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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옛집60

[함성호의 옛집 읽기]<33>‘풍경에 뛰어든 정자’ 거연정 거연정(居然亭: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33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조선중기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건립한 누정. 정자로 고려 말의 충신이며 정선전씨(旌善全氏)의 파시조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인조 18)경 서산서원을 짓고 현 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으로 지었으나, 1853년(철종 4) 화재로 서산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고종 5)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 자체가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 전재학(全在學)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2. 3. 25.
[함성호의 옛집 읽기]<32>‘변화하는 19세기 집’ 오담고택 오담고택(梧潭古宅) 오담 정환필(1798∼1859)의 집인 오담고택(梧潭古宅)은 정여창 고택과 마찬가지로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다. 개평이란 지명은 이 마을의 지세가 ‘개(介)’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댓잎 네 개가 어우러졌다는 뜻인데 어떤 잎은 들이 되고, 어떤 잎은 마을이 되고, 어떤 잎은 언덕이 되고, 산이 되었다. 한자가 상형문자이다 보니 복잡한 지형학을 우리는 참 간단하게도 풀어내는구나 싶다. 마을의 모양이 댓잎이라 풍수상으로는 선주형이다. 배 모양이라는 건데 당연히 배에 구멍이 나면 안 된다. 그래서 우물을 함부로 파면 동네가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을 흐르는 옥계천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우물과 그 우물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종바위가 있다. 이 우물은 옥계천 .. 2012. 3. 25.
[함성호의 옛집 읽기]<31>정여창 고택 정여창 고택 정부의 공식 지정 명칭은 문화재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인 '함양 정병옥 가옥'이지만 하동 정씨 대종가, 정여창 고택, 일두고택, 정병옥 가옥 모두 같은 곳이다. 함양은 선비와 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이 일두 정여창이다. 조선조 5현이자 동국 18현으로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 9개의 서원에서 모시는 성리학의 대가다. 고택은 1570년 정여창 생가 자리에 지어진 이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번 중건되었다. 풍수에서는 대문을 기의 출입구로 여겼으므로 건물에서 대문의 방위가 어디에 있는가를 대단히 중요시했다. 솟을대문 주위의 담장은 대문과 함께 사신사 역할을 한다. 이처럼 살림집을 풍수로 풀 때 집의 주된 건물은 혈, 마당은 명당이 된다. 솟을대문 앞에는 하마비 가 자.. 2012. 3. 25.
[함성호의 옛집 읽기]<30>‘피의 사화(士禍)’ 함양 학사루 함양학사루(咸陽學士樓: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건물로 주위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르고 남면(南面)하고 있다. 어느 때 지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최치원(崔致遠)이 함양태수(咸陽太守)로 있을 때 창건하여 자주 올랐으므로 학사루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서 옆에 객사가 있었고 동쪽에는 제운루(齊雲樓), 서쪽에는 청상루(淸商樓), 남쪽에는 망악루(望嶽樓)가 있었다고 전하여진다. 1380년(우왕 6) 왜구의 노략질에 의하여 관아와 함께 불타버렸으며, 1692년(숙종 18)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10년경부터 함양국민학교 교사로 쓰여오다가 1963년부터는 군립도서관으로 .. 2012. 3. 22.
[함성호의 옛집 읽기]<29>‘쌍둥이 정자’ 선교장 활래정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활래정(活來亭)은 강원 강릉시 경포호수에 있는 선교장의 정자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배다리를 놓아 호수를 건너다녔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효령대군의 11세 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1703∼1781)이 지었.. 2012. 3. 22.
[함성호의 옛집 읽기]<28>‘공감각적인 집’ 녹우당 녹우당(綠雨堂:사적 제167호)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조선후기 해남윤씨 관련 주택으로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 2012. 3. 22.
[함성호의 옛집 읽기]<27>‘방 한칸의 세계’ 동천석실 동천석실(洞天石室:명승제34호) )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3,306m²(1,000여평)의 공간에 한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의 동천석실(洞天石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놀랐다. 어떻게 이 자리를 골랐으며, 어떻게 딱 한 칸짜리 방을 만들 수 있었으며,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 담을 수 있었을까 하는.. 2012. 3. 22.
[함성호의 옛집 읽기]<26>‘유가의 정원’ 서석지 영양 서석지(瑞石池:국가민속문화재 제108호)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석문 정영방이 건립한 누정. 정자·연못으로 이 정자는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광해군 5)에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방지(方池)의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마루 안쪽에 ‘棲霞軒(서하헌)’이라 편액하였다. 서단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어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북단의 서재 앞에는 못 안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四友壇)을 축성하여 송ㆍ죽ㆍ매ㆍ국을 심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가운데에 돌출한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을 이.. 2012. 3. 22.
[함성호의 옛집 읽기]<25> ‘도가의 이상향’ 체화정 체화정(棣華亭: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이민적·이민정 형제 관련 누정으로 1761년(영조 37)에 창건하여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이 학문을 닦고 형인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기거하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정자 이름인 ‘체화(棣華)’는 형제간의 화목과 우의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자 앞쪽의 삼층도지(三層島池)라는 못에는 3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정자 뒤쪽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수목이 울창하여 경관과 지세가 좋다. 정자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락집으로 어칸은 온돌방이고 좌·우협칸은 마루방인데, 온돌방과 마루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내어 밀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사면으로 돌렸다. 마루방 앞쪽으로는 4분합 들문을.. 2012.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