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집60 다산초당(다산 정약용 유적지) 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생활하시는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등 6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 2012. 4. 24. 경주 양동마을 향단 경주 양동마을 향단(慶州良洞香壇:보물 제412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동방사현(東方四賢)의 한 사람인 이언적(李彦迪)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건축한 것이다. 이 건물은 야산죽림(野山竹林)을 배경으로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반 상류주택과 다른 특이한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에 의거, 몸채는 月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一자형 행랑채와 간막이를 둠으로써 用자형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랑채·안채·사랑채가 모두 한 몸체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마당을 가져 작은 중정(中庭) 두개가 있는 특색 있는 구성을 한다. 행랑채는 정면 9칸, 측면 1칸으로 오른쪽으로부터 방·대문·마루·방·곳간·마구간 등이 들여졌다. 행랑채에 난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 2012. 4. 24. [함성호의 옛집 읽기]<58>‘제향 중심의 마당’ 필암서원 필암서원(筆巖書院:사적 제242호(1975.04.23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서원으로 2019년 7월 6일,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필암서원은 1590년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되었으며, 1786년 하서의 사위이자 문인인 고암 양자징(1523-1594)을 추배하였다. 특히 필암서원은 1659년 필암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하서 김인후 선생은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점에서도 이.. 2012. 4. 24. [함성호의 옛집 읽기<57>“책을 지켜라!”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사적 제154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 2019년 7월 6일,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은 이보다 앞서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 2012. 4. 24. [함성호의 옛집 읽기]<56>‘중용의 집’ 도동서원 도동서원(道東書院:사적 제488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서원으로 2019년 7월 6일,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다른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68년(선조 1)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선조 37)에 지금의 위치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재창건하고 '보로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고 이름하고, 김굉필의 위패를 모셨다. 1607년 '도동'이.. 2012. 4. 18. [함성호의 옛집 읽기]<55>‘초기 성리학의 관용’ 소수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사적 제56호) 최초로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서원이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안현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했다. 이 시기의 서원은 사묘의 부속적인 존재로서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황은 교학을 진흥하고 사풍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원 보급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서원은 1868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존속했다.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 제59호 숙수사지당간지주·국보 제111호 회헌영정 등과 141.. 2012. 4. 17. [함성호의 옛집 읽기]<54>‘진중한 파격’ 남간정사 남간정사(南澗精舍: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조선 숙종 때의 거유 송시열(宋時烈)이 강학하던 유서깊은 곳으로, 낮은 야산 기슭의 계곡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건립되었다. 경내의 입구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기국정이 있고, 뒤편 높은 곳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가 있다.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중 중앙 2칸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드린 후 그 좌측편에는 전후 통칸의 온돌방을 드렸다. 그 우측편에는 뒤쪽 1칸을 온돌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온돌아궁이의 함실(函室 : 방바닥 밑에 직접 불을 때게 만든 방)을 설치하기 위하여 대청마루면보다 조금 높여 누마루로 꾸몄다. 대청에는 4분합 띠살문을 달았고, 온돌방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 2012. 4. 17. [함성호의 옛집 읽기]<53>‘이 세상 집이 아닌 집’ 옥류각 옥류각(玉溜閣: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송준길 등이 건립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계곡의 암반과 계류 사이의 바위를 의지하여 서로 다른 높이의 기둥을 세운 다음 마루틀을 짜서 하부구조를 조성한 것이 특이하다. 정면은 계류에 임하였으므로 측면으로 드나들도록 되어 있는데 입구쪽으로부터 2칸은 마루, 나머지 1칸은 방이다. 하부 기둥은 굵은 원기둥이고, 마루 기둥은 가는 사각기둥이며, 마루 둘레에는 난간을 둘렀다. 기둥머리에는 [牛舌] 모양의 부재를 끼웠으며, 창방으로 도리를 받고 그 위에 서까래를 얹어 지붕을 짰다. 내부에서 보면 대들보 위에 동자기둥[童子柱]을 세워 마루보[宗樑]을 받치고, 이 위에 다시 사다리꼴 대.. 2012. 4. 13. [함성호의 옛집 읽기]<52>‘굴뚝이 없는 집’ 동춘당 대전 회덕 동춘당 (大田懷德同春堂:보물 제209호)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축물로 이 건물은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宋浚吉)이 자신의 호[同春堂]를 따서 건축한 별당이다. 이 별당의 서북측에는 송준길의 고택인 사랑채와 안채·사당 등이 독립된 건물로 건축되어 있다.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모양의 평면으로 된 단층팔작지붕이며, 앞면을 널찍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주두 없이 직접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집 양식이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높이가 낮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다시 그 위의 판대공에 소로만을 짜넣어 종도리 밑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서쪽에는 정면 1칸, 측면 .. 2012. 4. 12.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