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견두)지맥 제1구간 -견두지맥 분기봉에서 밤재까지
폭염으로 인해 가다가 멈춰버린 범여의 지맥길...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산행일시: 2016년 8월 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폭염 주의보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km + 어프로치 2.3km / 6시간 05분소요
☞ 참석인원: 젠틀맨님, 진권아우, 산으로 아우님과 함께
☞ 산행코스: 정령치-1,240봉-1,351봉-견두지맥 분기봉-만복대-견두지맥 분기봉-1,167봉-무명봉
요강바위-월계재-1,112봉-1,109봉-1,042봉-다름재-1,044봉 갈림길-영제봉-암봉
수락재-877.9봉-암봉-824봉-881봉-갈림길-수락골 갈림길-솔봉-묘지-솔재-용궁리 갈림길
659봉-벌목지대-숙성치-가마바위-시루봉-안부-가마봉(묘지)-NO209 송전탑-밤재
☞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주천면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심신이 엄청나게 지쳐있는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금요일 저녁에 현장을 마무리하니 발주자가 고생했다고 하면서 식사를 대접하는데 여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신 술이 좀 과했던지 컨디션이 엉망이지만 아우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없어서 토요일 낮에 약간의 휴식을 취했지만 아직까지 酒毒이 덜 풀린 상태에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진권, 산으로 아우님과 만나 남원땅으로 향한다
견두지맥(犬頭枝脈)개념도.
견두지맥 (犬頭枝脈) 은 백두대간 정령치(正嶺峙) 남서쪽 1.5km, 만복대(萬福臺.1433m) 북서쪽 0.5km 지점인 1365m봉에서 서북으로 분기하여 전남북 도경계를 따라 다름재(1042m), 영제봉(1048m), 숙성재. 빔재(490m). 견두산(犬頭山.804m), 천마산(天馬山.653.8m)에 이르러 전남북 도경계는 서쪽 섬진강가로 내려가고 지맥은 곡성군과 구례군의 경계를 따라 계속 남진하여 깃대봉(691m), 두계치(杜溪峙),형제봉(兄第峰.622m) 을 지나 구례군 관내로 들어 천왕봉(天王峰.695m →0.5), 누룩실재,649m봉(소양가지봉), 갈미봉(497m), 깃대봉(241.7m), 병방산(丙方山.160m)을 지나 구례읍 원방리 병방마을 구례1교앞 섬진강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7.5km되는 산줄기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센트럴 버스터미널→남원행 버스표
터미널에서 아우들과 만나 고속버스에 오르는데 고속버스 실내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버스는 천안 → 논산간 고속도로 정안 휴게소에서 들렸다가 남원으로 향하는데
슬치터널 부근을 지날때는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더니 그것도 잠깐...
다시 맑은 하늘이 보이고 버스는 오수I.C를 빠져나와 남원으로 향한다
남원고속버스 터미널(18:50)
터미널에 도착하여 조금 있으니 젠틀맨님 부부가 우리를 픽업하러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에 올라 10여분 거리인 젠틀맨님 자택으로 향한다
젠틀맨님 자택(19:10)
젠틀맨님의 자택에 도착하니 어부인께서 유명하다는 남원 흙돼지의 맛있는 특수부위만
골라서 초벌로 구워놓고 지리산에서 나오는 각종 자연산 나물에다가 이백 막걸리를
준비하여 마당의 평상에다 차려놨는데 입이 벌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이다
이곳에서 이런 저런 산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밤 10시쯤에 방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이곳은 시골이고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평균 해발 400m정도)
서울에 비해서 훨씬 덜 더운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어부인께서 끓여주신 누렁지로
속을 달랜 후 싸주신 도시락과 막걸리 3통을 베낭속에 챙겨넣고 정령치까지
태워 주시는 바람에 편안하게 견두지맥 접속구간으로 접근한다
정령치의 일출(05:45)
젠틀맨님의 자택에서 정령치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는 느낌이다
육모정과 춘향이묘, 고기리 저수지를 지나 뱀또아리처럼 생긴 도로를
따라 힘들게 정령치에 도착하니 지리산 좌측 천왕봉 너머로 시작되는
일출은 장관 그 자체이다
정령치(鄭嶺峙:1,172m)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서 산내면 덕동리 달궁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737번 지방도가 지난다
서산대사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기원전 84년에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眞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위해 鄭氏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이곳을 지키게끔 하였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곳인데
옛모습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개발이란 미명아래 동물이동통로 등을 만들면서 마구 파헤져 있다
정령치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雲海
산행을 시작하다(06:00)
지난 6월 12일에 이곳을 걸었으니 2달여만에 다시 이 길을 걷는다
젠틀맨님 어부인의 영접을 받으며 데크목 계단을 올라 능선으로 오르니
우측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 방향으로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이곳은 특별한 게 없는데 국공파들이 출입금지 팻말이 붙여논 이유는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의외로 알바를 많이 하여 붙혀놨다고 하는데 오늘이야 대간길이 아닌
지맥길 가는 길이고 이곳은 맥길도 아닌 어프로치 구간이라 그냥 좌측의 우회로로 향한다
1,240봉(06:10)
지북 20-01 이정 구조목이 있다
정령치와 만복대의 정중간 지점 거리에 위치한 이정목
1,351봉(06:25)
1,351봉에서 바라본 만복대
오늘도 마고할매의 심사가 불편한 지 반야봉은 운해에 가려 뚜렸이 보이질 않는다
맥 산꾼의 세계에서 신의 한수로 불리우는 산으로님
늘 들어나지 않는 존재감을 보이는 아우지만 맥을 읽는 눈과 동물적인 지리적 감각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산으로님... 범여는 이런 아우는 안다는 자체가 행운이다
남원땅으로 내려다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고기리 저수지가 보이고...
오늘 걸어야 할 견두지맥 능선도 한번 바라보고...
1,351봉을 내려서니 만복대의 일출을 찍고 내려오는 찍사들을 많이 만난다
안내판이 서 있는 공터(06:30)
견두지맥 분기점(06:40)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만복대로 향한다
이질풀(꽃말:새색시)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거나 기듯이 뻗으면서 자라고, 길이가 50㎝에 달한다.
줄기를 비롯하여 전체에 털이 많고 뿌리는 여러 개로 갈라지며 손바닥 모양의 잎은 마주나며,
3~5개로 갈라지고 너비가 3~7㎝ 정도인 잎은 앞뒷면에 검은색 무늬와 털이 있다.
지름이 1~1.5㎝인 연한 홍색, 홍자색, 흰색의 꽃은 8~9월에 피며, 하나의 꽃자루에 1~2개의 꽃이 달린다.
5개의 씨가 들어 있는 열매는 10월에 익는데, 위로 말리는 삭과이다.
열매 껍질의 용수철같이 말리는 힘으로 씨를 멀리 퍼뜨릴 수 있다.
전국의 산야·초원·길가·밭둑 등에서 흔히 자라며, 예로부터 이질에 특효가 있다고 해 이질풀이라고 한다.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으나 민간에서 이질·복통·변비·대하증·
방광염·피부염·종창·위궤양 등의 치료에 쓰이며, 특히 양계를 하는 데 있어 병아리 때부터 이 풀을
달인 물을 먹이면 닭의 백리병(白痢病) 등 위장병의 예방과 질병의 치료에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영약으로 여기며 주요성분으로는 타닌·케르세틴·갈산·숙신산 등이 있다
만복대(萬福臺:1438.4m:06:50)
만복대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전북의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로 성삼재(1,090m)와
정령치(1,172m) 사이 백두대간 구간 가운데가장 높은 꼭지점을 형성한 곳이며 풍수지리로 볼 때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사방으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만복대에서 오늘 동행한 동료들과의 인증샷
만복대에서 바라본 견두지맥 능선
다시 견두지맥 분기점(07:00)
만복대에서 다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견두지맥의 첫발을 내딛는다
1,365봉
이곳이 견두지맥의 분기봉이다
분기봉에서 진권아우
분기봉을 지나면서 급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주위에는 조릿대들이 말라죽어 있다... 지맥길 치고는 비교적 등로가
뚜렸하지만 분기봉에서 솔재까지는 비법정 탐방로라 그런지 시그널은 전혀 없다
산죽길 사이로 계속 걸어 내려간다
안부(07:25)
고사목 지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서서히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1,167봉(07:27)
이곳에서 암릉구간은 맞이하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07:40)
지도상에는 이곳이 요강바위라고 되어 있는듯 한데...400m 정도 내려가니 둥그런 바위가 나온다
요강바위(07:42)
요강바위 또는 오강바위라고 부르는데 아무리봐도 요강처럼 보이질 않는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고촌마을의 유래에, 고촌마을은 수려한 계곡이 많다. 그 중 구시쏘, 도장쏘,
선유폭포, 다람재, 오강바위 등이 있으며 오강바위의 물이 전북으로 많이 흐르면 전북이 잘 살고,
전남으로 많이 흐르면 전남이 잘 산다는 등 흐르는 양에 따라 풍년을 점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월계재(980m:07:45)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와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남원쪽은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으나 구례쪽은 위안리 월계마을에서 시작하는 등로 때문인지
비교적 등로가 뚜렸하게 보이고 일반산악회 띠지도 간간히 보이지만 산꾼들의 키보다도
큰 억새가 고개를 점령하고 있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월계재의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월계마을에서 지명을 따온듯 하며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에 있는 월계마을은 처음에는 점사가 나오는 마을이라 하여 "점몰"이라 호칭하게 되었으며 당시
"점몰"에는 도자기 제조를 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도자기 제조는 상민이 하는 것이라 천대하여 이씨
한 사람이 격분하여 도자기 제조를 단념하면서 마을명을 "월계"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월계재부터 솔재까지는 잡목과 잡풀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시간이 상당히 지체된다
억새풀 헤치고 올라서니 겨우 등로만 보이고 선답자의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1,112봉(08:00)
월계재에서 치고 오르니 우측으로 주천면 고기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측이다
1,109봉(08:05)
잡목의 저항에다가 무더운 날씨탓에 미치겠다...젠틀맨님도 예전과 달리 따라 땀을 엄청 많이 흘린다
개척자의 심정으로 등로를 만들어가며 지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의 모습
언제봐도 지리능선은 첫사랑의 설렘처럼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노고단과 성삼재도 아련하게 보이고...
계속 반복되는 잡목들의 저항... 등로는 보이질 않고...
무더운 날씨탓인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슬슬 체력저하가 오기 시작한다
산행 후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가지고 온 이백막걸리로 원기를 보충한다
다름재(08:35)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와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곳 역시 조금전에 지나온
월계재와 마찬가지로 억새가 고개를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조선조 후기에 남원시 운봉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동학군의 이동로였고 운봉전투에서 관군에 패한 후
산동으로 퇴각하던 고개로 알려진 곳으로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이기도 하다
1,042봉 갈림길(08:45)
독도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구간이다...수락폭포로 가는 뚜렸한 등로이다
좌측으로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의 뚜렸한 등로쪽의 달린 시그널로 따라가면 월계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1,042봉 정상에 있는 소나무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다
영제봉으로 가는 등로의 모습
넓은 공터를 지나...
흰가시광대버섯
균모의 지름은 9-20cm로 둥근 산모양을 거쳐 가장자리에 턱받이의 파편이 부착한다.
표면은 백색이고 미세한 가루가 분포하며 높이 3mm의 원추상 사마귀가 많이 붙어 있다.
살은 백색이고 마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주름살은 백색 또는 크림색의 끝붙은주름살이다.
자루의 길이는 12-22cm이고 굵기는 1.5-2.5cm로 아래는 부풀고 백색이며 속은 비었고
표면은 솜털 같은 인편이 덮여 있으며 기부에 사마귀가 고리모양으로 많이 부착한다.
턱받이는 크고 막질이며 윗면에 선이 있고 포자의 크기는 8-10.5×6-7.5㎛이고 는 타원형이고
아미로이드 반응이며 경기도 광릉에서는 식용한다.
발생은 여름에서 가을사이에 숲속의 땅에 단생하며 분포는 한국에서는 변산반도국립공원,
지리산, 만덕산, 오대산, 한라산, 속리산, 월출산 등과 일본 등에 분포한다
바람이 상당히 심한 지역인 모양이다...소나무들이 크질 못하고 가지만 옆으로 퍼져있다.
영제봉(靈帝峰:09:05)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와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에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靈帝峰이라고 쓴 정상석이 있고 우측으로 육모정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견두지맥길은 잘 보이지 않아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영제봉 북서쪽 골짜기에 신라 진덕여왕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흥사"라고 하는 절이 창건되고 고승과
선사들이 드나들고 신도들이 찾아들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지상의 용궁"이라 칭하여 산신제 및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산신제를 지내던 산이름은 "산의 형세가 신령스러운 제왕 같다" 하여 영제봉(靈帝峰)이라 하였다.
신령스러운 제왕의 봉우리라 하여 신성시 한 것은 산악신앙의 하나인 토테니즘에서 볼 수 있는 성기숭배 사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부흥사는 불 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파근사"가 들어섰지만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사찰의 흔적만을 전해 주는 주초석과 기와 파견만이 옛날의 영화만 전해 줄 뿐이다
영제봉 정상에서의 인증샷
영제봉에서 바라본 남원시 운봉읍(雲峰邑)
남원의 운봉은 구름 덮인 봉우리에 연유한 땅 이름이며, 정감록 비결에 나오는 승지(勝地)의 하나이기도 하다.
지리산에 면하면서 전라도의 변두리이므로 험난한 산지임이 분명하다.
이석형(李石亨)은 시에서 ‘구름이 깊어 비는 그침 없이 오는데 골짜기는 깊어 1만 구멍의 바람이 길이 불도다’라고 했다.
봉우리가 높아 구름이 늘상 가리고, 구름이 시도 때도 없이 비를 뿌리는 산악 기후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서거정(徐居正)은 ‘두류산의 경색이 푸른하늘에 솟았는데, 사시의 운기(雲氣)는 비가 되고
골짜기에서 솟는 가을바람이 되었네’라고 읊었다. 높이 솟은 봉우리, 구름과 비, 골짜기와 바람이 서로 연관된 것임을 설명했다.
운봉은 지대가 높아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의 요새지로 알려져 있다.
고려 말에 왜구의 노략질이 심할 때 이성계가 크게 전승을 거둔 역사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지나온 능선과 그너머로 백두대간 지리산 주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견두지맥 지세를 살펴보는 동료산꾼들
영제봉에서 가야할 견두지맥 능선...뾰족한 봉우리가 솔봉이다
암봉(09:15)
824봉(09:22)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선 다음에 좌측 능선으로 이어간다
수락재(09:30)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마을 윗쪽에 고개로 잡목이 무성하여 고개처럼 보이지도 않다
산동면 수기리는 농촌지역이며 마을 앞으로 서시천이 흐르며 산동면에서 유일하게 여름 채소
재배가 잘되는 마을이고, 옛부터 땅이 기름지고 배수가 양호하여 많은 전작물이 생산되고 있다.
지대가 높으나 특이하게도 첫서리가 평지보다 늦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중기와 수락마을이 있는데 중기(中基)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위치가
가난한 터도 부유한 터도 아니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락(水落)은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단속구간이지 다니지 말란다... 그래도 다닐 산꾼은 다 다닌다
수락재를 지나면서도 잡목의 저항은 여전히 심하다
등로에 있는 다래나무에는 다래가 상당히 많이 달려있다
877.9봉(09:35)
지도상 영제봉으로 표기된 곳인데 트랭글 앱에서도 영제봉이라 한다
지나온 영제봉의 정상이 여자의 음부를 나타낸다면 이곳은 교접하고 잇는 상태다
부흥사 스님들이 신령스럽다고 한 곳이 이곳일까?
암봉(09:37)
881봉(10:05)
지도상에는 881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트랭글 앱에서는 국사봉이라 알려준다
급경사의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갈림길(10:25)
수락골 갈림길(10:28)
좌측 9시 방향으로는 수락폭포 가는 길이고 우측 용궁리 내려가는
길에 로포가 설치되어 있는데 견두지맥길은 직진으로 올라선다
구례군 산동면 수락폭포는 동편제의 대가 국창 송만갑 선생이 득음했던 장소로
구례 10경 중의 하나로 폭포 상단에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가 있고,
치마에 돌을 담아 올려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할미암이 있다.
근래의 수락폭포는 여름철 물 맞으러 오는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후통,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하여
삼복더위가 시작될쯤이면 물살을 맞으려는 인파로 북새통이라고 한다
수락폭포는 동편제의 판소리 大家인 송만갑 선생(1865~1939:구례읍 백련리 출생)께서
득음을 하기위해 수련했던 장소로 유명하며 지금도 국악 예비 명창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솔봉(800.4m:10:30)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고 누군가 솔봉이라 적어놨다
솔봉 정상 삼각점(△남원307/1981재설)
묘지(10:35)
묘지를 지나니 737m봉이 나오는데 지맥은 직진하여 737봉 올라 우측으로 능선을
이어가야 하는데 좌측의 옆사면길로 등로가 이어진다...예전 같으면 당연히 정상을
밟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올텐데 그냥 편안한 길로 걸어가니 뒤에 따라오는 산으로님이
정통파 범여님이 왠 사면길... 하면서 놀려댄다...ㅋㅋㅋ 나도 늙은가벼
솔재(720m:10:40)
솔봉에서 10분정도 내려오니 구례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지리산 국립공원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는데 견두지맥 분기점에서 이곳까지 출입금지 지역이란다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 때문에 인간들이 핍박을 받는 셈이다... 지맥길로 따지자면
이곳 솔재가 아니고 솔봉에서 직진하여 밤재로 향해야 하는데 이쪽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수락폭포로 향하는 길이고 지맥길은 밤재로 향한다
밤재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유순하다
용궁리 갈림길(10:50)
뚜렸한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의 뚜렸한 길로 가면 남원시 주천면 용궁리로
향하는 길이고 견두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막으로 향한다
남원시 주천면 용궁리는 외용궁과 내용궁이 있으며 신라 진성여왕때(서기 890년경)
이 마을 동쪽, 해발 1050m의 높은 산 영제봉(英帝峰)에 부흥사(富興寺)라는 큰 절이 세워졌다.
그 절은 고승과 선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휴양한 곳으로 지상낙원이며 마치 바닷 속의
용궁(龍宮)과 같아 땅위의 용궁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로인해 마을 이름이 용궁으로 되었다고 한다.
신라 진성여왕대에 부훙사 절을 세워 고승 선사 신도들이 거처하면서 그와 함께 마을도이루어졌다.
그 뒤 1320년(고려말엽)에 채씨(蔡氏), 정씨(丁氏)를 비롯한 각 씨족들이 혼성으로 마을을 이루었고
1578년(선조11)에 서산 유씨(瑞山柳氏)가 들어와 살고 있다.
부흥사가 있었다는 절은 없고 지금은 파근사지(波根寺址)라는 절터의 자취만 남아있는데
산 위에 파근이라는 평평한 땅이 바로 그 곳이다. 부흥사가 없어진 이유는 부흥사 중들의 작폐가
너무나도 심한지라 고승선사(高僧禪師)들의 미움을 받아 파근사라 이름붙여 졌다.
그런데도 하도 많은사람들이 들끓어서 사람을 적게 오게 하려고 빈대를 잡아다 놓았는데
이 빈대가 너무 많이 번성하여 마침내는 사람이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절도 일시에
망해 버렸다는 전설이 있으며 절의 자취를 알려주는 것으로 '중터' '너들검' '명대새' '왕답' 등
들이나 골짝 이름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1563년에 서당을 차리고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최초로 유생들을 배출하였고
1862년 고종 22년에는 방내 제일의 부촌이었다고 한다.
1992년부터는 고산지대의 특성을 이용한 배 재배농가가 다수 참여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1996년 정주권사업으로 농어촌도로 207호가 개설되어 외평, 호경마을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고
교통불편을 해소했고 영제봉을 배경으로 한 산간지대이기 때문에 산나물, 오미자 등 임산물이
풍부하고 한봉, 한우를 사육하는 축산농가가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659봉(10:57)
659봉을 지나면서 벌목지대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편백나무들을 식재해놨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밤재의 모습
고도를 낮추면서부터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느낌이다...햋빛이 따갑기만 하다
벌목지를 내려서니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제도권 등로에 들어선 기분이다
숙성치(518m:11:10)
남원시 주천면 용궁리와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를 이어주는 옛 길로 구한말 밤재를 통과하는 신작로가 개설되기 전 까지 구례군과 남원군을 연결 해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로 밤재에 그 명성을 넘겨줬으나. 임짐왜란 때는 이 고개를 지키기 위한 의병들의 치열한 전투와 동란 때 빨치산으로 활동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정표(←밤재2.1km →솔재1.3km)가 있고 좁은 고갯길로 좌우 갈림길이 뚜렷하다
숙성치에서 올라서니 간벌지역이 나오고 그늘이 없다보니 땀이 비오듯 흐른다
간벌지역의 우측으로 돌아 목계단을 따라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로 내려서니 좌.우로 뚜렸한길이 보이고 성황당 흔적같은 돌무덤이 있다
가마바위(11:17)
이정표(←시루봉 0.3km, ↑숙성골 0.1km)에 가마바위라고 써놨고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하나 있다... 좌.우 양쪽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이정표에는 가마바위라고 써놓은 이곳은 밤재의 구도로와 만나는 숙성치의 옛길이다
오랫동안 민초들이 다녔던 숙성치의 옛길이 일제 강점기에 개설된 밤재의 신작로에
그 명성을 넘겨 주었고 지금은 산꾼이나 지나는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밤재터널로 이어지는 길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숙성골의 모습
등로 우측의 주천면쪽은 철책이 처져 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지도상에도 없는 시루봉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젠틀맨님께서는 밋밋한 곳이 뭔 시루봉이라 말하는데 동감이 가는 곳이다
시루봉(543m:11:21)
시루봉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넓은 공터가 나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밥상을 펼친다
점심만찬(11:25~12:10)
새벽 4시반에 누룽지로 아침을 먹은 탓인지 다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젠틀맨님 어부인께서 바리바리 싸준 소고기조림에다, 짜장볶음,거기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김치에 손수 농사지은 고추와 들깨잎 등...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거기다가 이백 막걸리 3통을 지고 왔으니... 45분간의 점심만찬이 펼쳐진다
너무 더웠던 탓에 웃도리와 바지까지 벗어서 스틱에다 걸어서 말린다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깔끔하게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너무 많이 먹었던지
배가 불러서 걷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젠틀맨님 넘넘 고맙습니다...매번 신세만 지니...
가마봉(560m:12:15)
정상에 묘지 한 기가 있는 곳을 트랭글 앱에서는 가마봉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 아래의 주천면쪽에는 19번 국도와 지리산 유스호스텔이 보인다
벌목지가 나오고 등로에서 올라오는 地熱 땜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아랫쪽으로 새로생긴 신밤재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이곳은 터널이 2개가 있는데 이 아랫쪽으로 지나가는 신밤재터널과
잠시 후 도착할 밤재 아래로 지나가는 밤재터널이 있다고 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구례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의 모습
NO209 송전탑(12:25)
등로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지열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밤재(490m:12:35)
남원시 주천면 배덕리와 구례군 산동면 계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밤나무가 많다고 하여 지명되어진 이름이다.남원시에는 두 곳의 밤재가 있으며 앞밤재와 뒷밤재로 부른다.남원과 산동을 넘나드는 고개를 “앞밤재”라 부르고 남원에서 전주를 이어주는 고개(춘향이고개)를 “뒷밤재”라 부른다
밤재를 지나던 2차선 도로는 1998년 편도2차선의 2개의 터널이 뚫리면서 숙성치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져등산객과 약초나 나물꾼들만이 찾아오는 쓸쓸한 곳이 되었다.
그러고보면 이곳이 앞밤재인 셈인데 예전에 이 고개로 구례와 남원으로 이어지는 차가 다닌 곳이란다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밤재터널이 뚫리면서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지만...
지리산 둘레길인 모양이다
밤재에는 지리산 둘레길이라 그런지 공중 화장실과 사각정자가 있고 견두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표시석에다 재해방송시설... 수도시설까지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원래 계획은 죽정치까지 갈 계획이었는데 심한 잡목의
저항에다 더운 탓인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이곳에 도착했고 앞으로 가야할 거리가
12km이상 남아있어 폭염이 내리쬐는 오늘 날씨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거 같아 4명의
의견일치로 여기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한다
이곳 정자에다 베낭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펴보니 차량 2대가 있고 정자에는 텐트가
설치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이곳 수돗가에서 홀라당 벗고 알탕을
즐긴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구례 택시를 부른다
그나저나 다음 구간을 한번에 끝내야하는데 거리가 너무 많이 남아 새벽 일찍
시작해야하는 숙제를 남기니... 조금은 찜찜하다
구례 택시를 호출한 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오질 않는다
한참을 지나서야 택시기사에게 연락이 오는데 비포장도로라 차가 올라오기가
힘들다고 투덜되면서 조금 걸어 내려오란다...하는 수 없이 10여분을 걸어 오는데
그 사이 옷이 다 젖어 버릴 정도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택시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가는데 4명이 타서 그런지 택시 씨다바리가 돌에 닿으니
택시기사 인상이 자꾸만 찌그러지는데 그냥 모른척하고 시치미를 뚝 땐다
겨우 19번 국도로 내려서 산동을 지나 구례읍내로 향하는데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13:50)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표를 물어보니 표가 없다고 한다
대합실 주변을 서성되니 표파는 처자가 몇명이냐고 묻길래 3명이라고 하니
우등버스 말고 일반버스도 괜찮냐고 하기에... 이 처자 뭔 소리여!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우등버스를 타남... 서울가는 버스가 구례에서 출발하는게
아니고 하동에서 나오기에 하동에서 손님이 많으면 구례에는 표가 잘 없는 모양이다
용인으로 가야하는 진권아우는 구례구역으로 가고 산으로 아우와 난 16시 10분
남부터미널로 가는 표를 예매한 다음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구례 터미널 대합실은 냉방 시설이 시원찮아 찜통이다
젠틀맨님과 산으로 아우님... 셋이서 오랫만에 션한 맥주에 소주를 말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원한 식당에서 2시간을 개기다가 터미널로 향한다
16시 10분 구례에서 서울 남부터미널가는 버스
이 버스는 정규노선 버스가 아니라 손님이 많아 임시로 투입된 예비 버스이다
19시 50분에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산으로 아우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