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1구간- 건의령에서 귀내미골까지
꿩 대신에 닭이라 했던가...
산길도 내 맘대로 걸을 수 없단 말인가?
☞ 산행일자: 2024년 07월 07일
☞ 산행날씨: 흐렸다가 비가오는 변화무쌍한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5km / 6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건의령- 902m봉- 푯대봉 삼거리- 푯대봉-다시 푯대봉 삼거리
안부- 안부- 947m봉- 무명봉- 무명봉- 무명봉- 삼밭골 갈림길
961m봉- 안부- 한내령- 1,161.6m봉- 안부- 무명봉- 안부- 석희봉
안부- 안부- 고개- 안부- 한내봉- 삼각점봉?- 안부- 무명봉- 안부
1,053.3m봉- 안부- 안부- 구부시령- 구미사봉?- 1,007m봉 갈림길
새목이재- 무명봉- 덕항산- 안부- 쉼터-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안부- 무명봉- 안부- 안부- 환선봉- 갈림길- 헬기장- 무명봉
안부- 무명봉- 자암재- 1039.1m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귀네미골
☞ 소 재 지: 삼척시 도계읍. 신기면 / 태백시 상사미동, 하사미동. 조탄동
계속되는 구라청(기상청)의 엉터리 일기 예보로 산행 계획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장마철의 변화무쌍한 기상 변화라 하더라도 하루전의 일기예보도 못 맞춘단 말인가...
오죽하면 우리나라 기상 예보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기상청의 앱을 더
신뢰한다는 아이러니...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토요일날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내가 가야할
삼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의 일요일날 날씨는 맑은 날씨에 간간히
구름이라는 예보가 뜨기에, 기상청의 예보를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토요일날 오후에 베낭을 챙겨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태백행 버스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를 한잔을 뽑아서
마신 다음에 18시 15분에 태백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니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나 중앙고속도로 만종 분기점을 통과하고
차창밖은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데 조금은 불안하지만 일단
기상청의 예보를 믿어보기로 하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빗소리
때문인지, 쉽게 잠이오질 않는다...버스는 영월을 지나고 고한에
들려, 일확천금을 노리는 카지노족들을 내려주고 태백으로 향한다
태백터미널(21:15)
태백터미널에 도착하니 굵은 비가 아닌 가랑비가 계속 내린다
기상청에서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일단 믿기로
하고,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모텔로 향한다
가든모텔(21:20~06:10)
모텔에 들려 일단 샤워를 한 다음에 03시 30분에 알람을 설정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우두둑하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보니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듯 비가 내리는데. 지금 시간이 02시 50분이다.
원래 계획은 03시 30분에 일어나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에 04시에 태백을 출발하여, 강원대 도계캠프스에서 04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말똥말똥한 눈으로 계속 창밖을 바라보지만
폭우성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에라 모르겠다
일단 침대에 누워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06시...일단 모텔을 빠져 나온다
태백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북어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식당을
빠져 나오니 비는 가랑비로 바뀌는데, 산행을 해야하나, 산행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느냐 고민을 해보지만, 이곳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그렇다고 이 시간에
내가 처음 계획한 지맥길은 어둡기 전에 산행이 마치기가 힘들것 같다
그래!...이곳에 백두대간 빠진 구간이 있지...건의령에서 댓재구간.
일단 택시를 타고, 건의령으로 향하는데, 택시가 삼수령을 지날
즈음에 내리던 가랑비는 다행히 그친다
35번 국도가 통과하는 삼수령터널은 공사중이라 막혀있어서, 좌측의 피재쪽으로
올랐다가 다시 35번 국도를 만나 골지천을 끼고 가다가 하장으로 빠지는
35번 국도와 작별을 하고. 424번 지방도를 따라서 가다가 건의령 터널을
지나 우회전하여 삼척시 도계읍 점리마을 가는 길에 있는 건의령에 도착한다
건의령 앞에서 바라본 낙동정맥의 산그리메
통리역에서 올라와 고비덕재~백병산~토산령~구랄산~면산~석개재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2010년 2월에
나홀로 걸었던 저 능선이 환상적인 모습이다
산은 늘 그대로인데 나는 자꾸만 변해가니 세월의 무상함을
어쩔수가 없구나...
점리로 가는 마을 도로에서 건의령으로 올라서니 낯설고
흉물스런 가건물을 만나는데, 지난해 6월에 두문동재에서
건의령까지 걸을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자세히 보니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 사당이다.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을 삿시로 확장하여 기도처로 활용하는지
장판도 깔아놓고, 산신당이란 팻말에 무속인의 전번까지 적어 놨는데
巫堂도 어쩔 수 없는 俗物인가 보다...자기의 이익을 챙기겼다고
유서깊은 건물을 흉칙하게 만들어 놨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산꾼의
맘은 그리 편치가 않구나...
건의령(巾衣嶺:840m:07:00)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마을에서 삼척시 도계읍을 넘는 고개로 상사미마을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오십천 상류에 있는 도계나 고사리에서 서는 장을 보러갈 때
길로 내륙에서 해안으로 연결하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를 보면 고려말 때 삼척 육산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곤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로 두문불출’하던 두문동재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건의령의 지명을 살펴보면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한글로 ‘한의령’ 이라 쓰고 ‘寒衣嶺’이라 적혀 있지만 이 지명은
명백한 오류로 보인다.
백두대간 족보격인 조선광문회에서 발행한 “산경표”에는 건의령(建儀嶺)으로
기록되어 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건의령(巾衣嶺)’으로 표기돼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건의령(巾儀嶺)이라고 한다
선조들의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인 건의령 아래로는 도계와 상사미동을 잇는
건의령 터널이 지나가고 있고 우측에는 예전에 백인교군자당으로 쓰였다는 산신각이 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삼척시 근덕면 궁촌에 유배를 와 있었다.
그리하여 살아남아서 정선 두문동에 은거해 있던 일곱 명의 충신들이 공양왕을
배알하러 갔다가 돌아가면서 이 고개에 이르러 복건(幅巾)과 관복(官服)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었던 고개라 해서 ‘巾衣嶺’이라 했다고 하는데,
산경표에는 ‘建儀嶺’이라 기재되어 있고, 일명 한의령(寒衣嶺)이라고도 한다.
한의령이라 하게 된 것은, 옛날 삼척 지방에서 이 고개를 넘어 태백으로 갈 때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오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이 고개를 넘다가 얼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얼어 죽는다고 하여
한의령이라 했다고 한다.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
口傳에 의하면 고려말기 한 재상이 이 고개마루에서 100명의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 마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기리고자 백인교군자당을 세웠다고 한다
2000년까지도 사당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허름한 함석에다가 판자떼기로 만들어진
전각에 山神閣이라 부쳐진 현판에 아마 굿을하는 무당의 소유인지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백인교군자당 옆에 있는 서낭당의 모습
서낭당이란?
마을의 터를 지켜 준다고 믿어지는 신으로. 따라서 서낭당이란 서낭신을
모셔두는 집으로, 서낭당의 형태는 돌무더기만 쌓인 것이 있는가 하면
당집이 마련돼 있는 경우, 마을에서 섬기는 신목(神木) 하나만 뎅그러니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전남에선 할미당으로, 경북에선 천왕당(天王堂), 평안도에선 국사당(國師堂),
함경남도에선 국시당으로 불리는데, 강원도에선 경기도 황해도와 함께 주로
서낭당이라 부르는데,마을 사람들은 서낭님께 성공과 바람을 기탁하여 당집에
시루나 흰 실, 혹은 한지를 접어놓거나 비단을 걸어 놓는데, 시루는 풍요로운
생산을, 흰 실타래는 무병장수를, 한지나 비단은 신에게 드리는 예단이다
우리의 서낭신이 단지 미신이고 미천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작은 바람과 뜻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해 했으면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7:10)
1년만에 다시온 건의령의 백인군자당의 흉측한 모습에 너무 실망한 채
산행을 시작하는데 그나마 다행인게 비는 그쳤고, 태풍에 준하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나뭇잎에 있어야 할 빗물이 없어서 뽀송뽀송한 채로
길을 걷는게 좋아도 너무 좋다
2017년 6월에 이곳을 지날때는 이곳에 난 산불로 인하여
온 산의 나무들이 숯더미가 되었고, 화재후의 매케한 냄새가
온 산을 뒤덮었는데, 7년이란 세월이 흐른후라 그런가 서서히
치유가 되어가는 느낌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백두대간 능선과 나란히 동해쪽으로 향하고 있는 삼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
원래 오늘의 산행 계획은 앞에 보이는 저 능선을 걷기위해 어젯밤에 내려
왔었는데, 예상치 못한 비 때문에 모든 산행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우짜겠노!...하늘의 뜻인데...꿩 대신에 닭이라 하지 않았던가.
태풍을 연상케 하는 강한 바람에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린다.
약간 추위를 느낄만한 강한 바람이지만, 비가 안 오는게 어디야...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은체 가는데 까지 가보지 뭐...
산악회를 따라와서 포수에 쫒기는 짐승처럼 죽기 살기로 가는게
아니라, 山川景槪를 周遊하면서 산을 걷는게 독립꾼의 특권이 아닌가...
902m봉(07:32)
7년전에 다시 걷는 이 길...본의 아니게 꿩 대신에 닭으로 걷지만,
그 당시의 火魔에서 많이 회복된 느낌이라 조금은 덜 미안하구나.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에게 무한한 혜택을 받으면서도 헤코지만
하는 참으로 이해못한 존재인 듯 하여 늘 미안함이 앞선다
푯대봉 삼거리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푯대봉 삼거리(07:41)
백두대간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거리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빈 몸으로 푯대봉으로 향한다
푯대봉(1,010.8m:07:45)
삼척시 도계읍과 태백시 상사미동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과 깨진 3등 삼각점과 산불감시 무인카메라가 홀로 걷는
산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이다.
지명의 유래는 일제 강점기에 자원수탈을 위해 측량을 하면서 측량 깃발을
표시하여 세웠다고 해서 푯대봉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산행을 하면서
많이 만나는 깃대봉과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는 산이다.
푯대봉 정상 삼각점(△301재설 / 77.6 건설부)
인증샷
빛바랜 아그들의 흔적...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아그들은 다들 잘 있겠지...
다시 푯대봉 삼거리로 가는 길에 잠시후에 걸어야 할 대간
마루금 뒷쪽으로 펼쳐지는 삼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
능선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느낌이다
다시 푯대봉 삼거리(07:48)
푯대봉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비에 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人生事나 山이나 늘 내리막길에 조심해라고 했지만
그걸 깨닫고, 실천하지 않아서 피를 보는 우매한
衆生들이 주위에는 아직도 많은듯 하다
삼밭골 목장 위의 백두대간 마루금 너머로 내가 오늘 걷기로 한
삼척 남(육백)지맥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저 멀리 아련히 보이는 동해바다 근덕항을 보면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등로 내리막길 우측으로는 7년전 화마에 할킨 지역에 새로운
나무를 식재해 놓았고, 좌측의 맨 끄트머리 지점에 3주전에
걸었던 육백산이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아랫쪽으로 펼쳐지는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산그리메가 멋진 모습으로 펼쳐진다
도계읍에 속해있는 점리(店里)는 도계읍의 서쪽에 위치한 산촌마을로
구봉산이 뻗어 있으며, 동쪽에 있는 수리산이 제일 높고 험하며 자연부락으로는
계곡, 음지, 독곡, 편전, 눌퉁, 성황, 양지 등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옛날 이곳에 토기점(土器店)이 있었으므로 점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십천이 흐르는 골짜기 너머로는 도계읍내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아파트 윗쪽으로 보이는 블랙밸리C.C가 뚜렸하게 보인다.
나도 담주에는 2번이나 필드에 나가야 하는데, 맨날 주말마다
산을 헤매고 있으면서 스코어가 잘 나오길 바라니...이 나이에 열심히
연습을 해도, 보기 플레이가 힘들텐데...요행을 바라지는 말자.
땀은 흘린데로 결실을 거두리라...
당개나무덩굴꽃
일명 미역줄기나무라고도 하며, 주로 고산지대 분포하며 오대산 국립공원에 자생
많이 하며 군락 이루며 분포된 지역에서 날씨 좋으면 벌통에서 4리터의 꿀을 뜰수 있다고 한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가야할 대간 마루금에는 7년전 산불이 난 지역인데
서서히 상처를 아물고 있는 능선은 잡목으로 인하여 한치앞도 안 보인다
안부(07:55)
안부에서 직진 능선이 아닌 좌측의 삼밭골 목장 방향으로 이정표는
길을 알려준다...이제는 고지식하게 살지말고, 순리대로, 시키는대로
가는게 내 몸뚱아리가 편하겠제...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지맥길에 비해서는 양반이다
삼밭골 목장 너머로 오늘 가야할 덕항산이 빼꼽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우측에 보이는 능선이 오리지널 대간길이지만 좌측 아래로
생긴 우회길을 따라서 편하게 걷는데, 산행 시작할 때
그쳤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지금이야 비가 온다고
피할 방법이 없잖은가...비가오면 비가 오는데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산길을 걸어 가련다
우측으로 가라고 하네...
삼밭골 목장을 바라보면서 우측의 사면길로 향하는데
화재로 소실지역에는 소나무와 가문비 나무들을 식재해놨다
마루금으로 다시 복귀한다
후덥지근한 날씨보다는 약간의 비를 맞으면서
걷는것도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다
안부(08:00)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오르막길
잠시 귀찮게 하던 비는 금방 그치고 또다시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변덕스런 날씨가 산꾼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바람에 맞서기보다는 순응하면서 걷다보니...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947m봉에 도착한다
947m봉(08:11)
일부 대간꾼들의 산행기에서는 이곳을 한내령이라고 한 기록들이
보이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와 스마트폰 앱이 출시되기 전에
백두대간 지도의 교과서로 여길 정도로 유명한 “고산자의 후예들”을
비롯한 많은 지도들은 이곳은 한내령이 아닌 947m봉이라 표기를 해놨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일월비비추들이 많이 보이는 등로...
동반자라곤 심하게 불어대는 바람소리뿐이다...그래도 그게 어딘가
동반자가 있다는게...
덕항산으로 향하는 길목...나에게 뭔 할 말이 있는지
나를 보고 빨리 오라는 재촉을 하는듯 하다,
아서라!...급할게 뭐 있냐, 시간이 지나면 도착할 낀데...
이 능선을 삼킨 火魔를 용케도 피해간 멋진
소나무가 오늘은 훨씬 더 멋있어 보이는구나.
그대도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구나.
나 역시 저승 문턱까지 갔다왔으니 어찌보면
너와 나는 같은 운명을 타고난 셈인데, 지금부터
사는 건 덤이라 생각하고, 난 최선을 대해서 살아보련다
무명봉(08:14)
등로에서 바라본 하사미동의 모습
태백시 하사미동( 下士美洞)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와 경계를 이루는
덕항산(德項山, 1,071m) 자락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로, 태백시 삼수동의 법정동이다.
허목의 <척주지 陟州誌>에는 현재의 하사미동과 상사미동을‘삼(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옛날 이 지방에서 삼공(蔘貢; 인삼을 공물로 상납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하며, 후에 ‘삼(蔘)’은‘사미(士美)’로 변형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생께 또는 샘께라고도 부르는 자연마을인 천포(泉浦)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 나와 이 지역을‘샘(泉)’이라 불렀다가 ‘새미’,‘사미’라는 지명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원래 사미리(士美里)라 부르던 지역이었으나 1842년(헌종 8) 상사미리와 하사미리로 나누어졌고,
후에 상사미동과 하사미동으로 개칭되었는데, 하사미동은 천포(泉浦), 무쇠골(武士谷), 점촌(店村),
송촌(松村), 신밭(新田), 상촌(上村), 가리골(葛里谷), 귀내미골(牛耳谷)의 8개 자연마을로 형성된
마을로, 주민들은 주로 고랭지 채소를 경작한다.
비에 젖은 똑닥이 카메라 렌즈에 성애가 자꾸만 끼어 상당히 불편하다
무명봉(08:18)
고도차가 없는 밋밋한 능선이 미안했나?
멋진 낙엽송 한그루가 산꾼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무명봉(08:21)
올해 산에서 처음으로 만난 하늘나리
산에서 만나기 쉽지않은 귀한 솔나리도 만났는데 급하게
셔트를 눌러는 바람에 줌이 흔들려 그림이 엉망이다.
요런건 메크로 렌즈로 정밀하게 찍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다
삼밭골 갈림길(08:22)
좌측으로 삼밭골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삼밭골은 사조동 사무소가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지방에서
삼공(蔘貢:나라에 蔘을 바치는 것)을 주로 하였기 때문에 ‘삼’ 또는 ‘사미’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이며, 그 말이 변해서 사미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또 다른 유래로는 상사미의 고직재 밑에 맑은 샘물이 있어서 ‘샘’ 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사미’ 또는 ‘새미’로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 표기하면서
‘士美’로 굳어진 지명이다...원래 상사미와 하사미를 합쳐서 ‘士美’ 라고
불렀는데 조선 현종 8년(1667)에 상.하사미로 나뉘어졌다고 하며
또 다른 일설로는 이 골짜기에서 삼(蔘)을 많이 심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961m봉(08:25)
무명봉 이정표(←덕항산 5.3km, 구부시령 4.2km, →건의령(한의령) 2.6km)
삶은 산과 같다
당신의 목표는 당신의 길을 찾는
것이지 정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트랙상의 original 대간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직진의
편한 길로 대간 산꾼들을 안내한다
안부(08:29)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서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조금전의 오리지널 대간길은 잊혀진 길이 되어 버렸고,
나 아닌 모든 대간꾼들이 다니는 익숙한 길은 우회로로
만든 편한 길로 향한다.
한참을 돌아서 트랙상의 대간 마루금에 복귀한다
안부로 내려서니 삼밭골 목장 철조망이
나오고 이곳이 지도상의 한내령이다
한내령(汗乃嶺:880m:08:35)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와 태백시 하사미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한내리에서 따온 듯 하며
'삼밭골 잘루목'이라고도 부르는데, 예전에는 서쪽 태백시 하사미동
삼밭골에서 마루금 우측의 도계읍 한내리로 내려가는 고개였다고
하는데, 국토지리정보원에 기록조차 전혀없는 고개이다.
좌측의 태백쪽은 삼밭골 목장이 조성되어 있고, 우측의 삼척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아예 길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빡센 오르막으로 향하는 길에
또다시 빗줄기가 쏟아지는데 오르막길의 등로가 미끄러워
조금씩 산행 시간이 지체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대간길이다.
중간에 탈출로가 많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않고 뚜버기
걸음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비가 온 후라서 그런지 오름길 나무 밑둥치에 덕달이
버섯이 보이는데, 식용이 불가능한 버섯이라 눈으로만 감상한다
조금전에 걸었던 쉬운 길보다는 이렇게 거친 길이
野性美가 있는 것 같아서 산꾼으로서는 훨씬 情感이 간다
가끔씩 벌춤하게 만나는 당귀도 비를 맞으면서 걷는
범여를 바라보며 한마디 내볕는다.
왜 그리!...청승맞게 사느냐고...
泰山歌(태산가) / 양사언(楊士彦)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산) 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 만은
世人不肯勞身力(세인부긍노신력)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
뫼(산)만 높다 하더라
1,161.6m봉(08:50)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지만 지도상에는 그냥 무명봉이다
1,161.6m봉 정상의 백두대간 등산로
1,161.6m봉 정상을 내려서자마자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08:52)
등로에서 만난 매화노루발꽃(꽃말:소녀의 기도)
잎의 모양이 노루의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4계절 내내
푸른잎을 지나고 있어서 겨울철에서 야생초식동물들이 좋아하는 식물이다.
전국의 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으로, 크기는 30cm정도이고,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며, 당뇨, 고혈압, 혈액순환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땅속줄기는 옆으로 뻗거나 기며 지름 0.5~1.0mm이다며, 땅 위의 줄기는 가지가
약간 갈라지며, 밑부분이 약간 옆으로 굽는데, 잎은 어긋나기하고 층으로 모여서
돌려나기하는 것 같으며, 두껍고 가죽질이며 넓은 피침형(廣披針形)이고 짙은 녹색이다.
잎 끝은 뾰족하거나 둥글고 밑부분이 둥글며 길이 2~3.5cm, 너비 6~10mm로서 가장자리에
날카롭고 낮은 톱니가 약간 있다. 엽병(葉柄)은 길이 6~8mm로서 잎과 더불어 털이 없다.
꽃 지름은 1cm 정도로서 반 정도 벌어지며, 원줄기 끝에서 자라는 길이 4~8cm의 꽃대
끝에 1~2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리고, 윗부분에 1~2개의 포(苞)가 있으며 털 같은 잔돌기가
있으며, 꽃받침조각은 막질(膜質)이고 길이 6~7mm로서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화관열편(花冠裂片)은 도란상 원형(도倒卵狀圓形)이고 길이 7~8mm이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편구형(偏球形)이며, 지름 5mm 정도로서 대가 없는
암술머리가 붙어 있으며, 노루발, 호노루발, 새끼노루발 등에 비해 잎은 땅 위의 줄기에서
달리며 잎자루가 짧고 잎몸은 넓은 피침형이며 총상꽃차례를 이루지 않으므로 구분된다.
무명봉(08:55)
안부(08:57)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오름길에 일월비비추와
물레나물꽃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올라서니 듣도보도 못한
생뚱맞은 석희봉이라는 산패가 걸려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등로에서 만난 일월비비추(꽃말:좋은 소식)
비비추는 언뜻 들으면 외래어 같지만 순우리말로,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잎이 옥잠화와 비슷하지만 옥잠화는 약간 크면서도 하얀 꽃이 피고, 비비추는
그보다는 좀 작은 보라색 꽃이 핀다.
비비추 종류 중 일월비비추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토양에 부엽질이 풍부하여 비옥도가 높은 곳의 반그늘에서 자라는 꽃으로
특히 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라며, 키가 50~60㎝쯤 된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길이가 10~16㎝, 폭이 5~8㎝ 정도로 넓은 난형을 이루며,
잎의 끝부분은 물결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잎자루는 길고 밑부분에 자주색
점이 있으며, 잎의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심장 모양이거나 일(一)자 모양이다.
6~7월에 자주색 꽃이 피며, 길이는 4.5~5㎝로, 옆을 향해 빽빽하게 달리고, 잎 중앙에서
꽃자루가 자라 끝에 꽃이 달리고, 작은꽃자루의 길이는 약 0.5㎝이며, 열매는 9~10월경에
달리고 털이 없으며 길이는 2.5~2.7㎝이다.
편평하고 긴 타원형의 종자는 검은색 날개가 있고 길이는 약 0.9㎝ 정도이다.
백합과에 속하며 방울비비추, 산지보, 비녀비비추라고도 는데,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이는데, 속명 ‘호스타(Hosta)’는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Nicolous Thomas Host와 Joseph Host를 기념하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한밤이 지났느냐
돌아라 물레야
홀로타는 등불마저
쓸쓸한 밤을
너 아니면 나는 어떡해
하루이틀 기다린 님이
달이가고 해가가도
물레만 도네
기다려도 오지않는
무심한 님이시여
돌아가는 물레야....김지애의 노래 물레야...중략
물레나물(꽃말:변치않은 사랑)
꽃이 마치 물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자세히 보면, 바람개비를
닮기도 했고, 스크루를 닮기도 한 꽃으로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자라는
러해살이풀로, 반그늘이나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의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며,
키는 50~80㎝이며, 잎은 마주나며 피침형이고, 잎은 밑동으로 줄기를 감싸고
길이는 5~10㎝, 폭은 1~2㎝이다. 끝이 뾰족한 바소 모양으로 투명한 점이 있다.
6~8월에 황색 바탕에 붉은빛이 도는 꽃이 줄기 끝에서 1송이씩 계속해서 피며
지름은 4~6㎝으로, 수술은 많으며 암술은 1개이고 암술머리가 5개로 갈라진다.
10~11월에 열매가 달리는데, 작은 그물 모양의 종자는 한쪽의 길이가 0.1㎝ 정도로 아주 가늘다.
물레나물과에 속하며 애기물레나물, 매대체, 좀물레나물, 긴물레나물이라고도 하며,
유난히 긴 수술들이 윤기가 나고 옅은 노란색 꽃잎이 노랑나비 같아 ‘금사호접(金絲蝴蝶)’
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 잎과 줄기는 약용으로 쓰이는데,
주로 소화기·운동계·피부과 질환에 효험이 있다.
석희봉(1,017m:09:05)
석희봉은 실체가 없는 봉우리로 꺼벙, 꺼순님이 어디서 차용한 지명인지
연유는 알 길이 없고, 개인적 逸脫로 작명된 지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이곳은 지도에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100여m 떨어진
봉우리가 족보있는1,018.8m이나 대간에서 벗어나 있어 그냥 패스한다
다시 대간길은 북동쪽으로 이어지고...
비에젖은 등로는 엄청나게 미끄럽다
안부(09:10)
오락가락하는 가랑비에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옷을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니 조금은 춥다는 생각을 느낄 정도이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는데, 가야할 길에 누운 고사목까지 시비를 건다.
너무 그러지 마시게...안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에
힘든 범여를 꼭 이렇게 까지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니...
우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라 빗길에 미끄러운 등로를 조심스레 걷는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정도의 강한 바람은계속된다
안부(09:16)
우측의 997.4m봉을 바라보면서...
997.4m봉의 사면길로 대간 마루금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대간길을
꿋꿋히 지키고 있는 枯死木은 죽어서도 제 역할을 하고있는 느낌이다
대간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편안한 사면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고개(09:23~35)
사면길을 올라서니 잘록한 고개에 서있는 이정표가 산꾼을 반긴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반이 지나니 은근히 허기가 지는데, 갑자기
빗줄기는 굵어지지만, 기왕에 버린 몸, 우산을 펼쳐들고, 육포와 두유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비를 맞으면서 우산을 쓴 채로 1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997.4m봉의 북쪽의 우측 사면길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등로 주위에는
여리고 청순한 산꿩의 다리꽃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오늘 산행에서 만난 이정표의 거리 표시는 일관성도 없고,
오류로 표기된 곳이 많이 보인다...덕항산 4km의 이정표를
누군가가 2.0km로 고쳐 놓았다
비를 흠뻑 맞아 새앙쥐가 범여의 몰골을 두팔벌려 격려해주는 갈참나무 노거수
안부(09:42)
안부에서 10여분을 힘들게 올라서니 이정표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1,012m봉 정상에 도착한다
한내봉?(汗乃峰:1,012m:09:53)
트랭글앱에서는 이곳을 한내봉이라 하는데 우측 아래에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가 있어서 봉우리 이름을 차용한 듯 하다
대간길은 우측 아래로 휘어져 내려가고, 좌측의 직진 방향에
족보있는 삼각점봉(1,004.9m)이 있다기에 가보기로 한다
삼각점봉?(1,004.9m:10:00)
아무리 뒤져봐도 삼각점을 찾을 길이 없고 결국 포기하고 되돌아 간다
다시 한내봉으로 되돌아와서 트랙을 확인하니 잠시동안 트랙이 멈춰있다
내가 수색한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조금을 더 가야 했는데, 아쉬웠다
1,012m봉으로 되돌아와서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비 대신에 다시 강한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한내리는 한 치앞도 안 보인다.
삼척시 도계읍에 속해있는 한내리(汗乃里)는 본래 출천곡(出泉谷)으로
햇물나기골[新水生谷]이라 불렸다가 이후 속전되며 한내(寒泉·汗出·汗乃)가
되었으며, 도계읍의 서북쪽 험준한 산골에 위치한 마을로 서쪽에는 금대산의
산줄기가 내려와 출천곡산 및 소암봉이 있다... 수전(水田)을 이용한 토지는
전혀 없고 산전(山田)을 일궈 보리, 밀, 콩, 팥 등의 잡곡을 생산해낸다.
자연 마을로는 본, 시도 마을 등이 있는데, 본 마을은 한내리의 본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시도 마을은 본 마을과 이 마을 사이에 서로 혼인이 많아서
사돈 마을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원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삼척저승굴이 있는 마을이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등로에 깔려있는 통나무 계단...비에 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 또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안부(10:17)
1,012m봉에서 안부까지 뚝떨어진 다음에 다시 내려온만큼 올라야하는
수고로움이 시작되는데...그나마 다행인게 비는 내리지만 강한 바람으로
인해 산행을 하기에는 훨씬 수월한 느낌이다...등로옆의 커다란 암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맞은편으로 원래 오늘 산행을 계획했던
삼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 능선이 보이는데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삼척 남(신산경표상:육백)지맥 능선에 있는 핏대봉의 모습
오늘 저곳을 한바리하려고 했는데 비라는 장애물을 만나서
이곳을 걷게되니 많이 아쉽기만 하다...이런걸 두고 꿩 대신에
닭이라했던가...
나무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니...
무명봉(10:32)
안전로프지대를 지나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0:34)
조금은 까칠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대간길이 아니던가...
쉼호흡 크게한번 내쉬고 올라서니 1,053.3m봉 정상이 나온다
1,053.3m봉 정상 이정표(10:45)
1,053.3m봉(10:45)
예전에 부산 낙동산악회에서 1.055m봉이라 걸어둔
산패는 보이지 않고, 이정표(← 구부시령 0.7km, → 한의령 6.1km)만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1,053.3m봉이라
표기가 되어있다
구부시령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1,053.3m봉에서 내리막 사면길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서 대간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우측으로 등로는 보이지 않고, 뚜렸한 등로는 좌측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안부(10:53)
안부에서 다시 잠깐 헤어진 대간 마루금을 향하는데
좌측으로는 습지(?)같은 넓은 터가 보인다
안부(10:55)
한참을 돌아서 다시 마루금에 복귀한다
안부의 새로운 이정표 뒷쪽으로 예전에 걸었던 마루금 능선의
낡은 옛날의 이정표가 보이고, 대간꾼들의 시그널 몇장이 보이는데
아마도 원칙을 고집하는 산꾼의 흔적인듯 하다
길을 잃어버릴까 산림청에서 설치한 안전로프를 지난다
황홀한 고백/윤보영
당신이 있어서
내가 더 빛나는 것을 고백합니다.
들꽃처럼 스쳐 지나치며
눈길 한 번 머물러 주지 못했던 당신!
들꽃을 자세히 보고
당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들꽃을 닮았습니다
누군가 봐주어야 아름다운 꽃!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주치는 눈빛에 향기가 납니다
막막한 내 가슴에 애틋함으로 스며들고
텅 빈 가슴에 애틋함으로 스며들고
텅 빈 가슴에 들길을 올려놓았습니다.
노을 지는 언덕에 길을 내려놓고
당신과 어울리는 꽃을 심겠습니다
냇물이 흐르게 하고
휴식을 줄 자작나무도 심어야겠습니다.
그 길로
당신을 생각하며 걷겠습니다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계속내린 비의 영향인지 싸리버섯들이 간간히 보이나
너무 적은양이라 수확을 포기하고 그냥 지나친다
능선 윗쪽이 아닌 새로만든 편안한 길을 걷다보니...
薄福한 여인의 애환이 서려있는 돌무더기가 있는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구부시령(九夫侍嶺:11:02)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에서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구부시령
안내판과 서낭당의 흔적인듯한 돌무더기가 보이고, 좌측 아랫쪽으로는 예수원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박복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하는데, 그 박복한 여인은 이곳에서
목을 매달아 生을 마감했다는 슬픈 추억이 있는 고개이다
아홉 지아비를 차례로 섬겨야 했던긴 동쪽 대기리 주막집 여인은 어느 새 사라지고 ,
그 숫자와는 상관없이 이 땅 어두웠던 세대 그늘진 곳에서 恨 많은 삶을 살다간
예쁜 女人을 생각하며 한 점씩 돌을 쌓으며 이 길을 쉬어 가던 로맨티스트 방랑객의
낭만이 돋아 나오는데, 그는 아홉중에도 속하지 못했으리라...
이 기구한 여인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으면 이곳에서 목을메어 죽었을까.
그 여인에 대한 아련한 생각에 나 역시 돌 하나를 얹어놓고, 길을 떠난다
박복한 여인에 대한 생각을 하며 오르막길로 향한다
구미사봉?(1000.8m:11:10)
구부시령에서 10분도 안되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를 트랭글앱에서는 정체불명의 구미사봉이라
알려주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1000.8m봉, 이정표에는 구부시령이라
표기가 되어있어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구미사봉 이정표(→건의령(한의령) 6.8km, ← 큰재7.9km, 덕항산 1.1km)
호젓한 등로를 따라서 새목이재로 내려가는 길에...
우측으로 살짝 시야가 트이면서 삼척 남지맥이 보이는데,
오늘 저 길을 걷지 못하는 아쉬움이 두고 두고 미련이 남는다
트랙상 마루금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실제의 대간길은 직진으로 만들어 놨다
1,007m봉 갈림길(11:15)
댓재 12.5km라는 이정목이 뿌러진 채 넘어져 있고, 1,007m봉 방향은 직진이나
가지 말라는 나뭇가지로 막혀있고, 대간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새목이재로 내려간다,
새목이재(鳥項:850m:11:18)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기리와 태백시 하사미동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가 새의 목덜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목이재 또는 새메기고개라고 부른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구비시령, 구부시영, 구부대령이라는
여러개의 이름으로 표기를 해놓아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재구비가 아홉 번 돌아 올라간다고 하여 구부대령(九夫待嶺)이라도
불리고, 아홉 굽이가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구부시령"이라 하는데
한문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모실 시(侍) ”를 “기다릴 대(待)”로
잘못 표기를 한 듯 하다
지도상의 구부시령에 도착하니 하사미동(예수원)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인천의 모 산악회에서 왔다는
등산객의 시끄러운 소리가 홀로걷는 산꾼에겐 상당히 불편하다
이 분들은 덕항산, 환선봉, 자암재를 거쳐서 환선굴로 내려간다는데
자암재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계속같이 간다
이곳 예전에는 헬기장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풀섶에 묻혀
흔적조차 안 보이고, 새목이재를 지나서 오르막 능선으로 향한다
미끄러운 등로에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향하는데, 안내산악회에서 오신 등산객을
먼저 보내고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또 다른 일행들이
오기에 또 길을 비켜주고 몇번을 하고나니 홀로걷는
독립군 입장에서는 이 또한 스트레스다
무명봉(11:26)
비는 그치고 비 대신에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쉼터 0.7km라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덕항산으로 향하는
빡센 고뎅이가 시작되는데, 명산치고 정상을 쉽게 허락하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 고뎅이란... 급경사의 언덕을 뜻한 삼척지방 사투리이다
덕항산으로 향하는 고뎅이에서 만난 하늘나리
빡센 오르막을 올라 능선에서 숨한번 쉬고 도착한 곳이 덕항산이다
덕항산(德項山:덕메기산:1072.9m:11:38~41)
태백시 하사미동과 삼척시 신기면 대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덕매기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있고
산 아래 삼척쪽에 유명한 환선굴이 있으며 그 밖에도 동굴이 54개에 이른다고
하며 산의 동쪽은 험한 벼랑이나, 서쪽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산이다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삼척 쪽에서 부르던 것으로 "저 너머 (태백 하사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 (고원)가 있는 뫼"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덕목이로 변해
'목 항'(메기=목덜미(項) 자 덕항산으로 표기된 듯하다.
그 더기는 지금 광동댐 수몰민들의 고랭지 채소밭이 되어 있다.
덕항산 정상 삼각점(△삼척 23 / 1995복구)
예전에 있었던 앙증맞은 정상석은 온데간데 없고 이정표, 빛바랜 덕항산 안내판,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판, 그리고 건의령에서 댓재까지의 지도와 거리까지만 표시된
안내판이 있다
2013년 12월 8일 백두대간 2차 남진때의 사진
원래 이름은 '덕메기(산)'이었다고 하는데, "저 너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고원)가
있는 뫼"라는 뜻이고, 그것이 '덕목이'로 변하고 덕항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삼척사람들이 화전밭을 일구기 위해 태백(하사미)으로 넘어 오던 산이라 하여
"덕메기산"으로 불렸으나 이두문자 표기로 덕항산(메기=목덜미(項)으로 바뀌었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름이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덕항산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경동지괴(傾動地傀)의 표본을 이루는 곳으로 환선봉과 나란히 하여 양쪽사면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데, 삼척방향 동쪽의 대이리 방향은 깎아지른 석회암 사면으로 촛대봉,
사다리 바위, 나한봉, 수리봉, 금강봉, 미륵봉 같은 기암들이 즐비하고, 계곡의 초입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굴(환선굴,관음굴,사다리바위굴, 양터목세굴,덕밭세굴,큰재세굴)등이 있다
태백쪽 서쪽은 1000m 전후의 화전을 일구어도 될만한 고위평탄면을 이룬다.
아홉마리 용이 아홉 늪에서 놀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꼽히기도 한 곳이다
안내산악회에 온 젊은 친구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안내산악회에서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의 산길은 계속된다
마음은 동요하기 쉽고, 혼란하기 쉬우며,
지키기 힘들고, 억제하기 힘들다.
또한 마음은 잡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볍게 흔들리며, 탐하는 대로 달아난다.
단지 지혜있는 사람만이 이를 바로잡는다.
마음은 보기 어렵고 미묘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같은 마음을 잘 다스린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곧 안락을 얻는다.
법구경의 명언 중에서
안부(11:44)
우측의 대기리 방향은 천길 낭떠러지라 야간 산행시에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덕항산의 山勢는 전형적인 東高西低 지형으로, 서쪽의 산세는 완만하나
동쪽은 기암괴석과 바위협곡으로 이루어진 대이리군립공원이다
능선이 아닌 사면길의 편안한 길을 걷지만...
비에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잠시후에 환선굴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로 철계단이 보인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속해있는 골말은 ‘골짜기의 끝 마을’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火田을 일구면서 사는 마을로, 오지중에 오지에 속하는 마을이다
골말 일대는 6·25 한국전쟁 조차 모르고 살았다고 하며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모두 강원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통가옥이라곤 기와집이나 초가 정도만 봐왔던 사람들은
너와집이나 굴피집의 여기저기 물이 샐 것 같은 지붕과 바람 드나드는 허술한
판자벽을 보곤 의아해 하는데, 그러나 맑은 날 조금씩 틈이 벌어져 있던 지붕은
습기를 머금게 되면 부풀어서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지붕이 되고, 겨울엔 눈이
덮이면서 그 무게에 눌려 틈이 없어 진다고 하는 구조인데,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허술한 판자벽도 겨울철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을 뱅 돌아가며 쌓아놓으니 걱정할 게 없다.
굴참나무 껍질을 지붕에 차례로 포갠 굴피집은 물이 잘 빠지고 건조가 잘 되거니와
보기와 달리 수명이 길어 흔히 ‘굴피 천년’이라 하는데 보통 굴피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 전에 벗긴 그 이후엔 나무의 수분이 말라서 잘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붕을 덮은 후 몇 년 지나면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쓴다.
보통 3년 주기로 썩은 조각들을 교체한다. (자료 - 펌)
쉼터(11:50)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 예수원에서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로
향하는 넓은 공터에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는데 이정표에는 쉼터라고 한다
쉼터 이정표( ← 환선봉 1.4km, →덕항산 정상 0.4km, ↑골말 1.9km)
예수원 가는길
구부시령 아랫쪽 입구에 ‘토지는 하나님의 것’ 이라고 믿는 수도 공동체
태백 예수원은 1965년도 설립되었다고 하며 2002년 84세로 영면에 든 대천득
성공회 신부(본명: 뢰벤아처 토리3세)가 세운 예수원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공동체라고 한다.
쉼터를 지나 환선봉(지각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비에젖은
하늘나리들이 격하게 환영하는데, 너의 모습을 또렸하게 앵글에
담고 싶지만 비에젖은 똑닥이 렌즈가 말을 듣지 않는구나
무명봉(11:53)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쉬었다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나와 저 분들이 다른점은 저 분들은 빠르게 가다가 자주 쉬는
편이고, 난 느리지만 꾸준한 편이라 오늘 산길에서 자주 조우를 한다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마음이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 것 처럼…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즐거움이 없으면 그 곳에는
삶이 정착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법정스님의 좋은글 중에서
안부(11:57)
환선봉으로 향하는 고뎅이가 시작되고, 조금씩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무명봉(12:04)
무명봉은 오르지 않고, 안전로프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박 산행을 하시는 분들을 위함인가 등산로 유도선이라
붙혀논 팻말과 안전로프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특이하게 보인다
안부(12:09)
다시 환선봉을 향하는 고뎅이가 시작되고...잠시후에 이름없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무명봉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지나온 덕항산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보는데...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덕항산은
아직도 咫尺에 있는 느낌이다
지맥길같은 무성한 잡목을 헤치고 가니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12:12)
이정표(→덕항산 1.2km, ← 지각산(환선봉) 0.5km)
환선봉(지각산)의 동쪽 깎아지른 절벽에는 설패바위, 촛대바위, 금강문 등
수많은 기암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선경을 이루고 있으며,
맞은편 미륵봉 밑에는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된 환선굴이 있다.
까칠한 오르막길은 약간 사면으로 길이 나있어
편하게 걷다가 까칠한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2:16)
안부(12:17)
비는 그쳤으나 강한 바람은 그칠 기미가 안보인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환선봉은 형체조차 안보인다
약간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시야가 살짝 트이면서...
환선굴속으로 들어가는 모노레일이 시야에 들어오고...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가 보인다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三陟 大耳里 洞窟地帶:대한민국 천여 기념물 제 178호)
대이리 동굴지대는 삼척시 도계읍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환선봉 아래에 위치한 동굴로 석회암에서 만들어지는 석회동굴로 200만평 지대 안에
환선굴(幻仙窟) · 관음굴(觀音窟) · 제암풍혈(梯巖風穴) · 양터목세굴 · 큰재세굴 ·
덕발세굴 · 물골동굴 등이 산재하여 있는데, 이들을 합쳐서 대이리동굴지대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은 대부분 암석을 녹이며 깎아 내리는 용식 작용을 통해 내부가
형성되고, 동굴 내 하천의 침식과 붕락작용으로 확장된 형태로 가장 규모가 큰 동굴은
환선굴(幻仙窟)이며, 내부에 폭포, 기형 휴석, 종유석, 유석, 커튼 등 동굴생성물이 있다.
동굴 천장에는 지하수가 흘러내리면서 석회암을 녹인 흔적인 용식공이 많이 발견된다.
5억만년전의 신비를 간직한 대이동굴군(大耳洞窟群)중에 환선굴이 가장 규모가 큰 동굴로
표고 530m, 길이는 4㎞, 지층은 고생대 대석회암통에 속한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있으며, 내부에는 수많은 작은 휴석(경사진 동굴 바닥에 물이 흐르면서 마치 계단식 논과
같은 모양인 동굴생성물)으로 이뤄진 기형 휴석, 대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종유석, 넓은 지역에
걸쳐 계단식 논 모양으로 발달한 휴석, 넓고 높은 벽면을 따라 성장하는 유석(流錫: 석회동굴
속에 천장뿐만 아니라 벽면에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런 구멍에는 물이 흐른 흔적이 많고 물
이 흐른 바닥에 덥혀 있는 것과 같은 동굴생성물) · 커튼(물이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고, 방해석이
흘러내리는 방향에서 수직으로 자라면 천장에 천이 드리운 것 같은 동굴생성물) 등 많은 동굴생성물이
있으며, 동굴 천장에는 과거 지하수가 흘러내리면서 석회암을 녹인 흔적인 용식공이 많이 발견된다.
환선굴에서 발견되는 동굴동물은 환선장님좀딱정벌레, 장님굴새우, 꼬리치레도롱뇽 등 20~40여종의
서식하고 있다.
관음굴은 총길이 1.6km, 주굴의 길이 1.2km에 달하는 장년기 동굴로 입구에서부터 풍부한
동굴수가 흘러 폭포가 여러 곳에 있으며, 천장과 벽면에는 종유석군·석순·석회화·석주 등이
발달하여 지하궁전을 이루는데, 이 동굴은 동양에서 가장 화려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이리 동굴을 멀리서나마 감상하고 환선봉을 향하는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의 멋진 바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오르막길을 향하는데,
또 뒷쪽에서 등산객은 몰려오는데 홀로 다니다가, 등산객을 만나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안부(12:24)
안부를 지나면서 비에젖은 빨간 딱총나무 열매를 만난다.
딱총나무
딱총은 화약을 쌀알만큼 종이로 싸서 장난감 권총에 장전하여 충격으로 소리가 나는 형태로
발전는데, 딱총나무는 딱총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생각된다.
이 나무줄기의 가운데에 있는 골속은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며, 골속은 마치
스펀지처럼 생겼는데, 수수깡과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차이가 없으며,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골속은
꺼내서 수수깡처럼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분지르면 ‘딱!’ 하고 딱총소리가 난다고 하여 딱총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골속은 현미경 실험에 빠지지 않은 재료로, 가는 뿌리나 나뭇잎 등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하여 두께 0.02밀리미터 정도의 얇은 절단편(切斷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대로는 너무 부드러워 자르기가 어려우므로 골속에다 끼워 넣어 절단했다.
요즈음이야 얼마든지 좋은 보강 재료가 있어서 이 방법을 쓰지 않지만, 1980년대에는
식물학 책에도 소개될 정도였다고 한다.
딱총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접골목인데, 옛날 사람들은 뼈가 어긋나거나 부러지면
딱총나무의 가지를 까맣게 태워서 가루를 내고 식초를 섞어 환부에 두껍게 바르고
부목을 대어 묶어두는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
딱총나무는 부러진 뼈를 붙이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중국, 일본 모두
접골목이란 이름을 썼는데, 뼈붙이기 이외에도 신경통, 이뇨작용, 위장약 등
여러 가지 병 증상의 약재로 쓰이며, 유럽에서 자라는 서양딱총나무 역시 약으로
쓰이며, 열매로 만든 술은 엘더베리 와인(elderberry wine)이라 하여 상품화까지 되어 있다.
입의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오리방풀도 비에 젖은채, 풀섶에 묻혀있다
환선봉 오르는 길에 등로가 열리면서...
대이리 동굴군 뒷쪽의 댓재 윗쪽에 있는 황장산과 그 뒷쪽으로는
2주전에 개고생했던 두타산이 마치 釋迦世尊과 迦葉尊者와의
사이에서 통했던 以心傳心처럼 느껴진다.
*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스승과 제자가 마음으로 불법의 도리를 주고 받는다는
의미의 불교용어로,석가석존이 영취산에서 팔만의 대중에게 꽃을 들어보였지만
오직 가섭존자 한 사람만 미소를 지어보였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는데,이후에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정법안장을 전승하는 상징으로 정착되었다.
“그때 여래가 그 보좌에 앉아서 이 연꽃을 받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꽃을 들었을
뿐이었다... 법회에 참석했던 팔만 사천의 인간 세계과 천상 세계의 당시 대중이 모두 멈추고
침묵하였다... 이에 장로 가섭 존자가 부처님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는 불사(佛事)를 보고,
그 자리에서 확연해져 파안미소(破顔微笑)하였다.
부처님이 곧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한테 정법안장(正法眼藏) · 열반묘심(涅槃妙心) · 실상무상(實相無相) · 미묘법문(微妙法門) ·
불립문자(不立文字) ·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있다... 그것을 모두 지니고 활용하면 범부라 할지라도
성불하는 제일의제(第一義諦)가 된다. 이제 바야흐로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 말을 마치고는
침묵하였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
환선봉(幻仙峯:1081.0m:12:32)
강원도 태백시 하시미동과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명
`찌걱산'이라 불리는 지각산(환선봉)은 산 동쪽 깎아지른 절벽에는 설패바위,
촛대바위,금강문 등 수많은 기암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 선경(仙景)을 이루는
별유천지(別有天地:속세와는 달리 경치나 분위기가 아주 좋은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건너편 미륵봉 밑에는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된 환선동굴이 있으며
황금색 종유석, 석순 폭포 등 기묘한 현상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幻仙峰(지각산:地角山)은 공식적으로는 지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무명봉으로
이 지역에서는 지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1990년대에 이 봉우리 아래의
환선굴(幻仙窟)이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이를 둘러싼 산줄기의 중양부에 가장 높게
솟구친 점을 감안하여 삼척시에서 임의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봉우리인데,
능선에서 바라보는 환선굴 입구의 대이리 협곡 풍광은 가히 경이롭다 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환선봉(지각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아래 환선굴이 있어 환선봉이라
한 것 같다.
이정표에는 지각산, 정상석은 幻仙峯이라 표기를 해놔서 혼란스럽다
옛날에는 지각산이라 불렀는데 환선굴이 발견 이후 개명 환선봉 이라 부른다고
지각산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 부근엔 또 하나의
지각산(904m)이 있는데 이 산 이름은 원래 ‘찌걱산’이었던 것이 한자화하면서
지각산이 됐다.
‘찌걱’이란 삼척 지방 사투리로 남녀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나타내는
의성어인데, 지각산 자락이 Y자로 벌어져 있고, 그 계곡에서 남녀가
우연히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둘 사이에 꼭 사단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찌걱산이라 했다는데, 속된 이름인 찌걱산을
한자화하면서 고상하게 지각산이라 하게 됐다.
이곳 지각산(환선봉) 아래의 Y자 계곡도 보는 이에 따라서 그와 비슷하다
이곳의 지각산 역시 원래는 찌걱산이었던 것이 고상한 이름의
지각산이 됐고, 이후 더욱 근사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환선봉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간 등산객들이 정상 전체를 점령(?)하고
있어서 정상석 하나만 카메라에 담고, 혼자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등로 우측 아래로 내려서니 꽃이 진 앵초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산상화원이 펼쳐진다
갈림길(12:37)
원래 대간 마루금은 이정표(→큰재 4.8km, 자암재 1.4km, ←덕항산 정상 2km)
뒷쪽의 능선으로 가서 1,066.4m봉을 찍고,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쪽으로
가는 대간꾼은 없는지 살짝 올라가보니 등로는 태고적의 원시림이라 그냥
되돌아서 내려와서 제도권 등로로 향한다
1,066.4m봉 사면으로 향하는 등로에는 유난히도 산꿩의 다리꽃이 많이 보인다
좌측 윗쪽이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족보있는 1,066.4m봉이
있으나 올라갈 길도 보이지 않고, 막혀 있으며 사면의 내리막길로
유도를 한다
사면길을 걸으면서 올려다 본 1,066.4m봉 정상쪽의 모습
등로에서 만난 노루오줌풀
1,066.4m봉 사면길의 좌측으로 향했다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좌측의 저 곳이 트랙상의 오리지널 대간길이다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간다
1,066.4m봉을 패스한 다음에 한참을 사면길로
내려왔다가 다시 대간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헬기장(12:50)
헬기장 풀섶에서 만난 엉퀑퀴꽃
자암재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대이리동굴군의 모습
오후가 되면서 바람은 잠잠하고 습도가 많으니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오름길에 다시한번 뒤돌아 보는데, 오르지 못한
1,066.4m봉은 습기를 머금은 구름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
또다시 비가 올라나?...
범여의 불평, 불만을 들었는지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고, 훨씬 편안한 걸음으로 무명봉을 향한다
무명봉(13:00)
션한 바람의 덕분에 훨씬 편한 걸음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02)
무명봉(13:05)
자암재 가는 길
지난해 겨울에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자암재에 도착한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10일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개고생을 하면서 후배들의
백두대간 졸업식 구간인 자암재~댓재 구간에 참석했다가 최악의
컨디션으로 인해 중간에 큰재에서 탈출하는 汚名을 남긴 구간이다
사실 자암재부터 큰재까지는 다시 안가도 되지만 그래도 걸어 보기로 한다
자암재(927m:13:10)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동 귀네미 마을과 환선굴로 유명한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장암재라고도 부르는데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가 있는 곳에
장암목이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인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자암 밭매기라
부르게도 하지만, 자암재가 정확한 지명이며, 고갯마루에 있는 바위들이 자색(紫色)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바위에는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자주색은
바위 속의 철분이 녹슬면서 나타나는 색이다.
환선굴이 위치한 대이리 일대에는 석회석 동굴뿐만 아니라 너와집, 굴피 집 그리고
통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며, 일부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조만간 기능은 다하게(死) 될 것이다...그러나 주거 민속의 연구 대상과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生)은 지속하게 된다.
즉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영위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대간은 “죽음은 곧 삶이며 삶이 곧 죽음이다”는 동양철학의 일부를
강조하려 한듯 한데,生由於死 死由於生(삶은 죽음에서 그리고 죽음은 삶에서 시작된다)
불경(佛經)에 나오는 말이다.
새목이재에서 이곳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같이 걸었던 이 분들은
우측의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 방향을 갈 모양이다...난 이곳에서
직진을 하여 귀내미골 방향으로 향한다
환선굴의 유래와 전설
먼 옛날, 대이리 마을의 촛대바위 근처에 폭포와 소가 있어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멱을 감곤하였는데,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부근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커다란 바위더미 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인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하여 바위가 쏟아져 나온 곳을 환선굴이라
이름 짓고 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게 되었고, 여인이 사라진후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는 물이 마르고 환선굴에서 물이 넘쳐나와 선녀폭포를 이루었다.
쏟아져 나온 바위는 지금의 환선굴 가는 길목에 남아있고 바위더미 위에는 산신당이 지어져 있다.
또다른 설은 한 스님이 도를 닦기 위해 환선굴로 들어갔으나 되돌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사람들은 이 스님 또한 환선이라 하였다.
스님이 짚고 왔던 지팡이를 산신당앞에 꽂아 두었는데 지금의 엄나무가 바로 그것이라고
전하며 환선굴내에는 스님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한다.
자암재를 지나니 옛 헬기장인 듯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숲이 너무 우거져서 앞이 보이지 않는 등로로 올라선다
허기가 지는지 발걸음이 무거워지는구나.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미숫가루에다
우유를 타서 점심을 대신하며, 휴식을 취한다
점심 겸 휴식(13:15~30)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후에 귀네미골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아집과 편협함이 지금도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나를 해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미움과 탐욕 그리고 원망의 감정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다
삶의 서글픔이고 영혼의 상처이며 아픈 고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처절하게 다가서는 절망도
또 다른 빛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새로운 통로가 될 것이려니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서 지나갔던 끝없이
펼쳐진 그 길을 바라보며 이 순간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배가 든든하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운 느낌이다
대간길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1039.1m봉으로 올라간다
1039.1m봉(13:45)
대간꾼들이 아무도 오르지 않았는지 그 흔한 시그널 한장도 안 보인다
다시 등로로 복귀하여...
귀네미골로 향하는 길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비에젖은 암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숲길을 벗어나니 광동댐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귀네미골로 이주한 분들의
삶의 터전인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밭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귀네미(牛耳谷) 마을
태백시 하사미동 귀네미마을의 유래는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소의 귀를 닮았다하여 우이령(牛耳嶺)이라 부르는 데서 연루한 이름이며,
이 마을의 형성은 1985년 광동댐 건설로 수몰 실향민이 된 주민들이 산을
개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귀네미마을의 30여만 평(坪)에 조성된 고랭지 배추밭은,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 강릉 안반덕, 평창 600마지기에 이은 우리나라 4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만 약 230만여 포기의 배추가 출하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언서 중에서 <정감록>의 피난지로 알려진 곳으로 한 때는
이북 사람들이 <정감록>을 믿고 이곳으로 집단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해서
살다가 해방 전후 다른 곳으로 떠나 빈터로 남아 있었는데 1988년부터
광동 댐 수몰지역인 숙암리, 광동리,조탕리 사람들 37가구가 집단이주하여
현재의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우이(牛耳)는 '소귀'로 이두(吏讀) 표기이기에
우귀 곧 '어귀'의 한자표기로 “이상향 무릉도원으로 가는 어귀에 있는 고개이자
골짜기”라는 뜻이다.
'귀넘이'가 '귀네미'로 부르게 되는데 이 골짜기에는 과거 조선조 말엽부터
이상향을 찾아 이북 사람들이 이주하여 와서 살다가 떠나가곤 하였다.
귀네미 마을(牛耳谷)은 태백시로 부터 2007년도 대표모델 마을로 추천받은
고랭지 배추, 쌈채의 마을로써 주요농산물인 고랭지채소, 산더덕, 산나물
(곰취, 곤드레, 나물취, 참나물, 산도라지, 산약초)등을 재배하고 있다.
지금 파종중인 고랭지 채소밭 옆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안부(13:55)
안부에서 채소밭옆을 걷는데 제초제를 많이 뿌렸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귀네미마을은 해발 1100m의 고산으로 유명한데 중국과 티벳을 연결하는 험한
산길인 '차마고도'를 패러디한 '배추고도'로 2008년 9월에 방영한 KBS 1박2일에
방영된 이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태백 매봉산, 강릉 안반덕, 평창 육백마지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꼽히는 귀네미 마을의 정상은
태백시와 삼척시 경계에 솟은 삿갓봉(1185m)으로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 곳으로
귀네미는 궈너머의 강원도 방언이다
다시 숲으로 들어섰다가 이름없는 봉우리로 올라선다
무명봉(13:40)
젊은 시절에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 그렇게 삶을
하나씩 알아가려니 하였고 나이가 들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저절로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가 쌓이며
작은 가슴도 넓어지는 줄 알았다.
안부(13:43)
무명봉(13:47)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고랭지채소밭 농로가 나오고, 예전에 없었던 물탱크가 많이 보인다
농로를 따라서 가는데, 1029.6m봉이 보이고... 덕항산 5.1km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의 고랭지 채소밭 농로로 내려가는데, 지금 이 시간대에서
댓재까지 간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귀네미골(13:50)
산행을 마치다...산행도 내 맘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비가오지 않았다면 삼척 남(육백)지맥 한 구간을 깔끔하게 한바리하고
귀경하려 했는데, 비라는 복병 때문에 초반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이 구간은 무박으로 와서 건의령에서 댓재까지 끝내려고 했는데
모든 계획이 어긋났지만, 세상살이가 어찌 내 맘대로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모든 걸 운명이라 생각하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밭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지는데
능선에 올라서면 건너편 산사면 일대까지 귀네미골 35만평의
고랭지채소밭이 펼쳐져서 장관을 이루는 이 귀네미골(牛耳谷)은 삼척시 하장면의
광동댐을 만들 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거주민들은 고랭지 채소 재배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이지만 고랭지 채소밭은 현대판
화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 훼손 및 환경 오염을 가져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행을 종료하고 귀네미 마을로 향하는데 고급 승용차 한대가 내려오기에
밑져봐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손을 들어서 앵벌이(히치)를 해봤지만
콧방귀도 안뀌고 사라져 버린다...귀네미 마을까지 내려오는데도 차는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마리도 안보인다...하는 수 없이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여 태백터미널로 향하는데, 택시 창밖으로 억수같은 비가 쏟아진다
태백터미널(15:25)
태백발 → 동서울행 버스표
택시를 너무 늦게 부른 바람에 1시간 반정도 걸려 귀네미골에서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구내 식당에서 잔치국수 하나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식당에서
잠깐동안 멍때리기를 하다가 버스를 타러 간다
우연찮게 지맥길 대신에 백두대간 일부를 산행하고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차창을 두드리는 비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 차창밖을 보니 버스는 영월을 지나 제천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