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위대한 황제, 근초고왕
백제의 위대한 황제, 근초고왕

백제엔 근초고왕이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 군주를 꼽으라면 대부분, 동북 아시아를 호령한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은 정복 군주가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이다.
13대 왕이었던 근초고왕이 통치하던 시절, 백제는 북쪽으로는 그 강하다는 고구려를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남쪽으로는 마한을, 남동쪽으로는 가야를 굴복시켰다.
또한 서쪽으로는 요서 방면으로 진출했고, 동쪽으로는 왜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근초고왕은 백제 임금들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이름이 등장할 만큼 폭넓게 활동하며 백제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높인 위대한 왕이었다.
근초고왕의 등장
백제 11대 임금인 비류왕(比流王)의 둘째 아들이지만, 4세기 초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출생연도가 전해지지 않는 근초고왕에 대한 기록은 사실 많지 않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봐도 비류왕의 첫째 아들인 근초고왕의 형은 누구였는지, 왜 첫째가 아닌 둘째 아들인 근초고왕이 왕위에 올랐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660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 백제의 기록이 <삼국사기>가 저술된 12C 고려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기란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에 대한 역사의 서술은 화려하다. 즉위 2년인 347년,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행적을 남긴 후 이렇다 할 기록이 없었던 근초고왕은 369년! 큰 전과를 올리며 영웅의 삶을 시작하는데, 그 전투가 바로 고구려 고국원왕과의 한판 승부였다.
대국의 위업을 달성하다
369년, 고구려의 16대 왕인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황해도 배천군) 지역을 공격했다.
당시 만주지역에서 강한 세력을 과시하던 연(燕)으로부터 수도인 환도성을 유린당하는 등 북진(北進)이 어려워지자 고구려는 남쪽에 위치한 백제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고국원왕이 남진 정책을 추진하던 4세기 후반은 근초고왕이 마한과 가야를 영향권 내에 넣는 등 남쪽으로 영토를 넓힌 시기였다.
철기 제작 기술이 앞서 강력한 무기를 가졌고, 걸어서 싸우는 병사인 보병 중심의 마한이나 가야에 비해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 많았던 백제는 먼저 소백산맥을 넘어 가야ㆍ탁국ㆍ안라 등 가야 연맹의 7개 소국을 정벌하고, 전라도 지역의 4읍을 평정하고 마한마저 복종시켰다.
특히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한 근초고왕은 여러 소국들의 연합체였던 마한, 가야와의 일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데,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근초고왕은 정복 활동의 방향을 고구려가 있는 북쪽으로 바꿨다.
남진과 북진, 국운을 건 대결에서 승리한 쪽은 백제였다. 고국원왕이 치양을 공격하자, 근초고왕의 태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고구려군 5000여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2년 후, 다시 고구려가 공격해 오자 예성강에 군사를 매복시켰던 근초고왕은 기습공격으로 고구려군을 격파했고, 그 해 겨울, 정예 병사 3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대방군의 옛 땅인 대방고지까지 손에 넣으며 백제 건국 이래 최대의 영토를 차지했다.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다
그렇게 371년, 고구려를 제압하며 강성함을 과시한 백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듬 해, 중국의 동진(東晋)과 외교 관계를 수립해 대외 진출의 발판을 만든 뒤, 중국이 호족(胡族)의 침입으로 분열된 시기를 이용해 요서지방(遼西地方)으로 진출! 고구려를 견제하는 동시에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여 무역기지로 활용하였고, 왜국과도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어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준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 황해 연안에서 한반도의 서남해안으로, 다시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를 활용해 고대 동북아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니, 당시 백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모든 분야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그렇게 375년, 눈을 감을 때까지 한반도를 넘어 일본과 중국까지 아우르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은 박사(博士) ‘고흥’에게 이 찬란한 시기를 기록하게 해 <서기(書記)>라는 백제의 역사책을 남겼는데, 백제의 멸망과 함께 역사책은 종적을 감추고 최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삶 또한 베일에 감싸이니... 백제의 역사 속에 찬란한 보석처럼 빛났던 위대한 황제의 족적은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