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5구간 - 삼막골재에서 우두령까지
北風寒雪이 몰아치는 겨울 雪山
☞산행일자: 2024년 01월 07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강풍...엄청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10.6 km + 들머리 4.9km / 7시간 40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물한계곡 주차장-황룡사 입구- 민주지산 갈림길- 잣나무숲 삼거리
목교- 민주지산 갯마숲길- 석기봉 갈림길- 음주암폭포 갈림길- 쉼터
음주암 폭포- 돌탑- 쉼터- 무덤골- 삼막골재- 헬기장- 안부- 1,087.5m봉
감투봉- 안부- 안부- 밀목재- 서낭당재- 안부- 안부- 무명봉- 폐광터
1.089.0m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1,109.6m봉- 무명봉
푯대봉- 안부- 무명봉- 생태숲 갈림길- 무명봉- 암봉- 석교산(화주봉)
삼면경계봉- 갈림길- 무명봉- 안부- 물푸레나무 군락지- 안부- 폐헬기장
1,058.4m봉- 갈림길- 무명봉- 무명봉- 813.9m봉- 우두령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상촌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구성면
요즘 날씨는 종 잡을수가 없다...거기다가 주말마다 비 아니면 눈, 거기다가
酷寒까지 겹치니 저질 체력으로 홀로걷는 범여로서는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제 3구간 남은 대간길은 새해의 봄으로 미루고 따뜻한 남녘땅의 지맥길을
가려고 잡은 첫 지맥길이 진도지맥이다...그런데 일기예보를 보니 일요일날
진도에는 비가 내린다는 구라청의 예보...믿어야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이지만
그렇다고 남쪽 끄트머리의 진도까지 가서 비를 맞으며 산행하기는 싫다.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3구간 남은 대간길중에 강원도가 아닌 남쪽의
삼막골재에서 우두령까지 땜방할 곳이 있어 이곳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곳의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눈이나 비는 안오고 흐린 날씨란다
사실 이곳은 지난달 24일에 무작정 나섰다가 일기예보에도 없는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들머리인 물한계곡까지 접근조차 못하고 돌아 왔으니
오늘 나서는 이 길은 再修를 하는 셈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지난달 24일에 서울역에서 황간까지 가는 열차표
12월 24일 서울역을 출발하여 황간역으로 향하는데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구라청의 예보와는 전혀 다르게 차창 밖으로는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옥천을 지나면서부터 눈은 더 심하게 내리기에 예전에 간간히 이용했던
황간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여 그곳 도로 사정을 물어보니 지금 상태로는
물한계곡으로 가기는 좀 힘들것 같다고 하여, 영동역에서 하차한다
황간역이 아닌 영동역에서 하차를 한다...황간역은 간이역 비슷한 곳이라
하루에 열차가 몇번 서지 않는 곳이지만 영동역은 열차가 자주 있는 편이라
이곳에서 하차하여 서울가는 열차표를 예매하니 좌석을 없고 입석표뿐이다.
열차표를 예매하고나니 1시간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열차에 올라 영등포역에 도착한 후, 사당동에서
불알친구가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점심을 먹고, 오랫만에 골프채 한번
휘둘면서 노닥거리다가 집으로 향하는데,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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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甲辰年) 새해를 맞이하는데 첫판부터 산행 일정이 꼬인다.
추운 날씨를 피해서 남녘지방 진도지맥 첫 구간을 가기로 했는데 일욜나 진도지방에
비가 온다하여 포기하고, 2주전에 폭설로 인해서 산행을 포기했던 백두대간 땜방을
하기 위해서 충북 영동군 황간역으로 가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다
서울역(05:00)
새벽 5시쯤에 서울역에 도착하니 며칠전의 酷寒에 비해서는 날씨가 많이
풀리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여전히 추운 날씨이다...오늘은 ktx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환승을 한 다음에 대전에서 황간으로 가는 열차를 환승할
생각이다.
서울역에서 황간으로 가는 열차가 있기는 하지만 첫 차가 05시 53이고,
이 열차를 타고 황간역에 도착하면 08시 50분..., 다시 물한계곡 가는 버스가 하루에
5번밖에 없고 택시를 타야하기에, ktx를 타고 대전가서 환승하는게 더 경제적이라
이 방법을 택한다
서울역발 → 대전행 열차표
06시 12분 정시에 대전역에 도착한 다음에 대합실로 가지않고
황간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기위해 곧바로 플렛홈으로 향한다
대전역발 → 황간행 열차표
06시 25분 대전역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라타고
옥천, 영동역을 지나 40분만에 황간역에 도착하여 열차에서 내린다
황간역(黃澗驛:07:10)
황간역에 도착하니 이제서야 黎明이 밝아오고, 찬바람이 부는 탓인지
날씨는 차갑다...역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버리는 즐거움을 버리고
역을 빠져 나온다
황간역 열차 시간표
이곳 황간에서 물한계곡으로 가는 버스는 영동역에서 07시 30분에
출발하여 이곳 황간에는 08시에 물한계곡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은
보이지 않고, 편의점만이 영업을 하고 있다...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사서 전자렌지에 데워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영동군 황간면의 모습
충청북도 영동군에 속해있는 황간면은 통일신라시대 “물이 채워진
골짜기”라는 뜻의 '황간'이라는 지명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는
황간군으로 개편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황간면이 되었다.
현재 14개의 법정리를 관할하며, 북쪽 백화산과 동쪽 지장산의 지맥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지이며 초강천이 백화산에서 내려오는 석천과 합류하여 면의 중앙을 지난다.
농경지는 하천유역과 남부의 구릉지 사이에 분포하나 협소하며, 경부고속도로 황간IC와
4번 국도, 경부선 황간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한국전쟁 때 일어난 노근리사건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있으며 신라의 고찰 반야사와 한천팔경으로 불리는 명승지가 있다.
황간역 앞 버스정류장(07:45)
편의점을 나와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추운 탓인지 손과 발가락이 빠져 나가는듯한 통증이 몰려온다.
07시 55분쯤에 영동역에서 오는 640번 버스를 탔는데 손님은
한명도 없고, 나혼자이다...버스는 다음 정류장인 황간 터미널에서
5분정도 정차를 한 다음에 물한계곡으로 향하는데 황간에서
물한계곡까지 약 25km 정도 되는거리로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나혼자서 버스를 전세(?)내어 물한리 계곡으로 향한다
물한계곡 버스 정류장(08:45)
이름값을 하는 것일까?...물한리(勿閑里)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날씨는 상당히 춥다...버스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버스 정류장 옆에는 예전에는 없었던 ‘민주지산 안보공원이 보인다
산행 채비를 마치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08:50)
민주지산 안보공원
1998년 4월1일, 천리행군을 하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흑룡부대원들이 산악에서 갑자기
몰아친 추위 속에 탈진해 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사고는 나흘 전 충남 청양 칠갑산을 출발해 계룡산과 속리산을 거쳐 대마산에 이르는 9박 10일간의
대대 전술종합훈련에 나선 특전부대원들이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을 넘을 때 일어났다.
사고 부대는 1일 오후1시 전북 무주를 출발, 20㎞를 3시간 동안 강행군한 끝에 민주지산 정상부근에
도착해 야영에 들어갔다...그러나 밤이 되자 야영지에는 기후가 급변하면서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닥치고 낮부터 내리던 비는 폭설로 변했다.
사고당시 현장은 이미 30㎝가량의 폭설이 내린데다 초속 40㎞의 강풍으로 체감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급강하해 사실상 훈련이 불가능한 기상상태였고, 출발 때부터 계속 쏟아지는 빗속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 데다 갑작스런 강추위로 탈진증상을 호소하는 장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헬리콥터조차
뜰 수 없는 악천후로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결국 대위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1명 실종, 6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조사에 착수한 육군은 “16일부터 계속된 훈련으로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지옥훈련과정인 천리행군도중 악천후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저체온증을 유발,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 사인은 탈진으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갈라지는 열상과 간기능저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한복과 야영장비, 응급의약품 등 산지야영에 대비한 충분한 대비 없이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던 지휘관의 과실도 드러났고 기상악화로 첫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산악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예정된 집결지로 모이도록 하는 훈련을 강행해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 분들을 위해서 안보공원을 만든 모양인데 참배를 했으면 좋으련만
날씨도 너무 춥고, 산에서의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서 그냥 지나친다
추위로 인해 굳어지는 몸을 풀기위해 구멍가게에 들려서
오뎅국물과 꼬치 하나를 먹은 다음에 길을 떠난다
물한계곡(勿閑溪谷) 표시판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계곡에 있는 물한계곡은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에서부터 약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으로, 삼도봉(1,176m)·석기봉·
각호산(1,176m)·민주지산(1,242m)에 둘러싸여 있으며,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어
곳곳에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손꼽히는 생태관광지이다.
황룡사에서부터 용소(일명 무지개소)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옥소폭포·의용골폭포·음주암폭포·장군바위 등
폭포와 소(沼)·숲이 어우러져 있어 등산객과 피서객으로 사계절 붐비는데 매년 10월
10일이면 충북,경북, 전북의 3도 만남의 날 행사가 삼도봉에서 열리고 있다.
주변에 조동산촌마을·한천팔경·반야사 등 관광지가 많다. 찾아가려면 영동시내에서
물한리행 시내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황간 인터체인지로
나와 임산 방면 579번 지방도를 타고 매곡면·상촌면을 지나면 계곡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물한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니 간간히 등산객들이 보인다
지난해 12월 3일에 삼도봉에서 부항령으로 가기 위해서 이곳을
왔는데, 벌써 해가 바뀌고도 한달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렸구나.
화살보다도 더 빠른 세월, 느리게 갈수있는 방법은 없을까.
컴퓨터는 reset을 하면 초기로 되돌아 가고, 벽시계는 고장나면
멈추기라도 하는데, 이 넘의 세월은 예전과 달리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가야할 산은 많고 많은데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에 반비례하여 몸뚱아리의 노쇠화는
왜 이리도 빨리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황룡사 입구(09:02)
황룡사 일주문을 지나 절집 안으로 통과한 다음에 구름다리로
빠져나가도 되지만, 지난번 통과하면서 보니 대웅전문이 굳게
잠겨있어 참배도 못했기에 그냥 우측의 임도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사각정자에서 지난번 산행때 지갑을 흘려놓고 갔다가
되돌아와서 지갑을 회수하는 happening이 벌어진 사각정자를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짓고 길을 떠난다
추운 날씨에도 간간히 山客을 만난다
황룡사에서 삼도봉으로 향하는 등로에는 다행히 많은 눈이 아닌
싸래기눈만 쌓여있여 아직까지 아이젠은 착용하지 않고 그냥 오른다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한달전에 이곳에서 지갑을 빠뜨린 줄 알고 다시 황룡사 입구까지
지갑을 찾아서 되돌아 오느라 헛짓거리 한 생각을 하니
쓴 웃음이 나온다...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민주지산 갈림길(09:17)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아야 한다.
늙음이 두려운 것은 젊은 마음이 늙은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데, 늙음은 늦출수는 있어도, 피할수는 없는 숙명이다
피할 수 없는 늙음은 어떤 마음 자세로 맞이하느냐에 따라서
노년기의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술과 간장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듯이 잘 늙기 위해서는 심리적
숙성이 필요하며, 철이드는 과정의 하나가 아닐까.
영원히 살 것처럼 철없이 날뛰던 젊은 시절의 血氣를 순화하면서
잘 늙기위한 노년기의 변화에 대한 받아들임과 너그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잣나무숲 삼거리(09:20)
잠깐의 잣나무숲이 지나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이어지는
속새골 방향으로는 이 지역의 主峰 노릇을 하고있는 삼도봉보다
훨씬 많이 알려진 민주지산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다.
목교(木橋:09:21)
민주지산 갯마숲길(09:23)
이곳은 내가 조금전에 걸어온 등로의 개울건너 산사면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황룡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인데 갯마숲길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갈림길 바로 옆에는 용소폭포(龍沼瀑布:무지)흐르고 있다
조금전에 산행을 시작한 황룡사에서 이곳 용소(무지소)까지를
물한계곡이라 부르고 , 이곳부터 삼막골재 아래까지 골짜기가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하는데 미니미골이라고 부른다
용(龍)이 목욕한 폭포...늪(沼)이란 얘기인가?...무지소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폭포이다
삼막골재에서 내려오는 미나미골과 석기봉에서 내려오는
음주암골과 만나는 지점으로 좌측의 미니미골로 향하면서
본격적의 삼도봉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된다
삼도봉으로 향해 물한계곡으로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은
살을 에이는듯한 칼바람이다...대체적으로 계곡에는 그리
바람이 심하질 않는데, 이곳은 물한(勿閑)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손이야 호주머니의 핫팻으로 어느 정도
커버를 할 수 있지만, 발가락이 빠지는듯한 차가움은 막을 방법이 없다
용소를 지나면서 계곡의 폭은 급격히 좁아지며, 水量도 아주적고
그에 비례하여 물소리도 적으니 제대로 산의 맛이 나는 느낌이다.
가뭄에 콩나듯이 만나는 등산객들의 인사를 받느라, 고요한
적막감이 깨지는 것 빼고는 정말 호젓한 산길이다.
석기봉 갈림길(09:36)
적설량은 조금씩 많아지는 것 같아서 등로옆에 있는 평상에서
아이젠과 스패치를 착용하고 삼도봉으로 향하는데 10여명의
젊은 남.여 친구들이 삼도봉 헬기장에서 빅패킹을 하고 내려오는
모양이다...비박장비를 잔뜩 지고 웃고 떠들며 내려오다가 나를
향해서 ‘어르신! 安山하셔요’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아직까지
마음은 청춘인데...갑자기 노인네가 된 느낌이라 왠지 서글프다
음주암폭포 갈림길(09:47)
지금까지 완만하게만 걸었던 삼도봉가는 길은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쉼터(09:53)
쉼터를 지나 사면길을 걷는데 좌측 계곡 아래로 음주암폭포가 보인다
음주암 폭포(09:56)
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는 음주암이란 암자를 가기전에 만나는 폭포로 물한계곡에
기대어 고단한 삶을 살아내던 지역민들의 쉼터이자 음주암에 佛供을 드리러 가던
이들이 마음을 가다듬던 일주문 역할을 했던 곳이 음주암 폭포라고 한다.
미니미골 계물을 건너서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막골재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미니미골을 거쳐 오면서 의용골 폭포,
음주암폭포를 지나 용소폭포를 지나면서 석기봉 동사면에서 발원한
음주암골 물기와 합류하여 물한계곡이라는 명칭을 바꾸어 절경을
이루면서 옥소폭포, 황룡사 앞을 지나 초강천(草江川)이란 이름으로
흐르는 물줄기다
돌탑(10:00)
삼도봉을 향해 고도를 높힐수록 등로는 純白으로 바뀌고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상큼하다
쉼터(10:27)
쉼터에서 삼도봉까지의 거리가 1.5km란다.
이정표의 거리는 참고만 하지, 실제로는 산꾼마다 느낌은 다른듯 하다
무덤골(10:30)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이 나라 山河에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쟁을 겪어면서 저런 슬픔을 간직하지 않은 골짜기가 있었던가...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선조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지켜낸 이 나라를 우리는 망각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매주 산에 가다시피하는 아버지를 보고 우리딸이 하는 말
‘아빠!...내려올 산을 힘들게 왜 올라가는거야’ 하는데
이럴때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 지 난감할 때가 많다.
산이란 산꾼에게 어떤 존재일까...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걷고 또 걷다보면 해답이 나오겠지
오늘의 들머리인 백두대간 능선 들머리인 삼막골재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데크목 계단에 레드카핏이 아닌 순백의 白雪을 뿌려놓고
산꾼 범여를 반긴다
삼막골재(森幕谷嶺:1,028m:10:50)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서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삼마골, 삼박골로 불리는 삼도봉 준령의 하나이며 지명유래는
나무가 우거져 장막을 쳐놓은 것 같다하여 나무빽빽할 삼(森)자와 장막 막(幕)자를
따서 삼막골이라 하는데 산마골재는 산막골재의 誤記로 보인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보이면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으며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으며,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으며,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으며,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다...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한달만에 다시 온 삼막골재...직진의 해인리로 내려가는 길로
누군가가 내려갔는지 발자국이 보이고, 난 이곳에 우측으로
이어지는 삼도봉 방향이 아닌 밀목령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헬기장(10:53)
삼막골재에서 헬기장으로 올라서니 먼저간 대간꾼들의 흔적 때문에
힘들게 러셀을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는 있지만 초반부터 강풍을
연상케 할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되는데,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어휴!...오늘 고생 좀 하겠구나
삼도봉에서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초강(신산경표상:각호)지맥의
눈덮힌 능선이 산꾼을 가슴을 설레게 한다...올 겨울에 처음으로
雪山을 만끽한다
밝은 햇빛이 눈길을 비춘다...직진 능선이 아닌 사면길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자꾸만 野性을 잃어가긴 하지만
하루, 하루 저질 체력에 노인네로 변해가는 범여로선
더 없이 반갑다
안부(11:02)
자기 本分에 충실하면서 대간길의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바위.
그래 각자맡은 본분에만 충실하면 세상은 순리대로 잘 돌아갈텐데
세속 중생들은 호시탐탐 남의것을 탐하려는 그 욕심 때문에 탈이 나지
그건 아마도 娑婆世界에 사는 衆生들의 業報가 아닐런지...
비록 뒤린 삶으로 살 망정...놀부 심보로 허투루 살지는 않으리라
강한 바람의 탓이련가...능선위로 몰린 눈이 어떤곳은
무릎까지 차오른다...직진으로 오르면 족보있는 1,087.5m봉인데
이곳 역시 범여보고 편하게 걸으라고 사면길을 만들어 놨다
고맙소!...편안한 길을 만들어 줘서...우측 능선에 있는
1,087.5m봉은 직접 오르지 않고 눈팅질만 하고 통과한다
1,087.5m봉(11:08)
바람은 갈수록 강해지면서 볼기짝을 때린다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강풍에 맞서기보다는 순응하면서
걸어가는데 그리 쉽지는 않다...맞은편에 보이는 삼도봉,
석기봉이 범여에게 시비를 걸어온다...추운데 집에 있지
왜 산에 오느냐고...
직진의 능선이 아닌 우측의 사면길로 올라서니 이곳은
양지라 그런지 바람도 전혀없고, 눈이 다 녹아버려서
잠깐이지만 편하게 걸어간다
설해목(雪害木) / 법정 스님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 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따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말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대간꾼들이 지나가긴 했지만 바람의 영향 탓인지 능선에는
눈이 많이 몰려있어 기럭지가 짧은 범여의 숏다리로 러셀을
하면서 걸으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든다.
부지런히 걸어서 정상에 도착하니 강하게 부는 바람으로
몸조차 가누기가 힘이 드는데 예전에 없었던 감투봉이란
팻말이 서 있는 1,123.6m봉에 도착한다
감투봉(1,23.6m:11:40)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외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는 1,124m봉이라는 무명봉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김천시에서
설치한 팻말에 “감투봉(1,23.6m) ”라 표기를 해놨고 좌측의 상촌쪽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대간길은 90도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간다
이곳 정상에 있는 4등 삼각점은 많은 눈으로 인해 갠지스강의 항하사(恒河沙)의 바늘
찾기만큼 힘들어 일치감치 포기를 한다...김천시에는 감투봉이라 표기해놨지만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1,23.6m봉이란 무명봉으로만 표기를 해놨다.
* 항하사(恒河沙)란
인도의 갠지스 강을 뜻하는 항하(恒河)와 모래 를 뜻하는 사(沙)를 합한 말로, 갠지스 강의
모든 모래알 개수만큼 크고 아름다운 수를 뜻하는데, 다만, 갠지스 강의 모래알 개수는
그 수치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1항하사 근처에도 가지 못하며, 게다가 지구가 모래로만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도, 굵은 모래든 가는 모래든 어느 경우간에 모래알 개수가 1 항하사를 넘지
못하며, 심지어는 원자로만 따져도 그 개수가 1항하사를 넘지 못한다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052
항하사는 수의 단위로 주로 불교 용어에 나오는 추상적인 수를 가리키는 극의 만배(10.000)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억(億) 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서 어떤 것이 맞는지는 판단하기 힘드나,
일반적으로는 전자의 가설이 더 지지받는다... 극의 만 배라면 10의 52제곱, 아승기(阿僧祇)의
만 분의 1에 해당하는데, 간단히 10조 = 1013을 네제곱하면 나온다.
불교의 천수경(千手經)에는 백억 항하사 결정불이 존재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부처님이 많다는 뜻이 되겠다.
이곳 감투봉의 표기가 맛있는 오소리 감투나, 자기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책을 뜻하는 감투를 아닐것 같아서 사전을 검색해본다
감투란 말총이나 가죽·헝겊 등으로 차양 없이 만든 관모로, ‘감두(坎頭·甘頭)’라고도
표기하며 턱이 없이 민틋하게 만든다. ≪양자방언 揚子方言≫에는 상자류(箱子類)라 하였고,
≪광운 廣韻≫에는 머리를 덮는 것이라 하였다.
고려 우왕 13년(1387)의 관복개정 때에 낮은 계급의 두식으로 감두가 있어 고려 때에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평민이 사용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솜을 두어
방한용으로 착용하기도 하였으며, 제주도에서는 털로 만들어 겨울에 사용하였다.
벼슬하는 것을 ‘감투쓴다’ 하여 벼슬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감투는
관직의 표상인 탕건을 말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서 감투와 탕건이 혼동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124m봉 삼각점(△영동459 / 1980 재설)...2013년 4월 28일 2차 남진때의 사진
안부(11:43)
추운 날씨 탓이련가 산행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똑닥이 카메라의 베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작동을 멈추어 버리니 난감하다...카메라를 베낭에 집어넣고
스마트폰으로 산행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카메라로 산행 기록을 남기는 버릇
때문에 스마트폰 촬영에 서툰데다가 촬영할 할 때마다 비번을 풀어야 하니
이런 추운 날씨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고 시간도 많이 지체가 된다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이정표(↓삼도봉 2.1km, → 밀목령 700m)의
표시목의 글자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워저서 보이질 않는구나.
우측으로 올라선 다음에 꺽어져 편안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안부(11:45)
안부에서 올라선 다음에 강풍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내려서니 밀목재다
밀목재(密木峙:933m:11:58)
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 한천 마을에서 면목골로 올라 이 고개를 지나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넘어가는 고개로 사람들이 왕래가 있는지 길은 뚜렸이 보인다.
밀목재는 경상도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고개’라
해서 부른 이름이고 영동쪽에서는 ‘면목재’라고 부른다.
밀목재에서 올라서는 길은 양지라 그런지 殘雪만 살짝 쌓여 있으나
우측 김천과 좌측 영동의 계곡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은 한낮인데도
산꾼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아!...춥다
산길을 오르다가 문뜩 뒤로 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감투봉에서 상촌으로 넘어가는 능선은 耳目口鼻가 뚜렸한
팔등신의 미인처럼 홀로걷는 산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 3번이나 이곳을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내가 3번이나 대간길을 걸을때는 없었던 돌계단일까?
이렇게 독립군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볼것, 안 볼것 다 보고
지나가는게 참으로 좋다...혜민스님의 저서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내용을 실천하면서 겨울 산길을 걷는다
무명봉에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서낭당재가 나온다
서낭당재(12:03)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 옆에 있었던 서낭당 돌무덤은
세월의 무게 탓인지 많이 홰손되어 돌멩이 몇개 뿐이다.
이곳을 밀목재 또는 밀목령이라 기록한 산행기도 많이 보이는
곳이며, 오룩스맵의 지도에는 이곳이 아닌 조금 더 간 다음에
있는 무명봉을 밀목령이라 지도에다 표기를 해놨다
서낭당재 상촌쪽의 모습
서낭당재라 부르는 안부에서 한달음 치고 오른 다음에
무명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능선을 올라선 다음에 예전처럼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의 사면길로 대간길을 만들어 놨는데 양지에다 잔설도 없도
바람한 점 없는 그야말로 오늘 산행중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가지고 온 보온병의 따뜻한 물로
커피한 잔을 타서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길을 떠난다
극락이 따로있나...추운 날씨에 바람 안불고
포근한 이런곳이 극락이고, 오아시스이지...
안부(12:30)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또다시 강풍의 괴롭힘은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니 미역줄기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서남쪽으로는
한달전에 걸었던 삼도봉에서 박석산, 백수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그 뒷쪽으로는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북덕유산 스키장이 워낙 遠景이라 肉眼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으로는 잡히질 않는구나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지고...
이곳도 직진의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사면길로 돌려놨다
저 윗쪽에 보이는 봉우리를 오룩스맵에서는 밀목령이라 표기해놨는데
올라가는 대간꾼도 없고, 길도 없다...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밀목령이라는
확신도 서지 않아 그냥 통과한다
안부(12:39)
대간길은 동북쪽으로 이어지는데 나뭇가지 너머로 석교산이라
부르는 화주봉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요즘에 冬將軍이 맹렬하게 위세를 떨치면서 산꾼 범여를
겁박하지만 그렇다고 산행을 하지 않을수야 없잖은가...
언젠가부터 난 산에 가는 일이 매주말마다 성경책을 끼고,
교회를 찾는 교인처럼, 베낭을 메고 산에 가는게 신앙처럼
되었다
능선이 아 북사면이라 잠시지만 바람을 피하면서 길을 걷는다
무명봉(12:45)
이곳에서 우측으로 부항면 대야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이런 이정표가 없었는데 최근에 김천시가 조성한 듯한
물소리 생태숲길이다
경상북도 김천 삼도봉 자락에 위치한 물소리 생태 숲은 2017년 시민들을 위한 산림 휴식
공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맑은 부항천의 최상류가 흐르는 이곳은 예부터 계곡 물소리가
워낙 커서 옆 사람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물소리 생태 숲’으로 이름 붙여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약 5만㎡의
생태 숲이 펼쳐져 있는데, 아이들이 걷기 좋은 완만한 산책길부터 제법 가파른 계단,
다양한 테마의 정원과 출렁다리 등이 설치돼 있다. ..특히 출렁다리가 설치된 골짜기는 과거
산이 높아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탐방로 한쪽에는 화전민의 집도 복원해 특별한 볼거리가 된다.
무명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내려서니 물소리 생태숲 갈림길 이정표
(← 푯대봉 1.5km↑, 물소리 생태숲→)를 만나는데 이곳이 폐광터다
폐광터(12:47)
이곳 폐광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폐광터 남쪽으로 산 아래 김천시 부항면의 '대야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대동(大洞)이라고 불렸는데, 일제시대까지 마을 뒷골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돼 큰 규모의 금광이 생겨나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고 실제로 김천은 선산과 함께 신라시대부터 이름난 금(金) 생산지로
각종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이곳 금광굴 깊이에 대해 멀리 해인동 앞까지 뻗었다는 등의 여러 설이
떠돌지만, 전 마을노인회장 임차랑씨에 의하면 어릴 때 동굴 끝까지
들어갔었는데 수평과 수직갱도를 합해도 100미터는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제시대에 이곳에는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이 마을에 일본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밀려들어와 크게 번성했는데, 자연히 인부들을 상대하는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수시로 분쟁이 발생되자 급기야 일개 마을에 지서가 들어서기도 했다.
폐광터 안내판이 있는 안부에서 직진으로 올라가면 족보있는
1.089.0m봉이고 삼각점도 있는데, 대간 등로는 안부에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사면길에서 눈팅이만 하고 통과한 1.089.0m봉(△)
어느 누구도 올라간 흔적이 안보이는 1.089.0m봉, 나 역시
아무도 안올라 가는 봉우리인데, 하는 핑계로 우측으로 향하지만
맘은 그리 편치가 않다...‘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妾의
아들로 홀대받는 庶子 취급받는 1.089.0m봉아! 미안하구나.
그러나 어쩌랴...후반에 급격하게 떨어지는 저질 체력탓에 이런데서라도
시간을 줄여야지 우짜겠노...
잠시후에 1.089.0m봉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우두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
1.089.0m봉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복귀하여 내려서니 예전에 없었던
물 소리샘 (The Fountain) → 50m 팻말을 만나지만 내려갈 일이 없다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잠시후에 빡세게
올라야 할 푯대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3:00)
한달전에 걸었던 삼도봉에서 박석산, 백수리봉 능선 뒷쪽으로는
대덕산~초점산을 지나 좌측으로는 수도산의 능선이 아련하게
보이고,중앙에 여인의 乳頭처럼 봉긋하게 생긴 대덕산 뒷쪽으로는
겨울 雪山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덕유산 향적봉의 스카이 라인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무명봉(13:02)
등로 북동쪽으로 보이는 화주봉(석교산) 능선이 빨리 오라
손짓을 하지만, 춥고, 미끄러운 길이라 속도가 안나니 우째 빨리 가겠노...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나뭇잎이 심하게 흔들린다
먼저간 산꾼들로 인해 러셀의 힘듬은 모르겠으나 기럭지가
짧은 나로서는 눈에서 발을 빼는 시간이 더 걸리니 피로도가 몰려온다
안부(13:15)
무명봉(13:20)
푯대봉으로 향하는 능선에 만나는 봉우리는 계속해서 연달아 있으면서
고도를 높혀가는데, 첫번째 만나는 봉우리는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인도하기에 편하게 걷는다
사면길을 향하다가 코를 땅에 박듯 급하게 내려간다
안부(13:28)
미끄러운 눈길을 따라서 빡세게 올라서니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1,109.6m봉 정상에 도착한다
1,109.6m봉(13:38)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가야할 푯대봉이 코앞에 보이건만
양사언(楊士彦)이 읊었던 太山歌처럼
왜그리 힘들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힘들며 쉬어 가야제...
푯대봉 오르는 양지에 바람도 안불고, 따뜻하여
베낭을 베게삼아 누워 추위로 인한 언 손을 녹이면서
하늘을 이불 삼아 독립군의 특권인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다(13:40~50)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무명봉(13:55)
다시 내리막길
가야할 화주봉(석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정말 잘생겼다
등로에서 바라본 대야리 계곡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의 지명유래를 보면
원래는 천지동(天地洞)이었는데, 신라 경순왕은 서민들이 사는 동리가
천지동이라 함은 부당하다 하여 지명을 고치게 하여 天자에서 一자를 떼어
'大', 地자에 土자를 떼어 '也'로 하여 대야로 개칭하였다 한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이 마을 주위는 큰 산이 둘러 있어서 지형이 대야처럼
생겼다 하여서 대야동·대야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며, 마을 아래 에 5백년 이상
묵은 전나무가 있다.
2016년 10월에 진권아우와 둘이서 걸었던 금오지맥 능선과
그너머로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라보는 화주봉은 마치 群鷄一鶴처럼 보이고, 남쪽 끄트머리에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은 夢幻的이고 신비로운 모습이다
삼도봉에서 석기봉~민주지산~각호산~천만산으로 이어지는
초강(신산경표상:각호)지맥의 스카이라인도 환상적이다
북쪽으로 바라보니 저멀리 대전의 진산이라는 식장산도 뚜렸이 보인다.
오늘은 이 멋진 산줄기를 본 것만으로 본전은 충분히 뽑은 셈이다.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니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봉우리에는 예전엔 없었던 푯대봉이란 팻말이
산꾼을 반긴다
푯대봉(1,172m:14:01)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와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숲실마을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까칠한 암릉 봉우리인데, 김천시에서 예전에는
없었던 푯대봉이라는 팻말을 설치해놨지만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없는 지명으로, 예전에는 주위의 전망이 좋아서 전망바위라 불렀던 봉우리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1,158.5m봉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지도와 고도차가 많아서
조금은 헷갈린다...7년전 3차 대간길에는 없었던 지명인데 김천지역에는 예전에는
없었던 박석산, 감투봉, 푯대봉 등의 새로운 지명이 붙은 봉우리가 많이 보인다
강풍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북동쪽으로는 백두대간상의 삼성산~여정봉~형제봉에서 김천의
진산이라는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스카이 라인도 정말 환상적이다
화주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푯대봉으로 내려서는 암릉구간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눈이 녹았단 얼었다 하면서 생성된 빙판능선이라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혼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조심...또 조심하면서 암릉구간을 통과하여 내려간다
암릉 내리막길을 벗어나고, 보이는 것이라곤 산등성이 밖에
보이지 않고 안부로 내려서자마자 제법 세찬 바람마저 불어온다.
참으로 힘이든다.
내 삶의 길에서 버텨주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떤 종교에서는 삶을 버리라고 가르치던데...
또는 삶에 지친자들에게 근면,성실로 망각하라고
가르치기도 하고,,다들 죽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적어도 내 두 발로 버틸 이 땅 위에서 내가 품었던
영웅들을 다시 만나고, 영혼을 되찾는 그날까지 내 의지로 사고하리라...
안부(14:13)
안부에서 화주봉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올라서니...
바람의 영향 탓인지 능선에는 보기와는 달리 적설량이 조금씩 많아진다
무명봉(14:20)
생태숲 갈림길(14:23)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생태숲 갈림길 이정표( 석교산 화주봉 665m ←,
↑ 물소리 생태숲 2.1km, → 푯대봉 550m)가 나오는데 생태숲은
대야리쪽으로 향한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를 들으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산이란 70먹은 할배도 童心으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도 부리는데, 그에 반비례하여
세월이란 놈은 왜 그리도 빠르게 지나가는 지...
완만한 등로에서 갑자기 고도를 높히기 시작하는데
높이 오를수록 잠시나마 잠잠했던 강풍이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무명봉(14:40)
암릉구간 사이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암봉(14:42)
암봉 정상에서 가쁜 숨소리를 달랠겸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푯대봉 좌측 능선을 따라서 감투봉이 보이고,
맨 뒷쪽으로는 삼도봉에서 석기봉, 민주지산까지도 뚜렸하게
보이는구나
눈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눈속에 묻힌 묘지 뒷쪽으로 화주봉 정상이 보인다
석교산(石橋山:1,194.8m:14:51)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와 흥덕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화주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주봉(花朱峯)이라
부르는 화주(化主)는 불교에서 '부처'를 뜻하는 다른 이름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주인이라는 뜻이 있고, 석교산(釋敎山)의 석교(釋敎)는 불교(佛敎)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불교와 관련된 산으로, 정상은 바위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古山子 선생이 펴낸 대동여지도에는 석교산이 황악산 좌측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황악산 좌측이라면 지금의 곤천산’으로 지금의 석교산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석교산은 여지도서(與地圖書: 18세기 중엽 전국 313 관부의 읍지를 수합해 엮은
전국 지리지)에 '황악산은 추풍령-괘방령에 와서 서쪽으로 석교산 -삼도봉을
일구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백두대간 높은산에 운해(雲海:시냇물 처럼)로 가득차
봉우리만 보이게 될때, 석교산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서 흐르는 운해(시냇물)에서
돌다리 같은 산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란다.
화주봉 정상 안내판
석교산에 관한 유래는 3가지 설이 있는데...
1. 화주봉(석교산)은 원래 무명봉 이었는데 전란시 이곳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고 살면서 화주봉으로 불렀던데서 유래됐다 설...
2.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에 있는 뱃들- 주평(舟坪) 마을은, 이 마을 양편으로
두 개의 개울물이 흐르고 그 개울물 사이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배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 설...
3. 황악산(1111m)과 삼도봉(1172m)보다 높은 산으로 사방으로 봉을
거느리지 않고 황악산에서 삼도봉까지 거느리지 않고 황악산에서
삼도봉까지 동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매듭으로 높게 솟아있기
때문에 '돌다리'로 생각하여 석교산(石橋山)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인증샷
삼막골재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체됐다.
우두령까지 남은 거리가 아직도 많기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삼면 경계봉(14:54)
석교산(화주봉)에서 내려오자마자 무명봉이 나오고 우두령을 향해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과 구성면이 맞닿아 있는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부터 남쪽으로는 부항면에서 김천시 구성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북쪽은 계속 상촌면이다
갈림길(14:56)
이정표(우두령 ←, ↑ 김천 물소리 생태숲 2.2km,→ 석교산 화주봉 200m)가
무명봉 사면길 우측에 있는데 김천 물소리 생태숲은 이곳에서 구성면 마산리
찬물내기 마을로 향하면서 작별을 하고, 대간길은 직진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마산리(馬山里)는 마을의 대부분이 험한 산악지형이다.
조선시대에는 지례현 상북면에 속한 마산, 사점이었는데, 1914년에 이를
통합하여 마산리라 하였으며, 1934년 구성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묵은점, 수부동(壽富洞) 등이 있다... 묵은점은 옛날 이곳에서 사기그릇을
구울 때에는 마을을 사점이라 하였으나 이후 사기그릇을 굽지 않게 되어 묵은점, 또는
구사기점이라 불렀다고 하며, 수부동은 마산리에서 가장 살기가 낫다고 부(富) 자를 쓰고,
이 마을에 약 100년 전에 문광수라는 선비가 128세까지 장수하였다고 수(壽) 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수부동이라 하였다. ..이 마을에 살면 수와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급경사로 내려오니 양지가 나오고 바람은 조금 잦아지는 느낌이다
무명봉(14:53)
내가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이곳부터는 대간꾼들이 다닌 흔적도
보이지 않고 내가 러셀을 하면서 길을 걸어간다
안부(15:03)
능선이 아닌 사면길로 향하는데 오후가 되면서 날씨는 다시 추워진다
한참동안 고도를 낮춘 다음에...
다시 대간 마루금에 복귀하여 안부로 향한다
물푸레나무 군락지(15:23)
물푸레 나무는 한반도 산기슭이나 계곡에서 자생하는 낙엽수인
교목으로 높이는 15 m까지 자라며 지름은 60 cm 남짓한 키 큰 나무이다.
나뭇잎은 마주나며 잎 4~8개가 나며, 잎 꼭지의 연장부의 좌우 양쪽에
두 잎 이상의 작은 잎이 배열하여 새의 깃 모양을 이룬 복엽(複葉)이다.
길이는 15 cm 정도 하는 피침 모양으로, 표면에는 털이 없지만 뒷면에는
털이 있고, 잎에 선점(腺點)이 없다.
이름의 유래는 껍질을 우려내면 물이 파란색으로 변하여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즉, 물이 푸래져서 '물푸레나무'라 부르며,영명(英名)으로는
ash라고 불리며, 한자어로는 심목(梣木), 청피목(靑皮木)으로도 불린다.
꽃은 봄에 가지끝에서 모여 달리며, 물푸레나무의 꽃은 꽃받침은 있는데
꽃잎이 없는 특색있는 꽃으로 향기는 원두 비슷한 향이 나며, 열매는
늦여름쯤에 다 익으며, 동그란 모양이다. 씨앗이 열매 안에 있으며
꽃말은 겸손'과 '열심'이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사이로 이어진 대간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안부(15:28)
다가올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진달래의 도열을 받으면서 길을 걷는다
폐헬기장(15:35)
눈속에 파묻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폐헬기장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족보있는 1,058.4m봉이 나온다
1,058.4m봉(15:37)
그 흔한 선답지의 시그널 하나도 없는 밋밋한 1,058.4m봉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
갈림길(15:53)
예전에는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서 대간길을 이어갔는데
지금은 좌측의 사면길로 대간길을 인도한다
무명봉의 좌측으로 휘돌아서 가는데...
좌측 계곡의 나뭇가지 사이로 상촌면 흥덕리(興德里)가 살짝 보인다
영동군 상촌면에 있는 흥덕리는 깊은 산간지역으로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며, 궁촌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흘러 내려가고 있는데,자연마을에는
설보름, 송정, 죽전, 흥덕, 낙은동이 있으며, 설보름은 이 마을에서 설과 보름을 지냈다 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이고, 송정은 마을에 소나무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고, 죽전은 뒷산에
대나무가 많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흥덕은 일제시대 때 개칭된 이름으로 유교적
용어인 한문을 사용한 마을 이름이다.
무명봉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다시 합류한다
겨울이라 그런지 벌써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바라보이는
산허리로는 영동군 상촌에서 우두령을 지나 김천시 구성면으로
이어지는 901번 지방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못생긴 나무들이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묵묵히 대간길을 지키는 저 소나무...세속에서도
마찬가지다...힘들어도 착하게 사는 民草들이
있기에 세상은 유지된다고 봐야제...
무명봉(15:58)
다시 고도를 낮추어서 우두령으로 향한다
무명봉(16:08)
우두령이 가까워지나 보다...간간히 차량소리가
들으면서 걷다보니 삼각점이 있는 813.9m봉에 도착한다
813.9m봉(16:20)
813.9m봉 삼각점(△영동 461 / 1980. 재설)
813.9m봉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서 급하게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니 NO234 송전탑이 보이지만 좌측으로 향한다
NO234 송전탑을 지나니 동물생태통로로는 출입금지란다
언제부터인가 산꾼보다 동물들이 더 우대받는 세상인듯 하다
사면길로 돌아 내려서니 우두령이 나오고 도로로 내려선다
우두령에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우두령(牛頭嶺:720m:16:30)
경북 김천시 구성면 삼거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901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고개 정상에는 동물이동통로가 백두대간
길을 이어주고 있으며, 고개 너머 김천쪽은 매일유업 김천목장이 있고
영동쪽은 소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감시초소가 보인다
우두령의 지명유래는 이 고개가 소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김천 대덕면과 거창 웅양면의
경계에도 우두령이 있어 약간 혼란스러운 곳이다
이곳은 생각보다 지대가 높은 곳으로 낙동강과 금강의 수계가 갈라지는
곳으로 북쪽으로 떨어진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가고 남쪽으로 떨어진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우두령 정상에는 2006년 보은 국유 관리소에서 세운 소 모양의 석상을
비롯하여 이정표와 각종 안내판이 너무 많아서 약간은 혼란스럽다.
우두령은 소의 머리가 아니라 우등령(소의 등) 이 구전(口傳) 되어
변음 했다고 전하며, 질매재로도 불리는데, 질매는 '길마'의 방언(方言: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으로
간혹 질매를 멍에라고 하는 자료도 있는데, 멍애는 소나 말의 어깨에
씌워 쟁기를 뒤에 달아 끌기 위해 나무로 구부러지게 만든 기구를 말한다
<길마>지역에 따라 ‘지르마(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질매 (경상남도 창녕)·
질마(충청남도 서산) ·지르매(강원도)’라고도 불리며, 옛말은 ‘기르매’·‘기르마’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앵벌이(히치)를 시도하는데 상촌에서
구성으로 넘어가는 차량은 가뭄에 콩나듯 간간히 보이지만, 구성에서
상촌으로 넘어가는 차량은 10분을 기다려도 한대도 지나가지 않는다.
날이 저무니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추워도 너무 춥다...이러다가
凍死나 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상촌면 택시를 호출하니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하는데, 택시가 올 동안에 오뉴월 개떨듯이 떨다가
택시를 타고 황간역으로 향한다(17:15)
영동군 상촌면에는 택시가 한대밖에 없는데 미터기를 꺽지도 않고
황간역에 도착하여 35,000원이 거금을 요구하는데 생각보다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것 같지만 따지지도 못하고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분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황간역(17:47)
황간역은 간이역 개념이라 이곳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 열차는 하루에
06:56, 08:02, 12:42, 16:18 등 하루 4차례 뿐이고, 그 대신에 대전까지
가는 열차는 하루에 8번정도 정차한다...이곳에서 18:05분에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가서 대전에서 서울가는 열차로 환승하는 표를 예매하는데
할배라고 경로우대를 해준다며 차비를 많이 깍아준다
18시 47분 정시에 대전역에 내리자마자 맞은편 플렛홈에 서울로 가는
열차가 기다리기에 서울가는 열차에 오르니 따뜻해서 그런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열차는 구로역을
지나고 있고, 잠시후에 영등포역에 도착한 다음에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