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집60 [함성호의 옛집 읽기]<24>‘빛과 그늘의 담채화’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사적 제260호)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었으며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고려 말기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9년 유진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23>‘독립운동의 명가’ 목재 고택 안동 목재고택(安東 穆齋古宅) 목재(穆齋) 고택은 도산서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퇴계의 묘를 지나 육사 문학관 근처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목재 이만유(李晩由·1822∼1904)의 고택이다. 대문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대문채가 따로 필요 없는 ‘ㅁ’자 집이다. 중문이 따로 없는 것도 이 집이 본래 대문채를 두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와 ‘ㄴ’자로 결합해 있어 ‘ㅁ’자를 이룬다. 드나드는 문은 사랑채와 안채가 결구하는 지점 두 곳에 있다. 대문채가 없어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랑채 마당과 안마당이 독립적으로 구성된다. 사랑채는 전면의 다섯 칸 가운데 맨 오른쪽의 광 한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 반 칸의 툇마루를 설치한 후에 맨 왼쪽의 방 한 칸을 정자 형태로 ..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22> ‘전통의 새 모색’ 농암종택 *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 농암종택*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농암종택이 있던 곳은 분천마을, 하지만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이후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전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 씨가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 2007년에 분강서원(汾江書院)이 재이건되었으며, 지금은 분강촌(汾江村)이라고도 불리며,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날 피아노잡이 임동창은 임하댐 수몰지구를 지나다 건..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21>‘그림속의 집’ 고산정 고산정(孤山亭: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4호)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금난수가 건립한 고산정은 정유재란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하여 좌승지(左承旨)에 증직(增職)된 바 있는 성성재(惺惺齋)금난수(琴蘭秀)의 정자이다. 고산정은 안동팔경(安東八景)의 하나인 가송협(佳松峽)의 단애(斷崖)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의 주위에는 외병산(外屛山)과 내병산(內屛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의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獨山)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자연석으로 축대를 높게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였다. 주두(柱頭)의 상부에..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20>‘철학의 정원’ 도산서원 도산서원(陶山書院:사적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보물 제210호), 향례 때 제수를 두던 전사청,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서재, 장서를 보관하던 광명실·장판각,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 등..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19>‘노블레스 오블리주’ 임청각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로 1519년(중종 14)에 형조좌랑 이명(李洺)이 건립한 양반주택의 별당형 정자이다. 정자의 평면은 丁자 모양이며, 서쪽으로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두 개 연이어 있다. 다음 1칸 크기의 마루방을 두고 그 북쪽으로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일렬로 늘어선 방과 마루에 연이어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큰 대청을 두었다. 방과 대청 주위로 툇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얹었다. 주두 위에는 밑면이 초각(草刻)된 첨차를 놓고 소로들을 얹어 굴도리 밑의 장여를 받쳤다. 보방향으로는 쇠서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18>충남 논산 ‘명재 고택’ 논산명재고택(論山明齋古宅: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 명재 윤증 관련 주택으로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월 29일 논산명재고택(論山 明齋 古宅)으로 문화재 지정명칭이 변경되었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이 건축하였다고 하나 후대에 개수 등이 있었던 듯 현존건물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고택은 파평윤씨(坡平尹氏)들의 세거지인 옛 이산현에 있는 이산(尼山)을 배산(背山)하여 인접한 노성향교(魯城鄕校)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 앞에는 비교적 넓은 바깥마당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 인공 방지(方池)를 파고 조그마한 석가산(石假山)을 조성한 훌륭한 정원이 꾸며져 있다. 정원에서 4단석계의 축대를 오르면 오.. 2012. 3. 21. [함성호의 옛집 읽기]<17>‘나누는 자본주의’ 운조루 운조루(雲鳥樓:국가민속문화재 제8호)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으며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집터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환낙지(金環落地)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사랑채는 4칸의 몸채에 뒤쪽으로 꺾여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려 있다. 몸채 왼쪽 끝의 1칸은 내루형(內樓形)으로 기둥 밖으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이 사랑채의 구성은 궁전 침전에서와 같이 완전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여기에 일반 대청이 연립하여 있다. 또, 사랑채에는 보통 큰 부엌이 없는 법인데,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더구나 본 사랑채와 직교한 누마루가 또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어 특이하다. 사랑채의 오른쪽은 안채.. 2012. 3. 16. [함성호의 옛집 읽기]<16>경주 교동 최준 고택 최준고택(崔浚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만석꾼 최부자 관련 주택으로 최씨의 9대조가 요석궁터[瑤石宮址]라 전해오는 길지(吉地)에 건축한 집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안마당 맞은편에 있던 사랑채는 별당과 함께 1970년 11월 22일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안채와 천석곳간만이 남아 있다. 집의 배치는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ㄱ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그리고 一자형의 중문간 행랑채를 연속하여 건축하였다. 서당으로 사용하던 별당과 천석곳간·사당은 따로따로 건축하였다. 남향한 대문간 행랑채를 들어서면 곧바로 사랑마당이 되고, 왼쪽(서쪽)으로 一자형 별당이 동면하여 서 있으며, 사랑채가 남면하여 서 있다. 사랑채는 사랑대청·사랑방·침방이 .. 2012. 3. 16. 이전 1 2 3 4 5 6 7 다음