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성골)지맥 제1구간 - 돌산령에서 항령까지
☞ 산행일시: 2016년 9월 17일
☞ 산행날씨: 짙은 안개에 흐림... 오후에 맑음(산행하기 좋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6.7km + 어프로치 약2km / 6시간 20분소요
☞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 산행코스: 돌산령-도솔산-헬기장-1,051봉-암릉-무명봉-헬기장-453번 지방도-산불감시초소
임도-안부-872.1봉-벙커봉-암봉-안부-비둑고개-헬기장-헬기장-수리봉갈림길
수리봉고개-762봉-720봉-임도-벙커봉-두밀령-헬기장-805봉 갈림길-벙커봉
삼면봉-헬기장-항령-460번 도로-뱅이골 소공원
☞ 소 재 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동면, 방산면, 양구읍
추석 명절을 맞아서 특별히 할 일도 없다...추석 전날 관악산을 간단하게 한바리하고
고향에 가지 않는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마신 술이 추석날 아침까지도 힘이 들었다
추석날 은사스님의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고 의정부 처남댁에 와 계시는 장모님을 찾아 뵙고
집에와서 수입(성골)지맥을 가기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안내 산악회를 따라서 성골지맥길에 나선다
성골지맥이란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고 일부 구간이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는 곳이라 독립군으로
나서기란 거의 불가능한 곳인데 추석 연휴 이틀동안 안내산악회에서 간다기에신청하여 집을 나서는데
비는 추책없이 추적추적 내리는데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8년동안 매주 베낭을 나서는 맥길이지만 이제는 어둠속에 걷는것과 비를 맞으면서 산행하기는 싫다
그러나 이 산행은 내가 신청한 게 아니고 지난번 견두지맥길을 같이 걸었던 산으로님이 신청하여
아니 나갈수도 없고... 잠실역에 도착하니 수헌 아우님이 나보다 먼저 와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맥 산행에 대해 난다 긴다하는 산꾼들이 다 모였는지 자그마치 관광버스 2대가
만차되어 가는데 그중에서 절반정도는 아는 산꾼인듯 하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춘천을 지나 양구땅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듯 비는 오지않고
땅은 뽀송뽀송할 정도로 깨끗하다...꼬불꼬불한 463번 도로를 따라서 돌산령에 도착하니
짙은 안개속에 가린 돌산령은 보이질 않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寒氣를 느낄 정도이다
수입(성골)지맥 개념도
수입(성골)지맥 (城谷枝脈)은 도솔지맥 도솔산(1148m)에서 분기하여 수입천(水入川)과 양구서천의 경계를 이루며
비둑고개. 두밀령(788.3m),항령,UN봉,성골령.오미령.성주봉(626.1m)을 지나 파로호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5km되는 산줄기인데 최전방 군부대 근처라서 일부구간은 때로는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수입천이 산줄기 우측을 감싸고 있어 수입천이라 부른다
지맥이름이 산이름이 아니고 고개이름에서 따온 좀 색다른 지맥이름이다.
필요한 지도 : 1/25000. 임당. 사태. 방산 1/5만 서화. 인제. 양구. 지리원 온맵지도는 뜨지 않는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돌산령(石山嶺:10:10)
양구군 동면 팔랑리와 해안면 만대리를 잇는 고개로 정상에는 군부대와 헬기장이 있다
예전에는 민간인들의 접근이 힘든 곳이였는데 2009년에 이 고개 아래로 돌산령 터널이
뚫리면서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면으로 접근하기가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돌산령 아래에 있는 팔랑리마을에는 강원도 산간마을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문화재가 있는데 바로 ‘돌산령지게놀이’와 ‘바랑골농요’이다.
돌산령지게놀이는 팔랑마을 나무꾼들이 돌산령을 오르며 하던 놀이인데
돌산령은 현재의 동면 팔랑리에서 해안을 넘는 고개로 바위와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화전을 일구어 생활하던 산간 농촌지방의 전통 민속놀이로, 대암산(大巖山)·도솔산(兜率山)
등을 끼고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전해오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는 내리지 않는 대신에 짙은 안개와 강한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정도이다
버스에 내려 잠깐동안 베낭 정리를 하는 사이에 조급증에 걸린 산꾼들은 벌써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산꾼들
귀한 분홍색 구절초를 만나는 행운도 누린다
돌산령에서 도솔산 오르는 길에 오랫만에 귀한 금강초롱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금강초롱이란 지명을 얻었으며 순토종은 짙은
자주색으로 꽃이 초롱꽃보다 가늘고 길며 설악산 화악산 등 1,000고지 이상 산에서만 볼 수 있다
핑크색 금강초롱과 흰금강초롱이 있으며 꽃말은 “누나의 기다림”이다
가을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구꽃...독성이 워낙 강한 놈이라 함부로 만지면 안될듯 싶다
도솔산 정상 오르는 길엔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게 가을임을 알려준다
좁은 길에 버스 2대를 타고온 산꾼들이 오르는데 돌산령 부대의 군인들이
내려오다 마주 치는데 반갑게 인사를 한다...군 벙커가 나오면서 도솔산 정상에 오른다
도솔산(兜率山:1,148m:10:30)
강원도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 동쪽으로 40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강원도지』에는 "군 동북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북
서쪽의대 우산, 동쪽의 수리봉, 남동쪽의 대암산, 북쪽의 가칠봉 등과 함께 백두대간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산의 북동쪽에는 소양강 상류에서 파로호(破虜湖)로 흘러드는 북한강 상류의 서천(西川), 북서쪽에서는
북한강 지류인 수입천 (水入川)이 각각 발원한다. 산의 동쪽 기슭에는 소양강이 남북으로 흐르며,
군사분계선이 통과하며 백두대간중 양구와 인제 축 선상의 가장 험준한 천연적 요새지이다.
남동쪽으로 고층 습지로 유명한 대암산용늪과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대우산, 가칠봉 등으로 연결된다.
정상부의 북쪽에는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을 연결하는 돌산령이 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양양 · 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고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어서
군사적 가치가 매우 컸으며, 이 때문에 이 산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를 기념하여 양구군에서는 매해 도솔산 전적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산 서남쪽에는 백제전시관이 있고,
북동쪽 해안면에는 양구전쟁기념관이 있다
도솔산 전투 안내판
도솔(兜率)이란 지명은 욕계 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로 수미산 꼭대기에 십이만 유순(十二萬由旬)
되는 곳에 있다는 천계(天界)로서,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으며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하늘에 사는 사람의 욕망을 이루는외원(外院)과 미륵보살의 정토인 내원(內院)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있다가 성불한다고 한다.
도솔산 정상에 있는 해병대 전적비
우리나라 해병대가 혁혁하게 승리한 3대 전투는 이곳 도솔산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월남전에 있었던 짜빈퉁 상륙작전이라고 한다.
그 중에 도솔산 전투는 미해병대 제5연대가 공격을 했다가 실패를 한 다음에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미해병대 작전지역을 인계받아 바로 공격을 하여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 요충지인 도솔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제5군단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많은 희생끝에 격퇴하여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써 16일만에
대승을 거둔 곳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전투이다
이 곳은 해발 1,300m가 넘는 준령이라 심한 안개속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돌격하여
적을 완전히 섬멸하여 이 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란
칭호를 수여받은 곳이 이곳 도솔산 전투란다.
당시 전과는 적군 3,265명을 사살하고, 포로 700명을 잡았으며, 해병대는
123명 전사, 600여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도솔산 전투지구 약사문
서울백두클럽 자료 인용
도솔산 정상 삼각점(판독불가)
도솔지맥(兜率枝脈) 개념도
도솔산 정상의 땡땡이종(화생방종)
작년 6월 14일 도솔지맥 첫구간을 올랐으니 정확하게 1년 3개월이 지난 후
다시 도솔산 정상에 오르는데 이곳은 올 때마다 짙은 안개 때문에 고생을 한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우측의 능선으로 내려 서면서 성골지맥 첫 구간을 시작한다(10:35)
짙은 안개속에서도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산비장이
핑크색 구절초 삼자매(꽃말:순수, 어머니의 사랑)
구절초의 전설
아주 오랜 옛날에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어여쁜 선녀가 천상에 살고 있었는데
그 선녀는 꽃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꽃 가꾸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결국 옥황상제의 보필을 소홀히한 죄를 물어 지상으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상에 내려온 선녀는 가난하지만 착한 시인을 만나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름다운 선녀의 미색이 입소문을 타고 고을 사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호색가였던 사또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후
터무니 없는 내기를 제안하는데 만약, 남편이 내기에 지면 선녀를 관비로 사또에게
받쳐야 할 상황이었는데 하지만, 첫 번째 내기는 남편이 일자무식 농부인줄 안
사또의 실수로 시 짓기 내기를 제안했으나 선녀의 남편이 승리를 하였다
말 좀 타본 사또가 제안한 두번째 말타기 내기를 했는데 왠일인지
사또가 탄말이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선녀의남편의 승리
그러자, 화가난 사또는.. 막무가내로 선녀를 잡아다 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과 회유로 선녀를 유혹하였으나 선녀는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거절을 하였고 죽음 직전에야 이 일이 의금부에 알려지면서 어렵사리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 온 선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다한 후 옥황상제가 있는 천상으로 돌아갔고 선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남편은 그녀를 따라서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선녀가 천상으로 떠난 9월이 되면 그녀가 살던 집주위에
선녀가 천상에서 그토록 좋아라 했던 어여쁜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꽃을 사람들은 9월에 피는 천상의 꽃이라 하여 구절초라 불렀다고 한다.
짙은 안개속에 둥근이질풀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오랫만에 만난 동료산꾼들...수헌아우님과 한학문 선배님, 사르리, 조여사, 산으로님 등
다들 반갑고 정겨운 산꾼들이다...도솔산의 첫 출발은 즐겁게 산행을 시작한다
팔랑리에서 밀려오는 짙은 운무... 그래도 비를 안맞고 산행하는 것만도 어디야!
운무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는데... 우짠지 좋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우측에 있는 을지 전망대와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면 분지는 짙은 안개로 오리무중이다
펀치볼(PUNCH BOWL)
휴전선과 맞닿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분지로서
한국전쟁 당시 UN군에 의해 펀치볼(PUNCH BOWL:화채그릇)처럼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주위가 모두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들로 인하여 6.25 당시
처절했던 전쟁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는 제4 땅굴과 을지전망대, 통일관, 전쟁기념관 등이 있다.
해안(亥安)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고치고 마을에는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었으며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하여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 해(亥)’를 쓰기 이전에 ‘바다 해(海)’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얼마전 해안을 조사하면서 선사시대의 유물과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가 아니였나 생각된다
조개껍질은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조개를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가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이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면전체가 눈 밑에 있어 면전체가 한마을 같다고 했다.
우린 이제서야 도솔산을 내려서는데 늘 선두에 서야 직성이 풀리는 조금증(?)에
걸린 산꾼들은 벌써 헬기장을 넘어서 1,051봉으로 올라서기 시작한다
헬기장(10:45)
오늘 산행을 시작하면서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돌산령 군부대가 보인다
그너머가 펀치볼로 불리는 해안면(亥安面)의 분지가 아련히 보인다
뒤돌아 본 도솔산
1,051봉(10:48)
내 나라 내 땅이건만 갈 수 없는 산하
대우산(大愚山:1,179m)은 강원도 양구군 동면(東面)과 해안면(亥安面)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태백산맥의 중앙산맥에 해당하며, 주위에 가칠봉(加七峰) · 도솔산(兜率山) · 대암산(大巖山) 등이 있다.
동쪽 해안분지에 한국전쟁 때 격전지인 '펀치볼'이 있고『여지도서』에 수록된 지도를 보면 상동면은
서쪽으로 서천에 접하고 동쪽으로 산지에 둘러싸인 채 좁은 계곡을 따라 마을들이 분포하였던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팔랑동(八郞洞) · 심곡사(深谷寺) · 도솔산(兜率山) · 사태동(沙汰洞) 등이 관련 지명이다.
또 사태동과 도솔산 중간에 금산(禁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지금의 대우산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우산을 '금산'이라고 표기한 것은 이 산에서 산림벌채가 금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872년지방지도』에는 『여지도서』 수록지도에 표기된 지명 이외에
구현(鳩峴, 지금의 비아리 구현고개 혹은 비둑고개)이 표시되어 있다
꽃향유(꽃말:가을의 향기)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풀로 중국 동북부 지역에도 분포한다.
꽃향유는 줄기가 뭉쳐나고 네모지며 가지를 많이 치고 흰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인 것으로 알려졌다.
9~10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이삭꽃차례로 달리며 분홍빛이 도는 자주색을 띤다.
열매는 분과이고 좁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편평하고 물에 젖으면 끈적거린다.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이 가능하며 한방에서는 감기, 오한발열, 두통, 복통, 구토, 설사,
전신부종, 각기, 종기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인다.
등로는 사라지고 잡풀이 우거진 군교통호가 성골지맥길을 대신한다
군 비트를 지나고...
군벙커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암릉(10:58)
무명봉(11:00)
어느 산꾼이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 북쪽에 있는 대우산과 가칠봉의 능선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
나중에 통성명을 하니 닉이 천자봉이란 분이신데 대중교통으로 지맥길을 걷는 대단하신 분이다
갈 수 없는 대우산(1178.5m.우),가칠봉(1242.2m. 가운데 좌측봉), 가운데로 이어지는 능선도로가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모두다 지금은 갈 수 없고 가칠봉은 금강산의 맨 마지막 봉우리로,이름도
이 봉우리가 있어야 금강산 일만 이천봉이 완성된다는 뜻에서 더할 가(加)를 사용했다고한다.
대우산,가칠봉은 피로 얼룩진 대우산,가칠봉 전투가 있던곳이다.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는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국군 5 보병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으로 북한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미국 1 해병사단과 국군 1 해병연대를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를 8월 30일에 시작했다...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가칠봉 전방 500m에는 1,122고지(일명 김일성 고지)가 있었는데 쌍방이 차후 작전을 위해서 필히 확보해야 할 주요 고지였다...
가칠봉은 아군 전선에 너무 근접하여 포병 및 항공 화력이 불가능해서 오로지 보병 근접 전투에 의존해야 했던 전투였다.
이 때문에 미군의 화력과 항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던 당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형적으로도 가칠봉은 해안분지의 북서쪽 분지를 둘러싸고,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는데, 공격자인 한국군은
낮은 지점에서 고지로 올라가며 전투를 치러야했지만, 방어자인 북한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항공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올라오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전투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향후 작전을 위해서 가칠봉 고지를 장악해야 했던 한국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고지의 주인이 6번이나 바뀌는
혈전을 치뤄여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국군 5보병사단은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함으로써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적전사 1,102명. 포로 250명. 아군전사 692명.실종 437명의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곳이다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헬기장(11:13)
산부추(꽃말:신선)
간과 심장에 좋으며 위를 보호하고, 신(腎:콩팥)에 양기를 보하고 위열을 없애며 폐기를 돕는다.
어혈을 없애고 담을 제거한다. 모든 혈증을 다스린다(본초비요).기침이 심할 때 생즙을 마시면 효과가 좋다.
아침에 버스가 지났던 453번 지방도가 보인다
453번 지방도(11:30)
이동통신탑과 도로준공비, 군부대 경고판이 있는 꼬부랑길... 산불초소를 바라보며 임도로 들어선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무시하고 도로를 건너 지맥길을 이어간다
지나온 능선
도로를 건너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 산불감시초소 방향으로 향한다
산불감시초소(11:33)
좌측으로 지게놀이 농요가 잘 보존되고 있는 팔랑리가 한 눈에 보이고 우측으로는
북한땅 매자봉에서 시작되는 도솔지맥 대우산, 가칠봉의 능선들이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팔랑리
양구 팔랑리(八郞里)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대암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팔랑폭포의 맑은 계곡까지 끼고 있어 산세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때, 멀리 함경도 지방에 살던 이학장(李學長)이라고 하는 도사(都事)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팔랑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학장의 부인이 유방이 4개가 달려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곧 네쌍둥이를 낳았고, 몇 년 해에 또 네쌍둥이를 낳았다고 한다.
여덟 자식 모두 훌륭하게 자라 벼슬까지 하게 되어 그 후 이 마을을 팔량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느림골, 무학, 범바우, 돌고지, 자작정, 갈조동, 송림말, 막은골 등이 있다.
손에 잡힐듯한 가까운 대우산과 가칠봉... 저곳은 비무장지대 안쪽이라 있는 갈 수 없는 땅이다
돌산령에서 부터 우측으로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지역이다
뒤돌아 본 도솔산...산악회를 따라오니 산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앞사람 등산화만 보고 걷는 형국이다
다들 왜 그리도 급한지...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범여로서는 모든게 불편하다
임도 우측으로는 지뢰 경고판 철조망이 계속해서 보이고...
지난달 왕재지맥 1구간을 걸으면서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젠 겁도 안난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등로로 접어들어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향한다
무명봉(11:42)
내려서니 돌무더기와...
군부대 벙커가 보이고...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872.1봉 헬기장이 나온다
872.1봉(11:58)
인식할 수 없는 872.1봉 삼각점
872.1봉 헬기장에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한 다음 3시 방향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벙커봉 굴뚝도 만나고...
벙커봉(12:15)
암봉(12:15)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에 쌓여있는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2:25)
군교통호가 나오는데 좌측 아래의 군부대에서 장병들이 훈련을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 교통호 아래부터는 비무장지대라 산악회 회장이
조용히 해서 지나라고 몇번이나 강조하건만... 뒤따라오는 여성 산꾼은 계속해서 떠들며 지난다
참호같은 곳엔 고물 탱크가 있고...
두번째 만나는 고물 탱크
드디어 오늘 산행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비득고개로 내려선다
비둑고개(鳩峴:529m:12:35)
양구군 동면 비아리에 있는 고개로 비둘기 목처럼 생긴 고개 마루 밑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좌측으로는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고 비포장도로의 y자 고개에는 군 초소가 있는데
초병 2명이 무전기를 들고 이리저리 연락을 하면서 분주히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좋질 않다
비둑고개에서 부터 수리봉 아래까지는 민간인의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다
비둑고개 북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두타연에 이르고
이 방산면,동면 사태리 일대는 6.25때 단장의 능선전투가 있는 격전의 현장이다
재빨리 등로로 올라 군교통호를 따라서 올라간다
벙커를 지나...
힘들게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도솔산은 박무속에 갇혀 버리고 지나온 872.1봉만이 뾰족하게 보인다
헬기장(12:40)
헬기장에 오르자 먼저 도착한 산꾼들이 밥상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고 있어 나와 수헌, 산으로 아우님도
이곳에서 밥상을 펼쳐놓고 막걸리 한잔 하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조금전 비둑고개에서 분주히
무전기를 들고 왔다갔다하는 군인 2명이 올라와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는데...오랜 산행 경험상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밥을 먹다말고 베낭을 다시 싸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점심으로 먹은 밥알이 꺼꾸로 솟는 기분이지만 힘든데 왔는데 붙잡히면 끝장이라 능선으로 36계...
타이어로 만든 도로로 힘들게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있다
두타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두타(頭陀)란 산스크리트 두타(dhuta)에서 나온 말로 번뇌를 털어 내고 모든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수치(修治) 또는 기제(棄除)라고 한역되었다. 바로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불교 수행의 원형인 것으로 부처님의 십대제자중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를
두타제일로 부른다.
두타연 지명은 천년전 산 속에 있던 절의 이름(두타사)이 두타연의 유래가 되었다.
60여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계곡은 열목어 헤엄치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가지고 있으며
폭포 아래 자욱한 안개는 계곡의 이름에 어울리게, 세상의 모든 걱정을 묻어 줄 듯 보인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닫혀 있던 계곡은 2003년 그 문을 열었다.
안내소에서 출입 신청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두타연으로 향할 때에는 반드시 신분증을 가져가야 한다.
바쁘게 줄행랑을 치면서도 다시 한번 도솔산을 뒤돌아 본다
군사도로를 따라서 가니...
군 시설물을 만나고...
군부대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벗어나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계속해서 만나는 군시설물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급하게 밥을 먹은 탓인지 약간의 체기를 느낀다
기름나물은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달걀버섯
급경사의 능선을 올라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좌측으로는 비둑고개에 있는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도로를 만나고
군부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등로는 아주 좋다
통나무 계단을 올라선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지니...
헬기장(13:35)
성골지맥의 최북단에 해당되는 곳으로... 바꾸어 말하면 남한의 지맥길중 최북단이라 보면 된다
갈 수없는 도솔지맥 대우산과 금강산의 맨 마지막 봉우리라는 가칠봉이 아련히 보인다
능선 아래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북쪽에서 하는지 남쪽에서 하는지는 몰라도 대북(남)방송이 시끄럽다
갈 수 없는 북녘땅... 한없이 바라보며 입맛만 다신다
헬기장에서 수리봉 방향으로 향한다
흰개쑥부쟁이
대우산 너머 뒷쪽은 북한 지역에 있는 어은지맥의 능선인듯...
고속도로(?)만큼 넓은 도로를 따라서 가니...
벙커가 나오고...
벙커봉(13:40)
벙커봉에서 바라본 피의 능선이 이어지는 수리봉
피의능선이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으로,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이루어진 능선을 말하는데 피의능선전투는 한국군 제5사단 36연대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1951년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42만여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치른 격전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 신문 <성조지 Stars and Stripes>가 이 전투를 피의능선전투라 이름 지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한국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북한군 1,480여 명이 사살되고 70여 명이 생포되었다.
원형 철조망과 철문이 있는 곳을 지나니...
수리봉 갈림길(957m:13:45)
수리봉은 백석산으로 이어지는 피의 능선에 속하는 곳이다
1951년 8월18일부터 9월5일까지 국군과 미군, 북한군이 이곳에서 격전을 치렀던 곳으로
능선이 피로 얼룩질 정도로 전투는 치열했는데 수리봉 북쪽으로는 ‘단장의 능선’이 이어진다.
당시 부상병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부르짖는 모습이 외신에 소개되며 유래됐다.
북한에서도 수리봉 전투는 유명하다고 한다. 유씨는 “북한에도 수리봉 전투를 다룬 책이 많다”면서
“수리봉에 고립된 인민군을 돕기 위해 양민들이 자발적으로 음식을 날랐다고 선전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갈 수없는 수리봉 갈림길의 넓은 공터를 둘러본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개쑥부쟁이야! 동족상쟁의 아픔을 아느냐?
등로에서 만난 불발탄...아이구 무서바라
내리막 등로로 내려오니 우측에는 수리봉으로 가는 도로가 보인다
등로에서 우측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서 편하게 내려간다
苦行
반사경이 있는 도로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철문이 굳게 잠겨있다
수리봉 고개(14:05)
먼저간 동료산꾼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군부대의 제지로 이곳에서 군부대 차량을 타고 21명의 산꾼이 강제로 퇴출 당했단다
우린 이곳에서 재빨리 능선으로 숨어들어 비무장 지대를 벗어나는데 비둑고개에서 이곳까지 민통선
안쪽이라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는데 민간인들이 들어왔으니 군부대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군부대장의 경고문
능선에서 바라본 수리봉 고개의 모습
수리봉 고개에서 0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도망을 간 다음 민통선 지역을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져 진행하는데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상당히 건강한 모습이다
762봉(14:40)
뽕나무버섯...식용가능한 버섯이다
참싸리버섯도 좀 수확하고...한끼의 식사용으로는 충분하겠다
계속해서 만나는 군교통호
큰갓버섯
주름버섯목 갓버섯과의 한 종으로, 식용버섯이나, 날로 먹으면 소화기계통의 중독을 일으키는 버섯이다.
갓은 처음에는 둥글다 가운데가 볼록해지게 편평해지는데, 이름처럼 갓이 크다.
표피는 갈색으로, 터져서 인편이 된다. 고리는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고, 숲·풀밭 등에 단생한다.
이곳은 최전방이라 그런지 온맵 지도와 트랭글 지도에도 모든게 표기가 제한된다
아마도 안보문제 때문인듯 하다... 공터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노루궁뎅이 버섯(幼生)도 하나 수확한다
군 교통호를 올라서니...
720봉(15:00)
벙커봉에서 또다시 편안한 길을 내려선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5:05)
우측으로 조금 올라간 다음에...
임도와 헤어진 다음에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벙커봉(15:15)
원형 철조망도 만나고...
두밀령(杜密嶺:788.3m:15:20)
양구군 동면 월운리와 방산면 고방산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일반 벙커봉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굉장히 큰 벙커가 있으며 벙커 위에는 판독이 안되는 삼각점과 화생방 종이 있다
판독할 수 없는 삼각점
두밀령 정상의 모습
좌측으로는 피의 능선으로 이어지는 월운리 방향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간다
군 교통호를 따라서 가니...
벙커봉이 나오고 이윽고 전망이 확 트이는 헬기장으로 내려선다
헬기장(15:30)
헬기장에서 바라본 양구군 동면(東面)
북쪽으로 수입면(水入面), 동쪽으로 인제군의 인제읍 ·북면(北面)·서화면(瑞和面),
남쪽으로 남면(南面), 서쪽으로 방산면(方山面)· 양구읍에 접한다.
『여지도서』에 상동면(上東面)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후곡리 · 지석리 ·
덕곡리 · 원당리 · 임당리 · 사태동리 등 6개 리의 위치와 호구가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도솔산은 "현 동쪽으로 40리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동면의 진산으로 보이며 또한, 심곡사(深谷寺)가 도솔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 동면 지역에는 도솔산(兜率山), 심곡암(深谷巖), 계산령(鷄山岺) 등의 지명이 보인다.
계산령은 인제로 가는 길목이며『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달리 『해동지도』에는 심곡사가
심곡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동면 지역에 서천(西川)이 시작됨을 볼 수 있다.
서천은 동면 비아리 · 사태리의 돌산령에서 발원하여 동면 지석리 · 원당리 · 후곡리를 거쳐 남면의
야촌리를 경유하며 송우리 · 죽리를 거쳐 양구읍 송청리에서 북쪽으로 돌아 파로호에 유입한다
월산(月山)·후(後)·이현(泥峴) 리를 편입하였다.
중앙의 남류하는 서천(西川) 주변과 북동부의 해안분지(亥安盆地)에는 곡저평야와
완만한 침식사면이 발달하여 농경지와 취락이 주로 그 두 지역에 분포한다.
산간내륙이지만 논이 밭보다 많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감자이고 양봉과
목우가 성하며, 산나물과 약초는 특산물이다.
서단부에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大巖山大愚山天然保護區域:천연기념물 246)이
있는데, 고층습원(高層濕原)이 있어 학술연구상 중요하다.
문화재로는 최도환묘(崔道煥墓), 서암사(書巖祠), 지석리(支石里) 선사유적이 있다.
양구읍 너머로 사명산도 아련히 보이고...
잠시후 가야할 능선과 내일 오를 UN봉이 보인다...
군 교통호를 따라서 내려오다가...
805봉(15:42)
805봉이 나오는데 정상으로 오르질 않고 좌측 사면으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수북히 쌓인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고 낙엽에서 나는 먼지로 인해 목이 아프다
달걀버섯
능선 우측으로는 군사보호시설 말뚝이 보인다
솔미치광이 버섯
균모의 지름은 1.5-4cm로 원추상의 종모양에서 둥근산 모양을 거쳐 거의 편평형으로 된다.
표면은 매끄럽고 등갈황색 또는 등갈색이며 가장자리에 약간 줄무늬 선을 나타낸다.
살은 균모와 같은 색이고 쓴맛이 조금 있다. 주름살은 황색에서 녹슨 갈색으로 되며 밀생한다.
자루의 길이는 2-5cm이고 굵기는 2-4mm로 위쪽으로 가늘고 표면은 섬유상인데 녹슨 갈색이며 속은 비어 있다.
포자의 크기는 8.5-10×4.5-6㎛이고 는 아몬드형이고 미세한 사마귀 점으로 덮여 있다. 발
생은 가을에 침엽수의 썩은 나무위에 군생 또는 속생 한다.
목재부후균. 분포는 한국의 오대산, 지리산 등 온대 이북에 분포한다
안부(16:05)
소나무를 이고 있는 벙커봉(16:10)
구멍바위(?)를 지나고...
벙커봉(16:13)
편안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삼면봉이 나온다
삼면봉(三面峰:16:20)
양구군 동면과 양구읍, 방산면의 3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화생방종과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다
오늘의 날머리인 항령까지는 편하게 내려간다
헬기장(16:28)
비트를 지나니...
날머리인 항령(項嶺)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령((項嶺:676m:16:30)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도사리에서 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비포장 임도에는 삼각점(333FOB)이 있다
고개 아랫로는 460번 지방도가 지나는 도고터널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학이 출현하여 嶺)이라는 지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맥 산행은 여기서 종료하고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항령 정상에 있는 군 삼각점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임도 차단기가 있는 곳을 지난다
미역취들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가득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다 좌측을 가로질러 460번 도로로 내려선다
도고터널 입구에서 우측으로 한참을 내려오니 차량과 동료산꾼들이 보인다
산행종료(17:00)
벵이골 소공원에서 산악회에서 제공한 식사와 막걸리 몇잔을 마신 후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