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강(백운)지맥(終)

섬강(백운)지맥 제4구간 -비두내미재에서 남한강/섬강 합수점까지

범여(梵如) 2018. 4. 28. 21:07

☞ 산행일시: 2018년 04월 28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짙은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5.4km / 6시간 40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비두냄이재-묘지-392봉-409.7봉-445봉-437.4봉-안부-무명봉-상봉산 갈림길

                 상봉산-다시 갈림길-암봉-만디고개-369.2봉-402봉-422봉-350봉-419봉

                 무명봉-404봉 갈림길-박수고개-350봉-무명봉-부문재-묘지-임도-260.1봉 갈림길

                 260.1봉-다시 갈림길-302봉-황수골 안부-긴경산-무명봉-안부-넓은공터-안버덩

                 307.1봉-안부-수영봉-무명봉-안부-NO152송전탑-소리개재-안부-160봉 갈림길

                 안부-243봉-갈림길-흥원창-남한강/섬강 합수점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부론면

 

3월 중순 이후부터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자꾸만 몸뚱아리에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하기사 만 9년을 넘게 여행이나 외국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매주 베낭을 메고 나갔으니

몸뚱아리가 꼬라지를 부릴만도 하지...증상은 초반 30분정도 가슴이 찢어질 정도의 통증을

느끼다가 잠시 후에 씻은듯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다가 10km가 넘어서는 지점부터는

오르막 코스를 만나며 갑자기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면서 오르막을 오를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동행한 동료산꾼들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치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고,예전에 없었던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진다...지지난주 보현지맥길에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 후배인 수헌아우님이

선배님 아무래도 병원을 한번 가봐야 될 것 같아요 한다 

내가봐도 그래야 되겠다 싶어 지난주에는 산행을 포기하고 월욜날 종합 검진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검사중에 좌측 폐 상단에 이상한 물체가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실시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하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하는데 좌측 폐 윗쪽에 주먹만한 종양이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수술을 해야고 한는데 기분은 졸라 찝찝하다

거기다가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의사들은 기분 나쁘게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건 그렇고 지난 한주에 산에 가질 않았더만 몸이 찌뿌등하여 미치겠다.

금욜날 저녁에 바람 친구가 찾아와서 삼겹살에 소주 한병을 하고 집에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지난번 걷다가 컨디션 저하로 포기한 제천(천등)지맥 나머지 구간을 혼자 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 동서울터미널로 가기위에 선릉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뭔 일인지 예정 시간보다

15분이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원주로 가서 귀례가는 버스를 타고 제천(천등)지맥 구간 접속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적으로 맞질않아 포기를 하고 한 구간 남은 섬강(백운)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위해 문막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06:35발 동서울 → 문막 버스표

06시 35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문막으로 향하는데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도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혼잡하여 예정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문막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문막 버스 정류장(07:50)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오늘 들머리인 비두내미 고개로 향한다

가는길은 미세한 먼지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도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가 여자분인데 비두내미 고개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나중에 안 내용인데 우리 산꾼들이 말하는 비두내미 고개와 현지 주민들이 알고있는 비두내미 고개는 다르다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는데 자기들은 이곳은 어딘지 모른다고 한다(택시비 14,000원) 

나를 비두내미 고개까지 태워주고 가는 택시

비두내미재(碑頭峙:290m:08:20)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와 문막읍 비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비두네미, 비두리재라고도 한다

절(거돈사) 앞에 비석이 있다가 부론면 법천사로 옮겨 갔는데 비두를 옮겨갔다 (넘어갔다)고

비두넘이>비두너미>비두네미가 되었다

산행을 시작하다(08:25)

오늘 산행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걸어야 할 듯 싶다

제천(천등)지맥 산행을 하려고 제천(천등)지맥 자료와 공부만 하고 왔는데 지하철의

연착으로 인해 원주에서 귀례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이 맞질않아 갑자기 산행구간을

바꾸어서 섬강(백운)지맥 자료는 전혀 없다

고개에서 철계단을 올라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인공수로로 올라서니 두릅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 따갔다

그래도 막걸리 몇통 먹을만큼의 두릅이 보이길래 베낭을 내려놓고 초반부터 두릅 수확에 나선다

인공수로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묘지(08:35)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각시붓꽃이 범여를 반긴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니 등로는 맞는 모양이다
392봉(08:45)비두내미 고개에서 이곳까지 치고 오른 다음에 우측 능선으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지독한 미세먼지 탓인지 목이 상당히 아픈 느낌이지만 우려했던 체력저하는 오질 않는다

둥굴레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392봉에서 능선에 올라서서 계속해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알록 제비꽃(꽃말:나를 생각해 주셔요)

어떤 꽃은 잎이 꽃보다 아름다워서 도대체 잎인지 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알록제비꽃 잎도 알록달록하니 아주 예쁘다. 그래서 이름도 알록제비꽃이라고 하는데

알록제비꽃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양지 혹은 반음지의 물 빠짐이

좋은 곳에 잘 자라며, 키는 5~10㎝이고, 잎은 길이와 폭이 각 2.5~5㎝로 표면은 짙은 녹색이다.

잎맥을 따라 흰색 무늬가 있으며 뒷면은 자주색이고, 잎의 색에 따라 청알록제비꽃이 분리되기도 하지만 요

즘에는 나누지 않는데, 청알록제비꽃은 앞면에 흰색 무늬가 약하고 뒷면은 푸르다.

초기에는 이렇게 구분되지만 꽃이 진 여름이 되면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자라고 있는 곳의 여건에 따라 약간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즉, 일조량이나 일조 시간, 기온, 토양 성분, 수분 등에 따라 변신을 하는 것이다.

제비꽃만큼 새로운 환경에 맞춰 그 형태와 빛깔을 바꾸는 식물도 없을 것이다.

제비꽃은 종류만도 60여 가지나 되는데 꽃은 5~6월에 자주색으로 피는데, 몇 개의

꽃줄기가 잎 속에서 나와 끝에 꽃이 1개씩 달린다. 열매는 8~9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린다.

제비꽃과에 속하며 청자오랑캐, 청알록제비꽃, 알록오랑캐, 얼룩오랑캐라고도 한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간간히 보이는 고사리...고사리 꺽는 재미가 쏠쏠하다

409.7봉(08:50)

계속해서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앙증맞은 바위도 만나고...

445봉(09:00)

맞은편의 봉림산은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둥글래 幼生

낙엽이 수북한 등로는 멧선생의 놀이터인지 등로를 마구 파헤쳐놨다.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암릉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437.4봉(09:08)

등로는 무쟈게 좋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이른봄이라 도둑으로 몰릴 걱정은 없다

안부(09:15)

무명봉(09:17)

상봉산 갈림길(09:23)

나홀로 산행이라 남에게 민폐를 끼칠 이유도 없고 오늘은 산행 거리가 짧아 그리 멀지 않은 상봉산으로 향한다

상봉산(434.4m:09:27)

원주시 문막읍 비두리와 궁촌리 부론면 손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형도에 나오는 공식 지명은

아니고 이 지역 사람들이 상봉 또는 상봉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다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직진하면 비두리(碑頭里)가 나오는데 문막읍 최남단에 위치한 비두리는

구포골, 뒷말, 방아실, 봉두개울, 비두골, 사흥, 선돌, 앞말, 용곡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이 지역에 절이 있었는데, 절 앞에 비석이 있다가 부론면 법천사로 옮겨갔다. 

 

비두(碑頭:비석의 머리)가 넘어갔으므로 비두넘이, 비두네미, 또는 비두골이라 하다가 후에 비두리로 부르게 되었다. 

옛날부터 질이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나와 비석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부론면 정산리에 소재했던 거돈사에 세워진

원공국사승묘탑비(碑:보물 제78호)의 비갓도 이곳에서 채석된 암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상봉산 정상의 모습지맥길에서 약간 떨어진 이곳에 백두사랑의 이대장이 산패를 걸어놨다...착하게 사는구먼

판독할 수 없는 상봉산 정상 삼각점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합수점으로 향한다(09:32)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우측으로 약초재배지라고 하며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과 노끈으로 줄을 쳐놨다

신선들의 공깃돌(?)

암봉(09:35)

간간이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자료도 없고 지도도 없이 걷는 범여에겐 더 없이 고맙기만 하다

경고판...갈 길이 바빠서 들어갈 일이 없소이다

만디고개(300m:09:40)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우측)와 부론면 손곡리(좌측)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좌.우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주 뚜렸하다...아직도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모양이며 좌측 능선에는 벌목을 하고

새로운 수종으로 조림을 해놨는데 나무 이름은 모르겠다만디고개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내고향 경상도에서는 높은데 있는 곳을 만뎅이 또는‘만디’라고 하는데 높은데 있는 고개라는

뜻은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궁촌리로 이어지는 만디고개의 모습

원주시 문막읍에 있는 궁촌리( 宮村里)는 궁말, 동막골, 바리미, 샛담, 서들, 섬부, 안담, 탁개, 한밭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고종()의 순빈() 엄씨의 경우궁()이 있었으므로 궁말 또는 궁촌으로 불려지다 궁촌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후백제 견훤이 여기에 토성을 쌓고 궁실을 지었다고 해서 궁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1989년 10월 이곳에서 한 농부가 범종(흥법사종)을 발견하여 이곳이 궁터임을 추측하게 하였다

만디고개에서 간벌을 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민들레의 종류가 하도 많아 아리까리하다...토종 민들레같다

양지꽃(꽃말:사랑스러움)

치자연(雉子筵)·위릉채(萎陵菜)·소시랑개비라고도 하며 붉은빛을 띠는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땅을 기면서 자란다.

풀 전체에 가늘고 하얀 털이 많이 나 있다. 줄기가 중간에서 절단되어도 그 부위가 곧 회복되어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돋을 정도로 재생력이 매우 강하며 양지꽃을 뱀딸기와 혼동하기 쉬운데 뱀딸기의 꽃받침은 꽃보다

큰 반면에 양지꽃의 꽃받침은 꽃보다 작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유사종으로 작은 잎이 3장이면 세잎양지꽃, 바위틈에서 자라고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크면 돌양지꽃,

잎이 손바닥 모양이면 가락지나물, 잎이 길게 갈라지면 딱지꽃으로 구분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한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손곡리는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뿌옇게 보인다

벌목지를 지나 숲이 있는 등로에 들어선다

369.2봉(09:52)

서레야 선생 이 분은 이곳을 만디봉이라 적어놨다

갑자기 등로는 엄청나게 좋아진다

가야할 긴경산은 미세먼지에 갇혀있고...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곳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고사리 수확에 여념이 없다

잠깐 사이에 꽤많은 고사리를 수확한다

402봉

산악오토바이가 다니는지 등로는 마구 파헤쳐 있다

422봉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산꾼 범여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한다

350봉

이곳은 산악오토바이의 피해가 훨씬 심하다

다시 내리막길

419봉

무명봉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다시 오르막길

404봉 갈림길

404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독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구간이다...좌측을 살펴서 내려가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만난 현오님의 시그널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수렵꾼들이 버린듯한 탄피들이 보이고...

다시 잡목이 무성한 지대를 지나는데 두릅나무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박수고개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와 문막읍 후용리을 넘나드는 고개로 손곡리 방향에는 뚜렸한 임도가

있고 그 아랫쪽에는 엄청나게 큰 채석장에서 나는 산을 갉아먹는 먹는 소리가 요란하다 

손곡리 유래를 찾아보면 “알산골에서 별간골을 거쳐 문막 후용으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했고,

별간골은 “알산교에서 박수고개로 넘어가는 긴 골짜기를 말한다” 했으니 여기가 박수고개가맞는듯 하다

박수고개에서 오르막길은 잡목이 우거져 등로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350봉

350봉에서 오늘 산행후에 처음으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등로는 낙엽이 수북하고 좌측 능선 아랫쪽에 있는

채석장에서는 돌을 깨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고막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무명봉

급한 내림길에서 만난 이 대장의 흔적

잠시후에 2차선의 도로로 내려선다

부문재(富文峙:232m)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와 문막읍 후용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3번 군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원주시내로 이어지는 55번 버스가 지나가는지 정류장이 있고 손곡리 표시석과 도로개설 기념비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1965년 5월5일 개통당시 박유식 강원도부지사가 부문재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부문재보다는 후용고개라고 부른다고 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데 문막읍 후용리 표지판은 잡풀에 가려져 있다.

버스 정류장 표지가 있는 뒷쪽으로 오라서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부문재 버스 안내판

부론면 면계 표지판

원주시 부론면 동북쪽에 위치한 손곡리(蓀谷里)는 골짜기와 들이 대부분이며, 자연마을로는 귀만, 내산동, 신촌,

송정, 서지, 오곡, 백자동 등이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를 당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하고 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손위실()이라 부르던 것이,

이것을 한자로 적으면서 '위'가 탈락되어 손곡 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법천사지와 거돈사지가 있는 것에서,

이곳이 옛날에 왕성한 불교세력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그리고 섬강변에 있는 주말농장에는

주말과 여름 휴가철을 이용하여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손곡리는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하고 유폐되어 잠시 머물렀다하여 손위실(遜位室)이라

 하였으며 이후 손곡리로 지명이 정착되었다. 이달과 허균 남매, 정약용, 유방선 등이 찾아들었으며, 임경업이 태어나고

이름도 벅찬 역사속의 인물들이 집산했던 역사의 복판이었다.

동악명산 치악의 정맥과 남한강의 정기는 이달과 허균의 정신을 기르더니 오늘날 박경리, 김지하,

지학순 등에게로 이어졌으며, 예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를 버텨온 도도한 반골과 문재의 땅이라 할만하다.

장승 뒷쪽의 급경사로 올라서니...

묘지

묘지로 올라선 능선에서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이곳에서부터 행정구역은 문막읍을 벗어나 온전히 부론면으로 들어선다

우측 아랫쪽은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계속되는 벌목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서니...

임도

벌목지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벌목지 좌측 아랫쪽으로는 부문재에서 손곡리로 이어지는 13번 군도가 보인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부론면 손곡리의 모습

가야할 260.1봉이 보인다...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지나온 채석장의 모습

260.1봉 갈림길

260.1봉 삼각점(판독불가)

260.1봉

백색 철쭉도 만나고...

다시 갈림길 긴경산으로 향한다

등로는 아주 좋다

갈림길 좌측 손곡리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인다.

각시붓꽃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또 다시 벌목지가 나오고...

벌목지를 따라서 곡예하듯이 지맥길을 이어간다

302봉

우측으로 꺽어져 긴경산으로 향하는데 급하게 내리막길로 떨어진다

황수골 안부(潢遂谷)

부론면 손곡리 양지말 북쪽으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광명터 뒤에 있는 골짜기로 긴경산 밑이 된다.

황수곡(潢遂谷)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다시 긴경산으로 오르는 길은 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이든다

지명의 유래는 크다는 의미의 한+숲+골>한숲골>항숫골>황숫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항>황은 황골과 같은 이치이다

코가 땅에 처박듯이 힘들게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힘듬을 보상한다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긴경산(351m)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와 노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경경산, 경정산(敬亭山), 청룡봉이라는

여러개의 지명이 있으나 지명의 유래를 알 길이 없고 정상에는 헬기장에 말뚝처럼 긴 삼각점이 뽑혀져

딩글고 있으며 가야할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햇빛이 무척이나 따갑다...서둘러 다시 길을 나선다

뽑혀져 딩굴고 있는 말뚝형 삼각점

가야할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상당히 의문이 생긴다

긴경산 정상에서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한결같이 북서쪽으로 달려 있는데 합수점은 남서쪽으로 있으니?

오늘은 제천(천등)지맥길 걸으려고 준비했던 차에 백운지맥 지도와 자료가 없으니 난감하다

하는 수 없이 이 길을 먼저 지나갔던 산으로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SOS를 요청한다

이 분의 생각도 나와 같은 느낌이다...이 구간은 참으로 난감하다...지난 겨울에 걸었던 자개지맥처럼...

예전의 선답자들은 북서쪽의 등로를 이용했으나 최근의 맥꾼들은 남서쪽 루트를 이용하는 듯 하다

북서쪽으로 내려서니 물탕골이란 팻말이 땅에 떨어져 있다.

산으로님과의 통화가 끝난 후 대부분의 선답자들 시그널이 달려있는 북서쪽 루트를 버리고 남서쪽 루트로 향한다

초반에는 등로가 보이지 않았으나 조금을 더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

긴경산 이후 처음으로 무한도전팀의 시그널을 만난다.

무명봉

안부

참으로 곱다

넓은 공터

넓은 공터에는 앙증맞은 돌탑 하나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손곡리의 전경
저 손곡리에는 조선시대에 김삿갓에 비유될 만큼 유명한 이달(李達,1539∼1612)이 정착한 곳이다

이달(李達,1539∼1612)은 조선중기의 시인(詩人)으로 본관은 홍주(洪州, 홍성), 자(字)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다.

부정(副正) 이수함(李秀咸)과 홍주(洪州)의 관기(官妓) 사이에서 서출(庶出)로 태어나 질곡의 삶을 살았다.

이달은 비록 서얼의 신분이었지만 허봉(許篈), 양사언(楊士彦), 정철(鄭澈), 이이(李珥) 등 당대의 유수한 사대부들과 교류가 잦았다.

당시 조선조의 시풍은 주자학적 문예사조로 논리적이고 주지적인 송시풍(宋詩風)이 주류였다.

 

그도 처음엔 소동파(蘇東坡)에 심취했으나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의 영향으로 낭만과 서정성이 짙은 당

시(唐詩)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당시는 사화와 당쟁 그리고 임진왜란이 점철되며 정국이 매우 어지러웠던 때로,

현실에 대한 갈등이 복고적이고 온건한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인간감정의 자연스런 발로를 노래한 당시(唐詩)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기녀 홍랑의 연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 가사문학의 효시자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 이달과 더불어 그런 경향을 지닌 대표적인 시인들로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부른다.

이들은 가까이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었으며 이달은 그중 우두머리로 꼽힌다

 

흔히 그를 김삿갓(金炳淵,1807~1863)과 비교하곤 한다.

남다른 두뇌와 시재(詩才)를 지닌 그가 울분을 달랠 수 있는 길은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뿐이었다.

김삿갓은 죄인의 자손이라는 죄책감과 할아버지를 비난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지만,

이달은 서얼 출신이라는 제도의 얽매임 때문에 방황의 길을 걸었다.
이달은 떠돌이 생활로 울분을 달래고 시를 지어 세속사를 잊고자 했다.

잠시 원주시 부론면 손곡에 들어와 한때를 살았으므로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그의 시는 신분제한에서 생기는 한(恨)과 애상(哀想)을 기본정조로 하면서도 따뜻하게 무르녹았다.

근체시(近體詩) 가운데에서도 절구(絶句)가 뛰어나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조선시대의 오언절구(五言絶句) 가운데 대표작으로 그가 지은 '별이예장(別李禮長)'을 꼽았다.

1725년 정진교(鄭震僑)의 상소(上疏)에서는 성종(成宗) 이후의 서얼(庶孼) 가운데 걸출한 인물로

박지화(朴枝華), 어숙권(魚叔權), 조신(曹伸), 이달(李達) 등이 거론되었다. 그는 신분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신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시의 세계에서만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안버덩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버덩말 안쪽에 있는 마을로 양삿 동쪽 시장 입구에 자리를 하고 있다.

버렁말이라고도 하며 지명의 유래는 남한강의 범람으로 이루어진 퇴적층 위에 발달된 버덩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버덩말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만 다니는 길인가

다시 무명봉으로 올라서니...

뜻을 알 수 없는 속등이란 팻말이 보이고...

307.1봉

307.1봉에서 내려서니 너럭바위 표지판이 있는데 바위는 보이질 않는다...내가 잘못봤나?

병풍바위라고 써있는 표지판도 깨진 채 나딩굴고 있지만 바위는 보이질 않는다

이걸 병풍바위라 부르나보다

가뭄에 콩나듯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안부

수영봉(守英峰:283m)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와 흥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너럭바위가 있고 백운지맥의

합수점이한 눈에 보일 정도로 전망은 좋으나 짙은 미세 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수양봉이라고도 부르며, 지명의 유래는 신선들이 와서 바둑을 두고 놀았는데 지금도 바둑판이

그려진 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떨어진 소나무 잎사귀 탓인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또 다른 유래는 법천천가에 절벽이 있는데 우뚝 솟은 바위산에서 수양하기 좋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수영봉 아랫쪽에 남한강전망대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수영봉에서 바라본 섬강(백운)지맥 합수점의 모습합수점 너머로 성지지맥 합수점도 보인다

오월이 오면


오월이
잠시 내곁을 스쳐
지나가도

기다리는 내님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 한마다
못하고

떨어지는
빨간 장미꽃을 보면
내 마음은
스산해 지는구나~~~

세월아 세월아~~~
가는 니가 더 밉구나,   
  

正修 김찬옥님의 詩

갈림길

이걸 병풍바위라고 하는 건 아닌지?

무명봉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성지지맥 끄트머리의 모습

안부(13:32)

능선 좌측 아랫쪽으로는 소리개재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NO152송전탑(13:34)

NO152송전탑을 지나니 우측으로 묘지 2기가 보인다

묘지를 조금 지나니 조금전에 보였던 임도가 보이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소리개재(14:38)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아채마을과 매곡마을 동쪽 소리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로 등로는 뚜렸하고

소리마을쪽으로는 넓은 임도와 민가 한 채가 보이고 폐타이어를 비롯한 건축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다

맥꾼들은 소리개재라고 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서리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지명의 유래는 항상 응달인 지역이어서 이 부근에서는 서리가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고 한다.
'서리'는 '사이'의 옛말이다.

골과 골 사이에 있거나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을 때도 '서리'라는 이름을 쓴다.

재를 가로질러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좌측 아랫쪽 임도 옆에는 폐가처럼 보이는 민가 한채가 보인다

안부(14:43)

등로를 헤치고 가는데...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민가가 보인다
160봉 갈림길(13:45)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등로가 아예 없는 곳을 조금 내려오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를 이장한듯한 넓은 공터도 보인다

안부(13:55)

급한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수영봉의 모습

안부에서 능선 갈림길까지 오르는 길은 땀깨나 흘러야 오르를 수 있는 급경사이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능선을 만나 마지막 봉우리인 243봉으로 오르는데 산불감시요원이 개 한마리를 데리고 내려오면서 나보고 혼자 다니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 위험하게 혼자 다니냐고 하면서 항상 산을 조심하라고 한다...알았심더

243봉(14:05~14:22)

섬강(백운)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243봉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좌측으로는 부론면소재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나있고 면소재지와 섬강(백운)지맥 합수점이 보인다

243봉 정상 삼각점(△엄정301 / 1989재설)

부론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

산불감시요원들이 산패를 다른곳에 설치해놨다
243봉에서 바라본 합수점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지 목이 상당히 아프다... 산불감시요원에게 물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하니

생수 한병을 건네주면서 자기가 앉는 의자를 주면서 쉬었다 가라고 하여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243봉에서 바라본 부론면

부론면(富論面)은 강원도 원주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에는 현계산이 있으며, 서쪽의 경계에는 섬강이 흐른다.

『광여도』, 『여지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에는 부론면이 표시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부론면()은 일리() · 분일리() · 이리() · 삼리() · 사리() · 오리() · 육리() ·

칠리()의 8개 리를 관할하였으며『여지도서』에는 관할 리의 위치와 호구수, 인구수가 수록되어 있다.

 

1895년 충주부 원주군에 소속되었다가 1914년 6개 리로 개편되었고 1955년에 원주시와 원성군으로 분리되면서

원성군에 소속되었고, 1965년 단강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에 원성군이 원주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원주군에

속하다가 1995년에 통합 원주시 부론면으로 조정되었다.

 

부론면은 고려 시대에는 12조창의 하나인 흥원창이 있어 경제활동의 중요한 곳이 되었다.

여기에 여러 고장의 사람들이 모이면서 언론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에 '말이 많이 오가는 곳',

즉 '부론()'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 의하면 부론면이란 지명은 조선 말에 3대 판서가 있어

정치에 식견이 많아 나라에서 정사에 풍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많고 이 사람들과 의논하여 고을 원이나 감사가 정치를 하

였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단강2리 부론동 골짜기를 부놋골 또는 부롯골로 부르는데

이는 이 동네가 옛날부터 보를 막아 논농사를 지었으므로 '보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부론은 '부+론'인데

 '론'은 논에서 나왔을 것이고 '부'는 '

imagefont

' 계통의 땅이름이다. '

imagefont

'은 밝다는 뜻이지만 같은 계통으로 '부리, 부루, 불, 벌'

등의 파생어가 있다. 따라서 큰 논이거나 들의 논 같은 의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여도』, 『여지도』, 『지승』,

『해동지도』에 흥원창이 나온다.

산불감시요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다시 길을 나선다

넓은 공터를 지나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갈림길(14:28)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 내리막길을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등로는 아예없고 김양호님의 시그널만 산꾼을 반긴다

무작정 내려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남한강 수변구역 말뚝이 서 있다

수변구역 말뚝을 지난 후 이곳에서도 등로는 상당히 난해하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창말마을쪽으로 내려갔지만

능선의 지세로 봐서는 직진길이 맞는 것 같아 난 직진으로 향한다

직진으로 내려서니 백두사랑 이 대장 시그널이 보인다

장뇌삼을 심어논 곳도 보이고...

무조건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인공수로가 나오고...

논으로 인해 섬강(백운)지맥 마지막 등로는 끊겨 버린 느낌이다

논두렁 가운데를 가로질러 합수점으로 향한다

합수점으로 가는 길

조금전 내가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흥원창(興原倉:14:55)
은섬포는 남한강과 섬강의 두물이 합수되는 지점으로 흥호리에 있는데, 원래 조선시대 원주목 부론면 지역으로

흥원창과 시장이 있었으므로 흥원창 또는 흥원장(興原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검단,

신촌, 성등, 월봉, 양호, 창촌을 병합하여 흥원창과 양호의 이름을 따서 흥호리라 하였다.

은섬포는 우리나라 12조창(漕倉)중의 하나인 흥원창이 있던 곳으로 조세미(租稅米)의 수송을 위하여 수로 연변에

설치하였던 창고로 강상 수송을 맡았던 수운창이고 이 조창제도가 완비된 것은 992년(고려 성종 11년)경이다.

흥원창은 원주, 평창, 영월, 정선, 강릉, 삼척, 울진, 평해군 등 지역의 조곡을 보관하고 수운을 통해 한양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횡성군 청일면 봉복산에서 발원한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은섬포는 양삿(양호) 앞강이 호수같이 넓고 깊어

흥원창 호수라는 뜻의 흥호리라 하였으며 세곡을 운송하는 평저선(平底船)을 접안하기에 좋은 곳이다.

평저선은 곡식 2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배로 흥원창에 21척이나 배치되어 있었다.

세곡운송을 위해 내륙수운이 개척된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에 닿기 위해서 은섬포를 떠난 평저선은

남한강을 따라 여주와 한양을 거쳐 서해로 나간 후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가 짐을 부렸다.

물길이 육로를 압도하던 시절 남한강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흥원창이 있던 은섬포는 물자와 사람이 들고 나던 곳으로 남한강을 매개로 역대의 수도인 개경, 개성, 한양을

강원 내륙으로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성계에 의해 부론면 손위실(손곡)로 유배를 온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황포돛배를 타고 은섬포에 내렸고, 손곡에 잠시 머물다 삼척의 궁촌리로 떠나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은섬포에 당도한 손님들 중에는 이달과 허균, 허난설헌과 지광국사, 양주 조안에 살고 있던 다산 정약용과 법천촌사의

맹주 태재 유방선도 있었다.

 

흥원포(興元浦)에 있는 옛 창고 건물은
가로지른 서까래 일자(一字)로 연했어라
봄철 조운을 이미 다 마쳤는데도
또 호탄전(護灘錢)을 강요하여 받아내누나

 

다산 정약용의 '강행절구(江行絶句)'에 보이는 흥원창의 모습은, 옛 창고 건물은 낡아 앙상하게 일자(ㅡ子)로

드러나 있고, 봄철에 이미 세곡운송을 마쳤건만 다시금 포구 사용료를 강제 징수한다는 것이다.

15세기에 김종직이 목도한 가흥창과 18세기에 정약용이 목도한 흥원창 민초들의 곤란한 현실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동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정인들이 뿌린 이별의 눈물이 그에 더해진 까닭이라면, 조세창이 들어선 남한강 포구들의

번영의 이면에는 민중들의 땀방울과 눈물이 강물에 보태졌으며, 그래서인지 남한강은 마르지 않고 누대로 은빛 비늘을

뒤척이며 옛 일을 말해주고 있다.

흥원창에 서 있는 안내판

이곳은 자건거 전용도로가 있다

흥원창 유래판

흥원창에서 바라본 섬강(백운)지맥 합수점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합수점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개치(開峙)나루터 방향의 모습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개치마을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으로 통하는 나루터를 배경으로 발달된 마을이다.

현재 부론면의 행정교육경제상의 중심지로 현재의 부론초등학교터에는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있었고

그 사이로 밀밭이 있었으며, 현재의 시장거리에는 인가가 없었다. 안말쪽과 골말 양삿쪽에만 집들이 있었고,

학교 앞 개치 나루터 언덕에 10 여호의 집과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 서쪽 울타리 밖으로 큰 길이 나 있어

소나무 밑에서 쉬어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남쪽 150여m 지점에 미륵불이 있었으나 일제시대 그 자리에 신사를 짓고 미륵불은 앞산으로 옮겼으나 1990년 여름에 도난 당해 그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예전에 중심 마을이었던 흥창이나 양삿에서 보면 동, 남, 북쪽에 높은 산악이 있었으므로 물자와 사람이 통하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하여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긴경산에서 수영봉, 243봉으로 해서 이곳 합수점까지 왔지만 예전의 맥꾼들은

앞에 보이는 저 마지막 봉우리(53봉)로 해서 지맥길을 이어온 분들도 많이 있었다

꼭 꼬집어 어느곳이 맞는지는 모르겠고 그건 각자 산꾼들의 재량에 의해야 할만큼 애매하다

이곳에서 좌측 아랫쪽의 합수점으로 내려선다

멸종위기 식물인 단양 쑥부쟁이 서식지인 모양이다

합수점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보인다

북쪽의 섬강쪽으로는 수문과 영동고속도로 섬강교가 보인다

남한강 / 섬강 합수점(15:05)

치악산 남대봉에서 출발한 백운(치악)지맥은 이곳에서 입수를 하고 나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어렵사리 산행을 끝내고나니 마음이 생각보다 홀가분하다.

낚시꾼은 고기를 잡는건지 세월을 낚는지 옆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

인증샷

 

興原舟中贈李達(흥원 배 안에서 이달에게 주다)....노수신(盧守愼:1515~1590)

 

遠岫轉佳氣(원수전가기) 먼 산에는 아름다운 기운 감도는데

長灣收日華(장만수일화) 긴 물굽이에 햇빛이 걷히는구나

親朋眼中一(친붕안중일) 친한 벗이 눈 속에 오직 하나 보인다

芳草席邊多(방초석변다) 향기로운 풀은 주변에 충만하구나

文會時無敵(문회시무적) 글 모임에 그(이달)의 시를 당할 자가 없고

淸談酒不謝(청담주불사) 맑은 이야기 속에는 술이 멀지 않도다

如何憂患在(여하우환재) 어찌 벼슬을 조심하겠는가

終日在風波(종일재풍파) 종일 흥원창 풍파와 함께 있으니

 

노수신이 허균의 스승인 손곡 이달(1539~1612)에게 준 詩

섬강(蟾江)은 길이 103.5㎞, 유역면적 1,478㎢. 한강의 제1지류로. 횡성군 청일면 율실리 봉복산(1,022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한 계천과 대관대천을 합류한다.

횡성읍을 관류하면서 금계천과 전천을 합류하고 원주시에 이르러 원주천·일리천·이리천을 합한다.

문막읍 일대를 지나면서 문막평야를 이룬 뒤 원주시 부론면과 여주군 점동면·강천면 경계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강(蟾江)이라 한 것은 이 강의 하류, 간현유원지 부근에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과거에는 원주·영월·평창·정선·횡성의 전세를 모아서 한양으로 운반하던 창고인 흥원창이 섬강의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섬강 하류에 위치한 간현유원지는 맑은 물, 넓은 백사장, 병풍을 둘러친 듯한 기암괴석 등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피서지이다

다시 자전거 길인 뚝방으로 올라와서 흥원창 쉼터로 향한다

합수점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가져온 빵과 우유를 마시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는데 20여분만에 지나가는 렉스턴RV차량이

여주시 강천면 소재지까지 태워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간매리 버스정류장(16:45)

젊은 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보니 핸드폰이 없어졌다

이걸 어쩌나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려서 음료하나 사먹고 전화기를 빌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전화기야 7년을 넘게 쓴 고물이지만 그 안에 입력된 전화번호만

1,000개가 넘는데 백업을 안해 놨으니...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더나 월말인데 큰 걱정이다...

차분하게 생각해서 조금전 내가 거쳤던 곳을 다 뒤져도찾을 길이 없어 일단 서울로 가기

위해 위해 여주 터미널로 향한다

여주 터미널(17:25)

여주발→서울행 버스표

긴장이 풀리니 배는 고파오고 시간도 있겠다 서울가는 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안쪽의 분식집에서

떡라면 하나를 시켜서 허기를 면하고 서울로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행여 범여와 인연이  있는 맥산꾼은 전번 좀 찍어 주셔요... 범여 손 전화010-5254-3321

오늘 산행의 전리품

오늘 산행중의 전리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