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4년 04월 27일
장소:인천 송도컨벤시아 전시장
언젠가 딸래미 내외와 저녁을 먹다말고, 식사를 하면서 연예인 얘기를 하다가
사위가 하는 말... 아버님은 가수중에 누굴 좋아하시나요...하는게 아닌가.
아빠는 NO1으로는 나훈아이고, 그 담에는 장사익이라고 했던적이 있었다.
장사익 선생이야, 내가 펜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편이라서, 공연테켓은
펜카페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수가 있는데, 나훈아는 좋아는 하지만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꿈도 안꾼다고 했던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하도 오래되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애들에게는 좀 엄하게 대하는 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를 상당히 어렵게 대하는 편인데, 이번에 나훈아가 58년간의 가수 생활을
접는 마지막 콘서트를 한다고 하는데, 예전에 애들한테 한 얘기가 사위한테서
마음에 짐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전에 딸한테 전화가 왔다...아빠 “송서방이 올해 어버이날 효도 선물로
나훈아 콘서트 티켓 2장 예약에 성공했다고” 하면서 토요일날 산에 가지말고
시간을 비워 놓으라고 한다...그리고는 토요일 오후에 와서 나를 태우고
인천 송도 컨벤시아 전시장까지 가서 오랫만에 애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콘서트 구경을 하기로 한다
애들과 함께 오랫만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관람객들이 많이 보이는데 다들 애들 덕분에
온 것으로 보이는데 괜스레 애들한테 짐이 되는것 같아서
영 맘이 편치많은 않구나...
나훈아 공연 티켓
27일 오후 7시 30분에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현장
멋진 상남자인 歌皇 나훈아(77)의 공연은 정말 볼만한 공연이었는데, 공연장
안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공연장을 들어서니 공연장은 꽉 차 있었고, 시계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서
1초도 늦지 낳은 시간에 1966년도 가수를 시작하면서 부른 고향역이라는
노래로 공연은 시작됐고, 2시간 30분간 총 22곡을 쏟아내며 수차례 ‘완전한 은퇴’를 고했다.
첫 곡 ‘고향역’부터 ‘18세 순이’까지 쉴 틈 없이 내리 6곡을 부른 직후 “우선 인천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앞으로 한 십년은 더 할 것처럼 할 것”이라고 외쳤다.
공연 막바지 “혹시 누구에게 곡이라도 써주며 연예계를 기웃기웃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 후배 가수들도 잘 모른다. 누구에게 가사나 곡을 주지도 않는다”며 “살짝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은 안 쳐다볼 것”이라고도 했다. “태어나 직업이라고는 딱 하나 가수였다”며
“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시는지요.
길거리 맛있는 게 있어도 ‘아~ 참자’. 먹는다고 누가 뭐라 안 하는데도 그냥 그러고 살았다”고 했다.
“이제 피아노 앞에 앉지 않을 겁니다. 기타, 만지지 않을 겁니다. 책은 봐도, 글은 쓰지 않으렵니다.
지금까지 남은 마흔여덟권 일기장. 이제 일기도 안 쓸 겁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진짜!” 눈물을 참는 듯한 그의 얼굴에 박수가 쏟아졌다.
인증샷
나훈아는 또 "여러분들 아드님, 따님들이 힘들게 표를 구해서 보내주신 걸
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저는 오늘 무대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나훈아는 가수를 그만두기 전 '앙코르'라는 표현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왜 우리는 좋은 말을 놔두고 '앙코르'(앙코르)이라 하는지,
우리 말 중에 기가 막힌 좋은 말이 있다. '또!'다.
오늘 '또!'만 하면 2부 공연은 빵굽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애들아 고맙다...근데 내가 너희들한테 짐이 된것같아 미안하구나.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도 이날은 더 묵직했는데, 그는 공연마다
이 노래 후렴구 ‘띠리~띠리띠리 띠리~’에 맞춰 만담처럼 속내를 터놓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며 공의 선율에 맞춰
“전 북쪽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긴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북쪽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 가지고. 저거는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 혼자 다 결정하니깐, 실컷 얘기하고 조약을 맺어도 혼자 싫다 하면 끝이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제 전쟁도 돈이 필요한 시대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을 막는데
하루 1조를 써서 99%를 막았다고 한다. (북쪽에서)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는 그의 호소에 ‘옳소!’ ‘그렇지!’ 관객 호응이 쏟아졌다.
신비주의를 고수해 온 그답지 않게 솔직한 사생활 언급도 이어졌다.
곡 ‘마이웨이’ 도중 “언론에서 제가 세 번 결혼했니, 네 번 했니 하는데.
농담 아니고 전 결혼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가사의 ‘Oh No, Oh No’를
능청스레 이어 불러 객석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는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노래가 제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다.
평론가 사이 의견이 분분했던 자신의 공식 프로필(1947년생, 1966년 데뷔)의 일부도 바로잡았다.
살이 비치는 핑크색 상의, 찢어진 청바지 등 총 15벌을 곡 사이사이 무대 위 가림막을 두고
갈아입었는데, 대부분 옷에 ‘1967년~2024년’이 새겨져 있었다. 곡 ‘고향역’ 땐 1967년
출발해 2024년 멈추는 기차 영상을 틀었다. 자신이 여기는 가수 출발점을 ‘1967′년으로
암시한 것. 나훈아는 공연 도중 역대 대통령 사진들과 함께 “11명 대통령이 바뀌고도
전 아직 노래 중”이라며 길었던 가수 생활을 돌아보기도 했다.
나훈아의 마지막 인사곡은 ‘사내’였다.
“큰 소리로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로 시작된 그의 노래는
“훈아(원곡 가사는 사내)답게 살다가/훈아답게”에서 뚝 멈췄다.
나훈아는 “전 이제 마이크를 내려놓기에 노래할 수 없다.
여러분이 대신 (마지막 가사 ‘갈 거다’를) 노래해 주시라”며
드론에 마이크를 달아 날려보냈다. 돌아선 그의 뒷모습이
리프트를 타고 무대 밑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역시 상남자다...베짱하나는 정말 부럽다.
나훈아는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는 발언으로 유명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2002년 평양 공연 때도 초청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뒤
자신의 콘서트에서 "(북한 당국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싫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조용필 이선희 레드벨벳 등 유명 가수가 총출동했던
‘평양 예술단 방북 공연’ 참가를 거절했던 이유를 밝혔다.
2018년 평양 공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나훈아가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스케줄이 바빠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그의 말은 달랐다. “저거는 내가 바빠서 못 갔다 카는데, 적어도
제 공연 오신 분들은 알아야하겠다. 바빠서 못 한다 칸 게 아이고, 때리 죽이도
(노래가) 안 나올 낀데 우째 하누. 앞에 있으면 귓방맹이를 쌔리든지 해야지.” 라고 말했다.
그는 “지는 노래가 전부 서정적입니더. 근데 뚱뚱한 저거는, 저거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 직이고, 저거 이복형을 약으로 직이고, 당 회의 할 때 꿈뻑꿈뻑 존다고 직이뿌고.
그런 뚱뚱한 사람 앞에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이기 나옵니꺼? 으이?”라고 말했다.
나훈아는 일본 공연도 언급했다.
그는 “목을 걸어 놓고 노래를 했다 할까,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했던 공연이 있는데,
한창 그때 (일본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니까 속이 뒤집어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며 “그때 일본에서 공연 제안이 와서 하자고 했는데,
연습할 때는 ‘나나나~’ 이렇게만 부르고, 중계할 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불렀었다”고 밝혔다.
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일잔치 공연 요청과 거액의 사례금을
거절하며 "나는 대중예술가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끊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애들이 태워주는 차로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다...어쩌까...피곤해서 내일 산에
가기는 틀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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