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칠봉)지맥(진행중)

백천(칠봉)지맥 제2-1구간 - 땅고개에서 호령고개까지

범여(梵如) 2024. 10. 30. 13:13

☞ 산행일시: 2024년 07월 21일

☞ 산행날씨: 장마철에 비 그친 후 폭염경보

☞ 산행거리: 도상거리 3.8km / 1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 홀로 산행

☞ 산행코스: 땅고개-천주교인 묘지-쉼터- 안부- 227.2m봉-갈림길-안부

                    성산배공& 배부인 밀양박씨 묘- 성산배씨 가족묘- 농장입구

                    안부- 374.4m봉- 무명봉- 안부- 호령고개

☞ 소 재 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수륜면

 

요즘 들어서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에다 다음 주부터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건물이

리모델링을 하기에 근처에 있는 건물로 이사하는 문제로 머리가 혼란스럽다.

현재 내가하고 있는 업종은 종류가 워낙 많아서 이사 기간을 최소 3개월은

소요될 것 같은 느낌이라 그 기간 동안은 산행이 힘들 것 같다.

 

오늘은 백천(칠봉)지맥 2구간을 하기 위해서 성주로 가기로 했는데 그곳이

대구와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폭염경보가 예보되어 있지만 내 성격상 

한번 결정하면 밀어 부치는 성격이라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이른 새벽에 첫 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개포동에서는 안 내리던

비가 서울역 광장에는 꽤 많이 내리고 있어서 산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만 스마트폰으로 가야할 성주의 날씨를 검색해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다는 예보가 있어서 구라청을 믿어보기로 하고 서울역

대합실로 향한다

서울역발 김천구미역행 열차표 

해후소에 들렸다가 열차에 올라 잠깐 잠든 사이에

김천구미역에 도착하는데 열차에서 1시간 반 동안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김천구미역(07:00)

김천구미역 버스 시간표

김천구미역은 유서깊은 김천역과는 달리 김천과 구미 사이의 어쩡쩡한 곳에 

驛舍가 있는데다 일반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오직 KTX 열차만 정차하는 곳이다.

버스시간 안내판을 보니 이곳에서 성주가는 버스는 하루에 6번 있다고

되어 있고, 김천터미널 앞에서 07시 17분에 출발한다고 되어 있는데

김천터미널에서 이곳까지 버스오는 시간을 정확하게 몰라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성주를 간다고 하니까 그 사람 왈 이곳에서

성주가는 버스가 별로 없다고 하면서 이 시간대는 택시를 타야

한다는게 아닌가...그러면서 택시를 타라고 한다...처음에는 조금 난감했다.

 

그런데 25여분을 기다리니 버스가 오는데 성주가는 버스가 아닌가.

알고보니 그 사람은 택시기사였던 모양이다...내가 버스에 오르려고 하니

머쓱한 지 택시 승강장쪽으로 가버린다...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김천버스 14번을 타고 성주로 향하는데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혼자다.

김천구미역에서 성주 버스정류장까지 기사분과 단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50분만에 성주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성주버스정류장(08:20)

 

성주에 도착하여 택시로 땅고개로 향하는데 나이가 드신 택시기사가 땅고개를

잘 몰라 한참을 버벅거린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에서 네비를 켜고 땅고개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좀 늦은 시간에 땅고개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는데 며칠 전에

내린 비에다 계속되는 폭염 탓인지 아침부터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땅고개(09:00)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와 금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성주와 고령을 잇는 고개로

성주와 고령으로 연결되는 4차선의 33번 국도(도로명 주소 : 가야로)가 지나간다

 

이정표에는 땅고개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고, 옥화삼거리라는 표식으로 되어 있는데

성주군의 어느 자료에도 땅고개에 대한 자료도 보이 지를 않고, 이곳을 당고개라

표기한 지명들이 많이 보이는데, 땅고개 지명에 대한 자세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이곳의 땅고개에 정확한 지명유래는 찾을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많이 보이는 땅고개를

살펴보면 고개 위에 당산나무가 있어 그 옆에 사람들이 오가며 던져 모은 큰 돌무더기가

쌓여 땅(당) 고개라 불렀다고 하거나 고갯마루에 사당이 있어 당고개라 하는 설 및

옛날 기도의 당(堂)이 이곳에 있었다 하여 불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또한

이 고개를 넘을 때 땀이 많이 난다고 하여 땅고개라고도 불렸다는 설명들이 보이는데

이곳 상주의 땅고개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옥화삼거리 도로 너머로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의 마을이 한가로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은 구름 속에 파묻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대가면에 속해있는 금산리(金山里)는 대가면의 도서로 가로지르는 33번 국도의 중간쯤의 땅고개

부근과 동편의 산간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웃상삼의 동편에 상산이 못안상삼과 접하고,

미재마를 남쪽으로는 수륜면을 경계로 다락산이 우뚝 솟아 있는 산간 마을이다.

금산 1리에 대산령, 조양리, 미재, 윗니재, 금산 2리에 가능골, 땅꼭, 웃상삼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유적으로는 대산제, 삼성제등이 있다

산 노을 / 유경환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얹혔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듯한 마음

아 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왔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산행을 시작하다(09:10)

초반부터 땅에서 올라오는 地熱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고 이곳까지 와서  산행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땅고개의 우측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우측의 민가방향으로 올라가니

민가의 마당이 나오고 개쉬키 2마리가 이방인을 보고는 지랄발광하면서

짖어대니  쥔장인듯한 사람이 나오더니 가지 말라고 한다.

이곳이 지맥길이니 잠시 지나가겠다고 사정을 해볼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저 사람이 지맥의 의미조차 모를 터인데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되돌아 나온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서 조금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성주군 대가면(大家面)의 풍경

성주군에 속해있는 대가면(大家面)은 조선시대 말기인 고종 32(1895)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가곡면(家谷面)과 대리면(大里面)을 병합하여 대가면이라 해서 19개리를

관할하였는데 당시 유학(儒學)의 대가(大家) 寒岡 鄭逑, 동강 김우옹 선생 등과 같은

그 외 명현거유(名賢巨儒)가 많이 배출되어 큰집이란 뜻에서 대가(大家)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다고 한다.

 

  그러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10개소 동으로 개편 관할하였는데, 1973 3 12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중산동을 가천면에 넘겨주어, 현재 9개 동()이 되었다. (위키백과)

 

  칠봉리(七峰里), 옥성리(玉星里), 용흥리(龍興里), 흥산리(興山里), 옥련리(玉蓮里), 금산리(金山里), 

옥화리(玉花里), 대천리(大川里), 도남리(道南里)  9개의 법정리가 있다

마을 도로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꺾어져 다혜네 농장 표지판 방향으로 향한다

다시 좌측으로 향하니  넓은 공터에 가건물이 보이고...

건물 뒤쪽의 숲 속으로 올라서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조금 전에 쫓겨난 민가의 모습

저 곳을 통과했으면 1분도 안 걸릴 거리를 돌아오면서 15분이 더 걸렸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올라서니 천주교인 묘지가 나온다

천주교인 묘지(09:25)

희미한 임도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다

묘지를 지나서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선다

등로 근처 축사가 있는지 畜粉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숲이긴 하지만

잠깐 사이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인적이 전혀 없는

곳이라 그런지 거미줄과 산모기가 산꾼을 상당히 괴롭힌다 

숲길에서 거미줄과 산모기와듸 전쟁(?)을 치르면서 무작정 치고 오르니...

다시 뚜렷한 임도가 나오고...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쳐지는 구간을 만난다.

쉼터(09:28)

산꾼을 위한 쉼터가 아닌 주위의 농장에서 휴식을 위해

만든 쉼터가 있고, 이곳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오늘 산행 중에 처음으로 시그널을 만나는데 맥산꾼들 사이에

전설로 통하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준. 희 선생님의 반가운 흔적을 만난다 

안부(09:30)

안부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비닐하우스가 있는 다혜네 농장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는 전원주택을 지으려는지 택지 조성이 한창이다

잠시 후에 만날 지도상에 족보 있는 227.2m 봉 오르는 길은 풀섶에 가려져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올라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데, 여름철 지맥길은

걷는 그 자체가 고역이다

 227.2m봉(09:35)

등로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 있어 편한 길을 걸어가면

산패를 놓칠 憂를 범할 것 같다...  227.2m봉 정상에 올라선다

 227.2m봉 정상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내려서니...

곧이어 가느다란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갈림길(09:37)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뚜렷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길로 내려가야 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아르바이트하기 딱 좋은 곳이다

좌측으로 내려오니 맥꾼의 흔적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09:39)

안부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능선에서 내려오니 묘지가 나온다

성산배공& 배부인 밀양박씨 묘(09:41)

묘지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로 내려서니 화려하게 조성된

성산배 씨 가족묘가 나온다

성산배씨 가족묘(09:43)

 

성주 배씨(星州裵氏)는 경북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는 性氏로 시조 배위준

(裵位俊)은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올랐다고 한다.

5세손 배인경(裵仁敬)이 고려 충선왕때 추밀원사(樞密院事)를 지낸 후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1세손 배극렴(裵克廉)이 조선

개국공신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으며,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에

이르렀으며, 성주의 옛 지명에 따라 성산 배씨 또는 경산 배씨라고도 한다

묘지에서 바라본 잠시 후에 걸어야 지맥길 능선의 모습

묘지 아래로 내려오니 경운기 보관창고 나오고 농장입구 도로가 보인다

농장입구(09:45)

근데 갑자기 몸뚱아이에 이상이 온다.

특별히 먹은 것도 없는데 바늘에 찔린 것처럼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시작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배낭에 있는 소화제 한 알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심한 통증은 멈추지 않고...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편안한 임도로 향하는데 이번에서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힘이 짝 빠지는 느낌이라 산행하는데

김이 세는 느낌이다

산다는 참으로 별거 아닌데...

맥길이 뭐다고 고통을 참아가며 걷는걸

내가 내 자신이 이해가 안된다.

왜 사서 개고생을 하는지...

잡초로 뒤덮인 편안한 임도가 나오건만 모든게 귀찮기만 하다.

컨디션만 좋은면 속된말로 누워서 떡먹기같은 산길인데...

폭염경보가 내렸다는 날씨에 식은 땀이 흐리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랄까...임도를 걷다말고 그냥 풀섶에

드러 누워 버린다

이곳은 탈출로가 없어서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안부(10:03)

풀섶에 묻힌 뚜렸한 임도는 안부를 지나 직진의 내리막으로 향하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조금 고도를 높히면서 374.4m봉으로 향하는 길에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격하게 힘내라고 응원을 하지만 모든게 귀찮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갈수록 통증은 심해지고 다시 베낭을 베개삼아

드러누워 가쁜 숨을 내쉬어 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듯 하다

374.4m봉(10:38)

조금전의 안부에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35분이나 걸려서 힘겹게 374.4m봉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힘이들어 죽을 지경인데, 산초나무와 자리공이 강한

태클을 걸어오는데  그나마 다행인게 내리막이라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능선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무명봉(10:43)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도로가 보이면서 간간히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맥길의 트랙은 직진으로 이어지나 절개지라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야 호령고개를 만날수가 있다

등로에서 바라본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의 모습

대가면에 속해있는 칠봉리(七峰里)는 본래 성주군 사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동, 죽촌동, 상촌동, 신평동과 유촌동, 여수동, 신기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칠봉산 밑이 되므로 칠봉리라 하여 대가면으로 편입 되었는데,  대가면에서 수륜면으로 가는

지방도의 호령고개의 북쪽 산곡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로 칠봉1리에 신기마, 유촌, 칠봉2리에,

구암리, 사도실, 새터, 죽촌 부락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청천서원, 청천서당, 심산 김창숙 생가, 동강대, 하강대, 열부각, 속자치통감강목판본,

경성제, 유계서원, 공곡서당, 유동서당, 단산서당 등이 있다.

안부(10:52)

좌측으로 내려서니 대가면에서 수륜면으로 넘어가는 913번 지방도가 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호령고개에 도착하여 버스정류장에 누워 버린다

호령고개(狐峴:11:00)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와 수륜면 송계리를 잇는 고개로 913번의 지방도가 지나가며,

칠봉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개화대천과 대가천의 분수계 역할을 하는 고개로 정상에는

버스정류장과 수륜면 안내판이 보이고 삼거리 좌측으로는 용암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호령고개가 처음 기록된 사료는 「조선지도」로 호현(狐峴)이라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호령(狐嶺)이라 기재되어 있으며,대리면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지명유래를 보면 호령고개는 고개가 여우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배티재까지 가려고 계획을 했는데, 최악의 컨디션으로 인해

우선 사람이 살고봐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누워서

쉼호흡을 하고 있는데 정오가 다가오는 싯점이라 도로에서 올라오는

熱氣가 또다시 산꾼을 괴롭힌다 

그래도 인증샷은 남겨야지...

30여분 정도를 버스정류장 의자에 누워 있으니 엄청나게 덥긴해도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다...근데 갑자기 수륜쪽에서 버스 한대가

넘어오기에 손을 드니 버스를 세워준다...버스를 타고 10여분만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성주임시버스 터미널(11:42)

원래 시외버스 터미널은 성주 중심지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곳에 임시버스정류장을 만들어 놨고 이곳은 성주군내

버스와 고속버스만 정차하는 모양이다

성주발 → 서울행 버스표

임시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성주읍의 모습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본래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이었으나,

6세기 무렵 신라에 속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되었으며,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바뀌어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

(현종 9)에는 다시 경산부로 환원되었으며,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1896년 경북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오늘 걸어었야 했던 칠봉산이 산꾼 범여가 불쌍한 듯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그러면서 산은 늘 거기에 있으니 언제든지

컨디션이 좋으때 오라고 훈계를 하는 듯 하다

 

정신을 차린 후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합천에서 출발하여 고령을 거쳐, 이곳 성주에서 마지막 손님을 실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참으로 힘든 짧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