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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6구간 -복성이재에서 중재까지

by 범여(梵如) 2022. 4. 25.

남은 餘生을 오늘처럼 꽃길만 걸을 수 있을라나?

 

☞ 산행일시: 2022년 04월 2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더움...옅은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12.5km+날머리1.6km / 5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복성이재-매봉-데크목 전망대-치재-봉수정-안부-암봉-안부-715m봉-꼬부랑재

                쉼터-무명봉-안부-쉼터-무명봉-다리재-안부-봉화산-안부-봉화산 쉼터

                연비지맥 분기점-무명봉-조망바위1-무명봉-암봉-935.9m봉-무명봉-조망바위2

                안부-955m봉-너럭바위-안부-무명봉-927.1m봉-안부-광대치-상광대치-약초시범단지

                963.7m봉 갈림길-무명봉-월경산 갈림길-월경산-다시 월경산 갈림길-855m봉

                무명봉-무명봉-안부-820m봉-안부-중재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아영면 / 장수군 번암면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이번주 토욜(4/23)에 예전에 가끔 다녔던 산악회에서 복성이재에서 중재까지 산행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와서 4번째 대간길에 이 구간을 안했기에 땜방을 하려고 생각하고 산행 신청을 하고

산행을 준비하려는데 지금 공사를 하고있는 현장에서 쥔장이 자기가 토욜밖에 시간이 없으니

토요일날 낮에 추가 공사에 대한 미팅을 하자고 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그렇다고 생업을 내팽개치고 산행을 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 토요 산행을 포기한다.

40년간 해 온 이 일...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는게 늘 즐겁기만 하다.

지금이야 자재값이 폭등하고, 인건비도 천정부지라 큰 돈이야 벌 수 없지만 이 나이에 남자가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자체에 큰 즐거움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토요일 점심때부터 3시간정도 고객과의 상담을 하니 녹초가 되는 느낌이다.

원래 계획은 토요일에 산행을 하고 일요일에는 초파일도 얼마남지 않아서 평소에 인연이 있는 

스님들이 주석하고 계시는 절집을 돌면서 등 하나씩 달려고 있는데 모든게 계획이 틀어졌다.

지난주에도 오랫만에 1박2일간 골프투어를 갔다오는 바람에 산행을 하지 못해 몸이 무겁기에

사무실에서 일찍 퇴근하여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일요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인월행 버스표

동서울터미널에서 07시에 지리산 백무동으로 출발하는 첫 차를 타고 평소의 습관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일어서니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이다.

기사가 이곳에서 20분간 정차한다기에 이곳에 충무김밥 하나를 사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인월로 향하는데 차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심한지 山河가 먼지에

뒤집어 쓴 것처럼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지난 3월 20일에 백운산으로 갈 때는 이 버스를 나혼자 함양까지 타고 왔는데 오늘은

7~8명이 버스를 타고 왔다가 함양에서 다 내리고 나말고 등산객 한명이 인월로 향하는데

버스가 함양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바람에 예상시간보다 10분정도 늦게 인월에 도착한다.

인월공용 터미널(10:30)

인월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로 타고 들머리인 복성이재로 향하는데 20분만에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남원시 동쪽에 위치한 인월(引月)이란 지명은 고려말 황산에서 승리를 거둔 이성계는 도주하는

패잔병을 뒤쫓아가며 섬멸하였는데, 날이 저물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자 ‘달(月)을 당겨놓고

밤늦게’까지 왜적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웠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월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이성계가 바람을 끌고 다니며 싸웠다고 하여 인풍(引風)이라는 지명도 생겼다.

복성이재(複星峙:550m:10:50)

남원시 아영면 흥부가 살았던 마을이라고 알려진 성리와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복성이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복성(複星)마을에서 연유되어 생긴 이름인데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만 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으로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농로도 제대로 없었다.

엣날에 변도탄이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는데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糧官)으로 있었다.

어느 날 천기를 보고 삼년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잇을 것을 알았다. 앞으로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 했으나 평화시에 흑세무민(黑世誣民)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하는 수 없이 피난처를 물색하던 중 지리산을 의중에 두고 천기를 보니

북두칠성의 복성(複星)이 갑자기 남쪽에서 비치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다가

별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이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웃복성마을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을 했으며 전란 후에도 머물러 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같이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대구에 있는 국제라이온스클럽 356-A지구의 지구 산악회를

하는지 관광버스 여러대가 라이온회원들을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이고,

산행을 시작하는 마지막 라이온스 회원들이 매봉으로 출발하기에 같이 가다가는 

번잡할 것 같아서 조금을 기다렸다가 전부 다 산으로 사라진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0:55)

북진하는 복성이재 들머리에는 예전에 없었던 안내판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안내판에 해발고도가 601.4m라고 적혀 있는데 전혀 믿음이 안간다.

산행 초입 우측에는 잘 관리된 경주이씨 가족묘가 보이고...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선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겨울인가 싶을정도로 눈도오고 찬바람이 불어서 산에들면

을씨년스럽기만 했는데 어느새 봄은 생략이 됐나 싶을 정도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운 날씨가 각가지의 꽃들이 산꾼을 유혹하는구나.

예전에는 철조망 안쪽으로 대간길을 걸으면서 염소목장 쥔장과 대간꾼 사이에 간간히

마찰을 빚었는데 이제는 대간길과 목장이 확연히 구분되어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구나.

각시붓꽃(꽃말:기쁜소식)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먹(墨)을 머금은 붓과 같다가 해서 붙혀진 이름.

붓꽃과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70속의 1,750종이 있다고 하는구나

 

각시붓꽃의 전설
옛날 선녀가 하늘나라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는데, 스무 살이 되면

하늘로 다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선녀는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홀어머니마저 앓아누워 갖은 고생을 했다.
하늘로 올라갈 때 가지고 가야 할 여의주를 강물 속에 살고 있는 이무기에게 주고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신비의 약초와 바꾸고 말았다.


스무 살이 가까워지자, 선녀는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는데
어머니가 딸을 뒷산에 묻어 주고 서글피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 불며 선녀가

큰 절을 올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선녀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는

예쁜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각시붓꽃이라고 한다

염소목장 철조망에는 소담스런 콩배나무꽃이 피어있다.

콩배나무는 실제로 콩만한 배가 열린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열매가

너무 작아서 먹을수가 없으나, 눈요기감으로는 안성맞춤이다.

꽃말은 “온화한 애정”이라고 한다

혼자서 호젓하게 매봉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시끄럽게 사람소리가 들리면서 매봉에 도착한다.

복성이재에서 매봉으로 오름길에 뒤를 돌아다 본다

농장건물 벌목지 아랫쪽으로는 성리에서 노단리로 이어지는 751번 지방도가 보이고,

아막산성과 시리봉, 그 뒷쪽으로는 고남산이 미세먼지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인다.

저 아막산성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국경이 맞닿아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벌였던

곳이 아니던가...

매봉 아래에서 흥부마을이 있는 아영면 들판의 모습

이곳에 있는 아영, 인월, 운봉 들녘을 보면 참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물산(物産)이 풍부하여 늘 이곳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영토분쟁의 대상이기도

한 지역이 아니였던가...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이곳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다툰 지역이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왜구들이 수시로 침략한 곳이라 민초들에게는

풍요한 곳이 아니라 수난의 땅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등로에서 바라본 아영면 성리(흥부의 마을)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 마을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는데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낸다고 한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형수님 저 흥분되(데)요” 이 말을 들은 형수는 주걱으로 시동생을 패댄다.

 형수가 성희롱하는 시동생을 그냥 놓아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 소설과 사투리가 적당히 어우러져 만들어진 익살스러운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오늘 대간은 복성이재에서 시작하여 중재로 이어지는 구간(약 13여km)이다.

오늘의 구간에서는 아무래도 흥부전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백두산 방향으로 나아가다 복성이재 오른쪽에 흥부마을(아영면 성리)이 있다.

 

그런데 여기가 원조 흥부마을이라고 하면 화를 낼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월면 성산리 사람들이다. 수년전 서로 흥부 마을 원조라고 시비가 붙었을 때 모 대학팀이 고증한 결과

성산리는 흥부의 출생지 그리고 성리는 발복지라고 결론을 내리며 분쟁을 잠재운 바 있다.

그러고 보니 형수 성희롱 사건은 주무대는 아영면 성리가 아니라 인월면 성산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성산리는 놀부마을인 셈이다.

그런데 흥부전이 픽션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픽션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여간 흥부전이 픽션이든 아니든

 흥부는 놀부의 등쌀에 못 이겨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새로운 둥지를 튼다. 여기가 바로 아영면 성리이다.

 멀리 갔음에도 대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복성이재 아래 마을에 자리잡은 것이다.

어쨌든 대간은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흥부전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돌양지꽃도 꽃을 튀우기 시작하는구나

매봉 정상에 올라서니 무인산불감시초소가 대간꾼을 째려보고 있다.

현대에 살면서 CCTV를 피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디를 가던가에 CCTV에 속박을 당하니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 속에

사는 느낌이다...자꾸만 人性이 사라지는 인간들의 세계...멋과 낭만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매봉(鷹峰:712.2m:11:15)

남원시 아영면 성리(흥부마을)와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복성이 마을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2010년 백두대간 북진 길에는 없었던 봉우리였으나 그 이후에 정상석도 생겼고 주위에는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유명해진 봉우리로 봉화산의 한 봉우리로 보고있는 산이다

이곳 매봉부터 봉화산까지 철쭉 군락지가 형성되어 해마다 봄이면 아영면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봉화산은 철쭉이 아닌 억새로 유명하고 매봉이 철쭉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도 보이고...

멋진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으나 자꾸만 자연미를 잃어가는 매봉이 되어가고 있다

매봉 좌측 아래로는 복성이재에서 노단리로 이어지는 751번 지방도와 노단리 마을이

보이고 넓게 보이는 공터는 장수군에서 조성한 역적재에 설치한 주차장이 보인다

 

노단리(魯壇里)는  

남노령의 주봉을 이룬 대성산 동쪽 언저리에 포근하게 자리잡은 삼백여 대촌의

명당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이 번암면 소재지인 노단마을이다.

 

이 마을은 근세 조선초 중엽에 형성된 흥성장씨 취락이다.

어느날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명명했다 하는데, 이 마을의 주룡을 이루는 산이 성현이

명기를 띠었다해서 대성산이라 이름하였다 하며, 이 마을의 형국이 노나라에서 태어난

대성인(大聖人) 공자님의 집터와 같다고 하여 노단(魯壇)이란 이름을 붙혔다는 것이다.

이렇듯 명당이라 그런지 시골답지 않게 날로 번성해 가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매봉에 위치한 봉화산 안내판

매봉 정상에는 대구에서 오신 라이온스 회원들이 완벽하게 점령(?)을 한 바람에

난 졸지에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세계 최고의 봉사단체인 라이온스 클럽들...

나 역시 1994년부터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하고 있기에 그래도 반갑기만 하다.

매봉과 작별을 하고 치재로 내려가는데 예전의 정겹던 오솔길은 사라지고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맥꾼으로서 걷는 느낌이 반감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매봉에서 치재로 내려가는 철쭉 군락지는 철쭉꽃이 이제 개화(開花)를 준비하지만

아직은 조금 이른 느낌이다...일주일만 늦게 멋진 꽃길을 걸을 수 있을텐데...

 

이 길을 걸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얼마후면 내 나이 70인데...앞만보고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몇년전 대수술 이후에 간간히 내 삶을 뒤돌아 보면서 悔恨이 밀려온다.

 

앞으로 남은 餘生을 오늘처럼 꽃길만 걸을 수 있을라나?

데크목 전망대(11:22)

이곳은 전망대가 몇군데 있는데 이곳은 남원시에서 설치한 전망대란다

뭔 짓거린인지?

치재로 내려서니 예전의 정감어린 고개는 사라지고 노단리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곳으로는 최근에 설치한 데크목 계단이 범여의 눈에 엄청 거슬린다.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가 가장 멋있는 법인데... 제발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자

치재(660m:11:23)

남원시 아영면 성리 치재마을에서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역적재를 잇는 고개로 

깊은 계곡에 양 옆으로 철쭉이 빼꼭히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이 지역은 각종 버섯류와 산과일, 산채나물, 고랭지채소 등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주로 대간의 동쪽 사면에서 이루어진다.

고개라는 뜻의 ‘峙’와 ‘재’가 합쳐져 지명이 되었다.

 

치재에 서면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리 성리마을도 내려다보인다.

이 마을에는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 바윗거리, 흰죽배미, 노리다리 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그나마 흥부마을쪽으로는 남원시에서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예산이 모자라서 그런지 예전의 고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치제에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장수군에서 설치한 봉수정으로 올라간다

봉수정(烽燧亭:11:24)

치재에서 올라서니 팔각정으로 된 봉수정이 나오고 이곳도 대구에서 오신

라이온스 회원들로 시끌벅적하다...예전에 없었던 넓은 데크목 광장에 

“봉수왕국 전북가야”라는 커다란 표시석이 눈길을 끈다.

봉수정에 편액으로 걸려있는 봉수안내판

치재 윗쪽에 있는 봉수정에는 백두대간이나 3번이나 할때도 없었던 ‘봉수왕국전북가야’라는

표시석 하나가 새로 설치되어 있다

기원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존재했던 가야 세력들 중에서 전라북도 내에 존재했던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전북가야’로 명명하고 그들이 가진 봉수대라는 통신 문명에 전북도민들의

자긍심과 미래비전을 담아낸 기념비라고 한다.

전북가야 세력 내에서만 106개소의 봉수유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많은 봉수대를 운영한

가야는 발달된 제철문화와 더불어 선진 통신문화를 가진 문명국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봉화산이라는 지명을 가진 산이 여려곳에 있는데 모두 옛날 봉화대가 있던 산들로

봉화대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 긴급한 소식을 전했던 일종의 군사 통신시설로 봉수대라고도 한다.

이곳에도 옛 봉수대의 유적이 남아 있어 옛날 치열했던 백제와 신라의 국경분쟁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똑같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안내판은 장수 봉화산이라 해놨다

봉수정을 벗어나니 옛맛을 느낄수 있는 이정표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봉화정을 지나면서부터는 라이온스 회원들이 적어서 홀로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면서부터 철쭉은 현저히 적게 보이고, 하얀 조팝나무꽃이 많이 보인다

안부(11:28)

안부에서 올라서니 고을에서 올라왔는지 장승 2기가 환한 모습으로 산꾼을 반긴다

산은 이제 짧은 봄을 지나서 완연한 여름으로 바뀌고 있는구나.

봄을 이기는 겨울이 없다고 했는데, 여름을 이기는 봄도 없는 모양이다

암봉(11:35)

능선으로 올라서니 암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봉화산으로 향한다

암봉 아래에는 쇠뿔현호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 있는 동화호가 보이고

그 너머의 능선은 내년쯤 걸어볼려고 계획하고 있는 요천(천황)지맥 능선이 아련하다

하얀 병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2주전과는 달리 등로에 피는 꽃의 종류가 많이 보인다.

등로에 꽃이 많아지면 질수록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범여의 발걸음은 느려질 것이다.

안부(11:37)

안부에 올라서면서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등로가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715m봉(11:39)

지맥꾼들과는 달리 대간꾼들은 이런곳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어느 누구의 시그널 한장도 안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다시 좋은 길을 만나고...

오늘은 거리가 산행거리가 길지않아 오랫만에 카메라로 장난을 쳐본다.

꽃봉오리가 너무 예뻐서 카메라를 수동에 맞춰놓고 아웃포커싱으로 찍어본다.

콩제비꽃...반갑구나...지난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소식이 궁금하다.

제비꽃의 종류는 우리나라에서 30종 이상인데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40종 이상으로 보는 학자도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85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편안한 등로로 내려가니 고개같지도 않은 꼬부랑재가 나온다.

꼬부랑재(11:47)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와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노단리쪽은 

고개의 흔적이 보이나 구상리쪽은 고개의 흔적조차도 없는 곳이다.

대간 아랫쪽으로는 치재에서 봉화산 아래로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임도가 있는데

이것 때문에 꼬부랑재라고 부른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꼬부랑재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철쭉도 이제서야 기지개를 켜고 있는구나

대간길 우측 아래를 보니 철쭉 사이에 두릅나무 몇그루가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는거 봤어...오랫만에 손맛을 본다

쉼터(11:56)

무명봉(12:03)

조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매화말발도리(꽃말:애교)

꽃의 모양이 매화를 닮았다 해서 매화가 붙게 되었고 말발도리는 열매의 모양이

말의 발굽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순백의 청순한 저 꽃을 나는 참 좋아한다

조금후에 오를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등로 우측에 대구에서 오셨다는 라이온스 회원님들이 산상주막을 펼쳐놨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가는데 와서 탁배기 한잔을 하고 가라는데 어찌나 고마운 지...

술 한잔 얻어먹고 라이온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갈 길이 멀어서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안부(12:14)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12:19)

완만한 능선을 걸어가는데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다.

매주 특별한 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어김없이 산에 오르는 범여는

어쩌면 이 맛에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산에 오르는지 모르겠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쩍벌남?

예전의 상식으로는 진달래가 지고 난 다음에 철쭉이 피는 법인데 이제는

진달래와 철쭉이 동시에 피고지니 꽃이나 인간이나 다들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인간과 자연은 자꾸만 서로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요즘 정치권에 이슈가 되고있는 검수완박이란 이 단어

법을 제정하는 여의도의 선량들에게 묻고 싶다...누굴 위한 검수완박인지

도행역시(倒行逆施: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정신을 차리소.

민초들을 너무 우습게 보지마소...

이곳은 아직도 철쭉이 아직 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벌목지처럼 보이는 저곳이 매봉아래 철쭉군락지이다

무명봉(12:28)

무명봉에 서 있는 낡은 이정표...우측으로 봉화산으로 향하는 대간길을 이어간다

지도상으로 보면 예전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안보인다

다리재(12:30)

지도상에 이곳을 다리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움푹파인 등로가 고개 같지가 않다

안부(12:32)

봉화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같은 지역 같은 대간길이건만 봄이오는 시간이 다른가 보다.

이곳은 이제서야 봄의 기지개를 켜고 있구나

하기사 한날 한시에 태어난 손가락도 길고 짧은것이 있는데...이게 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르제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철쭉터널...이곳은 지나온 매봉보다는 1주일쯤 늦게와야 제격일 듯 싶다.

봉화산 아래 좌측의 능선은 이제서야 진달래가 만개한다

봉화산 정상에 올라서니 대구에서 오신 라이온스 회원 대여섯분이 사진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도 정상석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기다렸다가 인증샷을 남긴다.

봉화산(烽火山:919.7m:12:45)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와 동화리의 경계산령과 남원시 야영면의 최북단인 구상리에 

위치한 산으로 역사적인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을뿐만 아니라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봉화산은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주위의

조망은 일망무제이다...북쪽으로는 백운산과 영취산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시원한 능선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연비산, 오봉산, 삼봉산, 남쪽으로는 고남산과 지리산이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의

옅은 미세먼지로 인해 지리산의 주능선은 흐릿하게만 하다.

 

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 주 140 간 석축 남원 함양 계라 하여 곧 봉수대는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에 있고 봉수대의 둘래 약 252m이 되는데 돌로 쌓은 것으로 남원과 함양 간의 경계선에 있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에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봉화산은 위 기록에서와 같이 봉화산은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리워졌고 봉화, 봉수대가 봉화산으로 불리운 것이 확실하다.

 

지역주민들은 일제시대에 깃대를 꼽고 측량을 했다는 의미로 깃대봉으로도 부른다.

전북지역에는 많은 봉수대 터가 있는데,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에 자리잡은 803m봉의

태평봉수대가 가장 크고 원형이 그대로 복원돼 관심을 끌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이 봉수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인증샷

좌측의 아랫쪽인 저 동네는 남원시 아영면의 최북단 마을인 구상리이고 그 뒷쪽의

흐릿한 능선은 2017년 3월 12일에 걸었던 임천(신산경표상:연비)지맥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옥잠봉이고 직진으로 보이는 능선이 지리산의 동부능선이다.

봉화산 남동쪽 아랫쪽으로는 흥부마을이 있는 아영면 들판이 보인다.

지리산 주변에는 구례나 남원, 경남의 함양.하동 등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다. 

모두가 한폭의 그림같은 마을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나 그러나 '정감록' 에 따르면 이

도시들보다 지리산으로 오르는 중간지대인 운봉 (雲峰) 을 십승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운봉은 오늘날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그 주변을 가리킨다. 

이곳은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나며 가히 오래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 이라고 했다.


운봉읍은 동으로 팔랑치, 서쪽에 여원치라는 큰 재를 두고 있다.

북에는 덕유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막고 있고 남에는 지리산이 자연경계를 이룬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운봉으로 가려면 각각 팔랑치와 여원치를 넘어야 한다.

가령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려면 이 두 재만 단단히 지키면 된다.

 

해발 평균 450m로 서울 남산의 두배 높이에 자리한 운봉은 그런 점에서 '하늘의 요새' 라고 하겠다. 

고려말 남해안을 날뛰던 왜구들도 이곳을 범하지 못했고 근세의 동학농민전쟁은 물론 해방후 

빨치산전투에서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봉화산 정상 삼각점(△함양23/2002재설)

데크목 정상에서 바라본 요천(천황)지맥 능선의 모습

봉화산 정상에서 잠깐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봉화산을 뒤돌아보고 영취산을 바라보면 ‘산에 간다’라는 것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는 상념에 잠긴다.

 사람(人)이 산(山)에 가니 이는 곧 신선(仙)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럼 하산하면? 하산은 통상 골짜기를 통해 한다.

 골짜기(谷)에 사람(人)이 들어가니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俗)이다.

 따라서 인간은 산을 숭배하기도 하고 경외시하기도 하는 풍습이 생겨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봉화산 아래로 내려간다

옥희씨!...반가워요...어제 같이가기로 했는데 고객의 미팅 때문에 오늘 혼자 걷고 있습니다

안부(12:50)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홀로 걷는데 생각보다 날씨는 덥다.

등로 좌측 아래는 장수군 번암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봉화산 임도가는 양지바른 곳에는 예쁜 노랑제비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장수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산악기상관측장비가 보인다

임도가 있는 봉화산 쉼터가 내려간다.

봉화산 쉼터(850m:13:00)

봉화산 쉼터에 있는 팔각정에는 대구에서 오신 라이온스 회원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그냥 쉼터를 통과한다

봉화산 쉼터에 있는 지리산 안내도

쉼터 임도에서 바라본 함양군 백전군 대안리 오매실 마을의 모습

산악기상관측 장비의 모습

예전에 없었던 흥부산악회의 제단석이 보인다

봉화산 쉼터에서 광대치로 향한다

이곳부터 광대치까지는 고도차가 커지 않아서 편안한 등로이다.

등로에서 올라서니 우측으로는 구상나무 조림지가 보이는데 그 앞에 두릅나무 몇그루가 있다

등로 아래로 내려가니 누군가가 두릅을 수확해갔고 난 이삭줍기(?)를 하면서 조금 수확한다

매인지 확신이 안서는 새 한마리가 창공을 날고있다.

나도 저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

공식지명이 무명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보인다

억새밭속에 외롭게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속금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철쭉 / 조민희

 

화려한듯

단아한 너의 모습은

 

내 사랑하는 여인을

닮았네

 

환한듯 살풋한 미소

 

그 모습이

너를 닮았네

 

향 가득한 그녀의 후덕함

 

그 느낌도

너를 닮았네

 

너의 그윽한 풍채의

여유로움도

 

내 사랑하는 여인을

닮았네

연비지맥 분기점(13:20)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 산경표에서는 임천지맥이라 부른다.

2017년에 범여가 걸었던 지맥길이다.

임천(연비)지맥개념도

백두대간 봉화산(△919.7m) 북쪽 1km 지점인 전라북도 장수군,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인

약 945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전북과 경남도계를 따라 옥잠봉(680m),88고속도로,연비산(842.8m),

오봉산(879m),팔량재를 지나 삼봉산(1186.7m)에서 전북도경계를 벗어나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가

동북진하여 지안재,팔두재, 화장산(586.4m)을 지나 임천(臨川)이 남강에 합류하는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2km의 산줄기로 임천의 우측 분수령이다.

지나온 봉화산을 뒤돌아보면서 무명봉이라 부르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명봉이라 표기해논 낡은 이정표가 보인다

무명봉(無名峰:870m:13:22)

전북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아영면,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있는 3군 경계봉이다.

이곳을 경계로 하여 우측으로는 백두대간 정령치에서 부터 같이해 온 남원시와 작별을 하고

경남 함양군(백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좌측은 여전히 장수군 번암면과 같이한다.

서부지방 산림청에서 설치한 무명봉이라고 표기한 팻말은 묘지 아래에 있는데 세월앞에

장사가 없는지 낡고 마모되어 글씨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고 문패없는 묘지 2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할미꽃이 묘지 주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묘지에 핀 할미꽃은 벌써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諸行無常...사는것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아등바등 살까

저 멀리 백운산과 영취산이 오늘따라서 아주 높게만 보이는구나

홀아비꽃대(꽃말:외로운 사람)

홀아비꽃대의 하얀 꽃처럼 보이는 것은 꽃잎이 아닌 수술대다.

꽃잎도 없이 꽃대만 올라와 핀다고 해서 또는 1개의 꽃대만 달랑

외롭게 올라와서 홀아비꽃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홀아비는 외롭고 쓸쓸함의 상징이었나 보다.

조팝나무의 도열을 받으면서 꽃길을 따라서 나홀로 대간길을 호젓하게 걸어간다

조망바위1(13:30)

등로에서 바라본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의 산그리메

윗안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대안(大安)마을은 지수땀, 양지땀, 음지땀,

섬땀, 대상골 등 5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로 이 마을에 제일

먼저 들어와 터를 잡은 성씨는 십칠세기에 안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김해김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고 장성과 박사가 배출된 마을이다.
음지땀과 양지땀 사이에는 물레방아가 있었으나 폐쇄되었고, 지수땀은 면내에서

유일하게 딱을 원료로 하여 한지 생산을 주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한지(창호지)의 수요가 없어 중단되고 말았다"

오랫만에 개구리 바위도 만난다

무명봉(13:36)

고도차가 그리 크지않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릉구간 능선이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덤성덤성한 산죽이 있는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암봉(13:40)

11년전에 걸었던 남강(진양)기맥 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좌측으로부터 대봉산(구 지명:계관산) 줄기에 있는 함양의 천왕봉(1,228m)이다

주위 조망이 일망무제인 암릉구간을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좌측  앞에 보이는 산은 대간에서 살짝 벗어난 장수군 번암면에 있는 속금산(束錦山:907.4m)이다

호젓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935.9m봉(13:43)

명색이 국립지리원에 표기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산꾼들의 시그널 하나없는

홀대받는 봉우리이다...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庶者 취급을

받는 봉우리로 지맥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대간꾼들은 이런 봉우리를

너무 홀대하는 건 아닌지?...

935.9m봉에서 만난 족도리풀

족두리는 옛날 여자들이 결혼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로 작고 동그란 꽃 모양이 마치 족두리를

닮아서 족도리풀이라고 하는데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며, 약재용 이름은 세신이라고도 한다.

이 꽃은 잎 아랫쪽에 쥐방울처럼 생긴 밤색꽃이 숨어 있는데 무심코 보면 꽃을 볼 수가 없다

 

족도리는 족두리의 옛말인데, 옛말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들풀로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경기도 포천 지방에 아주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꽃처럼 아름다워서 꽃아가씨라고 불렸다.

꽃아가씨는 산나물을 캐고 꽃나무를 심으며 생활하다 궁녀로 뽑혔으며, 궁궐에서 생활하던 중 중국으로

팔려갔다가 결국 중국 땅에서 들판에 굴러다니는 풀처럼 살다 죽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도 죽었다.

 

두 모녀가 죽은 뒤 그 집 뒷마당에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풀에 핀 꽃은 여자가 시집갈 때 쓰는 족두리처럼 생겼으며,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사람들은 그 꽃이 꽃아가씨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했고,

그 풀을 족도리풀이라 불렀다고 한다.

935.9m봉을 지나자마자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부터는 등로가 좀 지루하다

무명봉(13:4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망바위2(13:51)

조망바위에서 가야할 능선을 바라본다.

능선의 좌측으로 무령고개~영취산~백운산, 우측으로는 대봉산~거망산~황석산 봉우리다

조망바위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좌측 아래로 보이는 지지리(知止溪谷) 계곡과 그 너머 장수의 진산이자 우리나라 8대 종산중의

하나인 장안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조약봉(주즐산)까지 연결되는

금.호남정맥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우람한 저 장안산 역시 한민족 분단의 슬픔을 안고있는 산이다

장안산은 해방후 좌.우 이념의 대결속에 국군에 쫓겨 남진하던 빨치산의

이현상 휘하부대가 지리산을 들어가면서 거쳐 지나간 산이기도 한 곳이다.

 

저 산 아래 있는 덕산계곡은 영화 ‘남부군’에서 이 현상 휘하의 빨치산부대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던 곳을 촬영한 계곡이기도 한 곳이다

홀로 호젓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들려서 뒤돌아 보니

6~7명쯤 되는 대간 산꾼들이 내려오기에 얼른 길을 비켜주고 호젓하게 다시 걷는다.

산죽길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3:55)

급한 오르막이 나오고 직진으로 올라가니 개념도상의 955m봉이 있고

대간길은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으로 등로가 나있다.

955m봉(13:59)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사면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로 내려온다.

너럭바위(14:02)

너럭바위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4:06)

迷路

나무계단을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4:16)

등로가 편안하니 가끔 나타나는 습관성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927.1m봉(14:25)

조금전에 앞서가신 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폐가 될까봐서 살짝 비켜서서 먼저 지나간다

927.1m봉에 있는 이정표

서부지방 삼림청에서 설치한 이정표(중치←4.1km →봉화산 3.8km)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내려갔다가 우측 사면길로 가는데 예전길과는 달리 낯설다.

그러면 그렇지...홰손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등로를 돌려놨다

암릉이 나오고 좌측의 급경사로 로프를 설치한 구간으로 내려간다

예전에는 우측으로 다녔었는데...

암릉 지역을 우회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34)

조금만 봉우리를 내려서니 광대치가 보인다

광대치(廣大峙:805m:14:45)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광대동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으로 내려서면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이 있다

 

광대치는 ‘넓고 큰 고개’라는 뜻으로 동서 양족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능선과 동쪽의 능선도 해발이 높아 산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이다

월경산에서 보면 달이 크게 비치는 고개라고 하여 광대치라 부르며 그 아래에 있는

좌측 아래의 번암면 지리리에는 광대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조금전에 만난 분들이 광대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시는 저 분들이 부럽다. 난 여기까지 한번도 안 쉬고 죽기 살기로 왔는데...

광대치를 지나서 오르막길에 나도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아침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충무김밥 하나와 봉화산 오는 길에 라이온님에게

얻어마신 막걸리외는 먹은 것이 없었던 탓인지 약간의 허기가 지기에 과일과

빵 하나, 음료수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다

상광대치(上廣大峙:15:00)

광대치 윗쪽에 있다고 해서 상광대치라 부르며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우측의 능선으로 가면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조금전에 만났던 분중에서 초콜렛 하나를 주시는데 잘 먹었습니다

완만한 등로를 지나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슬슬 체력저하가 오기 시작한다

약초시범단지(15:11)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철조망에는 산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약초단지 철조망은 우측으로 내려가고 대간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963.7m봉 갈림길(15:20)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963.7m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행거리가 짧아서

심심한 분들은 저 봉우리를 갔다오는지 좌측 방향으로 시그널이 걸려 있는데

황소걸음의 범여는 꿈도 못꿀 焉敢生心이다. 

대간길 등로에서 바라본 963.7m봉

무명봉(15:22)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월경산 갈림길(15:26)

이곳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200여m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월경산으로 향한다.

월경산 가는 길

월경산(月鏡山:981.8m:15:35)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운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능선에서 약 2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이다.

폐헬기장같은 넓은 공터에 3등삼각점과 어느 산악회에서 돌멩이에다가 월경산이라 표기해놨고,

예전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준.희 선생의 월경산 산패는 보이지가 않는다.

 

지명의 유래는 약 200년쯤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와 지지리 계곡에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 달빛이 밝아 밖을 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유난히 보름달이

빛을 더해  고향생각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월경산이라 불렀고 그가 살던 마을을 광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경산 정상 삼각점(△ 함양 315 / 1981 재설)

시그널과 함께 걸려 있었던 준.희 선생의 아크릴 산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월경산 갈림길(15:39)

중재로 향하는 길은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 조금은 편하게 걷는다

855m봉(15:43)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좌측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오리지널 대간길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계속되는 내리막길

산행길이나 인생길이나 내리막(말년)에 조심해야 하는데 인간들만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무명봉(15:45)

암릉이 대간길을 가로막는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길이 좋으니 습관성 졸음이 밀려오고...

무명봉(15:49)

우회를 하란다

좌측으로 내려갔다가 되돌아 오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5:54)

820m봉(15:56)

또다시 내리막길

안부(16:06)

안부에서 올라서니 봉우리가 나오는데...

직진 능선이 아닌 우회길로 대간 능선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함양의 택시를 호출한다.

중기마을까지 택시가 오는 시간이 25분정도라는데 오후 5시에 함양을 출발하는 버스는 탈 수 있겠다.

잣나무 군락지를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인 중재에 도착한다.

중재(中峙:650m:16:15)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백운산과 월경산 사이에 있으며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복성이재 12.1km 백운산 4.6km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있고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곳에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중재에서 대간길을 종료하고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로 내려간다.

중기마을 가는 길에서 바라본 월경산의 모습

외딴집(16:23)

1개월전에 이곳에 왔을때는 저 집을 눈을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이젠 완연한 여름같구나.

세월 참 빠르다...자고나면 한달이 지나고 벌써 4월도 끝이구나.

가야할 산은 아직도 많은데 세월은 유수같고 체력은 떨어지고 우짜면 좋을꼬...

택시기사한테서 전화가 오는데 지금 어디 있냐고 하기에 중기마을 외딴집으로

오라고 하니 못 찾겠다고 하면서 짜증을 낸다...지금 어딘지 주소를 불러달라고 한다.

이보소...서울에서 온 사람이 이곳을 어찌 알 것이며 산에 주소를 어찌 안단 말이요.

중기마을 회관쪽으로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소

백운산 하봉 아래에 있는 중기마을이 보인다

 

옛날 중재(중기마을)에는 바람둥이 소금장수가 보따리 장사처럼 바람처럼 왔다

갔는데 어느 과부가 소금장수의 감언이설에 정을 주어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산달을 4개월 앞두고 소금장수가 다시 왔길래 과부가 임신 사실을 말하니

결혼할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주막에서 주모와 정쌓기를 하고 밤새 몰래 동네를 빠져나가다가

연못(沼)에 빠져 죽었는데 중기 마을에서는 이 소(沼)를 소금쟁이 소(沼)라고

부르며 과부도 해산하다가 아이와 함께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중기마을 삼거리(16:35)

중기 마을에 도착했는데도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중재쪽이 아닌 중기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중고개재쪽 마을 아래에서 헤맸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는 틀린 것 같고, 6시 차를 타야할 듯 싶다.

택시를 타고 운산마을 지나는데 중기마을로 올라가는 버스가 보인다.

괜히 택시를 탔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곳의 군내버스 시간을 알 길도 없었고 마을에

뭐 하나 물어보려 해도 사람들의 코빼기도 안 보이고 차들이 안 다니니 앵벌이(히치)도 안되는 곳이다.

 

함양시외버스 터미널(17:03)

내 예상과 딱 맞아 떨어진다...간발의 차이로 5시 버스를 놓친다

저녁6시 동서울터미널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근처 식당으로 가서

해장국에 맥주 한병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커피까지 한잔을

한 다음에 식당에서 TV를 보면서 한참을 멍때리기를 하다가 터미널로 향한다

부처님오신 날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다음주부터는 나도 절집을 다닐려면 바쁘겠다.

함양(咸陽)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속함 또는 함성이라 했다가 천령으로 바뀌었고, 고려 초에는

허주, 함양이라 하였으며, 지리적 경계로서 중요했기에 각 시대마다 요충지로 이름이 높았는데,

특히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주요 분쟁지역이었다. 삼국시대에 쌓았다고 하는 황석산성과

사근산성 등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 치열했던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다.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908?)이 함양의 태수였던 것을 비롯하여 김종직·정여창·박지원 등이

지방관리로서 함양을 거쳐갔는데, 상림·학사루·정여창고택·남계서원·안의초등학교 등이 그들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유적지이다.

흔히 ‘뼈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쓰듯, 함양은 안동에 견줄 만큼

학문과 문벌이 번성했던, 이른바 양반의 고장이었으며 ‘우 함양’의 기틀을 잡은 이가 바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며, 그의 고택은 조선 중기 양반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그런가 하면 안의초등학교 옆에 있는 허삼둘가옥은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더불어 등장한

신흥부농층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이 집은 특히 허삼둘이라는 부인의 이름이 붙어 더욱 이채롭다.

함양발 → 동서울행 버스표

함양시외 버스 터미널 시간표

저녁 6시에 함양을 출발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휴게소에서 15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저녁 9시 20분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