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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58구간 -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2. 6. 26.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산행일자:  2022년 06월 24일~25일(무박산행)

☞산행날씨:  맑은날씨...강한 바람에 약간의 운무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5.1km  + 들머리 7.0km + 날머리 8.5km / 12시간 05분소요

☞참석인원: 알파3050 산악회 따라서

☞산행코스: 설악산소공원-매표소-신흥사 일주문-통일대불-금강교-무명용사비-설악교-군량장

                    와선대-금강굴(마등령)갈림길-금강굴입구-안부-안부-너덜지대-금강문-이정표-샘터

                    안부-철계단-이정표-마등령-마등령 삼거리-나한봉-큰새봉-이정표-쉼터- 고릴라(킹콩)바위

                    바람골-1,275m봉-촛대바위-샘터-안부-암릉안부-신선봉- 무너미 고개-첫번째 다리-와폭

                    천당폭포-양폭포-양폭대피소-오련폭포-귀면암 -잦은바위골 입구-금강굴(마등령)갈림길

                    비선대-와선대-군량장-설원교-무명용사비-금강교-통일대불-신흥사 일주문-신흥사 유물전시관

                   설악산 소공원

소 재 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 속초시 설악동

 

나홀로 산행을 하는 지맥길은 여름철에 칡넝쿨과, 가시, 미역줄기같은 넘들의 횡포(?)가

너무 심한데다 거기다가 등로는 보이질 않고, 간간히 만나는 산불지역을 통과하기에는

정말 고역이 아닐수가 없다.

그래서 찾아낸 묘책이 가급적이면 맥길은 초여름까지만 하고, 여름엔 잠깐 쉬었다가

가을에 재개할 생각이다... 이 기간에 산행 계획을 잡아서 대간길을 걸어볼 생각인데 이미

3번이나 종주를 했고 지맥처럼 순서대로 하긴 쉽지가 않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걸을려고

하는데 예전에 몇번 산행을 했던 알파3050 산악회라는 곳에서 이번에 설악산 정기산행

공지가 올라왔다.

 

어치피 설악산 종주길은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무박으로 한방엔 불가능한 곳이다.

2차 대간길에 무박으로 미시령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하여 한계령까지 한방에 끝내보긴

했으나 17시간 가까이 죽기살기로 걸어서 남은 기억이라곤 앞사람 등산화 본 기억밖에 없더라

그건 산행이 아니라 몸뚜아리 혹사라 생각하여 절대 그런 산행을 하지도 않지만, 

4년전 몸뚱아리에

칼을 댄 이후에는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현재의 내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어 이리저리

고민하던 차에 마등령에서 무너미 고개까지의 구간을 마칠 수 있는 구간이 있어서  거기를 신청하고

출발일만 기다린다.

 

예전에는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를 한 구간으로 잡아서 산악회를 따라 다녔고, 비탐구간인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는 국공파들을 피해서 혼자서 다녔는데 이젠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

오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어 설악산의 등뼈라는 공룡능선을 마무리하면 설악산 구간

 대간길 마무리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편이다.

 

이 산악회에서는 오늘 산행을 A.B,C코스로 나눠서 산행을 하는데 A코스는 오색에서 대청봉,

무너미고개, 마등령을 거쳐서 비선대,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예전엔 나도 저 코스를

밥먹듯 편하게 걸었는데 지금의 내 체력은 焉敢生心이다.

C코스는 오색에서 무너미고개까지 A코스와 같이 오다가 천불동으로 내려오고, B코스는 

신흥사~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천불동 계곡~비선대로 원점 회귀 코스이다.

들머리가 오색이 아닌 한계령이었다면 당연히 C코스로 붙었을터인데 산악회에서는 대간이

목적이 아닌 정기 산행이라 오색에서 출발하니 같이 산행을 하더라도 목적이 다른 셈이다.

 

밤 11시 30분 복정역을 출발한 버스는 2번이나 휴게소에 들렸다가  오색 약수터에 도착하여

A.C코스로 산행하는 山友들을 내려놓고 B팀은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설악산 소공원(03:30)

어둠속에 설악산 소공원에 내리니 상가들은 撤市를 한 상태라 모든게 적막강산이건만 유독 매표소만

불을 켜놓고 등산객들을 상대로 거금 4,500원씩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일부 등산객들이 왜 절에도

안 들리고 산에만 가는데 돈을 받느내고 불만을 터트리는데 사정을 알고보면 꼭 그럴일도 아니다.

나야 대한민국 사찰이 소유한 국립공원을 산행하면서 입장료를 한번도 내지 않은 傳家寶刀같은

신분증을 제시하여 무사통과를 한다.

 

그 불만을 터트린 등산객에게 입장료을 징수하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신흥사는 설악산

국립공원의 그 상징인 대청봉과 주요 경관지인 토왕성 폭포, 권금성, 흔들바위, 백담계곡 등을

포함하여 약 40,742,000,000㎡(약 1,200만평)를 등기상 사찰 소유지로 소유하고 있는데 지난

1970년 국가에서 토지 소유자인 사찰의 동의 없이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사찰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발생됐고 각종 규제로 인하여 사찰을 관리하는데 있어 많은

불편함이 발생했다

내가 불자로서 절집 편을 드는게 아니라 님께서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입장하시면 당연히 입장료를

내듯이 이곳도 당연히 절집 소유의 산길을 걸으면 입장료를 줘야 한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산행을 시작하다(03:43)

매표소를 지나 화장실에 들려서 볼 일을 보고 나오니 같이왔던 동료 등산객들은 어둠속에 사라져 버렸다.

사실 오늘 같이온 산우들 중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 한.두명에 불과하여 누가 누군지 모른 상태이나

오늘 56명의 산행 리딩을 하시는 총대장님께서 오후 5시까지 하산하시면 된다니 아무리 牛步걸음이지만

그 시간안에 충분히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큰 걱정은 없다.

 

1년에 70여차례의 산행을 하지만 90%이상을 나홀로 산행을 하는탓에 오히려 더 편하다는 느낌이다.

길이야 뻔히 잘 아는 곳이라 걱정은 1도 안하지만 어둠속 산행을 지독히 싫어하는 편이라

아무것도 보지않고 헤드렌턴 불빛에 몸뚱아리를 맡기고 걷는다는게 불편할 뿐이다

신흥사 일주문(03:50)

일주문을 통과하기전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면서 선 채로 低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절집

안으로 들어서서 가는데 등산객들이 보여 일행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산악회 맴버들이다.

신흥사를 지나서 금강교에서부터 비선대까지 2.5km 구간을 예전에 없었던 무장애탐방로로

라는 표식을 어둠속에서 만나 부지런히 동료 뒤를 따라서 가는데 어둠속에 사라진 동료들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신흥사앞 금강교를 지나면서 좌측을 바라보니 권금성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날 기미도 없다.

어둠속에 비선대로 향하는데 등로옆의 물소리만 요란하다.

잠시후 마고선(摩姑仙)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타며 놀았다는 와선대(臥仙臺)이건만

어둠속에 분간이 안된다...계곡의 물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에 취해 걷다보니 금강굴(마등령)갈림길에

도착한다.

금강굴(마등령)갈림길(04:30)

들머리인 주차장에서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이에 놓쳐버린 山友들을 뒤쫒아(?)

여기까지 숨도 안쉬고 부지런히 왔건만 뭣이 그리도 급한지 꽁무니도 안 보인다.

아직까지 黎明의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은 계속되고 여기서부터 마등령까지 3.5km의

거리를 1,100여m를 높혀서 올라가야 하기에 물 한모금 마신 다음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긴다.

길림길을 올라서는 잠깐 사이에 날은 밝아오고 등로가 본격적인 설악의 이름값을 하는

바위길의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좌측의 폐가 없는 이런 곳에서의 범여는 아주 쥐약이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 내 페이스대로 천전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리딩을 맡으신 총대장님께서 충분히 시간을 주셨기에 이런 페이스로 간다해도 다른 분들에게

민폐를 안 끼치고 충분히 제 시간에 하산할 수는 있겠다...그러기에 같이오신 일행들과 동행을 않고

나홀로 호젓하게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쉼터(04:55)

이곳에서 헤드렌턴을 벗어서 베낭속에 집어놓고 본격적인 마등령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금강굴 갈림길(04:58)

이곳에서 우측으로 0.2km 떨어진 금강굴을 참배하고 싶지만 맨 꼴찌로 가는 주제에 그건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이 산악회에서 예전에 다른 대장님하고는 몇번 걸어봤지만

알프스 대장님이란 분하고 처음 산행이라 찍히면 행여 다음에 올지도 모를 산행길에

벤찌를 당할까봐 금강굴 쪽을 향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 다음에 마등령으로 향한다.

그리고 예전에 2번이나 들렸던 곳이라 큰 미련은 없다.

금강굴은 강원도 속초시의 서쪽 외설악 미륵봉 중턱에 위치한 동굴로 경사가 급하여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계단을 이용해야 오를 수 있는데 금강굴에서 내려다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굴의 넓이는 23평방미터이고 길이가 18미터인 자연석굴로 일찍이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고 금강이란

이름은 원효대사의 金剛三昧經論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신흥사의 부속 암자로 금강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나 조선시대 지리지와 고지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민속학자 황호근 등이 설악의 기이한 자연현상인 8를 정하였을 때 金剛有穴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석산인 미륵봉에 금강굴 같은 큰 구멍이 있는 것이 신기롭고 기이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

계속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천천히 마등령을 향하는데

좌측으로 천불동 계곡이 펼쳐지고... 왜! 산꾼들이 설악산에 미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든다...1,000분의 부처님을 모셔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천불동(千佛洞)계곡...범여의 가슴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와서 눈을 뗄수가 없구나.

우측으로는 커다란 암릉덩어리가 나를 짓누르듯 바라보고 있는데 이 암릉이 신라시대에

원효성사가 수행처로 삼았다는 금강굴을 품고있는 미륵봉(일명:장군봉)의 윗쪽이다

내리막을 내려다보니 오후에 걸어야 할 양폭계곡의 물줄기가 아스라히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천불동의 모습

천불동(千佛洞)이란 이름은 이 계곡에 그야말로 천의 부처상을 늘어놓은 것처럼 기암봉이 많고

다양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웅장한 기암절벽과 톱날같은 침봉들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에

폭포와 소(沼)가 연이어져 있어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꼽히는

천불동계곡은 빼어난 경관 때문에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에 있는 대표적 계곡의 하나로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한다.

비선대(飛仙臺)에서 대청봉(大靑峰)으로 오르는 7 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와선대(臥仙臺)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담(文珠潭) ·이호담(二湖潭) ·귀면암(鬼面岩)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奇巖怪石의 멋진 선경의 황홀암에 취해서 걷다보니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래...산이란 죽기 살기로 가는 목적산행만이 산행의 전부는 아냐.

그것이라면 나야 120여개의 지맥길을 했으니 할만큼 했잖아...

그래 오늘은 즐기면서 나만의 길을 걸자꾸나.

 

까이꺼!...세상사는게 별건가

숨쉬면 살고 1분만 숨 안쉬면 황천길인데 이런곳을 안 즐기고 무작정 빨리만 가면

설악에 대한 예의가 아니제...산다는게 별것도 아닌데...왜 아둥바둥 살아야 할 이유가 없잖은가 

안부(636m:05:25)

갈림길에서 0.8km의 길을 걸어왔고 고도는 350여m를 높혀 올라서니 우측으로

울산바위에서 계조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2주전에 나홀로 지리산을 갔다가 변화무쌍한 날씨탓에 산행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큰 산치고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런 날씨는 설악산도 마찬가지일텐데

아직까지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비록 산 중턱이기는 하지만 일출을 구경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안부에 있는 이정표

계속되는 암릉으로된 오르막 등로...어쩌면 설악의 별미인지도 모른다.

비선대에서 동행한 젊은 친구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마등령으로 향한다.

대여섯명의 젊은 친구들은 회사 동료인듯 한데 산행 속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걷다가 조금만 틈만 보이면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난 느림보 걸음이지만

꾸준히 쉬지않고 걷기에 이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걸을수가 있다.

안부(05:50)

안부를 지나면서 철계단으로 오른다...예전에 내가 이 길을 걸었던가?

5년전의 추억을 소환해봐도 이 철계단을 걸었던 기억이 전혀없다.

기억상실증인가?...예전과는 달리 자꾸만 두뇌가 퇴화되는 느낌...나만의 생각인가

좌측의 토막골 능선에 있는 형제폭포가 보이니 왠지 가슴이 설렌다.

저 코스는 비선대에서 양폭산장쪽으로 가다가 토막골 능선으로 올라서서 형제폭포,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일반 등산로라기보다는 릿지하시는 분들이 주로 걷는

길이기도 하다...그런데 토막골이란 지명이 좀 특이하다.

 

왜 하필이면 토막봉일까...골짜기가 백두대간 안부에 까지 이르지 못하고 세존봉 앞에서

끝나버려서 토막난 골짜기라고 한 건지, 아니면 토막골 중간에 있는 '형제폭포'가 워낙

장대하고 좌우로 걸어서는 오를 길이 없어 형제폭포를 경계로 반토막났다고 본 것일까.

어쩌면 엉뚱하게도 한때 어떤 자연인이 그곳에 토막(土幕)을 짓고 살아서 토막골이

된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토막골의 형제폭포

등로에서 바라본 천화대의 모습의 모습은 그야말로 설악산의 名不虛傳이 아닐까.

맨 뒷쪽으로는 설악산의 봉우리중에 대장 노릇을 하는 대청봉과 중청봉이

내려다 보고 있구나...이곳을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면 이 맛에 매료되어 또 오지 않을까 

쉬어 가라는 것인가?...비선대에서부터 이곳까지 빡세게 올라왔다가 마등령으로

가는 길이 힘들어하는 범여를 쉬어가라는 배려인지 잠깐이나마 사면길을 걷는다.

산이주는 한없는 인간들에 대한 배려...언제쯤 산이주는 이 배려를 갚을수 있을런지...

그래서 내가 매주 산을 오르는지 모르겠다.

토막골능선에서 석주길-희야봉--범봉-노인봉-1275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서 또 하나를 배운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등로에서 바라본 천화대(天花臺)

범봉은 천화대의 암봉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되며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비선대에서 이곳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계속 올라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이지만 바람한 점이 없어서 약간은 더운 편이다.

천천히 암릉구간을 올라서 금강문에 도착한다.

금강문(金剛門:06:35)

양쪽에 커다란 암릉이 갈라진 틈을 지나는데 이곳이 금강문이란다.

금강(金剛)이라?...다이야몬드처럼 단단함을 말함인가...

아니면 조금전에 지나온 원효성사가 수행했다는 금강굴의 유래가

되었다는 원효성사의 명저서인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차용한 것인가...선뜻 이해가 안된다.

다른 산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통천문이라 불리웠겠다.

 

주변에는 세존봉, 천불동계곡, 나한봉, 달마봉, 신선봉, 미륵봉, 문수봉 등의 불교에서 차용한

지명들이 많은걸로 봐서는 금강문(金剛門) 역시 佛家에서 따온듯 싶다(범여의 생각中에서)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세존봉(世尊峰:1,326.7m)의 모습

마등령 오르는 길에서 만난 봉우리 중에는 뭐니뭐니해도 세존봉이 壓卷인듯 싶다.

능선에 우뚝 솟아오른 세존봉을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연발되는 봉우리인데 

등로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아쉬운 맘으로 쳐다만 본다.

 

세존봉을 '진대봉'이라 표시하고, 장군봉이라는 기록도 등장한다.

옛날 등산지도에는 종종 "세존봉(진대봉)"으로 마치 세존봉의 다른 이름이 진대봉인

것처럼 표시한 지도를 볼 수 있었고, 속초문화원 향토 사료에는 마등봉이 세존봉인 것처럼

설명된 자료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오류가 아닌가 싶다.

 

* 세존(世尊)이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인 석가세존(釋迦世尊)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쉽게 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높여서 부르는 단어이다.

이정표(06:40)

너덜길이 나오는 사면길을 잠깐 편하게 걷는데 노루오줌, 참조팝나무, 금마타리 등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날씨가 추운 탓인가 다른곳에서는 진작에 진 참조팝나무꽃이 이제서야 피는구나.

내가 올 줄 알고 기다렸나?...그저 고맙기만 하다

등로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노루오줌꽃(꽃말:쑥스러움)

뿌리에서 노루의 오줌냄새가 난다하여 노루오줌이라는 얘기도 있고

노루가 물 마시러 오는 물가에 핀다하여 노루오줌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느게 맞는지는 모르겠고 사실 난 노루오줌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뚜버기처럼 묵묵히 걸어 마등령으로 향한다...빼어난 설악산의 仙景에 

매료되어 걷다보니 내가 마치 신선이라도 된 느낌이다.

범여와 산이 혼연일체가 되어 가는 이 길...어쩌면 수행의 한 방법이 아닐까.

佛家에서는 걷는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 하여 그걸 布行이라고 하제.

주위에는 간간히 노루오줌과 꿩의다리같은 야생화가 호젓하게 걷는 범여를 반긴다

꽃들에게  / 김병래

 

꽃들에게 물어 본다

그대들도

기쁨이 있고

환희가 있고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고

노래가 있고

사랑이 있냐고

 

꽃들에게 물어 본다

그대들도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고

슬픔이 있고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욕심이 있냐고

 

물어 본다

물어 본다

꽃들에게

물어본다

샘터(07:00)

나를 추월하여 앞서가던 젊은 친구들이 샘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비선대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이들과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하는 느낌이다.

샘터에 있는 이정표

금마타리

패장이라는 생약으로 쓰이는데 한방에서 종양의 소염제, 해열제,  코피가 나거나

토혈시 지혈제로 이용된다는 금마타리...너의 뿌리는 만병통치약으로 족한데

꽃까지도 이렇게 이쁘니 마타리앞에 “금”자를 부칠만도 하구나...거기다가

꽃말까지 '미인', '잴 수 없는 사랑'이라니 사람들이 니를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겠구나

세존봉은 조금씩 멀어지는데 공룡능선에도 다시 볼 수가 있겠지?

안부(1,129m:07:43)

고도를 높이면서 안부에 올라서니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안부가 마치 조금전에 지나온 금강문과 흡사한 느낌이고 잠시후에 걸어야 할 

공룡능선과 구름을 이고있는 대청봉...그리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은 흐릿하다.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에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중에서 

멋진 공룡능선을 바라보니 심장이 멎을듯한 박찬 감동이 밀려온다.

나한봉~큰새봉~공룡의 이빨이라는 1,275봉~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

조물주가 만든 최상의 예술품이 아닐까... 4년전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온 내가

다시 이 길을 걸을수 있다니 나 자신이 믿기지가 않는구나...남은 人生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야지

계단을 올라서 마등령으로 향한다

이정표(07:50)

이정표를 지나서 2번째 너덜길을 통과하며 마등령을 오르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는 1,275봉 너머로 우측의 중청봉은 보이나

대청봉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안보인다...마치 고려시대 송도의 뭇남성들의

애간장의 다녹인 보일듯말듯한 황진이의 치맛자락처럼 말이다.

드디어 마등령을 지키고 있는 암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을 따라서 마등령 정상으로 향한다

마등령(馬登領:1,327m:08:10)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으로 금강굴(金剛窟),

비선대(飛仙臺), 서로는 오세암(五歲庵), 백담사(百潭寺), 남으로 공룡(恐龍)능선,

대청봉(大靑峰), 북으로는 저항령(低項領), 황철봉(黃鐵峰), 미시령(彌矢領)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등산객들만이 넘어 다니나, 예전 도보시대에는 행상인, 민간인들이 동·서를

넘어 다닐 때 이용한 옛길 중의 하나였다.

 

말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등령(馬登領)이라고 하였다 하며 현재는 대부분

마등령(馬登領)으로 표기하나, 옛 기록에는 모두 마등령(馬等領)으로 되어 있다.

속초시의 포럼인 《설악(雪嶽)의 뿌리》라는 자료에는 마등령(摩登嶺)으로

표기하여,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올라가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등령에서 올려다 본 마등봉의 모습

미시령으로 가는 대간길의 출입금지 팻말을 보며 씁스레함을 느낀다.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 2007년부터 2026년까지 출입금지란다

근데 갈 사람은 다 가더라...가지말라는 저 길을 나도 3번이나 걸었다

 

 2017년 10월 1일에 나홀로 미시령에서 황철봉, 저항령, 걸레봉

마등봉을 지나 저 곳을 통과하면서 국공파의 동태를 살핀 다음에 재빨리

월담하여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나라 내 땅도 내 맘대로 못걷다니...

무조건 막을게 아니라 국공파와 산꾼들과 서로 상생하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설악산 소공원을 출발하여 4시간 25분만에 마등령 정상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대간길 첫 걸음을 내딛는다

마등령에서 삼거리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공룡의 모습

아침보다 박무가 조금씩 짙어지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과는 달리 바람에 세차게 불어온다...강풍을 연상케하는 바람이다

삼거리 내리막길 주위에는 흰꿩의다리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등령 삼거리(1,209m:08:20)

직진으로는 공룡능선 우측으로는 오세암,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마등령삼거리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아침만찬을 즐기고 있다.

버스에서 리딩대장이 이곳에서 모여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기로 한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온 탓인지?...같은 차를 타고온 등산객들은 찾을수가 없다.

 

산행시작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탓에 허기가 몰려온다.

베낭을 내려놓고 가지고온 빵과 두유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시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만난 골무꽃(꽃말:고귀함)

골무란 옛날 여자들이 바느질할 때 손가락에 끼고 바늘을 누르던 도구인데

그 골무를 닮았다고해서 골무꽃이라 부른다

꿀풀목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일본, 오키나와, 중국, 베트남에 분포하는데,

국내에서는 중부이남 지방의 산과 들에서 자라며 네모난 줄기에 털이 많이 나 있다.

 

잎은 마주 나고 잎끝은 뾰족하나 잎밑은 심장처럼 움푹 패여있고 잎가장자리에는 둔한 톱니가 있다.

5~6월에 보라색 꽃이 줄기 끝에서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두 줄로 나란히 핀다.

뜰에 심을 만한 풀로서 해가 잘 비치며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자라며 마른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

꽃이 주는 은은한 느낌 때문에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다

공룡능선에 들어선다... 아직은 박무로 인해서 仙景이 조금 흐리긴 하지만 이정도면 족하다

마치 신선에 사는 곳에 온 느낌인양 가슴이 설레지만  공룡이라는 작명(作名)에 평소에 유감이 있었다.

 이 지구상에 과거 한때 살다 지금은 완전히 소멸된 파충류를 어찌하여 초록별 지구와

함께 영원이 존재해야 하는 설악의 주능선에 명명(命名)했단 말인가?

생명체의 유한성(有限性)과 자연의 영원함을 구별 못한 넌센스이다.

생긴 모습이 공룡의 등뼈와 같다 해서 이름을 지었다니 얼마나 즉물적(卽物的)인 발상인가?

生老病死 실천중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서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너덜겅으로 올라간다

큰 바위가 그 어떤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법구경 명철품 중에서

조금전에 지나온 마등령 삼거리 윗쪽에 마등봉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대간꾼들이

죄인(?)신분으로 걸어야 했던 걸레봉과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세존봉 아래로 펼쳐지는 설악골의 모습

강풍이 심하게 불어대는 나한봉으로 향한다

나한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과 화채능선의 모습

 

화채(華彩)란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이며 화채능선(華彩綾線)

화채릉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하며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위험하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한봉(羅漢峰:1,297.4m:08:38)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설악동 경계에 있는 공룡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공룡능선(恐龍稜線)에 있는 봉우리중의 하나로 마등령(馬登嶺)과 1,275m봉 사이에 있으며,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불가에서의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 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다. 나한은 불교가 발달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처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뿐이었다.

그 뒤 부처님이 성도한 뒤 최초의 제자가 된 교진여 등다섯 비구가 아라한과의 경지를 얻었다.

이어 야사와 그의 친구 54인, 가섭과 그의 제자 등 당시는깨달은 사람은 모두 나한이라고 생각했다.

런데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나한은 소승의 성자로 격하됐다.이타를 강조하는 보살에 비해

자신의 해탈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나한의 의미가 낮게 평가된 것이다. 

나한은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전환되는데  그 수가 16, 500, 1200 등 다양하지만 

보통 16나한과 500나한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나한봉을 내려서면서 잠시후에 가야할 큰새봉과 1,275m봉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돌길이라 무릎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

천천히 내려가는데 등산객들이 많아서 빨리갈수도 없다.

큰새봉이 지척이건만 정작 뾰족한 저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그 아래를 큰새봉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큰새봉이라는 암릉에서는 멋진 큰새봉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자고로!...산과 여인은 멀리서 봐야 예쁜 모양이다 

큰새봉(1,280.1m:08:58)

정상이라는 암봉 위로는 올라갈 수가 없다...꿩 대신 딹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국립지리원의 지도를 사용하는 오룩스맵에서는 그냥 1,280.1m봉으로 표기가 되어있는데

큰새봉의 지명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으나, 멀리서 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듯한 모습이라 큰새봉이라 불렀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가고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구나

오르지 못한 큰새봉 정상의 모습

마등령삼거리에서 시작하여 무너미고개로 이어지는 5.1km의 공룡능선은 예전에 

비해 등로는 많이 좋아졌지만 업다운이 심하여 체력안배를 아주 잘해야 하는 구간이다

이정표(09:20)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토사유출을 막기위해 깔아논 돌로된 등로라 도가니에 무리가 온다 

공룡능선에서 공룡의 뿔이라 불리는 1,275봉 너머로 대청봉에서 화채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은 내 생전에 한번 걸어볼 날이 있을라나...

 

풍수지리상으로 설악의 산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지녔다고 하는데 대청봉이

닭의 머리이자 부리요, 서북능선이 왼쪽 날개, 화채능선이 오른쪽 날개, 그리고 공룡능선이

닭의 몸통이 되는 셈이고,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봉정암은 설악의 심장이자 알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설악의 형상을 보면 화채능선은 닭의 오른쪽 날개이다.

닭의 부리로 쪼아 먹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 해당하는 오른쪽 날개 겨드랑이 밑이 죽음의 계곡이다. 

그 누가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하였는가....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으로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 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한참을 내려와서 로프에 매달려 능선에 올라서니 누에바위가 멋진 모습으로 산꾼을 반긴다

당겨본 누에바위의 모습

뒤돌아 본 큰새봉의 모습

쉼터(09:38)

부지런히 왔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1.7km라니...슬슬 체력저하가 오기 시작하는구나.

그나마 다행인게 사람들이 많아서 빨리 안 걸어도 되기에 체력 소모는 덜한 편이나

내 몸뚱아리는 지맥길에 셋팅이 되어있는 느낌이라 사람들과 부딪히는게 엄청 불편하다.

나홀로 걷는 지맥길이야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구경은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길이기에...

고릴라 바위(09:41)

혹자는 킹콩바위라고도 부르는데 그거야 엿장수 맘 아닌가

지나온 큰새봉의 위용이 참으로 대단하다 

바람골(09:42)

능선 아래로 이어지는 설악골 너머로 세존봉의 모습이 마치 仙界에 든 느낌이다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가리키면서 읊었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천지간에 자기가 가장 존귀함)

지금 바라보는 세존봉이 그런 모습이다...시원한 바람을 벗삼아 오르다 보니 1,275m봉에 오른다

1,275m봉 안부(10:08)

공룡능선길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1,275m봉...흔히 산꾼들에게 1,275봉으로

유명한 이 봉우리는 호사가들의 입에 공룡의 이빨이라고도 하고 공룡의 거시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오룩스맵에서는 국립지리원에서 새로 측량을 했는지 높이가 1,266.0m봉으로 나온다

1,275m봉 정상의 모습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정상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산행 시작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같이온 산행 동료들을 한명도 만난적이 없으니 꼴찌가 분명할 터인데 저기까지

들렸다가 가면 밉상이 되어 너무 눈치가 보일것 같아서 정상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신선봉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1,275m봉에서 신선봉을 가기 위해서는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신선봉을 향한 빡센 오르막길이다.

하기사 인간이 神仙들이 노니는 봉우리를 그리 쉽게 갈수야 있겠나...

촛대바위(10:17)

급경사의 내리막 좌측에 촛대바위가 있고 전망이 뛰어난 곳이나 위험한 곳이니

가지말라는 국공파의 경고판이 보인다...착하게 살자...멋진 선경을 포기하고 계속 내려간다

그런데 이 멋진 능선이 하필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이란 말인가.

피라미드 같은 삼각봉과 기이한 모양의 첨봉들이 즐비하게 솟아있는 마치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백두대간 최고의 능선이 아닌가...절경에 어울리게 힘도 든다.

봉우리 사이사이 깊게 가라앉은 안부가 있어 자연 요철이 극심하여

거리는 5.1km 남짓하지만 여간한 건각이 아니고서는 진이 빠지는 고생을 해야한다.

 

1275봉을 향하는 암릉에 서면 마치 뉴욕의 월가(wall street)마천루 거리를 걷는 듯한 환상을 갖게 한다.
길이 너무 좋다. 아니, 언제 그랬는지 모르지만 길이 너무 좋아 졌다.

20여년전과는 달리 돌계단으로 매끄럽게 포장되어 있어 다리가 편한 대신 마음은 불안하다.

 

 불안하다는 것은, 이 훌륭한 자연에 편의라는 이름으로 인공의 조형물이 하나 둘

비집고 들어와,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떠한 이유로 소멸되었는지 모르는 공룡의 운명처럼,

우리의 지상낙원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다.

 

사과 하나 따먹은 이브(Eve)의 잘못에서 비롯된 실락원(失樂園, Paradise Lost)의 비극은 그 장구한

세월동안 수 많은 인간의 노력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복락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을

향한 신(God)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을진대, 이 돌계단 하나 하나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우리의 낙원 설악을 송두리채 앗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공룡능선에서 울산바위

해발 873m 이고, 화강암으로 둘레가 4km나 되는 하나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서 예전에는 '천후산'

또는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 한다... 이유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칠때 바위에 반동이 되어

나오는 메아리가 마치 하늘에서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와 흡사하다하여 '천후산'이라 불리었으며,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기후가 접하는 지역이다보니 운해가 자주끼고 이 운해가 바위산 중턱쯤에

끼었을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연꽃이 반쯤피다만 봉우리와 흡사하다하여 '연화반계산'이라 불리었다 한다.

 

'울산바위'는 바위산 자체가 설악산을 안쪽에 두고 울타리를 쳐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하여, 또는 우는 산과

같다하여 '울산바위'라 불리게 되었다하며, 경남 울산의 지명과 같다보니 전설이 나오기를 울산에 있던

바위로서 옛날 태고적에 금강산에 일만이천봉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쉰다는

것이 영원히 쉬게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산이다.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속초시내의 모습

첫째, 속초는 속새(높이 30~60㎝의 상록 양치식물)가 많으므로 황무지, 원야(原野)의 의미로

         속새, 또는 한자로 표기하여 속초(束草)라고 불리었는데, 이 두 땅이름이 함께 사용되다가

         속초라는 땅이름만 남게 되었다.

 

둘째, 지금의 영금정 옆에 솔산이 있을 때, 바다에서 이 포구를 들여다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셋째, 풍수지리학 상 속초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형국이므로,

         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기 때문에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넷째, 울산바위에 관한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설악산에 구경 왔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신흥사 승려에게 울산바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금을 받아갔는데,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울산 고을의 원님이 이 바위를 재(災)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곧 지금의 속초 시가지에 자라고 있는 풀을 새끼로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 맨 후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로 적는

속초(束草)로 불리게 되었다. --- 속초문화원 발간 [속초(束草)의 옛 땅이름]에서 인용

샘터(10:32)

1,275m봉에서 이정표가 있는 샘터까지 고공낙하를 한 다음에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힘들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데 아침에 같이 버스를 타고오신

여성 산우님을 만난다...生面不知이지만 그 분의 베낭에 나와같은 띠지가 묶혀있어 알았다.

내가 꼴찌가 아니였구나...갑자기 안도감이 생긴다.

오르막길 바위틈에 귀하디 귀한 설악 솜다리 군락지를 만난다.

사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이 설악 솜다리가 보고 싶어서 왔다.

 

산솜다리라고 불리기도 하는 설악 솜다리는 공룡능선 신선봉에서 고릴라 바위 사이

구간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한국의 토종꽃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귀하디 귀한 꽃이다.

오늘 산행은 이 꽃을 봄으로서 내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안부(10:52)

가야할 신선봉의 보습

가야할 신선봉 너머로 설악의 큰 형님인 대청봉(좌)과 둘째인 중청봉(우)이

아우들을 내려다 보는듯 하고 희운각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綠陰속에 묻혀 버렸다.

천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다는 설악산... 역시 설악산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설악이 그리워 不遠千里 길을 마다않고 내 그대를 보러 오질 않았던가...

세속의 찌든 때는 찾아볼 수 없으니 설악산을 오를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운이 아닐까.

공룡에서 내려다보니 저 세속에서 사는 衆生들이 한없이 가여워보이는건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체력저하로 인해 발걸음이 느려지지만 그래도 내가 꼴찌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왜 설악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듯...공룡능선은 壽石전시장을 방불케 하는구나.

누군가가 이 바위를 천사바위라고 했는데 아무리봐도 천사라는 감흥이 오질 않는구나.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지...머리가 아둔한 지는  모르겠다

 다시 山에 와서 / 나태주

세상에 그 흔한 눈물
세상에 그 많은 이별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으로 다시 와 
정정한 소나무 아래 터를 잡고 
둥그런 무덤으로 누워 
억새풀이나 기르며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앉아 있으리.

멧새며 소쩍새 같은 것들이 와서 울어주는 곳, 
그들의 애인들꺼정 데불고 와서 지저귀는 
햇볕이 천년을 느을 고르게 비추는 곳쯤에 와서 
밤마다 내리는 이슬과 서리를 마다하지 않으리. 

내 이승에서 빚진 마음들을 모두 갚게 되는 날. 
너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백발로 졸업하게 되는 날 


갈꽃 핀 등성이 너머 
네가 웃으며 내게 온다 해도 
하나도 마음 설레일 것 없고 
하나도 네게 들려줄 얘기 이제 내게 없으니 


너를 안다고도 
또 모른다고도 
숫제 말하지 않으리. 

그 세상에 흔한 이별이며 눈물, 
그리고 밤마다 오는 불면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에 다시 와서 
싱그런 나무들 옆에 
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하늘의 천둥이며 번개들을 이웃하여 
떼강물로 울음 우는 벌레들의 밤을 싫다하지 않으리. 
푸르디 푸른 솔바람 소리나 외우고 있으리. 

어금니 바위?

신선봉 가는길에서 바라본 용아장성(龍牙長城)

뾰족하게 솟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석 봉우리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성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능선을 이루기 때문에 용아장성릉이라 불리기도 한다.

안부에 멋진 신선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름에 걸맞게 정말 신선이 노닐만한 봉우리이구나

안부(11:12)

힘은 들지만 강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춥지않은 날씨라 산행하기는 금상첨화이다

오르막 내리막을 無想無念의 심정으로 30분간을 걷다보니 신선봉에 도착한다

신선봉(神仙峰:1,215m:11:45)

신선대라고도 부르는데 공룡능선 조망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으로 과연

신선이 노닐만큼 풍광이 뛰어나니 신선봉이라 불러도 전혀 하자가 없는 곳인듯 하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이곳 신선봉(대)에서 바라봐야 가장 잘 보이는데 2013년 3월 11일에

명승 제103호로 지정되었는데 백두대간에 자리한 설악산 정상의 북쪽에 있는 마등령에서

시작하여 남쪽 신선암까지 이르는 능선을 가리키며 이 능선은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나누는

분기점이 되기도 하는데 인제군 백담사와 속초시 설악동에서 오를 수 있는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중심 능선으로 이 능선에서 내설악의 가야동계곡, 용아장성은 물론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지명은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지점에 연속되어 있는 암석 봉우리들이 마치 공

룡의 등같이 생긴 데서 유래하였으며 공룡릉(恐龍稜)이라고도 불린다

신선봉(대) 정상의 안내판

신선봉 정상은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몸을 가누기가 힘이들 정도이다

몸뚱아리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서 서둘러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1km정도 남았다니 부지런히 걸으면 30분안에 무너미 고개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희운각 대피소의 모습

신선봉에서 무너미 고개로 내려가는 등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대간꾼에게는 문제가 생기는구나...대간길을 너무 많이 우회를 시켜놨다.

설악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대간꾼들은 생각해 볼 문제다

저기 보이는 1,233.1m봉이 대간 능선인데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힘든 암릉구간을 내려와 山自分水嶺에 위배되는 샘터가 있는 조그만

개울을 지나고 조금을 더 걸으니 오늘 내가 걷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인

무너미 고개가 나온다

무너미 고개(12:15)

천불동(千佛洞)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 ·외설악(內 ·外雪嶽)을

구분지으며, 고개 바로 북쪽에 희운각(喜雲閣)대피소가 있으며, 대청봉과 공룡능선, 천불봉

계곡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있는 고개로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음이 틀림없으며,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

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무너미고개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쥬스 한켠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산우님들이 우루루 몰려온다...자세히보니 같은 차를 타고온 일행들이다.

왜 그리도 반가운 지...사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안면이 있으신 분 한사람도

없었기에 모르고 지나쳤는지...일행들과 어울려 천불동 계곡으로 향한다

꿩의 다리...너는 왜그리 자신만만하고 도도하니?...

계곡으로 내려오니 천불동 능선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너미고개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천불동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첫번째 다리(12:48)

계곡 좌측으로는 천화대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암릉이 환상적이다

천불동 계곡의 물소리는 점점 드세지기 시작한다

와폭(臥瀑:13:05)

무너미 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을 내려오면서 첫번째 만나는 폭포인데

이름이 와폭(臥瀑:비스름하게 누운 폭포)이라는데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다.

와폭을 지나서 철계단을 따라서 천불동 계곡을 곡예하듯 비선대로 향한다

천불동 계곡의 물소리에 심취해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가보니 동료 산우들을 놓쳐 버렸다

부지런히 따라가 보지만 동료들은 보이지 않고 또다시 외톨이 신세다.

아무래도 난 체질적으로 독립군(나홀로 산행)인 모양이다.

천당폭포(13:10)

무너미 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2번째 만나는 폭포로 예전에 TV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 중에 강호동이란 친구가 왔다 갔다고해서 유명세를 치른 곳이라 하는데 그 덕분인지

포토존까지 있다

지명의 유래는 속세에서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고 하여  천당폭포라 부른다고 한다

천당폭포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폭포가 양폭포이다.

양폭포(陽瀑布:13:13)

양폭포(陽瀑布)에서 떨어지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양폭(陽瀑)이고, 좌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음폭(陰瀑)이라고 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음폭(陰瀑)은 카메라 앵글이 놓쳐 버렸구나...저  계곡 지나서 염주골로

이어지고, 죽음의 계곡과 마주하며 화채능선으로 이어지겠지

양폭산장(11:15)

양폭산장 철다리를 지나면서 만나는 천불동 계곡의 물길

양폭산장을 지나면서 만나는 만경대

화채능선에서 양폭대피소 앞으로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만경대

오세암 앞의 내설악 만경대와 구별하기 위해 외설악 만경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물주가 빚어낸 기암괴석의 칠형제봉 능선...멋진 선경에 입을 다물수가 없다

철계단을 열심히 내려가다가 오련폭포를 만난다.

오련폭포(五連瀑布:13:37)

오련 폭포(五連瀑布)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폭포 중의 하나로 귀면암(鬼面岩)과

양폭포(陽瀑布) 사이에 있으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 협곡 사이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는 폭포로 이전에는 폭포 일대의 암벽을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앞문의

수문장 같다고 하여 앞문다지라고 하였다.

오련폭포 안내판

예전에 없었던 계단을 따라서 조금 편하게 걸어간다

귀면암 가기전에 만난 적벽(赤壁)...오늘 범여는 참으로 눈이 호강을 하는 셈이다.

천불동 계곡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귀면암 앞에 있는 철계단 오름길을 따라서

빡세게 올라서니 귀면암이 나온다.

귀면암(鬼面巖:14:10)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비선대와 양폭포(陽瀑布) 사이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명칭은 바위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귀신의 얼굴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금강산의 귀면암에서 따왔다고 하나 원래의 명칭은 천불동계곡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 불렀다고 하며,

귀면암이라는 명칭은 나중에 붙여졌다고 한다

귀면암의 안내판

귀면암을 지나 철계단으로 내려서니 시원한 계곡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느림보인 범여로선 그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고도를 낮추니 상당히 덥다

잦은바위골 입구(14:25)

잦은바위골이 천불동계곡으로 흘러드는 합류되는 곳으로 잦은바위골은 공룡능선의 천화대

남쪽에서 흘러내려 천불동계곡으로 흘러드는 지계곡으로 토막골, 설악골에 이어 천불동계곡

오른쪽에서 흘러드는 세번째 지류이다. 

비선대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비선대를 외호하고 있는 미륵봉(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악골의 물줄기가 천불동 계곡으로 흘러드는 합류점이다

0.5km만 가면 비선대이다...쥔장 잘못만나 매 주말마다 혹사당하는 내 두 다리에겐 늘 미안하다 

설악의 계곡도 자꾸만 野性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비선대를 외호하고 있는 미륵봉(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침에 이곳에서 출발하여 마등령~공룡능선~천불동 계곡을 거쳐서 10시간 20분에 걸쳐서 원점회귀를 한다

금강굴(마등령)갈림길(14:50)

비선대탐방지원센터의 철다리를 지나니 오늘 후미대장을 맡았다는 분(닉을 잘 모름)과

여산우 2분이 휴식을 취하면서 시원한 음료 한잔과 과일 두개를 주는데 마침 허기가

지고 먹을것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너무 고맙기만 하다...감사...복받을깁니다

좌측이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일명:장군봉), 가운데가 형제봉, 우측이 선녀봉인데

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커다란 암반(巖盤)으로 마고선(麻姑仙)

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선대 아래로 펼쳐지는 천불동 계곡의 모습

비선대(飛仙臺:14:55)

비선대는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졌으며,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감상했다고 하며, 암반에

많은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특히「비선대(飛仙臺)」라고 쓴 글자가 대표적이며, 『양양읍지』에

윤순(尹淳)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비선대 뒤 미륵봉(彌勒峰) 중턱에 뚫려있는 길이

18m의 자연 석굴을 금강굴이라 하며, 일찍이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천불동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작은 폭포를 이루는 등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에 못지않은 경관을 빚어 설악산의 대표적 명승지로 꼽힌다.

비선대 안내판

예전엔 이곳에 식당가가 있어서 힘들게 내려와서 막걸리와 파전으로 목을 축였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곳이다...다리를 건너 돌길을 조금 지나니 편안한

평지길이 나오고 우측의 계곡에 그저 밋밋한 바위가 보이는데 와선대란다

와선대(臥仙臺:15:05)

옛날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바위)에 누워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와선대라고 불렀단다

숲이 울창하고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히 절경이라 하였는데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럭버위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안내판이 없으면 와선대는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고속도로(?)처럼 넓은 길을 따라서 날머리인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하다가 집채만한

암릉을 만나는데 군량암(軍糧岩)이다...군량장이 있었던 곳이고 앞에는 군량장 표시석이 있다

군량암(軍糧岩)

군량장(軍糧場:15:12)

정고평(丁庫坪)과 소공원 사이에 있는 벌판으로 비석 형태의 자연석에 군량장(軍糧場)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예전에 군인들이 양식을 저장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저항령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걷다보니 설원교가

나오는데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로 인해 숨이 막혀버릴 지경이다

 

6.25동란 당시 이곳 저항령은 상당히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사(戰史)에 따르면 6.25 전쟁 기간 중 설악산 지구 전투에서 처절한 사투를 거듭하여

인민군 10,948명을 사살하고 417명을 생포. 그 당시 신원이 밝혀진 아군 전사자  363명.

반세기가 지난 2012년 6월의 소청봉과 저항령 고지에는 6.25 전쟁 당시 전사자 65구가

발견된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녹슨 철모를 관통한 총알자국과 낡은 군화 속 발가락뼈가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이 피땀흘려 지킨 조국을 우린 요즘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설원교(15:20)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던가?...길이 좋으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15:25)

한국전쟁시 설악산 산악전투에서 중공군을 맞아 용감히 싸운 수도사단, 제1사단, 제5사단

소속의 순국장병과 군번없이 참전하여 산화한 학도결사대, 호림부대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훈을 기리기 위해 한국일보사와 제1군 사령부가 강원도의 후원받아 건립한 비다.

 

6월은 호국의 보훈의 달이다...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것도 저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호사를 누릴수가 있었을까...용사비를 향해서 예을 올리고 소공원으로 향한다

금강교(15:40)

좌측으로 가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이지만

늦은 시간이라 참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주문 방향으로 향한다

금강교에서 바라본 권금성(權金城)의 모습

아주 오랜 옛날 한 마을에 권씨 성의 장사와 김씨 성의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쳐들어오자 산세가 험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권금성 자리이다.


적이 오자 방어할 길이 없어 서로 의논하였다. 그래서 두 장사가 그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적병이 오기 전에 성을 쌓아야 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안에 성을 만들어야 화를 면할 것이오.”

하지만 성을 쌓는 다는 것이 결코 생각 처럼 쉽지 않았다. 의논 끝에 돌을 날라다가 이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는 다면 몇 달이 걸릴 것 같았다.


두 장사가 궁리 끝에 “이렇게 합시다. 돌을 날라서는 성을 쌓을 수 없으니

내가 강에 내려가 돌을 던질 테니 당신은 여기서 받아서 성을 쌓으시오,

그래야만 하루 밤에 성을 다 쌓을 수 있을 것이요.” “좋습니다.” 그래서 권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주어서 던졌고 그러면 김장사는 그 위에서 돌을 받아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힘들면 서로 교대로 김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던지고 권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아 성을 쌓았다. 이렇게 권장사와 김장사가 만든 성이라 권금성(權金城)이라고 부른다.

신흥사 통일대불(新興寺 統一大佛:15:42)

신흥사 경내에 있는 대형 청동불상으로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규모의 대형 석가모니불로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총 108t의 청동이 사용되었으며,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十六羅漢像)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으며, 불상의 미간에는

지름 10㎝ 크기의 인조 큐빅 1개와 8㎝짜리 8개로 이루어진 백호가 박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불상 뒤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불상 내부로 들어가면 내법원당이라고 불리는 법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조성은 1987년 8월 30일

시작하였으며 10년이 지난 1997년 10월 25일 점안식을 가졌다. 불상 내부에는 점안식 때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되어 있다.

 

신흥사 일주문(15:42)

12시간의 무사산행에 대한 부처님께 대한 감사의 예를 저두삼배로 대신하고 소공원으로 향한다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652)에 자장율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고, 그 후 여러차레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22(1644)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 세 스님이 똑 같은 꿈을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 하여 신흥사라 했다.

건 당시 주조한 1400여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 시루, 극락보전(지방문화제 14),

경판(지방문화재 15), 보제루(지방문화재 104), 향성사지 3층 석탑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 있다.

신흥사 유물전시관(15:44)

언제 생겼나?...속초에 여행올 일이 있으면 한번 들려봐야겠다

설악동탐방지원센터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曺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15:50)

설악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신흥사 일주문과는 별도로 엄청나게 큰 일주문 형태의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을  통과후 소공원 입구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22여km에 12시간의 긴 산행을 무사히 마침을 감사하며, 다행히 동료 산우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제 시간에 들어온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리딩을 맡으신 총대장님이 꼴찌로 내려오는 나에게 싫은 내색없이 반겨주는데

고맙고 미안하다...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가서 소머리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깊은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