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두위)지맥(終)

옥동(두위)지맥 제3구간 - 새비재에서 망경대산 아래 임도까지

범여(梵如) 2021. 8. 2. 07:22

☞ 산행일자: 2021년 8월 1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바람한 점 없는 무더위...오후에는 계속 비가 내림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2.7km +날머리 3.2km / 알바 1.2km / 8시간 22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새비재-980.0m봉-안부-무명봉-922.2m봉-845.9m봉-안부-793m봉-778.7m봉

                 743.8m봉-안부-748.5m봉-안부-뱃재-785.8m봉-예미산-968.5m봉-무명봉

                 무명봉-갈림길-산불감시초소-수라리재-수라리재 터널위-안부-Y자 갈림길

                 너럭바위-무명봉-영광산-갈림길-안부-임도삼거리-수라삼거리-헬기장

                 임도-망경대산-임도삼거리-망경대산 삼거리-망경사 갈림길-낙엽송 삼거리

                 망경산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 영월군 중동면, 김삿갓면

 

전 세계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코로나인가 지랄인가하는 역병이란 놈이 인륜마저

막아 버리는구나...토요일이 모친 기일이라 시골에 가야해서 마산에 있는 조카와 통화를

하는데 작은 아버지 건강도 안좋으신데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내년에 만나자고 한다.

모친 기일을 3년째 가지 못하니 맘이 그리 편치는 않다...3년전에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못갔고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늘 맘이 찜찜하고 마음이 불편하여 은사스님의 절에가서

스님에게 부탁하여 제사를 지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요즘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이번주말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여 하루 쉴까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내 삶의

유일한 樂이라고는 주말에 산에가는 것 밖에 없다

옥동(두위)지맥 3구간을 가려고 하는데 이곳도 비가 온다고 하여 인터넷에 능한

수헌아우에게 부탁을 했더니만 오후 4시 이후로 1mm미만으로 비가 온다고 그 비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베낭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모친 기일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잠을 이룰수가 없다.

잠을 자는둥마는둥 하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6:00)

생각도 없이 집을나와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탑승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았다...역 대합실에 도착하니 코로나 때문에 TV도 못보게 한다.

갈데없이 1시간 반을 대합실 의자에 앉아  멍때리기를 한다  

청량리발 → 예미역 열차표

열차시간을 맞춰서 플렛홈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자꾸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07시 35분에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기관차 고장으로 인해

예상 시간보다 10분 늦게 출발을 한다

청량리역에서 10분 늦게 출발한 열차는 예상시간보다 8분 늦게 예미역에 도착한다

예미역(禮美驛:10:30)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에 있는 예미역은 시골역이긴 하지만 열차가 생각보다 많이 정차한다.

예미리(禮美里)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을 하면서 노일, 납돌, 유문동을

합하여 여미산(女美山)을 예미산(禮美山)으로 바꿔 부르면서 불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예미리는 오랜 옛날부터 제천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 삼척 등지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인 까닭에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했음을 지금의 읍사무소 아래 고인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당나라때 파락사(派樂使)로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 임의(林義)로 인해 생겨났다는 의림길 등의

지명을 통해 보더라도 오래 전부터 정선 등지의 산간 지방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통시절에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이광재가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노통 시절에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면 이름을 날렸는데 그 중에 좌희정으로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여직원을 성폭력을 한 죄로 지금 감방에서 콩밥을 먹고있고, 우광재로

불렸던 이광재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죄로 감방을 갔다가 

사면복권되어 강원도지사를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미역 여객운임표와 열차시간표

영월역을 지나면서 예약했던 택시가 역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역으로 나오니 택시기사가 택시를 타기전에 손을 들어라고 하더니 요즘 코로나

때문에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은 겁이나니 소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손분무기로

온 몸에 뿌리고 난 다음에 택시를 타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새비재로 향하는데 정상에 도착해서는 기사양반이 혼자서 산에 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안전 산행을 하라고 하고선 나를 새비재에 내려주고 예미역으로 향한다

50여일만에 다시 새비재에 온 셈이다

새비재(鳥飛峙:940m:11:05)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한밭골에서 정선군 신동읍(新東邑) 함백(咸白)으로 가는 고개로 길이 높고

험하며 산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조비치(鳥飛峙)'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일설에는 6.25동란 당시 아군 전투기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골짜기와 능선이 겹겹으로

포개진 모습이 새의 날개를 질러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몇년전까지만 해도 밭을 일구다 보면 불발탄 등 전쟁 당시의 흔적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운탄고도 안내판에는 새비재에 관한 설명이 적혀있다

새비재는 새때가 매봉산의 매에 쫓겨 내려앉는 형국이라 하고 일설에는 새가 알을 품고있는

형국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의 행정구역이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鳥洞里)이다

 

이곳은 1950년대에 함백광업소가 탄전을 개발하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급증했으며

1970년대에는 중.고교 사회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도회지를 연상할만큼 광산촌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석탄합리화 산업으로 인해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3년도 함백광업소가 폐광되면서 광부들의 삶터였던 조동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새비재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새비재에서 바라본 독가촌의 모습

독가촌은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새비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전략촌’이라고도 한다.

오래전 이곳에 정착한 화전민들이 질운산 자락 곳곳에서 밭을 일구면서 살았는데,

1968년 울진. 삼척지구에 무장공비가 출몰한 사건이 있을 때, 정부에서 집을 지어주고

뿔뿔히 흩어져 살던 화전민 30여세대를 집단으로 정착을 시켜서 생겨난 지명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세대가 살았으나, 지금은 사시사철 사람이 살지않고, 봄이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들어 왔다가 가을에 수확을 한 후에 떠난다고 한다

고랭지 채소밭과  독가촌 너머로 지난주에 걸었던 석항(죽렴)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산행을 시작하다(11:10)

좌측의 고랭지 너머로 2000년대 초에 개봉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로 알려진 공원으로

영화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3년 후 다시 만날 약속을 기약하면서 타임캡슐을 소나무 밑에

묻었던 곳으로 소나무를 중심으로 12개월을 의미하는 12개 방사형 원형블록(1블럭 400여개 캡슐설치)이

설치되어 있는 타임캡술공원이 아련하게 보인다

농로를 버리고 좌측의 임도로 향한다

임도에서 우측으로...커다란 거름더미가 보인다

직진의 임도로 들어간다

임도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커다란 시멘트 씽크홀이 보이는데 무박산행을 하시는 분들은 조심해야겠다

여름 산행에서 가장 산꾼을 괴롭히는 미역줄기나무들이 슬슬 산꾼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초반이긴 하지만 비교적 등로는 뚜렸한 편이다

등로 주위에는 잣나무군락지들이 많이 보인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잣나무숲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983,0m봉(11:28)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예전에 약초재배지였는지 낡은쇠말뚝이 보이고 바닥에는 잘 안보이는 철사줄이 산꾼을 위협한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1:33)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37)

사면길처럼 보이는 등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높은 습도에다가 바람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다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옷은 땀으로 다 젖어버렸다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비구름인가 안개같은게 몰려오는데 좀 불안하다

922.2m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질운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몇년전에 작고하신 조은산님의 흔적을 만난다

한번도 직접 뵌 적은 없어지만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922,2m봉(11:52)

판독이 불가능한 922,2m봉 정상 삼각점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세월의 무게

비가 내리나?...나뭇가지 사이로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상으로는 오후 4시이후로 시간당 1mm정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최근에 왔다 가셨나?... 깨끗한 준.희 선생의 흔적을 만난다

등로는 조금씩 지맥스러움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 밋밋한 845.9m봉으로 올라간다

845.9m봉(12:00)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2:05)

완만한 오르막길

793m봉(12:07)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나무가지 사이로 예미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곳을 먼저 산행한 수헌아우가 했던말에 기가 질린다

‘선배님 예미산 오를때 개고생 했습니다’...허나 어차피 가야할 산이기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가야제.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778.7m가 나온다

778.7m(12:15)

급경사의 내리막길인데 등로가 살짝 젖어있어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743.8m봉(12:18)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 같아 마음이 불안한데 별 넘들이 다 태클을 걸어댄다

안부(12:30)

748.5m봉 오름길에서 만난 취꽃

암릉구간의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조금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748.5m봉(12:37)

아침을 먹지도 않고 이곳까지 왔더니만 배도 고프고 높은 습도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진된 느낌이라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 웃옷을 벗어놓고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2:37~50)

점심이라봐야 송편에다가 토마토 쥬스, 냉커피 뿐이다.

바람한 점이 없다보니 날파리같은 짐승들이 죄다 몰려온다.

근데 이건 뭐야...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쏟아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748.5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내리막길 좌측에 커다란 구덩이도 보인다

급경사를 다 내려 온 모양이다

안부(12:53)

좌측 아랫쪽 천길 낭떠리지이다...나뭇가지 사이로 영월군 중동면 이목리(梨木里)가 보인다

낭떠러지 칼날 능선에 우측 사면길로 내려간다

가야할 영광산과 망경대산이 나뭇가지에 가려 버렸다

가야할 예미산의 모습

뱃재(梨峙:657m:13:00)

정선군 신동읍 도동리에서 영월군 중동면 이목리 웅치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맥길을 타는 산꾼이외는 사람들의 다닌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서낭당의 흔적인듯한 조그만 돌무더기가 보이고 고개를 넘어가는 전선주가 있고

비가오기 시작해 자세히는 보지 못했으나 돌배나무 형태의 나무가 있었다

 

지명의 유래는 이목리에서 따온 듯 한데 배나무가 많아 '뱃재'라 부르다가 이목리(梨木里)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측의 도동리쪽에는 내려가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광석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한덕철광 신예미광산이 있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옛날 재를 넘어오던 한 도사가 이곳의 산세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화낙지형국(梨花落地形局:배꽃이 땅에 떨어진 모습)인것을 보고 배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고개마루의 큰 돌배나무들도 이때부터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배나무가 많아 순 우리말로

'뱃재' 또는 '배나무재'라고 하며 고개 아래 영월군 중동면 이목리(梨木里)의 본래 지명도 '뱃재'였다.

옛날에는 이목리에서 뱃재를 넘어 함백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예미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정선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전신주

묘터인지 폐헬기장인지 알 수 없는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등로가 열린다 

매봉산 너머로 백두대간 태백산의 능선은 구름에 갇혀 버렸다

등로에서 바라본 매봉산의 모습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뱃재?(13:10)

지도상에는 이곳이 뱃재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빡세게 오르막을 올라간다

요염한 자태의 원추리꽃(꽃말:기다리는 마음)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그래서 이름도 Day lily,

하지만 한 포기에서 꽃대와 꽃봉오리가 계속 만들어지므로 포기로 보면 20-30일 정도

꽃을 볼 수 있으며, 자생화들이 주변에 많이 쓰이면서 도로변에 많이 심고있는 화종 가운데 하나이다.

내년을 기약하며....

고개같은 느낌의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좌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빗방울은 자꾸만 굵어지고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에서는 중간탈출도 불가능하니 가는데까지 가보자꾸나

우의를 입을까 생각을 하다가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젖기는 마찬가지인데

차라리 비를 맞으니 훨씬 시원한 느낌이다

785.8m봉(13:30)

예미산을 향하는 급경사의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길...등로가 미끄러워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다

뒤돌아본 질운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2번째의 로프구간

3번째의 로프구간

능선에서 약간의 숨을 돌리고...

4번째의 로프구간을 통과하니 예미산 예미산 정상이 나오는데

先踏을 한 수헌아우님의 말이 빈 말이 아니였구나...입에서 게거품이 나올정도로 힘이 들었다

헬기장같은 넓은 공터가 예미산 정상인데 잡목이 무성하여 볼 품이 없다

풀섶에 숨어있는 예미산 정상 삼각점(△예미21/1995복구)

예미산 정상 표지판은 살짝 벗어나 있고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산꾼을 반긴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천둥. 번개가 요동을 치니 상당히 불안하다

번개 때문에 행여 몰라서 내 산행에 있어 영원한 동반자인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끈다

1915년 조선지형도 (뱃재에서 자령치까지)...故조은산님 블로그에서 퍼옴

뱃재는 倍峙, 예미산은 女美山, 망경대산의 경은 京이 아니라 景이고

자령치는 재염치로 표기가 되어있다.

예미산(禮美山 989.6m:14:10)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노일리와 영월군 중동면 이목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잡목이 무성한

넓은 공터에 2등삼각점이 있고 정상에서 살짝 비켜난 나무에 하얀색 산패가 걸려있으며

그 옆에는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걸어둔 노란색 산패가 보인다

 

산의 북사면에서 발원한 예미천 연변에 예미리가 있고 예미천 하안(河岸) 저지대를 

따라서 영월에서 태백을 잇는 38번 국도와 태백선 철길이 나란히 지나가면 북동쪽으로는

폐광이 되어 옛 영화를 잃어버린 함백탄광이 있다 

 

예미산(禮美山)은 본래 ‘여미산(女美山)’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시대부터 ‘예미산'으로 바뀌었다.

예미초등학교 뒤에 있는 창가산에서 예미산을 보면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모습인데다

용주골 샘터가 여자의 음부에 해당하는 곳에서 흐른다고 하여 ‘여미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영월군 중동면 수라리재에서 보면 산세가 여자가 모로 누워 있는 아담한 모습이어서

‘여미산'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비는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으나 빗물을 먹은 풀섶 때문에 옷은 다 젖었고 카메라도

습기를 머금어 자꾸만 흐리게 나온다...지체할 틈도없이 서둘러 길을 나선다

예미산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개가 몰려와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잣나무군락지

잣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968.5m봉(14:3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무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4:36)

반갑습니다

등로는 잘 안보이고...

비는 그칠줄 모른다...오늘도 구라청(기상청)에 사기를 당하는 느낌이다

비는 4시이후부터 온다고 했는데...

무명봉(14:40)

내리막길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4:48)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직진으로 이어지는영월군과 정선군계를 버리고 온전히 영월군으로 들어선다

좌측의 급경사로 향하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간간히 보인다

계속되는 급경사 로프가 처져있으나 등로의 흙이 미끄러워 내려오면서 3번이 처박힌다

이런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생각보다 엄청나게 급경사이다

급경사를 거의 다 내려왔다

등로 우측으로는 농장인듯한 철조망이 보이고...

철조망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주위의 소나무들이 건강해 보인다

흐미 이쁜넘...길가에서 영지버섯 하나를 수확한다

안부를 지나니...산불감시초소 2개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15:08)

망가진 산불감시초소 뒤에 또하나의 초소가 있다

물을 먹은 카메라가 맛이 가려나?...그림이 엉망이다

비가 그칠줄을 모른다... 내려가다가 또다시 미끄러지는데 미끄러지면서

다리에 쥐가나며 근육이 뭉쳐버려 한참을 주무르니 근육이 풀린다

우측의 편안한 길을 버리고 소나무가 있는 능선을 넘어간다

 

등로  좌측로는 가야할 영광산 아래에 있는 31번 신국도가 보인다

영월군 중동면에서 정선군 신동읍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는 수라리재 터널 아래로 지난다.

이동통신탑 아래로 내려서니 수라리재가 나온다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영월군 중동면에서 세운 수라지재 표시석과 검은 오석으로 된 유래비가 있다

수라리재(水剌峙:600m:15:12)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와 녹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이

삼척의 궁촌으로 유배될 때 이 고개에서 수라(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는 고개로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塔洞里)의 수타사(壽陀寺)로 옮겨졌다.

공양왕은 삼척군 궁촌으로 세 번째로 유배되었다가 결국은 1394년(태조 3)에 죽임을 당했다.

수라리재는 화라리(禾羅里)의 진산(鎭山)에 해당되는 곳으로 화라리는 벌마을 · 잿마을 · 점골을

통칭하는 지명인데, 수라리재의 지세가 너무 강하므로 마을의 기를 살리기 위하여 돌단배기에다

조산(造山)인 돌탑을 쌓고 마을 이름도 수라리재의 '수'와 대립되는 '화'를 넣어 '화라리'라고 하여

마을의 기를 강하게 했다고 한다.

이곳은 공양왕뿐만 아니라 조선조 비운의 임금이었던 단종과도 관련이 있는 고개이다

단종은 숙부인 세종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당한다.

그리고 사약을 받았는데  바로 그 시간,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한성부윤을 역임한 충신

추익한(秋益漢·1383~1457)이 단종을 위로하러 갔다가 이상한 일을 겪는다.

 

그는 머루랑 다래를 단종에게 갖다 바치곤 했었는데 그날도 추익한은 머루와 다래를 가지고

영월읍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가 수라리재를 넘어 내려가자 백마가 영월 쪽에서 수라리로 오고 있었다.

백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단종이었다. 화사한 용포를 입고 검은빛 익선관(翼善冠:임금이 평상복인

곤룡포를 입고 정무를 볼 때 쓰는 관)을 쓴 단종의 얼굴은 슬프도록 곱게 보였다.

 

추익한은 바로 그 자리에 엎드리며 “마마,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단종은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지금 태백산 산신이 되기 위해서 가는 길이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추익한은 황급히 읍내로 달려갔다.

읍내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조용히 흐느낌이 깔리고 있었고 단종은 이미 죽었다.

추익한도 다시 수라리재에 돌아가,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도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절명했다고 전한다.

추익한도 단종과 함께 태백산신령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수라리재 녹전리쪽의 모습

비가 너무와서 급하게 사진을 찍다가 보니 그림이 심하게 흔들렸다.

흔들린 사실조차 몰랐고 물기를 잔뜩 먹은 카메라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수라리재 우측에는 펜션이 있는지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 하다

저 밭너머에 있는 민가가 2011년도 개봉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촬영지란다 

수라리재에서 화원리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구절양장의 길이다

아쉽다면 찍은 사진이 너무 흔들려 제대로 나온게 없다

이곳은 31번 국도에서 가장 험한 곳이었고 경치 또한 빼어나서 ‘죽기전에 가봐야 할 곳’에

한 곳이라는데 지금은 고개 아래로 수라리재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잊혀진 고개가 되어 가고 있다

수라리재에서 바라본 잠시후에 오를 영광산의 모습

이곳에서 한참을 고민했다...비는 계속오는데 발걸음은 늦어지고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자고 하니 다음 구간이 너무 힘이들겠고 가자니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군 벙커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반가운 산으로님의 흔적을 만나고...

좌측으로 보이는 단풍산과 운교산, 목우산은 안개에 갇혀 버렸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고도차가 없는 곳을 통과는데 이곳이 수라리재 터널 위란다

수라리재 터널 위(15:35)

안부(15:38)

안부에서 만난 뫳돼지 목욕탕

영광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Y자 임도(15:42)

갈림길에서 살짝으로 꺽어진 다음에...

우측의 숲속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길은 미끄럽고 개고생을 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금강송 지대를 치고 오른다

묵은 임도가 나오고 영광산으로 향하는 고난의 길이 시작된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숨한번 크게 쉬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너럭바위(15:58)

계속되는 암릉구간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물을 먹은 너덜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무명봉(16:10)

등로는 보이지 않고...

빡세게 올라서니 잡목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영광산이 나온다

영광산 정상의 모습

영광산 주위에는 축대처럼 쌓아놓은 돌담이 보인다

잡목을 헤치고 나오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산패를

못 본건지 없는것지 모르겠고 비맞은 새앙쥐꼴인 내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권작가님은 언제 지나가셨나?

영광산(935.0m:16:28)

영월군 중동면과 정선군 신동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주위로 석성처럼

쌓아논 석축만 보일뿐 정상은 잡목으로 뒤덮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망경대산과 수라리재 사이의 산으로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나 오록스앱이나 

영진지도에는 영광산이란 지명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영월군의 어느 자료에도 영광산에 대한 자료는 없고 산 아래에 있는 

소미마을 산책로 안내도에는 ‘큰묘등’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영광산의

다른 이름인 듯 하다...정상의 산패 찿기를 표기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갈림길(16:35)

능선을 따라서 가다가 급경사의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무한도전클럽 다류님의 시그널 한장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비에 젖은 등로가 엄청나게 미끄럽다

암릉이 나오고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급경사로 내려간다

절개지...숏다리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며 급경사의 절개지 아래로 내려간다

벌목을 한 능선으로 내려선다

안부(16:50)

안부에서 바라본 영월군 중동면 연상리쪽의 모습

안부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희미한 등로를 빠져 나오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삼거리(815m:17:00)

임도 삼거리 좌측 아랫쪽엔 유럽풍 형태의 집한채가 보이고 항아리에다가

‘망경대 오지탐험’란 글씨를 써놨다

임도 삼거리 아래에 있는 멋진 가옥

비는 조금씩 소강상태를 보인다

잠시후에 다시 비는 쏟아지기 시작하고 능선 우측이 지맥길이나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

이곳에는 소미원 둘레길인지 소미원에 대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랐다가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

다시 되돌아 나온다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에 있는 소미원은 경북 봉화로 넘어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서낭당 북쪽의 솔모디기 부근에 원집(院舍)이 있어서 붙은 지명으로, 원집은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오면서 인가가 드문곳에 원(院)을 설치하고 쌀, 반찬, 짚신 등을

준비해 두었으며, 길손들이 이곳에서 잠을 자고난 후 밥을 해먹고 짚신을 신고 가겠끔

편의를 제공했던 곳이었다...행인들은 그 댓가로 일정액의 엽전을 나무로 된 엽전꽂이에

꽂아놓고 갔다고 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너무와서 예상보다 산행 시간이 늦어져

어쩔수 없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한참을 돌아서 임도 갈림길인 수라삼거리에 도착한다

수라삼거리(17:25)

이정표(↖망경대 정상 L=1.5KM ↗망경대산 휴양림 L=5.0KM, ↓화원리)가 있다

수라삼거리에 있는 백합나무 조림지 안내판

왔던길로 내려가면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禾院里)이다

화원리는 예로부터 원집이 있었다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원(院)에는 여러 개의 목로방이 있었고

부엌에는 쌀과 반찬이 준비되어 있어서 잠을 자고 난 길손들은 새벽밥을 해 먹고 나무로 만든

엽전꽂이에 돈을 꽂아놓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만경대산 쪽 임도로 향하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을 헤치며 오르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능선 정상으로는 미역줄기가 엄청난게 태클을 걸어오는 바람에 좌측으로 우회한다

죽을 힘을 다해서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17:40)

헬기장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또다시 빗줄기는 굵어지는데 미역줄기가 갈 길을 방해(?)한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조금전 수라삼거리에서 헤어진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 있는 안내판

임도(17:45)

임도 좌측의 숲속으로 올라간다

임도 초입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아!~~~테스형 미역줄기 나무 이 넘들은 왜 이리 산꾼을 괴롭혀...

미역줄기 나무군락지에 갇혀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탈출을 한다

오르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이곳에서도 2번이나 쳐박힌다

도데체 오늘 몇번이나 넘어졌는지 기억도 안 난다

대단혀요!

등로가 보이지 않는 망경대산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오르막길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의 급경사이다...산딸기 군락지인데 

산딸기 가시에 굵혀 엄청나게 쓰라리다

흐미 이쁜 넘...만경대산 오름길에 늙어버린 곰취들이 간간히 보인다

산딸기 군락지를 지나 ...

망경대산 정상에 도착한다

만경대산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만경대산(萬景臺山:1,088.0m:18:10)

영월군 중동면과 김삿갓면(옛지명:하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에

산불감시 무인감시 카메라와 기상관측장비, 3등삼각점과 정상석에 낡은 목의자들이 보인다

지도는 京인데 정상석에는 景자를 쓰고 있으며 주위가 멋지게 조망될 산이건만 오늘은

비로 인해 모든게 꽝이다.

 

지명의 유래는 홍문관 부수찬과 한성부 부윤을 지낸뒤 낙향한 충신 우천 추익한이 조선조

6대 임금인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이 산위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영월읍내에 있는 단종의 영모전에는 추익한이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하는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 

만경대산 정상의 모습

만경대산 정상 3등 삼각점(△예미311 / 2004재설)

이곳에서 만경산사쪽으로 내려가는데 맘이 급해진다

영월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의 막차는 19시 40분이고, 열차는 20시 35분이다

2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어 부지런히 걸어서 자영치까지 가서 만경산사로 가는

길에 택시를 부르면 될 것 같아서 좌측의 넓은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의 넓은 임도로 내려간다

만경산사 이정표를 따라서 정상에서 1분정도 내려가니 좌측으로 방화선 임도가 보인다

문제는 이곳에서 발생한다

만경산사로 향하는 직진의 넓은 임도 좌측의 나무에 부산 산도깨비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빨리 자영치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부지런히 방화선 임도로 내려간다

말이 방화선 임도이지 관리가 안되어 불쏘시개  임도같은 느낌이다

잡풀을 헤치면서 죽기 살기로 달리다시피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때서야 트랙을 보니

능선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답이 없다...비가오니 날씨는 좀 빨리 어두워지는 듯 하고...

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서 만경대산 정상으로 향한다(18:25)

저 산도끼비님의 시그널이 왜그리도 원망스러운 지...

다시 되돌아온 만경대산 정상(18:40)

부지런히 가도 빠듯한 시간인데 늦은 시간에 1.2km의 거리를 30분이나 허비했으니

정신이 혼미하고 머릿속이 하해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또 하나를 배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거늘”

삼각점이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숲속이라 너무 어두워 똑닥이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에 벌목을 하여 마구 방치된 고사목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힌다

천신만고 끝에 임도로 내려서니 조금전 만경대산에서 내려오는 그 임도가 아닌가.

임도로 내려올 걸...사서 개고생을 한 셈이다

임도 삼거리(18:50)

이곳에서 자령치까지 1.8km이고 자령치에서 무조건 만경산사까지 가야만 교통편이 해결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핸드폰의 베터리가 다 되었다는 알람소리에 충전을 하려고

보조 베터리를 꽂으니 핸드폰이 물에젖어 충전이 안되고 갑자기 먹통이 되어 버린다

참으로 난감하다

이제는 산행이 아니라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이곳에서 맥길을 포기하고 임도로 내달린다

망경대산 아래에서 망경산사까지의 등로(故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계속되는 내리막 임도

망경대산 삼거리(19:12)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만경사 갈림길(19:20)

만경사쪽이 아닌 모운동 방향으로 내려간다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모운동마을은 ‘구름이 모였다 쉬어가는 마을’이라 유래된 지명이며

모운동은 구 옥동광업소가 자리한 곳이며 인구 1만명 이상이 살았던 탄광지대로 과거 영월지역의

대표적인 탄광촌이었으며, 옥동광업소가 “검은노다지”라 불리는 석탄을 생산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극장, 우체국, 병원, 당구장,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등 인구 1만명 이상 살았던 없는것이

없다는 마을이였지만 지금은 옛 영화를 잊은채 몇 가주만 존재하고 있는 마을이다

낙엽송 삼거리(09:30)

만경대산 등산로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니 만경산사의 불빛이 보인다

만경산사(19:32)

강원도 영월면 김삿갓면 만경대산 중턱 해발 800m에 만경산사가 있다

망경산사(望景山寺-경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절 집으로 들어가서 서울을 가야하는데 핸드폰이 비에젖어 먹통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스님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니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나오시더니

지금 택시를 부르면 영월읍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3~40분 정도 걸리고 서울가는

열차를 타기는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러시면서 평소 절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기사에게 지금 급하니 빨리 좀 오라고 하면서

절까지 오지말고 김삿갓면 소재지까지 내가 손님을 모시고 갈테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면서 내가 놀란줄 알고 귀한 약초롤 달인 물 한통을 주면서 마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스님께서 차에 시동을 거는 사이에 난 화장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스님 차에 오른다.

만경산사에서 김삿갓면 소재지로 내려오는 길은 어둠속이지만 구절양장의

도로같은 느낌이라 어찌나 꼬불꼬불한 길에 비도 엄청 쏟아지는데 비구니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갤로퍼 찝차로 남자들 못지않게 능숙한 운전 실력으로

좁은 도로로 내려 가신다.

 

뒷좌석에 앉아 베낭을 챙기는데 뭔가 허전하여 보니 비에젖은 핸드폰을

절에다 두고왔네...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스님께서 절에 전화를 하니

다행히 절에 있다고 하니 내일 날이 밝으면 택배로 보내 주시겠다고 한다

부지런히 내려왔는데도 면소재지에 도착하니 20시 05분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는 택시를 타면서 스님께 예를 올리려고 하니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빨리 택시를 타라고 한다.

 

스님께서 마치 007 첩보작전 하듯 나를 택시 기사에게 인계하고 절집으로 되돌아

가시는데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스님 감사합니다...평생 三寶에 歸依하여 살겠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인지 아님 어제 제사를 모시고 온 탓인지 부모님께서 막내에

대한 보살핌인지는 모르겠으나 무탈하게 영월역으로 향한다

영월역(20:28)

김삿갓면소재지에서 칠흑깥은 어둠을 뚫고 영월역으로 향하는데 택시기사는 스님의

신신당부를 받았았는지 빗길에도 속력을 내어 열차 도착 7분전에 역앞에 도착한다.

택시기사에게 스님의 법명을 여쭤보니 만경산사 청하스님이셨다...스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영월역에서 20시 35분에 출발한 열차는 22시 40분에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오늘 산행기간의 무모함...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을 하니 스님께서 핸드폰을 택배를 보냈으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전화가 안되어 그렇다고 하시면서 FAX 한장을 보내주셨다.

화요일 오후 스님께서 보내주신 스마트폰

전화기가 물을 많이 먹었는지 스님께서 전화기 사이에 티슈를 넣어

물기가 빠지도록 해서 봉투에 넣어서 보내셨다...청하스님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