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지맥(終)

진도지맥 제5구간 - 신동삼거리에서 백미도 앞까지

범여(梵如) 2024. 3. 13. 12:58

☞산행일자:  2024년 03월 03일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비

☞산행거리: 도상거리 10.9km +날머리 1.1km / 7시간 55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신동삼거리- 김해김씨 가족묘- 물탱크봉?- 안부- 농로- 101.5m봉

                월출산- 안부- 무명봉- 안부- 희여산 갈림봉- 안부-희여산

                다시 희여산 갈림봉- 안부- 무명봉- 안부- 185.4m봉- 안부- 무명묘지

                임도- 무명봉- 무명묘지- 안부- 석성삼거리- 백동 무궁화 동산

                134.7m봉- 도강김공 묘- 남두재- 안부- 159.3m봉- 176.3m봉- 안부

                암봉- 안부- 무명봉- 임도- 완산이공 묘- 암봉- 암봉- 안부-앞산

                암봉- 한복산- 암봉- 암봉- 안부- 갈림길- 임도- 무명봉- 조망바위

                129.5m봉- 전주최공 묘-서망고개- 인동장씨 가족묘- 임도- 무명봉

                173.1m봉- 무명봉- 안부- 암봉- 안부-  93.2m봉- 갈림길

☞소  재 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인심좋고 삶의 여유가 있는 진도땅의 산길로 향하는길은 참으로 멀고 험하구나.

2월 첫 주에 진도지맥을 마무리하고 다른 지맥길을 나서려 했는데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2월 첫 주에 4구간을 마치고, 둘째는 구정 연휴라 교통편이 불편하여 포기

셋째주는 인테리어 모임에서 베트남 다낭으로 골프투어 가느라 빼먹었고,

넷째주는비가 오는 바람에 포기했다가 한달만에 진도지맥의 마지막길을 마무리하러 나선다.

 

많은 지맥길을 걸었지만 진도지맥만큼 힘들었던 지맥길은 처음이었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산길이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사람을 만나면서 

진도사람들의 후한 인심에 감동을 받은 산길이었는데 이제 마지막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발 → 진도행 버스표

조금 일찍 사무실 업무을 마감하고 호남고속터미널에 있는 백화점에 볼 일이

있어서 볼 일을 보고, 매표소로 가서 티켓팅을 하는하는데, 어랴!...이게 뭐여?

16:00에 출발하는 진도행 버스 시간이 15:20분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다...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삼일절이 끼어서 3일 연휴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버스 전용선을 달리는데도 차량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만

천안을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정안

휴게소까지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기 밀리는구나.

 

겨우 정안 휴게소에 도착하여 15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진도를 향하는 길.

예상시간보다 50여분정도 늦은 밤 8시 50분에 진도터미널에  도착한다

진도터미널(20:50)

대동모텔(21:00~06:20)

터미널을 나와서 찜질방을 향하는 길에 모텔이 보이기에 행여 방이 있을까봐

여관으로 들어가서 ‘빈 방 있어요?’ 하고 물어보니 방이 있다고 하면서

현금으로 결재하면 35,000원 해 주겠다고 한다

 

그래 오늘밤은 좀 편하게 자야겠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1시경이다

그리고는 잠이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6시가 넘은 시간이다...큰일이다...6시에 예약한 택시기사에게

전화가 온다...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근처 김밥집에서 아침으로 먹을

김밥 한줄을 산 다음에 택시를 타고 신동 삼거리로 향한다

진도읍을 출발하여 신동삼거리로 향하는데 택시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괜스레 불안하다...이곳을 오면서 매일 일기예보

검색했고, 어제 집을 나서기 전에도 검색하니 ‘흐림’이라고 나왔는데

비가 오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가는길에 택시기사에게 내가

진도만 오면 비가 오는데 뭔 조화인가요 물으니 이곳 진도의 날씨는

인근 목포가 아닌 제주도의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제주도의 일기예보를 참조하라고 조언을 한다.

 

삼거리 좌측으로는 국립진도 휴양림과 윤고산 사당이 있는 굴포항으로

가는 길인에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를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과 고산둑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 간척 1호인 이곳 고산 둑은 고산공(孤山公이 1650년에 둑을 축조하여

굴포, 남선, 백동, 신동 4개의 마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 둑은 높이 3m, 길이 380m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4개 마을 주민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풍년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면서 고산(孤山) 감사제(感謝祭)를 지낸다고 한다.

 

고산둑 간척지 축조 시기를 윤선도가 완도 보길도와 진도를 오가던 1640년부터 1660년 사이로

추정되며, 1646년 무렵 윤선도는 이곳 굴포리 처자 경주 설씨와 혼인했고, 1남 2녀를 낳았다.

윤선도는 간척사업을 통해 완도군 노화읍 석중리에 130여 정보,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200여 정보의 갯벌을 농토로 만들어 주민을 돕고 부를 축적했다.

 

윤선도가 이곳 굴포리에 원둑을 쌓을 때의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윤선도는 이곳 사람들과 함께 제방을 쌓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큰 파도에 쉽게

무너져버렸다... 다시 쌓으면 무너지고 쌓으면 또 다시 무너져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제방을 쌓는 곳으로 큰 구렁이가 기어가는 꿈을 꾸었는데

꿈을 깬 윤선도가 제방을 쌓는 곳으로 가보니 꿈속의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었다... 윤선도는 뱀이 지나간 형상으로 석축을 쌓도록 했고 그 뒤부터 둑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본관 해남(海南). 호는 고산(孤山).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시조작가로 유명한데,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서인(西人)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패해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는데, 한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풍류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며,  그의 시문집으로는 정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고산유고(孤山遺稿) 》가

 있으며,  그의 시조는 시조의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고 있다.

신동삼거리(07:05)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에 속해있는 신동삼거리는 우측으로는 진도읍과

해남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진도지맥의 끝지점인 서망항과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아픈 추억이 있는 팽목항(진도항)으로 가는 길이다

뒷쪽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굴포재와 굴포포구, 윤고산 사당으로

가는 길이다.

 

백야동, 만세동, 신동리를 병합하면서 백야와 신동의 이름을 따 백동리라

하였으며, 신동리(新洞里)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혀진 지명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7:15)

산행 시작도 전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니 산행을 할

맛이 나진 않지만, 힘들게 이곳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하기엔 억울하다.

오늘은 죽으나사나 진도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끝내야 생각하고 가랑비를

비를 맞으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진도섬을 한바퀴 삥돌아서 이어지는 18번 국도의 확장공사로 인해서

맥길이 끊어진 상태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공사중이라 절개지를

돌아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 송월마을이 보이는데, 아직 어둠속 잠에서 덜 깨어난 모습이다

 

봉상리(鳳翔里)는 풍수지리상의 지형이 봉황의 날개에 해당한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봉상, 가는골, 마방, 송월, 송정마을 등이 있는데, 봉상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봉상리의 그것과 같다... 가는골마을은 가는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방마을은 전에 이곳에 마방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월마을은 봉상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송정마을은 송월 서쪽에 자리한 마을로 소나무

정자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새로 개통될 도로의 휀스 뒷쪽으로 올라가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가늘게 계속 내리는 가랑비가 신경이 쓰인다

기저환자라서 비를 맞으면 안되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 모든 사물들이 흐릿하다

백동마을 너머로 보이는 질매봉(259m)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측으로 꺽어져 밭고랑 가운데 통과하니 묘지들이 보인다

김해김씨 가족묘(07:20)

묘지앞 상석에는 국가유공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인 진도 다시래기 예능

보유자인 김해후인 귀봉선생과 배 청주한씨 옥단 묘지와 가족 묘지들이 나온다

 

진도에서는 초상(初喪), 특히 망자(亡者)가 수명을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난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전문 예능인들을 불러 함께 밤을 지새는데, 그게 진도 다시래기다.

다시래기는 한자로 다시락(多侍樂), 즉 같이 즐긴다, 또는 우리말로 다시 낳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다시래기 놀이 맨 끝에 사람 죽은 집에서 “갓난애나 둘려 가지고 가자”는

대사처럼 죽고 낳고 하는 세상살이를 이야기하는 굿이다

 

*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 다시래기는 부모상을 당한 상주와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주고 위로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여놀이로  친지와 동네사람들이 출상(出喪) 전날 밤에

  상가의 마당에서 밤늦도록 벌이는데, 전라남도 중동지방(中洞地方)에서는 ‘대어린다’고 하고,

  진도에서는 ‘상여흐른다’고도 일컫는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는데 오늘도 초반부터 잡목들이 강렬한 태클을 걸어댄다.

오늘이 진도지맥길의 마지막인데, 진도 사람들의 후한 인심과는 전혀 다른

산길의 지독한 잡목은 慈悲라곤 피래미 눈꼽만큼도 없는듯 하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의 태클을 피해서 가지만 윗쪽은 망개나무 

가시가 베낭을 물어뜯고, 땅바닥에는 줄기 식물들이 태클을 걸어

대지만,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맥길을 이어간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봉우리 같지도 않은 그저 펑퍼짐한 무명봉에 올라서는데

정상에는 노랑색과 청색의 물탱크 2개가 잡목속에 갇혀 버렸다

물탱크봉?(07:28)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07:31)

어마무시하다...그나마 다행인 건 겨울철에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은  ‘신의 한수’인듯 하다

어마무시한 잡목지대를 헤치고 내려서니...

망가진 비닐 움막이 길을 막는데, 그물망을 넘어서 밭으로 들어선다

밭고랑 너머로 펼쳐지는 희여산 능선은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기만 하다...밭고랑 너머로 시멘트로 윗쪽이 가야할 월출산이다

세상사를 살다보면 어찌 좋은날만 있겠냐마는 신동삼거리부터

가늘게 내리던 비는 그쳤고, 지독한 잡목지대는 잠시 벗어놨지만

비가 그치니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어댄다... 엊저녁도 굶고, 아침에도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먹지 못했더니만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는데

날씨가 추우니 김밥먹을 엄두를 못내고 밭 사이의 농로를 걸어간다

짧은 시간에 喜怒哀樂을 한꺼번에 맛보는 셈이다

농로(07:35)

농로에서 바라본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마을의 모습

백동리(白洞里)는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로 희여산(269m)과

월출산(月出山:110m)을 배후산지로 완경사면에 입지하며, 남쪽으로는

밭이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논이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백동저수지가 있다.

 

백야동, 만세동, 신동리를 병합하면서 백야와 신동의 이름을 따 백동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백동, 문텅골, 서당골, 병풍바웃골, 소엎진바웃골마을 등이 있으며,

백동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문텅골마을은 물탕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병풍바웃골마을은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소엎진바웃골마을은 소가 엎드린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밭고랑 뒷쪽으로 치고 올라서면서...

또다시 苦行은 시작된다

101.5m봉(07:44)

후배님!...잘 계시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고...쉬운면 쉬운대로 힘이들면 힘이 드는대로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고 맥길을 걷고 있지만, 그리 쉬운 건 아닌다

월출산(月出山:110.0m:07:51)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와 백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변이 잡목으로

꽉막혀 있어서 ‘달이뜨는 산’이라는 뜻의 월출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으로 준.희 쌤의 산패만 붙어있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무명봉이다...산에 지독히도 무관심한 진도군의 어느 자료에도

이곳 월출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월출산 정상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확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편안한 길을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이 정도의 등로만 되었으면 좋으련만...하기사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겠는가?

안부(07:55~08:10)

갑자기 나타난 안부...아마도 좌측의 백동리에서  올라오는 길인가 보다.

너무 배가 고파서 베낭을 내려놓고 아침에 김밥집에서 사 온 김밥 한줄로

허기를 면한다...너무 식어버려  차가운 김밥과, 물을 먹고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는데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으나 차가운 밥을 먹어서 그런지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다 

다시 베낭을 메고 희여산을 향하는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무명봉(08:13)

2주 뒤면 진달래가 만개할 듯 싶다

보이는 희여산 능선 줄기가 생각보다 까칠하게 보인다

안부(08:12)

희여산으로 오르는 까칠한 암릉구간으로 가는 길은 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이든다...그렇다고 누가 대신 걸어줄 산길도 아니고

오로지 나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이런곳에 오를땐

내 몸뚱아리는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수반되지만 어차피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스틱을 접어서 베낭에 꽂고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서 오르는데

비에젖은 암릉구간이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한발한발 움직인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부처손 이외는 마땅히 잡을곳이 없구나.

어디로 가야하나 이리저리 눈길을 돌려봐도 발길을 옮길곳이

마땅찮다...이런곳에서는 발한번 삐껏하면 황천가는 지름길이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한발자국 좌측으로 옮기니 편편한 암릉구간이

나오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긴 다음에 휴~하는 한숨을 내쉬면서 올라온

암릉구간을 내려다 본다

발 아래는 조금전에 신동 삼거리에서 올라온 능선들이 펼쳐지고

맨 뒷쪽에 삼각점처럼 생기 산이 한달 전에 걸었던 여귀산이고

맨 우측에 저수지처럼 보이는 곳이 굴포항, 좌측의 산이 연대산이다.

 

한달전에 저 길을 걸으면서 양봉 농가를 지나다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벌통 쥔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그 분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 분에게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언제쯤 시간이 날까...

지난번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조금전에 지나온 월출산도 보이고,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려다보니 변전소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최근에 내린 비의 영향인지 안개로 인해서 뿌옇게 변해버린

山河가 아쉽기만 하다

절개지에서 만난 보춘화

위험한 암릉구간을 통과하여 좀 편하다 싶었는데 또 빡센 암릉구간이

나오는데 속된말로 ‘여우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 꼴’이 되어 버렸다

대단하신 분의 흔적...저 분들은 어마무시한 분들이다

변전소 너머로 보이는 여귀산은 갈수록 안개에 갇혀버리는 모습이다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희여산 갈림길이 나온다

희여산 갈림봉(08:38)

희여산 갈림봉에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맥길에서

북서쪽으로 200여m 벗어나 있는 희여산으로 향한다

희여산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백동저수지(바로앞)과 굴포항은

짙은 안개로 인해 모든 사물들이 흐릿하기만 하다

 

굴포항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나루로서 예전 중선(中船)이 다니던 시절에는

조기잡이 배들이 많이 출항하였으며 굴포항은 1978년 6월 14일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굴포나루는 진도군 임회면 남부의 굴포리와 짝별리 사이 만입부에 위치하고 있고 굴포나루

남동쪽에는 보물섬 소동이 일어났던 죽도(竹島)가 위치하며 굴포나루를 나서면 구자도와

조도면의 독거도(獨巨島) 등으로 갈 수 있었는데 18번 국도가 굴포나루를 지난다.

권작가님은 언제 지나 가셨나?

안부(08:43)

좌측의  넓은 공터가 세월호와 관련이 있는 무궁화동산이고

우측 끄트머리가 진도지맥의 끝자락인 서망항이다

희여산(269.3m:08:46)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와 연동리의 경계에 있는 암릉 덩어리로 형성된 진도의 산처럼

500m 이하의 저산성 산지의 중생대 백악기에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용암아나 화산재로

만들어진 산인데, 진도의 다른산과 마찬가지로 이 산에 대한 유래를 찾을 길이 없었으나

네이버에 등재된 한국학중앙연구원 황토문화전자대전 자료를 보면 ‘본래 임회면은 봉상리에

있었고, 봉상리 앞산은 희여산(白也山:269.3m)이었다...이곳 사람들은 희여산을 작은

봉화산이라 했다지만 봉화대의 흔적은 없다...목장면과 임회면 사이에 있는 산이 산맥 아래에

남도진이 있었다 ’는 기록이 있으나 산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희여산을 찍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바라본 질매봉(259m)의 모습

다시 희여산 갈림봉(08:51)

희여산 갈림봉으로 되돌아와서 암릉 우측 아래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한달만에 나선 지맥길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말을 잘 안듣는 듯

하지만 진도의 마지막 산길이라 有終의 美를 거두고 싶다.

안부(08:55)

무명봉(08:56)

무명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니 계속되는 까칠한

암릉구간이 펼쳐지고 아랫쪽은 넓은 공터처럼 보이는 세월호의

흔적이 있는 무궁화 동산이란 곳이 보인다

有終의 美를 거두려고 나선 진도의 마지막 산길은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구나.

갈수록 안개가 짙게 드리우니 온 山河가 흐릿하게만 보이는데 風流가 철철

흐르던 진도의 민요에 푹 빠져서 범여가 40여년전에 수시로 드나들었던 그때의

진도땅은 분명 아닌듯 싶다

 

진도땅에는 風流가 넘쳐나는 고장이라 그런지 노래와 춤을 곁들인 수많은 중요 무형문화재가

전승되고 있다...우리나라 3대 아리랑중의 하나인 진도 아리랑,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에서

전해 내려오는 강강수월래,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다시래기, 망자가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 씻김굿, 육자배기, 진도북놀이,

진도 농부들이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남도들노래, 진도북놀이, 진도만가 등 수도없이 많다

아침에 살짝 내린 비로인해 젖어있는 암릉 등로를 조심스레 내려간다

내려가야할 등로 우측으로는 도속저수지(임회면 남동리 소재)가 보이고

바라보이는 서망항 우측으로는 슬픔을 잔뜩 안고있는 팽목항(지금은 진도항)은

아직도 10년전의 슬픔을 헤어나지 못한건지 짙은 안개속에 몸을 숨겨버렸다

안부(09:03)

185.4m봉(09:06)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면 맥길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질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서망항으로 향하는 진도산줄기는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야 한다

너럭바위처럼 보이는 무명봉에서 산줄기는 사정없이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백두사랑 산악회...10년도 훨씬 넘었던 시절에 기맥길을 같이 걸었던 산악회인데, 

저 산악회의 산꾼들도 어마무시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멋을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주변에 있는 것을 볼것 다보고, 찍을것 카메라로 다 찍어면서 다니느라

동료 산꾼들에게 눈칫밥 많이 먹었던 산악회라 愛憎이 많았던 곳이였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체력도 있었고, 走力도 되었지만, 지금은 그때 비하면

너무나 저질 체력이라 따라 다닐 엄두조차 못내니 말이다.

 

하기사 요즘에는 기.지맥길 하는 산악회는 거의없고 하는 산꾼도 별로없다.

있다고 해봐야 나처럼 홀로 다니는 독립군밖에 없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는데 갑자기 창자가 끊어질 듯 배가 아파온다.

아무래도 조금전에 차갑게 먹었던 김밥으로 인해 체기가 오는 듯 하다

안부(09:08)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내려가는데, 산줄기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심하게만 바라보고 있다...하기사 내가

좋아서 다니는 이 짓거리 누구를 원망하랴... 

무명묘지(09:10)

 무명묘지를 지나면서 갑자기 사라진 산줄기...

보물찾기를 하듯 이리저리 헤매다가 내려서니... 

묵밭같은 넓은 곳이 나오고 좌측으로 백동리로 내려가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임도(09:15)

임도를 직진으로 로질러 올라서니 또다시 길이 사라지나

이제 이런 길을 만나도 놀라지 않을만큼 耐性이 생긴듯 하다

무명봉(09:20)

무명봉에서 맥길은 남서쪽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가는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창자가 끊어질듯이

배가 아파온다...베낭을 내려서 레인커버를 씌우고,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쭈그린 채로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려 하지만

바늘로 쑤시는 듯한 아픔은 계속되고, 시원하게 버려보려 계획한

똥덩어리는 뱃 속에서 나올 생각도 안한다

오늘은 모든게 내 맘대로 안되는구나...운명이라 생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봄이오는 소리가 들린다...진달래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등로가 사라진 곳에서 만나는 시그널...참으로 고맙다.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얼굴을 내민다

무명묘지(09:26)

안부(09:30)

강하게 태클을 걸어대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오니...

공사중인 석성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석성삼거리(51.6m:09:32)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와 연동리, 남동리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로 진도대로라

불리는 18번 국도가 통과하며, 좌측으로는 남도진성으로 가는 길이며, 길 옆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 공간인 무궁화 동산이 자리를 잡고있다

 

남도진성으로 가는 삼거리라 석성삼거리로 부른 모양인데, 남도진성(南桃鎭城)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일원에 위치한 조선시대 수군진성으로 백제 시대때,

매구리현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여겨지는데, 고려 원종 때 삼별초군이 진도로 남하한

몽골군과의 항쟁을 위한 근거지로 삼았던 성으로, 왜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설치된

남도포진(南桃浦鎭)은 1438년(세종 20) 정월에 설치되어 전라 수영에 속하였다가,

1479년(성종 10) 정월에 전라수영이 좌‧우수영으로 분리 개편된 후에 전라우수영

임치진관(臨淄鎭管)에 속하였다...그 후 1522년(중종 17)에 전라우수영 가리포진관

(오늘날 완도)으로 옮겨 속하게 되었고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진되었다.

 

 

조선시대 진도와 서남해안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지리적 요충지에 있는 유적으로

전라우수영 관할 수군진 유적 가운데 유일하게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사 결과 옹성부와 체성부에서 박석, 지대석, 적석 시설 등이 확인되어 조선 전기

진성의 기저부 축조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공사중인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백동 무궁화 동산입구(09:33)

백동 무궁화동산 세월호 기억의 숲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팽목항 부근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 숲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아들 션 헨번 페러(Sean

Hepburn Ferrer)가 숲 조성을 제안하였고, 2015년 4월 10일 착공식을 갖고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의 노란색 단풍이 드는 은행나무 306그루를 심었으며 또한

희생자를 추모하고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기억의 벽도 설치됐다.

 

양수인 건축가의 설계로 설치된 기억의 벽은 전체적으로 거울과 같은

스테인레스스틸의 ㅅ자 평면으로 이뤄졌고 외부에는 304번 접힌 면이

형성돼 있으며 주름에 의해 형성된 실재하지 않는 304개의 선이 희생자를 상징한다.

제 개인적인 바램인데 억울하게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英靈들을 놓아주기 위한 忘却도 필요한 싯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佛家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간 추모하다가 그 이후부터 다음 生의

천도(薦度:죽은 영혼이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기도함)의식으로 죽은 자로

하여금 좋은 생을 받기를 바라며 놓아주는데, 이제 10년도 지났으니 

저 분들을 위해서도 망각의 세월이 필요한 건 아닌지...

무궁화 동산 정자(09:35~50)

가는 빗줄기는 계속 내리고, 滯氣로 인해 배는 계속 아파오는데

이곳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줄기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많은 고민을 한다...가자니 체기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멈추고 다음에 한번 더 오자니, 진도땅이 너무 먼 거리라

시간과 경제적 출혈(?)이 심할 것 같아, 죽을때 죽더라도 가기로 한다

세월로 기억의 숲 정자에서 소화제와 콜라를 먹으면서 체기를

달래보지만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고, 쌀쌀한 날씨에 잔뜩 흐리다 보니

몸뚱아리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세월호 기억의 숲을 빠져나와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10분정도

길이없는 곳을 치고 올라서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134.7m봉에 도착한다 

134.7m봉(10:02)

안부(10:04)

지나가신지가 오래된 듯한 신경수 쌤의 흔적을 만나고...

진도지맥길에서는 이런 길은 양반축에 속하는 편이다

그런데 갑자기 길은 사라지고...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된비알에 반가운 묘지가 보인다...묘지가 반갑다는 건

묘지가 있으면 묘지로 이어지는 좋은 길이 있다는 뜻이다

도강김공 묘(10:10)

묘지로 이어지는 길...내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묘지로 내려서니 꽤나 큰 규모의 도서제라는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의 좌측으로 있는 남도진성은 잔뜩 흐린 날씨로 가늠조차

안되는구나

또 다른 도강김공 묘지를 만나서 아랫쪽으로 내려간다

도강김씨(道康金氏)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넷째 왕자 대안군은열공(大安君 殷說公)의

7세손 김희조(金希祖:1124~1199) )가  시조인데, 고려 제17대 인종 2년 (1124년)에 탄생했으며,

의종조에 등문과하여 명종조에 좌복야와 병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병부상서 재임시 종묘사직을 구호한 지대하신 공훈으로 도강백(道康伯)과 도성부원군

(道城府院君)에 봉작되어 이후 자손의 본관이 도강이 되었으니 지금의 전남 강진이다

묘지 아래로 내려오니  잠시후에 오를 176.3m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도강김씨 묘지로 이어지는 우측의 도로를 내려가니

2차선의 남도석성로가 지나가는 남두재가 나온다

남두재(65m:10:15)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우)와 남동리(좌)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석성삼거리에서

남도진성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 고개로 반바지님이 나무 높은 곳에 “남두재”라는

코팅지를 붙혀놨고 남도진성으로 가는 2차선 도로명의 주소가 “남도석성로”이고

이곳 남두재 지명유래도 알 길이 없다 

석성삼거리 방향으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팻말이 서 있는데

조금전 석성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오는 길이다

남두재를 건넌 다음에 보리밭을 가로질러 벌목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벌목지를 치고 오르는데 또다시 체기로 인한 통증이 시작되더니

차가운 날씨임에도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산행이고 지랄이고

간에 베낭을 내려놓고 누워 버린다...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베낭을 뒤져 구급약통을 찾아보지만

베트남 가기전에 베낭을 세탁하면서 빼놓은 구급약통을 챙기지 못했다

바로옆에 있는 아카시아 가시로 손가락을 따보지만 효과가 없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느릿느릿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며 식은 땀은 흐르고,

아침부터 불어대는 바닷가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가운 가랑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아침에 올랐던 우람한 희여산이 

나에게 아프지말고 조심해서 잘가라는 작별 인사를 건넨다

 

진도는 섬이면서도 농사 지을 땅이 많은 곳으로 전통적으로 어업보다는

농업으로 사는 주민들이 훨씬 많았고, 게다가 토지도 비옥해 일 년 농사를

지으면 삼 년을 먹고살 만큼 소출이 많았는데, 고려 때의 옥주(沃州)라는

지명도 여기서 비롯했다고 한다....그런 탓인지 진도에는 옥주택시.옥주 상회 등

옥주라는 지명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안부(10:34)

힘들게 능선에 올라와서 평평한 능선을 따라서 조금씩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159.3m봉(10:38)

완만한 능선을 오르다보니 삼각점이 있는 176.3m봉에 도착한다

176.3m봉(10:46)

176.3m봉은 낙엽속에 묻혀 버렸다...맥꾼들이 안온다는 얘기다

내가 깨끗히 청소를 하고 표식확인을 한다

176.3m봉 정상 삼각점(△조도 304 / 1986재설)

176.3m봉 정상은 예전에 헬기장이었던 모양이다

다시 맥길은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경계 말뚝들이 보인다

동백과 박달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을 따라서 걷는데...

무영객님은 이곳을 176.3m봉 정상이라 표시를 해놔서 헷갈린다

안부(10:48)

암봉(10:50)

잠시후에 오를 앞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아주 가까운

근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뚱아리가  힘드니 멀게만 느낀다

암봉으로 올라서니  울창한 숲 아래로 넓은 임회면 연동리 들판이 펼쳐지고

내연제라는 저수지 뒷쪽으로는 진도의 명산중에 하나인 동석산(217.7m)

좌측으로는 석적막산(235.1m), 급치산(223.5m)이 있는 곳이나 희뿌연 안개가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범여의 진도지맥 마지막길에 초를 치는구나

안부(10:58)

등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잡목의 저항을 받지않고 걷는다는

그 자체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무명봉(11:02)

고도차가 거의 없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아이!~~~ 깜짝이야...갑자기 묵은 임도가 나온다.

힘들게 길을 걷다가 갑자기 편안한 길이 나타나면 행여

알바가 아닐까하는 노파심에 다시한번 트랙을 확인한다

임도(11:04)

잠시 편안한 길을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무심코 걷다보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완산이공 묘(11:05)

자연석인 묘비에는 通政大夫 ? 配 淑夫人 完山 李氏라고 적혀있는데

구름버섯같은 이끼가 많이 끼여서  탁본을 해야 내용을 알듯하다

잠깐이지만 진도지맥의 본 모습을 보는듯한 지독한 잡목지대를 통과한다

몸뚱아리에 생채기를 일으키며 잡목지대를 통과한 후 암봉으로 올라선다

암봉(11:09)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잠시전에 지나온 희여산이 다시 그리워지는구나.

암릉구간을 곡예하면서 걷다가 안부에서 

마삭줄 잎사귀가 뒤덮인 능선으로 올라서니

또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남도지방을 말할 때 ‘어디 가서 무엇을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예컨데 여수가서 돈 자랑하지말고, 순천가서 인물자랑하지 말고, 벌교가서

주먹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곳 진도에서는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려 세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첫번째는 글씨 자랑이요, 둘째 그림 자랑이고,

셋째는 노래 자랑이란다.

 

진도가 다른 고을의 자랑거리와 비교해 볼 때 품격이 다르거니와, 이 세 가지만으로도

진도를 우리나라 최고의 예향(藝鄕)으로 꼽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으며, 이외에도 진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주량(酒量)이다... 특히 홍주(紅酒)를 앞에 놓고

주량(酒量)을 자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데 진도 사람들은 홍주를 받아들이는

배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봉(11:12)

그러나 진도는 뭐니 뭐니 해도 민요가 유명세를 떨치는 마을로 진도에선 낯선 남자가

길을 가면 밭일을 하던 아낙들은 멱구리(씨앗망태)로 길을 막고 노래를 시키곤 했다.

그가 노래를 한 가락 하면 앞길을 열어 주지만 만일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노래로

놀려댔다고 하며, 그런가 하면 진도 사람들은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을 때도

먼저 시를 짓고, 결판이 안 나면 노래를 불렀고, 그것마저 우열을 가리지 못하면

그제야 힘으로 대결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장이다

암릉구간이 끝이나고 소나무 뒷쪽으로 보이는 앞산을 바라보며 숲으로 들어간다

안부(11:17)

앞산(236.5m:11:23)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와 남동리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란 마을의 이름을 낳게 하였는데

앞산이 구슬처럼 생겼다 하여 연주(連珠) 또는 연지동이라

한데서 연주리가 유래하였다고 한다.

앞산을 지나면서 잠시후에 오를 한복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진도지맥의 합수점인 서망항 좌측으로 백미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뒷쪽으로는 조도군도가 충분히 보일만한 곳이지만, 한치앞도 안보이는

짙은 안개가 원수로구나.

 

조도군도(鳥島群島)는 진도 남쪽 국립한려해상공원에 위치한 조도를 중심으로 관매도,

나배도,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맹골도 등 크고 작은 15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 떼처럼 많은 섬들이 밀집해 있다고 해서 이름마저 새 섬인데, 이들 섬 전체가 진도군 조도면을

구성하며 조도6군도는 가사군도, 상조군도, 하조군도, 성남군도, 관매군도, 거차군도이다.

조도6군도의 중심이 되는 하조도와 상조도는 조도대교로 연도 되어 있으며, 상조도의 도리산

전망대에 오르면 조도군도 일대에 흩뿌려져 있는 섬들을 다양한 각도로 조망이 가능하며 날씨가

좋으면 멀리 신안군의 섬들과 제주도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가사군도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섬으로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공도(혈도), 불도, 광대도 등이 있다.

관매군도는 진도군의 섬들 중 가장 아름다운 섬들로 관매 8경으로 불리고 있다.

암봉(11:34)

지나온 길을 되새기면서 진도의 산길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러는 사이에 산과는  一心同體가 된다

암릉 위에 있는 다람쥐의 옹달샘을 지나니 한복산이 나온다

한복산(漢福山:231.6m:11:47)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솟아있는 산으로 산자락 서쪽 비탈에  

팽목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서망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는 산으로 이곳 역시 산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으며

준.희 쌤의 산패만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산이다.

 

유물산포지(遺物散布地)는 고고학의 자료 수집단계인 지표조사를 통해 대부분

발견되지만 경작 등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유물도 많다... 유물산포지는 지표조사

과정에서 유물이 확인되거나, 지형상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말한다.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 팽목마을에 있는 팽목유물산포지는 이 마을의 동북쪽에 있는

‘집건너들’이라는 계단식 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북쪽으로 흐르는 한복산

지맥의 서쪽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이 유물

산포지에서는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그물추와 자연유가 흐르는 도기편,

고려시대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인증샷

한복산 돌틈 사이에서 피고있는 산자고(山慈姑)

흐미 이쁜것들...괜스레 가슴이 설레는데

추운 겨울을 참으로 용하게 잘 참았구나.

나도 이제 슬슬 대포(카메라)를 꺼내서 손질하고

야생화 촬영준비를 해야겠다

꽃 피는 봄엔  /  용혜원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근데 야는 누군겨...자세히 보니 올괴불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구나...너는 조금 성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4월쯤에 피는 꽃이 벌써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한복산의 산자고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세상살이가 모두 다 만나면 이별이라 하지 않았던가...

암봉(11:50)

 

계속되는 암봉 능선

암봉(11:52)

박달나무 군락지 아래로 내려가는데 비가온 뒤라서 그런지

낙엽 아래의 젖은 물기로 인해서 등로는 생각보다 미끄럽다

최악의 컨디션에 홀로 다니는 산길에 다치기라도 하며

큰일이제...조심, 또 조심하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망이 좋은 암릉에 서니 다도해 앞바다의 남동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남동만 뒷쪽으로는 사자도와 각거도가 어려품시 보이지만

보여야 할 조도의 섬들은 코빼기도 안보이니 많이 아쉽다

잠시후에 오를 129.5m봉을 바라보면서 암릉 아래로 내려선다

진달래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

안부(11:54)

안부를 지나면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직진길을 버리고...

갈림길(11:55)

길이없는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급경사 절개지의 암릉구간이 나오고...

암릉 구간의 옆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오를 129.5m봉, 173.1m봉, 93.2m봉 너머로 진도지맥길이

나를 기다리는데, 자꾸만 발걸음은 느려진다...무쟈게 배가 고프지만

먹는게 겁이나서 주린 배를 부여잡고, 천천히 길을 걷는다.

이렇게 힘든 苦行도 산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암릉 옆길로 내려서는데 백두사랑의 이대장이 선배를 응원한다

아우님!...고맙소

급경사의 내리막길...등로는 보이지 않고...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을 등대 삼아서 조심스럽게...

사면으로 이어지는 비탈길...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된통 꼬꾸라진다

어디로 가야하나?

얼마나 힘이들까?

트랙으로는 지맥길이 분명한데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내려서니 임회면 연동리 재너머골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12:13)

임도를 가로질러서 나오니...

억새가 무성한 묵밭이 나오고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129.5m봉으로 향한다

아!...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버틸힘조차도 없다.

베낭을 내려놓고 달달한 알사탕 2개에다가 쥬스

하나로 허기로 달랜 다음에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오르막길

좌측에 돌담이 보이기에 예전의 산성터였는줄 알았는데...

안쪽으로 들여다보니 자연석으로 만든 묘비가 보이는 묘지였지만

그 안쪽으로 들어가서 확인할 힘도없고 하여 그냥 오르막으로 향한다

129.5m봉으로 향하는 길도 그리만만하진 않구나.

등로도 보이지 않고, 생각보다 강한 태클을 걸어대는

잡목으로 인해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준.희쌤과 부뜰이님의 흔적을 만나는데 잘가고 있다는 얘기다

무명봉(12:32)

참으로 힘들게 무명봉으로 올라선다...진도 산줄기가 부리는

꼬라지를 물리치고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129.5m봉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

암봉으로 올라서니 지맥길에 마지막을 장식한 서망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의 진도는 유배의 섬이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고려부터 조선까지 무려

180여명이 진도에 유배당한 것으로 기록에 나타나며, 유배당한 사대부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관직에 오르기 때문에 유배지 인근에서

일정한 세력을 유지했다... 오죽하면 당시 유배자들 때문에 진도 주민들이

먹을 게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진도 주민들의 핏속에 유전되는

넉넉함과 예술적인 기질은 유배자들에게서 고급 문화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장점을 흡수해서 진도만의 독특함으로서 발전시켰다고 하며,

진돗개·구기자·돌미역의 삼보(三寶)와 노래·서화·홍주를 일컫는 삼락(三樂)의

섬이  진도(珍島)다.

조망바위(12:40)

조망바위 아래쪽은 옴팍파인 동남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진도의 산길에서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산자고

서망항(西望港)의 모습

진도군 임해면 남동리에 위치한 항구로 1986년 3월1일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서망항이 위치한 임회면의 탑립마을은 '탑(塔)이야기' 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임회면은 이곳에 공공근로를 활용, 여신탑 등 전국에서 보기드문 신기한 대형 돌탑을

세워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서망항은 남·북 방파제와 물양장, 선양장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진도 항로표지사무소와

진도수협 서망사업소, 수협위판장 등이 들어 서 있다. 특히 서망항의 오른쪽에

전망대처럼 높은 탑 모양을 한 항로표지사무소가 있는데 서남해안의 항로표지

관리 뿐 아니라 선박의 항행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인근 진도 조도면 해역은 냉수대가 형성돼 플랑크톤 등 먹이가 풍부하고 갯바위

래층으로 꽃게의 서식지로 제격이며 연중 적조가 발생하지 않는 청정해역이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위치하며, 진도의 북동쪽으로는

해남군, 동쪽으로는 완도군, 북서쪽으로는 신안군과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제주도가 자리잡고 있으며, 간접세력권의 배후도시로는 목포시와 광주광역시가

다.

 

서망항 북측에는 지방어항인 팽목항이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완도항,

북서쪽으로는 목포항, 남쪽으로는 제주항과 인접한 거리에 있으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조도면 일대 주민 및 관광객의 생활필수품 운송과 관광·낚시객

수송의 요충지로서 진도군내 도서의 육·해상 교통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망항은 꽃게의 산지로 유명한데, 서망항에서는 진도와 전남 남해안 인근 30여척의

꽃게통발 어선이 꽃게잡이를 하고 있으며, 전국 꽃게 생산량의 25%에 이른다고 한다.

조금전에 지나온 한복산을 바라보면서 올라서니 129.5m봉이 나온다

129.5m봉(12:47)

129.5m봉을 내려서면서 좌측의 사면길 비슷한 곳으로 내려서는데

자갈길로 된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하지만 선답자들의 시그널로

인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듯 하다

오우가(五友歌) / 윤선도

 

 

내벗이 몇인고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오르니 그이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서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하도 많다

좋고도 그칠때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일로 피면서 빨리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다가 누르는가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피우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줄 그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것이 높이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만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조선시대에 정철(澈), 박인로(朴仁老)와 더불어. 3대 시인(詩人) 중의 한사람이었던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라는 시(詩)는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을 이야기하고 있는 윤선도는 이 다섯을 가르켜 진

정(眞正)한 친구(親舊)라고 말하면서, 자연(自然)을 예찬(禮讚)하고 있는데,

자연(自然)을 친구처럼 가까이 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건강해 질 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준다.

미끄러운 사면길로 내려서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동백나무 군락지 안쪽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백두사랑산악회의 흔적이 보이고...

금새 등로는 사라지고 한참을 버벅거린 다음에 숲을 빠져 나온다

묘지가 나오고 그 아랫쪽으로 서망항으로 이어지는 18번

국도가 보이는데 지맥길은 묘지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지나

길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묘지쪽으로 내려간다

전주최공 묘(13:00)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채로 18번 국도를 따라서 서망고개로 향한다

서망고개(西望峙:13:04)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와 연동리의 경계에 있는 18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서망항과 팽목항(진도항)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서망리의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서망고개에서 바라본 서망항의 모습

서망고개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간 다음에...

쇠사슬로 막아놓은 임도에서 우측의 잡풀숲으로 향한다

지나온 서망고개를 뒤돌아 보면서 올라서니 인동장씨 가족묘가 나온다

인동장씨 가족묘(13:08)

인동장씨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비실이님께서 대밭 안쪽으로 지맥길을 인도한다

길이없는 대밭사이로 버벅거리면서 올라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3:14)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시작되는 

급경사의 된비알이라 그런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몸뚱아리의 고통이 시작된다

빡세게 올라서니 무명봉이 나오고 한동안 조금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2:26)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빡센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겨울철임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며 나뭇뿌리를 뒤덮고 있는 콩짜개덩쿨잎

바로 아랫쪽이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드세고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젖먹던 힘까지 다짜서 힘들게

올라서니 173.1m봉이 나온다

 173.1m봉(12:40)

 173.1m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가는데...

최근에 등로를 정리했는지 길은 뚜렸하다.

참으로 진도지맥길에서 개고생을 했는데

마지막에 꽃가마를 타고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그래!...이런 맛도 있어야 산을 타는 재미라도 있제...

계속되는 꽃가마길...

내리막길에 만나는 무명봉...이곳이 93.2m봉인줄

알았는데 트랙을 보니 아직은 더가야할 듯 싶다

무명봉(13:47)

나뭇가지 사이로 진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93.2m봉이 보인다

안부(14:00)

다시 오르막길...하루종일 걸으면서 먹은 김밥한줄에

급체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만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먹는게 겁이나서 엄두를 못낸다

암봉(14:02)

안부(14:06)

안부에서 암봉을 치고 올라서니 이곳이 진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93.2m봉이다

 93.2m봉에서 바라본 바다는 짙은 안개로 코앞에 있는 섬도 잘 안보인다

 93.2m봉(14:12)

 진도산줄기의 마지막인 93.2m봉을 내려서는데

올괴불나꽃이 화사하게 피기 시작한다

올괴불나무꽃(꽃말:사랑과 희열)

산토끼꽃목 > 인동과 > 인동속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크기는 높이 1m정도이고

잎은 마주나기하며 달걀형 또는 타원형이고 첨두, 원저이며 길이와 폭이

각 3.5 ~ 7.0cm × 2.5 ~ 4.5cm로, 양면에 분백색이 돌고 표면에는 잔털 밀생하며

뒷면에 융털이 있으며,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으며 잎자루 길이는 1 ~ 5mm이고

털이 밀생한다.

 

꽃은 3 ~ 4월에 피며 연한 노란색 혹은 붉은색으로 잎보다 먼저 피고, 전년지 끝에 2개씩 달리고,

꽃대는 길이 2 ~ 8mm로 잔털과 샘이 존재하며, 포에는 털이 있고 작은포가 없으며, 꽃부리는

양측이 깊이 갈라지고, 상하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판통은 짧고 밑부분이 넓다.

열매는 장과로 서로 떨어져 있고 둥글지만 약간 편평하며 지름 8mm정도로서 5월에 적색으로

성숙하고 맛이 달다.

 93.2m봉에서 내려서는 등로는 상당히 급경사다

갈림길(14:17)

이곳에서 합수점은 좌측으로 꺽어져 절개지로 내려서야 하고

우측으로 난 뚜렸한 등로는 합수점을 찍고 다시 올라와서

서망항으로 가는 길이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급경사를 내려서니...

합수점  앞에 있는 섬들이 보이다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정상에서 내려올 때 조심하라고 했제...

손가락보다도 가는 로프를 잡고 합수점으로 내려간다

합수점으로 내려서니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바위에 부딪히는

거센 물살이 마치 용이 승천할 때의 굉음처럼 들린다

바닷가 좌측 저멀리로는 외롭게 보이는 사자도가 바다를 지키고 있다

백미도 합수점(14:20~35)

진도대교에서 시작한 진도의 산줄기는 이곳 백미도(白米島)앞

남해바다로 入水하면서 진도지맥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여태껏 걸어온 지맥길중에 가장 힘들었던 지맥길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다...하지만 온갖 苦難을 극복하고 해냈다는 자부심에

喜悅을 만끽한 채, 모든걸 마무리하는 인증샷을 남긴다

 

 

인증샷

 서망항 앞을 외로이 지키고 있는 죽도(竹島)의 모습

합수점 맞은편에는 쌀섬이라 불리는 백미도(白米島)가 있고

좌측으로는 각거도가 참으로 고생 많이 했다면서 산꾼 범여를 반긴다.

바닷가 아래로 내려가서 바닷물에 손을 담그는 의식을 해보려 했지만

강한 바람에 파도가 심하고 물살까지 드세어 포기를 한다

뚜렸히 보여할 길마도는 형체만 보일쭌 실체는 확인조차 안된다

너무 힘들게 진도지맥을 마친 탓일까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합수점에 머물면서 진도지맥의 餘韻을 만끽하다가

다시 베낭을 메고 서망항으로 향한다

합수점 바닷가에서 올라와 서망항으로 가는

가는 길은 마치 토끼비리길처럼 옹색하기만 하다.

서망항 가는 길에서 바라논 죽도(竹島)의 모습

섬에 시누대에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바로 아래는 바다라서 발한번 삐끗하면 물고기밥이 될것 같다.

조심 또 조심하면서 걷다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경주최공 묘(14:55)

묘지 딋쪽 능선에 올랐다가 급경사로 내려오니 서망항이 나온다

산에서 내려와 건물 사이로 빠져나오니...

진도군 수협 서망위판장이 나온다

서망항(15:10)

서망항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팽목항의 모습

진도항(팽목항)은 진도군의 서남쪽 끝에 있는 연안항으로

1996년 12월 해양수산부에 연안항 지정신청을 내어 1998년 2월 24일

국가지정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이며

과거에는 목포-팽목-제주도를 잇는 항구였으나, 현재는 진도 근해의 섬,

그 중에서도 특히 팽목과 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가 되고 있다.

진도군은 팽목항이 연안항으로 지정, 개발되면서 항구다운 항구를 갖추게 되었다.

2013년 2월 진도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팽목항이라는 명칭도 통용되고 있는데

팽목이란 지명은 팽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의 마을 이름보다도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라는 어두운 면이

더 많이 부각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기도 한 곳이다

조금전 산에서 아침에 이용했던 옥주택시를 호출하면서 산에서 내려 왔는데

예상보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는데...아따!...성님 좀 늦었지라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데...갑자기 진도에 동생이 한명 생긴 기분이다

진도터미널(15:45)

컨디션 저하로 인해서 너무 느리게 산행을 한 탓에 진도에서 다이렉트로

서울가는 버스를 놓치고, 이곳에서 목포로 가서 서울로 가야한다

진도발 → 목포행 16시 20분 버스표

목포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들려 간단하게 씻고

환복을 한 다음에 편의점에서 소화제와 까스명수 한 병을

마신 다음에 한참을 터미널 대합실에 멍때리기를 하다가

목포가는 버스에 오른다

약을 사먹고나니 속이 한결 편안한 느낌이다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고 버스가

목포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야 잠에서 깨어난다

목포터미널(17:35)

목포발 → 서울행 버스표

18시에 서울가는 버스에 올랐는데, 3일간의 여유라서

그랬는지 고속버스는 정안휴게소 부근부터 심한 정체가

되는 바람에 예상한 시간보다 50여분 늦게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훨씬 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