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상의 最奧地인 三屯四耕은 桑田碧海중....
☞ 산행일자: 2023년 07월 02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습도는 높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했다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5km +들머리 1.5km +날머리 2.6km / 8시간 12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진동삼거리-철조망-조침령-다시 철조망-794.0m봉-안부-무명봉-안부
796m봉-추모비-안부-무명봉-바람불이 삼거리-742.8m봉-쇠나드리 고개
무명봉-안부-쉼터-무명봉-무명봉-안부-무명봉-무명봉-작은 미아치골
무명봉-무명봉-안부-안부-995m봉-안부-무명봉-쉼터-무명봉-1.059.2m봉
안부-무명봉-쉼터-안부-955.4m봉-무명봉-951.6m봉-무명봉-연가리골 갈림길
1,030m봉-무명봉-1,020m봉-공터-무명봉-무명봉-안부-안부-968.3m봉
무명봉-944.8m봉-무명봉-왕승골 삼거리-사방댐-왕생골길 1교
갈천리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인제군 기린면
7월초인데도 삼복 더위보다도 더 더운 느낌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이나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고,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소화기내과쪽에 문제가
있는듯 하다고 하면서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여 7월 2째주에
병원에 예약을 해놓고나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기사 혼자서 산행을 하면서 음식물은 거의 섭취하지 못하고, 쥬스, 두유, 식혜같은
액체 종류로만 허기를 면하는 편이다...거기다가 술은 입에도 안되는 편인데도
그러하니 미치겠다...지난 수요일에는 갑자기 식은 땀이 흐르면서 의식을
살짝 잃었는데, 다행히 병원에 입원해서 영양제와 수액 주사를 맞고나니
별 이상이 없어서 퇴원을 한 후, 이번주에는 쉬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토요일이 되니 컨디션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라 슬슬 산에 대한 욕망이
몸속에서 꿈틀거린다...이렇게 덥고 힘들때는 험허디 험한 지맥 산행은 잠깐
접어두고 길도 좋고 눈에 익은 백두대간을 타기로 하고 날씨가 좀 덜더울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강원도 북부지역의 설악산 아래로 가보기로 하고, 구룡령쪽으로
내일 산행을 준비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서울발 → 양양행 버스표
06시 30분에 출발하는 양양행 첫 차를 타기위에 06시에 집을 출발하여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25분...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오른다.
늘 습관처럼 차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홍천휴게소에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서 정신을 다음에 양양터미널에 도착한다
양양터미널(08:55)
양양터미널이 새로게 바뀌었다...예전에 읍내에 있었던 터미널은 외곽으로
이전되어 깔끔하다...양양터미널에 도착하여 귀경하는 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오늘은 컨티션이 좋지 않아서 구룡령으로 가서 왕승삼거리까지 짧게 한 구간을
할 계획이었는데 초반부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귀경표를 예매하려는데 서울가는 표들이 완전히 매진이 되었고, 남은거라고
심야고속버스인 밤 11시 버스밖에 없다고 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매표원이 하는 말이 일단 버스표를 예매해놓고, 나중에 취소분이 나오면
바꿔치기하라는 말을 듣고, 표를 예매한 다음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을 것
같아서 거리가 긴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까지 걷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조침령으로 향한다
양양터미널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로 넘어가는 418번 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니 조침령 터널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곰배령으로 향하는 좁은 도로가
나오고 직진으로 진동리 향하는 길을 따라서 가다가 곧바로 나오는 조침령 터널
관리사무소 앞에서 내리는데 2017년 9월에 3차 대간길에 왔다...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감회가 새롭다...좌측의 계곡에서 알탕하던 때가 좋았는데, 그때
같이 걸었던 산꾼들은 지금은 뭘하고 있는지?...
저 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곰배령만 빙그레 웃는듯 하다.
진동삼거리(09:30)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 삼거리는 예전엔 인제군 중에서 최오지로 현리에서
70리나 되는 곳이지만 지금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418번 지방도가 지나고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찿는 곳으로 진동 계곡이 흐르는
설피마을 입구인데 청정지역이라 소문이 난 탓인지 민박집과 펜션이 많이 보이는데
진동계곡에는 산사람, 귀농인, 은퇴자, 화가, 환경운동가, 공동체생활자, 시인, 소설가,
수행자, 병 치료자, 은둔자 등 온갖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스며들어 살고
있으며 모두가 ‘독립특행(獨立特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이곳은 대관령, 진부령과 함께 대표적인 폭설 지역으로 이곳 출신들은 겨울이면
‘징그럽게’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할 정도이며, 4월까지도 잔설이 남아 있다고 하며
설피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깊은 눈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신발에 덧대 맨
곁신을 말한다... 한번 눈이 내리면 마을이 푹 파묻힐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은 식구
숫자대로 설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리사람들은 진동리를 설피밭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협객 武士 백동수가 살던 진동계곡
예전에 TV 드라마에 나왔던 조선시대의 “협객 백동수”가 살았던 곳이 진동계곡이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1742∼1815)는 1771년 무과에 급제했으나 서자 출신이라 좀처럼
벼슬길이 열리지 않았고, 자연히 하루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들었던 삶을 살던 백동수는
1773년 미련 없이 늙은 부모를 비롯한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정착한 곳이 이곳 기린골(현 기린면 진동계곡)로 단칼에 구차한 ‘한양살이’를 접어버린 것이다.
백동수의 호가 ‘야뇌(野뇌)’로 야뇌란 ‘황야의 굶주린 늑대’ 정도의 뜻으로 풀이하면 될것 같다.
백동수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송아지를 짊어지고 들어가 키워서 밭을 갈고, 소금 된장이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가 먹으며’ 살았다는데 당시 ‘그곳은 큰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로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으며 문밖을 나서면 ‘열 손가락에
못이 밖인 나무꾼과 봉두난발의 광부들만이 화롯불을 앞에 두고 빙 둘러앉아 있고, 밤이 되면
바람이 쏴아 불어 집을 스쳐 돌아가고, 슬픈 짐승들이 끊임없이 울부짖는 그런 곳’이었다.
백동수의 친구들은 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 당시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다...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책상머리에서 시나 짓고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먹물이었다.
그렇다고 백동수는 그의 나약한 젊은 벗들을 비웃지 않았으며 껄껄 웃으며 모두 품에 안았다.
젊은 날, 그의 가난뱅이 먹물들이 한양 도성 주위에서 무위도식하며 맴돌 때 백동수는 주저 없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가 온몸을 부리며 살았던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조침령으로 향하는 넓은 도로로 오르는 길에 노루오줌풀꽃 말을 건넨다
이곳도 무척이나 더운데 컨디션이 좋지도 않으시면서 집에 쉬시지
하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는 듯 하다...난 산행이 아니라 살기위한 발버둥이라네
오늘의 날씨도 꽤나 더운 모양이다
잠깐 사이에 벌써 옷이 젖어들기 시작한다
등로에는 예전에 없었던 철조망이 처져 있는데 이것은
뫳돼지들이 매개체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축산 농가로
옮기는 걸 방지하기 위한 철조망이다
도로를 따라서 고도를 조금씩 높혀가는데 간간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肺腑에 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라 한결 수월하게 조침령으로 향한다
이곳은 예전에 없었던 인제천리길이란 리본이 많이 달려있다.
아무리 인제군이 크다고는 하나 천리(400km)나 된단 말인가
인제군의 면적이 넓기는 넓은 모양이다.
참고로 남한의 지자체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군은 1위가 홍천군이고,
2위가 인제군, 3위가 평창군이지만, 인제군의 1/3은 북한땅으로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는 인제군이 가장 넓다고 볼 수 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대간 마루금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곰배령으로 이어지는 진동계곡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철조망(10:05)
백두대간의 마루금으로 복귀한다...관리사무소에서 약 1.5km의
거리를 35분에 거쳐서 도착한 다음에 베낭을 벗어놓고 좌측으로
200여m정도 떨어져 있는 조침령 정상으로 향한다.
다음 구간에 가도 되지만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등로에는 정상석이
하나도 없기에 거기라도 갔다와야 편할 것 같아서 베낭을 벗어놓고 간다
철조망에서 5분만에 옛 조침령 정상석에 도착한다
조침령(曺寢嶺:750m:10:10)
조침령은 ‘새도 자고 넘는다는’ 백두대간 고갯마루로 인제굼 서면 진동리에서 양양군
서면 서림리까지 이어지는 옛길로 구룡령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며
새해맞이 장소로 유명하며, 조침령 정상으로 임도가 있는 데, 지금은 양양과 연결된
터널이 완공되어 백두대간 산꾼 이외는 아무도 찾지않는 잊혀진 산길이 되어 버렸다
표지석 아랫부분을 보니 ‘연장 방통 - 서림 21KM, 공사기간:83.6.10 - 84.11.22
시공부대: 3군단 공병여단’이라고 적혀 있는데 3군단이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군단장으로 있었던 부대가 아닌가
인증샷
되돌아가는 길에 큰까치수염꽃과도 조우를 하고...
빨갛게 익은 올괴불나무 열매도 만난다.
다시 철조망(10:15)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막기위한 고육책으로 철조망을 막아놨고
대간꾼들의 통행을 돕기 위해서 자물쇠는 잠궈지는 않았다.
다시 베낭을 짊어지고, 오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이게 뭐여!
난 둘레길에 온 줄 알았네...옛날에 있었던 나무 계단은 사라지고
마치 대간길이 둘레길이 되어버린데는 채 5년밖에 되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고...
자연은 있는 그래도 있을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법인데
왜 인간들은 바꾸고 고치는데 안달인지 모르겠다.
나혼자 걱정한다고 바뀔일도 아니고... 체념을 하는게 건강에도
좋을듯 싶어서 그냥 묵묵히 걸어서 올라서니 아무런 특징도 없는
794.0m봉에 도착한다
794.0m봉(10:25)
794.0m봉에 있는 峰산행 大家들의 흔적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이 청량제 역할을 한다
암봉이 나오고 또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북쪽인 이곳에도 여름이 빨리오나 보다...시원스레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정겹다.
편안한 등로를 내려오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28)
내려온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게 산행에서는 眞理不變의 원칙이 아니던가...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고맙기만 하다
무명봉(10:35)
안부(10:35)
동쪽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오대산의 산줄기가 양양의 북동쪽으로 흘러 내린다
안부를 지나서...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796m봉(10:38)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추모비가 나온다
추모비(10:39)
아까운 나이에 生을 마감하셨네요...그래도 세상을 잘사신 모양입니다
영원한 산꾼(운봉 이복록)님을 기리며...
1960.1.9~2016.5.14
백두대간 종주를 갈망하며
장장 3년을 걸어오다
남은 3구간을 남겨두고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신
운봉 이복록님을 영원히 기리며
여기에 나무 한그루를 심습니다
2016년 6월 26일
사랑하는 가족과 산 친구들
안전로프가 전혀 필요치 않은곳에...너무 과잉으로 비춰집니다
오랫만에 내 肉身이 호강을 하는 느낌이다
오뉴월에 강원도 정선땅의 지맥길을 헤매는라 너무
고생이 많아 미안했는데 오늘은 조금 덜 미안하구나...
좌측으로 샛길이 보이는데 미천골이 있는 양양군 서면 황이리(黃耳里)로 내려가는 길이다
황이리(黃耳里)는 황룡마을이라고도 하며, 강원도 양양군 서면, 백두대간 구룡령 산자락
동쪽 계곡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을을 둘러싼 지형이 마치 귀 달린 황룡이 머무는
형상이라 하여 예로부터 황이리(黃耳里)라 불렸다 하며. 동서울로부터 278km, 양양군청
으로부터 20km 서쪽에 있으며, 국도 56호선과 1급 수질의 후천(後川)이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다.
황룡마을의 미천골에는 선림원지삼층석탑(보물 제444호)와 선림원지석등(보물 제445호)이 있고,
미천골계곡을 끼고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을 비롯해 얼음골, 불바라기약수, 문닫이암산 등의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을의 특산물은 친환경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하는
친환경쌀과 인진쑥·장뇌·산채·송이·토종꿀·표고버섯·목공예품이다.
안부(10:47)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0:52)
예전에는 우측 능선으로 걸었는데 둘레길 형태의 사면길로 걸어간다
바람불이 삼거리(750m:10:54)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의 경계에 있는 안부로
사람 키크기의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진동리의 바람불이쪽은
산죽 사이로 등로가 보이나 양양쪽은 등로가 없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붙여진 이름으로 풍취동이라고도 하는 곳이
구전(口傳)에 의하면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총각이 꼴(풀)을 먹이려고
소를 몰고 나왔다가 무지막지한 바람에 소가 날아 갔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조금 쌩뚱맞은 지명이지만 그만큼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보면 될듯하다
바람불이삼거리에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쪽은 산죽 사이로 흐릿한 등로가 보인다
완만한 통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사익 선생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걷다보니 742.8m봉에 도착한다
742.8m봉(10:58)
정상 아래는 뭘 하려는지 벌목을 해놨고 잠시후에 걸어야 할
능선들이 시원스레 보이는데 노랫소리에 심취하다가 이곳에 있는
삼각점(△현리422)이 놓치는 憂를 범한다
2017년 10월 15일 ...백두대간 3차때의 삼각점 사진
오늘 산행은 귀경길이 느긋하여 꺽정할게 하나도 없다.
버스표가 밤 11시이니, 뭔 꺽정이람...시간상으로는 구룡령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이지만 어둠속에 구룡령까지 갈 일이
없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山川景槪를 두루 즐기면서 천천히
걸어 보련다...산악회에 따라오면 꿈도 꾸지못할 이 호사를 어찌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이게 독립군의 특권이제...
742.8m봉에서 느긋하게 내려서니 쇠나드리 고개가 나온다
쇠나드리 고개(713m:11:02)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곳을
요즘은 옛 조침령(鳥寢嶺)이라 부르는데 이곳이 오리지널 조침령으로 인제쪽은
산죽이 우거지긴 했으나 희미한 등로가 보이지만, 양양쪽 등로가 전혀 없다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馬房)이 있었고
소금을 실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소 풀이 많아서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소가 나들이 나간다"는 뜻에서 ‘쇠나들이’로
부른다"고도 하며, “높고 깊은 골짜기를 넘는 바람소리가 쇳소리가 나서 쇠나드리라고
한다” 하며, “강풍에 먼 나들이를 떠나듯 황소(牛)도 바람에 날아 간다”는 뜻의 쇠나드리.
또는 새나드리, 바람불이, 우탄동(牛灘洞)으로도 불리는 쇠나드리는 가을날의 억새가
장관이라고 하는 곳인데 지금은 억새는 전혀없고 산죽밭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쇠나드리 마을 방향은 등로가 고속도로(?)같은 느낌이다
지난주에는 컨디션 저하로 쓰러져서 하루동안 병원 신세를 졌건만
이렇게 산에만 들어서면 이렇게 멀쩡하니, 산에 오기위한 꾀병이었나?
衆生들의 삶은 生老病死의 어디쯤에 해당될까...
완만한 오르막길
예전에는 남한의 백두대간 코스중에서는 구룡령에서 한계령까지의
56km 지점이 가장 奧地에다 험하고 힘든 코스라고 알려져서 대간꾼들이
가장 긴장하는 구간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둘레길로 바꿔버릴 모양이다
가던길을 멈추고 뒤돌아 본다
가리골 계곡 너머로 우측의 풍력발전기 너머로 우뚝솟은 점봉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가지를 친 작은 점봉산,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야생화의 寶庫
곰배령이 얼굴을 내민다...그 뒷쪽으로 보이는 설악산의 主陵은 遠京이라
그런지 모든게 흐릿하게만 보이는구나.
나뭇가지 사이 아래로는 현리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418번 도로가 보인다
쉬엄쉬엄 걷기에는 너무도 좋은 코스이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敬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대간을
걷는다는 일부의 대간꾼들은 다른건 아예 관심조차도 없고, 오르지
몇km를 몇 시간에 주파했다는 거기에 매몰되어 산이 주는 妙味를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산은 늘 거기에 있는데 즐기면서 걸어가소...
나도 그짓거리를 해봤지만 다 부질없는 짓거리이더이다
무명봉(11:17)
무명봉에 있는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예전의 인제국유림사업소에서 관리를 할 때 세워둔 옛날
이정목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이정목은 국립공원에서 서 있는
이정표와 같은 형태이고, 거리도 새로 측정을 했는지 예전것과는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오대산국립공원의 북쪽이고, 설악산국립공원의 남쪽으로
인제국유림사업소 관할인데 국립공원으로 편입이 됐나?...
안부(11:21)
가련한 꿩의 다리꽃이 수줍은 채로 산꾼을 반기는데 외면하고 갈 수 있겠는가...
한동안 선 채로 눈맞춤을 한 다음에 서서히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지난 한달간 정선과 태백지역의 지맥길을 걸으면서 개고생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다
쉼터(11:30)
쉼터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에 삼각점이 있는 762.7m봉이
있으나 그냥 패스한다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등로를 걸으면서 心身을 추스리며
맥꾼이 힐링하듯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던가...
등로가 좋으니 슬슬 못된(?)습관이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버스에서 꽤나 잤는데도 등로가 편하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1:34)
무명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에 좌측의 황이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지만 대간길은 그냥 넓은길로 따라만 가면 된다
대단하십니다
한구비 돌아가니...
길을 잃을까봐 친절한 금자씨마냥 이정표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표의 종착지는 한결같이 갈전곡봉이다.
하기사 조침령에서 구룡령까지 약 22여km의 거리상에 있는
수많은 봉우리중에 유일하게 지명을 가진 산이 갈전곡봉 밖에
없으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물길을 따라서 거슬러 온 연어
生이 빠져 나가고 本能만 남아 헐떡거린다
그에게 길이 무엇이었나...
도착한 곳이 목적지인지 묻지도 않고
헐거워진 몸뚱이를 털어 다음 生을 쏟아낸다.
목적지가 처음부터 길의 일부였다는 것을
연어는 알고 있었을까
윤석호님의 “길에 대한 단상” 中에서...
무명봉(11:42)
길이 막혀 있다는 말은 있어도
끝났다는 말은 없다
길이 막히면 길은 그 자리에 잠복(潛伏)을 한다
비오는 날 유리창에 떨어진 빗물
머뭇거리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흘러 내리듯
길 안에는 또다른 길들이 내장되어 있다
주변에 산죽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47)
안부를 지나고...
편안한 길을 걷다가...
이름없는 완만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무명봉(11:50)
등로 좌측으로는 습지같은 느낌을 주는 넓은 공터에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도차가 별로없는 잔잔한 봉우리를 쉼없이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한다
무명봉(11:55)
오늘도 날씨는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의 더위이나 그래도 강원도라서
그런지 숲속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흐르긴 하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해서 좋다
상상은 자유?
백두대간 표식과 망가진 통나무 의자에 넓은 공터가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예전에 대간꾼들은 이곳을 황이리(黃耳里) 삼거리라고 했는데
새로 설치한 이정표에는 작은미아치골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작은 미아치골(11:58)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작은미아치골과 양양군 서면 황이리의 경계의 있는 안부로
진동리쪽으로 향하는 길은 등로가 뚜렸하니 황이리 방향은 등로가 흐릿하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양양군 서면 황이리는 오지 마을로 농사짓기가 어려운
마을이라 흉년이 들면 곡식이 누렇게 황(黃)이 들어 귀(耳)처럼 오그라든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미천골 휴양림이 생기면서 구룡령으로
가는 56번 국도 주변으로 민박집과 펜션이 많이 생긴 마을이다
작은 미아치골은 계곡이 많아서 비가오면 급류 피해가 많은 곳인 모양이다
조침령에서 이곳까지는 참으로 편하게 왔는데 이곳부터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길을 막아서는데 그렇다고 안 갈수는 없잖은가
천천히 牛步걸음으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부지런함은 생명의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죽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죽은거나 마찬가지이다
법구경 방일품 중에서
오늘 처음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몸뚱아리에 부스럼덩어리(?)를 잔뜩 붙은 갈참나무가
나를 내려다 본다...산다는게 다 苦인가봐
힘들게 올라선 다음에 숨한번 크게 쉬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16)
무소의 뿔처럼 쉼없이 꾸역꾸역 올라간다
왕승골 삼거리까지는 아직도 8km정도 남은 모양이다
무명봉(12:20)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좌측 아래에 벌목을 해놨지만 앞에 막아선 나무들이 키가 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안부(12:23)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에 올라서는데 오전에 간간히 불어주던
고마운 바람들은 자기 임무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지
불어주지도 않고 목이 너무말라 산행후에 처음으로 베낭을
내려놓고 1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에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잠시후에 오를 995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
안부(12:42)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
오르막이 있는게 자연의 섭리라고 했던가...
돌계단을 따라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낙타나무?
산죽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비가온 이후라 그런지 상당히 미끄럽다
한달음을 더 치고 올라서니...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넓은 공터같은 곳을 지나 995m봉으로 올라선다
995m봉(12:57)
995m봉 정상에는 옛날 이정표와 통나무 의자는 망가진 채 나딩굴고 있다
995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대간 마루금을 이어가고 있다
대간 마루금은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길을 이어간다.
오늘 산행은 참으로 밋밋하고 편안한 산행이지만 대간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가지 않으면 안 될 산이다.
숲이 우거지니 주위의 조망은 전혀없고, 나무가 그늘을 형성하니
산행의 白味인 야생화는 전혀없고, 산죽만 무성하고, 산림청에서는
전 대간길을 둘레길로 만들려는지 힘든 정상은 사면길로 돌려 버리는
惡行(?)도 서슴치 않는 이 행위는 자연에 대한 배신 행위다
안부(14:05)
이곳은 위험한 곳도 아니요, 토사가 흘러내릴 곳도 아니것만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놨다.
요즘들어 신성한 산에와서 산 이외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걸 보고 안한다는 건 유감이다
요즈음 안다는 핑계로 엉뚱한 생각을 품는 자들이 가끔 눈에 띈다.
TV 등에 출연하여 거품 물고 환경파괴를 외치는 인사들로 曲學阿世의 전형이다.
이들 중 과연 몇이나 제대로 자연을 접해본 경험이 있을까?... 이들에게 권한다.
경제성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책속의 논리 형식에 파묻히지 말고 산을 찾아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란다 ....산 속(현장)에 답이 있다는 걸 인지하기 바란다
그리고 자연(산)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기 바란다...잠시 분위기에 맞지 않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로 이어지는 구간은 거대한 정원길이다.
그 흔한 산 이름을 가지 봉우리 하나도 없지만 대자연이 만들어낸 정원길....
길 또한 편안하고 대간 마루금 가운데 드물게 보는 비단길이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자연가 /하서(河西)김인후(金麟厚)
靑山自然自然((청산자연자연)
청산도 절로절로
綠水自然自然(녹수자연자연)
녹수도 절로절로
山自然水自然(산자연 수자연)
산 절로 물 절로
山水間亦自然(산수간아역자연)
산과 물사이 나도 절로
已矣哉自然生來人生(기어재 자연생래인생)
아마도 절로 난 몸이라
自然與然老(장자연자연노)
늙기도 절로절로
"푸른 산도 자연이요 푸른 물도 자연이로다
산도 자연이요 물도 자연인데 그 산과 물사이에
살고 있는 나도 자연이로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대로 자란몸이니
늙기도 자연대로 하리라"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여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인종이 즉위하여 9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전라도 장성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정진하였다.
어려서 총명했으며 당시 전라도 관찰사 김안국에게도 지도를 받았으며, 1528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李滉)과 함께 학문을 닦았고, 540년(중종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뒤에 설서(說書)·부수찬(副修撰)을
거쳤고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으며, 부모 봉양을 위해 옥과현령(玉果縣令)으로 나갔다.
1545년(인종 1)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난 뒤에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으며, 누차 교리(校理)에
임명되나 취임하지 않았는데 인종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한때 술과 시로 방황하였다고 전한다.
성경(誠敬)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하고, 이항(李恒)의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에 반론하여,
이기(理氣)는 혼합(混合)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律曆)에도
정통하였고,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 남원의 노봉서원(露峯書院),
옥과(玉果)의 영귀서원(詠歸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하서전집》, 저서에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
《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으며, 매년 4월에 선생을 기리는 춘향제(春享祭)가, 9월에는
추향제(秋享祭)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필암서원에서 열린다.
무명봉(14:13)
무명봉의 이정표
連理枝 닮아가는 갈참나무
따라하기
쉼터(14:13)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왕승골 삼거리로 향한다
무명봉(14:15)
완만한 등로로 내려가니...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원시림을 방붙케하는 숲을 만나는데 우거진 숲에는
큰뱀무와 꿩의 다리와 박새, 홀아비꽃대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큰뱀무(꽃말:만족한 사랑)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또 꽃이 사람 귀에 들어가면 들리지 않게 된다고 해서
귀머거리풀이라고도 부르는 꽃으로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몽골, 시베리아, 터키, 동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큰뱀무는 키나 잎이 뱀무보다 약간 크며, 또 작은꽃자루에 퍼진 털이 있는 것이 뱀무와 다른 점이다.
여기에서 ‘뱀’은 뱀과 관련이 있거나, 기준을 삼는 식물에 비해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르다는
뜻으로 또 줄기 밑에 달리는 잎의 생김새가 “무” 잎처럼 생겨 뱀무라고 하며, 전국 각지의 산야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들고 부엽질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며 전체에 옆으로 벌어진 털이 있고, 키는 30~100㎝이며, 뿌리에서 생긴 잎은
깃꼴겹잎으로 밀집해서 나며, 작은잎은 3~5쌍이며 끝은 뾰족하고 고르지 못한 톱니와 결각이
있고 작은잎은 밑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데, 네모난 달걀 모양이거나 둥글며 크기는 길
이 5~10㎝, 폭 3~10㎝이다.
꽃은 6~7월에 줄기나 가지 끝에서 펼쳐지듯 피며, 꽃 색깔은 노란색으로 3~10개의 꽃이 달린다.
열매는 8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리며 황갈색 털이 밀생하고 꼭대기에 갈고리 모양의 암술대가
달려 있으며, 길가에서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붙어 씨를 퍼트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뫳돼지들이 난도질을 한 등로를 지나니 1.059.2m봉에 도착한다
1.059.2m봉(14:22)
오늘 산행중에 족보있는 봉우리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건만
봉우리라기 보다는 안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밋밋하고 대간꾼의
시그널 하나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대간꾼들은 족보있는 무명봉에는
관심조차 없는 모양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다가...
조금씩 고도를 낮추는데...
등로 주위에는 가련한 꿩의 다리와...
큰뱀무꽃이 군락을 이루는 곳으로 내려서니 밋밋한 안부가 나온다
뱀무의 종류에는 큰뱀무와 뱀무가 있는데 차이점은 줄기에 털이 있으면 큰뱀무이고
털이 없으면 뱀무로 꽃은 뱀무보다 큰뱀무가 약간 더 크게(0.5cm 정도) 피고
열매는 뱀무는 원형, 방사형인데 큰뱀무는 타원형으로 아래로 처지는 모습이다.
턱잎은 뱀무는 작고 치아형 톱니인데 큰뱀무는 크고 결각이 있는 모습이며
줄기잎이 뱀무는 둥글고 갈라지지 않는데 큰뱀무는 줄기잎이 깊게 갈라지고 끝이
날카로운은 모습이고, 뿌리잎(근생엽)은 뱀무는 깃꽃형으로 마지막 3장의 작은잎이
달리고 큰뱀무는 깃꼴형으로 마지막 잎이 크고 넓은 형으로 결각이 있는 모습으로
달리는게 특징이다
안부(14:27)
계속되는 내리막길
좌측 아랫쪽을 바라보니 오금이 저릴 정도의 천길 낭떠러지가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살짝 열리면서 미천골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구룡령과 약수산, 응복산이 살짝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미천골(米川谷)의 모습
양양군 서면 황이리에 있는 미천골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쪽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에있는 8㎞에 이르는 계곡으로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까지도 산천어
등 희귀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미천골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 법흥왕 때 창건했다는 선림원이라는 옛 절터가 있는데
한창 융성했던 시절에는 끼니 때마다 쌀뜨물이 내를 이루며 골짜기로 흘러 내렸다고 하며
미천골의 미천(米川)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림원은 지금은 흔적만이 있을 뿐이며 선림원지에는 높이 5m의
선림원지삼층석탑(보물 제444호)을 비롯해 선림원지석등(보물 제445호),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 선림원지부도(보물 제447호) 등 4개의
보물을 만날 수 있으며, 미천골 자연휴양림에서 임도를 따라 약 4.8㎞를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위치해 있다는 불바라기 약수터도 가볼만한 명소로 꼽힌다.
무명봉(14:30)
나를 미워하던 사람도 세월 지나니 사랑으로 남더라
이제 오해의 돌팔매도 사랑으로 맞을 수 있더라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더라
삶의 길을 걷다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더라
사랑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더라
지난날 돌아보니 모두가 내 잘못이더라
지난날 돌아보니 모두가 내 욕심이더라
지난날 돌아보니 모두가 내 허물뿐이더라
내가 진실로 낮아지고 내가 내 욕심을 온전히 버리니
세상에 사랑 못할게, 용서 못할게 아무것도 없더라
가도 가도 세상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하더라
가도 가도 세상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더라
- 장시하 님의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더라 - 중에서
쉼터(14:33)
오후에 들어서니 오전과는 달리 간간히 불어주던 바람이 멈춰 버렸다.
산이란 원래 그런거야...내가 산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산에 맞춰서 걷자.
지난 한달간 지맥길을 개고생하면서 걸었는데 뭘 투덜거려...
대간꾼들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 갈참나무
조금씩 고도를 낮추면서 걷는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멈춘다.
왜 그런가하고 보니 방전이 다 되어 버린 모양이다...음악이 없으니 호젓한 숲길을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느낌이다
안부(14:42)
955.4m봉(14:44)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 / 이근대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놔둬라
바람도 담아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이쁜 사랑도
지나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놔둬라
마음에 가두지 마라
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흐르게 놔둬라
물도 가두면 넘칠 때가 있고
빗물도 가두면
소리 내어 넘칠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향기 나는 꽃밭도
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
출렁이면서 피게 놔둬라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오르막길만 만나면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매미소리만 내가 산에 있다는 걸 각인시켜 주는듯 하다
무명봉(14:58)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삼각점이 있는 951.6m봉에 도착한다
951.6m봉(15:01)
951.6m봉 삼각점(△333FOB / 현리 420:강원도 양양군 서면 구룡령로 1653)
951.6m봉 정상에서 만난 봉산행 대가들의 흔적
이곳은 방태천환종주의 구간과 백두대간길이 겹쳐지는 구간이다
방태천환종주도 지도
삼둔사갈(三屯四耕)이란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을만한
비장의 피난처로 지칭한 ‘삼둔사가리’를 일컫는 말로, 둔이란 강(江)이나 내(川)등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물가의 둔덕진 곳(둔치)을 말하며, 가리(갈)란 사람이 살
만한 터, 다시 말해 밭을 일굴 만한 평평한 산기슭의 터를 의미한다.
정감록에는 살둔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즉 물, 불, 바람. 달리 표현하면
흉년, 전염병, 전쟁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높고 깊은 산세처럼 울창한 숲에서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니 전염병이 돌리 없고, 깊은 골짜기로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가뭄을 없애며,
산은 첩첩하고 골은 겹겹하여 들머리는 좁고 그 안은 넓어져 외부의 접근도 어려우니
피병지(避病地)라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게 말해 삼재가 들지 않는 복
된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 나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삼둔(三屯)이 홍천군 내면 쪽에 위치해 있는 반면, 사갈(四耕)은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해 있다.
사갈 가운데 연가리는 진동리에 있고, 적가리와 아침가리, 명지가리는 모두 방동리에 속한다.
이 가운데 현재 사람이 사는 마을은 살둔, 월둔, 연가리, 아침가리 정도다.
삼둔 사가리의 전해오는 유래
강원 인제 땅에는 독특한 지명이 있다. 기린면이다. 말 그대로 기린(麒麟)이다.
기린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 때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면서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명이 기린일까.
현지 향토사학자들은 진짜 기린이 아니라 사슴을 형용한 지명이라고 풀이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인제에는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흉한 손길을 피해 사슴들이 몸을 피한 곳이다. 워낙 골이 깊고 산이 험하기 때문이다.
사슴 뿐 아니라 사람도 피했다. 기린면 인근의 방태산, 구룡덕봉 등에는 삼둔 오가리라는 땅이 있다.
정감록에는 나라에 난리가 나도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곳으로 기록돼있다.
예로부터 왕을 저버렸거나,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숨어 들어 살았다.
삼둔(三屯): 살둔(생둔), 월둔(달둔), 귀둔.
사가리(四耕): 아침가리,명지가리,연가리,곁가리.
4가리
아침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조경동(朝耕洞)
명지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구룡덕봉 남동쪽 기슭이며 아침가리 물길 최상단부다.
적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곳. 곁가리라 하기도 한다.
연가리 :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951.6m봉에서 내려오니 등로에 예초기 2대와...
나무에는 곡괭이가 꽂혀있고...
갈꾸리까지 갖다놓고 대간길의 野性을 송두리채 빼앗아 버리고 있다.
꼭 이래야만 直性이 풀릴까...제발 헛지랄 고만해라...
대간꾼들이 걷기는 편할런지는 모르겠으나 한번 망가진 자연이
되돌아오는데는 얼마나 걸릴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겠지...
무명봉(15:05)
과잉친절?...
덕분에 내 몸뚱아리가 오랫만에 豪奢를 누린다
연가리골 갈림길(15:12)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연가리골은 인제 4가리(四耕)중에 가장 깊은 계곡으로
우측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인 연가리골로 내려서는 등로길이며 연가리는
아침가리에 이어 연이어 있는 골짜기라 붙혀진 이름으로 담배를 만드는 연초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둔사갈(三屯四耕)이란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비장의
피난처로 지칭한 ‘삼둔사가리’를 일컫는 말로, 둔이란 강(江)이나 내(川)등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물가의 둔덕진 곳(둔치)을 말하며, 가리(갈)란 사람이 살만한 터, 다시 말해
밭을 일굴 만한 평평한 산기슭의 터를 의미한다.
정감록에는 살둔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즉 물, 불, 바람. 달리 표현하면 흉년, 전염병,
전쟁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 하는데,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높고 깊은
산세처럼 울창한 숲에서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니 전염병이 돌리 없고, 깊은 골짜기로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가뭄을 없애며, 산은 첩첩하고 골은 겹겹하여 들머리는 좁고 그 안은
넓어져 외부의 접근도 어려우니 피병지(避病地)라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게 말해
삼재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 나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지역들은 6·25 전쟁 때도 군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연가리골 내려가는 길에는 샘터가 있어서 대간꾼에게 요긴하게
이용되는 곳인데 난 지금 식수가 필요치 않으니 내려갈 일도 없다
연가리골 샘터 안내판
우리 자신 이외는 그 누구도 우리를 구해줄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도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1,030m봉(15:28)
진동삼거리에서 이곳까지 12여km정도 걷고보니 등로는 고속도로같은
느낌이나 슬슬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게 내 체력의 한계인가보다...
다른 대간꾼들이야 즐기려고 산을 타지만 나는 살기위해 산을 탄다고나 할까...
그런데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니 지맥을 완주나 할까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앞선다.
연가리골 삼거리를 지나면서도 고만 고만한 봉우리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멋진 산 이름을 가진 봉우리 하나도 없고, 지나온 길과는 인사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름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길 또한 매우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분명 처음 찾는 길임에도 낯이 익다.
어디서 보았을까?
시간이 좀 지나서야 겨우 생각이 떠 오른다.
TV나 영화 혹은 화보 등에서 본 고래 등 같은 집안의 정원이다.
이제야 알 듯하다... 자연에 가까운 산수화를 그리는 분,
자연에 가까운 조경을 하는 분 이런 분들이 해당 분야에서
장인(匠人으로 꼽힌다는 것을...결국 훌륭한 산수화(山水畵)를
그리는 화가가 되고 뛰어난 조경사(造景師)가 되려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자주 찾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매달리고 알아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온가 보다... 대간길은 직업 정신(장인 정신)까지 가르쳐 준다.
무명봉(15:33)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늦은 오후...
귀경하는 버스표가 밤 11시 것이니 서두를 것도 없다.
여유롭게 걸으면서 즐기는 산에 향한 無限한 짝사랑일까.
사랑할때 눈까플이 쒸면 모든게 좋게만 보인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산이 그렇다고나 할까.
본인 이외는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게 짝사랑이라고 했지
산을 향한 무한한 짝사랑을 하고 싶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020m봉(15:45)
예전에는 헬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그저 밋밋하기만 하다
1,020m봉에서 바라본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갈전곡봉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공터(15:47)
무명봉(15:53)
다시 내리막길은 시작되고...
썩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건만 그래도 목이 타기 시작한다
반쯤 남은 이온음료를 한방에 원샷으로 해결하고 계속 내려간다
무명봉(16:03)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한군데 몰려 있으니 희소성이
떨어진 탓일까...조금은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6:05)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오늘 산행에서 만나는 봉우리는 한결같은 무명봉이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최오지중에 걸쳐있는 봉우리라
그리 만만하게만 볼 수 없는 봉우리다
동남쪽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구룡령 너머에 있는 홍천군 내면쪽의 산그리메
삼둔사가리중에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에 있지만 삼둔(三屯)은 홍천군 내면에
있는데 이곳 내면의 면적은 어찌나 큰지 왠만한 郡의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삼둔'(三屯)은 홍천군 내면의 살(생)둔, 월둔, 달둔으로
살둔(生屯) : 홍천군 내면 율전2리. 원당초등학교 생둔분교(폐교 후 수련원)
월둔(月屯) : 홍천군 내면 광원2리. 내린천 상류와 자운천 하류가 만나는 합수부
달둔(達屯) : 홍천군 내면 광원1리. (계방산 북쪽 소대산에서 내려온 계곡)
‘살둔’이란 이름은 “이곳에 오면 산다”라는 뜻으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난리를
겪지 않을 정도로 오지(奧地)여서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데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 세조집권을 반대하며 단종 복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일부가 훗날을 기약하면서
내린천을 거슬러 올라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공사를 한답시고 마구 파헤처져 봉우리 절반이 날아간 무명봉을 지나 내려간다
안부(16:10)
넓은 공터의 안부에서 4분정도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968.3m봉이 나온
968.3m봉(16:14)
968.3m봉 정상 삼각점(△현리 308)
968.3m봉 이정표
올라 왔으니 또 내려가야제...한참을 내려간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무명봉(16:25)
마지막인데도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붉은덕다리버섯
균모의 지름은 5-20㎝이고 두께는 1-2.5㎝로 표면은 선주색 내지는 황주색이고
마르면 백색으로 되며, 부채모양 또는 반원형의 큰 균모가 공통의 붙는 곳에서
겹쳐서 나며 전체가 30-40㎝이다.
살은 연한 연어 살색의 육질에서 나중에 단단해지며 부서지기 쉬우며,
아랫면의 관공의 길이는 2-10㎜로 구멍은 불규칙하고 1㎜ 사이에 2-4개 있다.
포자의 크기는 6-8×4-5㎛이고 무색의 타원형이며, 어릴 때는 식용한다.
발생은 1년 내내 침엽수의 고목이나 산나무 또는 그루터기에 나는 목재부후균으로
나무속을 썩히는 갈색부후 균이며, 분포는 한국에서는 발왕산,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등지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일본, 아시아 열대 지방에 분포한다.
힘들게 올라서니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944.8m봉인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다
944.8m봉(16:32)
왕승골 삼거리를 향하는 길에 고도를 조금씩 낮추기 시작한다
무명봉(16:35)
등로 좌측에 잡풀이 무성한 곳이 나오는데 예전에 “孺人平海 孫氏之墓”의 묘비가
있었던 무덤이 있었는데 지금은 후손들이 다른 곳으로 移葬을 했는지 묘지는
보이지 않고, 잡풀만 무성하다
부지런히 내려가다보니 오늘 산행 종점인 왕승골 삼거리가 나온다
왕승골 삼거리(930m:16:45)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왕승골과 인제군 기린면 조경동을 잇는 고개로
예전의 이정표는 새것으로 교체됐고,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안내도와 상세도가 설치되어 있다
왕승골은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지역으로 농촌경제가 향상되지 못하였을 때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春窮期)에는 갈근(葛根:칡뿌리)으로 근근이 호구하여 오는 실정에서
마을 앞 계곡이 갈분(葛粉) 일색이었다는 데서 유래됐으며 갈천 또는 속칭 “치래”라고도 한다.
왕승골 삼거리에는 대간길을 정비하는 노무자들의 장비들이 많이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조경동(朝耕洞)인데 조경동의
원명(原名)은 아침가리로, 한자로 표기하여 아침 조(朝), 밭갈 경(耕) 자를 써서
조경동(朝耕洞)이 되었으며, 아침가리란 산이 높고 험해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새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졌다
지명의 유래는 밭이 하도 작아 아침나절이면 다 갈아버린다고 해서
아침가리골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풀어쓰다 보니 조경동(朝耕洞)라 한다.
조경동(아침가리골)은 여름계곡 트래킹으로 유명한 곳으로 조경동(아침가리골)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해 있는 계곡으로 구룡덕봉(1,388m)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방태천으로 들어가며, 상류는 월둔·명지거리·방동약수를 잇는 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하류로 갈수록 한적하며 원시림을 느끼게 하는 골짜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맑은 물에서는 열목어가 살고 있고, 수달(천연기념물 330호)·
족제비·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 등 희귀동물을 볼 수 있으며, 수만평에 이르는
지역이 야생화 천국이다.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안내도
이곳에서 대간 산행을 종료하고 왕승골 방향으로 향한다
당일 백두대간 이 구간을 걸으시는 분들의 하산길이기도 하고, 무박 산행하시는
분들의 중탈의 등로이기도 한 곳이라서 그런지 등로는 의외로 뚜렸하다
내가 내려가야 할 왕승골 계곡 갈천약수로 유명한 서면 갈천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올해 처음 만나는 동자꽃...이제 노스님에 대한 원망을 거두시죠?
‘갈 지(之)’자로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한참을 내려온 다음에 계곡을 가로질러 사면길을 지난다
계곡의 급경사는 다 지나온 모양이다
꽤나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알탕을 할까 생각을 했지만
아직까지 56번 국도변까지 가려면 2여km정도가 남아있어 그냥 지나친다
사방댐(17:13)
사방댐을 지나니 왕승골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벌통들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금강선원이라는 절집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직진으로 내려간다
내가 조금전에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왕승골 마을로 내려서니 민가는 뛰엄뛰엄 보이나 한결같이 멋지게 지어진
펜션처럼 보이고 예전의 왕승골 풍경은 찾아보기가 힘이들 정도이다
몇 채 밖에 안되는 민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다
이제 양양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가 얼마남지 않아
도로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서 깔끔하게 알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데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안 그래도 작은 거시기가
더 오그라들었다
왕생골길 1교(17:50)
다리 건너기 직전 우측으로는 갈천오토 캠핑장이 있고 구룡령 방향으로
한참 올라가면 갈천약수터가 있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 있는 갈천약수(葛川藥水)는 갈천리 서쪽
서쪽 약 11km 지점의 구룡령 계곡의 바위에서 솟아오른다.
철 ·나트륨·칼슘·마그네슘·칼륨·망간 등을 함유하며, 특히 철의 함량이
높아 위장병,빈혈,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약수가 솟는 너럭바위 주변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으며, 갈천리의 마을 이름은
옛날 마을 사람들이 빈한(貧寒)하여 칡뿌리로 허기를 달랠 때 냇가에 칡물이
가실 날이 없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설악산국립공원 관광코스로 이용된다.
갈천리(葛川里) 버스 정류장(17:52)
왕승골 삼거리에 2.6km를 걸어서 양양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에
도착한다 도로 아래에는 서림천이라 부르기도 하는 후천(後川)이 흐르고 있고
갈천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양양군 서면에 있는 갈천리는 옛날에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로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에는 갈근(칡뿌리)으로 근근이 호구(糊口:입에 풀칠을
한다는 뜻으로, 겨우 끼니만 이어 감을 이르는 말)하여 오는 실정에서
전천이 갈분(葛粉) 일색이었다고 하는데서 갈천 또는 속칭"치래"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의 최고 청정지역이라서 그런지 못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펜션지역과 관광지역으로 바뀌어 버렸다
내가 내려온 왕승골 계곡을 뒤돌아 본다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펜션에서 RV차량 한대가 나오는게 아닌가...밑져봐야 본전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손을 들었더니만 차를 타라고 한다.
이 분들은 서울로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서양양IC를 타야하는데 IC 들어서기 전에
초등학교 입구에서 내려서 양양택시를 부르면 요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을거라면서
친절하게 자세한 정보까지 알려준다...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양양IC 들어서기 직전인
서면 서림리에 있는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앞에서 내려주고는 서양양IC로 향한다
복받을깁니다...이곳에서 양양택시를 호출하여 터미널에 도착한다
양양버스터미널 시간표
양양터미널(19:10)
터미널에 도착하여 매표소에 가서 매표원에게 밤 11시 버스표인데 조금
일찍 갈 수 있는 버스표가 없냐고 하니까...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표가 없다고 한다...매표소앞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데
표를 파는 남자분이 나를 부르면서 어르신!...19시 50분 서울가는 버스표가
취소된 것이 나왔는데 이 버스는 28인승이 아닌 44인승이라 불편하신텐데
그래도 가실거냐고 묻는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얼른 표를 예매하고 기존표를 취소하는데
요금도 20,700(심야할증)원에서 14.600원으로 줄어드는게 아닌가.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고라는 속담은 이렇게 사용하는거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베낭에 남은 빵고 두유로 저녁을 해결하고 버스에
오르니 이게 뭐여!...내가 탄 옆좌석도 비워 있는게 아녀.
편안한 마음으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서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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