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집60 [함성호의 옛집 읽기]<6>‘푸름이 두른 집’ 환벽당 환벽당(環碧堂:광주광역시 시도기념물 제1호)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인 정철의 행적 관련 누정.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조선시대의 문인 정철(鄭澈)의 행적과 관련된 유적으로, 명종 때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金允悌)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남향하고 있으며,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며져 있다. 원래는 정각형(亭閣形)으로 되어 있었으나, 후대에 중건할 때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환벽당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釣臺)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 2012. 3. 16. [함성호의 옛집 읽기]<5>소쇄원 옆 식영정 식영정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 옆에 있다. 소쇄원이 지어진 지 꼭 30년 후인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정자의 관리는 김성원의 후손도 아니고 임억령의 후손도 아닌, 성산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후손들이 맡고 있다. 그만큼 이 정자는 주인이 누군지가 의미 없을 정도로 성산 일대의 문인들이 이용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던 정자다. 식영정은 자미탄가에 높이 솟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식영정에 다가가려면 절벽 위로 난 길고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절벽 위에서 풍경을 아래로 굽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구불구불한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것도 식영정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식영정은 정자다. 정자는 살림집과 달리 노는 집이다. 그냥 노.. 2012. 3. 15. 소쇄원 * 양산보가 지은 조선시대 별서정원, 소쇄원 *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 2012. 3. 15. [함성호의 옛집 읽기]<3>전통의 재구성 담양 소쇄원(사적304호)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구식 집에 살고, 서구식 옷을 입으며 근 한 세기를 살아 온 우리에게 이제 전통이라는 것은 외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도, 철학도 모조리 서구의 것을 답습하고, 새로운 종교는 전통을 아예 미신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 그 한마디로 동양철학은 미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완전히 유리되었다. 적어도 우리의 전통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다름없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외국에서 건축가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안내를 맡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서구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건축들은 참으로 이상한가 보다. 기껏 힘들여서 그들에게 전통정원을 다.. 2012. 3. 15. [함성호의 옛집 읽기]<2>삶의 냄새, 집냄새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 냄새가 난다. 당연히 집에도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진한 삶의 냄새가 배어 있다. 노동자의 집에서는 노동의 냄새가, 학자의 집에서는 책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것은 옛말이다. 요즘처럼 물신주의가 판치는 때, 집에 배어 있는 삶의 냄새는 온데간데 없다. 삶이 사라지고 상업자본주의가 꾸며 놓은 환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의 위력은 한 가족 내에서도 한 세대의 가치가 그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아무리 고고한 학자라도, 아무리 정직한 노동자라도 그 가치는 지금, 항상 당대에 끝나고 만다. 노동의 가치를 아들에게 힘주어 말하기에는, 학자적 양심을 딸들에게 물려주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 전부인 가치 부재의 중병.. 2012. 3. 15. [함성호의 옛집 읽기]<1>불의 길을 다루다 창덕궁 낙선재 굴뚝. 우리에게는 세계인들과 같이 나눠야 할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많다. 그중에는 세계 최초도 있고, 심오한 예술미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라는 것은 언젠가 더 앞선 연대의 유물이 발견되면 그 의미가 퇴색하게 마련이다. 규모 면에서도 한국의 지형과 지리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더 크고 화려한 것을 수용하기 곤란하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두 가지가 남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한글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주거문화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전 세계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이 알려진 문자다. 그러나 만든 지 600년이 넘었음에도 아쉽게도 우리가 한글로 사고하고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60년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에게 외면 받았고, 일제강점기.. 2012. 3. 15. 이전 1 ···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