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명지)지맥 제1구간 - 청우농원에서 국수당까지
☞ 산행일자: 2014년 9월 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30도가 넘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4.1km + 어프로치 7.1km / 8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청우농장-강씨봉 계곡-한나무봉-오뚜기령-화악지맥 갈림길-귀목봉-귀목고개-794.9m봉-명지3봉
아재비고개-1,010봉-1,030봉-연인산-헬기장-1,056m봉-930m봉-925m봉-우정봉-헬기장
850m봉-830m봉-701.3m봉-우정고개-국수당
☞ 소 재 지: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 가평군 북면, 하면, 가평읍
며칠 사이 인생사에 있어서 세상사는게 허무하다는 걸 참으로 많이 느꼈다.
30여년을 개포동에서 형님, 동생하면서 지냈던 형님이 폐수술 후에 폐렴의 합병증으로
지난 9월 3일에 유명을 달리 하셨다... 그리고 같은 업종을 하는 송 사장도 위암을 너무
늦게 발견하여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태란다... 다들 우째 이런 일이...
그러다보니 나 역시 자꾸만 요즘따라 음식을 먹으면 체하는 느낌이고 뭣을 먹을수가
없어서 병원에 가서 9월 10일에 종합검사를 받으려고 예약을 하니 괜스레 부담이 된다
사는게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왜 다들 아둥바둥 사는지...
돌아가신 그 형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아우님 혼자 산에 댕기지 말고
‘내 낟거든 같이 산에가서 막걸리나 한사발 하세’ 그 소리가 아직도...
그 바람에 초딩이 동창인 淸眼이 추석전날 같이 산행하자는 걸 거절하고 울적한 맘을
달래려고 연인지맥길에 나선다
조종(명지)지맥 개념도
명지지맥(明智枝脈)은 한북정맥의 강씨봉(829m)과 청계산(849m) 사이에 위치한 삼면봉(890m)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귀목봉(1036m), 명지산(1254m), 명지3봉(1199m), 연인산(1068m), 매봉(929.2m),
대금산(703m), 청우산(619.3m), 불기산(600.7m), 주발봉(489.2m), 호명산(632.4m), 마산(181m)을 거쳐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 조종천과 북한강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2.1km인 산줄기인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조종천의 우측 산줄기라 하여 조종지맥이라 부른다
동쪽으로 가평천, 서쪽으로 조종천을 가로 지으면서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 청평철교
아래 쪽의 조종천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에서 그 맥을 다한다.
명지산(1254m)은 화악산(x1468.3m)에 이어 경기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지맥 능선에서 동쪽으로 1.9 km쯤 비켜나 있지만, 지맥의 상당 부분이 명지산군에
속하고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명지지맥 이라 불리운다.
일부에서는 지맥이 연인산(戀人山, 1068m)의 주능선을 지나고 있어 연인지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평 8경의 하나인 용추구곡의 발원지가 되는 최고봉에 이름이 없어서
1999년 3월 가평군에서 연인산(戀人山) 이라고 인위적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니
지맥명칭으로 부르기에 다소 무리한 점이 있다.
똑같은 코스인데 일부에서는 연인지맥이라고도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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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도둑 고양이처럼 베낭을 메고 버스를 타러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행한다
06시 20분발 동서울 → 와수리행 버스
06시 10분경에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여 버스에 오른다.
추석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터미널은 추석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한산하다.
버스에 오르니 버스 좌석도 많이 비어있고 귀성객보다는 등산객과 약초꾼들이 더 많이 보인다
일동버스 터미널(07:10)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0분만에 일동터미널에 도착하여 지난 겨울 왕숙(천마)지맥
첫구간 때에 들려서 아침을 먹었던 해장국집에 들려서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을 시킨다.
사실 요 며칠 사이에 계속 설사가 나고 밥을 먹으면 체기가 있어서 어제도 아침과 점심을
굶었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산행을 하면서 하는 철칙이 있기에 억지로라도
아침을 먹는다...산행은 먹는만큼 걷는다
해장국을 시킨지 20분이 지나서야 해장국이 나오는데 소금을 많이 넣었는지 음식은 짜고
조미료 때문인지 속이 니글니글하다... 그래도 먹어야지 하면서 찬물을 붓고 억지로 다 먹는다.
무리울은 예전에 이곳에 조그마한 성이 있어 여기에 울타리를 쳐서 여러 사람이 이곳을 지키다
이곳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잠시후에 폔션 주인인듯한 자가 산행을 저지한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오뚜기령으로 가려고 한다고 하니 그 아래 계곡으로 가라고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그림이 아니지만 택시는 가버리고 그렇다고 3km 아래에 있는
무리올 삼거리까지 걸어서 내려가니는 뭐하고 해서 잡목이 수북한 임도로 오른다
무리울 사방댐
청우농원 폐션 우측 임도를 따라 오르니 우측에는 무리올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고 임도의
잡풀은 밤새내린 이슬로 인해 5분도 걷지않아 바짓가랑이는 다 젖어 버린다
달맞이꽃
사방댐을 지나니 임도의 잡풀은 점점 심해지고 잠시후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공간만 보이다가
계곡이 나오는데 이곳이 강씨봉 계곡이다... 걔곡을 지나 급경사로 치고 오르는데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급경사이다... 그나마 다행인게 희미한 등로가 있어서 걷기는 조금 났지만 어프로치 구간
조금 줄이려다가 엄청난 개고생을 하는 중이다... 그 망할넘이 택시기사가 두고두고 원망스럽다.
하기야 自業自德이지 누구를 원망하랴... 몇번을 쉰 다음에야 한북 정맥 능선으로 올라선다
한북정맥 능선(09:30)
3km를 조금 넘는 거리를 1시간 20분에 걸리니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느라 초반부터 진을 다 뺀다
능선 정상에 오르니 휴게용 벤치 2개가 있고 건너편에는 잠시후에 가야할 귀목봉이 보인다
이곳 의자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아침에 먹은 해장국이 짰던지
계속해서 물을 마시는데 오늘 한 낮의 더위가 30도가 넘는다고 했는데 물은 3L밖에 없으니 은근히 걱정스럽다
한나무봉(768m:09:35)
오뚜기령에 내려가기 직전의 봉우리로 정상에는 군 벙커가 있고 삼각점이 있다
한나무봉에서 급경사의 나무 계단을 내려서면서 오뚜기령으로 향한다
오뚜기령으로 내려서니 이정표가 반갑게 산꾼을 맞이한다
오뚜기령 좌측 임도에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오뚜기령이라는 이정석이 서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논남기와 포천시 일동면 무리울 사이에 군 작전 도로가 있다.
이 도로 정상을 '오뚜기령' 또는 '오뚜기고개'라 부르는데, 일반 차량으로는 통행키 어려운 비포장 험로다.
수도권 일대에서 오프로드를 즐기는 매니아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으며,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은 반드시 여기를 거쳐 가야 한다.
행정지명으로 오뚜기령 동쪽은 '가평군 북면 적목리', 서쪽은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
즉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남북으로는 한북정맥 산줄기가 걸쳐 있으며, 이 고개 안부에서 북쪽은 강씨봉,
남쪽은 귀목봉과 청계산이 솟아 있으며 고갯마루에는 예전에 군인들이 세운
기념비와 잡초에 묻힌 작은 화강암 이정표(논남기/무리울)가 있다.
그러나 이 곳의 원래 이름은 강씨봉 고개로 아직도 이 지역 주민들은 강씨봉 고개라 부른다
그런데 이곳 오뚜기부대(8사단)에서 군사도로를 개설하면서 어느 사단장이
강씨봉 고개를 오뚜기령으로 명명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오뚜기령 기념비 뒷면
'오뚜기령' 명칭은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오뚜기부대 8사단에서 길을 닦았기 때문에 부대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고갯마루 기념비는 높이 약 2.5m 정도의 석축 단상에 커다란 자연석을 올려서 구성한 형태로 전면에 '오뚜기嶺'이라
음각되어 있고, 부대마크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초전 3일, 돌격 결전. 의지와 기백으로 폐허의 옛길을 뚫다.
1983. 6. 25. 군단장 오자복"이란 글귀와 함께 당시 이 고개 건설에 기여했던 사단장에서부터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참여자의 성명이 모두 적혀 있다. 오자복 장군은 노태우 정부 시절에 국방부 장관까지 한 인물이다
기념비의 글귀를 보면 이렇게 풀이된다. 전술도로를 건설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고서 단 3일 만에
이 도로가 완성 되었다는 것이다. 오뚜기령 고개 높이가 해발 761.8m나 된다하니 산 아래서 부터 이 고갯길을
뚫는데 얼마나 고생했을지 가히 짐작이 된다. '초전 3일 돌격 결전'이란 문구에서는 마치 전투를 연상케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 도로를 완성한 것이 승전에 버금가는 일로 여기고, 고개 이름도 '오뚜기령'으로 명명, 이를 기념하는 뜻에서
비를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古來로 부터 내려오는 지명을 두고 바꾼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념비 좌측 숲에는 아직도 강씨 마을터가 남아있다.
그러기에 오뚜기령보다 강씨봉 고개로 불러야 할 듯 싶다
'강씨'에 얽힌 전설이 있다. 태봉 국왕 궁예와 부하 장수이던 왕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을 당시
궁예의 부인 강씨가 현재의 강씨봉 아래 마을로 피난을 왔고, 봉우리 이름이 그와 같이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한편 피난 온 강씨는 내내 철원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 방향에 있는 산은 국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한 뒤 나라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날로 폭정이 심해졌다.
그러자 강씨는 한사코 궁예에게 간언했으나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부인 강씨를 강씨봉 아래 마을로 귀양 보냈다.
그 후 왕건에 패한 궁예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강씨를 찾았지만 부인 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회한과 자책에 빠진 궁예는 지금의 국망봉에 올라 도성 철원을 바라보았다 하여 국망봉이란 산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도 있다.
오뚜기령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기념비 뒷쪽으로 가서 한북정맥길을 들어선다
이곳에는 백두대간 남진을 했던 산악회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굉장히 반갑기만 하다
잠시후에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 방화선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에 올라서서 우측을 바라보니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커다란 화강암에 ‘한우리봉’라는
초록색 글씨를 써 놓은 표시석을 바라보면서 임도를 따라 고도를 높혀간다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한나무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가야할 귀목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방화선 임도에서 만난 이정목(10:05)
초반에 강씨봉 계곡으로 오르면서 진을 따 빼고 어제 밥을 한끼밖에 못먹은 탓에
벌써부터 기력이 쇠진한 탓인지 자꾸만 몸은 무거워 지는데다가 목은 타고
그늘을 피할 길 없는 임도에다 날씨는 한여름 날씨이지만 한가지 다행이라면
2주전에 걸었던 가평(화악)지맥 방화선 임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온순하다
조종(명지)지맥 갈림길 이정표
조종(명지)지맥 갈림봉(10:20)
지금부터 본격적인 조종(명지)지맥길에 접어들건만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발길이 무겁고
몸의 컨디션은 말이 아니다... 먼저가신 형님 생각 때문인지 자꾸만 머리가 복잡하다
참! 사람사는거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디 왕생극락 하시길요
2시간 넘게 어프로치 구간을 끝내고 빤히 바라보이는 귀목봉을 향해 조종(명지)지맥 첫걸음을 내딛는다
조종(명지)지맥 갈림봉에서 바라본 귀목봉
귀목봉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목
연리지는 아닌데 꼭 붙어있는 갈참나무
넓은 공터가 있는 봉우리도 지나고...
귀목봉 오르는 길은 자꾸만 힘이드는데 갈림봉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4번이나 쉰다.
몸은 자꾸 무거워지고 머리속에서 자꾸만 탈출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숲이 우거진 등로이지만 야속하게도 바람 한 점 없다
귀목봉 100m 전방에서 만난 이정표
계단을 따라서 귀목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귀목봉 정상 이정목
귀목봉 정상에서 바라본 한달전에 걸었던 화악산 정상의 모습
가평군 북면과 하면의 경게에 있는 봉우리로 계곡길과 능선길이 모이는
길목이라 하여 귀목봉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설은 청계산과 명지산의 중간에
있는 귀목봉은 이름없는 고지로 귀목고개 위에 있다 하여 등산인들이 귀목봉이라
부르며 동쪽으로 명지산, 서쪽으로 청계산, 북쪽으로 강씨봉이 인접해 있다.
귀목봉은 산의 높이에 비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험준하지 않아 수월한
등산을 즐길 수 있으며 등산길 중턱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물웅덩이가 있고,
주변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과 울창한 숲이 잘 어울려 있다.
귀목봉 아래로 뻗어있는 능선 끝에 있는 하면 상판리에 있는 장재울은
예전에 부자들이 많이 살아서 장자골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가 장재울로
바뀌었는데 장재울 계곡은 조종천의 끝부분에 위치한 계곡으로 풍부한 수량과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멋진 계곡이다
귀목봉 정상에서 베낭을 이용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한북정맥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귀목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평군 하면 상판리의 모습
당겨본 청계산과 운악산의 모습
귀목봉 정상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귀목고개 내려가는 길에 간간히 보이는 넓은 공터
한참을 내려온 다음에 귀목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귀목고개(鬼目嶺:775m:11:40)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와 하면 상판리를 잇는 고개로 귀목은 귀목고개의
생김생김이 마치 사람의 귀같이 오목하게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귀목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귀목을 구이목(九耳木)이라고도 쓰는데, 귀가 아홉 개나 달린 백여우가 고개중턱에 자주
나타나 길가는 나그네들의 보따리를 잡아당긴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밤이나 비오는 날이면, 마을사람 누구도 그 고개를 넘어가길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6.25 당시 수많은 주민들이 그 고개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그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경험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마을 이장님에게 들은 얘기로는 6.25 당시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많은 화전민들을 생매장해 죽였고,
그 후로 마을에서 제사도 지내주고 했지만, 전의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 이후로 제사를 지내주지 못하자
그 후로 비오는 날이나 밤이면, 여자 음성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가평 문화원 자료 인용)북면 적목리는 동쪽으로 가평천이 흐르고, 서쪽으로 국망봉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배추골, 양짓말, 텃골, 조무동, 취골 등이 있으며 배추골은 마을에 배추농사가
잘 된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양시말은 마을이 양지바른곳에 있어서, 텃골은 궁예의 왕후강씨의
집터가 있는 마을이다. 취골은 마을에 취가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적목리는 예로부터 주목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적목(붉을 赤자)이라 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현재 이 주목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지역은 화악산·중봉·석룡산 일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종아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여태껏 집에서 자면서는 하룻밤에 한두번씩 꼭 쥐가 나지만오르막길에 로프와 나무 계단들이 설치되어 있고...
빡세게 치고 오르니 이정목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야할 연인산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한북정맥 능선길에 청계산과 운악산이 보이고...
조망바위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연인산의 모습
조망 바위를 지나서 철계단을 올라서니...
폐헬기장이 나오고...
투구꽃
금강초롱
멋진 암릉구간을 지나고...
또다시 조망바위를 만나고...(12:40)
주위가 탁 틔어 운악산과 청계산 가야할 연인산이 보이건만 짙은 박무로 모든게 흐릿하게 보인다
귀목고개에서 이곳까지 오르면서 5번이나 쉬어서 올라왔다
어제 식사를 못했던 탓인지 자꾸만 기력이 떨어지고 무릎은 아파온다
에어 스프레이를 계속해서 도가니에 뿌려 보지만 통증은 그때만 잠시 멈추는듯 하다
악어 주둥이처럼 생긴 바위(범여의 생각中에서)
반갑습니다
좁은 암릉구간 사이를 지나간다... 허리가 32in인 범여가 겨우
지나가는데 34in 이상 되시는 분들은 돌아가야 할 듯 싶다
비가 온 뒤라서 싸리버섯들이 보이기 시작하나 너무 어린 아그들이라 그냥~~~ 패스
경기도 가평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으로 관내에 가평 8경 중 제6경 운악망경이 있다.
현리(縣里) · 신상리(新上里) · 하판리(下板里) · 상판리(上板里) 등 7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상면(上面)과 함께 조종현(朝宗縣)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으나 1396년(태조 5)에
가평현(加平縣)에 편입되어 조종면이 되었으며 이때 조종면은 조종상면과 조종하면으로
구분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상면과 하면으로 나뉘어 하면이 되었다.
『1872년지방지도』 『가평현지도』에 묘사된 반면, 부근에는 하면사창(下面社倉) · 현창(縣倉) ·
제언(堤堰) 등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가평군읍지』의 하면은 영양촌(永陽村) · 석사촌(石沙村) ·
내곡(內谷) 등 19개의 마을을 관할하는 지역으로 나타난다.
데크목으로 만든 다리를 지나고...
다시 철계단을 힘들게 오른 다음에 명지3봉 갈림길이 나온다
쑥부쟁이
명지3봉(1,199m:13:15)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명지산이 나오고 명지산은 1,2,3봉이 있다
정상은 이정목 뒤에 있는 암릉이지만 만사가 다 귀찮아 이곳에서 그냥 우측으로 꺽어진다.
흔히들 연인지맥을 명지지맥으로 고집스럽게 부르는 산꾼들로 있으나 명지산 정상은
이곳에서 한참을 가야하기에 연인지맥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가방끈 짧은 범여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냥 선답자들 따라갈 뿐이다
이곳부터는 또다시 방화선 임도로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의 날씨가 30도가 넘는
한여름의 날씨라 햇볕은 상당히 뜨겁지만 2주전의 가평(화악)지맥에 비하면 훨씬 낫다
명지3봉에서 조금 지나니 가평군에서 설치한 풍,수해 경보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잡풀이 무성한 방화선 임도이기는 하지만 가평(화악)지맥과는 달리 등로가 뚜렸하고
오늘은 상의를 긴 팔로 입은 탓에 그리 큰 걱정은 없지만 햇볕은 상당히 따갑기만 하다
그런데 방화선 임도의 잡풀속에 산꾼이 한 명 보인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서둘러 뒤쫒아 간다
방화선 임도에서 만난 이정목
모싯대
급경사로 내려서니 철계단이 나오고...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와 하면 상판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가평군에 설치한 홍수 예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이정목과 119안내 구조목이 설치되어 있으며 벤치도 하나 있다
아재비고개의 지명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계속되는 가뭄과 가난으로 굶주린 임산부가 친정으로 몸을 풀러 가던 도중 고개 중턱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출산후 자신의 옆에서 발견한 물고기(혹은 암탉, 돼지 등)를 잡아먹고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이 든 후 물고기가 아닌 자신의 아기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미쳤고 이에
사람들은 '아기를 잡아먹은 고개'라는 뜻에서 아재비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한글 지명으로 '비고'가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 만난 등산객과 이별을 한다
인천에서 오신 분인데 지맥길 타시는 분은 아니고 명지산을 왔다가
상판리로 하산을 하는데 이 분에게 생수 반병을 얻어서 수통에 보충한다
처음에는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서 나도 이곳에서 탈출을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다음 구간에 힘이 들것 같아서 무리를 해서 국수당으로 향한다
인천에서 오신 분에게 귀한 생수 반병을 얻어서 연인산으로 향하는데 이젠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고
연인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상당히 완만하여 편하고 거기다가 간간히 바람이 불어 훨씬 수월한 느낌이다
연인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방화선 임도를 걷는다
속이 텅빈 노거수도 만나고...
노거수 사이에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멋있는 암릉구간을 지나 오르막으로 오르니... 연인산이 나온다
또 만났네요...반가워요
구절초도 가을을 준비하고...
지나온 능선의 모습
명지산([明智山:1,267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와 적목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가평군 북부 산악지대의 광주산맥 혹은 한북정맥의 준봉들 가운데 하나이다.
군의 북쪽 부분을 거의 차지할 만큼 산세가 높고 웅장하여 경기도의 명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명지산은 맹주산(盟主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산의 형세가 마치 주위 산들의 우두머리와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맹주산이라는 이름이 점차 변하여 지금의 명지산으로 불리는 것으로 짐작된다.
산의 북동쪽에는 가평산지의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이 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서는
명지산의 기록이 드물게 나타나는데 그 중 『해동지도』에는 화악산의 서쪽에 명지봉(明芝峯)이 있으며
영평현(永平縣)과 경계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가평군읍지』에는 "북면 백둔리(栢屯里)에 있다."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의 서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평 8경 중 제4경인 '명지단풍'으로 유명하다.
연인산 정상 바위에 새겨진 방위표
연인산 정상의 이정표
연인산 정상의 삼각점(△일동 309 / 2006 재설)
연인산(戀人山:1,068m:15:00)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과 북면· 하면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가평 8경 중
제3경으로 꼽히는 용추구곡(龍湫九谷)의 발원지가 되는 최고봉으로
원래 이름은 ‘우목봉’ 또는 ‘월출산’으로 불렀으나 1999년 지명공모를 통해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연인산(戀人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역에는 처녀가 바위에 앉아 바느질을 하던 중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죽었다는
유래를 가진 처녀소와 소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송악산(松岳山)이 있는데
이 송악산이 현재의 연인산이라는 의견도 있다.
용추구곡은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진다.
우리 지구 뉴 한마음 라이온스 클럽을 만나다... 최강선회장님 잘 계시죠?
셀카로 인증샷
연인산에 잠시 서있는 사이에 날파리가 어찌나 괴롭히는지 서둘러 국수당으로 향한다
연인산에서 우정고개까지는 길이 무지 좋다.
지맥길이라기 보다는 둘레길 같은 느낌이다 산행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호젓한 억새길도 지나고...
연인산 아래에서 만난 이정목
1,056m봉(15:10)
연인산에서 10분만에 헬기장에 오른다. 지도상에는 1,056m봉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내 스마트폰에 깔아논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은 전패봉이라고 한다
전패봉이라면 잠시후에 가야할 우정봉의 옛 이름인데 약간은 혼란스럽다
조금전에 지나온 연인산의 모습
오늘 지나온 능선도 한번 뒤돌아보고...
1,056m봉 헬기장에서 우측길로 접어든다
청암산장 갈림길(15:30)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가운데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휴식하기 좋은 넓은 공간들이 보이지만 길이 좋아서 그냥 패~~~스
등로 좌측으로는 갈참나무 군락지에 바닥에는 미역줄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도토리들이 엄청나게 많이 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오질 않는지 온 바닥이 도토리다
등로 우측으로는 갈참나무 고사목들이 보이고...
우정봉(友情峰:906m:15:55)
가평군 북면과 하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이전에는 전패봉이라 하였는데,
혐오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1999년 3월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우정봉으로
바꾸었고 그 아래 전패고개는 우정고개로 이름지었다. 이와 동시에 우목봉은
연인산으로, 879m봉은 장수봉으로, 구나무산은 노적봉으로 이름을 고쳤다.
북쪽의 명지산(1,267m), 남쪽의 노적봉(858m), 서남쪽의 매봉(929m) 등
인근 유명산의 명성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산세가 부드러워 가족산행에 적당하다. 주능선에는 잡목과 억새풀이 어우러져 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은 모두 다 그 뜻의 의미가 있을진데 어떠한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단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뀠다는데 선뜩 납득이 가질 않는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우정능선(전패능선)이 보이고...
예쁘게 피기 시작하는 구절초
조망바위
우정봉에서 잠시 내려오니 조망바위가 나오고 가야할 우정능선과 우측으로 운악산 아래에 있는
예전에 자치기 할 때 자주 다녔던 썬힐 골프장을 바라보며 걷는데 갑자기 휭~~잉 거리더니만
왕탱이 10여마리가 날라와 내 몸뚱아리를 쏘는데 정신이 혼미하다
그 와중에서도 살아보겠다고 조망바위 아래로 납작 엎드려 벌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려
5분정도 있으니 벌들이 사라진다... 자세히 보니 이 시간대에는 뱀이 겁이나서 스틱으로
숲을 툭툭 친것이 조그만 나무에 있는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그 바람에 팔에 2방 등과 배에 한방씩 쏘였는데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머리에 쏘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망바위에서 뚝 떨어져 내려와서 베낭을 벗고 벌침을 빼는데 배와 팔뚝에는 뺏으나
등과 한쪽 팔뚝의 침은 보이질 않는다... 엄청난 통증이 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무릎 통증을 잊기위해 갖고 다니는 에어스프레이를 뿌려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
조망바위 아래에 있는 소나무
조망바위 아래 안부에는 연인산 도립공원에서 세운 위험 표지판이 있고...
물봉선
헬기장(16:10)
우정능선 구조목 안내 표지판도 만나고... 길은 좋아도 너무 좋다... 초반에 고생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다
우정능선 좌측 아래로는 가평의 명물인 잣나무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연인산 도립공원내에 있는
잣나무 단지 비박 장소로 아주 유명한 곳이란다... 주위에는 잣이 많이 떨어져 있어 잣송이
10여개를 주워서 비닐봉지에 담아 오늘 산행의 전리품으로 챙긴다
국수당 2.1km 이정표를 따라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선다
우정고개 내려가는 길의 모습
이동통신 중계탑이 서있는 우정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정고개 갈림길(16:35)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가평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정능선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가평읍에서 올라오는 임도에는 MTB도로가
있는 자전거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보이고 고개는 사거리이다
좌측 잣나무 군락지에는 비박을 하고 국수당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 역시 이곳에서 지맥 산행을 접고 우측으로 꺽어져서 국수당으로 향한다
괴불주머니
우정고개에서 국수당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데 너덜길 비슷한 곳이라
발이 상당히 피곤하다... 조심스럽게 마지막 길을 내려간다
이젠 산행이 종료할 시점이라 그런지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아침에 먹은 해장국이
몸에 안맞았던지 계속 배가 더부룩하여 아무것도 먹지않고 물을 비롯한 액체로만
배를 채웠던 탓에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는 느낌이다
너덜길 같은 길을 한참동안 내려가니 폔션같은 민가가 나오고 이윽고 조그만 다리 건너에
맥주와 파전을 파는 가계가 나오는데 예전 같으면 베낭을 내려놓고 막걸리 한잔 걸쭉하게
마시련만 추석을 지나 10일날 아침에 종합 건강검진을 예약해놔서 입맛만 다시고 내려간다
가계를 지나 마지막 이정표 좌측 계곡으로 들어가서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으며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참으로 힘들게 한 구간을 끝낸다
계곡 옴팍한데 들어가니 좌.우 어느쪽에서도 보이지 않는 알탕하기에는 천하명당이다
이곳에서 홀라당 벗고 깔끔하게 알탕을 하고 무릎과 발목을 20분이상 물 속에 담궈
열기를 뺀 후에 싸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계곡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동그랑탱 몇개에 김치조각에 밥 그게 전부다
꼭 있어야 할 막걸리 한잔이 검강 검진이라는 이유로 빠지니 왠지 섭섭하기만 하다
밥먹고 깔끔하게 씻은 다음에 이빨까지 딲고 의관정제를 하고나니 오후 6시가 좀 지났다
계곡에서 100m 정도를 내려오니 올레길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곳이 국수당이란다.
철원에 나라를 세운 궁예가 말년에 자기를 '산 미륵불'이라고 하며, 남의 마음을 읽는다
(독심술(讀心術)고 할 정도로 자기를 신격화하여 신하들에게 '네가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지?" 하며
다그치면 이를 수긍하고 용서를 빌면, 자기의 독심술이 용하다고 자만하며 용서하고, 역심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면 죽였다고 할 정도이다.
그 무렵 부인을 의심하고(의처증) 자식도 친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여 이 지역에 유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부인과 그 아들은 궁예의 의심이 풀리기를 빌며, 고국 땅인 철원이 그리워 한없이 바라보았다는
국망봉(國望峰), 또는 나라가 하루빨리 망하기를 빌었다는 국망봉(國亡峰), 그리고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國祀)를 올리는 성황당 고개가 있었다 하여 이 고개를 국사당 고개로 부르다가 후에 국수당 고개로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즉, 궁예의 오해로 전폐리에 유폐된 왕비가 치성을 올린 집이 국수당이라는 것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서쪽은 하면 마일리, 북쪽은 북면 백둔리로 연결되지만 사람의 왕래가 없어
험한 소로만 남아 있다. 그곳이 조금전에 내려온 우정고개를 말함이다.
(가평문화원 자료 인용)
국수당을 지나니 커다란 저택이 나오고 소나무 숲을 지나는데 아마 휴양림에서
비박을 하고 가시분인가 보다... 차량이 지나가기에 히치를 시도하니
현리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면서 타라고 하여 편하게 타고 현리에 도착한다
가평군 하면의 소재지가 있는 현리(縣里)
서울가는 버스(18:45)
현리에서 내려 태워주신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기도 전에 차는 가버리고...
아직까지 버스가 오려면 15분정도 시간이 남아있어 인근 약국에서 벌에 쏘인 곳에
바를 약과 먹는 약을 사서 먹고 잠깐 있는데 버스가 온다... 벌에 쏘인 영향인지 머리가 아프다
현리에서 청량리가는 버스는 동네 구석구석을 다 거친 다음에야 구리에 도착한다
구리역 입구(20:00)
이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갈 일도 없고하여 이곳에서 내려서 강변역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강변역에 와서 지하철 2호선을 갈아타고 집에오니 밤 9시가 조금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