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구간- 도래기재에서 곰넘이재까지
님(야생화)도 보고 뽕(히치)도 따고
오늘 산행은 양넘 지갑줏은 느낌이다
☞ 산행일자: 2023년 04월 30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겨울을 느낄만한 추위에 강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8.7km +날머리 2km / 4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도래기재-묘지-무명봉-안부-925.9m봉-안부-무명봉-하금정 임도
무명봉-1,027.0m봉-무명봉-안부-무명봉-폐헬기장-쉼터-무명봉
서벽임도-쉼터-1,250.5m봉-안부-암봉-구룡산-1,314.5m봉-쉼터
넓은 공터-안부-폐헬기장-고직령-안부-1,200.2m봉-고개-안부
1,088.4m봉-곰넘이재-사방댐
☞ 소 재 지: 경북 봉화군 춘양면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날씨가 참으로 변덕스럽다...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가 되었다가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듯한 추위가 오질않나 ...비속어로 표현하면 마치 ‘미친년 널뛰듯이’
바뀌는 날씨탓에 추위에 엄청 약한 범여의 몸뚱아리는 感을 잡을수가 없다.
올 봄에는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야생화 出寫한번 못 나갔더만 몸이 건질건질하다
지난주에 행여나 하는 기대를 걸고 김해쪽으로 갔더니만 한여름이 방불케 하는
날씨탓인지 꽃들이 다 저버린 바람에 실망만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북쪽으로 가면 날씨가 추워서 야생화를 볼 수 있을것 같은
예감에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쪽에 있는 봉화쪽으로 가 볼 계획을 세웠는데
주중의 내내 몸뚱아리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서 갈까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가다가 안되면 중간에 탈출하면 되겠지하고 무작정 나서서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5:40)
해가 많이 길어졌는지 5시반이 조금 늦은 시간인데도 날이 훤하게 밝았다.
버스에서 내려 역 매표소로 가서 미리 예매한 표를 받아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청량리발 → 영주행 열차표
영주로 가는 열차에 올라서 평소의 습관대로 잠을 좀 청하려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는 50대 중반쯤은 되어 보이는 남.여가 시시콜콜로 이야기로 떠들면서
내 의자를 툭툭치는 바람에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왕짜증이 난다.
대화 내용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의 얘기로 봐서 정상적인 부부같지는 않은 것
같고, 연인처럼 보이는데 청량리를 출발하여 원주까지 도착했는데도
계속 민폐(?)를 끼치기에 ‘좀 조용히 합시다’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무 대꾸도
않고 비어있는 다른 좌석으로 가버린다...잠자기를 포기하고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는데 그 자들은 단양에서 내리고 피곤한 몸뚱아리로 차창밖을 바라보다
잠시후에 영주역에 도착한다
영주역(07:45)
영주에서 춘양가는 열차는 08시 14분에 출발하기에 역 앞에 있는
식당에 들려서 김밥한줄과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역으로 향한다
역 플렛홈으로 오니 동대구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08시 14분에 출발한 열차는 봉화역에 정차를 한 다음에 폐역(廢驛)이 되어버린
거촌역(居村驛)을 지나서 봉성역에서 갑자기 멈춰선다...기관사가 뭐라뭐라
안내 방송을 하건만 봉화역에서 10명정도 탄 할매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뭔 소리인지 알아 들을수가 없다.
봉성역에서 20분 이상 기다렸다가 출발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동해에서
영주로 오는 열차에 문제가 생겨서 연착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영주에서 태백을 거쳐 동해로 가는 열차는 단선(單線)이라 어쩔수 없다고 한다
춘양역(春陽驛:09:20)
춘양역은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 ‘억지춘양’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곳으로, 일반적으로 철로는 강을 만나면 다리로 건너고, 산을 만나면 터널로 통과한다.
휘어진 길을 곧게 펴 되도록이면 두 지점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게 철도이다
그런데 1955년 개통한 영암선(영주~철암) 선로는 법전~녹동 구간에서 말발굽(Ω) 형태로
크게 휘어지는데, 애초 계획에 없던 춘양면소재지를 거쳐가기 위해서 빠른 길을 놔두고
철도 노선이 이렇게 된 데는 당시 춘양면 서벽리 출신 자유당 정문흠 의원의 영향이 컸다.
과정은 억지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춘양역은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장날이면 역에서 시장까지 인근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인구는 한때 1만명이 넘어 군청소재지인 봉화가 부럽지 않았다.
태백과 철암에선 쌀과 과일을 사러 오고, 해산물이 귀한 산간 지역에선 싱싱한 어물을
사기 위해 몰렸다... 특히 동해 묵호에서 고무 대야에 해산물을 한가득 싣고 오는 장사꾼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해 지정 칸을 운영했을 정도였다.
억지춘양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춘양목’과 관계 있다.
춘양목은 봉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속이 붉고 단단한 소나무를 이른다.
궁궐의 건축재로도 사용하던 적송 혹은 금강소나무로 철로가 생긴 후 춘양에는
봉화뿐만 아니라 삼척과 울진의 목재까지 몰렸고, 이 목재는 춘양역을 통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자연스럽게 춘양목은 소나무에서 목재로 개념이 확장된다.
고급 목재로서 춘양목의 명성이 높아지자 다른 지역에서 이름을 도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억지춘양’이 유래됐다는 것이 또 하나의 설이다.
타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이천쌀’ ‘영양고추’로 둔갑하는 격이다.
억지춘양에 관한 세 번째 가설은 ‘억지춘향’이 변한 말이라는 것이다.
조선 최고의 연애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이 전북 남원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몽룡의 고향은 명확하지 않은데, 설성경 연세대 명예교수가 1999년 봉화 물야면
계서당(溪西堂)의 주인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 소설 속 이 도령의 모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던 성이성은 사후 홍문관 부제학에 추서되고 숙종 때 청백리에 뽑힌 인물이다.
부친 성안의가 광해군 때 남원부사를 지낸 이력은 성이성이 이몽룡이라는 근거를 뒷받침한다.
춘양면이 아닌 물야면의 인물까지 억지로 끌어와서 ‘억지춘향’이 됐다는 이야기인데,
세 가지 ‘억지춘양’설 중에 가장 억지스럽다.
도래기재(導驛峙:754.9m:09:45)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와 우구치리를 이어주는 고갯길로서 고갯마루에는 금정굴로
불리는 터널이 있어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근래에 폐쇄되고 현재는 고갯마루를
관통하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이어주는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88번지방도가 지나간다.
산행 들머리의 도래기재 안내판에는 “서벽리 북서쪽 2Km 거리에 있는 마을이름을 따와서
도래기재라고 하며, 도래기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역(驛)이 있었기에 역촌마을이라 하여
도역리(導驛里)라 부르다가 이것이 변음이 되어 현재는 도래기재로 통용되었다.
부족국가 시대에는 소라국이 있어 번창하였고,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 도래기재
주변마을은 여관과 극장 등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재넘어 있는 우구치마을은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아서 우구치(牛口峙)라 불린다.”고
적혀있는데 영주,봉화의 윤승일님의 글은 금정으로 불리는 우구치는 금광이 열리면서 인구가
수천 명에 이르고 당시 캐낸 금이나 은 등의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도래기재 아래에는 1925년
터널이 뚫렸다.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지만 터널은 ‘금정수도’라는 이름표를 단 채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우구치리에서 금정수도까지 광물을 운반하는 삭도를 ‘도래기’라고 부른 데서 고개 이름이
연유했다는 것이 금정광산의 내력을 아는 이들의 말이다... 송아지만 한 금이 묻혀 있다는
금광은 폐광된 지 오래고 금정수도 역시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라고 한다.
우구치리는 6.25동란 당시 국군과 북괴군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나를 도래기재까지 픽업해주고 춘양으로 되돌아 가는 택시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춘양은 오지중에 오지로 그중에서도 강원 영월과 잇닿은
서북쪽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영월의 가장 깊은 땅과 봉화의 가장 깊은 땅이
고산협곡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 조선된 서벽리에 조성된 백두대간 수목뭔을 지나 88번 국도를 따라서 힘들게
올라서면 만나는 도래기재...도래기재를 경계로 북쪽은 남한강 수계이고, 남쪽은 낙동강 수계다.
도래기재 이쪽 저쪽에 있는 우구치리와 서벽리 일대가 춘양의 최고의 오지로 지금이야
반듯하게 포장되어 영월 상동으로 이어진 88번 도로 때문에 차가 흔해지고, 사통팔달
길이 뚫려있어 그런 느낌이 덜 하긴 하지만...
예로부터 춘양이 자리 잡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내륙산간 골짜기를 일러 ‘삼재불입지
(三災不入地)’라 했는데, 삼재(三災)란 도병(刀兵·전쟁), 기근(饑饉·굶주림), 질역(疾疫·질병).
이렇게 세 가지 재앙을 뜻한다.
옛사람들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양백지간(兩白之間)’은 난세와 삼재에도 능히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여겼던 곳으로, 정감록에도, 그리고 예언가 격암 남사고의 예언에서도
양백지간에 자리 잡은 춘양은 전국의 10곳 명당을 뜻하는 ‘조선 십승지(十勝地)’로 꼽혔다
산행을 시작하다(09:50)
영주를 출발하면서 운곡(신산경표상:각화)지맥을 걸을 때 2번을
예약해서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춘양역에서 도래기재에 가야 한다고
예약한 다음에 역에서 택시를 타고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태풍을 방불케하는 강한 바람에 날씨는 얼마나 춥덥지 손가락이
나온 장갑을 끼는 잠깐 사이에 너무 추워 손이 엄청 시리다
산행을 준비하는데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산불감시요원이 차에서 내려
산행을 제지하지는 않지만 의심으로 눈초리로 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매주 산행을 하면서 힘들다 힘들다하고 외치지만 그래도 산에 들어야만
내 맘이 편한 이유는 뭔 병인가요?...초반부터 시작되는 급경사의 올막이지만
쉬엄쉬엄 牛步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10년을 넘게 매주 다니다보니 이제는 직접 만나뵌 산꾼도 있고, 만나지도 못했고,
얼굴도 알 지 못하는 사이일지라도 산꾼들끼리 以心傳心으로 통하는게 있는지
저 시그널만 보며 그저 반가운 느낌이다
우측의 생태통로로 이어지는 곳은 출입금지란다...하기사 나야 갈일도 없다
잣나무 조림지 가운데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태풍급으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역시 청정지역의
오지다운 날씨랄까...
도래기재에서 10분정도 심장이 터질듯한 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예열되지 않은 몸뚱아리를 추스리며 능선에 올라서지만 강한
바람의 기세는 계속된다...이곳은 이제서야 봄기운이 스며드는듯
하지만 강풍의 영향으로 느낄 수 있는 봄기운이 감소되는 듯 하다
그나마 이제서야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철쭉의 꽃봉우리는
여인의 乳頭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힘든 오르막길을 지나 잠시 숨을 고른후에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에
처음으로 만나는 이쁜이가 보라색제비꽃이다...아랫녘의 제비꽃과는
피는 時差가 한달정도는 차이가 나는데 낙엽을 이불삼아 피어있는
저 꽃이 이 강한 바람에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10분간의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랐다고 산이 배려해 준 잠깐의 편안한
길을 걷다가 보니 오르막 능선에 봉분도 사라지고, 상석(床石)이
땅속에 묻혀있는 묘지를 만난다.
묘지(10:05)
봉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무덤 주위의 낙엽속에 숨어서 피기 시작하는
할미꽃, 노랑 제비꽃, 솜나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늘 산행은
염불(산행)보다는 잿밥(야생화 구경)에 더 맘이 가니 날머리로 잡은
차돌배기 삼거리까지 갈란지 모르겠다...못가면 중탈을 하고 담에
한번 더오면 되지...체력도 안되는데 죽기 살기로 갈 일이야 없제
낙엽을 이불삼아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할미꽃
무덤속 亡者의 쥔장이 할머니였나 보다...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갑자기 추운 날씨 탓인지
冷害를 입어서 안쓰럽다...衆生들이나 꽃이나 살기 힘들기는 똑같은 느낌이다.
솜나물꽃(꽃말:발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써 생태형이 봄에 피는 것과 가을에 피는 것이 있는데 키,
잎이나 꽃 모양이 서로 다르며, 전국의 다소 건조한 듯한 숲 속이나 바닷가나 섬의
반 그늘진 곳에 자생하는 꽃으로, 이른 봄 언 땅을 헤집고 내미는 새싹을 나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잎 뒤에 하얀 솜털이 촘촘하게 나 있다.
그래서 이름도 솜나물이라고 한 것 같으며, 아주 오래전에는 부싯깃을 내는 솜으로
썼다하여 부싯깃나물이라는 향명도 가지고 있으며 대장초, 까치취라고도 불린다.
꽃은 꽃자루 끝에 1개씩 달리고 5~9월에 피며 봄에 피는 꽃은 1줄기의 흰 설상화가
있으나, 가을에 피는 꽃은 폐쇄화이고 펴지지 않는다고하며, 봄과 가을의 꽃모양이
완전히 다른 흔치 않은 식물이라고 한다
무명봉(10:07)
산림청 구조이정목 3-1(도래기재 - 구룡산)
묘지와 쬐끄만한 봉우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의 서벽리쪽에
예전에는 없었던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있다...갈 길 바쁜 대간꾼하고는
상관없는 표지판이라 그냥 지친다
옛 영화를 잊어버린 춘양목(금강송)
등로의 남쪽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이고,북쪽은 춘양면 우구치리인데
19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춘양목의 군락지로 명성을 날린 곳이었는데
솔잎흑파리라는 해충으로 인해, 금강송 숲은 전멸하다시피 하고, 지금은
그 빈자리를 잣나무가 차지하고 있으면 신갈나무같은 낙엽송이 많이 보인다
경북 봉화하면 지금도 ‘청정 오지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중에서도 봉화군 중북부에 위치한 춘양면의 ‘서벽권역’은 높은 산들이 동서남북에서
팔을 벌려 감싸고 있는 대표적인 ‘청정 벨트’인데, 실제로 봉화군 춘양면은 조선 정감록에
나오는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다.
봉화군 관계자는 “봉화 춘양면 십승지는 좁게는 애당리 석문동을 일컫지만, 서벽권역
입구 쪽에 ‘석문동천’이란 글귀가 적힌 바위가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춘양면 십승지는
아마도 서벽권역 전체를 지칭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십승지란 경치가 뛰어나고 지형이 좋아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면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로 전원명당이다.
춘양면 서벽권역은 외부로의 통로가 남북을 가로지르는 88번 도로 뿐이다.
면적의 80% 이상이 임야로서 춘양목(금강송)이 생산되는 등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이제사 막 봄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나무가지 사이의 남서쪽으로는 2019년
6월 15일에 쉬크석 영감탱이가 리딩을 하고있는 산악회를 따라와서 홀로
걸었던 내성(신산경표상:문수)지맥길을 걸어면서 올랐던 문수산(文殊山:1.207.4m)이
얼굴을 내미는데 4년전의 아련한 추억이 走馬燈처럼 스쳐가는구나
쉬영감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은데, 엄청 큰 산악회의 대장까지
한 영감탱이가 나같은 독립군과는 레벨이 달라서 만나줄 일이 없겠지.
쉬 영감님!...담배는 끊고, 술은 쪼매마 묵고, 글고 아프지 마소...
아파보니 내만 서럽더이다.
문수산은 봉화의 진산(鎭山)으로 신라시대 때 강원도 평창군 수다사에서 수도하던
자장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메던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하였다 하여 문수산이라 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누대에 고관대작과 노승성불이 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문수산은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하고 문수산에 축서사가 자리잡은 터는 독수리가 짐승을 낚아채는
형국이라 해서 축서사(鷲:독수리 취)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법에서 "날카로운 지혜"는 독수리의 부리와 같은 이치에서 대승보살중에 지혜가 날카롭고 뛰어난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서 문수산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안부(10:12)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걷다보니 지도상에 족보있는 925.9m봉에 도착한다
925.9m봉(10:14)
지맥길에 있는 봉우리였다면 산꾼들의 시그널이 도배하다시피
걸려있을 봉우리같은데, 대간꾼들의 무심한 탓인가, 모르고
지나간 탓인지,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는지는 몰라도 국토정보지리원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3-2(도래기재 - 구룡산)
아침에 산행을 시작할 때보다 강한 바람은 많이 수그러 들었지만
아직도 바람은 차갑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취해
나홀로 흥얼거리면서 걷는 이 길...언제까지가 될진 몰라도 다리에
힘이 있는 그날까지 걸어보는게 내 유일한 소망이다
안부(10:15)
群木一松
경북 북부지역과 강원도의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박새도 겨울잠을 끝내고
얼굴을 내미는데 그저 반갑기만 하다...정신 좀 차리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해야제...
나무계단을 따라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고도를 높일수록
이곳의 봄기운은 더디지만 코끝으로 느껴지는 봄기운에 맑은 공기는
도시에서 찌든 肉身을 淨化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이 맛에 매주 산이란 곳에 중독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무명봉(10:20)
무명봉 아래에서 편하게 걸어라고 살짝 길을 돌려놨다.
대간길이 안 그래도 예전과 달리 고속도로같은 느낌인데
자꾸만 사면길을 만들어 놨으니 점점 野性을 잃어가는 듯 하다
이름모를 쪼맨한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하금정 갈림길이다
봉화군 춘양면에 속해있으며, 골짜기의 모양이 소의 주둥이를 닮았다고 해서 고개 이름이
‘우구치(牛口峙)’라 했는데 우구치리에는 ‘금정(金井)마을’이 있는데 상금정과 하금정으로
나눠져 있으며, 1923년 채굴이 시작된 금광인 ‘금정광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금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는 ‘금본위제’를 시행하면서
‘선원주의(先願主義)’라고 해서 산의 소유 여부와는 관계없이 캐낸 금을 근거로 광업권을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채굴 허가를 내주는 산금(産金) 정책을 시행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을 찾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르며 기록에 따르면 1933년
한 해만 전국에 자그마치 3000개 금광 개발작업이 이뤄졌을 정도였는데
우구치리의 금정광산은 경남 김해 출신의 광산업자인 김태원이 1923년 개발한 광산으로,
전 재산을 쏟아부어 굴을 파고 갱목을 넣는 끝도 없는 일을 2년여에 걸쳐 하다가 먹을 쌀이
다 떨어져갈 무렵에 노다지 금맥을 발견했던 곳이 금정 광산이었다고 한다
금정광산에서 한창 금이 쏟아져나오던 시절, 이 깊고 좁은 골짜기의 금정마을에만 인구가
3000명이 넘었다고 하며, 여관과 식당이 즐비했고, 한 집 건너가 술집이었다고 한다
하금정 임도(10:23)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하금정마을에서 서벽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이정표와
벤치 2개와 아주 잘생긴 춘양목(금강송) 한그루가 임도를 지키고 있고, 좌측으로는
우구치리로 내려가는 임도이다
봉화군 춘양면에 속해있는 우구치리(宇龜峙里)는 자연마을로 새터, 상금정, 상시장,
사호, 하금정, 샘골, 와흥 등이 있으며, 와흥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고, 새터는 인근에 금, 은, 동 광산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곳에 종사하는 광부들이
새로운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호는 금광을 뚫는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사호와 칠로에서 많은 금이 나왔다 하여 생긴
지명이며, 딸기와 복수박이 유명한 마을이다.
임도변에 서 있는 멋쟁이 춘양목(春陽木)
금강송(金剛松)이라 부르는 춘양목은 겉껍질이 붉은빛이 돌아 적송(赤松)이라고도
부르는 육송(陸松)인데, 춘양목이라는 이름은 집산지인 춘양의 지명을 딴 것이다.
춘양목은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곧게 자라는 데다가 껍질이 얇고 결이 곱고
부드러우며, 또한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으며, 켜면 그냥 하얗게 보이기
쉬운 다른 지역의 육송과는 달리 붉은빛 또는 보랏빛을 띠고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으며, 대패질을 해놓으면 윤기가 자르르 돈다고 다.
춘양목은 춘양면의 북쪽인 소천면과 강원도 지역에까지 분포되어 있었으며, 육로로
수송할 수 없었으므로 일제 때만 해도 뗏목을 만들어 낙동강에 띄우면 소천면의 석포리,
현동리, 임기리와 명호면을 지나 안동에서 건져 매매가 이루어졌고 한다.
금강송 안내판
임도에서 계단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조금 잠잠했던 바람이 또 거칠어진다
강한 바람에 맞서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 주위에 펼쳐지는 푸른
사초(莎草)가 마치 필드에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눈이 시원하다
무명봉(10:28)
산림청 구조이정목 3-3(도래기재 - 구룡산)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이정하
그대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고도를 높일수록 초록빛깔보다는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대간길
이곳은 아직도 완연한 봄이 오려면 멀었나 보다.
1,027.0m봉(10:33)
1,027.0m봉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잠시후에
오를 구룡산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면서 좌측에 있는
민백산(民白山:1,212m), 삼동산(1,179.8m)으로 이어지고 있다
똑닥이 카메라로 당겨본 민백산(民白山:1,212m)의 모습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와 덕구리 사이에 걸쳐 있는 민백이산은
백두대간의 도래기재, 구룡산, 태백산 구간의 구룡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 있으며,
서쪽으로 삼동산으로 이어지며, 옛날 조정에서 필요로 하는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의
산지로 잘 알려진 곳으로, 남쪽의 봉화군 춘양면은 가장 좋은 소나무인 춘양목으로 알려진
곳이기에, 춘양면과 맞닿아 있는 상동읍의 소나무도 좋은 것은 당연하였다고 한다.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상동읍 천평리 지역은, 현재 한.미 공군 사격장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둥글고 흰 바위가 많아 대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민백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생이 많구나
춥고 강한 바람에 맞서면서 봄소식을 알려주는 개별꽃
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조금만 기다려라
좋은날이 올거야...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으니까 말이다.
무명봉(10:36)
조그만한 봉우리도 사면길로 돌려놔 버렸구나.
힘이들 때는 좋지만 자꾸만 대간꾼들이 野性을 잃어버리고,
‘꾼’이 아닌 온실속의 화초처럼 ‘등산객’으로 변해 버릴까 걱정이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3-4(도래기재 - 구룡산)
구룡산으로 향해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대간 등로는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나 강한 바람은
北風寒雪 못지않은 차갑기만 하다
안부(10:44)
산에 오르면 수학공식처럼 不變의 원칙이 적용되는게
반드시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완만한 능선의 안부로 내려왔다가 다시 통나무 계단위로 오른다
나무계단 밑에서 바람을 피해서 봄소식을 알려주는 하얀제비꽃
무명봉(10:48)
산림청 구조이정목 3-5(도래기재 - 구룡산)
친구따라 강남간다 했던가 조금전 오르막의 하얀제비꽃처럼
무명봉의 내리막길 통나무 계단밑에서 노랑제비꽃이 대간길의
봄소식을 알려준다
갑자기 강한 바람은 잦아들기 시작하고, 수없이 지나간 대간꾼들의
흔적들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하기사 나도 4번째 이 길을 걷고있는 중이다.
가야할 구룡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폐헬기장(10:58)
폐헬기장에 있는 산림청 구조이정목 3-6(도래기재 - 구룡산)
강한 바람이 멈추니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등로 주위에 있는 철쭉은 봄의 향연을 준비하는구나.
1주일만 늦게 왔으면 철쭉의 요염한 자태를 맘껏
즐길수가 있었는데 아깝다...야생화와의 조우는 타이밍이 중요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예전에 없었던 시설물들이 많이 보인다
가야할 구룡산 정상이 뚜렸하게 보인다.
좌측으로 민백산과 삼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내리막 등로의 낙엽속에서 숨어서 피고있는 귀하디 귀한
하얀붓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데 산에서 만나는 붓꽃은
90% 이상이 각시붓꽃인데 이 꽃을 만나다니 오늘 산행을 하면서
본전은 충분히 뽑은 셈이다
하얀붓꽃(꽃말:믿는 사람의 행복)
흰 바탕에 노랑무늬가 들어있는 하얀붓꽃은 한국 특산의
멸종위기 식물 2급으로 한 꽃대에 두 송이의 꽃을 피우는 공통점이 있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의자 2개가 산꾼 범여를 기다린다
쉼터(11:05)
쉼터에 있는 산림청 구조이정목 3-7(도래기재 - 구룡산)
등로에서 바라본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계곡과 그 뒷쪽으로
민백산이 보이고 좌측에 보이는 산이 삼동산이다
천평리(川坪里)는 천평리(川坪里)는 본래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춘양면(春陽面)에
속하였으나 1963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강원도 울진군(蔚珍郡)이 경상북도로
이속(移屬)되고 천평리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으로 편입된 마을로 원래 ‘냇들’,
‘내뜨리’라고 불렀는데 한자화되었다.,, 고직령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농거리에서 어평천과 합류하는데, 냇물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서 냇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대간꾼들에게 배려를 많이 흔적들...
조그만 봉우리라도 오르지말고 사면길을 가라는데 맥길을
찾는 대간꾼들이 이러다가 둘레길을 걷는 등산객이 될 듯하다
춘양목의 계보를 끊지 않으려고 꿋꿋이 산을 지키는 금강송
산림청 구조이정목 3-8(도래기재 - 구룡산)
무명봉(11:13)
무명봉이 아닌 사면길로 걷는데 올해 처음 만나는 알록제비꽃과 조우를 한다
알록제비꽃(나를 생각해 주셔요)
어떤 꽃은 잎이 꽃보다 아름다워서 도대체 잎인지 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알록제비꽃잎도 알록달록하니 아주 예쁘서 이름도 알록제비꽃이라고 한다.
알록제비꽃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양지 혹은 반음지의
물 빠짐이 좋은 곳에 잘 자라며, 키는 5~10㎝이고, 잎은 길이와 폭이 각 2.5~5㎝로
표면은 짙은 녹색인데, 잎맥을 따라 흰색 무늬가 있으며 뒷면은 자주색이다.
잎의 색에 따라 청알록제비꽃이 분리되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나누지 않으며, 청알록제비꽃은
앞면에 흰색 무늬가 약하고 뒷면은 푸른데, 초기에는 이렇게 구분되지만 꽃이 진 여름이 되면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자라고 있는 곳의 여건에 따라 약간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즉, 일조량이나 일조 시간, 기온, 토양 성분, 수분 등에 따라 변신을 하는 것으로, 제비꽃만큼
새로운 환경에 맞춰 그 형태와 빛깔을 바꾸는 식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비꽃은 종류만도 60여 가지나 된다고 하며 꽃은 5~6월에 자주색으로 피는데,
몇 개의 꽃줄기가 잎 속에서 나와 끝에 꽃이 1개씩 달리며, 열매는 8~9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린다.
제비꽃과에 속하며 청자오랑캐, 청알록제비꽃, 알록오랑캐, 얼룩오랑캐라고도 한다
알록제비꽃에 홀려서 한참을 머물다가 내려서니 상금정(上金井)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오는데 최근에 설치한 구룡산 안내판에는 서벽임도라고 해놨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西碧里)로 가는 길
서벽리(西碧里)는 마을 앞으로 운곡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꽃마, 수리봉,
말밭둔지, 큰즐, 거리목 등이 있는데 꽃마는 서벽리와 두내로 통하는 삼거리에 있는 마을로,
문수산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꽃봉오리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말밭둔지는 들판의
형상이 곡식을 되는 말(두)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사과농사가 활발한 마을이다.
서벽리에는 주실령고개에서 시작되는 1.5㎞의 금강소나무 숲은 두내약수터와 연결되는
산책로이자 삼림욕장으로 조성된, 춘양목 군락지가 있으며, 또한 산림청 주관으로 조성된
백두대간 수목원이 있는 마을이다
서벽임도(11:16)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상금정(上金井) 마을에서 서벽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이정표와 구룡산 안내판과 예전에 없었던 서벽임도 안내판과
팔각정 쉼터와 의자가 있는 임도로 좌측으로는 우구치리 삼금정 마을로
내려가는 임도이다
영월군 상동읍 내리와 도 경계(강원도와 경북)을 이루고 있는 금정(金井)으로
불리는 우구치는 금광이 열리면서 한때는 인구가 수천 명에 이르고 당시 캐낸 금이나
은 등의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도래기재 아래에는 1925년 터널이 뚫렸다.
이는 당시 금광에 물이 많이 차있어서 마치 우물 속에서 금을 캐는 것 같다 하여
금정(金井)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영월 상동은 세계적인
텅스텐 광산이 있다.
서벽임도에 있는 구룡산 안내판
오늘 내가 걷고있는 대간길은 정감록에 나오는 봉화 십승지길과 겹쳐지는 곳이다
십승지 가운데 봉화군 춘양면 일대를 표기한 원문을 보면 풍기의 금계촌에 이어
두 번째로 화산북거 소라고기 내성현동 태백양면(花山北去 召羅古基 奈城縣東 太白陽面)’이라 했다.
조선조가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태백산 아래 이곳 각화사에 사고 (史庫) 를 지은 것만
보아도 춘양이 지닌 지리적 여건을 짐작할 수 있는데, 춘양은 태백산이 소백산으로 건너가는
과협처 (기를 모으는 곳)에 도래기재를 만들면서 남향받이로 생긴 마을인데 지금은 영동선
기차가 면소재지를 지나고 한 여름 피서객이 몰려드는 불영계곡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를
끼고 있어 벽지라는 인상은 많이 가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춘양은 새색시처럼 얼굴을 숨기고 있는데, 특히 마을 어구이자 면을 관통하는
운곡천의 수구 (물 빠져나가는 곳)에 삼척봉이란 둥근 산이 마을을 가리고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돼 있다...'정감록' 은 물론 여타 비결서도 난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춘양을 반드시 꼽고 있다.
춘양을 두고 '소라고기 (召羅古基)' 라 했고 이는 옛 부족국가시절에 이미 이곳에 소라국이라는
독립된 나라가 있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춘양면 일대가 외부의 도움없이 자생할 수 있는 지역임을 말해주는데, 또 전란을
피하기 좋다는 것은 임진왜란 때 서울의 사대부들과 서애 유성룡의 형 유운룡이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서벽임도에 서 있는 안내판
임도에서 목책 계단으로 올라서니...
잠잠했던 바람이 變心을 했는지 또다시 심하게 불어대기 시작한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기에 가야겠다...북풍한설의 눈보라에서도
산길을 걸었는데, 지금이야 몸뚱아리가 망가진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범여지만 그래도 산행 짠밥이 얼마인데, 이런 바람에
쫄면 안되제 ...묵묵히 구룡산으로 향한다
구룡산을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몸뚱아리의 통증이 시작되고, 그것에 수반되는 느려지는 발걸음...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베낭속의 진통제 한 알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머리좋은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길수 없고,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
이길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그까짓 통증이 뭔 대수랴...즐기듯이 걷자
산림청 구조이정목 3-9(도래기재 - 구룡산)
고도를 높혀갈수록 푸르름은 사라지고 산은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신선봉(神仙峰:1,295.3m)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운무가 머무르니
오갈데 없는 눈길
요란히 딱다구린
낭구를 쪼아대고
한나절 기다려보니
춘사월도 다가네
산림청 구조이정목 3-10(도래기재 - 구룡산)
야들도 나처럼 추위에 약하나...산 아래의 철쭉은 落花가 된 지가
한참을 지났는데 이곳의 철쭉은 이제사 겨우 잎사귀가 보인다
쉬영감탱이의 흔적
쉼터(11:50~12:05)
산꾼의 지친 肉身의 휴식을 위해 기다리는 의자
노린재 나무들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1,250.5m봉을 바라보면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250.5m봉으로 오르는 능선에는 대간꾼의 흔적이라곤 전혀없다.
대간길의 족보있는 봉우리들은 너무 홀대받는 느낌같아서 나라도
올라가서 눈맞춤이라도 해주는게 예의일 것 같아서 편안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원시림(?)같은 직진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아래서 보기와는 달리 의외로 등로는 뚜렸하다
1,250.5m봉(12:12)
1,250.5m봉 정상에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흔적은 전혀없고,
우리나라 峰 산행의 최고수 중의 한 분이신 문정남님의 시그널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구룡산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사면길로 내려서니 안부를 만난다
안부(12:15)
암릉지대가 나오고 다시 구룡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이 시작된다
암봉(12:17)
산림청 구조이정목 3-11(도래기재 - 구룡산)
구룡산 가는 길
능선에 올라서면 구룡산 정상인 줄 알았는데...
무명봉에 올라서니 구룡산은 아직도 저만치 멀리 있구나.
감기란 넘도 충분히 앓고나야 완쾌되 듯이 산 정상도 도착을 해야
정상이니 미리 예단(豫斷)하면 안된다는 걸 구룡산 정상가는 길이 가르쳐 주는구나
아직도 겨울잠(?)을 즐기고 있는 구룡산 가는 길
야생화들의 지형지물 이용법은 산꾼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준다
현호색과 노랑제비꽃은 낙엽과 바위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이 추운 날씨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정말 감탄할만하다
심하게 앓고나야 감기가 낫듯 시간이 걸릴만큼 걸리고 나서야
구룡산 정상이 보인다
얼마나 추웠길래 이제서야 진달래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구룡산 정상에 도착한다...오늘길에 야생화와 遭遇 하느라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정상에 도착했는데 큰 걱정은 없다.
산악회를 따라 왔으면 동료에게 민폐니까, 미안해야 하지만
나홀로 걷는 독립군이야 그런 건 걱정 1도 안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산이야 늘 거기 있으니 이번에 못가면 다음에 가면되제...영혼이 자유로운
산꾼으로 길을 걷고 싶다
구룡산(九龍山:1345.7m:12:35)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구룡산은 태백산과
옥돌봉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 산으로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남북으로 흘러서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전설에 의하면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뱀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어쩌면 우리 동네 뒷산인 구룡산의 전설 내용과 판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牽强附會(경강부회 :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는 것)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설이야 모두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구룡산의 아낙 관련 전설은 산 이름이 먼저
생기고 난 후에 무리하 꾸며진 전설을 가져다 붙인 듯하여 전혀 개성이 없다.
‘구(九)’는 본디 많다는 뜻으로 따라서 구룡이라고 하면 용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용은?... 산은 천만가지 형상을 가져서 크다가도 작아지고 일어나다가도 엎드리고
숨다가도 나타나는 등 변화무쌍하니 마치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그래서
전통풍수지리에서는 산줄기를 龍脈 또는 來龍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결국 구룡이라는 뜻은
산줄기가 많다는 뜻으로 실제 이곳 구룡산에 올라서면 수많은 산줄기가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구룡산이라고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구룡산에 올라서니 주변의 수많은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높게 솟아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저 많은 높은 산들은 그들 옆구리에 구비구비 흘러가는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을 것이다.
“我東 山高水麗 故曰高麗‥‥‥(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수려하여 ‘고려’라고 하였고)‥‥‥”
전통지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말인 즉 여기 구룡산에 서면 KOREA(고려)라는 우리나라
이름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인증샷
낙엽속에 묻혀있는 구룡산 정상의 삼각점(△태백 26 1995 재설)
넓은 구룡산 정상의 좌측으로 내려서면 민백산과 삼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이곳으로도 가는 산꾼이 있는지 그쪽으로 시그널 몇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삼동산(三洞山:1,179.8m)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경상도 봉화군 춘양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부터 산나물이 많이 났으며 봄철 보릿고개 때면 경상도와 강원도 사람들이
산나물을 뜯으러 많이 왔다고 하며, 상금정에서 약 8㎞ 거리에 있으며 산 능선을 경계로
경상북도와 강원도가 도계(道界)를 이루며 삼동산 고랭지에는 화전민들이 채소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지명은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는 동면 삼동리(三洞里)와 관련이 있는 듯한데,
동리와 산 중 어느 지명이 먼저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으며, 삼동산(三洞山) 지명은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삼동리에서 삼동산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침에 열차의 연착으로 인해서 산행 시간이 20분 이상 늦었고, 오름길에 올해
처음으로 많은 야생화의 유혹에 넘어가서 눈맞춤을 하는 바람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참 늦게 구룡산 정상에 도착하는 바람에 쬐끔만 머물다가
서둘러 길을 나선다
구룡산에서 고직령으로 내려가는 등로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도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지만 바닥에는 봄을 감지할 수 있는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에 저항시인였던 이상화는 나라잃은 억압받는 현실을 빼앗긴 들에
비유하면서 허무와 애탄, 민족혼을 봄에 되찾겠다는 의지로 노래한 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가 마치 이곳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다.
내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하는지 파릇파릇한 새순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현호색과,
개별꽃,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흐미!...빨리 산행을 하기에는 틀려 버렸네...
왜현호색(꽃말:새로운 시작)
현호색(玄胡索)은 색깔이 오묘한 빛을 띠고 있어서 ‘현(玄)’이라 하였고, 고대 중국의
북방 민족인 호국(胡國)지역에서 생산되어 ‘호(胡)’라고 하였으며, 그 묘가 서로
꼬인다는 뜻으로 ‘색(索)’이라고 하였다...연호색(延胡索)이라 부르기도 하며, 혈액순환을
좋게 해주고, 어혈을 제거하며, 기(氣)를 통해서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이 탁월하다
종류로는 왜현호색, 점현호색, 들현호색, 빗살현호색, 자주괴불주머니현호색,
댓잎현호색 등이 있는데, 왜현호색은 ‘작은 현호색’이라는 뜻으로 양귀비과에 속하며
이칭(異稱:달리 부르는 명칭)으로는 산현호색이라고도 한다
자줏빛이 도는 하늘색으로 4~5월에 피며, 길이는 1.7~2.5cm로 원줄기 끝에서
3~10개가 뭉쳐서 달리며, 한쪽 옆을 향하며 입술처럼 퍼지는게 특징이다
꽃모양이 예뻐서 관상용을 많이 재배되며 유독성 식물로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추위 탓인지 이제서야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바람난 여인들이
갈 길 바쁜 산꾼 범여를 유혹하는데 이 어찌 여인의 유혹을 뿌리친다는 건 예의가 아니제.
바람난 여인(얼레지)이 대놓고 하는 유혹에 군락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올해 처음 만난 바람난 여인(얼레지)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듯이 遊戱를
즐긴다
이런맛에 산행을 하는거야...조금전 구룡산아래에서 만난 귀하디 귀한
하얀붓꽃과 얼레지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으니 오늘 산행지 선택은
탁월한 신의 한수였으며, 본전은 충분히 뽑고도 남는 장사였으니
더 무엇을 바란다는 건 욕심이고 집착이 아닐까...기분은 굿이다
안부(12:40)
얼레지(꽃말: 바람난 여인)
얼레지는 전국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구근식물로, 반그늘의 물 빠짐이
좋은 비옥한 토질에서 잘 자자라며, 키는 20~30㎝이고, 잎은 길이가 6~12㎝,
폭은 2.5~5㎝로 녹색 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가 얼룩덜룩해서
얼룩취 또는 얼레지라고 부르며, 잎의 형태는 좁은 난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꽃은 4월에 두 장의 잎 사이에서 긴 1개의 꽃줄기가 나오고 상단부에 1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리며, 꽃 색깔은 자주색이고, 꽃잎은 6개이며 길이는 5~6㎝, 폭은 0.5~1㎝이다.
아침에는 꽃봉오리가 닫혀 있다가 햇볕이 들어오면 꽃잎이 벌어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10분 이내이며 오후가 가까워지면 꽃잎이 뒤로 말리고, 꽃 안쪽에는 암자색 선으로 된
“W”자 형의 무늬가 선명하게 나 있다.
열매는 6~7월경에 갈색으로 변하는데, 모양은 타원형 또는 구형이며, 종자는 검은색으로
뒤에는 하얀 액과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씨방이 아래로 향해 있기 때문에 받을 시기를 놓치면
쏟아지고 없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씨앗이 개미 유충 냄새와 비슷해 개미들이 자신들의
알인 줄 알고 옮겨 나른다는 것이다... 덕분에 씨가 발아하기 쉬우며 비교적 좁은 범위에
빽빽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잎이 한 장과 두 장으로 나오는데, 한 장을 가진 잎은 개화하지 않으며, 간혹 잎이 한 장인
것에서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 있지만, 이는 다른 잎이 손상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종자 발아를 해서 생긴 구근은 해마다 땅속 깊이 들어가는 특성을 보이는데, 많이 들어간 것은
약 30㎝ 정도 되고 일반적으로 20㎝가량은 들어가 있는데, 바로 이 구근 한 개에서 1개의 꽃이
피므로 얼레지를 1경1화라고 한다.
또 특이한 것은 씨가 떨어진 뒤 바로 이듬해에 꽃이 피는 게 아니라 4년 이상 지나야만 꽃이
핀다는데 그래서 얼레지 꽃을 보면 매우 반갑기도 하다. 간혹 흰얼레지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외국에 자생하는 흰얼레지와는 다른 형태의 것으로 보인다.
1,314.5m봉(12:45)
1,314.5m봉 정상에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흔적은 전혀없고, 이곳 역시
봉 산행의 大家이신 문정남 선생의 시그널 하나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무명봉으로 치부되는 1,314.5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쉼터(12:46)
산림청 구조이정목 5-28(부쇠봉 - 구룡산)
쉼터를 지나면서도 얼레지의 유혹은 계속되고 그 바람에
또 발걸음이 늦어진다...본업(산행)보다는 부업(야생화 보는 재미)에
더 정신이 팔려버린 오늘 산행이다
不是愛花卽欲死(불시애화즉욕사)
꽃을 죽도록 사랑해서가 아니라
只恐花盡老相催(지공화진노상최)
꽃 지면 늙음이 다가오는 것 두려울 뿐
繁枝容易紛紛落(번지용이분분락)
번다한 가지는 쉽게 분분히 떨어지고
嫩蘂商量細細開(눈예상량세세개)
여린 꽃부리는 헤아려 가냘프게 피네
두보(杜甫)의 漢詩 중에서
* 두보(杜甫:712 ~ 770)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으로 널리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주요 작품에는 《북정(北征)》,《추흥(秋興)》 등이 있다
그의 시 작품과 시풍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큰데, 고려시대에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중국인 채몽필(蔡夢弼)의 저작인 《두공부초당시전(杜工部草堂詩箋)》,
황학(黃鶴) 보주(補註)의 《두공부시보유(杜工部詩補遺)》 등이 복간(複刊)되었다.
쉼터를 지난 다음에 조금을 더 내려서고 나서야 바람난 여인의 유혹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생각보다 산행 시간이 1시간 가까이 지체된 느낌이다
70이 다 된 나이에 어느 여인이 나를 유혹하겠는가?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요염한 얼레지한테 정신이 팔려서
유희를 즐긴 이 기쁨이 어디야...아쉬운 작별을 하고 본업(산행)에 충실한다
넓은 공터(12:50)
그리 멀리있지 않는 곳에 있는 신선봉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가?
얼레지 군락지를 벗어나서 부지런히 걸어볼까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는 등로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눈개승마가 발길을 붙잡는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아주 먹기좋고 부드러운 눈개승마를 꽤 많이 수확한다.
데쳐서 막걸리 안주로는 금상첨화일 듯 싶다
안부(12:55)
산림청 구조이정목 5-27(부쇠봉 - 구룡산)
폐헬기장(13:00)
폐헬기장을 지나자마자 고직령에 도착한다
고직령(高直嶺:1,234m13:02)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직령에 대해 옛 문헌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곰넘이골로
들어가서 산사나무골 어귀를 지나쳐 좀더 가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를
올라가면 서벽과 애당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높고 곧은 고개라고 고직령이라고
하며, 일설에는 고개 북쪽에 사창(社倉)이 있어 고직(庫直)이가 지키고 있어서
고직령이라고도 한다.
김정호(金正浩)의《대동지지》의 삼척 산천조에 보면 고석령(孤石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고석령은 서쪽 1백 10리에 있는데 길이 좁고 매우 험하디 험하고,
안동땅으로 통하는 길인데 춘양 서쪽이 되며 영천[영주] 예불령(예배령)의 북쪽이다"라고
하였고, 《영가지》에는 고적현(高適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부터 이 고갯길은 영남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이었고 특히 고개 넘어
경상도 땅의 도심리(道深里) 에는 도심역(道深驛)이 있어서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오는
관리들을 묵게 하였고 천제(天祭)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의 발 길이 끊어지지 않던
고갯길이었고, 곶적령(串積嶺)이라고 기록한 곳도 있다
조선시대에 보부상들이 봉화와 영월을 오가면서 호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었다는
산신각이 100m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봐도 산신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편안히 걷고있는 이 고개도 民草들이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져 밋밋한 능선에 있는 고직령은 이정표(구룡산 1.26km 곰넘이재 1.88km
향이동 2,0km)와 표지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서북쪽으로는 구룡산(1344m)과 삼동산(1078m)으로 이어지며,
춘양면 쪽에서는 서벽리의 곡내 골짜기나 여기묘(女妓墓, 현지에서는 예기묘라고 함)
에서 넘을 수 있으나 고개가 매우 높고 가파른데, 지명은 '고개가 높고 곧은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
이름 그대로 높고 곧은 고개라는 뜻으로 [조선지지자료]에는 고직령(高直嶺),
에 언문(한글)으로 '고직이재'라고, 병기되어 있으며 [조선 지형도]에는
고칙령(高則嶺)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고직령을 지키고(?)있는 쉼터의자
고직령을 지나면서 나타나는 고속도로같은 넓은 대간길에
쉬크석 영감의 흔적을 만난다...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있는
이 難世에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영감탱이가 보고 싶다
갈 길이 바쁜 산꾼 범여의 발길을 자꾸만 눈개승마가 발길을 잡는다.
부드럽고 맛있게 생긴 눈개승마를 아무리 바빠도 그냥 두고 갈 수 없잖은가...
등로를 벗어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개승마의 짜릿한 손맛을 본다.
* “봄 나물의 왕”이라는 눈개승마는 인삼, 두릅, 고기의 세가지의 맛이 난다고해서
삼나물이라고도 불리며, 전국 각지의 고산지역에서 주로 자생한다.
눈개승마라는 이름은 눈이 하얗게 쌓을었 때, 제일 먼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나물이라는 뜻으로, 깊은 숲속에서 자라는 눈개승마는 3월말이나 4월이 어린
순이 올라오는 제철 시기로 맛과 향이 뛰어나 봄나물의 최고로 꼽힌다.
탄수화물이나 고기같은 식재료가 부족한 산간지역의 민초들이 고기 대용으로
많이 먹은 나물로, 효능이 뛰어나 약초로 쓰이며, “승마초”라 불리기도 한다
능선을 넘어선 다음에...
능선으로가 아닌 사면길로 곰넘이재로 향한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5-26(부쇠봉 - 구룡산)
졸면서 걸어가기 딱 좋은곳이지만 주변으로 널려있는 눈개승마가 발길을 잡는다
안부(13:13)
사면길도 뚜렸하지만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도 뚜렸한데 직진으로 오르면,
족보있는 1,200.2m봉인데, 대간꾼들도 다들 이쪽으로 올라갔는지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오르막길에는 자작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1,200.2m봉(13:16)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문정남님의 시그널이 외롭게 걸려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트랭글앱에서는 경석봉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바뀌었는지 이번에는 아무런 음성이 나오지 않는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5-25(부쇠봉 - 구룡산)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로 내려간다
고개(13:22)
고개에서 우측 능선이 아닌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아주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부지런히 걷는데 낙엽속에 숨은 구슬붕이를 만난다.
구슬붕이(꽃말:기쁜소식)
용담과에 속하는 이년생초로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이고, 양지바른 들 또는
묘지에 서식하며 크기는 2~10cm 정도이고, 꽃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연한 보라색으로 피며, 열매가 맺힌 모습이 마치 구슬을 담은 것과 같다고 하여
‘구슬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용담(龍膽)에 비해 키가 작기 때문에
‘소용담(小龍膽)’이라고도 부른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5-24(부쇠봉 - 구룡산)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의 무명봉을 올라서니...
족보가 없는 봉우리라 아무런 흔적도 없다.
다시 제도권 등로로 내려와서 안부로 향한다
안부(13:30)
안부를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져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는 사면길로 이어지나 족보있는 1,088.4m봉을 오르기 위해 직진으로 향한다
1,088.4m봉(13:35)
1,088.4m봉 정상을 찍고 잡목을 헤치면서 넓은 사면길로 내려선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영월군 상동읍 천내리 상천평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곰넘이재로 향한다
산림청 구조이정목 5-23(부쇠봉 - 구룡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신선봉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까칠하게만 보인다
곧바로 곰넘이재로 내려선다
곰넘이재(熊峴:1,088.4m:13:45~55)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상천평에서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참새골로
넘던 고개로 먼 옛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태백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넘던 고개요,
영남에서 강원도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이다.
문헌 영가지(永嘉誌)에 웅현(熊峴) 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언제부터인가 순우리말로 순화하여 곰넘이재로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곰"은 "검"에서 온 말로 "신"을 의미하고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려 가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행렬을 이루니 "신"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곰(검신)님이"이라 불렀다. 즉, 웅현(熊峴)은 우리말로 "곰재" 혹은 '검재"이니
다른말로 "신령(神嶺)이다.
일설에는 "곰"을 "고개"로 해석하고 "님이"를 "넘이"로
봐서 "곰님이"는 "고개넘이"로 본다. 참새골은,동이정, 장부골, 석문동, 참새골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애당2리를 통칭하여 "참새골"이라 하는데, 참새가 날아가는 형세를
갖춘 산이 북쪽에 있다고 하여 "참새골", 또는 약수가 나오는 "참샘"이 있다고 하여
"참새골"로 불리는데 "정감록"에 의하면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곰넘이재 안내판
참새골과 석문동을 이 고장 사람들은 열두 도심이라 한다.
열 두골짜기로 이루어진 참새골과 석문동은 시루봉 능선을 따라 구룡산에서
고직령. 신선봉. 차돌배기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각화산으로 가지를
내리는 산줄기의 내경에 속하는 계곡으로 행정상 애당리로 표현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열두 도심이라 이르고 그 뜻은 골이 깊어 들어 갈 때와
나올 때의 길이 다르다 하여 이른 말이라 한다.
지금 시간이 14시가 다 된 시간이다...야생화와 나물(눈개승마)에 눈이 어두워
생각했던 시간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처음에 생각했던 차돌백이 삼거리에서
석문으로 탈출해서 애당리로 내려오려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내 걸음으로는
3시간 반이 더 걸릴것 것이고 그러다보면 춘양에서 동서울가는 막차 시간을
맞추기가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산에 대한 욕심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이곳에서
참새골로 중탈을 결심한다...산은 늘 거기있는데 뭐 집착할 일이 없제
다음에 한번 더 오면 되지 뭐...
내가 요즘 치는 골프도 모든걸 내려 놓으니 그렇게 편한데 산행도
거리 욕심을 버리니 이렇게 편하구나...골프도 나이와 망가진 몸뚱이는
생각않고,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서 드라이버 비거리와 스코어에 신경
쓰다보니 한동안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스코어가
100돌이면 어떻고, 보기 플레이면 어때...드라이버 거리가 짤순이라도
아무런 흉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명랑 골프로 돌아서니 그렇게 편한데...
산행도 마찬가지인기라...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배운다.
내려 놓으니 이렇게 편한데...왜 그리 집착하면서 살았는지...
편안한 내리막길에는 산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각시취도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참새골에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매화말발도리(꽃말:애교)
산 기슭의 바위틈에서 1m쯤의 낮은키로 자라는 특이한 식물로 꽃이 진
뒤에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붙이는 쇳조각 )처럼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꽃이 만개하며 참으로
아름다우며, 전 세계적으로 60여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만첩빈도리, 빈도리 등 1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
계속되는 참새골로 내려가는 지루한 임도...피곤하다
고도를 850m정도 낮추니 이곳은 윗쪽과는 달리 綠陰芳草로 바뀌어 버린 여름 날씨이다
구룡산을 바라보며 내려서는데 하늘은 참으로 맑다
흐미!...아까운 거...눈개승마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버렸다
철쭉이 만말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차량이 올라올 수 있는 임도 끄트머리에
관리가 되지 않은 듯한 사방댐이 보이고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부부가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중이다
사방댐?(砂防:14:45)
언듯보니 사방댐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보기에는 사방댐 같은데,
그렇다고 확실하게 확신이 서지 않지만 자세히 보니 사방댐처럼 보인다.
사방댐이란 토사의 유실이 심한 하천에 토사가 하류로 흘러내려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설치하는 댐을 말하는데, 하상자갈의 이동이 심한 곳에 주로 설치되며,
상류 쪽에 자갈을 퇴적시켜서 하상을 완만한 경사로 안정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곰넘이재에서 이곳까지 1.6km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눈개승마를 채취하고,
야생화 구경을 하면서 여유롭게 내려오다보니 내리막길에 30분도 안 걸릴 거리를
50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사방댐 근처에서 만난 각시취(꽃말:연정)
꽃이 예쁘고 가는 털이 있다 하여 '미화풍모국'(美花風毛菊)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각시취는 참취나 수리취처럼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며, 통증을 멈추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어 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에서 자라며,
원줄기는 높이 70~150cm 정도이며 날개와 잔털이 있고 약간의 가지가 갈라지고
근생엽은 모여 나고 어긋나는 경생엽은 길이 9~18c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우상으로 깊게
갈라지며 5~10쌍의 열편은 피침형으로 양면에 털이 있으며 뒷면에 선점이 있다.
8~10월에 산방상으로 달리는 두상화는 지름 12~16mm 정도로 자주색이다.
수과는 길이 3~4mm 정도의 타원형이며 관모는 길이 7~9mm 정도이고 ‘큰각시취’와 달리
총포가 넓은 종 모양이며 너비 10~14mm 정도로 넓으며 잎의 결각 모양이 여러 가지이다.
어린순은 식용하며 관상용으로도 심으며 어린순을 다른 산나물과 같이 데쳐서 무쳐 먹거나
연한 잎을 삶아 말려두고 나물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건네니 식사를 좀 하라고 건네는데, 별 생각이 없어서 사양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처음에는 나물을 뜯으러 오신분이신줄 알았는데
백두대간을 하시는 산꾼이시다... 대구에 사신다는 부부께서는 100대
명산을 끝내고, 백두대간을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이곳에다 자동차를
세워두고 반대편으로 가셔서 대간길을 끝내고 자동차를 회수하여
간다고 하시길래 버스타는데 까지 좀 태워달라고 하니 기꺼이 타라고 한다
자동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나와 동년배이신데 나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여서 부럽기만 하다.
이 분들은 오전약수터로 가실 계획이라하기에 난 애당리를 지나가는
88번 도로로 내려서는데 서벽에서 춘양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 버린다
날 태워주신 분은 나를 내려주고 오전약수터로 향하는데...너무 고마웠습니다.
대간 완주하실 때까지 응원할께요...4월의 맥 산행은 기분좋게 마무리하는데
운이 좋은 느낌이다...3주에는 비슬산쪽으로 갔다가 경찰 순찰차를 공짜로
탔고, 지난주는 김해 무척산에 갔다가 고향 후배의 지원을 받았고, 오늘은
대구에서 오신 貴人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艾堂里) 수진마을 버스정류장(15:02)
수진마을은 물나들이란 뜻으로, 마을앞에 큰 냇물이 흐른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춘양면에 있는 애당리는 농경지가 평평하며 마을의 뒤쪽은 높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춘양-영월간 88번 준국도가 지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배고개, 대티, 수진, 애당, 장암 등이 있는데 애당은 마을의 신을 모셔놓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사당이 있었는데, 그 주위로 쑥들이 무성하여 쑥으로 싸인 사당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수진은 물나들이란 뜻으로, 마을앞에 큰 냇물이 흐른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사과, 복수박, 딸기 등이 유명한 마을이다.
영주종합터미널(15:58)
애당리 버스 정류장앞에 있는 식당겸 구멍가계 앞에는 쉼터 의자가 있어서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가서 춘양가는 버스 시간표를 물어보려고
들어가니 식당안에는 손님들로 가득차 있어 볼어 볼 수가 없어서 다시 나와서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뜬금없이 ‘선생님! 내가 도래기재로
가는걸 어떻게 알았냐 하는 것이다’...처음에는 이 기사 양반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광주에서 왔다는 대간 산꾼이 도래기재에 차를 세워놓고
화방재로 가시다가 중탈하여 자동차를 회수하러 가시는 분을 태워가는 중이라면서
2분도 안되어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타라고 한다.
나야 도래기재로 갈 일이 없으니 갔다가 내려오면 타겠다고 하니, 대간 산꾼에게
양해를 구했는지 차비를 더 안받을테니 타라고 하여 도래기재에서 다시 되돌아
오는데 애당리에서 춘양까지 택시비가 15,000원인데 오는 길에 택시에 L.P.G가
없어서 봉화까지 가야하니 봉화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근데 봉화 L.P.G 충전소에
전화를 하더니 문을 닫았다고 하면서 영주까지 가야한다고 하면서 영주까지
태워주겠단다...영주까지 와서 연료를 넣고 충전소에서 한참 떨어진 터미널까지
태워주고는 15,000원만 달라고 한다...갑자기 양넘 지갑줏은 느낌이다.
택시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며 유쾌한 작별을 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영주발 → 동서울행 버스표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물어보니 집이 가까운 강남터미널행 버스는 17:20분이고
동서울로 가는 버스는 1시간 빠른 16:20분이라 동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이래저래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여러 종류의 제비꽃과 얼레지를
비롯한 야생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꽤많은 눈개승마도 수확했고, 거기다가
귀인을 만나 교통비도 많이 줄였다...또한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버스비도
많이 줄였다...참고로 춘양에서 동서울까지 차비가 26,300원이고, 영주에서
동서울까지는 20,700원이니 5,600원이나 굳었고, 시간도 엄청 줄였으니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를 했다...유쾌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