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팔음)지맥(終)

보청(팔음)지맥 제5구간 - 당재에서 구금강2교(금강 합수점)까지

범여(梵如) 2024. 4. 8. 18:12

☞ 산행일자: 2024년 03월 30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지독한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9.7km  / 5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당재-SK당재 이동통신탑- 404.6m봉- 안부- 안부- 425.3m봉- 안부- 무명봉

                     무명봉- 무명봉- 315m봉- 무명봉- 안부- 390.4m봉- 안부- 305.6m봉

                     안부- 무명봉- 안부- 367.4m봉- 안부- 무명봉- 지탄고개- 무명봉- 285m봉

                     김녕김공&경주이씨 묘- 안부- 306.6m봉- 안부- 338.4m봉- 안부- 355.2m봉

                     안부- 무명봉- 갈림길- 무명봉- 안부- 안부- 374.7m봉- 421.7m봉-탕근봉갈림길

                     안부- 447.7m봉- 말목재- 철봉산- 암봉- 안부- 작은단우리봉- 안부- 갈림길

                    311.8m봉- 분지골 고개-해맞이산-

☞ 소 재 지: 충북 옥천군 동이면, 이원면 / 영동군 심천면

 

일요일날에 고향 후배의 무남독녀의 결혼식이 일어서 토요일날 산행에 나선다.

원래 계획은 토요일 저녁에 해남가서 하룻밤을 자고 화원지맥 한 구간을 하고

오려고 했는데 요즘에 이상하리만큼 산행을 하고나면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서,

지난주에 힘들게 산행을 하고 얼마남지 않은 짧은 거리의 보청(팔음)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마치고 일찍 귀가해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은 교통비 지출도 줄이고, 꼭두새벽에 집을 안 나가도 될것 같은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옥천가는 무궁화호 첫 열차가 05시 53분에 있는데, 이 열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려니 첫 차부터 매진이란다...하는 수 없이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ktx로 갔다가

대전역에서 무궁화 열차로 환승하여 옥천역까지 가기로 하고, 평소처럼 집 앞에서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서울역 → 대전역 → 옥천역 환승 열차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는 광명만 서고 곧바로 대전역으로

가는 바람에 1시간만에 대전역에 도착하여 대합실로 나가지 않고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역 열차로 향한다

대전역(06:15)

대전역에서 옥천역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라 06시 25분에 대전역을

출발하여 옥천역을 향하는데, 10분 조금 넘은 시간에 옥천역에 도착한다

옥천역 열차 운임표와 시간표

옥천역(06:45)

옥천역내에서 해우소에 들려 시원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역 광장으로 나오니 이 지역 출신으로 가곡으로도 잘 알려진 “향수”라는

詩를 쓴 정지용 시인의 詩碑가 산꾼을 맞이한다

정지용 시인의 詩碑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난 한국 현대시 사상 기념비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정지용(鄭芝溶, 1903~?)은 1930년대 문학의 주요 흐름 어느 곳에나

그늘을 드리우면서도 역량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특정 집단 속에 잘 꿰어 맞춰지지 않는

시인으로, 그의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향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지용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중국과 만주를 오가며 익힌 한의학을 바탕으로 한약상을 경영하며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느닷없이 밀어닥친 홍수로 가세가 기울면서 어린 시인은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혼자 힘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이 때 4년

가까이 산천과 들판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겪은 고향의 갖가지 풍습은 감수성 짙은

그의 소년기에 깊이 각인되어 문학에 대한 꿈으로 익어간다.

그는 신선한 감각으로 근대 풍물과 이국 정서를 화폭에 담은 듯한 시들을 발표한다.

곧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 정지용은 이듬해 『신민』과 『문예시대』에 「홍춘」 ·

「따리아」 · 「산엣색시 들녁사내」 · 「갑판 우」 등을, 『조선지광』에 「바다」 · 「향수」

등을 잇달아 쏟아내는데,  또 당시 일본 시단을 대표하던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가

주관하던 잡지 『근대풍경』에 투고한 시가 호평과 함께 크게 실림으로써 일본의

문단에도 그의 이름이 알려진다.

 

 1941년에 출판된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은 후에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윤동주와 이상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 1933년에는

《가톨릭 청년》의 편집 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를 실어 등단 시켰고 1939(38세)에는

문장지의 시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마지막으로 윤동주는 강처중과 정병욱의 요청에 따라 추천사를 써주며

등단시킨 셈이다...그리고 일제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1942년 이후 정지용은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 청록파(靑鹿派)는 박목월,박두진, 조지훈을 함께 이르는 말로 이들을 일컬어 "청록파"라고

  부르는 것은, 해방 이후 1946년에 함께 을유문화사에서  <청록집>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함께 발간하였기 때문인데,  청록집이라는 이름은 박목월의 시 중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1939년 잡지 《문장》을 통해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면서 세 시인이 함께 등장했다.

  셋 모두 자연친화적인 시풍을 지닌 공통점이 있는데, 이를 두고 김경린,박인환, 김수영

  50년대의 후반기 동인에서는 청록파를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민족 현실을 외면한 현실도피적

 시풍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다만 시의 서정성과 유려함에서만큼은 수위급을 다툰다는

 것은 대부분 공감하는 편이다

옥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당재로 향하는데 어제 중국에서 너머온

황사의 영향인지 도로가 안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마스크를 끼고, 택시를 타고 당재로 향하는데 숨을 쉬기조차 힘든다.

다행히 택시가 옥천읍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를

지나면서 고도를 높힌 다음에 당재로 올라서니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당재(塘 :07:25)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와 영동군 심천면 길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가 단전묘금로인 505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개

고개 아래쪽의 당현동(塘峴洞)마을에서 지명을 따온 듯 하다.

 

당현동의 ‘당(塘)‘ 한문으로 풀이하면  ‘둑을 뜻하는 못(塘)’아니라,

‘길 장(長)‘이 구개음화(口蓋音化) 된 댱(당)으로  ‘길게 이어진 고개’ 라는

뜻으로 당현마을을 ‘장티‘ 또는 ‘당재’라고 부르는데,  고갯마루를 당재라고 

부르는데 거기서 유래된 듯 하다

당재는 지대가 높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금강줄기가 가까워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6일전과는 달리 벚꽃도 피어있는데 음지에는

서리가 보일정도로 추우니, 요즘 날씨는 종잡을수가 없다.

장갑을 끼지 않으니 손이 시릴정도라, 서둘러 산행 채비를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7:30)

매주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산이 끌어 당기는 魔力에 이끌려

오늘도 산길에 들어선다...당재 이동신탑으로 오르는 길 좌측에는

이른 아침부터 간벌을 하는 벌목꾼들의 전기톱의 기계음이 요란하다

시멘트 포장도로이긴 해도 급경사라 그런지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천천히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른 아침에 베낭을 메고

산길을 걷는 산꾼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벌목꾼의 눈매는 뭘 의미할까...

 

이보시게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한 말을 아시나요...

 돼지의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로 보이는 것을”...

벌목지 아래로 보이는 영동군 심천면 길현리의 당재마을은

얼마나 미세먼지가 심하던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짙은 薄霧에 마을을 가늠조차 할수가 없구나

넓은 공터에 올라선 다음에...

SK 당재 기지국 통신탑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향한다

심심하여 계단을 세면서 올라가는데, 부산의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194계단이라고 했는데, 이곳은 230계단이구나...참으로 부질없는

짓거리다...

당재 SK 기지국(07:50)

당재 SK 기지국에서 좌.우측 어디로 가던지 상관이

없으니 그거야 엿장수 맘이 아닌 산꾼의 마음이다

당재 SK 기지국을 지나서...

암봉으로 올라서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404.6m봉 정상에 도착한다

404.6m봉(07:52)

이곳 404.6m봉에서 신산경표상의 팔음지맥 합수점을 어디로 할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되는 봉우리다...팔음지맥을 걷는 대다수의 산꾼들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구금강2교로 향하나, 일부 산꾼들은 금강과 초강천이 합수하는

심천교로 향하는데,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신산경표를 놓고보면 심천교로

가야는게 맞다고 본다...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걸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오룩스

트랙상의 팔음지맥인 구금강2교로 한다

 

내가 신봉하는 대한산경표상의 보청지맥은 지난주 일요일에 걸었던 깃대봉이라

불렀던 426.6m봉에서 우측으로 향해 보청천으로 향하는데 거기도 꼭 걸어볼 생각이다

암봉으로 되어있는 404.6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좌측인 남쪽은

영동군 심천면에서 옥천군 이원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북측인

우측은 옥천군 동이면으로 이곳부터 합수점까지 옥천군의 맥길이다

약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사하게 옷매무새를 한 참꽃이 산꾼을 반긴다

추운 날씨에 미세먼지도 아주 심한데, 반겨주니 눈물나게 고맙구나...

약간의 추운 날씨에 옷깃을 여미면서 내려서 生을 마감한

枯死木이 길을 막지만 생각보다 태클이 심하지 않아 우회를

하면서 내 갈길을 간다

안부(07:55)

안부에서 북서쪽으로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 505번 지방도와

토끼재, 보청천으로 이어지는 대한산경표상의 가운데날산(446.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흐릿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했는데 지금은 1년내내 산을 걸어면서

산을 봐도 뚜렸한 멋진 仙景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만큼 힘이든다.

 

가운데날산은 옥천군 청성면 양저리와 묘금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서 동쪽으로 올려다보이는 완만한 능선을 

가진 산으로 ‘가운데날산’이라는 묘한  이름은 1/50000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고 영진문화사에서 발간한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옥천군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산이다.

 

빈 산

 

마을 논바닥이 다 말라갔다.

먼 산 바라보면 빈 쌀독

빠각 빠각 긁어대던 어머니

 

산그늘 중턱엔

뻐꾸기 소리 요란한데

마른 젖 물리고 긴 뻐꾸기

울음소리로 울던 어머니

완만한 내리막길에 양지라서 그런지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면서

등로는 살짝 거칠어지지만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안부(08:03)

살짝 지맥이 本色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지탄리산성 표시석이 있는 425.3m봉에 오른다

425.3m봉(08:05)

425.3m봉 정상에 올라서니 몇년전 갑천(신산경표상:식장)지맥과

서화(신산경표상:장령)지맥을 걸어면서 옥천지역의 산에서 많이

만났던 옥천 향토사 연구회에서 설치한 똑같은 유형의 烏石에다

지탄리산성(池灘里山城) 표시석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탄리산성(池灘里山城)은 성턱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은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나 심천면과 이원면 지탄리 앞의 넓은 들을 지키며 성의 남쪽에서

금강을 건너 당재를 넘어 청성(굴산성)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요충지의

성으로 생각되며 양산의 지내리산성(조비천성)과 굴산성을 연결하는 신라의

중요한 성이며 또한 성의 동쪽 골짜기에는 길현리의 길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영동군의 옛 이름인 길동현과 연결이 지어 진다면 이 산성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성으로 형태는 테뫼형, 둘레는

약250m라고 하며, 영동군 심천에서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로 가는 505지방도의

당재 서쪽 해발 400m의 산봉우리에 위치하며, 영동군 심천면과 이원면 지탄리의

넓은 들을 조망하며 성의 남쪽에서 금강을 건너 당재를 넘어 청성. 청산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요충지에 해당되어 청성의 이성산성(금산성)을 연결하는 신라의

주요 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탄리산성터가 있는 425.3m봉 정상에서 좌측의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미세먼지가 살짝 걷히는 서쪽 능선을 바라보니 서대산(西臺山:905.3m)이 얼굴을

내미는데,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금산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서대산은 금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식되었다.

 

조선 초기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었으며 서대사의 서편 기슭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다고 하며, 우람하고 홀로 우뚝 솟은 산으로 바위 봉우리와

푸른 숲이 어우러져 경관도 매우 아름답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여러

산행코스가 있고 정상에서는 금산, 옥천 뿐만 아니라 멀리 대전까지 보이기도 한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옥녀탄금대에는 샘의 영수(靈水)를 7번 이상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길이 열리고 첫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정상에서 북쪽

546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변에는 장면대·북두칠성바위·사자굴·쌀바위 등이 있다.

협곡을 가로질러 설치된 약 50m의 구름다리 주변은 기암절벽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며,

옥천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10km 지점에 있는 서대산은 남서쪽의 대둔산(大屯山:878m),

남쪽의 국사봉(國師峰:668m)과 함께 충청북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보청천으로 향하는 대한산경표의 보청지맥 능선...

나에게 이곳은 언제 올거냐고 採根하는 느낌이다.

너무 보채지 마시게나...시간이 되면 갈께...

꽃을 피우다가 갑자기 찾아온 추위탓인지 잔뜩 움추리고 있는

생강꽃...세속의 인간들이 정상적으로 살지 않으니 날씨마져

지랄하는 바람에 애은 꽃만 괴로운 듯 하다 

안부(08:08)

안부에 오르면서 바라본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 재넘어골의 모습

 

우산리(牛山里)는 철봉산 아래 금강이 휘돌아 나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쇳봉산(우산), 내촌(내우산리), 메쥐골(산서동), 벌말(외촌,외우산리),

지매 등이 있다... 우산리라는 지명은 쇳봉산 밑에 있으므로 쇳봉산 또는 우산이라

부르던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내촌은 우산 안쪽에 있는 마을로 근처에 ‘와우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메쥐골은 산쥐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말은 우산 바깥쪽 강가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지매는 ‘매화낙지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만덕사가 있다.

지탄리산성지(池灘里山城址)를 지나면서 잠깐 거칠어진 능선이

다시 편안한 길로 바뀌면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선다  

무명봉(08:10)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산길이다...못난이 소나무들이

보청(팔음)지맥의 마지막길을 support 해주니 발걸음이 가볍다

못난이소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멋진 모습을 보이면서 봄길에 꽃단장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 탓인가, 잔뜩 몸을 사린 참꽃이 애처롭게 보인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지맥길 근처에 있는 산줄기들이 얼굴을 내민다.

보이는 저 산봉우리는 우산리 뒷쪽에 있는 앞산과 소태배기산인듯 하고,

보청천으로 가는 길에 있는 두루봉과 간운데날산도 아련하게 보인다 

 

보이는 저 흐릿함은 夢幻的 분위기를 자아내는 멋진 안개와 구름이

아닌 중국에 날아온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미세먼지이다.

 

사람도 이웃을 잘 만나야 하지만, 국가라는 영토도 이웃을 잘만나야

하는 모양이다...짱깨를 이웃에 둔 이 나라는 언제까지 저것들한테

피해를 당해야 하나...

무명봉(08:13)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길의 나뭇가지에는 선답자의

시그널 서너개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아침에 불지않던

바람이 불어대니 약간 춥게 느껴지는 날씨이지만, 그 대신에

땀이 흐르지 않으니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마루금은 좌측의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

고도차가 없는 길이라 지금이야 편하게 걷지마는 지맥길이란

다 그렇듯, 언제 變心할 지 몰라서 잔뜩 긴장하면서 걷는다

무명봉(08:15)

무명봉을 지나면서 지맥길은 다시한번 우측으로 향한다

오랫만에 걸어보는 참으로 편한 길.

남은 여생도 이렇게 편안한 길만 걷고싶다.

그러나 인생사가 내맘대로 된 적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사바세계에 산다는 자체가 苦인데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다가오는 모든 일에 순응하면 살자구나...

315m봉(08:18)

315m봉을 내려서니 등로 가운데의 무명묘지 봉분에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보기가 안좋다 

1주일내내 힘들었던 삶도 산길에만 들어서면 내 눈빛이 달라지고

생동감이 이렇게 샘솟는 느낌이다...어머님의 품안만큼이나 편안한

이 길에 매료되어...뽕쟁이가 뽕에서 헤어나지 못하듯이, 나 역시

산에 대한 중독에 벗어나지 못할듯 싶다

무명봉(08:22)

무명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가늘고

못생긴 소나무들이 맥꾼 이외는 찾지않는 등로를 지키고 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도가(道家)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자(莊子)에게 

한 선비가 찾아왔는데, 이 선비는 장자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장자의 사상이 크고 높은 줄은 알지만 이상적으로 치우쳐서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비가 장자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은 크고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마치 저 앞에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저 앞의 나무는 크긴 하지만 온통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여 목수들이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재목감으로는 별로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장자가 대답했다.

"그럼 거꾸로 생각해 보게. 

그 볼품없이 보이는 나무가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오히려

목수들한테 잘리지도 않고 그토록 오래 살아 큰 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쓸모가 없는 것 아닙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여보시게... 왜 쓸모가 없나. 햇빛이 쨍쨍한 날 그 나무의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원하게 편히 쉴 수 있지 않나...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면 막아주고, 보잘 것 없는

나무가 산을 보다 푸르게 해준다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 무척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아니 그런가?" ..그러자.. 선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안부(08:26)

안부 가운데에 있는 나무한그루는 멧돼지의 체력단련에

희생된 듯 밑둥치가 상처투성이라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약간의 거친 잡목이 길을 막지만 이런것쯤이야 맥길에서는

양반이제...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여인의 젖꼭지처럼

뾰족하게 솟은 가야할 철봉산이 까칠하게만 보인다

4월의 시 / 도지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

차라리 눈물이 난다

돌아보는 곳마다 함박웃음 짓는

꽃들의 유혹에

짐 짓 유혹 당해 본다

장자에 '호접몽'에서 처럼

잠시 나비가 되어 날아

꽃과 사랑에 빠져 보기도 하고

꽃의 향기에 취해 흔들기도 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을

한껏 즐기고 싶다

한 세상 산다는 것이 별거더냐

백 년도 못하는 인생

꿈꾸듯 살아보고

취한듯 살아보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고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인생에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이 계절에

한 편의 시 처럼

살고 싶다

 

 

* 호접몽(胡蝶夢)이란 중국의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아(自我) 외물(外物)은 본디 하나라는 

 이치를 설명하는 말이다.

등로는 희미하고 바람이 살짝 불기는 하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미세먼지만 아니면 산행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오르막길을 느릿느릿 올라서니 잡목에

점령당한 390.4m봉인 무명봉에 도착한다

390.4m봉(08:33)

390.4m봉을 내려서니 조금씩 잡목의 태클이 시작되고 잠시후에

가야할 376.4m봉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이보시게!

오늘 산행이야 거리도 짧고 급할것도 없으니 너무 재촉하지 마시게...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내려서면서 바라본 서대산의 모습

안부(08:37)

안부에서 오르는 길에 하얀제비꽃이 얼굴을 내민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핀다는 제비꽃 종류도 많고

꽃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전해지는데,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붙었다하며, 꽃의 생김이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양치기 소년 ‘아티스’가 아름다운 소녀 ‘이아’의

진실한 사랑을 모른 척 하자 ‘이아’가 죽어 제비꽃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가지고 있는 꽃이다.

안부에서 밋밋한 봉우리로 올라서니

4등삼각점이 있는 305.6m봉 정상에 도착한다

305.6m봉(08:41)

306.5m봉 삼각점(△보은473 / 1980재설)

305.6m봉에서 내려서니 옴팍파인 고개가 나온다

안부(08:43)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 외촌마을로

향하는 길인데 외촌마을 뒷쪽에 있는 서밭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서밭산에 대한 지명에 대한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

 

외촌마을로 부르는 벌말은 ‘우산리 바깥쪽 강가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밭산으로  향하는 넓은 임도를 건너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외촌마을로 가는 길인데

잡목으로 인하여 능선에서는 등로가 잘 안 보인다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니 이름없는 봉우리가 나온다

무명봉(08:48)

안부(08:52)

곳곳에 봄이오는 소리가 들리건만 아직까지 완연한 봄은 아닌듯 싶다

참꽃(진달래)의 화사함에 취하여 능선으로 올라선다

367.4m봉(08:59)

간간히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나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봉우리에 있는 구덩이를 지나서 다시 조금씩 내리막길로 향한다

안부(09:02)

우측으로는 동이면 우산리로 내려가는 사면길이 보이고...

좌측 사면으로는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로 향하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희미한 등로로 이어지는 직진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무명봉(09:04)

조금씩의 봄내음을 느끼면서 호젓하게 홀로걷는 이 길은

독립군이 아니면 이 짜릿한 쾌감을 알기는 쉽지 않을거야...

조금전에 마구 파헤친듯한 뫳돼지의 식흔의 흔적을 만난다

이 넘들 상위 포식자가 없다시피한 산에서는 완전히

조폭처럼 행동을 한다

우측으로 사면길이 나오지만 앞을 쳐다보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지나니

갑자기 뚝떨어지 절개지가 나오는 지탄고개가 보인다

조금전 사면길로 갔으면 편안하게 지탄고개로 내려설 수 있었는데

절개지로 내려서는 길에 기럭지가 짧은 범여로서는 힘들게 고개로

내려온다

지탄고개(池灘峴: 09:08)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와 동이면 우산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 우 양쪽으로

넓은 임도로 이어지는데 비포장 임도이긴 해도 1톤 트럭이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이다...이루 산행기에는 지탄고개라 불리우지만 공식적인 지명은

아닌듯 하며, 지탄리 윗쪽에 있는 고개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지탄리(池灘里)는 금강 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로서, 지탄 마 재배단지가 있다.

포도와 복숭아를 많이 재배하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가린여울(기탄), 갯골(포동), 못골(지동리), 밤수골(율동리), 삼정골(삼정동), 연봉정

등이 있이 있으며, 가린여울은 마을 앞에 흐르는 금강이 두 갈래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못골은 마을 앞에 못이 있었다. 방수골은 옛날에

밤나무가 울창하였다고 하며삼정골은 옛날 정자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까칠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내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지난 구간에 이어 오늘도 농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하는

소나무의 유혹을 멀리하고 본업(산행)에 충실한다.

늙으막한 나이에 너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신세 조질일은

안하고 싶다

무명봉(09:13)

길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도 길은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듯이, 내가 걷는

이 길도 다른 산꾼이 똑같은  길을 걷는다해도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마음에도 사람 됨됨이란 길이 있어

사람과 사람이 다른 것이다

285m봉(09:18)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취하여 아무런 생각없이

걷다보니 移葬을 한듯한 破墓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생각없이 내려서니 망가진 봉분에서 묘비가 있는 묘지가 나온다

김녕김공&경주이씨 묘(09:21)

묘지로 내려서니 안부이다

안부(09:22)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 지매마을과 이원면 용방리 경계에 있는

안부고개로 좌,우 양쪽이 임도로 이어지는 등로가 뚜렸하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완만한 등로에 못생긴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솔갈비들이 등로에 많이 쌓여있어 편하게

길을 걷는다

306.6m(09:25)

길에서 길을 묻다

 

돌아보면 먼길을 걸어왔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땀과 외로움 속에서

걷고 걷다가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사람들은 知天命이니

耳順이니 하며

 

삶의 연륜에 걸맞게

나이를 구분하여 말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삶은 어렴풋하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흰머리가 늘어나고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 생각과 다른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아집과 편협함이

지금도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나를 헤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미움과 탐욕 그리고

원망과 감정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는다

 

문무일님의 “길에서 길을 묻다” 중에서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무명봉 좌측으로 편안한

사면길이 나오기에 봉우리 하나를 띵가묵고 사면길로 향한다

사면길 등로 좌측으로는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강너머골 마을

앞으로 흐르는 금강의 줄기가 나뭇가지로 어렴풋이 보인다

 

용방리(龍坊里)는 금강 줄기가 마을 앞을 휘돌아 나가 경치가 빼어나며, 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구룡(구룡촌), 모시내, 아래말(하칠방),

옻방이(칠방), 평촌(세교리) 등이 있다... 구룡촌은 용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 산봉우리가

아홉이며, 근처에 구룡쟁주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시내는 근처에 못이 있다.

옻방이는 옛날에 옻나무 칠을 만드는 집이 있었다고 하며, 평촌은 옻방이와 아래말 사이 벌판에

있는 마을이며, 문화유적으로 용문서당과 송시열 유허비가 있다.

 

조금전에 패스한 무명봉에서 내려서는 등로를 만나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09:33)

안부앞에 곧추선 무명봉...우측 사면으로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로 죄다 그쪽 방향으로 걸려 있기에....

안부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무명봉

나 역시 이곳에서 땡땡이 치는 기분이라 조금은 찝찝하지만 우측 길로 간다

사면길에서 올라서 마루금에 복귀한 다음에 우측으로 향한다

2인 삼각과계...아님 양다리 걸치기?

완만한 봉우리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338.4m봉인데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대구지맥클럽의 와룡산이라는 분의

시그널 하나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338.4m봉(09:40)

338.4m봉 정상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반갑습네다...

혹부리 영감 소나무?

안부(09:42)

안부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직진 능선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355.2m봉(09:45)

큰 고도차가 없는 맥길이지만 무명봉이 많아서 은근히  힘이 드는구나 

안부(09:47)

다시 맥길은 오르막으로 향하고...

진달래의 격한(?) 응원에 힘입어서 다시 오르막길로 향한다

무명봉(09:50)

오르막길은 계속되고...

밋밋한 무명봉에 올라서니...

갈림길(09:52)

좌측으로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로 이어지는 사면길이 보이지만

맥길은 우측의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무명봉으로 올라서야 한다

무명봉(09:54)

안부(09:56)

지루함이 계속되는 맥길에 행여 심심할까봐서

양념으로 등장하는 바위덩어리...산은 이렇게

인간을 배려하는데, 늘 신세만 지고 있으니

뭘로 보답해야 하나...

나뭇가지 사이로 경부고속도로 금강유원지 휴게소로 이어지는

금강4교가 보이고, 뒷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어깨봉이다

안부(09:59)

금강 강변이라서 그런지 산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깊은 산 속이긴 해서 미세먼지가 심하기에 조금은 불편해도

베낭에서 마스크를 꺼내서 착용한다

374.7m봉(10:04)

무명봉을 내려서니 옴팍한 곳이 나오는데 바람을 피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허기를 면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오늘은 산행거리가 짧아서 먹거리라곤 커다란 식혜 한병이 전부이다

이것을 반병정도 마시면서 점심을 대신하고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잠깐이지만 휴식을 취한다

베낭을 베개삼아 산에서 취하는 휴식은 그야말로 꿀맛이다(10:08~20)

휴식을 취한 다음에 봉우리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421.7m봉인데 산패는 없다

421.7m봉(10:24)

조금전에 지나온 338.4m봉과 똑같이 걸려 있어야 할(?) 준.희 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대구의 한 산꾼이 걸어둔 시그널 하나가 이곳을

421.7m봉임을 알려준다

421.7m봉에서 맥길을 우측으로 이어지고 잠시후에

무명봉에 도착하는데 생각보다 의외로 힘이 드는구나

탕근봉갈림길(10:36)

좌측의 능선으로 가면 동이면 적하리에 있는 탕근봉(326.6m) 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오늘 산행 거리도 짧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본업(맥길)에

충실하자 생각하면서 입맛만 다시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옥천군의 자료에는 탕근봉에 대한 자료를 찾을 길이 없다.

아마도 탕건을 사투리로 탕근이라 부르는데 지명의 유래는

전국의 많은 산에 있는 탕근봉과 그리 다르지는 않을듯 싶다.

 

* 탕건(宕巾)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던 모자의 일종으로

   대나무·말총·삼껍질 드을 엮어서 만들었으며, 뒤가 높고 앞이 낮아 턱이져 있으며,

  맨 위는 반원형으로 평평하다... 주로 말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졌으며 제주도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또다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안부(10:38)

능선에 올라서서 암봉으로 향하는데 기상청의 예보로는 오늘 날씨가

흐림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난감하네...

그러나 오랜 경험상으로 보면 지나가는 비같아서 크게 걱정은 안한다

암봉에 올라서 맥길은  우측으로 반원을 그리면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잠깐 사이에 빗방울은 멈춘다...천만다행이다.

등로에 멋진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가 말한다.

산길의 날씨는 원래 변화무쌍하는 걸 이제서야

깨달었냐고 하면서 핀잔을 준다.

활처럼 휘어져서 능선을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군벙커...이곳이 447.7m봉이다

447.7m봉(10:44)

까칠한 능선을 걷는데 능선에는 군벙커들이 간간히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가 보이는데

그리 뚜렸하지는 않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잠시후에 오를 철봉산의 오똑솟은 봉우리가 까칠하게 보인다

관리가 안된 무명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말목재(10:48)

좌측의 적하리로 내려가는 등로가 뚜렸한데, 카카오 지도를

보면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와 적하리로 넘어가는 안부 고개를

말목재라는 표기라 해놨으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안부에서 V자를 그리면서 철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멀리서 볼때는 철봉산 오름길이 상당히 까칠해 보였는데 

등로에 들어서니 생각과는 달리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아니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다시 철봉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추위를 느낄정도로 불어대는 바람이 멈추니 이마에

땀방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고...

철봉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철봉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 적하리의 모습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서니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는 철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철봉산(鐵峰山:449.5m:10:56)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와 이원면 적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헬기장과 철봉산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동이면 애향회에서 설치한

‘철봉산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는 烏石이 이채롭다

북측 아래에는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가 있으나 숨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아 전망은 별로이며,철봉산 주위로  금강이 Ω형태로

철봉산을 감싸면서 흘러가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철봉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산에 쇠가 많이 산출'되어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문헌에는 다른 이름으로

'쇳봉산'이라 기록된 지명도 보이는데  '철'은 우리말 '쇠'를 훈차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 지명은 ‘달우리산’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이 철봉산의 산세가 수려하여 그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박았는데, 그 후부터 철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달우리산이라 함은 달이 뜨기 직전과 직후 그 빛이 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정월대보름 망월일에 이 산의 어느 봉우리에서 달이 뜨느냐에 따라

그 해의 길흉을 예측하였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월이산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대성산과 장령산이 조망되고,

그 너머에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있으나 짙은 미세면지로 흐릿하게 보인다

철봉산 정상 삼각점(△보은 325 / 판독불가)

 

오록스맵트랙지

 

인증샷

주위에 비해 고도가 높아서 주위 전망이 좋을듯 하나 높이 자란 잡목탓에

생각보다 조망은 별로이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소리만

요란하다...갑자기 몰려온 먹구름 탓에 서대산 방향은 한치앞도 안 보인다

벙커 우측 아래의 나뭇가지 사이로...

 금강휴게소가 보인다

암봉(11:01)

암봉 아래의 금강너머로 보이는 어깨봉(441.1m)의 모습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와 청마리의 경계에 있는 어깨봉(441.1m)의

지명 유래는 금강 건너 동이면 우산 마을 방향에서 어깨산과  망덕산을

바라보면 어깨 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순수 우리말 산 이름이라 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계속 내려간다

안부(11:03)

하산길이라고 그리 쉬운길은 아닌듯 하다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니 무명봉을 만난다

작은달우리봉(387m:11:06)

철봉산 아래에서 뚝 떨어져서 내려오는 중간 지점에 있는 봉우리로

오룩스맵이나 트랭글앱에서는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봉인데

선답자들의 시그널 대엿섯개가 걸려있고, 어느분이   작은달우리387 라고

시그널에 표시를 해놨다...철봉산을 “달우리산”이라 하는데 철봉산

아래에있다고 해서 작은 달우리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맥길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옥천군 이원면 들녘의 모습

 

이원면(伊院面)은 신라때는 소리산현(所利山縣)·이산현(利山縣)·관성군(管城郡)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성산부·옥주에 속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 이남면(利南面)·이내면(利內面)으로

분할되었다가, 1739년(영조 15)에 8개리를 관할하였다. 1929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옥천읍과 대전광역시에 인접해 있어 근교농업인 포도·배·복숭아 등의 과일 재배가

활발한데, 특히 포도는 맛이 뛰어나 전국에서 '이원포도'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또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묘목 산지로, 1939년 복숭아나무 묘목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배, 감, 사과나무, ·매화나무·밤나무·포도나무·호두.배롱나무등 우리나라 각종 묘목의

70%가 이곳에서 유통된다고 한다

칼날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갑자기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가 시원스레 보인다

시원스레 똟려있는 경부고속도로와 금강휴게소가 보이는데 예전에

고향을 갈 때 많이 이용했던 곳이고, 높은 교각으로 되어있는 금강4교

뒷쪽으로는 광주리산과 가운데날산이 보이고 진달래꽃 뒷쪽으로는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당재는 흐릿한 모습이다

경부고속도로 끄트머리 우측으로 가면 황간을 지나 추풍령인데,

15년전 내가 맨 처음 백두대간을 걸을때 우정산행을 해 준 친구

생각이 문뜩 떠오르는구나...불알친구로서 무슨 일이든 열정적인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저 곳을 바라보니 그 친구가

더욱 더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구나...그래!...어디서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다...부디 건강하시게나...

철봉산에서 분지골 고개로 내려서는 등로는 극락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인데, 이 조그만한 봉우리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지은 죄를 반성할 기회를 주는 연옥(煉獄)에 해당되는 곳일까?...

 

* 연옥(煉獄)이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으며 일부 영혼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장소로

  은총을 받기는 했으나 세상에서 지은 작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 영혼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죄를 정화시키는 장소로 단테의 소설 “신곡”에도 등장한다

어느 맥꾼의 위트 넘치는 시그널이 웃음을 짓게한다.

네...이곳이 지맥길 맞아요...

우측 아래의 금강변은 오금이 저릴정도의 낭떠어지다

안전 로프를 따라서 조심스레 내려간다

안부(11:15)

우측으로 금강휴게소가 보이고 휴게소 좌측에 뾰족솟은 망덕산이 보인다

 금강휴게소는 상·하행 통합 고속도로 휴게소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대전 공사 구간의 현대건설 직원 숙소 부지였다가 1970년 8월 금강 변에 유원지를

조성하면서 이듬해 7월 금강휴게소가 들어섰고, 금강 나들목이 있다. 

휴게소와 주변 경치가 빼어난 금강유원지와 서로 통행이 가능하며, 휴게소 안

굴다리는 지우대 마을과도 연결되는 휴게소이다.

 

지우대 마을은 손가락 길이만한 피래미를 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 튀긴 후에

매콤한 양념을 얹어 조린 도리뱅뱅이라는 옥천의 향토음식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금강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 덕분(?)에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마지막 지맥길을 편하게 걷는다

잠시후에 오를 해맞이산은 까칠하게 서 있고,

자꾸만 내려가니 올라가야 할 걱정이 앞서는구나 

갈림길(11:20)

좌측으로는 금강강변에 있는 올목마을로 가는 사면 등로가

뚜렸하게 보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좌측으로

가도 잠시후에 분지골 고개로 내려가는 길에서 다시 만난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관리가 안된 벙커가 있는 무명봉인 311.8m봉이 나온다

311.8m봉(11:22)

분지골로 향하는 한없는 내리막길

새로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분지벌과 금강 너머로 보이는 어깨봉의 모습

잠시후에 오를 해맞이산... 체력이 방전되어 가는 산꾼의 氣를 죽인다

분지골 고개(11:48)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에서 적하리 올목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민초들이 아직도 다니는지 양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뚜렸하다.

분지골은 해맞이산 너머 우측에 있는 넓은들을  말하는데 이곳을

분지골고개라 부르지만 분지벌은 구금강2교 우측에 있다

쌀쌀한 날씨속에서도 딱총나무가 새순의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 중에 딱총놀이가 있는데, 이대로 긴 통을 만들어

나무 열매나 씨앗 총알을 넣고 그 안에 물에 적신 종이를 채워 압력을

가하면 총알이 날아가는 장난감이다... 그래서 딱총의 옛 이름은 지총(紙銃),

혹은 지포(紙砲)다. 근세에 들어서면서 딱총은 화약을 쌀알만큼 종이로 싸서

장난감 권총에 장전하여 충격으로 소리가 나는 형태로 발전했다.

딱총나무는 딱총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생각되며, 이 나무줄기의 가운데에 있는

골속은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며, 골속은 마치 스펀지처럼 생겼다.

수수깡과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차이가 없는데,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골속은 꺼내서

수수깡처럼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분지르면 ‘딱!’ 하고 딱총소리가 난다고 하여

딱총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딱총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접골목으로, 옛날 사람들은 뼈가 어긋나거나 부러지면

딱총나무의 가지를 까맣게 태워서 가루를 내고 식초를 섞어 환부에 두껍게 바르고 부목을

대어 묶어두는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 ..딱총나무는 부러진 뼈를 붙이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중국, 일본 모두 접골목이란 이름을 쓰며, 뼈붙이기 이외에도 신경통, 이뇨작용,

위장약 등 여러 가지 병 증상의 약재로 쓰는데, 유럽에서 자라는 서양딱총나무 역시 약으로

쓰이며, 열매로 만든 술은 엘더베리 와인(elderberry wine)이라 하여 상품화까지 되어 있다.

해맞이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곧추선 해맞이산 오름길

지맥길의 특성상 초반에는 힘이 들다가 합수점에 도착한 즈음이면

고도가 아주 낮거나 평지에 가까운 산이라 편하게 마무리를 하는게

보통이지만, 이곳은 합수점이 가까웠는데도 거의 직벽에 가까울

정도로 힘이 드니... 수술 부위의 통증은 심하고 숨이 끊어질것만 같은 느낌이다

해맞이산 오름길이 너무 힘들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철봉산과 작은달우리산이 힘들어하는 범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하는 말...어디 쉬운 산이 있는것 봤어...

그래!... 쉽게 지맥길을 끝낸적이 있었던가?...순리대로 살자

살짝 젖은 등로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오르면 미끄러지고, 또 다시 오르고를 반복한다

급경사의 오름길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너머의 망덕산(345m)의 모습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에 있는 망덕산(345m)은 금강이 망덕산을 ‘U자’로

돌다 보니 능선 좌·우로 강물이 흘러가는 특이한 지형인 산으로 남쪽에는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와 피래미로 만드는 도리뱅뱅이 요리로 유명한

지우대 마을이 금강변에 있다

 

지우대(芝牛垈) 마을은 소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하며,

인근에 소에 관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급경사의 오름길에서 바라본 적하리 올목마을의 모습

올목이는 마을의 지형이 오리의 목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급경사의 끝이 보고 해맞이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100m 조금 넘는 거리지만 20분이

넘게 소요되었으니 막판에 개고생을 한 셈이다

 

지맥길의 특성상 초반에는 고도가 높고, 힘들다가 마지막 합수점에 다달으면

고도도 낮고, 길이 편한 맥길이 대부분인데 이곳 보청(팔음)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이곳은 정반대인듯 하다...60km가 넘는 지맥길의 마지막 부분에

가장 힘들고 개고생을 하면서 해맞이산(고수봉?)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격하게 환영해준다

참으로 고생했다면서...

해맞이산(297.8m:12:10)

충북 영동군 동이면 적하리에 있는 산으로 펑퍼짐한 넓은 공터에

옥천군 동이산악회에서 세운 “해맞이산”이란 정상석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지명은 나와 있지 않고 297.8m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으나, 다음지도에는 '고수봉'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해맞이산에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완만한 등로는 조금전에 힘들게

올라온 길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편하게 합수점으로 향한다

관리가 안된 벙커를 지나...

갈림길(12:12)

좌측으로는 금강변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해맞이산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절개지가 나오고 강 건너의 적하리의 마을들이 한가롭게만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赤下里)의 모습

 

적하리 유래는 마을이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하리라 하였고, 부릉개는 주변이

붉은 황토로 되어 있어 부릅재, 붉은고개에서 비롯된 듯하며 이를 한자화 하면서

적령(赤嶺)이라 하였고 두 마을이 합하여 지면서 적하리(赤下里)가 되었다

 

북쪽의 망덕산 아래에 있으며, 앞의 들로는 금강이 휘돌아 나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방앗간터, 부룽기(적령), 분지벌, 아래말(대밭말, 죽촌), 연줄(연지),

올목이(오리목, 부항), 용소말(지시래), 웃말(외딴집), 학사골 등이 있다... 방앗간터는

6.25사변 후 방앗간이 생기면서 이루어진 마을이고, 부룽기는 근처의 흙빛이 붉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래말은 적하리 맨 아래에 있고, 예부터 대밭이 많다.

올목이는 지형이 오리의 목처럼 생겼고, 학사골은 양쪽 산형이 학이 나는 것 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적하리 고인돌이 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적하리 마을 뒷쪽으로는 몇년전에 걸었던

서화(신산경표상:장령)지맥 능선에 있는 장령산과 그 너머로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 좌측으로는 대성산과 영국사라는 古刹을

품고있는 천태산이 아련히 보이는구나

옥천1터널 위(12:20)

이 능선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에서 김천까지 직선화하면서 새로만든

옥천1터널이 통과하는 곳으로 산에서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소리가

심하게 들린다...강건너의 행정구역은 동이면 적하리에서 금암리로 바뀐다

금강변 너머의 금암리쪽의 강변에는 옥천향수 유채꽃 축제를 준비하는

곳인데 멋지게 단장된 모습이고 강변에는 캠핑을 즐기는 캠핑족들의

캠핑카들이 꽤 많이 보인다

 

동이면에 있는 금암리(金岩里)의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바위들이

용같이 뻗었다 하여 용암말 이라 불렸고 옆마을이 목시, 목쇠인데 목쇠는 목금(木金)으로

목금의 금(金)자와 용암의 암(岩)자를 따서 두 마을의 뒷글자를 합쳐서 금암리가 되었다.

 

금암리에는 충청북도문화재인 1545년 송정 전팽령이 건립한 양신정(養神亭)과 1765년

유림들에 의해 세워진 목담서원이 있다... 목담서원(鶩潭書院)과 서원에 모셔진 사서공 전식 선생의 영정,

명종 때 효자를 기리기 위한 효자정과 효자비, 그리고 그 효행을 뒷받침 하는 호천(虎泉) 등이 있으며

임진란 때 중봉 조헌선생을 도운 인봉 전승업선생은 개전초기에 중봉선생을 의병장으로 추대 의병

100명과 군수품을 모아 보은 차령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금산전투 후 연곤평에서 순절한 의병과

승병 1,000여명의 시신을 모아 오늘의 칠백의총을 만들고 중봉선생 유족을 돌보았다.

안부(12:22)

충청도에 걸쳐있는 지맥의 마지막길

힘들었던 모든 고통과 잡념은 금강의 물길에다 다 던져버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텅빈 마음으로 합수점을 향하는 마지막길을

걷는다

안부(12:26)

원형 벙커가 있는 215.5m봉에 도착한다

215.5m봉(12:28)

국토지리정보원에는 나오지 않는 봉우리인데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데 보청(팔음)지맥길의 마지막 봉우리다

합수점이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측 분지벌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벙커봉(12:32)

늘 감사합니다

벙커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

격하게 환영해주는 선답자들의 시그널...감사합니다

합수점이 보이고...

옛날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다리였는데 지금은

새로생긴 4차선의 새로운 도로 때문에 옛 영화를 잃어버린

구금강2교의 모습

지맥 하나를 끝내는 범여를 축하해주는 양지꽃

지맥의 합수점이라 불리는 구 금강2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직선화 공사를

하면서 좌측에 4차선의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은

옛 영화를 잊어버리고 잊혀진 다리가 되어 버렸다 

금강(錦江)은 전북 장수군 신무산(897.6m) 뜬봉샘에서 발원해 진안과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대전등을 지나 군산시 군산만에서 서해로 흘러드는데, 우리나라에서 낙동강,

한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는 약 395㎞이며, 유역면적은 9,885㎢이다 

 

상류는 험준한 산지 사이로 하천들이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형성하고 중류와 하루에는

내륙분지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강하구는 넓고 깊은 물길이 너무 아름다워

"비단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 강이다.

 

빼어난 비경이 많은 금강은 ‘산태극 물태극’으로 도는 강물을 보는 전망대가 여럿 있는데,

전북 진안 천반산(647.4m)의 죽도전망대, 무주 향로봉(421.5m) 물도리 전망대, 충북 영동

월류봉(365m) 전망대, 옥천의 둔주봉(384m) 역 한반도 전망대, 어깨산(441m) 하늘 전망대 등이다.  

구금강2교(금강 합수점:12:40)

참으로 감개무량하다...이 곳을 마지막으로 금강과 충청도로 연결되는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금북(호서)기맥,

금남(금강)기맥, ...금강줄기에서 가지를 친 27개의 지맥과,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쳐서 충청도를 통과하는 13개 지맥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이제 맥길을 걷기 위해서 충청도 땅을 밟을 일이 없게 되었구나

10년을 넘게 쥔장 잘못만나 개고생한 내 두다리에게 고맙기만 하다.

이제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2년만 참아주라...

인증샷

구금강2교(105.2m:13:00)

이른 시간에 산행을 끝내고 강변에서 강물에 손을 씻는 의식으로

충청도의 모든 맥길을 끝내고 강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구금강2교로 올라온다,

 

옛날 경부고속도로인 이 도로는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를 시작하는데 옥천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꽤나 많은데도 20분동안 손을 들어도 태워주지 않는다.

 

시간이 많으니 택시탈 일도 없고하여 다리 건너 금암리쪽으로

가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금강휴게소쪽에서

옥천가는 버스가 온다... 기사에게 손을 들어서 태워달라고 하니

차를 세워주면서 이곳은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버스를

태워주는데..기사분에게 거듭 고맙다고 하면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동네 구석구석 다니다가 30여분만에 옥천터미널에 도착한다 

옥천터미널(13:50)

옥천터미널에 도착하여 기사분에게 다시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옥천역으로 향한다

충청북도 옥천은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들어오면서 고시산군(古尸山郡)으로

불렸는데, 고고학적으로 보면 산성(山城)과 고분(古墳)을 대표적 자료로 들 수 있다.

비록 정상적으로 발굴 조사된 자료가 없어서 단정짓기에는 무리지만 옥천향토전시관에

수집된 자료에서 보면 5세기말 정도부터는 신라(新羅)의 중심지였던 경주지역의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유물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신라적 성격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옥천(沃川)의 옛지명 옥주(沃州)인데, 이름은‘강물이 족하여 기름진 땅’이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고 하며,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옥천은“산들이 모두 윤택하고 순하며 맑은

기색을 띠우고,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며 가뭄으로 인한 재난과 피해가 적어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옥천역(14:00)

옥천발 → 영등포행 열차표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로가는 열차표는 좌석은 매진이고

입석만 남아있다...다행히 조치원까지는 좌석이고, 그 이후부터는 입석이다

표를 예매하고는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역 맞은편 골목으로 가니

식당들이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하여 영업을 하지 않으나 중국집은 영업을

하고 있어서 해물짬뽕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공짜 커피까지

한잔을 마신 다음에 느긋하게 옥천역으로 향한다

열차는 예정 시간보다 7분이나 늦게 역으로 들어오고...

무궁호보다 요금도 비싸고, 무궁화호 열차는 주중, 주말할 것없이

할배라고 할인을 해주는데, 새마을호는 주말이라고 할인이 안 된단다.

조치원에서 입석이라 무궁호처럼 생각하고, 식당칸이라는 4호 열차로

갔는데, 이 넘의 새마을차는 식당칸이라는 입석 열차칸이 없어서

통로에 쭈그려 앉아서 영등포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