로 올라간다.

반갑습니다...아!...이게 누구십니까?

예전에 안내 산악회에서 지맥길을 같이했던 마루님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난 처음에 누구신지 몰랐는데 마루님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송백산악회 대간팀을 따라서 왔다고 한다.

인증샷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다음에 헤어진다

마루님과 헤어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또 한명의 산꾼을 만난다.

이 영하님

난 기억이 없는데 먼저 ‘범여님 반갑습니다’라고 나에 인사를 건넨다.

서로 통성명을 하다가 보니 예전에 공작산 아우와 함께 대간길을 같이 걸었던 멤버이다.

나를 보고는 홀로 산행이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나도 산악회를 따라서 다니고 싶은데

민폐라 못 갑니다...그날 몰라봐서 죄송했습니다...산행을 끝내고 공작산 아우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젊은것이 밥은 안 굶고 잘 살고나 있는지?

암릉구간을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눈을 뒤집어쓴 채로 산꾼 범여를 반긴다.

12년동안 4번째 걷는 대간길이지만 늘 初心을 잃지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

간사하고 시시때때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인간들과는 달리 변함이 없어서 좋다.

백운산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오르막 능선을 올라간다.

눈이 많이 쌓여있긴 해도 아이젠을 착용한 탓인지 등로는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다.

다만 불편하다면 아이젠에 자꾸만 붙는 눈이 성가시다.

 

그러나 어쩌랴.

한가지가 편하려면 한가지가 불편한 건...인간사에 삶의 이치가 아닌가.

조망바위(12:40)

날씨가 좋을때 이곳에 올라서면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흐린 날씨에

구름으로 인하여 지리산은 고사하고 바로 좌측에 있는 장안산도 잘 보이지 않는구나.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지지계곡(知止溪谷)(전북 장수군 번암면 소재)

 

이 계곡은 번암면 지지리와 장계면 대곡리 상단이 서로 면계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한 맥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정맥은 장안산으로 이어진

협곡에서 시작하여 지지리, 동화리,남원, 구례, 곡성을 지나 삼백리 하동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의 최상류임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km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지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인 고로쇠 나무에서 2~3월에는

고로쇠물을 채취해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두릅,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표고 버섯, 한봉등이 채취되고 있다고 한다

조망바위를 지나면서 등로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직진 능선으로 올라갔는데 산림복원이란 명분으로 등로를 좌측으로 돌려놨다.

엉터리 이정표

중재에서 이곳까지 3km 이상을 걸어왔는데 1.7km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백운산이 가까워질수록 멋진 상고대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 산행의 선택은 어쩌면 신의 한수인 듯 싶다.

중고개재에서 빡센 오르막을 치고 올라선 다음 백운산으로 향하는 조금 편안한 길을 걷는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배려한 이 선택...

계속 힘들게 빡센 오르막만 있으면 누가 산에 오겠나...적절한 高低가 있어야지

안부(12:50)

이 멋진 상고대...나홀로 즐기기엔 너무 아깝다

암릉(12:58)

암릉 우측이 대간길인데...

생태계 복원중이라는 이유로...

좌측으로 우회길을 만들어 놨다.

암릉구간을 지나...

대간길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산죽길을 지나고...

와!...멋지다...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철계단 위로 올라간다

환상적인 상고대 터널을 지나니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묵계암 방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묵계암 갈림길(13:20)

하산길이란 백운리(묵계암)로 내려가는 길을 말함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백운산의 중봉과 끝봉(하봉)으로 연결된다.

백운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함양쪽으로 중봉과 끝봉(하봉)으로 연결되는 連山이다

갈림길에 있는 묘지는 눈 속에 묻혀 살아 생전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오롯히 安樂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인생사에 에 세상에 태어나서는

반드시 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이치를 모르고

왜이리 아둥바둥 사는지?...그게 다 욕심이고 집착 때문인데...

 

이 세상에 왔다가 저 세상을 가지 않았다는 자는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다.

위대한 聖者였던 석가, 공자, 예수도 갔고, 돈많은 재벌들도 다 가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저승갈 때 입는 壽衣는 주머니가 없지 않은가...

묘지에서 바라본 백운산 중봉의 모습...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상고대 터널을 지나니...

넓은 공터로 되어있는 백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운산(白雲山:1278.9m13:23~35)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백전면에 경계를 하고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넓은 공터에 커다란 정상석과 또 다른 작은 정상석과 이정표, 삼각점 등이 있다

 

백운산의 이름은 흰백(白), 구름운(雲)을 써서, 산이 높아서 산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감싸안고 있는 산이라 뜻이다. 백운산의 물줄기는 서쪽은 백운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은 옥산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쪽으로는 장안산과 대봉산(괘관산), 북쪽에는 깃대봉과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월경산과 봉화산 등이 보인다.

백운산을 만산홍엽의 가을 단풍과 금상첨화로 산허리마다 흐드러진 갈대와 싸리나무,

리고 산죽이 한데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이루는 산으로 유명하다.

북한산의 백운대를 비롯하여 한북정맥의 백운산(포천), 한남정맥의 백운산(경기도 의왕시와 성남시의 경계),

호남정맥의 백운산(광양), 낙남정맥의 백운산(사천),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밀양 백운산 등등 수없이 많다.

국토지리 정보원에 수록된 약 6,000여개의 산 가운데 백운산이라 명명되는 산만 해도 약 4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아마도 깃대봉, 국사봉과 함께 가장 흔한 지명이 백운산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백운산이 존재하지만 백두대간 상에는 오늘 오르는 백운산이 유일하다.

왜 백운이라고 불리워졌을까? ‘白雲’이라는 말은 ‘밝은’의 음차에서 유래되었다.

산 이름에 ‘밝은’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옛사람들이 산을 속세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마다 산신령 운운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 함백산 등도 결국 같은 ‘신성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특히 윤제학님은 그의 대간 산행기에서 백운산에 올라서면“왜 백두대간이 이 땅의 등뼈인가를

털끝만큼의 의심 없이 실감하는 순간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백운산 정상 삼각점(△함양308)

옛 지도에는 백전산이란 지명도 보이는데 백전산 계곡이 중국의 도화원기(桃花原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 흡사하다고 극찬하였는데, 그러나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여비고(東輿備考)의 지도에는 함양 백운산으로 확실하게 표기가 되어 있다.

먹구름이 조금씩 거치면서 중봉과 하봉쪽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정표는 대간 산꾼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함양군 사람들 위주로 되어 있는듯 하다.

이정표에 표기된 빼빼재는 서래봉으로 가는 길 방향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함양군 서하면과

백전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또다른 이름으로 원통재, 후해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명의 유래는 재의 아랫마을에 살던 중국 사람이 그곳을 중국 말로 북쪽 고개라는 뜻의 베이재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북(北)의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하면 '빼이'다. 빼~이재가 빼빼재로

변한 것 같다

커다란 정상석 뒷쪽애는 앙증맞은 정상석과 삼각점 서래봉으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중에 생긴 커다란 정상석에 옛 영화(?)를 빼앗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조그만 정상석을 좋아한다.

 

이곳은 백두대간길 중에서도 아주 조망이 뛰어난 곳 중에 한 곳인데 범여의 德이 모자람인가.

오늘은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날씨가 좋다면 남쪽으로는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세래봉과 대봉산(옛 지명:괘관산), 서쪽으로는 우리나라 8대 종산중에 하나인 장안산, 그리고

북쪽으로는 영취산과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이 거침없이 보이는 一望無際인데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랴...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인 걸.

오늘 멋진 深雪 산행을 했는데 멋진 조망까지 바라면 탐욕이겠지.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가져온 떡 하나와 두유로 점심을 대신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정표(13:38)

중재에서 백운산까지의 빡센 오르막길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계속되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夢幻的 霜固臺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산죽길을 만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초반과는 달리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이 딱딱하여 아이젠에 눈이 붙지 않아 편안한 걸음을 한다.

눈이 많이 왔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딱 내 스타일이다.

안부(13:44)

무명봉(13:50)

산죽길에 뭍혀서 봉우리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곳이다.

해발 1,100m가 넘는 곳이지만 그저 밋밋한 무명봉에 불과하다

다시 산죽길 사이로 이어지는 대간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눈속에 묻혀버린 서래봉(西來峰:1.075.7m)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함양군 서상면과 서하면, 백전면의 경계에 있는 서래봉의 지명유래는 당나라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徐福)이라는 자가 불로초를 캐기 위해 왔던 곳이라 하여 서래봉(徐來峰)으로 불리고 있다.

제주도의 서귀포와 명칭 유래가 유사한 지명이다.

안부(13:54)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암릉구간을 오르는데 이곳은 생각보다 미끄럽다.

좌측으로 우회길이 보이지만 직진의 암릉으로 올라간다

암봉(13:56)

이곳에 올라서니 동쪽으로 남강(진양)기맥의 거망산(擧網山:1,184.0m), 황석산(黃石山:1,192.5m)

금원산(金猿山:1,353m), 기백산(箕白山:1,331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눈구름에 가려 전망은 꽝이다.

저 능선은 서울의 불수사도북이나 대전의 보만식계와 같이 종주코스로 유명한 곳으로

20여년전에 저 곳을 종주할 때만해도 봄날이었는데...가는 세월이 무심하기만 하다

암봉에서 내려서니 조금전의 편안한 우회길과 합류를 한다

또다른 암봉을 지나고...

안전 로프지대를 지나니 시야가 조금씩 확보되기 시작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영취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는 743번 지방도가 지나는 지지리골 위로 금.호남정맥의 주봉이라

할 수 있는 장안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 오지만 흐린 날씨에다 먹구름 땜에

모든게 흐릿하지만 이것 자체를 볼 수 있다는게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조망처(14:00)

조망처에서 바라보니 서래봉(西來峰:1,075.7m)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계관봉(鷄冠峰)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어 버린 대봉산(大峰山:1,254.1)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요즘 인간들 세상에서도 개명(改名)이 유행인데 산도 인간들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승리가 좋다지만 원한을 가져오고

패한 자 괴로워서 오늘도 누워있네

이기고 지는 마음 영원히 녹아지면

다툼은 없어지고 저절로 편해지리

 

허공에 비친 저 달 그림자 자취 없듯이

이 세상 어느것을 영원하다 하리오

덧없는 고개에서 이 고요 찾아보니

 

태평가 장단맞춰 너울 너울 춤을추네

만족을 아는 사람 땅 위에 

누웠어도 편안하지만

분수를 모르는 자 천당에 있더라도

편하하지 아니하네

 

만족을 못 느끼면

재산이  많더라도 가난함이요.

분수를 지키는 자는

가난하더라도 부자 마음이라오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남덕유산은 눈구름에 가려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20여일전에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신.구 권력의 교체 시기에 있는

정국처럼 모든게 예측이 불가능하구나.

 

새로운 대통령이 됐으면 거기에 합당하게 인수, 인계를 하면 될 것을...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예전에 YS와 DJ가 정치적으로 그렇게 앙숙이었지만 깔끔하게 인수, 인계를

합의했는데 요즘 정치하는 자들의 그 분들의 뒷굼치도 못 따라가겠다.

그 분들에 비해서 정치적으로는 아직 한참 멀었다...아니 영원히 못 따라갈

벤뎅이의 소갈머리...저 자들의 이해관계...과연 민초들을 위한 것인지,

자기들의 잇속 챙기기인지 안봐도 비디오다

하기사 지난번 대통령 후보로 나온 어떤자의 공약이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다”는

그 말이 백번 지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멀쩡한 사람들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다들 양아치질이니...

안부(14:14)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084m봉(14:18)

이정표에는 백운산과 영취산의 거리가 각각 1,7km란다

초반에 비해서 영취산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산죽은 솔잎과 마찬가지로 약알카리성으로 대나무과 식물에서 가장 작고 약성이

강하며 한반도 중부 이남지역에 주로 자생하며 조릿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항암제, 당뇨병, 고혈압, 위궤양과 화병(火病)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항암 치료로는 가지 씨앗을 볶고, 산죽 뿌리를 잘말려 다려 먹으며 좋고

산죽잎을 잘 건조하여 잘게썰어 물에 타먹으면 여름 더위에 특효라고 한다

1,086.6m봉 갈림길(14:26)

대부분의 대간꾼들이 좌측의 능선위에 있는 족보있는 1,086.6m봉을 패스하고

우측의 우회길을 향했는지 아무도 지나간 발자국들이 보이질 않는구나

그래 나라도 가야지 어쩌겠나...전망좋은 곳(1,086.6m봉)이라 표시를 해놓고

우회를 하라는 것은 또 뭔소리여...요즘의 세상사가 갈수록 헷갈리는구먼...

1,086.6m봉에 올라서니 멋진 금강송 한그루가 범여를 반겨주는구나...찾아줘서 고맙다고...

1,086.6m봉(14:30)

1,086.6m봉에서 조금전에 지나온 백운산을 바라본다

1,086.6m봉에서 바라본 서래봉의 모습

가야할 영취산이 夢幻的 분위기로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곳으로 오늘 산행지로 정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조금전에 헤어진 우회길 등로로 내려선다...1,086.6m봉 입구와 출구의 안내판이 넘어져 있다

호젓하게 걷는 이 길... 나혼자 즐기기엔 너무나 아깝다.

생태복원이라는 명분아래 대간길을 사면으로 돌려놨다.

생태복원이라는 취지에 추호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산꾼은 FM대로 걸어야 제 맛인데...

사면길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눈속에 묻혀버린 고엽(枯葉)도 멋진 예술로 보이는구나

안부를 지나면서 만난 구조 이정표지판

눈 속에 묻혀버린  나무계단을 따라서 올라간다.

1,085.3m봉(14:43)

이정표(←백운산 2.7km →영취산 0.7km)와 쉼터의자, 헬기장인 듯한 넓은 공터가 있다

귀엽다

상고대가 환상적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육안으로는 선바위(立石)가 보이나 상고대 때문에

똑닥이 카메라로는 잡히지 않아서 조금은 아쉽다

안부로 내려선다...넓은 공터에 좌측으로 선바위로 가는 길이다

선바위 고개(1,040m:14:52)

에전의 대간길에 있었던 선바위고개라는 이정표는 사라지고 새로운 이정표 2개가 서있다.

이곳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100m정도만 가면 선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귀경길 교통편이

어쩔지 몰라서 그냥 영취산으로 향한다.

 

일반적으로 바위가 않고 서 있어‘서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선바위’,

즉 한자로 표기하면 ‘立石’이라고 하는데 전국의 산에서 자주 만나는 바위이다

다만, 서울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는 ‘禪巖’이라고 부른다

선바위 고개에 있는 또다른 이정표

백운산에서 선바위까지는 주위에 조릿대로 알려진 산죽으로 온 산이 뒤덮여져 있는

모습이 꼭 한라산구간 백록담에서 관음사 내려오는 곳과 비슷한 식물 분포도이다

이 지역 지자체가 했는지 서부지방 산림청에서 했는지는 몰라도 등로를 잘 관리하여 걷기는 편안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백두대간은 정맥길에 비해선 고속도로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금.호남정맥길의 마루금과 저 북쪽의 남덕유산과 서봉이 이어진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영취산 가는 길

안부를 지나서 돌계단을 올라서니 영취산 정상이 나온다.

영취산(靈鷲山:1075.0m:15:07~10)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주위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은 뒤 설법을 하시던 곳이 영취산(영축산이라고도 함)이다.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영취산이라고 하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다  

 

영취산 하면 철쭉으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나 양산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취산을 떠올리며 대간상의 영취산은 산꾼들 사이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영취산 또한 예사롭게 여길 수 없다.

특히 백두대간의 학습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두대간은 山自分水領 원칙에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은 정맥과 함께 10대강을 나눈다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 유역을 나누는 곳은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속리산 천왕봉과 금남호남정맥을 낳는 이 곳 영취산 등 단 두 곳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낙동강, 금강, 그리고 한강(남한강)의 유역을 가르며, 영취산은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유역을 나눈다.

그래서 이 두 곳을 三派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취산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삼각점(함양 309, 2002 복구)이 있다.

그리고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1,075.6m/(북쪽)깃대봉 7.5km, (서쪽)무령고개 0.4km,

(남쪽)백운산 3.8km'라 적혀 있고, 또 하나 서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육십령 11.8km,

 중치 8.2km'라 적혀 있다. 그리고 장수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낙동강, 금강, 섬진강 분수령'이라 적혀 있으며,

육십령 약 11km(7시간), 장안산 약 3.5km(2시간), 백운산 약 3.5km(2시간), 샘터(무룡궁) 약 0.5km(30분)이라 적혀 있다.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면 이 비는 정상석과 부딪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즉 낙동강 유역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빗물이 정상석과 부딪쳐 섬진강 혹은 금강유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섬진강에 스며들어야 할  빗물이 금강 혹은 낙동강 유역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운명은 뜻하지 않게 바뀔 수 있다” 는 인간세상의 원리와 너무나도 닮았다.

영취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지난 1월 23일 무령고개에서 육십령 구간을 걸었으니 2개월만에 영취산에 다시왔다.

범여 개인적으로는 이곳 영취산이 참으로 감회가 깊은 산이다.

내가 백두대간이란 것을 처음 알려준 산이기도 하다.

 

사연은 이러하다... 옛부터 산을 좋아하긴 했지만 맨날 가는 산이라곤 북한산이다.

1년에 40번정도는 북한산을 갔을정도이니  알만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도봉산이였는데

같이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김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삶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던 중에 어느 친구가 백두대간 한번 가보자고 하여 따라나선 첫 구간이 이곳

영취산에서 육십령 구간이었다... 그땐 백두대간이 뭔지도 모르고 따라 나섰는데

그 친구는 중간에 포기하고 난 그 해(2009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산에 돌아다닌게 오늘까지 왔다.

눈사람의 모델장소가 되어버린 영취산 정상 삼각점(△함양 309 / 2002 복구)

영취산에 도착하니 인천에서 오셨다는 산객 한 분을 만나서 인증샷을 부탁하고

사진 한장을 남긴 다음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무룡고개로 내려간다.

인천에서 오셨다는 산객...장안산으로 가실거란다.

무룡고개로 내려서면서 택시를 부를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이 분이 무룡고개 주차장에 차량들이 많으니 그 곳에서 히치를

해보라고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하고 무룡고개로 내려간다

사실...앵벌이(히치)는 내 전공인데...ㅋㅋㅋ

계속되는 내리리막길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서니...

무룡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로 안내센터에는 문이 굳게 잠겨있다.

무룡고개(930m:15:25) 

대부분의 지도에 '무령고개'로 표기되어 있는 무룡고개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 경계에 위치해 있다.
해발 930m의 높이로서 장안산(1075.6m)과 영취산(1236.7m)이 만나는 안부의 고개다.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이란 이름으로 이 고개를 거쳐서 장안산으로 넘어간다.

 

무룡(舞龍)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무룡궁(舞龍宮)이라 부르는 큰 명당에서 연유한 것으로 본다.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 한다.

 

또한 선인들은 호남인의 재질과 예기가 이상의 무룡궁의 산경에서 부터 보았다는 것이다,
무룡궁의 산세가 힘차게 치솟아 장안산에 좌정한다. 그러므로 장안산은 호남과 호서의 조산이며 진산이다.
무룡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서북으로 금강의 최상류지대이며, 서남은 섬진강의 최상류이고,

동남은 낙동강의 상류지대가 된다.
장안산과 영취산을 이어주는 무룡고개는 풍수지리학상으로 입수(入首)라 표현하는데

이는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 무룡고개에는 연산군 때 역적으로 몰린 유자광이 참수된 후에

금부에서 그의 뒤를 추적한 결과 조상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묘소 덕분으로 왕후장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나졸을 보내 묘소를 파헤쳤다는 설이 있다.

 

장수군은 '무진장'이라 불리는 전북 3대 오지 중 한 곳이다. 
게다가 무룡고개는 장수에서도 오지 취급을 받았으므로 그야말로 오지 중 오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찿기가 얼마나 어렵고 외졌던 곳인가를 이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가는 길목의 안내판

무룡고개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벽계쉼터(15:27~16:00)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벽계쉼터라는 국수집이 보이는데 영업중이다.

산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지 않았던 관계로 배가 많이 고프다.

이곳에서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허기를 면하고 쥔장이 서비스로 주는 커피 한잔을

마신 다음에 쉼터를 나온다.

벽계쉼터를 나와서 조금을 기다리니 무룡고개에서 차량 한대가 내려오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단박에 세워준다...貴人의 도움으로 장계 버스 정류장까지 편하게 왔다

장계시외버스 공용터미널(16:20)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모습

장계버스정류장 버스 시간표

장계발 → 서울 남부행 버스 시간표

장계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한 다음에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버스를 기다린다.

장수읍내에서 출발한 버스는 16시 50분에 장계에 도착하고, 안성과 무주까지는 19번

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무주에서 마지막 손님을 싣고 무주i.c에서 고속도로롤 들어선다.

날씨 탓인지 고속도로는 그렇게 정체되지 않고 편하게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