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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보청 북(금적)(終)

보청 북(금적)지맥 제2구간 - 노성리 고개에서 듬치재까지

by 범여(梵如) 2018. 6. 10.

☞ 산행일시: 2018년 06월 10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바람은 살랑살랑...산행하기 최적의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7.2km / 6시간 50분 정도소요

☞ 참석인원: 맥산꾼 7명과 함께

☞ 산행코스: 노성리고개(21번 도로)-갈림봉-503.8m봉-안부-530m봉-암봉-묘지-장선고개-무명봉

                 성황당-묘지-무명봉-말목고개-한우목장-307m봉-질신리삼거리-버스정류장-거명산

                 갈림길-파묘-순흥안씨 묘-임도-무명봉문티재-415m봉-537m봉-안부-묘지-덕대산

                 처사금녕김공 묘-성황당-묘지터-535m봉-암봉-634m봉-서원리갈림길-금적산-묘지터

                 무명봉-528m봉-500m봉-무명봉-465m봉-시멘트 도로-320m봉-임도-346.5m봉-우회길

                 무명봉-듬치재(정방재)

소 재 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수한면, 삼승면 / 옥천군 안내면

 

2주일만에 보청 북(금적)지맥 2구간을 나서는데 1구간의 빨래판 지역에 하도 개고생을 하여 단단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어제밤 내린 비로 인해 약간의 추위를 느낄 정도의 날씨이다

양재역에 도착하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꾼들은 보이질 않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만끽한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고 죽전과 신갈 휴게소에서 산꾼들을 태운 다음에 기흥휴게소에 쉬었다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낮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조금은 불안하다

버스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청주 I.C를 지나는데 햇빛이 쨍쨍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가 회인I.C를 빠져나와 지방도로를 따라서 노성고개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노성리(老城里)고개(08:55)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 모개울마을이 있고 수한면에서 회인면으로 이어지는 21번 군도가 지나는

노성리 고개에 내려서면서 당일 산행으로서는 정말 힘들고 긴 여정의 산행을 끝내면서 스틱을 접는다

참으로 힘든 산행이었다... 먼저 내려온 산꾼이 주는 맥주 한잔도 귀찮을 정도이다

하긴 내일 아침부터 병원에서 검사가 있으니 술을 먹을수도 없고 정말 사는 재미가 없다

 

보은군 수한면의 동쪽에 위치한 노성리는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송정, 모개울, 점볼 등이 있는데 송정은 옛날에 노송이 많이 우거졌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개울은 갈고성에서 남쪽 온천으로 나가는 목이라 하여 모개울이라 하였다고 하며, 점볼은 옛날에 솟점이 있었다고 한다.

노성리라는 지명은 노성산 밑이 되므로 노성골, 노성동 또는 노성이라 하였는데서 유래하였다.

마을 뒷산인 태음산()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일간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노성리 고개에서 내려 간단하게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이긴 해도 완만한 능선에 등로는 아주 좋다...그래도 좋다는 소릴 못하겠다...지난번 하도 개고생을 해서...

갈림봉(09:15)

날씨도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산행하긴 최적의 날씨이다

산행 시작 15분만에 무명봉에 올러선다... 좌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내려선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503.8m봉(09:20)

503.8m봉 삼각점(△보은 421 / 1980 재설)

다시 내리막길

안부(09:30)

다시 오르막길...약간 추위를 느낄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댄다

530m봉(09:33)

묘지를 移葬한 묘터같은 넓은 공터를 지난다

등로에는 낙엽이 많이 쌓여있어 조금은 미끄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암봉(09:38)
암봉에서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월외저수지(옥천군 안내면 월외리 소재)

초반이긴 해도 등로는 생각보다 부드럽다

등로에서 바라본 보은군 수한면 장선리(長善里)의 모습

수한면의 남서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피난봉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고추와 벼를 주로 재배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장선, 감나무골(), 궁터골() 등이 있으며, 감나무골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궁터골은 임진왜란 전에는 홍병서라는 사람이 이 곳에서 활 연습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활과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고...

묘지(09:53)

올해 처음으로 나리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말나리(꽃말:순진, 변함없는 귀여움)

엉컹퀴도 많이 보인다

장선고개(長善峴:09:56)

보은군 수한면 장선리와 옥천군 안내면 월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57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2차선 도로로 지명은 좌측에 있는 장선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임도로 올라섰다가...

곧이어 임도를 버리고 우측 단풍나무 군락지로 들어선다

단풍나무 군락지를 통과하고...

무명봉(09:58)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등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묘지로 내려선다

성황당(10:03)

성황당을 올라서자마자 좌측으로는 약초재배지가 나온다

묘지 뒷쪽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완만한 오르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계속 만나는 약초재배지

묘지(10:10)

묘지 우측 아래쪽엔 나뭇가지 사이로 월외 저수지가 보인다

기이하게 생긴 나무

무명봉(10:13)

차광막이 처져있는 등로를 지난다

말목고개(10:18)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도상 고개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그냥 밋밋한 곳으로 고개답지가 않은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혹 말(馬)의 목덜미(項)처럼 생겨서 붙혀진 지명은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말목고개에서 바라본 질신리의 산그리메

잡풀이 무성한 묘지를 지나니 좌측으로 호두나무를 심어논 사유지가 보인다

호두나무 농장 옆길로 올라서서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다시 우측 등로로 향한다

한우목장(10:25)

금계국인가?...벌써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목장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꺽어진다

잠시 후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고...

수수를 심어논 밭을 지나니...

좌측으로 밀밭이 펼쳐지고 질신리를 가로 지르는 장선고개에서 헤어진 575번 지방도가 보인다 

밭 가장자리로 오르는데 재배를 해논듯한 더덕이 많이 보인다

307m봉(10:35)

잡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선다

오디가 새카맣게 열려있어 한동안 오디를 따서 입에 넣느라 정신이 없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등로는 보이지도 않고...

밀밭 가운데로 가로질러...

능선으로 향하는데...

잡목을 헤치며 능선으로 올라선다

멀쩡한 집을두고 뭔 개고생이여

인동초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직진의 등로는 막혀있고...

마을 주민이 우리를 보고 길도없는 곳을 왜 다니냐고 하면서 이해를 못하는 눈치이다

이보소! 그건 내 사정이고...

가정집을 지나 575번 도로로 내려선다

임도파들은 장선고개에서 도로를 따라서 걸으면 편안하게 금적지맥 2구간을 걸을 수 있겠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질신리 삼거리(10:50)

37번 국도와 575번 지방도가 만나는 질신리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으로는 보은읍으로 향하는 도로이고 우리는 37번 국도를 따라서 옥천군 안내면 방향으로 향한다

거멍산을 바라보며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뒤돌아 본 질신리 삼거리

도로에서 바라본 질신리(秩新里)의 모습

보은군 수한면의 남쪽에 있는 질신리는 근처에 매봉산과 거멍산이 있어 마을이 비교적 높은 곳에 있다.

담배, 고추 벼 위주의 경작을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질고지, 새터, 참나무쟁이 등이 있다.

질고지는 산이 길게 뻗어나와 곶을 이루고 있어 긴곶이라 불리던 것이 변하여 생긴 지명이다.

또 지대가 높아서 제일고지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다고도 하는데 여기서 질신리의 지명이 유래했다고 하며,

질관리와 신리를 병합하여 질신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새터는 서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참나무쟁이는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구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질신리에는 초계최씨가 많이 사는지 도로가에 초계최씨 세거지비가 있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버스정류장(10:55)

도로를 기준으로 좌측은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이고 우측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이다

이 도로가 군계이면서 면계인 셈이다...버스 정류장을 같이 사용한다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방하목리(方下目里)는 거명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중앙으로 흐르는 안내천의 발원지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방하목,

비금터(비금기,삐끔터), 상송정이(삼송정), 정구지밭골, 질구지(제일고지,월경) 등이 있다.

방하목은 지형이 방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비금터는 임진왜란때 피난와서

이룬 마을로, 비금산의 이름을 땄으며 상송정이는 옛날 최,황,배 3성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각각 소나무를 하나씩 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질구지는 지대가 높다.

1km 가까이를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안내면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버리고 거멍산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올라선다

농가 좌측으로 농로를 따른다

농가 좌측의 검은 비닐하우스 뒷쪽에는 데크목 쉼터가 있는데 선두로 가던 동료 산꾼들이

이른 시간에 이곳에서 점심밥상을 펼치고 있기에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후미도 밥상을 펼친다

이곳에서 전체가 모여서 20여분간 휴식을 겸한 점심 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잡풀이 가득한 임도를 따른다

뒤돌아 본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의 모습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등로는 좋다

노루발(꽃말:소녀의 기도)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노루발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서 노루발풀이라고도 한다. 숲속에서 자란다.

높이 약 26cm이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면서 퍼져나간다.

 

꽃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1∼8개가 밑동에 달리고 둥글거나 넓은 타원형이며 길이 4∼7cm, 나비 2.5∼4.5cm이다.

잎자루와 더불어 자줏빛을 띠지만, 잎맥부분은 연한 녹색이고 가장자리에 얕은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노란빛을 띤 흰색이거나 흰색이며 5∼12개가 밑을 향하여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화관은 넓은 타원형이고 5갈래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대는 1개이다.

씨방은 납작하고 꽃받침은 5갈래로 갈라지나 밑동은 붙는다.

열매는 삭과로서 납작한 공 모양이며 9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지름 7∼8mm이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거멍산에 오르니 첫번째 만나는 시설물이 보은군 재난통신 무선중계기이다 

참 이쁘다

거멍산 정상에는 묘지와...

이동통신 중계탑도 있다

거멍산(黑山:494.1m:11:40)

보은군 수한면 광촌리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루봉과 흑산이란 지명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는 관련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데 다만 『조선지지자료』에는 "금운산(錦雲山)

[언문:거머산]은 서니면 광촌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서니면 광촌(현 수한면 광촌리) 주민들은

산 이름을 순우리말로 '거머산'이라 불렀으며 이의 음차 표기로 '금운산(錦雲山)'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문헌에는 "주봉산(周峯山)[언문:두루봉]은 수한면 양기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주봉(周峯)'은 수한면 양기리(현 수한면 광촌리 양터골) 주민들이 부르던 우리말 지명 '두루봉'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동일한 산을 마을 주민들에 따라 달리 부르고 이를 다른 한자로 다양하게 표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두리봉'이 등장하며 이 산의 다른 이름으로 거멍산과 금운산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산의 봉우리가 둥글고 그 흙빛이 검어 두리봉과 거멍산이라 부른다고 기록하였다

인증샷

거멍산 정상 삼각점(△ 보은 308 / 1980재설)

거멍산(두루봉) 서사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안내면 인포리(仁浦里)에서 금강 본류에 합류한다.

지명은 하천이 위치한 면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지도서』에 안내면이 처음 등장하는데『한국지명총람』에는

안내천의 이명칭으로 '인포천(仁浦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인포천이란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인포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포리는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기존의 화인리와 걸포리의 한 글자씩을 따서 새롭게 명명한 혼성 지명이다.


조선 시대에는 안내천이나 인포천이란 지명이 쓰이지 않고 주로 '화인진(化仁津)'이란 지명이 통용되었다.

화인진이란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옥천)에 "대천(大川)으로는 (중략) 화인진이 군의 동북쪽에 있다."와

같은 문헌(회인)에 "대천은 화인진 하류가 남쪽 지경으로 들어와서 주안현(周岸縣)으로 흘러간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화인진은 고을 동쪽 26리에 있다."와 "화인역은 안읍현 남쪽 5리에 있다.",

그리고 "화인원은 화인 나루의 기슭에 있다."라는 기록이 등 장하고 있어 당시 이곳을 화인진이라 불렀고

역원이 존재하는 중요한 길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해동지도』 안내면에 화인진과 화인역이, 『여지도서』에 "화인진은 군 북쪽 26리에 있다.

즉 차탄(車灘) 하류이다.", 그리고 "화인역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 (중략) 율봉(栗峯) 소속 역이다."

또한, 안남면에 화인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에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화인진, 화인역,

화인강진(化仁江津)'이 기록되어 있으며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에 마지막으로 '화인진, 화인역,

화인리'가 기록되어 있다가 1980년 대청댐 완공으로 화인진이 수몰되고, 화인역의 흔적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거멍산 아래로 내려서 묘지를 지나 뚜렸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갈림길(11:43)

능선으로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엄청나게 미끄러운 급경사의 내리막길...미끄럼틀 타듯이 내려선다

파묘(11:47)

순흥안씨 묘지로 내려선다

봉분에 꽂혀있는 저것은 뭔지?

순흥안씨 묘지(11:53)

순흥안씨 묘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등로가 무쟈게 좋다.

묘지를 지나고...

계속해서 좋은 도로는 이어지고...

임도(11:57)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여기도 등로가 좋기는 마찬가지이다

무명봉(12:02)

묘지가 보이는 넓은 공터에서 좌측 시멘트 도로를 따라간다

좌측으로 모텔이 보이고...

망해버린 모텔

낡은 휴게소 간판을 지나 문티재에 내려선다

문티재(文峙嶺:320m:12:08)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상문치에서 옥천군 안내면 서대리 가래치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명은 『대동여지도』에 '문치(文峙)'로 관련 지명이 등장하는데『1872년지방지도』(보은)에는

'문치령(文峙嶺)'으로 표기되어 있고, 같은 고지도의 옥천군에는 '문치(問峙)'로 표기되어 있다.

문티재의 전부지명소인 '문'에 대해 '문(文)'과 '문(問)'으로 표기되고 있어, 고개를 사이로 서로 다른 표기가 등장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지지자료』에는 "문치(文峙)는 수한면 문치리에 있다."와 '문치주막(文峙酒幕)'이 기록되어 있어, 이 고개로 사람들의

통행이 잦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문티재'의 다른 명칭으로 '문티령'이 기록되어 있으며,

문티재 동사면으로 상문치와 하문치라는 촌락 지명과 문티벌이라는 지명이 분포한다

문티재에 있는 동진주유소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는거 봤어

문티재에는 산아래 염소고을이라는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점심을 안 싸왔으면 이곳에서 따끈한 국물에 점심을 먹으면 좋으련만

점심은 먹었겠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고 선두는 이미

도망을 가버렸다... 후미로 가는 진권아우와 산들바람님과 션한

맥주 2병을 마시고 느긋하게 다시 길을 나선다...까이꺼 사는거 별거 있어

느긋하게 맥주한잔 마시고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길을 나선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선다

덕대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

그러나 등로는 좋고 시원한 바람이 능선으로 불어와 그다지 힘든줄은 모르겠다

415m봉(12:30)

계속되는 편안한 등로

덕대산으로 향하는 등로 주변의 소나무는 상당히 건강하다

보은읍 너머로 구병산과 그 뒷쪽 속리산이 아련히 보인다

537m봉(12:48)

537m봉 정상에는 옥천군에서 세운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다

537m봉 정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전망대란 팻말이 있다

다시 내리막길

안부(12:50)

묘지(12:55)

묘지를 지나니 헬기장인듯한 넓은 공터가 나오고 덕대산 정상이다

덕대산 정상에 있는 등산 안내도

덕대산(德大山:575.7m:12:56)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와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동지도』(보은)에 보은군 서니면과 옥천군과의 경계에 '덕대산(德大山)'이 기록된 이후로

표기자 변화 없이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지명으로 『조선지지자료』와 『한국지명총람』에도

 "덕대산(德大山)은 안내면 도율리에 있다."와 '덕대산(德大山)'이 기록되어 있다.

일부 현대 문헌에 덕대산의 '대' 자를 '대(垈)'로 표기하여 다른 글자로 음차 표기한 경우도 있다.

덕대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덕대산성 정상석 2개가 서 있다.

표지석의 뒷면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옥천군 안내면과 보은군 수한면과 접하는 573m의 덕대산 정상에 위치하며

타원형의 퇴뫼형 토성으로 둘레가 약 150m이다

덕대산성은 동쪽에 있는 고개인 동대리 쓰리마을에서 보은을 넘어가는 고개를

경계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망루형태의 보루형 산성으로

여겨진다’ 고 적혀 있는데

산성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다

덕대산 정상에서

선두로 간 동료산꾼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동료산꾼이 건내주는 사과 한조각을 얻어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덕대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계속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덕대산에서 급하게 내려서니 엄청나게 큰 김녕김공 묘비가 서 있는 묘지로 내려선다

處士 金寧金公 묘(13:07)

처사(處士)란 중국에서 생겨난 호칭으로,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황제나 왕이 내리는 시호였다

한국에서는 묘비에 두 가지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생전 과거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았던 사람을 ‘先達’이라고 했고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않았던 남자를 ‘學生’이라고 했으며 묘비 위에는 옥개석을 올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김녕김공 묘비는 호칭은 처사인데 묘비의 옥개석은 왕릉의 묘비를 연상케 한다

김녕 김공 묘를 지나 급하게 내려서니...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나오고 가야할 능선과 금적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구봉산과 속리산의 모습

여유로운 지맥길

성황당(13:18)

다시 오르막길

묘지터(13:24)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535m봉(13:40)

535m봉에는 김녕김공의 묘지가 있다

급한 내림길로 내렸다가 다시 완만한 등로로 올라선다

우측으로 완만하게 꺽어져서 올라간다

공터(13:53)

좌측으로 뚜렸한 우회길을 두고 등로가 없는 직진길을 치고 오른다

암봉(14:00)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다시 급한 오름길을 올라선다

634m봉(14:08)

634m봉 정상에는 왕릉을 연상케 할 만큼 커다란 봉분의 묘지가 있고

둘레는 스텐레스 울타라기 처져 있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편이다

634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온다

3번째 묘지를 지난다

금적산으로 가는 편안한 등로에 준.희 선생의 응원 글귀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보은군 삼승면(三升面)의 모습

충청북도 보은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강 수계인 오덕천이 면의 남부를 관류하다 천남리 부근에서

보청천으로 유입되는데 면의 서부와 남부에는 금적산과 삼승산 이 있으며 그 사이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보은읍과 청산면을 잇는 19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으며, 송시열 유허비가 있다.

현재 원남리 · 내망리 · 탄금리 · 달산리 · 송죽리 · 선곡리 · 천남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지명은 관내에 있는 삼승리와 삼승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 후기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도

발견되는 면 지명으로 생성 역사가 길다. 현재의 면은 조선 시대 보은현 삼승면과 서니면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삼승면은 『여지도서』에 각동리() · 삼승리() · 석남리() 등 9개 리를,

서니면은 송죽리() · 황토리() · 사각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동리마다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 모두 삼승면과 서니면이 표기자 변화없이 기록되어 있다.

『신구대조』에는 삼승면을 포함하여 서니면의 10개 리와 옥천군 안내면 오산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삼승면이라

하고 11개 리로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면 소재지는 원남리이며, 1989년에 옥천군 안남면의 오덕리

일부를 원남리에 편입하였다고 한다

금적산으로 향하는 길

늘 나에게는 든든한 산행 동반자인 진권아우

암릉구간을 지나니...

능선 좌측 아랫쪽으로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서원리(西原里) 갈림길 이정표(14:20)

보은군 삼승면에 속해있는 서원리는 남북으로 금적산이 뻗어 있으며 오덕천이 흐른다.

마을 주민의 대다수가 과수재배를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배나무골(이동), 감나무골(시동), 신촌(학교촌), 웃말 등이 있다.

배나무골은 마을 앞에 큰 배나무가 있고, 감나무골은 감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은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의 아우인 세한재 송시도가 일경당이란 서숙을 건립하고 강학했다 하여 학교촌이라고도 부른다.

서원리는 본래 서원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서쪽의 언저리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금적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앙증맞은 암릉구간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보인다

금적산으로 오르는데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와 K.B.S 송신탑이 보인다

금적산(金積山:651.6m:14:24)

충북 보은군 삼승면과 옥천군 안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무인산불 감시카메라와

KBS.MBC방송국의 중계소가 있고 정상석과 1등 삼각점,망가진 데크목 쉼터가 보인다

그리고 구병산과 속리산이 아련히 보이고 삼승면 들녘과 보은읍도 시원스럽게 보인다

속리산과 구병산 사이에 솟아오른 이 산은 예로부터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며 보은군의 최고봉인 속리산 천황봉(1,058m)을 지아비산,구병산을 지어미산,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산을 일컬어 아들산이라 한다.

그 때문인지 속리산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봉우리로 유명한 구병산을 닮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름과 관련하여 금으로 된 동물이야기를 전설로 전하고 있다.

옛날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는데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곡식을 가꾸었고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바위 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그런 다음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금슬 좋은 부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고 말았다.

금비둘기는 눈이 먼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 금송아지를 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비둘기는 해가 거듭될수록 지쳐갔고 짜증이 깊어져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마침내 금비둘기는 날아가 버리고 금송아지는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후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다 하는데 때문에 지금도 꼬리 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오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다고 전해진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옥천군 청산의 박달라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용산점 봉수대로 전하는 봉수였는데

조선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동쪽으로는 속리산의 주봉인 천황봉과 구병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웅장한

대청호반과 장계국민관광지, 북쪽으로는 보은군의 넓은 평야지대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금적산 1등 삼각점(1등 삼각점(보은 11 / 1988 재설)

금적산 정상에서 진권아우와 함께

금적산 정상에서 바라본 삼승면소재지가 있는 원남리(元南里)의 모습

삼승면의 남쪽에 있으며 금적산 아래 금송아지 꼬리 부분에 있는 원남리는 시골

장터의 모습을 간직한 채 과수와 미곡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워내미, 송방뜸, 온배미 등이 있으며 워내미는 원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원남리가 변한 이름이다.

송방뜸은 은진송씨의 집성촌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온배미는 지역적으로 밤에도 따뜻한 곳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부터 원남역이 설치되어 있어 원남이란 지명이 생겼다.

특산물로는 황토사과가 있고, 문화유적으로는 우암 송시열선생 유허비가 있다

금적산 정상에 있는 MBC중계소

오늘도 맨꼬래비로 금적산에 도착하니 선두팀들이 기다리고 있어 고맙기만 하다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데 사르리님이 건네주는 빵이 왜그리고 맛있는지...

금적산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금적산을 내려서면서 부터 음성군을 벗어나 좌.우가 온전히 옥천군 안내면으로 들어선다

잠깐사이에 선두팀은 어느새 범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다

묘지 터(14:42)

우측으로 뚜렸한 사면길이 보이나 직진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4:44)

생각보다 등로는 좋다...계속해서 고도를 낮춘다

528m봉(14:50)

계속되는 내리막길

완만한 오름길에서 만난 시그널

무명봉에서 올라섰다가 급하게 내려선다

빨간 노끈이 계속 등로을 이어준다

올망졸망한 조그만 봉우리는 계속 이어진다

500m봉(14:56)

500m봉을 조금 지나니 등로 우측에 이장한 듯한 묘터가 있고 좌측 사면길로 내려간다

반갑구먼

무명봉(15:00)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

소나무숲은 빽빽하고...

465m봉(15:07)

465m봉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우측의 시그널이 많아 알바할 정도는 아니다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잡목이 무성하다... 잠시 후 시멘트 도로를 만난다

가야할 등로의 모습

시멘트 도로(15:12)

으아리꽃도 간간히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헤치고 내려서니...

맞은편에 약초재배지 철대문이 보이고...오해를 피하기 위헤 우측으로 돌아간다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뫳돼지 사우나탕도 보인다

320m봉(15:22)

뫳돼지 사우나에서 320m봉을 찍고 다시 듬치재로 향한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고...

부산이라...멀리서 오셨네요

임도(15:25)

임도에서 바라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五德里)의 모습

안내면 오덕리는 금적산 아래에 있어서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오덕천이 흐른다.

오덕소류지가 있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개무티(거무티), 신촌, 안덕, 안지목, 팽정(길목) 등이 있다.

개무티는 개무티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촌은 새로 생긴 마을이다.

안지목은 옛날 안씨가 처음 들어와서 살 때 못을 파고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팽정은 팽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고, 옛날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하여 길목이라고도 부른다.

문화유적으로 조천성이 있다

임도에서 좌측의 단풍나무 조림지를 끼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기린초(꽃말:소녀의 사랑)

줄기가 기린 목처럼 쭉 뻗는 기린초는 이름만 들어서는 아주 큰 식물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키는 고작 20~30㎝ 정도이다.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라고 부르는데, 약초로 이용되는 식물 중 그 기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여 ‘기린초’라고 한다.

키는 작지만 줄기는 기린의 목처럼 곧게 위로 뻗어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의 바위틈이나 너무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자생한다.

남쪽 지방에서는 겨울에도잎은 넓은 달걀 모양으로 길이가 3~5㎝, 폭이 3~4㎝ 정도이며,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와 같은 것이 나 있다.

6~8월에 노란색 꽃이 피며, 지름은 5~7㎝이고 상층부 한 줄기에 5~7개 정도 뭉쳐서 핀다.

검은색 열매가 9~10월경에 5갈래로 갈라져 달리며, 안에는 갈색으로 된 작은 종자가 먼지처럼 들어 있다.

기린초를 비롯한 다육질의 식물들은 수분 조절을 위해 기온이 낮은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잎 조직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날 낮 동안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특성이 있다.

돌나물과에 속하며 혈산초, 꿩의비름, 비채, 경천삼칠, 넓은잎기린초, 각시기린초라고도 한다.

어린잎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쿠릴 열도, 캄차카와 아무르 강,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묘목 조림지를 지나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346.5m봉(15:35)

346.5m봉 정상에서 등로가 애매하다... 좌측의 희미한 길로 향한다

우회길(15:40)

오늘 산행중에 마지막 봉우리인 무명봉이 있는데 우회길이 아닌 정통코스로 향한다

벌써 올해 영지가 보인다... 첫 수확의 기쁨

무명봉(15:45)

내려가는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조금전에 헤어진 우회길을 만난다

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잡목만 무성한 곳에서 칡넝쿨에 걸려 된통 넘어진다

산딸기 넝쿨을 헤치고 급경사로 내려서는 길에서 또 한번 쳐박히고...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다시 도로로 올라서니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듬치재가 나온다

듬치재(240m:15:45)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와 오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옥천군 안내면소재지와 보은군 삼승면을 잇는

502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인데 생각보다 교통량이 상당히 많다고개 정상에는 산꾼들이 부르는 듬치재가

아닌 정방재라고 표기를 해놔 조금은 혼란스럽다정방재란 고개 우측에 있는 정방리에서 따온듯 하며

듬치재의 유래를 알기 위해 옥천군안내면사무소(043-730-4582)에 전화로 문의를 해봤지만 자기들은

그 유래를 모른다고 한다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보은군 삼승면 면소재지가 있는 원남리로 가서 식사를 마친 다음에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8시 밖에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