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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미주알고주알

마지막 기회

by 범여(梵如) 2010. 4. 2.

 

      며칠 전부터 오빠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홀로 칠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엄마.
      그런 엄마와 싸우는 오빠에게 대들다가
      나는 뺨을 맞아 오른쪽 청각을 잃었다.
      결국 나는 오빠에게 등을 돌렸고
      남편 따라 미국에 온 뒤로는 남이 됐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오빠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가 가는 동안에도 별 생각이 다 스쳤다.
      이내 힘없는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서 오빠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간 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오빠가 말했다.
      “지금까지 너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부디 용서해다오.”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나도 잘한 것 없어요.
      오빠…  목소리가 안 좋은데 건강 잘 챙기세요.”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허탈했다.
      40여 년 만에 듣는 오빠의 사과가 내 마음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수는 없었다.


      전화한 것을 후회하는 한편 약해진
      오빠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올케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고마워요. 고모한테 전화 받은 다음 날
      오빠 편안하게 가셨어요.
      위암으로 고생하셨거든요.
      오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늘 고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짧은 대화가 지상에서 오빠와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니,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얼마든지 한쪽 귀로도 오빠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로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나는 한없이 울며 말했다.
      “오빠 정말 미안해. 나도 용서해 줘...”
      -[ 김원숙, ‘좋은생각’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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