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 북(금적)지맥 제1구간 - 쌍암재에서 노성리 고개까지
☞ 산행일시: 2018년 05월 27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바람한 점 없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0.5km + 어프로치 0.52km / 약 9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맥산꾼 7명과 함께
☞ 산행코스: 쌍암재-보청북(금적)지맥 분기봉-460m봉-주차장가는 길-구룡산-무명봉-갈림길-515.3m봉
무명봉-445.9m봉-안부-392m봉-성황당 안부-480m봉-454m봉-378m봉-묵은임도-무명봉
갈티재-420m봉-복우실재-동물이동통로-무명봉-임도-405m봉-임도사거리-무명묘지
임도-445m봉-450.2m봉-청주한씨 묘-454.7m봉-인동장공 묘-수리티재-SK기지국
435.5m봉-안부-수리터널 위-안부-무명봉-안부-노성산-전주이공 묘-안부-503.7m봉
갈림길-무명봉-공터폐광터-국사봉 갈림길-갈림길-무명봉-무명봉-안부-561.5m봉
무명봉-안부-504.5m봉-고령신공 묘-노성라 고개
☞ 소 재 지: 충북 보은군 회인면, 내북면, 회남면, 수한면
요즘 이상하리만큼 모든게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러니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 모든게 멘붕상태인 느낌이다
어디 뚜렸하게 아픈데도 없는데 병원에서 괜스레 겁을주고 1주일에 3~4일씩 병원에
왔다갔다 와니 모든게 불편하다...정말 내가 아픈 것일까...自問自答을 해보지만 나도 모르겠다.
어제는 하도 답답하여 토욜에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도반들과 함께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성지순례를 갔다가 집에오니 저녁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일 빡세기로 소문난 금적지맥을 가려고 베낭을 꾸리니
평소에는 나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가족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니 미치겠다
아프고 힘들면서 왜 산엘 가느냐 집에서 쉬어라 등등 ... 모든걸 무시하고 베낭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양재역에서 맥산꾼들과 조우를 한 다음에 들머리로 향한다
보청 북(금적지맥(金積枝脈)개념도
보청 북(금적지맥)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구룡산 직전의 분기점(450m)봉
부근으로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과 수한면의 경계에 있음)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1.3km의 산줄기로, 450m봉 부근에서 시작하여 함금리에서 그 맥을 금강에 넘기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구룡산, 노성산, 국사봉, 거멍산, 덕대산, 금적산, 국사봉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아울러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불로천과 항건천, 거현천, 오덕천, 보청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고 있고, 이 산줄기의 서남쪽에는 대청호가 있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보청천 북쪽의 산줄기라 하여 보청 북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에서 7시에 출발하여 용인휴게소에서 진권아우와 조우를 한 다음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회인I.C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보은군 회인면과 내북면의
경계에 있는 들머리인 쌍암재에 도착한다
쌍암재(雙巖峙:290m:09:05)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와 내북면 법주리를 이어주는 57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창리에서
회인으로 넘어다니는 곳으로 주위에는 인삼재배 시설이 많이 보이는데 동저울 고개라
부르기도 한고 법주리 고개라고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고개 우측에 있는 쌍암리
능암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능암마을은 고바위(곰바위) 능암사에서 유래된 듯 용이 승천한 용둠벙, 장사가 나온 굴재,
삼천명승궁 웅암사 전설이 있는 회인군 동면 능암지를 1914년 일제때 쌍암리라 했다
어둠이골 장고개 두 골짜기 아우러진물 폭포되어 용둠벙에 떨어질 때 물보라위 일곱색깔 쌍무지개 능암 행운 정기로다.
주산 화봉뻗어 내린 기슭에 1500년대말 정주한 동래정씨 뒷말, 중뚬, 아랫말 집성촌을 이루고 충효인의에지 숭상한 곳이다
고개 좌측에 있는 내북면법주리는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東)이라
구룡산(九龍山) 아래의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부르던 것이 마을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10)
간단하게 단체로 인증샷을 찍고 쌍암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보청 북(금적)지맥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2011년 4월 24일 나홀로 한남.금북정맥 4구간을 걸으면서 왔던 길이니 7년만에 이 길을 온다
내가 다시 이 고개를 다시 올 줄 생각이나 했겠나... 그러나 미호(팔봉)지맥을 하려면 다시한번 더와야 할 것 같다
내고향 출신들이 만든 자굴산산악회 시그널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다
묵밭을 지나니 금적지맥 분기점이 보인다
좌측은 한남.금북정맥길이고 우측으로는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보청 북(금적)지맥길이다
숲으로 들어서 오르막을 500m 조금 넘게 걸으니 분기점이 나온다
보청 북(금적)지맥 분기봉(430m:09:20)
시작을 알리는 인증샷을 남기고...
460m봉(09:24)
보청 북(금적)지맥 분기봉에서 조금 올라서니 서레야님께서 쌍암봉이라고 코팅지를 붙혀놨는데 왠지 이 분의 지명은 믿음이 안간다
초반인데 등로는 아주좋다...나무로 만든 새집들이 많이 보이고...
주차장 가는길(09:25)
편안한 등로로 올라서니...
구룡산(九龍山:548.7m:09:35)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 용수리 · 법주리와 회인면 쌍암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여지도서』(회인)에 "구룡산(九龍山)은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와 주맥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후 『1872년지방지도』(회인), 『조선지지자료』(회인),
『한국지명총람』에 모두 표기자 변화 없이 구룡산(九龍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 산람욕 안내판만 있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구룡산 정상의 모습
인증샷
편안한 내리막길
조그만 무명봉을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
무명봉(09:42)
정상에 산불조심 안내판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주 여유롭게 지맥길을 걷는다
갈림길(09:47)
주차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우측의 넓은 임도로 알바한 시그널이 보이는데 지맥길은 직진이다
515.3m봉(09:48)
이곳부터 악명높은 보청북(금적)지맥길은 시작된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선답자들의 흔적은 보이나 등로는 잘 보이질 않는다
등로가 아주 애매하다... 골짜기를 지나 길이 없는 곳을 헤쳐 나간다
무명봉(09:58)
서북쪽에 등로가 열리는데 선두조들은 도망가버리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허벌나게 따라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초반부터 짧은 구간의 오르내리막이 엄청 심하다
안부에 떨어졌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초반부터 입에 단내가 난다
445.9m봉(10:10)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으나 마모가 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
올라온만큼 다시 급하게 내려가는 내리막길
등로에서 바라본 보은군 내북면 세촌리(世村里)의 모습
보은군 내북면에 있는 세촌리는 면의 서쪽에 위치한 산촌마을로 경주 김씨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리울, 바깥누리울, 안누리울 등이 있는데 느리울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한다.
바깥누리울 세촌리의 중심마을로 누리울의 바깥 쪽에 있는 마을이다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으아리꽃(꽃말:마음이 아름답다)
으아리는 위령선(葳靈仙)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령선이란 사위질빵을 의미한다.
하지만 왜 으아리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
만 꽃을 산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면 정말 ‘으아!’ 하고 소리라도 지를만큼 예쁘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낙엽 덩굴식물로, 양지나 반그늘의 토양 비옥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며,
키는 2~4m로 큰 편으로 잎은 마주나고 작은잎은 달걀 모양인데, 끝이 점차 좁아지고 밑은 둥글거나 쐐기 모양이다.
잎자루는 구부러져 덩굴손과 같으며, 양면에 털이 없고 끝은 밋밋하다. 6~8월에 길이 1.2~2㎝ 정도의 흰색 꽃이
원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열매는 9월경에 익는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며 고추나물, 선인초, 마음가리나물이라고도 한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약으로 쓰인다. 줄기를 따라 꽃이 피고 지면서 많이 달려 관상용으로 좋다.
원예용으로 개발되어 여러 빛깔의 품종이 있는데, 개량종은 ‘클레마티스(Clematis)’라고 한다.
이는 ‘마음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짙은 찔레꽃 향기가 산꾼의 코끝을 자극한다
안부(10:20)
392m봉(10:23)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간다
성황당 안부(10:25)
안부에서 올라서니 등로가 안 보인다... 선두는 좌측으로 질러 가지만 능선은 우측이 뚜렸하다
나와 진권아우는 우측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고...
다시 빡센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480m봉이 나온다
480m봉(10:58)
처음으로 선두를 만난다...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480m봉 정상에서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안부를 지나 다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454m봉(10:53)
정상에는 구들장으로 쓰이는 판석이 보인다
소나무가 빽빽한 능선으로 내려 갔다가...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서 좌측 사면길로
보이는 우회길을 마다하고 빡세게 올라서니...
378m봉(10:56)
세레야님께서는 378m봉을 갈티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다시 내리막길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숲으로 내려서니...
묵은 임도(11:02)
묵은 임도를 지나 1분으로 걸으니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11:03)
이곳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넓은 등로가 보이고...
좌측에는 이름모를 나무를 심어논 조림지가 있다
저 띠지인가?
지난주 핸드폰도 버스에 내려놓고 출력한 지도도 사무실에 두고 깜깜이도 걸었던 주왕(평창)지맥 구간
저 빨간 띠지를 따라서 무작정 가다가 1시간 10분간 대형 알바를 했던 슬픈 사연이 있었는데...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갈티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 토끼풀(꽃말:나를 생각해주오)
붉은토끼풀꽃·홍차축초(紅車軸草)·홍삼엽(紅三葉)·금화채(金花菜)라고도 한다.
전체에 털이 다소 있다. 줄기는 옆으로 굽거나 곧게 서며 가지가 갈라진다. 방향성이 있다.
토끼풀과 비슷하나 줄기에 퍼진 잔털이 있으며 꽃자루가 거의 없고 꽃턱잎이 없는 점이 다르다.
사료로 쓰기 위해 심다가 퍼져 나가 야생종으로도 자라고 있는데 관상용·밀원·사료·퇴비·약용으로 이용된다.
다만 작은 꽃의 통이 길기 때문에 밀원 식물로 적합한 편은 아니다.
온포기의 수명이 짧으나 뿌리는 깊게 들어가는 식물 중의 하나이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한다
갈티재(葛峙:11:08)
보은군 회인면 갈티리(葛峙里)에 있는 고개로 시원하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예전이 칡이 많이 나와서 붙은 지명이란다
갈티리는 회인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오봉산, 서쪽에 노적봉 등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회인천이 흐르는데 자연마을로는 갈티 등이 있다. 갈티는 갈티리의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칡이 많은 고개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부무골은 작은 노적봉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는 불무형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좀씀바귀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들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근경이 갈라져 옆으로 벋으면서 번식하는데 근경에서 어긋나는 잎은 길이 7~20mm, 너비 5~15mm
정도의 난상 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5~6월에 피는 두상화는 지름 2~2.5cm 정도로서 황색이다.
수과는 길이 3mm 정도의 좁은 방추형으로 날개가 있고, 관모는 길이 5mm 정도로서 백색이다.
‘벋음씀바귀’와 달리 전체가 소형이고 총포는 길이 8~10mm 정도이고 잎은 난형이며 작다.
봄에 뿌리와 어린 싹은 식용한다. 조경용으로 많이 이용하며 잎과 어린순을 생으로 먹거나 데쳐서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뿌리째 캐서 무치거나 김치를 담기도 한다
수레국화(꽃말: 행복감)
수레국화를 센토레아라고 부르는데 꽃이 진한 청색이며 5-6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 핀다.
화단에 심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흔하지 않고 요즘 새로 난 길 경사면 녹화용으로 종자를 뿌릴 때(seed spray) 종종 섞어 뿌린다.
꽃은 진한 청색으로 키가 60cm 내외이며,도로변 경사지 녹화용으로 흔히 이용된다. 꽃대가 곧고 꽃 달림이 좋아
꽃꽂이용으로도 재배되며, 화단용으로 정원에 모아심기 해도 보기좋은데 꽃이 청색,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등
많은 품종이 나와 있으며 우리나라엔 청색과 분홍색이 주로 쓰인다
도로를 따라서 가도 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통 산꾼인데...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른다
수로를 따라서 오르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잠시 후에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420m봉(11:17)
420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온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최근에 조성한 듯한 순흥안씨 가족묘가 있다
묘지를 지나 복우실재로 내려선다
복우실재(11:25)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와 갈티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맞은편에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근처에는 보은군의 특산물인 대추밭이 많이 보이고 좌측의 좁은도로로 복우실 마을 가는 길이다
회인면의 동쪽에 위치한 부수리(富壽里)는 부수봉이 우뚝 서 있고 중앙으로는 회인천이 흘러 하인천과 합수한다.
미곡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바깥모산(地山), 안모산(種山), 바락고개(發花恃), 숲거리, 우무실,
향교골(행교말, 校洞) 등이 있다. 바깥모산은 옛날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이 그 바깥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모산은 큰 못의 안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북처럼 생긴 산이 있어 종산이라고도 하며 숲거리는 숲이 많아서,
우무실은 소없이 농사를 지어도 과일이 많아 먹을 것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교골은 회인향교(懷仁鄕校)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아미산성과 탑사리들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갈티재에서 이곳까지 편안한 도로를 따르면 5분이면 도착할 거리이다...임도파들이 좋아할 구간인 듯 하다
복우실마을에는 예수님 교회가 있는 모양이다
고개 근처에는 대추밭이 보이고 산허리에는 임도개설이 한창이다
동물이동통로(11:28)
원래는 우측으로 돌아서 381.5m봉을 찍고 동물이동토로를 지나 지맥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선두팀들이
우측의 381.5m봉을 생략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맨꼬바리로 가는 산꾼이 이곳저곳을 다 들리고 가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아쉽지만 나도 381.5m봉을 생략하고 동물이동통로 옆으로 올라선다
동물이동통로로 올라서니 휀스로 막아놨다...그렇다고 안가냐
능선을 따라서 올라가니 좌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무명봉(11:40)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고...
너무 크버려 식용으로 불가능한 엄나무순도 보인다
공터도 보이고...
악명높은 청미래 열매도 있다.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
숲을 빠져 나오니...지도상에는 없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11:55~12:20)
임도에서 점심 밥상을 펼치고 25분간 점심 식사를 겸한 휴식을 취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405m봉(12:24)
우측 능선으로 꺽어진다
곧바로 내려서니...
조금전 점심식사를 했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사거리(12:30)
점심 식사한 곳에서 이곳까지 2~3분이면 올 거리를 능선으로 넘어왔다
다시 임도에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묵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무명묘지(12:33)
묘지에서 곧바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12:34)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하고 등로도 보이질 않는다
445m봉(12:40)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김해허공과 부인 밀양박씨 묘지가 나오는데 봉분엔 잔디가 하나도 없다
묘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잡목을 헤치고 나오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427m봉(12:45)
등로 사이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2:51)
420m봉(12:58)
띠지 역할을 하는 노끈이 자주 보인다
안부(13:12)
임도(13:16)
임도를 따라서 조금 걷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진골소류지가 보인다
426m봉(13:26)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뚜렸한 등로로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444m봉(13:33)
예전에 산소였는가 보다...이장한 흔적이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ㅣ...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기 시원스레 보인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잡목으로 인해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한달음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450.2m봉(13:50)
450.2m봉 삼각점(△보은 420 / 1980재설)
등로는 뫳돼지의 횡포로 엉멍진창이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급하게 내려선다
청주한씨 묘(13:59)
수리티재로 이어지는 25번 국도의 모습
꿀풀(꽃말:추억)
하고초라고도 부르는 꿀풀은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란다.
근경에서 모여 나는 원줄기는 높이 15~30cm 정도이고 네모가 지며 전체에 흰털이 있다.
근생엽은 모여 나며 마주나는 경생엽의 잎몸은 길이 2~5c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 1~3cm 정도이지만 위로 갈수록 없어진다. 5~7월에 개화하며 수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적자색이다.
분과는 길이 1.6mm 정도의 타원형으로 황갈색이다. 화관은 길이 약 2cm이며 수술대는 돌기가 있고 꽃이 질 때에 포복지가 나온다.
약용, 관상용, 밀원용으로 심는다. 봄에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잎을 데쳐서 된장이나 간장에 무쳐 먹는다.
싱싱한 꽃은 샐러드, 튀김, 볶음으로 식용한다
벌목지의 가시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산딸기도 벌써 익어가고 있다
454.7m봉(14:07)
내리막길의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잡목에 얼굴을 할키면서 내려선다
인동장공 묘(14:18)
수리티재로 내려선다
수리티재(車衣峴:326.3m:14:22)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 수리치에서 회인면 건천리 공태원과 야남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차의현(車衣峴)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회인현과의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회인현에도 "차의현(車衣峴)"이 등장하는데 이때 '차의(車衣)'는 '수리'의 받쳐적기법[訓主音從法]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표기 사례로ㅠ음성군 생극면 · 감곡면과 충주시 신니면 · 노은면의 경계에 있는 '수리산(수레의산), 車衣山, 鷲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후 『해동지도』에는 '차의치(車衣峙)'로 표기되어 있고, 회인현 지도에는 보은현과의 경계에 '차령(車嶺)'으로 ]
표기되어 있고, 이때 차령의 '차'는 '수리'의 훈차 또는 훈음차 표기로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차의현(車衣峴)은 현 서쪽
15리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조헌(趙憲)이 왜적을 격퇴시킨 곳으로 유명하며 수한면 장선리 피난봉은조헌이 가족을 피신시키고
의병을 모집하여 단련시킨 곳으로 알려져 있다
회인현 경계에 있다."라는 기록이 보이며, 동일한 표기가 『대동여지도』에도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회인)에 '차령(車嶺)'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수리티재의 동쪽 골짜기에는 수리치라는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수리티재 고개에서 보은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좌측에 정자가 있는 소공원이 있고 수준점도 있는 25번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선두로 가던 동료산꾼들이 후미를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람이 부는 시멘트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식수도 모자랄듯 한데 동료 산꾼 산중님이 물한통을 주시는 바람에 용기를 내어 다시 길을 나선다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니...
SK통신 기지국(14:37)
등로에서 바라본 수한면으로 이어지는 수리티재의 모습
435.5m봉(14:46)
정상에는 무인감시카메라와 3등삼각점이 있다
435.5m봉 삼각점(△보은 307/1980 복구)
435.5m봉에서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선다
안부(14:48)
수리터널 위(14:53)
수리터널 윗쪽 봉우리에서 바라본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와 그 너머 보은읍의 모습
충북 보은읍(報恩邑)은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동쪽으로 속리산면(俗離山面), 북쪽으로
산외면(山外面), 서쪽으로 내북면(內北面)·수한면(水汗面), 남쪽으로 삼승면(三升面)·탄부면(炭釜面)에 접한다.
북동쪽의 수철령(水鐵嶺:536m)과 함림산(含林山:515m)을 중심으로 한 고산지대와 서쪽 평야 사이에 300m
안팎의 구릉지대가 펼쳐지는데 읍의 서쪽을 남류하는 보청천(報靑川) 연안의 하안 평야에서는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 성하고, 무·배추·참외·수박 등 채소류와 참깨·들깨 등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그밖에 과수재배·양잠업·가축사육도 활발한데, 특히 대추와 황색 잎담배는 특산물로 꼽힌다. 교
통은 청주∼상주·괴산∼영동 국도가 읍내에서 교차하고, 지방도로가 법주사(法住寺)와 옥천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삼년산성(三年山城:사적 235), 보은의 백송(白松:천연기념물 104), 보은향교(충북유형문화재 95),
보은동헌(충북유형문화재 115), 김수온부조묘(충북기념물 48), 성운묘소 및 묘갈(成運墓所-墓碣:충북기념물 70),
사괴정(四槐亭), 성운묘비각(成運墓碑閣), 석천암(石泉庵), 보은 종곡리 충렬문(鍾谷里忠烈門), 모현암(慕賢庵) 등이 있다.
어암리(漁岩里)에 있는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470) 때 축성된 것으로 둘레 1,680m, 높이 10m, 너비 8m이었으나
지금은 퇴락해 있다
터널 위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예전에 묘지의 흔적이 보이고...
묘지가 있었던 흔적에서 내려가는 등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안부(14:58)
무명봉(15:14)
능선을 따라서 간다
450m봉(15:25)
다시 우측 능선
무명봉(15:38)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우측 아랫쪽에는 벌목지대가 보인다
고속도로 너머로는 언젠가 걸어야 할 미호(팔봉)지맥 능선이 보인다
자꾸만 체력이 저하된다...좌측 능선으로 가면 478.9m봉으로 가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선두는 우측 벌목지로 가버린다
봉우리고 뭐고 다 싫다...나 역시 우측 벌목지 아래로 내려간다
곧추선 노성산 오름길이 겁이 난다
안부(15:52)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와 회인면 송평리로 넘나들었던 고개가 나오는데 예전에 있었던 성황당의 흔적도 희미하게 보인다
넓은 임도로 올라서다가 다시 직진으로 올라선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얼마나 급경사인지 코가 땅에 닿는 느낌이다
안부에서 노성산으로 오르는데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지나온 능선의 모습
선두조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나를 기다린다... 너무 고맙기만 하다
노성산 정상의 모습
노성산(老城山:515.5m16:15)
충북 보은군 회인면 송평리 ,수한면 차정리, 회남면 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세종실록지리지』(회인)에
"토산(土産)은 석철(石鐵)로 현의 남쪽 노성산(老聖山)에서 난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인)에는 "노성산(老城山)은 고을 남쪽 1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노성산의 '성' 자의
표기가 『세종실록지리지』와 달리 '성(聖)'에서 '성(城)'으로 바뀌어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현 남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회인)와 『대동여지도』(보은)에도 표기자
변화없이 '노성산(老城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회인)에서도 "노성산(老城山) 은 동면 노성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명이 수록된 이후 500여 년간 동일한 표기자인 '노성산(老城山)'으로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회인 일대에서 이름난 산임을 짐작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지명총람』에는 국사봉(國師峯)이 등장하며
이 산의 다른 명칭으로 노송산(老松山), 노성산(老城山), 좌월산(坐月山)이 기록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명에 표기된
한자를 훈차 표기로 풀이하여 노송(老松)이 있어 산 이름을 '노송산'이라 부른다거나, 산 정상에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전하는 좌월대가 있다 하여 '좌월산'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현재 노성산의 동쪽사면에는 수한면 노성리(老城里)가 있다
노성산 정상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우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전주이공 묘(16:28)
묘지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다시 우측으로...
안부(16:40)
503.7m봉(16:50)
좌측 사면길로 가면 놓치는 憂를 범할수가 있다
이 분은 503.7m봉을 갈고산이라고 붙혀놨네
503.7m봉을 조금 지나자 갈림길이 나오고 선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갈림길(16:51)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오른다
무명봉(17:03)
노성산을 지나면서부터 나무에 야광 표지기가 나무에 박혀있다.
공터(17:05)
넓은 공터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7:10)
무명봉에서 내려왔다 다시 오름길이 나오고 묵은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간다
페광터(17:18)
넓은 공터가 나오고 폐철재물이 방치되어 있는 폐광터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좌측 직진 방향으로 보이나 우린 우측 국사봉쪽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로 향한다
폐광산의 흔적이 보이고 임도 우측으로는 무인산불감시초소 있는 국사봉이 보인다
국사봉으로 가는 임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무조건 능선을 치고 조금 올라서니 광산터의 흔적이 보이고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국사봉 갈림길(17:42)
오늘 산행은 정말 힘이든다...이름없는 봉우리를 몇개를 넘었는지 모르겠다
악명높다는 금북정맥 빨래판 구간은 이곳에 와서 명함도 못내밀겠다.
국사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원래 계획은 왕복 1.2km 거리인 국사봉을
갔다 오기로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마지막 휴식을 취한다
오늘 리딩을 맡은 산동네님께서 커다란 사과를 주시는 바람에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산동네님! 복받을깁니다
갈림길(17:55)
국사봉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한 후 2분정도 지나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무명봉(18:05)
이곳으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안부로 급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까마중
까마중은 들판이나 밭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양지나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한해살이풀로 키는 20~90㎝이다.
줄기는 모가 나며 옆으로 가지가 많이 난다. 잎은 달걀 모양으로 어긋나며 길이는 6~10㎝, 폭은 4~6㎝이다.
잎 주변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꽃은 5~7월에 흰색으로 피며, 전체적으로 감자꽃을 닮았는데 크기가 매우 작아 0.6㎝밖에 안 되며,
대략 한 줄기에 대여섯 개의 꽃이 피며 이 꽃들이 지면 늦여름인 9~11월경에 둥글고 검은 열매가 열린다.
까마중이라는 이름은 열매가 스님의 머리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흔히 민간에서 어린 스님을 ‘까까중’이라고도 하듯 정겨운 이름이다.
봄에 줄기에 붙은 어린잎은 나물로 삶아 먹는데, 약간의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몸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물로 먹을 땐 삶은 것을 물에 우려내 독성을 빼내는 것이 낫다.
까마중은 아주 좋은 약재로도 쓰여 감기는 물론 만성기관지염이나 신장염, 고혈압, 황달, 종기, 암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무명봉(18:14)
안부(18:17)
561.5m봉(18:18)
약초재배지 경고 플랑카드가 있는 넓은 공터 위가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정상을 찍고 우측으로 되돌아와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아주 경사가 급한 곳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선 다음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무명봉(18:38)
안부(18:42)
이곳에서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504.5봉이 보이는데 모든걸 포기하고 싶다
바로앞에 꼿꼿한 선 504.5봉까지 78m라고 하는데 7.8km 정도 되는 느낌이다
504.5m봉(18:47)
504.5m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경사도 75도는 되는듯 하다
엉금엉금 기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급경사를 따라서 내려오니 능선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인다
차량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날머리가 가까워진 느낌이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가운데를 지나 내려서니...
문인석이 서 있어야 할 곳에 특이한 석물이 보인다
고령신공 묘(18:58)
묘지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수목장이 보이고...
묘지 가운데로 내려서니 21번 군도가 지나가는 노성리 고개가 나온다
노성리(老城里)고개(19:00)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 모개울마을이 있고 수한면에서 회인면으로 이어지는 21번 군도가 지나는
노성리 고개에 내려서면서 당일 산행으로서는 정말 힘들고 긴 여정의 산행을 끝내면서 스틱을 접는다
참으로 힘든 산행이었다... 먼저 내려온 산꾼이 주는 맥주 한잔도 귀찮을 정도이다
하긴 내일 아침부터 병원에서 검사가 있으니 술을 먹을수도 없고 정말 사는 재미가 없다
보은군 수한면의 동쪽에 위치한 노성리는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송정, 모개울, 점볼 등이 있는데 송정은 옛날에 노송이 많이 우거졌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개울은 갈고성에서 남쪽 온천으로 나가는 목이라 하여 모개울이라 하였다고 하며, 점볼은 옛날에 솟점이 있었다고 한다.
노성리라는 지명은 노성산 밑이 되므로 노성골, 노성동 또는 노성이라 하였는데서 유래하였다.
마을 뒷산인 태음산(太陰山)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일간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차를 타고 회인I.C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와서 화장실에서 씻고 오리고기로 식사를 한다
오늘은 이 비싸고 맛있는 고기를 리딩을 맡은 산동네님께서 저녁까지 풀로 쏘시겠단다...암튼 복받을겨
고기에다 백숙 죽까지 배터지게 먹고 저녁 9시가 다된 시간에 보은을 출발하여 집에 도착하니 밤11시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