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보고 뽕도 따러간 변산 나들이
☞ 산행일시: 2018년 03월 0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5.8km / 3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겸 야생화 촬영
☞ 산행코스: 남선동 버스 정류장- 굿당-어수재-우슬재 갈림길-조망봉-350봉-405봉-444 -비룡상천봉 갈림길
묘지-묘지-445봉-447봉-와우봉-고래바위등-이정표-남근석-서쇠뿔바위봉-데크목 계단
안부-지장봉-너럭바위봉-묘지-새재-청림마을
☞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상서면 , 하서면
남도지방에 봄소식이 온다는데 올해는 날씨가 너무 추워 봄소식이 늦어지는지...
엊그제 황병산을 갔다가 산행도 못하고 허벌나게 고생을 한 탓에 자꾸만 몸은 움추려 드는
느낌이나그래도 이맘때쯤이면 통도사의 홍매화나 김해 건설공고 교정의 매화도 필터인데...
요즘 들어서 자꾸만 오른쪽 무릎이 약간 기분이 나쁠정도로 아파오니 자꾸만 걱정이다
가야할 산은 많은데 무릎이 아프니 몸뚱아리는 자꾸만 이상 신호를 보내는 듯 하다
하긴 10여년을 매주 산행을 하다시피 했으니 그럴때도 됐지...
이번주는 맥산행을 접고 야생화 구경이나 나서 보련다
그렀다고 김해나 양산 통도사를 가기에는 조금 애매하여 지난해 갔던 부안의 변산 바람꽃을
보러 가기로 하고 카메라 장비와 베낭에 물한통만 챙긴 다음에 강남고속터미널로 향한다
그렀다고 야생화를 보러가기에는 너무 밋밋한 느낌이라 눈꼽만큼 산행을 한 다음 야생화를 봐야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부안행 버스표
06시 50분 서울을 출발하여 부안으로 향하는 버스는 생각보다 손님이 많은듯하다
어젯밤에 잠을 설쳤더니만 버스를 타자마자 계속 졸음은 쏟아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군산 . 김제를 지나 부안으로 달려가고 있다
부안시외 버스 터미널(09:35)
이곳 남쪽지방이라 그런지 완연한 봄냄새가 물씬 풍기고 날씨도 따뜻하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시내버스가 서는 곳을 가기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군내버스 정류장(09:40)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내가 가야하는 남선마을을 거쳐 사자동 내변산 탐방안내소로 향하는 버스는 이곳에서 10시
25분에 출발하는 700번 군내 버스인데 이곳에서 출발시간이 오전에는 06:30, 08:20, 10:25이다
버스 요금은 부안 어디를 가던지 요금이 무조건 성인은 1,000원이고, 초,중,고 학생들은 100원이다
참고로 시외버스 터미널에 버스를 타면 같은 부안이라도 격포는 3,800원이고, 내가 가야하는
변산쪽(변산면사무소쪽...변산, 산내, 지서리는 2,900원)이다...외지인들은 신경을 써야할 듯 싶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했어 근처 빠리바케트 빵집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점심 대용으로
앙꼬빵 하나를 사서 베낭에 넣고 나오니 버스가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남선마을 버스 정류장 이정표(10:47)
나를 남선마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준 버스는 종점인 사자동으로 가버리고 쇠뿔바위로 향하는
이정표만 범여를 반기는데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한 어느 산악회 버스도 등산객을 토해낸다
변산반도 국립공원내에 속해있는 곳이라 그런지 이정표는 잘 설치되어 있어 길잃어 버릴일은 없다
하기야 오늘은 정해진 길을 따라서 원칙대로 가야하는 맥꾼이 아니기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니 병풍바위와 파란색 건물인 굿당이 보인다
병풍 같은 암벽 아래에 조그만 호수거 어수대(御水臺)라니 결코 범상치 않는 지명이다
御水臺(임금이 물을 마시는 장소)라는데. 분위기만으로 볼 때 충분히 임금이 왔을 만하고,
왔으면 가기 싫어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어수대 위에 왕재암과 석재암이란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지〉에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서쪽으로 순행하여 이곳에 이르렀다가 즐거워 돌아가기를 잊었다.
그래서 왕재(王在), 석재(釋在), 어수(御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순왕이 이곳에서 3년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지만 기록에 있는 얘기다
어수대(御水臺:10:53)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남선마을에 있는데 병풍바위 아래에 깨끗한 계곡물과 御水臺 표시석,
부안출신의 기생 매창의 詩碑와 성황당의 역할을 하는 늙은 고목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어수대의 지명유래는 옛날에 왕이 이곳에서 머물며 물을 마셨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며,
우리나라 으뜸물이며, 부안댐의 발원지이기도 한 곳이다
매창이 누구인가? 조선시대 기생으로서 4대 여류시인에 속한 인물 아닌가.
기류문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당대의 문장가들과 사귀며
주옥같은 시가를 남겼고 허균 등과 서문을 주고받은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죽은 뒤엔 고을 현리들이 그녀의 시집 <매창집>을 출간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어수대에 있는 매창(梅窓)의 詩碑
천년 옛절에 님은 간데 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네
지난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러 볼까나
매 창
기생 매창(梅窓 1573-1610)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며,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이라 불렀다 하며, 계랑(癸娘 또는 桂娘)이라고도 하였다.
아버지는 아전 이탕종(李湯從)으로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부안에 있는 묘에 세운 비석은 1655년(효종 6) 부풍시사(扶風詩社)가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1513년(중종 8)에 나서 1550년(명종 5)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문집 『매창집』 발문에 기록된 생몰 연대가 정확하다.
그는 37세에 요절하였다.
시와 거문고만 알았던 외로운 매창에게도 꽃 같은 스무 살 무렵 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가 사랑했던
남자는 부모와 같은 나이 스물여덟 살이나 연상인 천민 출신인 유희경과 사랑이 싹트게 된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 가
천 리 길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배꽃이 비처럼 떨어지던 날에
헤어지기 서러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가을 깊어 낙엽은 떨어지는데
임도 나를 생각하는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꿈속에만 왔다 가는구나
매창은 시와 거문고에 명성이 높아 양반들에게 많은 사람을 받았지만, 신분이 높지않은
유희경에게 마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신분이 같았던 천민출신이라 서로의 마음을 가슴에
시를 통해 교류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매창과 유희경은 짧은 만남의 사랑을 가졌지만 이별을 해야했고 마음을 다 준 짧은
사랑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하고 애타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듯 싶다
15년 후 두 사람은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다시 헤어지게 되고 3년후 매창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수대 옆에 있는 당산나무
누군가가 정한수를 떠다 놨다...매창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인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10:55)
어느 산악회에서 막 시산제를 끝낸 모양이다
음복으로 막걸리 한잔을 하고 가란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는거 봤어... 막걸리 2잔을 얻어 마시고 산행을 시작한다
막걸리 기운으로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안부가 나온다
우슬재 갈림길(11:07)
아침에 버스를 타고 부안읍내에서 상서면소재지를 지나 청림마을로 넘어 가는 고개를 우슬재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우슬재인데 변산국립공원 국공파 직원들이 출입금지 플랭카드를 걸어놨다.
‘우슬재’라는 지명은 소의 무릎고개라하는데 그곳이 누워 있는 소의 무릎이고, 쇠뿔바위가 머리쯤 된다
산의 왼쪽은 우슬치(牛膝峙)라는 고개가 있는데 변산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다 이길을 따라 간다.
우슬재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서 쇠뿔바위봉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쇠뿔바위봉이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큼하다...남녘땅이라 그런지 봄내음이 풍기기 시작한다
조망바위(11:18)
가야할 350m봉이 엄청나게 높게 보인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고도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봉우리 자체는 엄청나게 높게 보인다
조망바위(11:23)
아침에 남선마을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많이들 올라온다
아마도 경상도 지역에서 온 등산객들인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엄청나게 떠든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남선마을과 좌측으로 가는골 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뾰족하게 생긴 울금바위와 우금산이 보인다
350m봉(11:30)
정상에 올라서니 무명묘지 1기와 이정표가 서 있다
350m봉 이정표
날씨는 생각보다 덥다... 입었던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는다
405m봉(11:38)
등로에서 당겨본 우금바위
우금암(우금바위)도 보이는데 시인들이 ‘우금암’이란 이름을 바위벽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바위의 동쪽에 성첩(城堞)과 장대(將臺)가 있다고 하는데 옛날 묘연 왕이 이 골짜기에 숨어들었는데,
우씨(禹氏)와 김씨(金氏) 두 장수가 묘연 왕을 무찔렀다고 해서 우금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백제 멸망 이후엔 그 후손들이 우금암을 중심으로 우금산성을 쌓아 부흥운동을 벌인 본거지로
많은 역사가 서린 곳이다.
부안읍내와 청호저수지가 보이는데 호남평야라 불리는 김제들녘못지 않게 부안들도 넓게 보인다
444m봉(11:40)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부안군 끝자락인 하서면과 계화면 너머로 보이는게 동진면인지 싶다
드넓은 들에 곳곳에 저수지들이 보이고, 새만금 방조제와 동진강이 아련히 보인다
가운데 여인의 젖꼭지처럼 솟아오른 산이 석불산(石佛山)인듯 하다
개화도 간척공사가 있기 전에는 바다와 인접한 산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밋밋하게만 보인다
저 산 아래에는 부안영상테마파크가 있는 곳이며,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고희(高曦)장군의 묘와
후손들이 살고있는 세거지가 있는 곳인데, 2009년도에 히말라야 낭가파르팟 등정을 끝내고
하산도중 추락사고로 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 故고미영님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룡상천봉 갈림길(11:42)
정상에는 전주이공과 배부인 김해김씨 묘지가 있는데 오늘은 산행이 주 목적이 아니라
지도 한장도 가져오질 않아 이곳을 그냥 지나쳤는데 집에와서 검색해보니 비룡상천봉이란다
비룡상천봉(飛龍上天峰)은 변산반도의 내변산으로 부안호수의 북쪽에 위치하며, 국립공원측에서
입산금지로 막아 놓았다가 2011년 5월 11일 개방하게 되었기에, 외지의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비경으로 풍수적으로 등룡에서 비룡을 거쳐 하늘로 오르는 기운의
산이기에 비룡상천봉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며 쇠뿔바위봉의 북쪽에 위치한다 .
풍수지리적으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세를 지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으로 꺽어져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쇠뿔바위봉으로 향한다
오늘은 착하게 살겠습니다.. 맥산행이 아니라 샛길로 갈 일이 없소이다
이 높은 곳... 유난히 등로에 묘지들이 많은 걸 보니 명당자리가 많은 모양이다
于石居士濟州梁公 묘비는 좀 특이하게 서 있는게 이채롭다
대체적으로 무덤 정면앞에 묘비가 있는게 정석인데 이 묘비는 무덤 우측의 사이드에 서있다
제주 양공의 묘지를 지나니...
나주김공 묘지 입구라는 표시석이 서 있는데 그러고보니 십승지중에 하나인 변산십승지 구간인 모양이다
447m봉(11:52)
너럭바위(11:54)
청미래(망개나무)
이 넘은 생긴건 멀쩡한데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맥산행을 하면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와우봉(臥牛봉:465m:12:00)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는 봉우리인데 정상에서는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고 아무런 표식도 없어 무심코
그냥 지나가는데 이곳은 모든게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마치 거창의 수도지맥에 있는 양각산을 연상케 한다
와우봉을 지나니 쇠뿔바위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부터 변산을 일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 겹겹이 쌓여 높고 깎아지른 듯하며 바위와 골이
그윽하다"고 하였다.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도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라고 묘사하고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변산을 영주산이라 하고, 다른 기록에는 봉래산蓬萊山이라고도 하여, 고창의 방장산,
고부의 두승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꼽았다는데, 그래서 이 계곡 빼어난 경관을 봉래구곡이라 했다
십승지란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역사적 용어이며, 십승지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 중에
감결(鑑訣),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策),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 나타난다.
십승지로 선정된 대체적으로 공통된 장소는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이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이상향에 관한 민간인들의 사회적 담론으로 십승지 관념은 조선 중․후기에
민간계층에 깊숙이 전파되어 거주지의 선택 및 인구이동, 그리고 공간인식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십승지지는 조선후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조건은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이제 오늘 산행중 하일라이트인 쇠뿔바위봉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안군(扶安郡)의 모습
부안은 김제평야와 인접한 곡창지대다. 또 바다가 가깝고 변산이라는 좋은 산이 이웃해
예부터 ‘생거(生居) 부안’이라고 했다. 충청도의 진천이 ‘생거 진천’이라는 말을 군의 브랜드로
사용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진천의 이 말은 효자 아들들이 재가한 어머니를 살아 계실 동안
모시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생거의 땅은 부안의 전매특허였다.
부안군(扶安郡)은 지금의 부안읍인 부령현과 보안현을 조선조 들어 합하면서 두 현의 글자를 따
새로 붙인 이름이다. 부령은 백제시대 개화현에 속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부령(扶寧)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별호는 부풍(扶風)이다.
보안은 백제시대 흔량매현이던 것을 희안(喜安)으로 개명했고, 이어 고려조 들어 보안(保安)으로
고쳐 오늘날까지 보안면으로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보안의 별호는 낭주(浪州)다.
잠시후에 가야할 서쇠뿔바위봉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고래등 바위에서 인증샷
울금(우금)바위와 우금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아련하게 두승산이 보인다
두승지맥의 주산인 두승산 언젠가는 걸어야할 능선이다
왕관처럼 보이는 울금바위(禹金巖)...전체적인 형상이 울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울금바위에 대한 유래를 보면 “우(禹)”는 요순을 받들어 홍수를 다스리고, 태평성대를 이룬
우(禹)임금을 가리키고 “금(金)”은 오행(五行)상의 가을을 의미한다고 한다
태초에 반고(盤古)가 도끼를 휘둘러 천지 개벽을 깨고 혼돈을 깨고 천지 개벽을 했다던가
이와같은 맥락으로 도끼로 깨어 연 우금바위의 형상이 ‘바위속에 단단한 우임금이 가을 세상을 연다’라는
뜻이데 월간지「사람과 산」 2007년 4월호에 박원식님이 기고한 “강증산과 우금산”의 내용을 보면
천지가 열리듯 크고 단단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진 그 특유의 모습을 개벽(開璧)으로 해석했다
고래등 바위에서 바라본 동쇠뿔봉(우각봉:牛角峰)의 모습
쇠뿔바위봉은 동쇠뿔봉과 서쇠뿔바위봉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소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런 전혀없다(보는 사람들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서쇠뿔바위봉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동쇠뿔바위봉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고 가는 사람도 없다
예전엔 가는 사람도 있었고 자일도 설치되어 설치되어 있다고 했는데 국공파들이 제거해 버렸다는
소문도 들린다... 내가 오늘 맥산행 하는것도 아니니 구태여 목숨을 담보로 갈 일도 없다... 다시 되돌아 간다
우측으로 고래등 바위가 보이고 그 앞에 두리뭉실하게 생긴 봉우리가 동쇠뿔봉이다
고래등 바위의 모습
서쇠뿔봉에서 바라보니 흡사 고래가 누워있는 형상처럼 보이는데 고래등 위에는 산꾼들의 만찬장소로는 금상첨화이다
청림마을 갈림길(12:20)
이곳에서 우측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가면 청림마을이고 직진을 하면 서쇠뿔바위봉이다
가는 길에 앙증맞은 바위를 만나는데 어떤 산객은 새바위라 부르고
어떤이는 남근석이라 하는데 그건 각자가 판단해야 할 듯...
서쇠뿔바위봉(480m:12:21)
서쇠뿔바위봉 정상에는 데크목 전망대를 설치해놨는데 변산국립공원 전체가 다보인다
변산은 이름 그대로 변방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별호가 봉래산(蓬萊山)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의 하나다.
금강산도 봉래산으로 불리는데, 발해만 동쪽, 중국의 동쪽에 있는 신비한 산들 가운데 하나다.
서해에서 보면 산이 아스라이 솟아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김제평야에서 서방을 바라보면 역시 구름 속에
솟아 있는 산이 변산인데 佛家에서 말하는 서방정토의 세계이자 道家의 신선들이 머무를 만한 곳이다
서쇠뿔봉에서 바라본 의상봉(義湘峰)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산중에서 가장 높은산(509m)로 부안군지와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일명 기상봉으로 불리는 의상봉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고승 의상대사가 변산의 마천대(磨天臺)
북쪽에 의상사를 짓고 수도한데서 유래됐으며,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 그리고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의상봉 마천대의 일명 다람쥐절터로 불리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고승 진표율사가
자기 몸을 던지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득도한 미륵불교의 성지로 추앙하고 있다.
또 이규보가 의상대사가 주석한 의상사와 의상봉을 답사하고 서해와 변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망해대로 선계(仙界)인지 불계(佛界)인지 모르겠다고 감탄했다. 지명 또한 의상봉, 관음봉, 지장봉 ,
원효굴, 부사의방, 등 불교와 관련이 많고 유명한 사찰 터로 실상사, 청림사, 의상암, 등운사.
부사의 방장, 선계사 등이 즐비해 불교의 성지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원효대사, 부설거사, 의상대사, 진표율사, 진묵대사, 월명 등 불가의 이름난 고승들이 변산에서
배출됐고, 근래에는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 원불교의 소태산 등이 월명암을 비롯한 주변의
사찰에서 득도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정감록이 말하는 우리나라 십승지로써 손색없다.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의상봉은 출입이 금지된 봉우리지만 또한 변산지맥길이기도 하다
변산지맥 첫구간을 했으니 언제가는 비탐구간이기는 해도 내가 가야할 봉우리다
의상봉 너머로 새만금방조재와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 일대가 아련히 보인다
당겨본 새만금방조재의 모습
내변산의 산과 물이 형성한 모양을 두고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라고 하는데 태극은 만물의 시원(始原)이다.
또 바람의 근원지이기도 하며, 이런 곳을 일러 명당이라고 한다.
변산은 정말 오묘한 곳으로, 변산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구분하는데, 내변산은 위에서 언급한
태극의 내부이고, 외변산은 태극을 둘러싼 외피에 해당하며 내소사를 비롯해 개암사 등 오늘날 전해 오는
큰 사찰은 외변산에 자리한다. 또 관광지로 이름난 채석강이나 적벽강도 외변산에 속한다.
부안호를 비롯한 월명암(폐사 후 중창), 폐사가 된 실상사나 청림사는 내변산에 자리하고 있고
외적의 침입이나 내환이 있다면 외변산이 먼저 다쳐야 함에도 내변산이 항상 더 큰 수난을 겪었다.
내변산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하는 우슬재나 바드재를 막으면 청림이나 중계리 일대는 큰 화를
피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보안·부령의 피난처에 해당한다.
서쇠뿔봉에서 청림마을로 하산하기 위해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조금전에 봤던 남근석은
남쪽에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남근석(南根石)처럼 보이는데 다른곳에 비해 조금은 투박해 보인다
다시 청림마을 갈림길(12:32)
급경사의 내리막길... 다행히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 쉽게 청림마을로 향한다
고려사에는 부안 변산과 장흥 천관산이 배 만드는 곳과 궁중의 재목생산지로 정해 질 정도로 숲이 울창했다고
기록될 정도인데, 택리지의 비친 변산은 소금 굽고 고기잡이, 산중에는 기름진 밭이 많아 농사짓기에 알맞으며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다고 했다
의상봉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 까치봉을 지나 백암산을 가기 전 순창새재 부근 530m봉에서
가지 친 영산기맥(왼쪽 영산강의 분수령 목포 유달산까지 가는 산줄기)이 입암산을 지나 방등산
못미처에서 북쪽으로 지맥하나를 살며시 내려놓는데 그 지맥이 의상봉으로 연결되는 변산지맥일 것이다.
이 지맥은 또 다시 북쪽 방향에 정읍 두승산줄기를 나누고 북서쪽으로 달리며 배풍산을 지나면 또 다시
북쪽으로 주산 줄기와 헤어져 서쪽으로 가다 곧바로 쌍선봉 줄기와 두 갈래를 친 뒤, 삼예봉, 옥녀봉을
지나 의상봉을 솟구친 뒤 서해바다에 잠긴다.
물줄기는 동쪽은 고부천을 통하여 동진강에 살을 섞다가 서해에 입수하고,서쪽은 모두 작은 계곡을
이루다가 서해에서 동진강물과 조우하는데, 황소의 두 뿔을 닮은 쇠뿔바위의 행정구역은 상서면 청림리,
의상대사가 마천대 아래에 의상사를 짓고 수도했다는 의상봉은 하서면 백련리, 산내면 중계리를 경계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청림(靑林)마을의 모습
부안군 상서면에 자리한 청림마을... 청림리의 주산은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을 오른편에 끼고 있는 쇠뿔바위다.
부안에서 청림으로 들어오는 우슬재가 곧 소 무릎이고 쇠뿔바위 뒤의 산이 와우봉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우공(牛公)이 머무르는 곳이니 우공이 먹을 식량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쪽의 노적봉이다. 노적봉 아래 동리가 노적이다
그러나 이곳의 우공은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이 아니다. 노적봉 정도로는 그의 배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아예 동리 이름을 ‘푸른 수풀(청림)’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청림의 노적은 부안에서 첫손꼽는 마을이었다.
진사급 재사가 부안에서 가장 많았고, 유명한 부자는 모두 노적 출신이라고 했다.
이토록 화려하던 청림도 수차례 수난을 겪었다. 청림사가 없어지고 한국전쟁 때는 가장 수복이 늦었다.
대궐 같은 기와집들도 이때 모두 불타 버렸다
서쇠뿔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밀양손씨 삼례할머니의 묘지가 있는데
맞은편에 있는 의상봉과 정면으로 보고 있는데 무뢰한이 한 눈에 봐도 명당자리임을 느끼게 한다
묘지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부사의방(不思議房,)
삼국유사에 기록된 진표율사의 일대기는 이렇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는 김제 만경에서 태어나 12세 되던 해 부모의 허락을 받아
금산사로 출가하여, 숭제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미륵과 지장보살 앞에서 지성으로 참회하여 친히 계법을 받아
세상에 펴라는 명을 받고 전국 사찰을 둘러봤다.
27세 때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린 양식을 가지고 부사의방에 들어가 하루식량을 다섯 홉으로 정하고 한 홉은
다람쥐에게 주며, 불도에 정진하여, 마침내 절벽으로 몸을 던지고, 온몸을 돌로 찍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정보살을 친견(親見)한 후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이적을 남겼고, 금산사를 중창한 뒤, 통일신라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인 모악산에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어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하였다.
속리산을 거쳐 금강산의 고성에 발연사(鉢淵寺)를 짓고 그곳에서 불법을 전하다가 입적했다.
그러나 진표율사의 행적에 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백제유민의 한을 미륵신앙을 통해 반 신라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했다는 견해다.
이는 익산의 미륵사의 미륵사상을 통해 신라 귀족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범상종의 미륵신앙과
달리 옛 백제 땅에서 점찰계법을 통해 대중교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훗날 이상사회를 이끌
구세주를 기대하는 신앙으로 발전하여 후백제 견휜으로 이어진다.
둘째, 미륵신앙을 통한 백제유민의 저항운동이 심해서 진표율사를 앞세워 백제유민을 회유하려했다는 것이다.
이는 백제유민출신인 진표가 경덕왕에게 계를 주고 엄청난 시주를 받았는데 정책적인 배려가 아니고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대목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진표율사에 대한 신라와의 밀착관계에 대한 평가보다, 종교현상을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안부(12;55)
눈앞에 커다란 암봉이 보이는데 지장봉이다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지장봉(地藏峰:274m:13:05)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지장보살의 두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렀나?
우측으로 정상을 향해서 오르는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가 이채롭다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의 성불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므로 지장보살은 성불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장보살은 그 신력(神力)과 자비와 지혜와 변재(辯才)가 불가사의한 보살이며, 모든 악업에서 해탈하게
하는 보살이며,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살이다. 따라서, 신라시대 이후로 이 신앙은 가
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신봉되었고, 특히 죽은 사람을 위한 49재(齋) 때에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는
보살로 받들어지고 있다
습지처럼 구시골 너머 부안댐이 보이고 댐 뒷쪽으로 쌍선봉과 선인봉, 옥녀봉이 보이고
월명암이 저 어이쯤 있겠지...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 겹겹히 쌓여 높고 깍아 지른듯
하며 바위와 그득하다고 하였고, 티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도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라고 묘사하고 십승지의 하나로 꼽았다
삼국유사에는 ‘백제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한 것이다’ 기록되어 있고
변산은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능가산(楞伽山), 영주산(瀛州山), 봉래산(蓬來山) 등 으로 불리웠다
쌍선봉 근처에 있는 월명암은 변산팔경중 제5경으로 월명암 뒤에 있는 낙조대에서 황해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엄한 낙조의 장관인 서해낙조(西海落照)인 월명암은 신라의 부설거사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 절에 전하는 ‘부설전’에 의하면 부설거사의 속성은 진광세, 신문왕 때 사람이다.
친구들과 오대산으로 수도하러 가다 김제 구씨 집에 머무른 것이 사단이었다.
벙어리였던 그 집 딸, 묘화가 부설을 보고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이 인연으로 부설은 묘화와 부부가 되어 등운과 월명 남매를 낳았다.
이후 부설은 불도를 닦기 위해 변산으로 들어와 암자를 짓고 딸 월명과 등운
그리고 부인 묘화를 위해 각각 등운암·월명암·묘적암을 지었다.
이곳에서 가지고 온 빵과 우유로 점심을 대신하고 청림마을로 향한다
지나온 쇠뿔바위봉의 모습
새재(13:35)
청림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가 있는데 고개 이름이 새재란다
그렇다고 문경새재처럼 새도 넘기 힘들어하는 고개도 아닌데 새재라니...
아마도 새재(細峴)이 아닐까...조그만 고개라는 뜻인듯 하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야생화를 만나러 청림마을로 내려선다
상수도 보호구역 말뚝을 지나면서부터 좌측으로 야생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야생화가 분홍색 노루귀이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꽃을 보기위해서울에서 불원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까지 오지 않았던가...
나뭇잎을 밀어내고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분홍색 노루귀
쇠뿔바위봉에서 같이 걸었던 이 분도 야생화 촬영에 정신이 나가 있는 듯 하다
고와도 너무나 곱다
노루귀(꽃말:인내)
숲에서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은 볼 수 없는 꽃으로 노루귀는 키가 작고 바닥에 바짝 붙어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래도 살피고 가야 곱디고운 색감의 작은 꽃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하얀 털을 뒤집어쓰고 꽃대가 나오면 꽃잎과도 같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질 무렵 잎이 나오는데
말려있는 모양이 노루위 귀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귀는 분홍색, 백색, 청색이 있으나 청색 노루귀는 참으로 귀한 편이다
가끔은 수줍은 척, 가끔은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야~~~들은 대가족이다
야는 수줍은 색씨처럼...
때로는 요염하게...
애기와 엄마처럼 보이기도 하고...
노루귀에는 벌써 꿀벌들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백색 노루귀도 간간히 보인다
노루귀 탐방을 끝내고 청림마을로 내려선다
청림마을에서 바라본 쇠뿔바위봉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청림마을...마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백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자연마을로는
노적동, 들독거리, 서운, 지금골 등이 있으며 노적동은 뒷산이 노적과 같으므로 욕심이나 고집을 부리면
해가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들독거리는 마을 앞에 밑이 들려 있는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서운은 마을 앞으로 백천내가 지나간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지름골은 지형이 옥등괘벽형이라 하여 이름 붙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보리밭이 있다... 마을 우측으로 있는 변산바람꽃 군락지로 향한다
변산 바람꽃 만날 가는길에 벌통을 만나는데 날씨가 따뜻한 곳이라서 그런지 벌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보리밭을 지나니 예쁜 백색 노루귀가 보인다
앙증맞은 노루귀
변산 바람꽃
변산반도에서 맨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변산 바람꽃이란 지명이 붙게 되었지만
서식지는 아주 제한적이며, 조건이 잘맞는 지역에서만 자라면 지금은 향일암이
있는 여수 돌산도에 그 개체수가 아주 많은 편이다
미나리 아재비과에 속하는 변산바람꽃은 여러해살이 풀로서 바람꽃은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라는
들꽃으로 주로 산이나 숲에 많이 자라며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인데,
변산 이외에도 지리산과 마이산, 한라산에도 자라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내륙 지방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개체 수는 적다.
낙엽수림의 가장자리에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습한 지역과 반그늘 또는 양지쪽에서 자란다.
키는 5~8㎝가량이고, 잎은 길이와 폭이 약 3~5㎝의 크기이다.
잎은 5갈래의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다
바람꽃은 대개 이른 봄에 피는데, 변산바람꽃 역시 복수초와 함께 봄을 부르는 대표적인 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2월에도 핀다는데, 너무 일찍 피어서 벌써 봄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이다.
아직 겨울이 한창인 숲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꽃을 피우므로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꽃의 크기는 약 10㎝가량이고, 꽃자루는 1㎝이며, 색깔은 흰색이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데, 보통 우산처럼 생긴 꽃받침 5장이 꽃잎과 수술을 떠받들 듯 받치고 있다.
꽃자루 안에는 가운데 암술과 연녹색을 띤 노란색 꽃이 있다.
열매는 4~5월경 갈색으로 달리고 씨방에는 검고 광택이 나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다.
변산바람꽃 5남매
작년엔 사자동에서 촬영을 했는데 이곳에서 개체수가 그리많지 않아 사자동으로 가려고 했는데
사자동에 갔다가 오신분의 얘기는 사자동은 아직 멀었다고 하여 이곳에서 서울로 가기로 한다
앙증맞은 넘들
남쪽에서만 보인다는 상산나무도 보인다
변산 바람꽃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고로쇠 수액을 채치하는 곳이 보인다
청림마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청림마을 버스 정류장(15:10)
청림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15시 10분 버스시간표를 보니 사자동에서 나오는 버스가
16시 20분이니 1시간 10분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를 한다
5분쯤 지났을까... 아들과 산행을 하고가는 분이 차를 세워 주신다
자기는 부안읍까지는 아니고 상서면사무소까지 가는데 거기까지 태워주겠단다
상서면에 도착하니 건너편에 부안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는 것을 그 분께서
크락숀을 눌러 버스를 세우 주시고는 잘 가시라고 하면서 가시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부안터미널(15:40)
터미널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건너편에 있는
분식집을 가면서 마트에서 소주한병 사서 오뎅과 호떡 2개로 점심을 해결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16시 10분 부안발 → 서울행 버스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